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6


 

제 4 장

6

 

기상구령이 울리자 장군님한테로 울상이 된 한떼의 소년들이 넘어지고 어푸러지고 하며 허겁지겁 달려왔다.

진대통사건이 있은 후 《말썽군》딱지가 붙은 인수가 맨먼저 달려왔고 그 뒤로는 준오와 같이 한천막에서 잔 아이들이 무슨 변이라도 난것처럼 주먹을 부르쥐고 따라왔다.

《장군님, 우릴 다 딴데로 보낸다는게 사실입니까?》

인수는 달려오자바람 당돌한 성미가 내돋은 오똑한 코를 쳐들고 장군님을 올려다보며 자못 심각하게 물어보았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

《봉석동무랑, 준오랑···》

장군님께서는 벌써 짐작이 가시였다. 간밤 그들의 생각을 한마디 물어보았더니 제나름으로 넘겨짚고 딴소리를 한것 같았다.

《그래, 인수 너는 안가겠단 말이냐?》

《전 입대를 해야겠습니다.》

인수는 첫마디에 몇다리 건너뛰는 대답을 하였다.

《입대하겠다? 이애 너 유격대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잘 압니다.》

《흠, 알아도 잘 안단 말이지, 사실 너희들이 그새 부대를 따라다니면서 고생이야 했지. 하지만 지금은 여름이다. 여름은 유격대가 활개치는 시절이다. 그 여름철에 너희들은 그쯤 고생을 했는데 이제 겨울이 되면 사정이 달라. 눈은 한길씩 빠지구 추위는 뼈속까지 스며들어도 유격대는 산에서 살면서 싸워야 한다. 눈을 파헤치구 거기에 천막을 치거나 눈우에다 마른 풀을 깔고 잠자리를 만들기도 하지. 그뿐이겠니. 생눈을 먹으면서 여러날 굶을수도 있다. 1년 열두달 험한 산으로 다니며 늘 적과 싸워야 한다. 너희들이 그래 이런 곤난을 견디여낼것 같으냐?》

장군님께서는 유격대생활의 어려운 점을 솔직히 말씀하시며 적과 싸우다가 부상도 당할수 있고 지어는 죽을수도 있다고 하시였다.

인수는 코끝을 더욱 오똑 세우고 눈섭 한대 까딱하지 않았다. 죽는것도 무섭지 않다고, 그 어떤 고생도 얼마든지 견디여낼수 있다고 무턱대고 타산없는 장담을 하면서 장군님군복자락을 부여잡았다.

《이겨낼수 있습니다. 절 입대만 시켜주십시오. 그래야 첫날 말씀드린대로 <천황>놈을 잡아올게 아닙니까.》

장군님께서는 유격대원들이 극복해야 하는 곤난을 여러가지로 더 이야기하시려다가 도무지 말뜻을 알아먹는것 같지 않아 그만 웃고마시였다.

《헛참, 너는 입만 열면 <천황>을 잡아온다고 장담하는데 어디 좀 물어보자. 너 <천황>은 왜 잡아오겠다고 하는지, 어떻게 잡아오겠다는것인지 너의 생각을 글로 써낼수 있겠느냐?》

《장군님, 그러면 입대시켜주시겠습니까?》

《잘 쓰면 입대시킬수도 있지.》

장군님께서 반승낙은 하는듯 한 어조로 웃으시였다.

인수는 속으로 됐다고 쾌재를 불렀다. 곧장 비서처로 달려가 종이와 연필을 얻어가지고 와서 천막안에 들이박혔다. 누가 조금만 신경을 건드려도 소리를 빽 지르며 얼씬 범접을 못하게 하였다. 혼자 결의문을 써내고 먼저 입대하여 자기 코등을 함부로 건드리는 봉석이한테 같이 재세를 해볼 심산이였다.

저만 입대하겠다는 그의 고약한 심보를 진작 알아차리고 동무들은 분개하여 천막으로 뛰여다니며 소문을 놓았다.

《우리두 쓰자구. 결의문을 잘 쓰면 입대시켜준대!》

일은 예상외로 크게 번져갔다. 숱한 소년들이 결의문을 써내겠다고 뛰여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러는사이 변통좋은 광호가 어느새 맨먼저 결의문을 만들어가지고 장군님한테로 달려갔다.

《장군님, 결의문을 써왔습니다.》

인수가 오기를 기다리던 장군님께서는 생뚱같이 다른 아이가 먼저 뛰여와서 결의문이라고 내놓는것을 보고 의아해하시였다.

《네가 결의문을 썼어?》

《결의문을 쓰면 입대시켜준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으음? 내가 그랬단 말이지?··· 그럼 어디 좀 보자.》

장군님께서는 광호가 제 이름자나 겨우 쓸줄 안다는것을 알고계시는터인데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이렇게 선참 날아든것을 보고 놀랍게 여기며 그가 내놓는 결의문을 들여다보시였다.

《저는 강도 일제를 타도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야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여 한목숨 바쳐 싸울것을 엄숙히 맹세하며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시켜줄것을 간절한 소망을 담아 열렬히 청원하는바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몇줄 읽다 말고 몸을 뒤로 젖히시였다. 글투가 본인이 쓴것이 아니였다.

《너 이 글을 네가 썼느냐?》

《예.》

광호는 가슴이 띠끔했지만 시치미를 따고 버젓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음, 잘 썼는데··· 좋다, 가보거라.》

장군님께서는 광호를 돌려보내시고 요란한 문구로 미끈하게 쓴 결의문을 다시 읽어보시였다.

가까운 수림속에서 웅성웅성 설레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는 아이들의 천막이 있는 곳이여서 나가보니 저마다 종이장을 얻어들고 들레며 뛰여다니고있다. 어찌 뒤설레를 놓는지 총을 닦던 유격대원들이 목을 빼여들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한쪽에서는 여러 아이들이 풀밭에 머리를 박고 붓방아를 찧기도 하고 뒤통수를 긁기도 하고 연필알이 부러져서 화를 내기도 하며 저마다 무언가 열심히 쓰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어린 넋들의 순결한 지향이 몸부림치며 불타오르는듯 한 숲속의 때아닌 소동을 내다보시며 또다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결의문을 쓰라고 말한것은 인수가 하도 조르기에 한마디 한것인데 그것이 기어코 혁명하겠다는 저 아이들모두에게 저렇게도 큰 충격을 미치였다. 이렇게 된바에는 차라리 잘 되였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응석으로 떼를 쓰는것인지, 실지 각오가 있어서 하는 청인지 들어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신 장군님께서는 이번에는 그들의 결의문이 잘되기를 은근히 왼심을 쓰며 기다리게 되는것을 어찌할수 없으시였다.

비서처가까이에서는 유식한축인 정인갑이와 그중 어린 관식이사이에 깎고 올리는 흥정이 벌어졌다.

《안돼, 그건 값이 너무 눅대두.》

《아저씨, 이거 어떤 쇤줄 알고 이러세요? 굉장한 깡쇠야요. 잘 갈면 면도도 빡빡 할수 있어요.》

《그따위 칼로 면도를 해?》

《그러문요!》

관식이는 칼집이 헐어빠진 손칼을 내보이며 그 금새를 잔뜩 끌어올리고있었다. 손칼을 줄테니 결의문을 한통 써달라고 하는 흥정이였다.

《허, 그따위 고물 가지고는 안된대두.》

정인갑은 젖버듬하여 좀처럼 응해줄 잡도리가 아니였다.

《아저씨, 제가 뭐 글 몰라서 이러는줄 아세요. 좀 서툴어 그러는데···》

《서툴어도 결의문이야 제손으로 써야지.》

《먼저 바치자고 그래요. 저한텐 그럴 사정이 있거던요.》

《흠, 그거야 네 사정이지 내 사정이냐?》

《아저씨, 정 이러겠어요? 예?》

관식이는 조르다 못해 나중에는 큰소리로 성을 발끈 내며 금시 울음을 터칠것 같았다. 그제서야 정인갑은 마음이 움직이는척하였다.

《그럼 밑지는 장사를 해볼가.》

그는 손칼을 시답지 않게 받아들고 형편없이 무딘 날로 얼굴을 한번 밀어보더니 호주머니에 넣어버렸다. 흥정이 성립된것이였다.

이 비슷한 일이, 사정하고 재쓰고, 매여달리고 하는 통사정이 처처에서 벌어졌다.

얼마 안지나 관식이가 장군님한테로 달려왔다. 그는 저보다 앞서온 동무가 없다는것을 확인하자 벙긋 웃으며 나무그늘에 지도를 펼쳐놓으신 장군님께 결의문을 바쳤다.

《너두 썼느냐?》

《예, 제손으로 썼습니다.》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관식은 제발이 저려 안할 소리부터 하였다.

《그럼, 우리 관식이가 어떻게 썼는지 볼가?》

장군님께서 지도를 접어놓고 그가 간난신고를 하여 정인갑이에게 씌워온 결의문을 들여다보시였다.

《저는 유복자로 쪽박을 차고다니다가 고마운 유격대아저씨를 만나 장군님품에 안기게 되였습니다. 이제는 저도 총이 한자루 있어야겠는데 미타한것이 있습니다. 어제 제가 동무들과 같이 새둥지를 찾아다니다가 적들을 숙영지로 끌어들이지 않았습니까. 그일때문에 부대에서 쫓아버릴수도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사온데 장군님께서 부모없는 이 관식이를 가긍히 여기시여 아무쪼록 떼여놓지 말고 입대할수 있도록 널리 보살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번 역시 결의문을 채 읽지 못하고 미소를 지으시였다. 고르롭고 활달해서 모가 나는 정인갑의 체가 잡힌 글씨를 첫눈에 알아보시였다. 관식이가 손칼까지 바쳐가며 결의문을 써가지고 달려온 까닭도 짐작되시였다. 나이가 그중 어리고 또 어제 있은 일때문에 선손을 쓴것이였다.

그이께서는 결의문을 마감줄까지 읽으시고나서 짐짓 모르는체 하며 관식이를 쳐다보시였다.

《미끈하게 잘 썼는걸. 그런데 글씨가 제 글씨같질 않다?》

《그럴수가 있습니까?》

관식이는 생청으로 잡아떼면서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는가고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음, 혁명군은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받질 않는다. 어디 한번 몇자 써보거라.》

장군님께서 진짜 씌여볼듯이 연필을 찾는체하시자 관식은 바빠맞아 실토하였다.

《사실은 장군님, 제가 쓰고싶은 이야길 들려주고 글씨만 빌렸습니다.》

《그래? 순순히 써주더냐?》

《그럴게 뭡니까. 기막히는 손칼을 주었는데두 도루 주면서 더 값나가는걸 구해내라고 합니다. 혁명가도 개인리속을 채웁니까?》

《개인리속을 채우면 그게 무슨 혁명가겠니.》

《글쎄말입니다. 저도 같은 사상인데···》

관식이는 사상에다 걸고 정인갑이가 요구하는 엄청난 《수공료》에 대하여 너무 비싸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관식이 뒤로는 수십명이 연줄연줄 결의문을 가지고 달려왔다. 학교는 못다녔지만 이럭저럭 글눈이 트인축이 절반은 되여 한자라도 쓸줄 아는 소년들은 다 써왔다. 개중에는 글자를 오리발 그리듯 하고 문맥이 통하지 않아 무슨 말을 하자고 했는지 내용을 알아볼수 없는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써바친 본인들의 심정을 생각하여 그런것도 한통으로 인정해주시였다.

《나는 아이쩍부터 맨발노 띠여다니여서 발빠다기 왜놈구두창보다 더 드터워요. 가시를 발부면 가시가 불너짐니다. 제발 절 떼여노치 마십씨요. 전 갈데가 업서요. 총만 주면 전 맨발노 말리도 갈쑤 이써요.》

이렇게 쓴 결의문도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틀리게 쓴 글자와 문맥이 통하지 않는 문장을 하나하나 고쳐주고 바로잡아주고 하시며 눈이 아프도록 수십통의 결의문을 차례로 보시였다.

한품 놓고 결의문을 거의다 읽으시였을 때 워낙은 맨먼저 왔어야 할 인수가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그는 자기 생각을 글로 써바칠데 대하여 장군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았으니만치 한줄한줄 짚어가며 매우 신중히 생각해서 쓰느라고 좀 늦었다.

《저는 봉석동무가 나한테서 받아내지 못한 자기비판부터 하고싶습니다.

지금 모두 저를 두고 말썽군이라고, 몹쓸애라고 손가락질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놓고 말하며는 광호와 다툰날 진대통에 들어가서도 저는 혁명할 생각, <천황>잡아올 생각만 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체하면서도 진대통건을 자기쪽에 형편없이 유리하게 끌어다붙인것이 웃음을 자아내여 빙그레 웃으시며 다음 구절을 읽어내리시였다.

《봉석동무는 혼자 다 아는체하면서 그까짓 <천황>놈이나 잡아와서 뭘하겠는가고 하지만 <천황>은 왜놈들중에 제일 높은 왕때장인데 그놈을 끌어오면 왜놈들이 항복할게 아닙니까. 내 생각은 이렇게 하자는것입니다. 조선땅 끝까지는 기차타고 가서 바다건너 <천황>네 집에 이르면 보초몰래 담장을 날아넘습니다. <천황>이 잘 때 뒤문으로 들어가서 <손들엇!> 하고 코앞에 권총을 내밉니다. 그놈이 자다가 벌떡 일어나면 입성을 안입히고 마대자루에 넣어 둘러메고 옵니다.···》

장군님께서는 실소를 하시였다. 원쑤에 대한 증오도 있고 각오도 좋다. 좀 희떱고 응석이 있기는 하지만 잘 이끌어주면 제앞처리는 할수 있겠다는 믿음이 가시였다.

맨밑에는 눈물자국이 있는 결의문도 있었다.

보기만 해도 늘 측은한 생각이 드는 준오가 제손으로 써바친 결의문이였다.

《저는 간밤 죽은 순애를 꿈에 보았습니다. 손에 개암알을 쥐고 오빠를 찾고있는 순애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 개암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맛이 있다고 내 입에 한알 넣어주고는 서러워서 울던 순애를 잊을수가 없습니다. 왜놈들의 총에 맞고 죽은 동무들도 잊을수 없습니다.

저는 원쑤를 갚겠습니다.

장군님, 저에게 총을 주십시오···》

장군님께서는 눈앞이 흐려와서 글줄을 마감까지 보실수가 없었다. 한장한장이 다 무심히는 볼수가 없는 결의문이였다. 비록 글씨는 곱지 못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고 게다가 덧쓰고 지우고 해서 구멍이 난것까지 있지만 거기에는 어린 가슴에 피맺힌 서약들이 담겨있었다.

이런 소년들을 어떻게 한다고?

그이께서는 결의문을 쓴 소년들이, 아니 온 조선의 어린이들이 자신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동동 매여달리는것만 같으시였다. 찬서리를 헤치며 움터오른 저 새순들이 꺾이지 않고 꿋꿋이 솟아오르도록 빛을 주고 자양을 주고싶으시였다. 모진 세상에 밟히고 멍든 저 어린것들의 넋을 품어 푸른 하늘에 오르도록 나래를 달아주고싶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결의문을 전부 말아쥐고 숙영지를 거니시였다.

얼마 멀지않은 곳에서 땅구르는 소리가 들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드시였다. 봉석이가 소년들에게 창격동작을 보여주고있는 모습이 나무숲사이로 얼찐얼찐 바라보였다. 채양이 뒤로 가게 군모를 삐딱하게 눌러쓴 봉석이 《얏―》 하는 소리와 함께 총창으로 적을 찌르고는 재빨리 또 한발을 내짚으며 총가목을 번쩍 들어 적의 총탁을 막는 동작을 취했다. 환성을 지르며 구경하던 소년들속에서 서로 제가 한번 해보겠다고 졸라댔다.

《헛참, 그저 내가 하는것은 다 해보겠다니 이거 야단이군.》

봉석은 순순히 총을 내주면서도 자기의 금새를 올리는것을 잊지 않았다.

《어서 해보라구. 그러나 보기와는 다를걸.》

무슨 일에서나 선코를 떼우지 않는 욕심꾸러기 광호가 먼저 뛰여나가 총을 받아쥐고 금방 본 창격동작을 해보았다. 제법이였다. 저마다 나가서 한번씩 해보고도 성차지 않는지 봉석이에게 총을 하루만 빌려달라고 떠들어댔다.

《그건 안돼!》

어느새 총을 빼앗아멘 봉석이 휘파람을 불면서 숲속으로 사라졌다.

장군님께서는 소리없이 빙그레 웃으시였다. 입대시켜달라고 너무 성화를 먹이는바람에 봉석이한테 총을 메워주던 일이 떠오르시였다. 몇몇 애들만이 아니라 저애들모두에게 총을 메워줄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또 드시였다. 결의문을 쓴것만 봐도 그들의 각오는 보통이 아니였다. 행동거지도 엉뚱한데가 있었다. 저애들이 봉석이한테 총을 메워줄 때와 다른것이 뭔가?

지금은 벌써 어엿한 유격대원꼴이 잡혔지만 봉석이도 처음에는 저러지 않았던가?

주변의 숲속에는 한 소년이 홀로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덕만이였다. 무엇때문인지 덕만이는 한손에 종이장을 쥔채 쓸쓸한 표정으로 땅밑만 내려다보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모습을 보자 덕만이가 쓴 결의문을 읽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머슴을 살던 소년이 어디서 글을 배웠을텐가, 관식처럼 푸접이 좋으면 하다 못해 날이 무딘 손칼따위라도 내놓고 흥정이라도 해보련만 덕만이한테는 그런 비위가 있어보이지 않았다. 분명 결의문때문에 그러는것 같아 너는 안써도 된다고 위로해주고싶어 옆으로 다가가시였다. 덕만이는 기척을 못느끼고 부러진 연필끝을 물어뜯으며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들먹거리는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옆에 앉으시였다. 덕만이는 흠칫 놀라며 손에 쥔 종이장을 어디에 건사해야 할지 몰라했다.

그래서 더욱 주의가 가서 손에 쥔 종이장을 내려다보시였다. 생각하신대로 덕만이는 결의문을 한자도 쓰지 못하였다. 대신 종이장에 돌덩이같이 생긴 둥그런 형체를 큼직하게 그려놓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여러번 그리고 덧그리고 하여 딱히 알아보실수가 없었다.

《이게 뭐냐?》

장군님께서 덕만의 손을 잡고 조용히 물어보셨다.

덕만이는 얼굴이 벌개지며 머뭇거리다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주먹입니다.》

《주먹?》

장군님께서 고개를 기웃하시다가 덕만의 얼굴을 내려다보시였다.

덕만이는 자기가 어째서 이 주먹을 그리였던지 말로써는 심정을 표현할수가 없었다.

그의 멍든 가슴속에는 늘 머슴을 살았다고 누가 나를 업수이보고 멸시하지 않는가 하는 자격지심이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덕만은 동무들이 결의문을 쓰느라고 돌아칠 때 축지지 않고 자기도 같이 써내려고 하였다. 총을 메고 자기를 못살게 굴던 지주놈들부터 쳐없애고싶은 심정을 결의문에 꼭 담고싶었다. 종이까지 얻어들었지만 글자같이 생긴것은 단 한개도 쓸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종이에 제 주먹을 그렸는데 아무리 그리고 덧그려도 주먹에는 심정을 담을수 없어 안타까운 나머지 소리없이 흐느껴울었던것이다.

《주먹?··· 주먹이란 말이지?!》

장군님께서는 손에 쥔 종이장을 점도록 내려다보시였다. 이애가 오죽 남들과 같이 결의문을 쓰고싶었으면 이런 생각까지 하였겠는가. 너무도 소박한 그림이지만 너무도 호소가 강한 표현이였다. 들여다볼수록 처음에는 형체가 잘 알리지 않던 그것이 정말 주먹같이 보이시였다.

《옳다, 주먹이 옳다. 부르쥔 너의 주먹이 옳다!》

장군님께서는 목이 잠겨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덕만이가 연필끝을 입으로 물어뜯어가며 그린 그 하나의 주먹에서 덕만의 심정을 글줄에서보다 더 명백히 읽으시였다. 부르쥔 그의 주먹을 계급의 주먹으로 높이 쳐들어주고싶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