제5장 1


 

제 5 장

1

 

새벽 3시에 돌연 비상소집이 있었다. 촌보를 알아볼수 없는 안개자욱한 숙영지를 벗어나자 강행군이 시작되였다. 어디로 무엇때문에 가는지 그것은 아무도 몰랐다.

《선두, 속도 높엿!》

봉석의 입에서는 총알같이 여문 구령이 간단없이 떨어지고 중대원들은 어둑한 새벽길을 달리듯이 행군해갔다. 몸에 걸친것 없이 따라다니기만 하던 때와는 사정이 판 달랐다. 총을 메고 소지품이 빠짐없이 들어있는 배낭까지 지고 강행군에 처음 나선 그들에게 있어서 속도를 계속 높인다는것은 참말이지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닐수 없다. 십리를 못가서 중대원들은 벌써 기운이 진해빠져서 대렬인솔자인 봉석이를 쳐다보았다. 봉석은 저번에 사령부직속으로 소년중대를 내올 때 1소대장이 되였다. 강민이가 중대장겸 정치지도원으로 임명받았다. 작식대원으로는 두명의 녀대원이 배속되였다. 한명은 경험많은 구대원인 희옥이고 다른 한명은 중대사무장책임을 맡게 된 송순이였다.

소년중대가 조직된 후 강민중대장은 지금처럼 가끔 대렬인솔을 1소대장인 봉석이한테 맡기군 하였는데 그럴 때면 봉석은 신이 나서 규률을 세웠다. 그는 지금도 석새베틀에 북나들듯이 앞뒤로 분주히 뛰여다니며 짤막히 그리고 강하게 구령을 쳤다.

《속도 높엿! 선두, 속도 높엿!》

가차없이, 어찌 보면 매정하게 생각되는 요구였다. 대원들은 숨돌릴새없이 몰아세우는 구령에 의견을 가지고 봉석이를 힐끔힐끔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에서나 두덜거리기 잘하는 인수의 불만은 표나게 두드러졌다. 그는 좀 쉬여가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받쳤지만 남먼저 약한 소리를 하고싶지 않아 참을성있게 걸었다.

마침 앞에 선 광호가 풀먹은 염소배처럼 불룩해진 배낭을 엉치에 늘어붙이고 잔뜩 상을 찡그리며 걷다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인수, 너무하지 않니?》

봉석이에 대한 두려움이 섞인 비난이였다.

《힘들면 좀 쉬자구 해, 뒤소리만 하지 말구.》

인수는 자기는 조금도 힘들지 않은체하며 광호를 부추겨보았다.

광호는 귀가 먹었는지 그 말에는 느물거리며 응대하지 않았다.

인수는 괘씸하여 광호의 넙적한 잔등을 한대 박아주고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는 할수 없어 고개를 뽑아들고 앞뒤형세를 살펴보았다.

(그럼 그렇겠지···)

누구나없이 더위먹은 황소처럼 헐떡거리며 줄땀을 연방 씻었다. 보채지 않아도 조만간 휴식구령이 떨어질듯 했다.

그러나 봉석이한테서는 또다시 같은 구령이 떨어졌다.

《선두, 속도 높엿!》

인수는 그만 약이 올랐다. 어찌 골이 났는지 봉석이가 제옆에 온것을 보고서도 조심성없이 투덜거렸다.

《이건 너무하구만!》

봉석이가 힐끗 인수를 찍어보았다.

《뭐가 너무해?》

《이런 법이 어디 있소?》

인수는 숙어들지 않고 불손하게 내쏘았다. 봉석은 상관한테 무슨 말본새냐고 눈을 부릅떠보였다.

《법은 무슨 법, 못따라오겠으면 나서시오!》

공공연한 위협이였다. 못따라오면 쫓아버리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인수는 흥-코방귀를 뀌였다.

《쳇, 내가 뭐 힘들어 그러나?》

그는 광호의 처진 배낭을 한손으로 받쳐주며 《힘내라구 힘내. 혀를 빼여물고라도 걸으라면 걸어야지.》 하고 제사 거들어주는체 하였다.

중대가 앞서가는 7련대를 따라 어느 한 산굽이를 돌아설 때였다. 봉석이가 갑자기 대렬을 멈춰세웠다. 그러자 몇몇 대원들이 휴식인줄로 알고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인수도 그중의 한사람이였다.

《일어섯!》

봉석은 쇠소리가 쨍 울리게 구령을 쳤다. 두번다시 지시없이 움직이는 행동은 일체 용서하지 않는다는것을 긴말이 없이도 명백히 느낄수 있게 하는 어조였다. 주저앉았던 대원들은 드센 손아귀에 덜미를 잡힌 강아지처럼 꼼짝 못하고 일어서서 혀아래소리로 뭐라고 두덜대였다.

《거 두덜거리는게 누구요? 누가 규률없이 제멋대로 앉으라구 했는가? 엉?》

봉석은 누구도 군말 못하게 눌러놓고 맨나중에 일어난 광호의 배낭끈을 잡으며 대원들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모두 여기를 보시오. 광호동무가 체통은 큰데 왜 덩지값을 못하고 쩔쩔매는가? 이 동무 배낭을 잘못 졌단 말이요. 이것 보시오. 소지품이 꼴망태처럼 사방으로 삐여지구 배낭끈이 잔뜩 처지지 않았는가. 광호동무, 배운 지식은 당반에 얹어두었소? 배웠으면 써먹어야 해, 써먹어야-》

봉석이가 말한 《배운 지식》이란 단기군정훈련때 터득한 군사지식을 념두에 둔 소리다.

단기군정훈련은 중대가 생긴 직후에 장군님께서 친히 조직해주시였다. 주력부대안의 우수한 군사정치일군들을 선발하여 군정훈련을 지도케 하고 군정훈련의 방향과 내용, 훈련방법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중대원들은 군정훈련기간 혁명적세계관확립에 필요한 정치상학을 받으며 유격전의 원칙들과 전법들, 여러가지 정황속에서 병사의 임무와 행동질서, 무기의 작용원리와 사격방법, 행군시 지켜야 할 사항 등 군사지식을 배웠다.

장군님께서는 중대가 군정훈련을 받고 부대와 같이 행동하게 되자 중대의 일과까지 손수 짜주시고 그대로 집행하도록 각별한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그런 뒤로 중대의 행동에서는 사소한 무규률도 허용되지 않았다. 오늘의 행군 역시 그러하였다.

봉석은 광호로 하여금 배낭을 벗어 짐을 고쳐꾸리고 끈도 줄이게 한 다음 《출발!》 하고 명령하였다. 휴식을 기대하던 대원들은 쓴 외꼭지를 씹은듯이 얼굴이 이그러지며 봉석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봉석이를 칭원하는 그 어떤 의견도 입밖에 내지 못하였다. 봉석이자신도 자기들과 꼭같이 배낭을 지였을뿐아니라 쭐렁거리며 차고다니는 권총(그는 소대장으로 임명되면서 권총을 수여받았다.)외에 기병총도 한자루 더 메고간다. 어린 관식의 총이였다.

봉석은 한옆에 비켜서서 자기 요구대로 질서있게 다시 행군해가는 대원들을 지켜보다가 지나가는 2소대장 주용길을 손짓해 불렀다.

《2소대장!》

틀스러운 손짓도 그렇고 상대방을 제 의지에 복종시키는 엄한 목소리도 그렇고 그는 마치 중대장이나 되는듯이 상급 행세를 하였다.

2소대장이 봉석이앞으로 달려왔다. 그는 봉석이만큼 유격대생활은 못해봤지만 마안산에서부터 부대를 따라다니며 교양도 많이 받고 군사규률에 치여난 소년이였다.

《2소대장동무, 옆으로 나서서 대렬을 잘 살피시오. 나혼자서야 어디 감당할수가 있소?》

《알겠습니다.》

2소대장은 깍듯이 대답하고 물러갔다. 그는 자기 선배인 봉석이를 언제나 례절있게 대하였다. 행군질서를 바로잡으려고 뛰여다니던 봉석은 이번에는 3소대장 박태묵이를 옆으로 불러내였다.

《3소대장, 동무도 좀 오라구!》

3소대장은 주용길이와는 딴판이였다. 그는 성가시게 군다는듯이 얼굴을 찌프리며 봉석이 옆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박태묵은 똑같은 소대장인데도 봉석이가 번번이 자기를 하급으로 여기며 손에 쥐고 흔들려는바람에 늘 의견이 있을사하였다.

봉석은 그의 기분을 짐작한듯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동무는 왜 내가 부르면 언제나 얼굴을 찌프리는거요?》

《제가요?》

《동무네 소대가 행군규률이 없어. 간격도 보장 못하고, 잡담이 많고, 대렬통솔을 잘하시오!》

3소대장은 알았다는 시늉만 하고 돌아서버리더니 자기네 소대로 달려갔다.

행군대오는 선두가 치도로 길을 연 덤불을 뚫고 걸음걸음 무성한 숲을 헤쳐나갔다.

대원들은 휴식을 단념하고 기를 쓰며 따라오면서도 자꾸만 헛눈을 팔았다. 중대장을 찾는것이였다.

강민중대장이 옆에 오기만 하면 당장 봉석이를 닦아세우며 자기들을 휴식시킬것만 같았다. 중대장은 아직 한번도 그들을 봉석이처림 모질게 몰아댄적이 없었다. 대원들이 힘들어하면 제때에 휴식도 시켰다. 그러던 중대장이 오늘은 줄곧 대렬뒤에서 따라왔다. 하루밤사이에 갑자기 커진 배낭때문이였다. 대렬통솔은 봉석이한테 일임하였다.

그런데 배낭속에 들어있는것이란 무슨 진귀한 물건이 아니였다. 베개통같은 굵은 피나무토막이였다.

며칠전에 장군님께서 강민이를 불러놓고 소년중대가 나온 후에 무슨 애로가 없는지 여러가지로 물어보며 담화를 하시다가 한마디 걱정의 말씀을 하시였다.

《동무생각에는 어떻소? 내 보기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준오가 몸이 너무 허약해보이는데 어떻게 빨리 추세워줄수 있는 방법이 없겠소?》

강민은 그동안 장군님께서 준오의 몸을 추세워주려고 군의처에 지시하여 여러가지 약재를 써주신 내막을 모르지 않았다.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준오를 보살펴주시오. 준오도 다른 애들처림 혈색이 불깃했으면 얼마나 좋겠소.》

언젠가는 준오의 웃는 얼굴을 보면 좋겠다고 하시던 그이께서 이윽토록 생각에 잠기시였다. 그이의 말씀이 귀에서 떠나지 않아 강민은 엊그제 적구에 다녀오는 통신원편에 부탁하여 보양제로 율무를 둬되박 얻어왔다. 송순이한테 맡겨 끼니때마다 율무죽을 한공기씩 쑤어먹이게 할 생각이였다. 하지만 율무를 찧을 절구가 없어 송순이한테 주지 못하고 배낭속에 지고다니다가 어제저녁에는 절구를 만들어보려고 숙영지산판을 샅샅이 뒤져 굵은 피나무를 찾아내였다. 군수처에서 도끼를 얻어올가 하다가 소문을 내고싶지 않아 베개통같이 굵은 피나무를 치도로 찍어넘겼다. 유격대생활에서는 치도를 도끼대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둘레가 서너뽐 잘되는 피나무를 치도로 한토막 잘라내자니 간단한 역사질이 아니였다.

그렇게 품놓고 마련한 절구감을 배낭안에 건사하였다. 동료들이 갑자기 불어난 강민의 배낭을 꾹꾹 눌러보며 뭐냐고 물었으나 아직은 나무토막에 지나지 않는 물건을 지고다니는게 웃음거리가 될것 같아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가 대리인으로 지명한 봉석이가 물어봐도 쓸데없는데 간참하지 말라고 잘라버렸다. 이제 밥사발만 하게 피나무절구를 하나 잘 파서 송순이를 깜짝 놀래워줄 생각인데 입이 헤픈 봉석이가 미리 찾아가서 귀띔이라도 하면 일은 시시해지고만다. 작식대에 겉곡이 생길 때가 많은것만큼 휴대용절구를 맵시있게 만들어주면 송순이한테는 큰 재산이 될상싶었다. 강민은 오늘도 대렬뒤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며 피나무절구를 안고 춤이라도 출듯 기뻐서 돌아갈 송순의 얼굴이 떠올라 혼자 싱글벙글 웃었다. 송순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것이 왜 이리도 흡족한지 몰랐다. 마치도 그것이 팔자에 타고난 의무같이 생각되기도 하였다.

부대는 엉겅퀴가 무성한 개활지대를 지나 산발을 타고넘었다.

한낮이 거의 되여서야 휴식명령이 내렸다. 이깔나무가 우거진 수림과 깊은 골짜기를 낀 령밑이였다. 부대는 여기서 짐을 풀어놓고 저녁까지 쉰다고 하였다.

강민은 봉석이를 불러 기상구령이 울릴 때까지 대원들을 푹 쉬우라고 했다. 강민이가 중대일을 도맡기다싶이 하자 봉석은 힘이 뻗치여 《알았습니다!》 하고는 발뒤꿈치에서 딱 소리가 나게 돌아섰다.

대원들이 소대별로 그늘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져갈 때 봉석은 3소대장 박태묵이를 불러세웠다. 박태묵은 한숨을 쉬였다. 중대장의 신임을 악용하여 여전히 오라가라 하는 봉석의 건방진 태도가 아니꼬왔다. 봉석은 3소대장의 다부진 가슴이 오르내리는것을 보고 그앞으로 다가왔다.

《동문 왜 또 한숨을 쉬오? 무슨 불만이 있소?》

《···》

《혹시 같은 소대장인데 내가 지시하려든다구 의견이 있는게 아니요?》

《···》

《동무, 인식을 똑바로 가지는게 좋겠소. 소대장이라고 급이 같은줄 아는가?》

3소대장은 봉석의 턱없는 재세와 월권행위에 그럴만 한 근거가 있으므로 감히 맞설 엄두를 못냈다. 3소대장이 한풀 숙어든것을 보고 봉석은 용무를 길게 말하지 않았다.

《동무를 왜 남으라고 했는가 하면··· 아까 행군해올 때 동무가 취한 불손한 행동에 대하여 주의를 주고싶었소. 동무까지 엇서면 어떻게 대렬을 인솔하겠소?》

3소대장은 봉석의 순하지 않은 말투에 비위가 상한듯 대답이 없이 돌아서버렸다. 봉석은 당장 박태묵이를 돌려세우고싶었지만 자제하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당장은 그도 조용한 곳에 드러누워 잠간이나마 피로를 풀고싶었다.

그때 등뒤에서 장군님 목소리가 들렸다.

《봉석동무, 이리 좀 오라구!》

봉석은 와뜰 놀라며 돌아서자 그이앞으로 달려갔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사람들의 눈길이 덜 미치는 이깔나무밑으로 데리고가시더니 여느때없이 엄한 눈길로 내려다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늘 행군해오며 봉석이가 중대를 인솔하는 모습을 여러번 먼빛으로 지켜보시였다. 대원들이 기를 펴지 못하게 줄곧 큰소리를 치며 사정없이 몰아대는것을 보시고는 옆으로 가서 너무 그러지 말라고 타일러주고싶으시였다. 하지만 행군중이고 또 대원들이 보면 그들한데 미치는 영향도 좋을것 같지 않아서 참으시였다. 그런데 봉석은 자기와 동급인 중대안의 소대장들한테까지 을러메지 않는가? 그들보다 유격대밥을 먼저 먹은것도 사실이고 무슨 일에서나 책임성이 강한 봉석의 장점에 대해서는 그이께서도 잘 알고계시였다. 그러나 대원들앞에서 자세를 낮추고 그들을 부드럽게 대해주라고 몇번이나 타일렀는데 아직 채심을 못하고있다.

《봉석동무.》

장군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려다가 뒤짐을 지고 몇발자욱 걸으시였다.

봉석은 얼떠름해졌다. 장군님께서 이전과 달리 봉석이라고 하지 않고 《봉석동무》라고 부르시자 갑자기 몰라보게 성장한 자신을 발견한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장군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있지, 바로 봉석동무가 문제돼서 그래. 언제면 그 우쭐거리는 버릇을 고칠수 있을가? 그렇게 떡떡거리지 않으면 안되겠소?》

《전 별로 떡떡거리는것 같지 않은데···》

《이것 보지? 금방 한일도 아니라니 문제로군. 오늘일만 해두 그렇지. 대렬인솔이야 책임적으로 하고 또 규률도 세워야지. 그렇다고 큰소리치는것으로 규률을 대신하면 어린 동무들이 중대에 어떻게 정을 붙이겠소?》

장군님께서는 봉석이가 알아듣도록 조용히 타이르고 생각할 여유를 주듯이 자리를 뜨며 말씀하시였다.

《그럼 피곤할텐데 좀 쉬라구.》

봉석은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매시근해오는데다가 장군님의 책망을 듣고 마음이 무거웠다.

이어 쉴만 한데를 살피던 그는 《장군님께서 잘못했다고 했으면 잘못된거지.》 하고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지금은 눕고싶어도 눕지 말아야 해. 내가 맥을 놓으면 입빠른 저 인수서껀 뭐라구 할텐가? <흥, 행군을 냅다 몰더니 너도 뻐근한게구나.> 하구 뒤소리를 할게 아닌가.)

봉석은 장군님말씀대로 앞으로 대원들을 따뜻이 대해주더라도 자기의 약한 구석은 보이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 조용한 곳이 없나 하여 두리번거리던 그는 경위대원들이 쳐드린 사령부천막뒤쪽으로 갔다. 누구든 사령부주위로는 함부로 가지 않았으므로 혼자 다리쉼이나 할 장소로는 거기가 맞춤해보였다.

봉석은 사령부천막뒤에 그늘을 던지며 우중충 서있는 전나무밑에 가앉았다. 바람은 자고 시원히 열린 쪽빛 하늘에는 수리개 한마리가 높이 떴다. 가까이 서있는 가문비사이로는 누군가 혼자 얼씬거리는 모습이 내다보였다. 유심히 보니 강민이였다. 그는 외진 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피는 거동이 무슨 보물이라도 산속에 감추려는 사람같았다. 봉석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갑자기 불룩해진 중대장의 배낭을 의심쩍게 여겨온 봉석이였다.

강민은 배낭아구리를 열고 그속에서 베게통같이 생긴 물건을 조심히 끄집어내더니 볕이 잘 드는 바위돌우에 신주모시듯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얼마간 떨어진 나무그늘밑에 큰대자로 드러누웠다.

봉석은 바위돌우의 물건이 무엇인지 슬그머니 다가가서 알아보고싶었다. 얼핏 보기에 나무토막같기도 하고 둥그런 쇠통같기도 한 저것이 도대체 무얼가? 그러나 다가가면 중대장이 발자국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날것만 같았다.

(쓸데없는데는 참녜하지 말라고 했는데···)

봉석은 단념하고 나무밑둥에 기댄채 공중 떠있는 수리개를 바라보다가 저도모르게 스르시 눈을 감았다. 피곤이 엄습하여 정신이 혼미해왔다.

(가만, 이럴게 있는가? 중대장이 저렇게 누웠는데 소대장이 못누울게 뭐람.)

봉석은 잔등이 배기지 않을 자리를 찾아 주위를 휘―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무의식중에 똑바로 앉았다. 맞은편 너럭바위에 기대고 누운 인수가 그를 쏴보고있었다. 행군속도를 높이라고 자기들을 못살게 굴던 햇내기소대장을 비웃듯이 줄곧 눈길을 떼지 않았다. 봉석은 인수가 그런 자세로 잠이 든것을 알게 된 때에야 《애햄―》 헛기침을 하였다. 급히 옷매무시를 살펴보고 군모도 제대로 썼는지 채양을 만져보았다. 그리고는 사령부에 볼일이 있어 그곳에 나타난것처럼 출입문이 환히 열려있는 사령부천막쪽으로 걸어갔고 인기척을 내며 곧장 사령부안으로 들어섰다. 책을 보시던 장군님께서 때아니게 찾아온 봉석의 얼굴을 쳐다보시였다.

《봉석인가, 왜 쉬지 않고 왔나?》

봉석은 그제야 정신이 펄쩍 들었다. 무엄하게 아무런 용무도 없이 사령부에 들어왔음을 비로소 깨달은것이였다. 그러나 몸에 배인 응석은 어쩔수가 없었다. 실상 봉석은 인수의 눈길을 피해 사령부에 들어온것만은 아니였다. 그는 장군님께서 계시는 사령부천막가까이에 왔을 때 그곳이 함부로 출입할 장소가 못된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저, 그저 오고싶어서···》

장군님께서는 그만 가슴이 뭉클하는것을 느끼시였다. 방금 중대원들에게 떡떡거리지 말라고 꾸중을 했는데도 봉석이는 오고싶어서 왔다고 대답하는것이였다.

《그렇단 말이지.》

장군님께서 봉석이의 손목을 살틀히 잡아당기며 통나무걸상에 앉히시였다. 한가득 인정이 어린 눈으로 볕에 타고 피로가 어린 봉석의 얼굴과 땀에 젖은 군복을 살펴보시였다.

《내 아까 싫은소릴 했지만 봉석이가 오늘 수골 했어. 내가 다 봤지. 앞뒤로 오가면서 힘들어하는 대원들의 총까지 메다주구 참 용터구만. 이제 그애들이 봉석이만큼 크면 그때엔 꾀를 부리는 녀석들은 종아리를 좀 치자구. 그게 좋지?》

봉석은 장군님의 말씀에 코마루가 찡해나는것을 느끼며 누구에게도 보이고싶지 않았던 자기의 약한 구석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장군님, 사실 오늘 목적지에 부대와 같이 가닿고싶어 강행군으로 대원들을 들입다 몰았지만 저도 혼이 났습니다. 다리에 쥐가 일어 급한걸 겨우 참았습니다.》

《그래? 어디 좀 보자.》

장군님께서 허리를 굽히고 봉석의 땀배인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시였다. 피가 몰린 그의 장딴지를 량쪽 다 만져보시였다. 돌덩이처럼 딴딴해진 장딴지는 열에 뜬것처럼 화끈하였다.

《허, 이거 불돌같구만.》

《확실히 전 약골입니다. 이래가지구야 어떻게···》

《원, 약골은 무슨 약골. 어른들도 강행군을 하고나면 이렇다. 난 뭐 안그런줄 아느냐.》

장군님께서 통나무걸상에서 내려앉아 무릎을 꿇고 봉석의 다리를 손수 주물러주시였다. 봉석이가 미안하여 몸을 일으키려고 버둥거리자 장군님께서 꼼짝 못하게 붙들고 엉덩판을 치시였다.

《에끼 녀석, 가만있거라.》

《장군님, 됐습니다.》

《조금만 더··· 자, 이젠 된것 같다. 그럼 여기 나와 함께 앉아서 이야기나 하자꾸나.》

봉석은 장군님께서 자신의 옆에 앉혀주시자 그만 목이 꽉 메고 눈물이 핑 고였다. 어쩐지 지나온 일들이 저릿한 추억속에 눈앞으로 얼찐얼찐 떠올랐던것이다.

《토벌》에 불타버린 집, 왜놈들의 칼에 맞아 피를 토하고 죽은 어머니, 유격대원들의 등에 업혀 물을 건느고 산을 넘던 행군길, 눈덮인 산과 들, 전령병들과 같이 병아리처럼 안겨자던 장군님의 품.

장군님으로부터 총다루는 법을 배우던 일도 떠올랐으며 첫 전투에 참가했을 때 옆에 오시여 담을 키워주시던 그이의 목소리도 귀전에 울렸다. 그런 나날에 어느덧 응석이 생겨 장군님과 조금만 떨어져도 허전해하고 쓸쓸해하며 지휘관들의 말도 잘 안듣던 지난날의 자기 모습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내가 너와 이야기하자는건 다른게 아니다.》

장군님께서 먼저 말머리를 떼시였다.

《난 오늘 너희네 중대원들을 한번 부대와 같이 행군시켜보았는데 네가 보기에는 어떻드냐? 솔직히 좀 말해봐라. 그애들이 우릴 꽤 따라다닐것 같으냐?》

장군님께서 중요한 문제를 상론하듯 진지하게 물어보시자 봉석은 신중해졌다.

《장군님, 전 오늘 자신이 생겼습니다. 헐치 않은 강행군이였는데 중도에서 한명도 락오자가 없었습니다.》

《그래, 그렇지. 나도 중대를 무어주고 걱정이 없지 않았다. 그래 정말 자신이 있느냐?》

그런데 금방 큰소리를 치던 녀석이 대답이 없었다. 웬일인가 하여 돌아다보니 자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소르르 잠이 들어버린것이였다. 그 순간 장군님께서는 좀전에 봉석이가 추궁은 받았지만 잠을 자려고 내곁으로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자신도 모르게 눈굽이 젖어드는것을 느끼시였다. 욕은 먹었지만 그래도 여기가 좋단 말이지? 봉석이가 이젠 다 컸구나··· 그이께서는 어느덧 다릉다릉 코를 골기 시작하는 봉석이의 량볼을 두손으로 꼭 감싸쥐고싶으시였다. 자신의 어깨에 놓인 봉석이의 삐뚤어진 모자도 바로씌워주고싶은 생각이 드시였다. 그러나 조금만 움직여도 봉석이가 깨여날것 같아서 그대로 앉아계시였다. 한동안 시간이 흐르자 어깨가 쑤셔났지만 참으시였다. 간고한 혁명투쟁의 나날에 자신의 몸에 수없이 실린 그런 부담을 달게 여겨오신 그이시기에 그 시각도 잠든 봉석이와 함께 후방밀영에서 데려온 아이들의 얼굴까지 눈앞에 한명한명 사랑스럽게 그려보시였다. 준오며 입대만 시켜주면 일본《천황》도 잡아오겠다던 코가 오똑한 덕부동소년 인수, 덕만이··· 그들도 이제 봉석이만큼 커서 그 백여명의 소년들이 모두 이 어깨에 와서 차례차례로 머리를 기대고 잠들 때가 되면 얼마나 좋으랴. 행군의 피곤을 말끔히 잊고 곤히 잠든 봉석의 얼굴에 언제 흘린 눈물방울인지 채 마르지 않은채 매달려 어느 하루 아이들에 대한 시름으로 발편참을 이루지 못하시는 그이의 가슴속에 잦아들며 애정의 잔물결을 일으켰다.

얼마후 천막밖으로 달려가는 누군가의 발자국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때에야 잠에서 깨여난 봉석은 자기가 장군님한테 기대여 깜박 잠들었다는걸 알고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장군님, 제가 오래 잤습니까?》

《오래 자긴? 한 이삼분 될가―》

《예? 그런데 옹근 하루밤을 자고난것 같이 거뿐한데요.》

봉석은 장군님의 말씀을 곧이 듣고 벙실 웃으며 차렷자세로 섰다.

《그럼 장군님, 전 돌아가보겠습니다.》

《좋도록 하오. 봉석동무가 웃으니 나도 기운이 나누만.》

장군님께서는 봉석이가 천막안에서 나간 후에야 통나무의자에서 일어나 뻐근해나는 어깨를 주먹으로 툭툭 두드리며 고개를 저으시였다. 삼년전만 해도 봉석이한테 팔을 베우고 주무시였으나 이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신것이였다.

한편 사령부에서 나온 봉석은 대원들한테로 찾아가려다가 아까 강민중대장이 배낭에서 이상한 물건을 꺼내여 돌우에 조심히 올려놓던 일이 떠올라 그리로 발길을 옮겨갔다. 지금쯤 중대장이 깊은 잠에 곯아떨어져서 세상모르고 잘것이였다.

봉석은 발소리를 죽이고 이상한 물건이 놓인데로 달려갔다. 그런데 조화였다. 강민은 그옆에 배낭을 베고 잠들었는데 중대장의 《보물》이 간데없이 사라진것이였다.

혹시 주인이 건사하지 않았는가 하여 조심히 다가가서 배낭을 만져보았다. 배낭은 훌쭉했다.

《봉석이, 중대장의 배낭은 왜 뒤지는가?》

잠든줄 알았던 중대장이 엄하게 물었다.

봉석은 당황하였다,

《저 사실은말입니다. 아까 보자니까 중대장동지가 무슨 물건을 저기 돌우에 놓는것 같았는데.》

《그게 동무와 무슨 상관이 있소?》

《상관은 없지만 잃어버린것 같아서 찾아보는중입니다.》

《잃어버리다니?》

강민은 바위우를 바라보았다. 정말 피나무토막이 보이지 않았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짝짝― 장작을 패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가만 이게 뭐야?》

강민은 가슴에 짚이는데가 있어 봉석을 배낭옆에 남겨두고 소리나는 곳으로 뛰여가보았다. 순간 그는 《아이고》 하고 입을 딱 벌렸다. 송순이가 도끼를 쥐고 앉아서 피나무토막을 형체도 찾아볼수 없게 쪼개고있었다.

강민은 자기가 신고하여 마련한 절구감이 도끼날에 산산쪼각이 나는것을 보자 숨이 꺽 막혔다.

《송순동무, 잘하누만, 잘해.》

《왜 그래요?》

《동무, 도대체 그게 뭔지 알기나 하구 박산내오?》

송순은 강민이가 기가 막혀하는데 롱인줄 알고 해죽 웃으며 쳐다보았다.

《녜? 이거말이예요? 비오는날에 불살개감으로 쓰려고 그러지요뭐. 불살개감으로는 피나무이상 없답니다.》

《잘 아누만.》

《아이참, 그만한것도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강민은 약을 올리는듯 한 송순의 대답에 어처구니없는 웃음만 나갔다.

《헛참, 이렇게 눈치가 무디다구야. 무슨 녀자가 그렇소?》

《왜 그러세요?》

송순은 도끼자루를 쥔채 상큼하니 눈길을 들었다.

《왜 그러세요가 뭐요? 동무눈엔 그래 이제 불살개로밖엔 안보이오? 참, 얌전한 아가씨두 있지.》

《아니? 왜 이리 비꼬면서 그러세요?》

강민은 입이 써서 발길을 돌리려다가 다시 송순이를 내려다보았다. 남의 속은 알지 못하고 태연히 앉아 절구감을 쪼개는 처녀가 어찌보면 철없는 소녀애같이 귀엽고 천진란만하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동무처럼 눈치없는 사무장한테 세간살이를 맡겼으니 중대장이 마음놓게 됐소. 이다음에 어느 랑군님이 데려가겠는지···》

송순은 좀해서 보기 어려운 꼿꼿한 눈길로 강민을 마주보았다.

《아이참, 중대장동진 뭐예요!》

그는 강민의 말을 얼마나 노엽게 들었는지 어깨를 달싹거리다가 얼굴을 싸쥐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마침 로상권이가 기침을 하며 강민이옆으로 다가왔다. 좀전에 송순이가 도끼를 빌려가기에 어디다 쓰려는지 알아보고 도와주자고 나오는 길이였다.

《중대장동무, 송순동무한테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강민이가 대척없이 서있자 로상권은 혀까지 끌끌 찼다.

《원, 나무토막 하나가 뭐라구, 체넬 울리다니···》

《상권동무, 내가 뭐 별소릴 한게 있다구 그러오? 그리구 불살개감이나 하자고 나무토막을 지고다닌줄 압니까? 사실은 절구를 하나 만들 생각이였는데, 글쎄···》

로상권은 제 귀를 의심할 지경으로 놀랐다. 강민이가 기관총이나 박격포를 만들 생각을 했다면 그럴둥싶게 들었을지 몰라도 절구를 팔 생각을 했다는것은 도무지 곧이 들리지 않았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