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1


 

제 4 장

1

 

《여보시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소? 이제는 내가 대신 가마에 들어갈수밖에 없게 됐소!》

식솔많은 집안의 주부처럼 제가 굶으면 굶었지 대원들의 끼니만은 풀죽을 쑤어서라도 꼭꼭 보장하던 식량《도감》 로상권은 약속한 지점에서 부대와 만나자 지휘관들을 붙잡고 통분하여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그것은 사흘전에 있은 일이였다. 중강구, 상강구 전역에서 적들을 맹렬히 타격한 주력부대는 하강구쪽으로 진출하여 관동군부대를 공격소탕한 후 다시 초수탄방면으로 행군로를 정하였다. 그때 부대에서는 식량이 떨어져 행군로가까이에 있는 덕수골예비식량저장소로 로상권이를 먼저 보내였다. 거기에는 부대에서 적수송대를 치고 로획한 식량이 저장되여있었다. 그러나 로상권이 운반대를 데리고갔을 때 그곳에는 식량은커녕 귀떨어진 쭉정이한톨 남아있지 않았다. 적들이 이제는 얼마나 영악스러워졌는지 원시림속의 저장소까지 찾아내여 식량을 말짱 털어갔었다. 그리고는 부근에서 떠나지 않고 길목을 지키다가 식량이 떨어진 부대가 나타나자 미친듯이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적들은 오뉴월 진드기같이 떨어지지 않고 그냥 따라오기만 하였다. 식량이 떨어진 기회를 타서 공격소탕하자는 기도였다.

식량형편은 암담해졌다. 이전같으면 적들을 답새기고 당장 식량을 구해오겠지만 지금은 그럴수도 없었다. 부대에는 전투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백여명이나 얹혀있다. 그들이 상할수 있었다. 부대는 련사흘 강행군을 계속하였다. 대원들은 굶주림에 지쳐 묵묵히 걸었다.

강민의 먼지낀 얼굴에는 피기가 없었다. 그는 아이들때문에 대원들이 겪는 고생을 한가슴에 안고 걸어가는듯 하였다. 행군도중에 아이들의 시중드는 일은 마음속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실상 그것 역시 헐한 일은 아니였다. 갈증에 허덕이는 아이들한테 물도 떠다주고 발이 부르터서 절뚝거리는 애들을 부축도 해주고 강줄기가 나타나면 업어건네기도 하고 너덜거리는 신발도 짬짬이 손질해주어야만 했다. 장백지구에서 찾아온 아이들의 신발은 변변한게 하나도 없었다. 총이 나간 짚신짝, 발가락이 삐여져나온 지하족, 뒤축이 너덜너덜한 운동화도 신이라고 발에 걸치고 왔다. 그나마 여러날에 걸친 행군끝에 걸레쪼박처럼 되여버렸다.

드디여 휴식구령이 내렸다. 그러나 강민이한테는 휴식이 따로 없었다. 아이들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쉴 장소도 맞춤한 곳에 잡아주고나서 여가가 조금 생기면 그것이 휴식이였다.

주위에서는 7련대원들이 왜놈들이 쓰는 군용물병을 돌려가며 꿀꺽꿀꺽 랭수를 마시였다. 이전에는 강민이도 쉴참이면 소대원들과 마주앉아 마른 목을 추기고는 한탕 이야기판을 벌리군 했다. 그때가 그리웠다. 그래 7련대 대원들쪽을 건너다보지 않고 아이들의 다리를 주물러주고, 터진 신발을 노끈으로 동여매주는 등 또 한참 뒤시중을 하고나서 혼자 가까운 숲속으로 들어갔다. 누구의 눈에도 띄울 우려가 없는 외진 곳이였다. 강민은 그때에야 눈앞에서 나무웃초리들과 푸른하늘이 온통 빙글빙글 돌아가는것 같은 어지럼증을 느끼며 그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내가 왜 이러는가? 아무리 다시 일어나려고 애써도 입밖으로 신음소리가 나갈뿐 몸은 천만근의 무게로 자꾸만 땅속으로 잦아들어가는듯 했다. 손을 내뻗쳐 새초와 댕댕이뿌리를 거머잡고 있는 힘을 다하여 기여보았다. 혼몽한 의식에도 조금씩 움직여간다는것이 알렸다.

심한 초기를 만난것이였다. 여러해동안의 유격대생활과정에 식량고생을 한두번 하지 않았지만 이번처럼 힘들어보기는 처음이였다. 부대안의 모든 대원들이 비상미마저 박박 긁어 아이들한테 넘기고 자신들은 굶고도 먹은 행세를 했으나 강민은 매번 더한 곡경을 치러야만 했다.

지금도 낟알 몇알만 먹으면 당장 곯아든 눈이 나오고 원기가 살아날것 같았다. 손이 저절로 군복주머니에 갔다. 주머니에는 생콩이 있다. 사흘전에 남보다 고생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로상권이가 슬그머니 몇줌 더 넣어준 《비상미》다. 강민은 오늘까지 행군해오며 로상권의 인정이 스며있는 낟알을 제 입에는 한알도 넣지 않았다. 아이들이 행군도중에 정 힘들어하면 한두알씩 입에 넣어주며 아껴왔는데 그게 아직 한줌가량은 착실히 남아있는것 같다. 내가 이걸 먹다니? 강민은 낟알을 몇개 집었다가 아이들한테 죄스러운 행동을 하는것 같아 도로 놓고 주머니에서 손을 뽑았다.

《쮸리, 쮸리―》 어디선가 솔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일이다. 까마득히 멀리서 들려오는것 같은데 소리 임자는 바로 머리우에 앉아서 우짖고있다. 연노란빛이 섞인 하얀 배, 노랑눈섭무늬, 솔새가 틀림없다.

《쮸리, 쮸리―》

손을 내밀면 금방 닿을듯 한 나무가지에서 울어대였다. 그런데 그 우짖음소리가 이리도 먼데서 들려오는것처럼 느껴지는것은 무엇때문인가?

한참 귀를 강구고있느라니 이번에는 졸졸 흘러가는 개울물소리가 들려왔다.

물! 강민의 눈앞에는 방금전에 7련대 대원들이 군용물병의 랭수를 돌려가며 꿀꺽꿀꺽 들이키던 광경이 얼핏 떠올랐다. 물만 량껏 마셔도 얼마간 허기를 이겨낼수 있을것 같았다. 그는 억새풀을 량손으로 번갈아 잡아쥐며 물소리를 따라 기여가보았다. 솔새가 앉았던곳에서 조금 떨어져 하늘이 파랗게 비낀 개울이 나졌다. 강민은 물가에 돋아난 속새기를 헤치고 물우에 얼굴을 가져다대였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물속에 비친 얼굴은 제 얼굴 같지 않았다. 눈확이 움푹 꺼져들고 대신 광대뼈는 불뚝 두드러져나와 복면한 사나이처럼 모상이 험상스러워보였다. 날구뛴다던 기관총소대장이 며칠사이에 이렇게 허울이 달라지다니? 그는 목이 울컥 메여오르는것을 느꼈다. 사령관동지께서 자기에게 어려운 임무라고 하시면서 아이들을 책임지우던 일이 문득 상기된것이였다. 내가 사람이 아니지, 사령관동지의 그런 심정은 알지 못하고 그 무슨 책벌을 받은것처럼 여겼으니 실상 아이들을 책임질만 한 자격이 있는가? 송순이한테도 은근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사령부에서 새로운 임무를 받고 나오자 의지할 사람이 생겼다고 좋아서 어쩔바를 몰라하던 처녀를 어떻게 대해주었던가? 내가 과연 그의 얼굴에 비낀 기쁨과 웃음,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소중히 간직하고있는 남다른 마음을 알려고 했던가? 강민이가 개울물속의 너무도 몰라보게 변해버린 자신과 얼굴을 맞대고 괴로운 상념에 잠겼다가 정신없이 벌컥벌컥 물을 들이킬 때였다. 아이들이 휴식하고있는 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강민은 군복깃을 바로잡으며 일어났다.

지난밤에 식량공작을 나갔던 7련대의 김홍삼소대장이 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오고있었다. 김홍삼의 앞으로 김주현련대장이 컴컴한 낯빛이 되여 마주갔다.

강민은 요즘 김주현련대장의 밝은 얼굴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대원들이 우등불옆에 쓰러져 자는것을 지켜볼 때와 적을 뒤에 달고 행군할 때면 련대장의 얼굴표정은 내내 침울했다.

부대의 형편은 당장이라도 적의 수송대나 창고를 치고 식량을 몇차판 빼앗아와야 했으나 련대를 끌고나가 전투를 하겠다면 장군님께서 허락하실것 같지 않아 속을 썩이고있었다. 그러던 련대장이 어제밤에 김홍삼소대장을 조용히 불렀다. 소대장이 련대장으로부터 받은 임무는 소대를 데리고 숙영지밖으로 은밀히 빠져나가 부근에 있는 왜놈목재소를 소리없이 치고 다문 얼마라도 식량을 구한 다음 부대를 급히 따라오는것이였다.

김홍삼은 밤중에 아무도 몰래 떠날 때 강민이한테만은 일부러 들려 아이들때문에 너무 걱정말라고 귀띔을 했다. 자기네 소대가 식량을 공작해오면 한밥 잘 먹이자고 웃는소리도 하였다.

《홍삼동무, 어떻게 된 일이요?》

련대장은 부상당한 김홍삼을 세워놓고 성급히 보고를 요구했다. 소대장은 사색이 되여 련대장앞에 고개를 푹 숙일뿐 대답이 없었다.

《말하오, 어떻게 됐소?》

《련대장동지··· 식량공작은··· 실패했습니다. 목재소부근에서 <토벌대>와 불시에 조우했습니다. 접전은 피할수 없었습니다. 한 동문 희생되였습니다.》

김주현은 억이 막혀 순간에 얼굴이 새까매졌다.

한참만에야 후들거리는 손으로 목단추를 겨우 끌러놓았다. 희생된 대원에 대하여 알아볼 때에는 심장발작이 일어난 사람처럼 한쪽 가슴을 부둥켜잡았다. 생때같이 끌끌한 대원을 잃어버렸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장군님앞에는 무슨 면목으로 보고를 드린단 말인가? 식량공작이 제대로 되였다고 해도 승인을 받지 않고 김홍삼이네를 내보냈으니만큼 보고하기 힘든 문제가 아니였던가? 장군님 모르게 제멋대로 사람을 내보냈다가 식량을 구해오기는커녕 희생자까지 낸 그는 앞이 막막하였다.

련대장은 모자를 벗어쥐고 오락가락하였다.

(이 일을 어찌하는가?)

우선 당장은 사령관동지를 찾아가야 했으나 저지른 일이 너무도 커서 말씀올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보고를 들으시면 무엇이라고 하시겠는지 그것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장군님께서 경위중대장을 앞세우고 바로 련대장 있는데로 오시였다.

《내 모자가 어디 갔소?》

김주현은 허둥거리며 손에 쥔 모자를 한참 찾았다. 가까스로 목단추를 채우고 군모도 마침내 찾아썼지만 죄책감에 번거로와진 마음만은 미처 수습하지 못하였다. 련대장은 모든것을 보고올리고 어떤 책망도 받을 각오로 장군님앞에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주위는 긴장을 안은채 정숙해지고 장군님께서는 컴컴해진 김주현의 얼굴과 김홍삼의 다리에 감은 붕대를 침중히 바라보시였다.

《사령관동지··· 간밤에 제가···》

김주현이 철문을 열듯이 드디여 힘들게 입을 열었으나 장군님께서는 보고를 그만두라고 하시였다. 련대장은 두서를 잃은 사람처럼 더욱 당황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숙인채 바지혼솔에 손을 붙이고 서있는 련대장을 묵묵히 바라보실뿐이였다.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한마디 추궁도 없었다. 지어 유감의 뜻조차 입밖에 내지 않으시였다.

김주현은 그래서 더 괴로왔다. 차라리 엄하게 꾸짖기라도 하신다면 이렇게까지 급해맞지는 않을것 같았다. 그는 말씀이 없는 장군님의 안색에서 누구보다도 가슴이 아프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시려는 그이의 괴로운 마음과 함께 이 김주현이가 그렇게 안할수 없었던 사정까지도 깊이 헤아려주시는 넓은 아량과 자제력을 동시에 읽었다.

부대는 다시 출발하여 도끼날을 받아보지 않은 원시림을 헤쳐나갔다. 하늘이 안보이도록 수풀이 우거진데서는 앞사람이 헤치고 간 나무회초리가 활등같이 휘였다가 튕겨와서 얼굴을 사정없이 갈겼다. 그럴 때는 회초리가 어찌 매운지 눈물이 쏟아지게 아팠다. 그러나 지금 7련대장한테 그보다 더 아픈것은 스스로 내리는 자책의 매질이였다. 그는 펄펄 날던 김홍삼이가 피를 흘리고 담가에 실려가는 모양을 차마 볼수가 없었다.

김홍삼은 담가에 실린지 반시간도 안되여 세워달라고 생떼를 썼다. 처음에는 담가채를 잡아흔들었고 다음에는 손바닥으로 쳐보이고 그 신호도 통하지 않자 주먹으로 담가채를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담가는 네명씩 손을 바꾸어 교대하며 들고갔는데 그들은 웬간한 돌부리에만 걸채여도 쓰러질듯이 비칠거려서 김홍삼은 꼭 바늘방석에 앉아가는것 같았다. 상처가 아무리 부저가락으로 휘젓는것 같이 쏘고 저리여도 그속에 부러지지 않은 생뼈가 있는이상 두다리로 몸을 땅우에 세우고 제발로 걸어가고싶었다. 더구나 후위에 서오시던 장군님께서 앞으로 나오시는것을 보았을 때 송구스러운 마음은 걷잡을수가 없었다. 그이께서 옆으로 오시기전에 담가에서 내리고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담가채를 두드려도 들고가는 사람들은 들은둥만둥이다.

《세우라구.》

반응이 없다.

《세우라는데!》

그래도 담가는 제동기 없는 삼발이차처럼 멎을줄 모르고 그냥 가기만 한다.

《여보, 못들었소?》

마침내 김홍삼은 상반신을 일으키며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벌개진 이마에 국수발같은 피줄이 튀여나왔다. 담가를 들고가던 대원들은 딴사람을 보는듯 한 눈으로 김홍삼을 내려다보았다. 여태 그들은 김홍삼이 이처럼 성내는것을 본적이 없다. 《오락대장》이여서 그런지 평소에 그는 우스개소리 잘하는 사람으로 통해왔다. 태반의 사람들이 그런것처럼 웃을 때는 웃다가도 신중해질줄도 알고 성낼 때 성낼줄도 알아야겠는데 김홍삼은 노상 오락회를 하는 기분이였다. 그러던 김홍삼이 오늘은 신경이 곤두서서 이마에 꿈틀거리는 피줄을 세웠다.

담가를 들고가던 대원들은 김홍삼의 서슬에 기가 눌려서라기보다도 그가 괴로와하는것을 볼수가 없어 담가를 멈춰세웠다.

김홍삼은 부상당한 다리를 한손으로 잡고 성한 다리부터 담가채밖으로 내밀었다.

그때 장군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만, 게 좀 있소.》

김홍삼은 장군님께서 다가서시는 까닭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한발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담가에서 몸을 내리우지는 못하였다. 장군님께서 어느사이 김홍삼의 팔을 잡으며 땅에 내려놓은 그의 묵직한 다리를 담가에 올려놓으시였다.

《인제 보니 비위란 통 없구만. 그런 비위 가지고 오락대장은 어떻게 하오?》

《그건 비위와는 별개문젭니다.》

《별개문제라?··· 하여튼 누워있소. 나도 한번 담가채를 잡아봐야지. 오락회때마다 동무의 노래소리를 듣고 힘을 얻군 했는데 그 값을 언제 물겠소?》

웃으시는 말씀인줄 알았다. 그런데 담가가 다시 움직이자 장군님께서 정말 한쪽 담가채를 잡으시였다. 이렇게 되자 또 한사람 급해맞은것은 담가채를 떼우게 된 대원이였다.

《사령관동지, 이러시면 전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다니? 좀 쉬면 되지 않소.》

《그렇게야 어떻게.》

대원은 난처한 빛을 띄우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생각에 잠긴채 뒤따라오던 김주현련대장이 급히 담가옆에 다가섰다. 그러나 련대장은 장군님을 만류하지 못하고 다른쪽 담가채를 말없이 잡았다.

장군님께서는 안놓겠다고 고집쓰는 대원을 옆으로 떼여놓고 몇걸음 걷다가 입을 꾹 다물고있는 김홍삼이쪽에 말씀하시였다.

《홍삼동무가 체통이 있는데 왜 이리 가볍소?》

아픔과 걱정을 안은 자신의 괴로움은 깊은 심중에 묻어두신채 장군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지치고 마음이 무거워진 대오에 침침한 그늘을 가시여주는 훈훈한 기운을 실어온듯 하였다.

김홍삼은 눈을 감고 담가에 순하게 실려갔다.

대오는 수십리를 더 전진하여 7도구하의 상류인 북수천기슭에서 멈추어섰다. 여기서 부대가 숙영할 예정이였다.

김홍삼을 태운 담가를 땅에 내려놓았을 때 김주현은 대원들과 같이 담가를 들고오신장군님의 얼굴로 땀방울이 굴러내리는것을 보았다. 련대장은 죄송스러워 장군님을 더 바라보지 못하였다. 일이 자기때문에 다 이렇게 된것 같았다.

그는 괴로움을 안고 숙영지를 돌아보았다. 련대장이 먼저 들린것은 7련대숙영지였다. 모든것은 정상이였다. 사령부뒤쪽에 천막도 전같이 질서있게 치고 주변도 깨끗이 거두었다. 중대마다 작식터도 알뜰히 꾸리고 나란히 눕힌 통나무우에 대야를 주런이 올려놓았다. 그러나 낟알이 들어간 가마는 하나도 없다. 설설 맹물만 끓이고있다. 이제 대원들이 산나물을 뜯어오면 국을 끓여 공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저녁도 한군데서만은 가마뚜껑이 풀떡거리며 낟알냄새를 피워올린다. 숙영할 때마다 따로 차려놓은 아이들의 작식터다. 낟알이 어디서 났는지 모를 일이다. 혹시 사령부작식터에 낟알이 좀 생긴게 아닐가? 그랬으면 참 다행이다.

련대장은 사령부작식터로 가서 흰김을 뿜어올리는 가마뚜껑을 열어보았다. 련대들에 있는 작식터에서처럼 더운물만 끓이고있다. 작식대원은 말없이 가마옆에서 경위대원들이 뜯어온 참나물을 가리고있었다. 김주현은 묵묵히 작식대원이 참나물을 가리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련대장은 무얼하는 사람이예요? 사흘째 사령부작식대원이 산나물만 끓이는데 오늘도 보고만 있겠어요?》 하고 말하는것만 같아 어찌할바를 모르고 서성거리다가 용기를 내여 사령부로 찾아갔다.

장군님께서는 그때 발이 부르튼 관식이를 붙들어놓고 딱총을 놓아주시는중이였다. 관식이는 그이께서 무릎을 꺾고앉아 허옇게 생긴 물집에 성냥불을 그어대자 붙들린 다리는 버둥거리지 못하고 발가락만 옴지락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애고―》

《녀석, 엄살이 있구나.》

장군님께서는 관식의 종아리를 아프지 않게 한대 치고 딱총을 세군데나 놓으시였다. 그리고는 처참하게 꿰진 그의 물날은 지하족을 들고 걱정을 하시였다.

《신발이 이러니 발이 안상할수 있느냐.》

관식이옆에는 한끝이 까뭇까뭇 탄 성냥살이 안떨어진데 없이 하얗게 널렸다. 장군님께서 아이들의 천막을 오늘도 사령부 제일 가까운곳에 쳤는지 나가서 알아보고 들어오시는길에 발이 그중 험하게 부르튼 아이들을 데리고와서 딱총을 손수 놓아주신것이였다.

성냥불이 물집에 닿을적마다 엄살을 부리던 관식이가 절을 굽벅하고 절뚝거리며 나가자 김주현은 눈밑에 널려있는 성냥살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아이들과 관련한 일은 되도록 조용히 처리하고싶어하시는 장군님의 심정을, 그애들이 분명 가볍지 않은 짐이 되고있는것은 사실이고 또 이러저러한 말썽과 골치아픈 일을 무시로 야기시킴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람들앞에서 덮어주고 감싸주며 그애들에게 기울이는 자신의 수고를 대원들에게 보이고싶지 않아하시는 장군님의 심정을 하얗게 널린 이 성냥살에서도 보는것만 같았다.

더운물만 끓이고있는 사령부작식터, 손수 딱총을 놓아주시는 장군님의 수고··· 련대장은 더욱 지체할수 없는 절박감을 느꼈다. 당장 필요한것은 식량과 신발이다. 급히 해결하자면 어차피 전투를 하는 길밖에 없다.

도중에 물줄기가 나타났을 때 집요하게 따라오던 적들은 떨구어버렸다. 오중흡이네 4중대가 자청 나서서 행군흔적을 일부러 뚜렷이 남기며 적들을 딴 방향으로 끌고갔다. 그사이 부대는 행군흔적을 지워주는 물줄기를 타고 30여리 북으로 올라왔으니만큼 인제는 전투를 할수도 있다.

《사령관동지, 간밤 일을 생각하면 죄책감을 금할수 없습니다. 허락해주신다면 잘못을 씻을겸 제가 련대를 데리고나가 전투를 하여 부대에 필요한 식량을 구해오겠습니다.》

김주현은 자기의 심정과 결심을 조용히, 열렬히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깊이 생각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입을 여는 련대장의 심정을 헤아려주시였다.

《알겠소. 그렇지만 련대장동무, 그렇게 지친 대원들을 데리구 나가서 전투를 제대로 하겠소? 전투는 기운을 추세운 다음에 합시다. 또 적을 떨구어놓기는 했지만 아이들도 지쳤는데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부대위치를 로출시킬수 있는 행동은 삼가하는것이 좋지 않겠소?》

한마디지만 대원들과 아이들에 대한 세심한 념려와 배려가 후덥게 안겨오는 말씀이였다. 그러나 련대장은 미처 리해 안가는 점도 있었다. 식량공작을 하지 않으면 굶는수밖에 없는데 무엇으로 대원들과 아이들의 기운을 추세워준단 말인가?

《련대장동무, 걱정마오. 물론 식량공작이야 해야지, 당장.》

《예? 전투를 안하고야 어떻게? 몇포대라면 몰라도···》

《몇포대나 가지고야 누구 코에 바르겠소? 원기를 추세워주자면 식량이 퍼그나 있어야겠는데 한 이틀동안에 공작해봅시다.》

련대장은 들을수록 놀랍기만 하였다. 그가 고개를 기웃하며 눈을 끔벅거리는것을 보고 장군님께서는 웃으시였다.

《주현동무, 놀랍게 여길게 있소? 여기야 하강구가 아니요. 박덕산동무가 나와있지 않소. 박덕산동무에게 과업을 줍시다. 하강구지하조직을 동원합시다.》

그이의 말씀을 듣자 김주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강구에 나와있는 박덕산이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된것이였다. 그는 부대와 함께 자기 역시 하강구땅을 밟고다니면서도 박덕산의 선을 리용할데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하였다. 그 선을 리용하면 전투를 하지 않고도 될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순간 한가지 우려되는것이 있었다. 김주현은 사령부에 드나드는 련락원들을 통해 지금 적구정세가 삼엄해지고 적들의 경계와 탄압이 극심해져서 지하조직을 움직이기가 몹시 힘들게 되였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사령관동지, 박덕산동무도 요사이 일하기가 매우 힘들겠는데.》

《물론 힘들거요. 힘들테지. 그러나 이런 때 한몫 하는게 박덕산이 아니요?》

장군님께서는 마침 속이 타서 숙영지안을 돌아가고있는 로상권이를 띠여보고 불러오시였다. 로상권은 지금 부대에 식량이 떨어져서 고생을 하는것은 더욱 극심해진 적들의 발악때문이 아니라 《도감》인 자기가 세간살이를 잘못해서 그렇게 된것처럼 생각하며 도무지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장군님께서 하강구에 나와있는 박덕산을 통해 식량을 구해들일 생각을 말씀드리자 로상권은 금시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장군님, 그게 정말 좋겠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아무래도 박덕산동무한테 사람이 가야겠지요?》

《그래서 찾았습니다. 내 이제 강민동무와 따로 만나서 구체적인 임무를 주겠는데 선발대로 함께 가서 박덕산동무에게 사령부의 실태를 전달해야겠습니다. 중간련락소인 윤석찬동무네 집으로 먼저 찾아가십시오. 식량운반대는 한개 중대가량 뒤따라 보내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촉박한 시일과 소요되는 수량과 물자인계지점, 공작상 류의할 점 등 박덕산이한테 전할 임무내용을 대충 이야기해주시였다.

로상권은 지숙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처럼 가슴을 들먹거렸다. 김주현이도 흥분되였다.

장군님께서도 임무를 주고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지신듯 천막안을 몇걸음 오가시다가 로상권이앞에 멈춰서시였다.

《가만, 박덕산동무한테 사람들이 가는데 뭐 잊은것이 없겠습니까?··· 그렇지, 신발문제가 있지, 이번 걸음에 아이들의 신발도 좀 구해옵시다.》

로상권은 아이들의 신발형편을 잘 알고있을뿐아니라 이 문제 역시 자기가 직접 관심할 일이여서 즉석에서 흔연히 대답했다.

《옳습니다. 구해오겠습니다.》

장군님의 심정으로서는 가능하기만 하면 한꺼번에 새 신을 다 갈아신기고싶으시였다. 그러나 박덕산이한테 너무 큰 부담을 줄것 같아 이르시였다.

《단번에야 어떻게 새 신을 다 신기겠습니까. 정 험한 애들부터 먼저 구해다 신깁시다.》

《알겠습니다.》

로상권은 벌써부터 마음에 날개를 달고 동행할 성원들에 대하여 왼심을 썼다.

《장군님, 이번에 송순동무도 함께 데리고갔으면 좋겠습니다.》

《좋을대로 하십시오. 그런데 어떻습니까? 요즘 강민이와 송순동무사이가?》

두사람 사이가 가까와지기를 은근히 바라시는 장군님의 사려깊은 말씀에 로상권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였다.

《뭐 남다른것은 있는것 같지 않습니다. 전 처음부터 그 사람들사이를 잘못 생각했더랬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 말을 듣자 강민이가 자기는 귀가 얼어가지고 송순이를 제 털모자까지 씌워 발구에 태워가지고 오던 일을 상기하시였다.

《그렇지, 상권동무는 그때 강민동무가 색시감을 발구에 태워가지구 왔다고 했었지···》

《예, 그래서 당장 잔치를 해줄 생각이였는데 강민이 그 사람이 두고보니 그런 포재는 전혀 없습니다. 저만두 못합니다. 저야 그래두 일찌기 서울 가서 하숙집처녀를 차구온 사람이 아닙니까. 하하.》

로상권은 자기들을 보내놓고는 근심을 못놓고 기다리실 장군님마음을 떠나기전에 조금이라도 밝게 해드리고싶어 천진하게 웃으며 혁띠고리를 조이고있었다.

장군님께서도 그의 심정을 읽고는 가슴이 뭉클하여 말머리를 돌리듯 회중시계를 꺼내보시였다.

《그럼 강민동무를 나한테로 보내고 떠날 준비를 하십시오. 이번에 우리가 박덕산동무한테 한꺼번에 너무 큰 과업을 급하게 주는것 같은데 가서 형편을 보고 무리한 요구는 하지 마시오.》

그때 옆에 서있던 김주현련대장이 장군님께서 주시는 임무가 가볍지 않음을 다시한번 깨우쳐주고싶어 로상권의 손을 잡았다.

《부탁하오, 잘해주시오. 박덕산동무한테 잘 전해주시오. 과업으로 말하면 간단치는 않소.》

《옳습니다. 아름찬 과업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읍시다. 박덕산동무는 해낼거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군님께서는 련대장이 우려하는바를 깊이 리해하고 또 그것을 고려하지 않는바가 아니였지만 이때까지 한번도 믿음을 저버린적이 없는 적구의 전사를 믿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