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5


 

제 4 장

5

 

이 밤 장군님 눈앞으로는 하루사이에 입술이 텄다는 박덕산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고 귀전에는 적구의 어려운 형편을 에둘러가며 힘들게 보고하던 로상권의 목소리가 살아났다.

오늘 불의에 숙영지가 적들의 습격을 받게 된 일을 놓고 책임을 캐며 공론이 많던 지휘관들을 자신께서 진정시키신 일도 상기하시였다. 그때 지휘관들더러 아이들한테 책임을 따지겠는가고 엄하게 눌러놓기는 했지만 숙영지가 적들에게 발견된 일을 두고 누구보다도 생각이 많으신분은 바로 장군님자신이시였다.

김주현련대장과 강민이가 마주서서 얼굴을 붉히며 격렬히 론쟁하던 일도 상기되시였다.

이 모든것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있는 문제를 더는 이 상태로 지속시킬수 없다는것을 백마디 말보다 더 강하게 호소하고있었다.

멀지않은 곳에서는 이따금 적들의 말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같이 긴장을 안은 숙영지였다.

우등불옆에는 오늘 급히 숙영지를 뜨는통에 미처 보지 못한 신문들, 자료들, 책자들이 수북 쌓여있었다. 그중에는 2사와 4사를 비롯하여 밑에서 올라오는 부대장들의 보고도 있었으며 지하조직을 타고 국내에서 들어온 정세자료도 있었다.

정세자료는 심히 신경을 자극하는 내용이였다. 지하조직에서 보낸 한 보고에 의하면 최근에 조선총독 미나미가 전쟁에 소요되는 인적물적자원을 깡그리 징발할 목적으로 총독부국장들의 긴급회의를 소집하였으며 그 실행책의 일환으로 조선녀성들의 금은반지, 비녀까지 빼앗아다가 전쟁비용으로 충당하려고 친일파의 계집년들을 긁어모아 《애국금차회》라는것까지 조작하고는 《금반지를 헌납 안하고 끼고다니는자는 손가락을 자르라》는 폭언을 던졌다고 한다.

손길이 간 신문에서 먼저 눈에 띄운것은 국제란이였다. 거기에는 미륙군성에서 거액의 폭격기를 군수업체들에 주문한 소식과 에스빠냐 프랑꼬도당이 인민전선군이 차지하고있는 수도 마드리드를 폭격하여 시내 도처에 1천여발의 폭탄을 투하한 까닭에 수세기를 내려오며 화려함을 자랑하던 도시가 무참히 파괴된 소식을 싣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크지 않은 이 기사를 유심히 들여다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지난해 1월 에스빠냐에서 반파쑈인민전선이 형성되고 한달후에는 국회선거에서 승리하여 공산당이 참가하는 인민전선정부가 수립되였을 때 매우 기뻐하시며 그것을 지휘관들에게 알려주고 신문에 에스빠냐소식이 실리면 대원들에게도 읽어주게 하시였다.

그후 몇달이 지나서 파쑈독일의 간섭밑에 프랑꼬도당이 인민전선을 반대하여 무장반란을 일으켰을 때에는 분격하여 프랑꼬도당과 독일간섭자들을 단죄하고 미영제국주의자들을 규탄하시였다. 미영은 《불간섭》이란 간판을 걸고 독일과 프랑꼬도당을 부추기며 한편으로는 27개국의 유럽나라들을 망라한 《불간섭위원회》를 조작케 함으로써 청소한 공화국을 요람기에서 고립시키고 국제적지원을 가로막으려 했다. 이에 대처하여 각국의 로동계급은 인민전선을 지원하는 지원병을 보내여 7개의 국제려단을 편성하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청소한 인민전선은 시련을 겪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쏘련에서의 2차5개년계획수행정형에 대한 소식도 알아보시며 세계적인 판도에서 정세의 추이를 살펴보시고나서 며칠째 틈틈이 읽어오던 북부조선일대의 자연지리에 관한 참고서를 펼치시였다.

그러나 몇줄 읽지 못하시였다.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졌을 어린것들이 어떻게들 하고 자는지 돌아보고싶으시였다. 그래서 책을 덮으며 자리를 이시려는데 저벅저벅 무거운 걸음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김주현련대장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깊은 밤중에 찾아온 그를 조용히 책하시였다.

《련대장동무, 왜 자지 않소?》

김주현은 몸가짐을 바로하고 서서 머뭇거리다가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아무래도 자리를 옮겨야 할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좀 재웠으니 이제는 부대를 이동시키지 않겠습니까. 여기는 머무를 곳이 못됩니다.》

그는 방금 말울음소리가 들려온쪽에 십여개의 불무지가 나타났다고 망원초에서 알려온 적정을 보고하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련대장의 판단에 의하면 오늘 진펄에서 무리죽음을 당한 적들이 부대를 수습중에 있는것이 틀림없었다. 만약 적들이 주력부대가 지척에서 숙영한다는것을 눈치챘다면 또다시 증원부대를 끌어다가 이 밤중으로 달려들지도 모른다. 다문 십리라도 부대를 이동시켜야 한다.

김주현은 그것이 비록 예감이지만 자기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생각해보시고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하시였다.

《주현동무 말이 옳소. 여기는 오래 머무를만 한 곳이 못되지. 옮깁시다. 좀더 옮겨앉아서 아이들을 마저 재웁시다.》

장군님의 말씀이 계신지 10분도 못되여 부대는 벌써 캄캄한 숲속을 헤치며 서북쪽으로 질서있게 행군해갔다.

밤중에 행군을 많이 하군 하는 유격대생활에 익숙해버린 대원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것이였으나 소년들에게는 여간 힘겨운것이 아니였다. 곯아떨어졌다가 갑자기 일어난 소년들은 태반이 잠이 설깨여 제대로 걷지 못하였다. 자꾸만 눈을 비비며 발을 헛짚어 넘어지는가 하면 아예 펄쩍 주저앉아 고개방아를 찧는 소년들도 있었다. 강민이나 몇사람의 힘으로는 누가 어떻게 되는지 미처 살필수도 없었다.

오중흡이가 자기네 4중대를 데리고와서 한명씩 맡아 부축해주게 하였다.

강민이 인솔하는 소년들앞에는 7련대가 서가고 뒤로는 8련대가 따라왔다.

장군님께서는 줄곧 아이들과 같이 걸으시며 웅뎅이나 진대같은것이 나타나면 앞뒤에 이르시였다.

《조심해라.》

물줄기가 나타나면 깊은 물목에 지켜서서 건너오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부축해주기도 하시였다.

부대는 멀리 옮겨앉지는 못하였다.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하여 시오리를 못가서 다시 멈추어섰다. 천상수 웃쪽의 수림속이였다.

아이들한테만은 또 천막을 따로 쳐주고 좌우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재웠다.

대원들은 어느때든 전투를 할수 있게 배낭을 진채로 총을 안고 이슬이 내리는 풀밭에 누웠다.

그러나 좀처럼 잠을 이룰수 없었던 김주현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홀로 앉아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장군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과 주력부대앞에 제시하신 방대한 군사적과업을 수행하자면 아무래도 아이들문제를 빨리 락착지어야 할것 같았다.

하지만 신통한 방책이 떠오르지 않아 이궁리저궁리 좇으며 한참 골머리를 앓고있는데 장군님께서 모닥불옆으로 다가오시였다.

《련대장동무, 왜 아직 자지 않소?》

김주현은 그때야 사령관동지께서 오신것을 알고 자리에서 급히 일어섰다.

《사령관동지, 잠이 오지 않아서 아직···》

김주현은 말끝을 마무리지 못하고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잠이 오지 않는단 말이지···》

장군님께서는 그가 한 말을 조용히 뇌이시며 무거운 마음으로 서있는 련대장을 모닥불앞에 앉히고 옆에 같이 앉으시였다.

《혹시 아이들때문에 걱정하는게 아니요?》

《예, 사실은···》

《그래,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소?》

련대장은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한동안 김주현의 얼굴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도 안타까우신듯 말씀하셨다.

《주현동무,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김주현은 처음으로 심중의 호소를 터놓으시는 장군님의 음성에 놀라 고개를 들었으나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불무지에서 화르르 불길이 일며 주위가 환해졌다. 어디선가 나무잎사귀에 붙어 잠에 취했던 딱정벌레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만물이 깊이 잠든 한밤중이였다.

장군님께서 이따금 불찌를 튕겨올리는 불무지를 묵묵히 바라보시다가 말씀을 떼시였다.

《련대장동무의 안타까운 심정도 모르지 않소. 나도 요사이 생각이 많소. 저애들을 가까이 데리고있으면 더 잘 돌봐줘야겠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소. 자신이 붙지 않고 걱정이 앞서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험한 싸움길에 우리가 저애들을 친부모처럼 책임지고 건사해줄수 있겠는지, 원쑤를 갚겠다고 찾아온 애들인데 우리가 잘 돌봐주지 못해 한 아이라도 뜻대로 키우지 못하거나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겠소. 저애들의 부모한테두 면목이 없구 또 그 아픔을 어떻게 이겨내겠소? 난 아직도 순애를 묻던 일이 가슴에서 내려가질 않소.》

장군님께서는 좀해서는 내색 안하시던 자신의 걱정과 괴로움을 김주현이앞에 터놓으시였다.

《주현동무, 좀 이야기하오. 지금 저애들때문에 지휘관들과 대원들속에서 론의가 많지?》

련대장은 가슴이 찌르르 저려드는것을 느끼며 한참이나 우물거리다가 어차피 한번은 말씀드려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힘겹게 말을 떼였다.

《예, 론의가 좀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론의들이요?》

《너무 구구해서 종잡을수가 없습니다. 중대에 몇명씩 나누어주자는 지휘관들도 있고 아예 한명씩 떼맡기면 업구다니겠다는 대원들도 있고.》

《그다음엔, 또?》

《지하조직에서 제기하는대로 적구에 내려보내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집이 있는 아이들은 집으로 보내고 집없는 아이들은 지하조직을 통해 의탁할데를 알선해주자는것입니다.》

《그래?··· 직접 돌볼 책임을 맡고있는 강민동무 생각은 어떻습디까?》

장군님께서는 저녁에 련대장과 강민이사이에 심상치 않은 말들이 오가는것을 목격하신터여서 그애들문제와 관계가 그중 깊은 당자의 생각을 알고싶으시였다.

《강민동무는 고동하줄기에 있는 원시림속에 집을 몇채 더 짓고 거기로 데리고가겠다고 주장하고있습니다. 대원들을 몇사람만 붙여주면 제손으로 집도 짓고 식량도 해결하고 경비도 서고 모든것을 해결하겠답니다.》

그이께서는 강민의 결심을 심중히 들으시였다.

《아이들을 위해 한몸을 내대겠단 말이지. 역시 강민동무다운데가 있소. 고마운 일이요. 그 심정이 얼마나 고맙소. 강민동무 각오가 그렇다니 내 마음이 후련해지는것 같소.》

《참, 듬직한 사람이 맡긴 맡았는데···》

《그래, 련대장동문 강민동무의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오?》

김주현은 은연중 진땀이 나는것을 느꼈다. 그는 강민의 생각에 감동하면서도 의견을 달리해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강민동무가 그애들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깊이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애들을 고동하로 보낼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련대장동무는 어떻게 하면 좋겠소?》

김주현은 이마의 땀을 훔쳤다. 여러모로 생각을 굴려봤지만 이렇다하게 내놓을만 한 묘책은 아직 찾지 못하였다.

그는 송구스러워 장군님을 면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각방으로 장군님을 보좌해야 할 자기가 이런 때 도움이 될만 한 의견 하나 내지 못하고 우물거리는것이 민망스럽게 생각되였다.

장군님께서 모닥불에 나무를 넣고 자리를 이시였다. 말씀이 없이 더 물어보지도 않고 모닥불주위를 묵묵히 거니시였다. 그이께서는 중임을 맡고있는 군사지휘관으로서의 김주현의 성격과 장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계셨다. 우유부단을 모르는 강인한 성미와 기민한 판단력을 그의 장점으로 평가해오시였다.

그러나 김주현이가 대답을 못하고있다. 분명 련대장도 그애들문제를 두고 몹시 난처하게, 딱하게 생각하고있는것 같았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장군님께서는 지탱점을 하나 잃어버린것 같이 마음이 허전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일부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내놓고는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을 데리고다니는데 대하여 부담스러워하며 지어는 짜증까지 내는 일이 있다는것을 모르시지 않았다. 그러나 한 어깨를 들이밀고 자청 강민이를 도와주고있는 이 7련대장같은 지휘관들이 있어 마음이 놓이시였다. 그런데 인제는 그마저 자신을 못가지고있다.

《사령관동지, 저는 물론 그애들을 떼여놓는다는것은 사령관동지께서 바라시는바가 아니라는것을 알고있습니다. 저도 마음같아서는 그애들을 전부 부대가 끼고있었으면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사령관동지를 모시는 지휘관으로서 사령관동지께서 제시하신 우리 혁명군의 군사적과업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일전에도 우리 혁명군이 당면하게 조만국경일대에 더 많은 적을 끌어다 얽어매고 대륙침략전쟁의 속결을 기도하는 일제의 침략적기도를 파탄시키기 위해 배후교란작전을 더욱 과감히 벌려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렇지. 내가 한두번만 강조한것이 아니지.》 하고 생각하시며 엄연한 사실을 상기시키고있는 련대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그런데 더 많은 적을 끌어온다는것은 그만큼 주위에 적을 더 많이 가지고있어 부대가 불의에 포위될수도 있고 늘 큰 전투를 예상해야 하는 등으로 더욱더 간고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자면 우리는 부대를 로출시키지 않고 그 어느때보다도 가벼운 몸으로 기동하여 적을 타격해야 합니다. 더구나 항상 격렬한 전투를 치르며 모든 부대를 이끌어온 우리 주력부대의 경우는 더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합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선 당장 초수탄으로 가서 군정간부회의를 지도하고 주력부대를 림강쪽으로 진출시킬 계획이신데 그 계획이 간단치 않게 생각됩니다. 지금의 삼엄한 적정으로 보아서는 매일 행군을 하면서 전투를 해야 할것 같습니다. 형편은 이런데 부대가 그 숱한 아이들을 끼고 과연···》

문득 김주현은 중도에서 말을 끊어버렸다.

그것은 말을 끝맺은것보다 오히려 더욱 명백하게 준엄한 현실을 상기시켜드리는듯싶었다.

그렇다. 그것은 장군님께서도 너무나 잘 알고계시는 절박한 현실, 오직 아이들문제를 생각할 때만 인정하고싶지 않은 준엄한 현실이였다.

그이께서는 이것을 련대장이 아니고서는 그처럼 랭철히 상기시켜줄수 없다고 생각되자 눈치놀음을 하지 않고 사령관으로 하여금 어디까지나 준엄한 현실에 기초하여 옳은 결심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그의 심정이 고마왔다.

과연 방금 이야기된 그 어려운 군사적과업을 수행하며 그애들을 부대의 날개밑에 끼고다닐수 있는가?

대원들의 의견도, 지휘관들의 생각도, 련대장이 난처해하는 심정도 리해되시였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애들을 떼여놓아야 한단 말인가?)

장군님께서는 타오르는 모닥불앞에서 줄곧 출로를 생각해보시였다. 결심을 내리실수가 없었다. 누구든 붙들고 의견을 허심히 물어보고 토론해보고싶으시였다. 당자들의 의향도 들어보고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발길이 닿는대로 소년들이 자는 천막으로 가보시였다. 깊이 잠들었는지 천막주변은 조용하였다. 다만 천막에서 얼마간 떨어진 불무지옆에 봉석이와 준오가 이마를 맞대고앉아 이야기하고있는 모습이 보일뿐이였다. 기척을 내지 않으며 가보시였다. 봉석이가 펼쳐놓은 군복저고리우에 보총격발기를 뜯어놓고 준오한테 무언가 열심히 설명해주고있었다.

《여기서 무얼 하오?》

장군님께서 허리를 굽히며 격발기를 내려다보시였다.

봉석은 얼른 일어서며 말씀드렸다.

《준오동무가 총문세를 좀 알고싶어해서 작용원리를 배워주는중입니다.》

《음, 열성들이 대단한걸.》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이 다 자는데 그중 허약한 준오가 배우겠다고 나와앉은것이 더없이 기특하게 생각되시였다. 가르쳐주는 봉석의 소행도 기특하기 그지없다.

봉석은 자기를 뜯어보는 장군님의 눈길과 마주치자 점직해하며 어른스럽게 물어보았다.

《장군님,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봉석이가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서는 깍듯이 어른대접을 해줘야 아주 좋아한다는것을 알고계셨다.

《봉석동무한테 한가지 물어보고싶은게 있어서 나왔소. 준오생각도 좀 들어보고.》

봉석은 심각해져서 어서 말씀하시라는 뜻으로 장군님을 올려다보았다.

《이건 아주 심중한 문제인데 봉석이, 동문 요사이 강민동무를 도와 같이 생활하면서 느끼는게 많겠는데, 동무생각엔 이 준오네 문제를 어떻게 하는게 좋겠소?》

《그 문제말입니까? 전 또, 이렇게 열성이 대단한 준오쯤은 내옆에 하나 떼놓고 아무래도 어디 딴데로 다 보내야 할것 같습니다.》

봉석은 그처럼 심각해졌던 표정과는 다르게 단마디명창으로 대답하였다. 너무도 명백하므로 구태여 론해볼 여지도 없다는 식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봉석이가 믿고있는 준오의 여윈 손을 잡으며 웃으시였다.

《준오야, 네 생각은 어떠냐? 봉석동무가 너만은 떼놓겠다는데 너 자신이 있느냐?》

《예, 자신이 있습니다.》

《정말 부대를 따라다닐수 있겠느냐?》

준오는 진펄에서 있은 일이 생각나서 얼굴을 붉히면서도 자기 태도를 명백히 보여주고싶어했다.

《예, 따라다닐수 있습니다.》

《그래, 넌 고생을 했지. 네가 그처럼 이악한것은 고생덕에 얻은거다. 그렇지만 넌 몸이 약한데 잘 생각해보아라. 어디 멀리 밀영같은데 가있을 생각은 없느냐?》

장군님께서는 준오같이 몸이 허약한 아이들은 강민의 말대로 깊은 밀영에라도 보내고싶으시였다. 그러나 준오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장군님, 전 절대 딴데로는 가고싶지 않습니다.》

《얘 준오야, 그런데 부대형편이 지금 매우 어렵게 되였구나. 많은 사람들이 너희들때문에 걱정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니? 너희들이 부대를 따라다니자면 지금보다 더한 고생도 이겨내야 한다. 그래두 자신이 있느냐?》

준오는 인차 대답을 할수 없었다. 고생은 참고 견딜수 있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 부대형편을 두고 걱정하시는것을 보니 어린 마음에도 분별이 생겼다.

《정 그렇다면 전 가겠습니다.》

《가다니? 어디루 가?··· 큰아버지네 집에서 갈 때처럼 그렇게 가겠느냐? 안될 말이다.》

장군님께서는 마치 준오가 그렇게 말씀올리기라도 한듯이 고개를 저으시였다. 공연히 불쌍한 준오한테 안할 말을 했다고 후회하며 가까이 있는 천막으로 가시였다.

천막문을 들치고 잠을 깨을가봐 조용히 안으로 들어서시였다. 어두워서 얼굴들은 보이지 않고 높은 숨소리만 들렸다.

성냥을 꺼내여 득― 한가치 그으시였다. 불빛에 가까이 드러나는것은 네활개를 펴고 자는 광호의 너부죽한 얼굴이였다. 그옆에는 오늘 동무들과 함께 새둥지를 털어온다고 숙영지밖으로 새여나갔다가 수상한 사냥군을 보았다던 관식이가 누워잤다. 낮에 동무들의 눈총을 받을 때는 어깨가 쳐서 시르죽은상을 하고있더니 지금은 턱이 빠른 얼굴에 그 어떤 걱정도, 수심의 흔적도 찾아볼수 없다. 시름을 모르고 잠든 순진한 얼굴이다.

성냥불은 소리없이 타들다가 빨간 불찌를 남기며 손끝에서 꺼져버렸다.

그이께서는 어두운 천막안에 서서 고르로운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이애들이 누굴 믿고 이렇게 자는가?··· 그런데 이들을 어떻게 한다구?··· 못할 일이다. 그것은 못할 일이다.)

장군님께서는 마치 그들을 떼여놓을 생각을 하기라도 했던것처럼 스스로 부정하시며 밖으로 나오시였다. 시야가 트이는 숙영지변두리까지 걸어나가시였다.

하늘에는 뿌유스름한 얼레달이 걸렸고 달빛아래 희미하게 드러난 밀림은 눈길이 모자라게 아득히 펼쳐졌다. 길게 뻗은 골짜기들에서는 연한 안개가 굼실거리고 그우로는 검푸른 봉우리들이 광막한 수해의 거창함과 무변함을 소리없이 보여주듯 웅건한 자태를 창공에 드러내였다.

그이께서 걸음을 옮기시는 주위에는 다보록이 자란 애솔들이 구슬같은 이슬을 머금고 자기의 자태를 달빛속에 아낌없이 드러내고있다. 이따금 잔잔한 바람이 소리없이 불어와 잠자던 수림우에 잔물결이 일면 애솔에 맺힌 이슬방울이 달빛에 반짝인다.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옮겨 한포기 애솔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애솔은 오래전에 쓰러져 토양의 거름으로 되여가는 진대나무 한복판에서 자라올랐다. 옆에는 거목으로 자란 가문비가 위엄을 떨치며 애솔을 지켜서듯 꿋꿋이 높은 언덕에 서있었다.

멀리 숲속에서 소쩍새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고요한 밤의 정서를 짙게 해주며 들려왔다. 문득 그이의 가슴속으로는 수림이 빚어내는 들큰한 풀향기가 스며들었다.

순결무후하고 신성한 자연의 훈향에 취하신듯 장군님께서는 움직일줄 모르고 서서 애솔에 맺힌 이슬방울을 내려다보시였다. 방금 그렇게 시름없이 잠든 아이들을 보고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이께서는 어쩐지 이 이슬방울이 그애들의 마음 한구석에 맺힌 눈물처럼 생각되시였다. 갈데없는 우리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울며 하소하는 애원의 눈물같이 생각되시였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애들은 다 동생같은 아이들이다. 매여달리는 동생들을 떼여놓는다는것이 얼마나 가슴쓰린 일인가를 뼈저린 체험을 통해 알고계시는 그이시였다. 그래도 두 동생은 그때 떼여놓을수 있었지만 이 백명이 넘는 아이들이야 어떻게 떼여놓겠는가. 잊을수 없는 저 마안산에서부터 어떻게 데리고 떠난 아이들인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급변한 정세와 부대가 처한 어려운 형편을 두고, 헤치고나가야 할 간고한 싸움길을 두고 생각이 깊으시였다.

관동군사령부는 여기 조만국경일대로 무력을 대대적으로 증파하고있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대로 일이 제대로 되는것이다. 더 많은 적을 제놈들의 후방에 얽어매고 소탕함으로써 침략전쟁을 《속결》하려는 일제의 전략을 좌절파탄시킬데 대한 우리의 구상대로 되고있는것이다. 헌데 그렇게 될수록 형편은 더 어려워지고있다.

거기에다 적들은 《비민분리》요, 《선무공작》, 《귀순공작》이요 하며 비군사적인 수단까지 있는대로 다 동원하여 발악적으로 협공하고있다. 대대적인 공세다. 조선인민혁명군을 속히 완전소탕함으로써 《후방안전》을 기어이 확보하겠다는 대공세가 시작되였다.

그러나 적들의 공세앞에 기가 꺾이고 주접이 들어서는 안되는것이 혁명이다. 놈들이 발광하면 할수록 광활한 지역에서 적들에게 보다 강한 타격을 주어 일제의 전략적기도를 파탄시키고 혁명을 계속 앙양시켜야 한다. 수백만대중을 혁명조직의 두리에 더욱 튼튼히 묶어세워야 한다. 당면하게는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원병사대회도 해야겠고, 할 일이 쌓이고 겹쳤다.

김주현련대장이 혁명군앞에, 부대앞에 제기된 군사적과업을 상기시킨것은 백번 옳다.

현재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싸움길은 앞에 있다. 유격전을 하는 군대한테 사활적이고 난문제의 하나인 후방물자조달도 그만큼 어렵게 되였다. 지하조직들과 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지만 그들이 보내오는 원호물자가 얼마나 간고하게 마련되는가 하는것은 이번에 박덕산이 지성을 다해 보내온 원호물자들이 실증해주고있다. 장군님께서는 깨끗이 빨아 급히 말리우다가 태운 자리를 낸 한컬레의 지하족을 잊을수가 없었다. 그렇게 성실한 인민들에게서 그 이상은 더 바라고싶지 않으시였다. 그 지성만 해도 가슴을 후덥게 해준다. 그런데 실상 지금 정세는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어디 가서 쌀 한톨, 신 한컬레 구해올수 없는 형편이 아닌가.

사정은 이러한데 저 숱한 아이들을 끼고 전화속을 뚫고다니며 먹여주고 입혀주고 키워줄수 있는가? 그런 가능성이 과연 있는가?

가능성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애들은 자꾸만 매여달리는데 사정은 들어줄 형편이 못되지.

장군님께서는 참으로 딱하시였다. 십년세월 혁명을 하다가 지금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딱한 사정에 부닥쳐본적은 일찌기 있어본것 같지 않았다.

어느덧 새벽이 가까와왔다. 그러나 잠도 오지 않으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전에는 누워도 잠을 이루실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어디서 조언을 받아볼데는 없는가?

별 생각이 다 드시였다. 누가 이런 일을 당해본 사람이 있으면 천리라도 가서 조언을 받아보고싶으시였다.

(누가 이런 일을 당해보았던가? 전례가 세상에 있기나 했던가? 어린이들을 그렇게 사랑하시던 우리 아버님이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시였을가?)

장군님께서는 소나무 푸른 만경대기슭에 세월의 눈비로도 지울수 없는 자취를 남기며 아득히 흘러가버린 20여년전의 일까지 추억하시였다. 초이영을 올린 순화학교의 소박한 교실에 밝은 빛을 뿌리며 크게 붙어있던 《지원》이란 두 글자가 떠오르시였다.

유년시절 가슴에 새겨넣은 그 두 글자에는 조국광복을 이룩하고 만백성에게 새 세상을 안겨주기 위한 혁명위업은 당대에 다하지 못하면 대를 이어서라도 기어이 해내야 한다는 아버님의 견결한 혁명정신과 원대한 뜻이 담겨있었다. 아버님은 그 뜻을 평생의 신념으로, 굽힐수 없는 신조로 삼고 싸우시였다.

그처럼 뜻을 멀리에 둔 아버님이시였다.

항상 먼 앞을 내다보시며 미래에 산분이시였다. 하기에 누구보다도 그 미래의 주인들인 어린이들을 사랑하시였다.

어린이들을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은 애당초 인간을 사랑할수 없다고 하시였다. 인간을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은 넓은 가슴으로 세계를 안을수 없다고 하시였다.

그런 아버지였기에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일로부터 혁명의 첫걸음을 떼시였다.

강산에 울린 순화학교의 종소리로 잠자던 조선의 넋을 흔들어깨우시였다.

그후 투쟁무대를 봉화리로 옮기신 뒤로는 살매나무 많은 봉화산기슭에 직접 명신학교를 세우시였다. 3천리 조선땅 어디서나 총칼을 휘두르는 왜놈들이 촌학교 훈도한테까지 칼을 채우던 그 시절에 가난한 백성들의 자녀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조선의 력사와 지리를 배워주며 애국의 넋을 심어준다는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뜻과 의지가 박약해서는 감히 엄두를 낼수 없는 일이였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열렬한 사랑이 없이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다.

미래를 그처럼 중히 여겼기에 아버님은 자식들을 키우는데서도 엄하시였다.

장차 나라를 위해 싸우자면 조국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12살 어린 아들을 단신으로 험한 천리길에 내세우시였다.

그날의 사랑이 가슴에 그대로 살아있어 장군님께서는 우리 혁명의 초창기에 벌써 력사의 자국을 남긴 저 카륜의 쟈쟈툰과 고유수에 조선농민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내오시였다.

고유수의 삼광학교는 학생이 무려 400명이나 되였다. 특히 혁명간부를 전망성있게 키우기 위해 학교안에 내왔던 2년제고등과에서는 고유수, 카륜, 오가자 지방은 물론 장군님께서일찌기 혁명의 씨앗을 뿌린 넓은 지역의 조선사람들 자녀들중에서 우수한 청소년들을 데려다 공부시키시였다.

그때 우리가 돈이 많아서 그 많은 학생들에게 무료교육을 시켰던가? 그때는 혁명의 초창기여서 한푼의 자금도 천금맞잡이로 쪼개써야 할 때였다.

한자루의 총이 그리운 때였다. 연필 한자루도 귀한 때였다.

그러나 혁명의 미래가 중하기에 큰 맘 먹고 공부를 시켰다.

그후 삼광학교에서 공부한 청년들은 거의다 혁명투쟁에 나섰다. 특히 고등과를 나온 청년들은 태반이 혁명에 참가하여 혁명의 골간으로 자라났다.

장군님께서는 동만의 여러 근거지에서 곳곳에 아동단학교를 세우고 어린이들에게 의무교육을 시키던 일도 회상하시였다. 그때도 가능성이 있어 그렇게 한것은 아니였다. 적들과 공방전을 안하는 날이 없어 환경은 매우 처절했지만 적들을 치고 빼앗아서라도 그애들을 먹이고 입히고 하면서 공부를 시켰다.

옷자락에 매여달리는 마안산 아이들을 한품에 안아 눈길에 데리고 떠나던 일도 어제일같이 떠오르시였다. 그때도 과연 우리가 그애들을 데리고 갈 형편이 되여서 데리고 떠났던가?

아니다. 가능성은 언제나 없었다.

물론 지금 정세가 그때보다도 더 말할수없이 엄혹해진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그때보다 몇배 더 강해진 힘이 있다. 더욱 넓어진 혁명의 품이 있다.

장군님께서는 줄곧 출로를 모색하시며 잠든 숙영지를 거닐다가 눈앞에 자라오른 애솔과 그것을 품고있는 울울창창한 수림을 다시금 이윽히 바라보시였다.

무변하고 영원한 숲의 장엄한 저 기상에 비하면 이 한포기의 애솔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이런 애솔이 없으면 과연 저 무성한 숲이 이 대지에 영생할것인가? 하늘을 치받으며 솟아있는 저 거목도 한때는 이처럼 어린 애솔시절이 있었을것이고 사명을 다 하고 쓰러진 저 진대도 이런 꽃나이시절이 있었을것이다. 애솔이 자라 거목이 되고 거목은 울창한 밀림을 이루며 본분을 다하다가 세월과 더불어 로목이 되고 로목은 쓰러져 진대가 되여도 그자리에 또 애솔이 자라올라 이 밀림이 무성한 숲으로 영생하는것이 아닌가!

장군님께서는 마치 대자연의 이 거창한 생리에서 무슨 계시라도 받은듯이 《혁명도 마찬가지다.》 하고 생각하시였다.

-혁명은 본래의 그 숭고한 사명으로부터 간고성과 장기성을 띠기마련이다. 이로부터 혁명이 튼튼한 동맥을 가지고 자기의 유기체에 생생한 피를 끊임없이 대주며 영원히 진함을 모르는 혈기왕성한 혁명으로 되게 하자면 앞사람이 쓰러져도 몇배로 그자리를 메꾸어주는 강력한 후비군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 목표가 원대한 이 혁명을 끝까지 수행할 각오가 되여있다면 부단히 대오를 생신한 기운으로 확충보강해주는 싱싱한 후비대, 혁명의 후비군육성에 대한 원대한 구상이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혁명의 장래, 민족의 백년대계와 관련되는 근본문제의 하나라는 똑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

바로 저애들을 키우는것은 그처럼 혁명을 끝까지 하는데서 필수불가결의 문제로 나서는 후비군육성의 일환인것이다.

이것은 저 밀림의 생리와도 같은 혁명의 기본원리의 하나이다. 우리는 전조선적인 판도에서 수십수백만의 강력한 후비군을 계속 편성하는 동시에 영생하는 울창한 이 밀림이 애솔을 품어 키우듯이 저애들을 우리 품에 안아키워야 한다. 자란 환경으로 보나 각오정도로 보나 저애들보다 더 미더운 래일의 혁명가들을 우리가 어디서 찾겠는가. 아무리 형편이 어렵고 힘이 들어도 우리는 저애들을 전화의 불길속에서 백절불굴의 혁명가로 키워내야 한다.-

달빛이 은은하게 떨어지는 수림속을 거니시며 이처럼 끊임없이 사색을 이어나가시는장군님의 군복자락은 어느새 이슬에 축축히 젖어들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