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3


 

제 4 장

3

 

강민이네 선발대는 박덕산의 바래움을 받으며 새벽에야 귀로에 올랐다. 그들이 십리도 채 못가서 날이 훤히 밝아왔다. 네사람이 줄지어갈수는 도저히 없었다. 공작경험이 많은 로상권이가 그럴듯 한 의견을 말하였다.

《강민동무, 놈들이 주목하는 짐인데 넷이 다 함께 가다간 재미없을것 같군요. 두개 조로 나누어 가는것이 어떻습니까. 식량운반대가 무사히 도착했는지··· 우선 <도감>인 내가 군수처동무들끼리 먼저 가지요.》

강민은 다른 의견이 없었다.

로상권은 송순이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의 의향도 물어보았다.

《송순동무 생각은 어떻소?》

《저야 뭐···》

송순은 자기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선지 쑥스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강민이가 옆에서 웃는 소리로 한마디 했다.

《이 동문 아직 자기 의사라는것은 가져본적이 없지요. 그저 남의 의사를 받아들일뿐인걸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그럼 남이 죽으라면 죽겠습니까?》

《물론, 내 생각엔 그럴것 같구만.》

강민이가 아주 비뚤어진 소리를 해서야 송순은 그게 롱담이라는것을 알아차리고 반응이 없었다.

일행은 로상권의 의견대로 한마장사이를 두고 두개 조로 갈라졌다.

로상권이네가 먼저 떠나고 뒤따라 강민이가 송순이와 함께 산길을 타고 걸었다.

아득한 밀림우로 해가 솟아올랐다.

로상권은 벌써 얼마나 갔는지 고개길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강민은 산아래로 활등같이 휘여든 행길은 굽어보지 않고 내처 지름길로 앞서 걸었다. 한시바삐 부대로 돌아갈 생각에만 옴하여 송순의 의향도 묻지 않고 무작정 숲속길로 꺾어들었다. 그러나 산발이 점점 험해지자 미리 량해를 구하지 못한 후회가 들어 앞에서 송순이가 걷기 편리하게 길을 열기도 하고 그의 머리우에 드리운 나무가지를 휘여주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송순은 도리여 미안한 낯빛을 지으며 그밑으로 조심히 빠져나가군 하였다.

《송순동무, 힘들지 않소?》

《아니요.》

《짐을 좀 내게다 덜가?》

《아니요.》

《흠, 그저 아니요로군.》

억새와 관목이 얽힌데다 산세까지 험해서 송순은 웬간한 언덕을 톺아오를 때에도 숨차하며 풀뿌리에 걸채여 휘청거렸다.

《안되겠소. 송순동무, 그 짐을 나한테 주시오.》

《그럼 전 빈몸으로 가겠어요?》

《어서!》

《일없대두요.》

송순은 짐바에 와닿는 강민의 손을 조심히 밀어버렸다.

강민은 가파로운 산비탈을 타고 등성이에 올라서자 하는수없이 짐을 내려놓으며 쉬여가자고 하였다.

수림속에서는 새들이 우짖고 풀향기가 들큰하게 안겨왔다. 이른아침의 선명한 대기에 씻긴듯이 생기를 띤 송순의 얼굴로는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강민은 무슨 생각엔가 잠겨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올리는 송순이와 신발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짐우에 손을 얹고 옆으로 삐여져나온 신발을 도로 쑤셔넣던 송순이가 그의 얼굴을 훔쳐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아이,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왜 생각이 없겠소. 송순동문 아이들의 신발을 해결해가지고가니 마음이 편한게로구만.》

송순은 귀밑을 발그스름히 물들이며 눈을 내리깔았다.

《저야 뭐··· 그밖에 다른 문젤 생각할 수준이 돼요?》

《동문 또 그 소리군, 일부러 그래보는 소리겠지? 가부간 그건 그렇고, 우린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싸움을 하게 될거요. 그걸 생각하니 어떻게 하면 부대의 군사행동에 지장이 없도록 아이들을 잘 돌봐줄수 있겠는지,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많소.》

송순은 강민의 근심어린 말에 치마자락으로 무릎을 싸쥐며 그를 향해 돌아앉았다.

《그렇지만 무슨 방도가 있어요?》

《방도야 있지.》

《뭔데요?》

강민은 한쪽팔굽으로 땅을 짚고 고개를 뒤로 젖히더니 가없이 열린 하늘 한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들을 몽땅 데리고 고동하의 깊은 밀영쯤으로 멀찍이 들어가자는거요.》

《예? 고동하가 어디예요?》

《포수들도 발길을 들여놓기 꺼려하는 태고연한 원시림속이요. 맹수들의 울부짖음소리, 바람소리, 밤의 무시무시한 정적··· 말하자면 인간세상의 막바지라고 할수 있는 곳이지.》

그 무슨 옛말과도 같은 강민의 말에 송순은 대뜸 기색이 달라졌다.

《아이, 그런데 가서 어떻게 살아요?》

《바로 그래서 가자는거요.》

강민은 풀대를 꺾어 씹으며 가벼운 한숨을 지었다.

《거기 가면 적들이 토벌해올 위험도 없고 안전할거요. 대원들을 몇명 데리고가서 우리끼리 밀영도 짓고 식량도 자체로 해결해다 먹이며 아이들을 잘 키워볼 생각이요. 장군님께서 그애들을 사령부에 데려온 후로 밥술도 온전히 들지 못하며 마음을 쓰시는 정상은 더이상 보지 못하겠소. 아마 지금쯤 우리를 여기로 내보내고 안심치 않아 혼자 조용한 수림속을 거닐고계실는지도 모르오. 밤엔 두세시간이나 주무시는지··· 아마 그이의 얼굴에서 웃음만 지워버린다면 그동안 얼마나 축이 가셨는가 하는것이 대뜸 눈에 띄울거요. 놈들의 발악은 나날이 심해지지. 난 오늘 12도구의 살벌한 분위기도 보고 윤석찬선생의 호소랑 듣고 고동하로 이동해가는 문제가 사실상 시간을 다투는 절박한 문제라는것을 깨닫게 되였소. 사령부의 안전도 안전이지만 장군님께서 아이들의 시달림에서 벗어나 혁명의 보다 큰 문제에 전념하실수 있도록 해드리는것이 나나 송순동무의 의무가 아니겠소. 장군님께서 아이들때문에 속을 썩이시지 않고 마음을 푹 놓을수 있다면 이 세상 절해고도라고 해도 마다하지 않고 가겠소.》

강민의 강직한 빛이 흐르는 눈길은 장군님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치를 각오가 어려 번들거리였다. 얼마전만 하여도 사령부의 기관총소대장자리를 내놓고 우울한 기분에 잠겨 다니던 강민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었다. 이제껏 그가 늘 말없이 어깨를 축 떨어뜨리고 다니길래 경위중대에서 물러난 괴로움때문에 그러는줄 알았던 송순은 강민에게서 감동이 어린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이 무뚝뚝하고 거칠어보이는 소대장이 장군님의근심을 덜어드리려고 컴컴한 낯빛이 되여 혼자 속을 썩인줄은 정말 몰랐던것이다.

《전 강민동지가 그런 생각까지 한줄은 미처 몰랐어요. 어떻게든지 경위중대로 다시 돌아가려고 고민하는줄로만 알았어요.》

강민은 송순이가 그 무슨 사죄 비슷하게 하는 말에 빙긋이 웃으며 손에 쥐였던 풀대를 집어던졌다.

《사실이야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았지. 오죽하면 내가 장군님으로부터 아이들을 돌봐줄 책임을 맡고 그걸 책벌로 받아들였겠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나살이나 먹고 정말 철없는 생각을 했더랬지. 장군님께서 왜 아이들을 이처럼 귀중히 여기는지 그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몸부림만 쳤거든. 하고보면 난 기관총소대장직위에서 물러난게 아니라 한걸음 앞으로 내디딘셈이요.》

송순은 강민의 인간됨에 점점 끌려드는 자신을 느끼며 다소곳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강민동지, 저··· 고동하로 갈 때 저도 따라가면 안돼요?》

강민은 그 말에 조용히 머리를 저었다.

《아니, 거긴 동무가 갈 곳이 못되오. 내 언젠가 고동하에 한번 들려본적이 있는데 아까 말한것처럼 정말 무인도같은데요. 혼자 들어갔다간 길을 잃고 다시 나오지 못할 그런 원시림속이란 말이요.》

《그럼 밥은 누가 짓고 바느질이랑은 누가 해요? 아무래도 녀자가 한명 있어야 할게 아니예요?》

《글쎄 그래도 동문 안된다니까. 난 동무까지 그 외따른데로 데리고가고싶은 마음은 없소. 동문 사령부에 그냥 남소. 같은 녀대원들속에서 생활해야 구김살없이 살고 웃을 일도 많을테니까. 난 가끔 녀대원들이 모여서서 명랑하게 웃어댈적이면 그속에 동무의 웃음소리가 없는가 하고 귀기울일 때가 없지 않소. 그런데 원시림속에 데려다놓고 어떻게 보라는거요? 그 누구보다도 송순동무야말로 사령부곁에 남아야지, 동무야 유격대에 입대해서 웃는법을 배운 녀성이 아니요. 자, 그럼 한숨 돌렸으니 또 가보지 않겠소?》

강민은 아직 제생각에서 깨여나지 못하고있는 송순의 등에 짐을 지워주었다. 그리고는 어느새 혼자 성큼성큼 걸어갔다. 한동안 멀찍이 뒤떨어졌던 송순이가 점점 거리를 좁히며 이악스럽게 따라왔다.

앞서 걷던 강민이가 주춤하더니 송순을 돌아다보며 골짜기아래를 가리켰다.

《저게 뭐요?》

송순은 흠칫 놀라며 강민이 가리키는 신작로쪽을 내려다보았다.

무장한 왜놈군대를 싣고 군용트럭들이 뽀얀 먼지를 말아올리며 어디론가 질주해가고있었다. 엊그제 12도구어방에서 본 군용차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

(저놈들이 혹시 우리 숙영지가 있는쪽으로 가는게 아닌가?)

강민은 눈에 불을 켜고 신작로를 메운 트럭들을 세여보았다. 그가 지켜보는데서만 열두대의 차가 몇분사이에 바람같이 지나갔다. 저런 기동을 보장하기 위해 《국도국》에서 작금년간 신작로를 내는데 그처럼 열을 올렸다는 생각이 들자 당장 내려가서 실뱀같이 저주스럽게 뻗은 신작로를 동강내고싶었다.

무엇을 실었는지 포장을 친 마감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강민은 서둘렀다. 빨리 부대로 돌아가서 적들의 기동을 사령부에 보고하여야 했다.

《꽤 따라오겠소?》

그는 걸음을 재촉하여 비탈길을 내리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송순은 급히 서두르는 강민의 의도를 짐작하고 어깨의 짐바를 꼭 잡은채 바지런히 따라왔다. 발끝을 땅에 박고 힘을 주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산비탈로 내리굴지 몰라 여간 신경이 곤두서지 않았다.

강민은 촉급한 마음같아서는 달리고라도 싶었으나 뒤에 송순이가 달려 어쩌지 못하고 안타까운 시늉만 했다.

《어마나!》

문득 뒤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강민은 피끗 뒤를 돌아보았다. 송순이가 넘어진줄로 알았는데 신발짐을 벗어놓고 살펴보며 울상을 짓고있었다.

《왜 그러오!》

《이걸 어떻게 해요? 신발을 한짝 잃었어요. 어디에 떨구었을가요? 그 신발이예요.》

《그 신발이라니?》

《저 있잖아요···》

송순은 미처 대답할 경황도 없이 신발짐을 도로 지고 일어섰다.

《가만 있소. 내가 찾아오지.》 하고 강민이가 다가갔으나 송순은 어느새 총알같이 그를 앞질러 금방 타고내린 산비탈로 달려갔다. 송순이 사라진쪽에서 풀대와 가둑나무잎사귀가 흔들거리는것이 보였다.

강민은 정신없이 풀숲을 헤치고있는 송순이를 뒤따라 좀전에 땀을 들인 등성이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아무리 샅샅이 찾아보아도 신발은 어디에 떨구었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군용트럭들은 사령부가 있는 서북쪽으로 계속 줄달음쳐갔다.

《송순동무, 이거 안되겠소.》

《안되다니요?》

《어서 떠나기요.》

《그럼 신발은 버리고 가겠어요?》

강민은 긴말로 리해시킬 사이가 없었다.

《적들을 보지 못하오? 빨리 놈들을 앞질러가서 부대에 보고해야겠소.》

송순은 강민의 말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옳아요. 가자요. 그런데 강민동진 먼저 가고 전 신발을 찾아가지고 뒤따라가는것이 어떻겠어요?》

강민은 어이없어 웃고말았다.

《원, 그것두 말이라고 하오?》

《마음놓고 어서 떠나세요. 제가 못따라갈가봐 그러지요?》

《글쎄 철없이 굴지 말구 내 말을 듣소.》

강민은 차츰 엄한 기색으로 명령하듯 요구했다.

《그렇지만 그 신발이야 어떻게 버리고 가겠어요.》

신발등에 탄 자리가 있는 지하족이 송순의 눈앞에서 아물거렸다. 그 신발을 깨끗이 빨아 부엌아궁이앞에서 급히 말리우며 새 신발을 보내지 못해 안타까와했을 녀인의 모습이 상상속에 떠올랐다. 하루밤사이에 입술이 터버렸으나 신던 신발까지 보내서 안됐다고 괴로와하던 박덕산의 얼굴도 눈물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더구나 버릴수 없는 신발이였다. 기어코 찾아내여 한 아이한테라도 더 갈아신기고싶었다.

《강민동지, 전 아무래두···》

《이거 정말 고집을 부리누만.》

《고집이 아니예요. 동지들이 어떻게 마련해서 보내는 신발이예요. 그걸 버리고 가면 전 뭐가 되겠어요.》

송순은 애원에 젖은 목소리로 부르짖고 돌따서 가둑나무숲속으로 달려갔다. 신발짐을 진채 헤덤벼 나무가지에 얼굴이 긁히우면서도 그걸 느끼는것 같지 않았다. 신발을 찾아내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허둥거리기만 하며 덤불속을 뒤져보다가는 다시금 무성한 새초사이로 뛰여들었다. 짐도 벗지 않고 땀을 빨빨 흘리며 돌아가는것을 봐서는 정말 혼자 뒤떨어져 오려고 맘먹은 처녀처럼 생각되였다. 강민은 그 순간 송순을 다시 보지 않을수 없었다. 입대한 한해사이에 너무도 몰라보게 달라진 처녀였다. 송순이가 그처럼 이악스러운데 진정으로 놀랐다.

비록 그것이 소박한것일지라도 그한테는 자기의 의지와 결심이 있었다. 더구나 강민이가 고맙게 생각한것은 소중한것을 소중하게 여길줄 아는 송순의 대바른 심지였다.

그는 어떻게 송순이한테로 달려갔는지 알지 못했다. 한참 송순이와 함께 산비탈을 훑으며 신고하던끝에 가둑나무잎사귀밑에 숨어있는 지하족을 먼저 발견했을 때에는 신발을 찾자고 주장했던 사람이 자기였던것처럼 기쁨에 넘쳐 웨쳤다.

《송순동무, 여기 있소. 찾았소!》

송순은 신발을 받아 품에 꼭 안고 쓸어보았다. 눈물이 가랑거리는 눈으로 《고마와요.》 하고는 또 한번 강민을 쳐다보았다.

강민은 어쩐지 눈물어린 송순의 그 맑은 눈동자를 평생 잊을것 같지 못했다. 송순이를 그처럼 자기 몸가까이에 있는 녀성으로 살뜰히 느껴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러나 강민은 야릇한 감정에로 줄달음치는 자기의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제길, 가둑나무밑에 있는걸···》

《그래요? 저두 헤쳐봤는데 전 왜 못봤을가요?》

《글쎄, 하지만 신발을 찾은것은 내가 아니요. 난 오늘 참말로 기쁘오.》

《아니예요, 미안해요, 내가 너무 제고집만 부렸나봐요. 어서 가요. 길이 늦었지요?》

송순은 짐바를 두손으로 꼭 잡고 총총히 앞서 걸었다. 이번에는 그들의 위치가 바뀌여 강민이가 뒤에 섰다.

길은 갈수록 험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지체한 걸음을 봉창하려고 십리, 또 십리, 쉬지 않고 걸었다.

강민은 가파로운 둔덕이 가로놓일 때에만 송순이와 바꿔서서 손을 내밀군 하였다. 송순은 쑥스러워하며 그가 내미는 손을 말없이 잡았다. 그렇게 30리길을 갔을 때 송순이가 문득 겁먹은 소리를 질렀다.

《어마나, 저걸 보세요!》

누런 복장에 철갑모를 쓴 군대가 물을 낀 골짜기를 따라 여전히 서북쪽으로 행군하고있었다. 두시간전에 트럭으로 이동하던 부대같았다. 신작로가 들어간데까지는 자동차를 타고와서 도보로 밀려가는것이 틀림없었다.

두줄로 선 적들의 종대길이는 어림잡아 1㎞는 되고도 남아보였다.

우미야마지구 《토벌》사령부관하 부대였다.

우미야마는 얼마전에 우에다관동군사령관의 특별지령을 받은뒤부터 작전지도를 손에서 놓는날없이 휘하 부대들을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작전에 출동시켰다. 팔다리와 흉부에 총상을 입으며 30여년에 걸치는 헌신적인 복무로 얻은 장성견장이 어깨에 아주 붙은것이 아님을 상기시킨 특별지령의 문구들은 언제나 조일 준비가 되여있는 교수대의 목줄처럼 머리우에서 배회하며 우미야마로 하여금 사생결단하고 《토벌》작전에 나서게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에다사령관으로부터 특별지령을 받은 지구《토벌》사령관이 우미야마소장 하나만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조만국경일대의 광활한 작전구역들을 하나씩 떼여맡은 지구《토벌》사령관들은 결투의 장검을 뽑아든 기세로 산하 모든 부대들을 출동시켰다.

강민은 가슴이 활랑거렸다. 적들이 지금 우리 주력부대가 숙영하고있는쪽으로 알고 가는지 모르고 가는지 행동목적을 딱히 알수는 없지만 적의 큰 부대가 그쪽으로 가는것은 심히 좋지 않은 일이였다.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적을 앞질러가서 적정을 사령부에 보고할 결심이였다.

송순은 한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잰걸음을 쳐서 강민의 등뒤에 붙어왔다.

그렇게 한시간나마 지름길을 달려 강민은 마침내 적을 5리쯤 따라앞섰다. 얼굴로는 땀이 비오듯 하였다.

송순은 숨이 차서 할딱거리며 금시 넘어질것처럼 비칠거리면서도 쉬여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강민은 그의 짐을 빼앗아 제 짐우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하고도 송순이보다 빨리 걸었다. 행군길에 더위를 먹고 헐헐거리며 제 기관총을 선실이에게 메워주고 선선해서 걷던 비위꾸러기가 바로 이 사람이라면 누구도 믿지 않을것이다.

또 하나의 산발을 넘고 물을 건너 드디여 숙영지가까이에 이르렀을 때는 강민이도 땀으로 미역을 감았다.

적들은 행군방향을 바꾸었는지 따라오는 기미가 없었다.

한시바삐 숙영지로 들어가고싶었다. 그것은 마치 외지에 나가있던 자식이 부모가 있는 고향집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느끼는 심정과도 같았다. 하루이틀만 나가있어도 그리워지는 숙영지였다. 빨찌산숙영지-유격대원들에게는 이것이 곧 그들의 집이였다.

강민은 한달음에 숙영지가 보일만 한 둔덕으로 올라섰다. 순간 그는 뒤에 선 송순이를 옆의 수풀속으로 떠밀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수풀속으로 황급히 들어섰다.

송순은 영문을 몰라하였다.

《왜 그러세요?》

《저걸 보오.》

강민은 숙영지쪽으로 나있는 산등성이를 가리켰다. 서슬에 송순은 비명이 나오는 입을 막았다. 숙영지로 통하는 골짜기옆에 적들이 시누렇게 뒤덮인것을 보았다. 긴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밋밋한 산발이 좌우로 뻗었는데 등성이에는 온통 적이였다.

익측가까이 있는 적들은 네모나게 생긴 배낭과 앞에 찬 탄통까지 가려볼수 있었다.

물통을 거꾸로 들고 상통을 하늘로 쳐든채 물을 게걸스럽게 마시는자, 수건으로 목덜미를 문대는자, 활활 손부채질을 하는자, 무어라고 지껄이며 장구류를 고쳐지는자들이 수태 있는것으로 보아 금시 도착한 적들이 한숨 돌리고있는참 같았다.

송순은 그처럼 많은 적이 가까이에서 욱실거리는것을 보자 강민이뒤로 물러섰다.

《웬 적일가요?》

강민이도 긴장되여 얼른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만은 명백하였다. 자기네가 필사적으로 따라앞선 적들보다 먼저 도착한 적들이 숙영지를 둘러싸고있는것이다.

강민은 풀잎사이로 적들을 살펴보다가 서둘러 신발짐을 벗어놓았다. 그리고는 옷섶을 들치고 보신용으로 가지고 떠났던 권총을 만져보았다.

그의 얼굴에 그 어떤 비장한 결심이 어리는것을 보고 송순이가 겁에 질린채 올려다보았다.

《왜 그러세요?》

《송순동무, 짐을 다 맡소. 난 숙영지에 먼저 가봐야겠소.》

《예?》

《숙영지가 포위된것 같은데 빨리 가서 알려야 할게 아니요.》

송순은 그의 앞을 막아나섰다. 숙영지로 가려면 골짜기좌우에 널려 우글거리는 적들사이를 빠져나가야 했다.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해보였다.

강민이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길밖에 없었다. 적들뒤로 에돌아가자면 시간이 모자랐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한초가 새로운 지금 숙영지로 빨리 달려가는 길은 적들속으로 뚫고들어가는 길이였다.

《강민동지, 보지 못해요? 적들이 저렇게 불개미떼처럼 씨글거리는데 어떻게 그속을 빠져나가요?》

《내 한몸이 문제요? 숙영지가 포위되였소.》

송순은 그를 만류할수 없다는것을 깨닫자 팔소매를 붙잡았다.

《그럼 같이 가요.》

강민은 품속에 있는 권총을 다시 짚어보며 명령하였다.

《안되오. 짐은 누가 지키겠소? 만일 총소리가 터지면 동무는 여기를 뜨시오!》

송순은 그것이 무슨 말인가를 새겨보고는 몸을 떨며 강민이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강민은 자기와 같이 숨쉬며 같이 생활하며 지금은 함께 걷고있는 같은 동지이지만 자기와는 다른, 자기는 아직 지니지 못한것을 가지고있는 인간이였다. 송순은 그것이 부러웠다. 자기가 신성히 모시며 지켜야 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언제나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여있고 또 그것을 의무로, 의리로 생각하는 강민의 정신은 송순이로 하여금 신념이란것이 무엇이며 숭고한 감정이 어떤것인가를 깨닫게 하였다. 그는 지금 강민이가 기관총소대장자리를 내놓고 새로운 책임을 맡은뒤로 한풀 꺾이여 침울해다닌 까닭도 짐작이 갔다. 이제보니 그것은 다 사령부를 위해 무엇인가 더 어렵고 큰것을 맡아안고저한 지향과 고민의 표현이였다.

송순은 숙영지를 바라보며 금시 달려가려는 강민의 팔소매를 더욱 꼭 잡았다.

《혼자는 못가요. 저도 가겠어요!》

《송순이, 왜 어린애처럼 이러오?》

《전··· 죽어도 같이 죽겠어요.》

강민은 떨어질것 같지 않은 송순이를 달래려고 팔소매를 잡힌채 한손을 그의 어깨우에 얹었다.

《송순동무, 고맙소. 동무의 그 말은 정말 잊을것 같지 못하오. 그렇지만 너무 걱정마오. 내가 뭐 아주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사람이요? 신발 한컬레때문에 온 산판을 헤매던 동무가 왜 갑자기 마음이 약해져서 이러는거요. 난 그때 벌써 동무를 충분히 리해했던것 같은데··· 말하자면 송순동무의 입대를 도와준 사람으로서의 보람을 느꼈다고 할가. 자 이러지 말고 우리 서로 웃으면서 갈라지기요. 그렇게 헤여졌다 만나면 그게 오히려 더 반가운거요. 그럼 신발짐을 부탁하오!》

송순은 헌헌히 웃으며 떠나가려는 강민의 모습을 보자 더구나 그와 떨어질수 없는 자신을 느꼈다. 이때까지 자기가 마음속으로 의지하고싶었고 지금에 와서는 더욱 존경하게 된 사나이의 보살핌을 받아보았다는 그것만으로도 한생에 맛볼수 있는 행복을 다 누린것 같았다. 지금 그한테는 자기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고 안들고 하는것은 별문제였다. 그 일을 계속하고말고 하는것 역시 별문제였다. 송순은 지금 강민이가 하는 말이 다 옳다고만 생각하는것은 아니였으나 자기를 그처럼 진심으로 위해주고 생각해주는 강민의 심정과 보호가 사무치게 고마왔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려서 지주집 부엌데기로 되였던 그는 스무살이 넘도록 누구한테서도 이런 인정어린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다. 송순은 무엇이라 짚어 말할수 없지만 자기의 좁은 가슴에 푸른 하늘같이 넓고 소중한것이 들어앉는것을 느끼며 눈물에 젖은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돌려버리였다. 그러나 강민은 송순의 얼굴이 자기의 가슴에 묻히는것보다 더 쩌릿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야 송순은 너무 오래 강민을 붙잡아두고있다는것을 의식한것 같았다.

《강민동무, 기다리겠어요.》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오. 꼭 오겠소.》

강민은 숙영지를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였다.

얼마간 달리던 그는 송순이를 돌아다보았다.

송순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한테는 마치 지금 강민이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작별을 하려고 돌아다본것만 같았다.

수풀속에 몸을 숨기며 강민은 벌써 골짜기에 내리붙었다. 골짜기로 좁은 개울이 나있고 개울옆으로 물버들이 성하였다.

버들속에 몸을 숨기고 적의 동정을 살폈다. 등성이에 있는 적들과의 거리는 200m안팎이였다.

장구류 부딪치는 소리,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강민은 좌우를 살피며 버들숲을 조심히 헤쳐나갔다. 숨을 돌린 적들이 눈을 밝히기전에 빠지려고 달리기도 하고 기기도 하며 물버들숲을 더 빨리 헤쳐나갔다.

한참 그러다가 덜컥 멈춰섰다. 공지가 나타났다. 다시 버들속에 몸을 숨기자면 돌서덜밖에 없는 공지를 넘어야 했다. 자칫하면 발견될수 있다. 발견되면 끝장이다.

순간 주저했다. 주저한 한순간이 강민이한테는 백년을 잃어버린것 같이 생각되였다. 저 돌서덜을 무사히 넘으면 천만다행이고 발견되면 피값을 하겠다는 결심을 내리는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민은 눈을 밝혀 좌우를 살펴보다가 몸을 드러내며 내달렸다. 열댓발밖에 안되는 공지가 끝이 없는 망망대해같이 보였다. 그 몇초의 시간이 왜 그리도 흐르지 않고 길어보이는지 총탄이 금시 좌우에서 날아오는것만 같았다.

드디여 공지를 통과한 그는 맞은편 버들숲으로 몸을 날렸다. 다른 기척은 없다. 발견되지 않았다. 숙영지입구에 이르렀다. 적들이 차지한 등성이는 뒤에 남았다.

강민은 정신없이 달려 보초소에 먼저 들렸다. 이상하였다. 그들이 임무를 받고 숙영지를 떠날 때 통과한 보초소가 휑 비였다. 그옆 방차대로 나와있던 기관총좌지로 뛰여가보았다. 거기도 비였다. 기관총을 걸었던 자리에 탄피만 수북 쌓였다.

강민의 가슴은 두방망이질하며 걷잡지 못하게 활랑거렸다. 급히 숲언저리에 서서 주위를 황망히 살펴보다가 뿌직뿌직 생나무타는 소리가 들려오는 숙영지안으로 들어갔다. 인적기는 어디에도 없다. 얼굴을 긁히우며 시야가 트이는 관목숲에 나섰다. 여기서는 응당 눈에 띄워야 할 천막이 하나도 안보였다.

강민은 허겁지겁 천막이 있던 자리로 달려가보았다. 부대가 뜨면 불피우던 자리마저 깨끗이 정리해놓고 가는 숙영터가 발칵 뒤집혀 수라장이 되였다. 무엇보다 볼수 없는것은 중대마다 하나씩 있던 작식터였다. 재무지를 온통 뚜지고 파헤쳐 숯가루같은 검은재가 사방에 날리고 무져놓았던 땔나무는 공중에 휘뿌리웠다가 내리꽂혀 되는대로 널리고 곤두박혔다. 가마를 걸던 생나무말뚝이며 젖은 통나무도 태질을 당하고 연기에 그슬린 돌들이 여기저기 딩굴었다.

소년들이 있던 천막자리는 메주밟듯이 짓이기고 돌아간 말발굽자리까지 기수없이 나서 아프게 눈을 찔렀다. 찢어발긴 지하족쪼박과 총창으로 찔러 만신창을 만든 신바닥도 보였다. 어느 아이가 벗어놓고 자다가 미처 찾아신지 못한 신발이 적들의 눈에 띄웠던것 같았다.

작식터뒤에서는 생나무가 아직 선채로 신음소리를 지르며 타고있었다.

적들은 숙영지의 자취가 보이는대로 샅샅이 찾아 들부시고 천막자리까지 총창으로 찌르고 파헤치다 못해 생생한 나무아지마저 칼가는대로 치고 짓뭉개여 숙영터는 마치 광풍이 휩쓸고간 페허같았다.

강민은 황급히 사령부가 있던 자리로 뛰여갔다. 가까운 옆에 우중충 서있는 가문비도 칼에 맞고 총창에 찔려 허옇게 드러난 상처에서 피같은 송진이 줄줄 흘러내렸다.

강민의 눈에서는 불줄기가 뿜어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되여 이런 일이 생겼는가? 사령부는 어떻게 되였는가?)

강민은 지금 부대가 꼭 어디서 뒤따르는 적들과 처절한 격전을 치르고있는것만 같았다.

 

×

 

이때 부대는 적들을 뒤에 달고 8도구강옆의 진펄을 횡대로 극복하고있었다.

추격해오는 적들은 우미야마지구《토벌》사령관휘하의 가와자끼부대였다.

일의 발단은 사실 매우 사소한 징후로부터 시작되였다. 세시간전에 쌍대배기를 멘 사냥군이 숲속에서 매둥지를 털고있는 두 소년을 발견했다. 사냥군은 인가로부터 수십리 떨어진 산속에서 이런 소년들을 보게 된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그러지 않아도 혁명군이 밀영에 두고 보호해준다던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전부 없어져서 우미야마《토벌》사령부의 특무들이 눈을 밝히고 그들의 행방을 찾던중이였다.

사냥군은 수상해보이는 소년들을 사로잡으려고 길을 좀 물어보자고 얼리며 따라갔다. 소년들은 총을 멘 낯선 사나이를 보자 서지 않고 수풀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경험많은 사냥군은 소년들의 자취를 놓치지 않았다. 땅에 귀를 대여 와삭와삭 풀헤치는 소리가 어느쪽에서 들려오는가를 가늠하고 그들을 찾아낸 다음 끝까지 따라가보았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빨찌산숙영지가 있었다. 유격대복장을 한 보초가 두 소년을 책망하는것을 보고 사냥군은 급히 되돌아서서 십리밖에 와서 목을 치고있는 가와자끼부대로 달려갔다.

가와자끼부대장은 급히 부대를 출동시켜 숙영지주변에 매복시키고는 자기네 부대력량으로 혼자 쳐들어가기가 겁이 나서 린접부대에 증원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증원부대가 달려오기전에 가와자끼부대는 혁명군망원초에 의해 발견되였다. 망원초는 비상신호인 총소리를 울렸다. 그리하여 아군은 한쪽으로 적을 견제하며 아이들을 끼고 숙영지에서 신속히 철수하게 되였다.

가와자끼부대는 해볼데가 없게 된 숙영지에 돌입하여 모든것을 들부시며 행패를 하고는 추격으로 넘어갔다.

아군은 그때 부득불 개활지대에 있는 진펄에 들어서고있었다. 사방 적들이 있어 그리로밖에 철수할데가 없었다. 500m뒤에서는 적을 견제하던 오중흡이네 중대가 후위임무를 수행하며 뒤따라왔다.

밑에서는 썩은 감탕내가 코를 찌르게 올라왔고 진펄우의 물은 이깔나무뿌리가 우러나서 뻘건 색갈이 돌았다.

굶은 승냥이같이 걸음마다 발목을 물어당기는 진펄한가운데 들어서자 부대는 행군속도를 보장하지 못하였다. 오랜 대원들은 이보다 더한 장애도 지체를 모르고 극복하지만 진펄에 처음 들어선 소년들은 사정이 달랐다. 이들이 부대의 걸음을 늦추게 할수록 위험은 그만큼 시시각각으로 거리를 좁히며 따라왔다.

앙칼진 소리를 지르며 눈먼 총탄이 머리우로 날아와 이깔나무중허리에 박힐적마다 나무쪼각이 튀여나며 소년들을 흠칫흠칫 놀라게 했다.

《일없다. 진펄에서는 덤비지 말아야 한다.》

어느사이 옆으로 온 김주현련대장이 안심을 시키며 준오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진펄을 극복하는데서 제일 근심이 되는것이 준오였다. 아직 허약한 몸을 추세우지 못한 준오는 진펄에 빠지는 발목을 미처 뽑아내지 못해 애를 먹었다. 혁명군의 품에 안기기는 했어도 아버지생각, 죽은 순애생각으로 밤마다 잠을 못자 그런지 신경만 더 예민해져서 누구보다도 기력이 모자라는 준오였다. 동무들과 걸음을 맞추자고 안깐힘을 써도 의지만 가지고는 밑으로 빠지는 발목을 남같이 제때에 뽑아낼수가 없었다. 종시 그는 미끈미끈한 개흙에 발목을 잡혀 한발을 앞으로 내민채 어푸러지고말았다.

김주현이 허리를 굽혀 일으켜세웠을 때 준오의 옷자락에서는 뻘건 수렁물이 좔좔 흘렀다. 자지러지게 울리는 총소리는 귀전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복판으로 들어갈수록 진펄은 발목을 더 영악스럽게 잡아당겼다. 그때 장군님께서 아이들 있는데로 오시였다.

《사령관동지, 어서 앞으로 나가주십시오.》

장군님뒤에서 경위대원들이 가슴을 조이며 말씀드렸다.

《조용들하오. 어린것들이 놀라겠소.》

장군님께서는 경위대원들에게 부산하게 떠들지 말라고 손짓을 해보이시였다. 그리고는 김주현련대장을 자기 위치로 보내며 대신 준오의 손을 잡으시였다. 준오는 지금 자기가 어느분의 부축을 받는가를 깨닫자 모지름을 쓰며 그이 손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제발로 이악스럽게 걸어나갔다. 걸음마다 물고늘어지는 진창에서 발목을 뽑을적마다 온몸의 힘줄이 일시에 끊어져나가는것 같았다.

준오는 걸음을 맞추어 동무들과 같이 빨리 나가지 못하는 자신을 느끼자 땅을 치며 울고싶었다. 아무리 기를 써도 자기만은 이 진펄을 극복해낼것 같지 않았다.

총탄이 옆에 보이는 이깔나무에 날아와 박히는 아츠러운 소리가 울리고 거기에서 튀여난 나무쪼각이 준오의 얼굴을 후려쳤다. 준오는 흠칫 놀라며 몸을 앞으로 내밀다가 발목이 뽑히지 않아 또 어푸러지고말았다.

앞으로 나가신줄 알았던 장군님께서 뒤쪽에서 다가서시며 준오에게 다시 손을 내미시였다. 준오는 감히 그이의 손을 잡을수 없었다. 그렇다고 제힘으로 일어날 기력이 남아있는것도 아니였다. 일어나기는 고사하고 이제는 진펄에 물린 발목조차 뽑을수가 없었다.

웅성거리며 주위에 있는 대원들의 전진이 지체되였다. 더 나갈 힘은 없고 짐이 될수도 없었다.

《절 둬두고 가십시오!》

준오는 진펄에 주저앉은채 부르짖었다. 장군님의 노한 목소리가 총소리를 누르며 쩌렁 울렸다.

《무슨 소리냐!》

그이께서 준오의 손이 아니라 몸을 통채로 일으켜주시였다. 그리고는 아예 한옆에 끼고 한걸음한걸음 진펄을 헤쳐나가시였다. 자기 위치로 갔던 김주현련대장과 여러 지휘관들이 대원들과 같이 또다시 장군님옆으로 달려왔다.

대오는 적탄이 튀는 속에서 힘들어하는 소년들을 옆에 하나씩 끼고 업고 계속 앞으로앞으로 전진했다.

김주현련대장의 가슴에서는 《고맙소! 동지들.》 하는 웨침이 터져올랐다.

련대장뒤로는 아이들의 신발까지 져서 누구보다도 행동이 굼뜬 로상권이가 따라오고있었다.

대오에서는 이미 몇명의 대원들이 적탄에 부상을 당하여 동지들의 부축을 받고있었다. 새까맣게 진펄을 덮으며 뒤따라오는 적들은 눈어림에도 오륙백명이 훨씬 넘어보였다.

기운이 빠질수록 힘줄은 켕기고 진펄은 끈덕지게 발목을 물고 놓지 않았으며 게다가 바람까지 옆으로 불어와서 무섭게 매달리는 신발짐이 자꾸만 한쪽으로 쏠렸다. 로상권이 짐을 추스르느라고 한걸음 멈춘 사이 관식이가 귀전을 스치는 총알소리에 놀라 진펄에 어푸러졌다. 관식이는 허우적거리며 손을 옮겨짚기만 할뿐 인차 일어나지 못하였다.

로상권이 물탕이 된 그를 일으켜 옆에 끼면서 걸음을 내짚는 순간 무엇인가 후려치듯이 한쪽팔을 뒤로부터 탁 치고나갔다. 그 어떤 세찬 타격이 자기몸에 가해진것 같았다.

신발짐을 지고 새벽부터 먼길을 걸어온데다 부대에 들어서자바람 적의 추격속에 들어 부상까지 당하게 되자 눈앞에 별무리가 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로상권은 대오에서 떨어지지 않고 한걸음한걸음 피의 자국을 내짚었다. 얼굴로는 줄땀이 흐르고 목에서는 쇠비린내가 났으며 관식이를 낀 한옆으로는 벌건 수렁물이 흘러내렸다.

김주현련대장이 옆으로 와서 그의 짐을 빼앗아 지였다.

적아의 거리는 1 000m안팎으로 줄어들어 총탄은 발뒤축을 물어메칠듯이 날아왔고 기세를 올리는 적들의 고함소리가 굶은 짐승의 울부짖음같이 살을 차고 무섭게 들려왔다.

앞으로 먼저 나가셔야 한다고 여러 지휘관들이 그만큼 말씀올리는데도 줄곧 아이들옆에서 걸으시는 장군님 뒤에서 자기네 련대도 살피고 아이들도 부축해주고 하는 김주현은 로상권의 신발짐까지 져서 기력을 깡그리 진펄에 뺏기고말았다. 어지럼증에 정신이 휘휘 돌고 총탄이 귀전을 스칠적마다 눈앞이 아찔하여 김주현은 당장 신발짐을 진채 쓰러질것만 같았다.

도대체 이 무슨 일인가. 그에게는 지금 모든것이 이 파국적인 추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악마같은 진펄의 수렁속에 잠겨버리는것 같았다.

그런데 천만뜻밖에 정황이 급변하였다. 부대가 통과한 진펄뒤쪽에서 여러정의 기관총이 추격해오는 적들을 향해 일시에 련발사격을 개시했다. 그 경황없고 촉급한 틈에도 어느 사이 장군님께서 대책을 취하여 드문드문 여러대씩 몰켜서있는 갈숲뒤에 기관총을 적들 모르게 배치하시였던것이다.

저희들이 백배 유리한 립장에 있다는 추격자의 심리로 방심하고 기세만을 올리며 따라오던 적들은 불의의 강력한 타격에 수많은 시체를 진펄에 남긴채 질겁하여 퇴각하고말았다.

부대는 진펄을 무사히 극복하고 산기슭으로 나와 휴식을 하였다.

대원들은 개울물속에 들어가서 군복에 묻은 감탕과 흙물을 씻어내고 한숨 돌리며 풀밭에 주런이 앉았다.

김주현련대장은 진펄을 다 통과할 때까지 장군님께서 옆에서 떠나지 않고 보살펴주신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다행이였다. 한명도 상한 아이가 없었다.

그다음에는 신발짐을 찾고있을 부상당한 로상권이 있는데로 가서 짐은 우리가 건사할테니 걱정말라고 안심시키며 상처입은 팔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로상권은 급급히 걷어올렸던 팔소매를 내리워 붕대를 감추며 부탁했다.

《련대장동무, 내가 부상당했다는걸 장군님께는 말씀올리지 마십시오.》

《그래야지. 말씀올리지 말아야지.》

김주현은 중얼거리며 자기네 련대를 돌아보았다. 부상자는 몇이 있었지만 희생자는 한명도 없었다.

김주현은 안도의 숨이 후 나가는 순간 지친 몸을 유지하고있던 긴장의 탕개가 탁 풀리며 통나무 넘어지듯이 그자리에 쓰러지고말았다.

부대형편을 돌아보시던 장군님께서 그 광경을 보고 옆으로 오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김주현이가 쓰러지는것을 보시였을 때 마치 대들보를 받들고있던 큰 기둥이 하나 넘어지는것 같은 처절한것을 느끼시였다. 다부지고 굳세고 황소같이 강한 김주현이한테는 이때까지 있어보지 않은 일이였다.

그이께서는 《힘이 들지?》 하고 웃으시며 쓰러진 련대장옆에 앉으시였다.

김주현은 장군님의 음성을 듣자 당황하여 풀우에 떨어진 군모를 주어쓰면서 얼른 일어나앉았다.

당황한 빛을 감추려고 애쓰는 련대장과 아이들을 하나씩 끼고 온 대원들의 지친 모습을 보신 장군님께서 미안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오늘 동무들이 수고를 했소.》

《저희들은 일없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준오랑 끼고 오시느라고 오히려···》

《무얼, 그애야 제발로 왔는데.》

《며칠 지내보니 전쟁판에 아이들을 데리고다닌다는게 참 헐치는 않습니다.》

《그렇소. 정작 데려오니 헐친 않구만. 여보 주현동무, 무슨 방법이 없을가?》

《사령관동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이 있지 않습니까.》

련대장도 장차 아이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큰 근심이 생기는것을 분명히 의식하고있었으나 내색하지 않고 걱정에 잠기신 장군님을 위로해드리려고 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