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3


 

제 3 장

3

 

(강민동지가 왜 성이 났을가?)

송순은 차라리 자기 행동에 잘못이 있다면 찾아가서 빌기라도 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강민의 기분에 상한 일은 한것 같지 않아서 도리여 안타까왔다. 밤에도 그가 온전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걸 보고 녀대원들이 《송순동무, 왜 그래요?》 하고 물었지만 누구한테도 자기의 마음을 비쳐보이지 않았다. 간혹 동무들의 물음을 정 피할수 없을 정도가 되면 《걱정 말어,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웃어보일 때가 있었지만 혼자 조용한 곳에 가면 그 꾸민 웃음은 남모르는 한숨으로 번졌다.

여태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해본적이 없는 자기가 강민의 비위를 건드리게 될줄은 진정 몰랐다. 사령부의 기관총소대장이 아이들을 돌봐줄 책임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송순이가 강민이한테 달려가서 자기의 반가운 심정을 꺼리낌없이 내색한것은 어디까지나 진심이였지 겉치레가 아니였다. 평시에 은근히 의지하고싶던 사람과 가까이 있게 되였다는 생각, 또 후방밀영에서 정을 들인 아이들을 강민이가 맡게 된 기쁨으로 하여 그 순간 송순은 행복했고 가슴이 뛰였다. 강민이가 아무리 무뚝뚝한 사람이라 한들 자기의 그 마음을 모를수 있겠는가? 그러나 강민을 원망하며 생기를 잃었던 송순이였지만 며칠이 지나자 어느덧 그도 어제날의 기관총소대장에 대한 태도를 달리하지 않을수 없었다.

가만히 눈여겨살펴보니 아이들한테로 옮겨앉은 후 강민의 침울해진 기분은 한 녀성의 고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송순은 그것을 알게 되였을 때에야 갑자기 잠에서 깨여난 사람처럼 자기의 옹졸한 생각을 나무라며 이전과는 다른 립장에서 강민의 마음속고심을 리해하려고 애쓰게 되였다.

강민은 평대원시절에 벌써 뛰여난 사격술을 가진 용맹한 기관총수로서 신임을 받은 사람이 아닌가? 누구한테도 짝지지 않을 그런 경력을 가진 사령부의 기관총소대장이 하루아침에 자기의 영예로운 직무를 내놓고 아이들 시중을 들게 되였으니 왜 심정이 복잡하지 않겠는가?

아이들 뒤바라지는 자기같은 녀자들한테나 어울리는 일이였다. 어려서부터 온갖 허드레일에 손을 적시여온 송순은 아이들을 위해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는것과 같은 일은 얼마든지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송순이가 아이들문제가 일정에 올랐을 때조차도 복잡한 론의에 끼여들지 않고 그애들을 위하여 성의를 다한것은 자기는 녀성이고 응당히 돌봐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그러한 송순의 눈으로 볼 때 강민이가 아이들 책임자가 되였다는것은 기둥감을 잘라 목침을 만들어버린것만 같았다.

송순은 강민이가 마음에 내키지 않는 생소한 일을 맡아하다가 과격한 성미에 생나무 부러지듯 털썩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랴싶어 잠시도 걱정을 놓지 못하였다. 강민동지를 도울 방도가 없을가? 그의 마음속고충을 누구보다 깊이 알고있는 사람이 자기라고 생각되자 송순은 장군님을 찾아가서 강민을 경위중대로 다시 소환하도록 청이라도 드리고싶었다. 그러나 어쩐지 자기같은 보잘것없는 녀성이 기관총소대장의 문제를 사령부에 제기한다는것이 주제넘고 외람된 소행같아서 망설이며 그러지도 못하였다.

오늘도 송순은 작식터에서 산나물을 가리자니 강민의 얼굴만 눈앞에서 서물거리며 일손이 잡히지 않아 이따금 한숨을 짓군 하였다.

송순이가 보기에 전혀 뜻밖이라고 할만큼 생소한 일을 맡아안은 강민이가 그 숱한 소년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못잡는중에도 요사이 제일 골머리를 앓는것은 종일 가도 말 한마디 없는 준오문제 같았다. 어제도 강민은 그애를 천막밖으로 끌어내려다 못해 종시 단념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한마디 비친바있다.

《송순동무, 어떻게 하면 좋소. 장군님께서 준오가 한번 웃는걸 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무슨 방법이 없겠소? 제발 좀 도와주소.》

송순은 그때 웃음이 나오는것을 참았다. 성미가 강하고 무슨 일에서나 남의 손을 빌려고 하지 않는 그가 연약한 녀자인 자기한테 울상을 하고 조언을 청하는것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강민이로서는 하소할만도 하다고 여겨져서 동정을 금할수 없었다. 송순이도 눈여겨보아서 잘 알거니와 그동안 강민은 준오의 얼굴을 밝게 해주려고 없는 포재에 오락회도 열어보고 재미있는 옛말모임도 가져보았지만 준오는 불쌍하게 죽은 순애생각만 하는지 한구석에 쭈그리고앉아 애당초 참녜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송순은 강민의 골치거리를 두고 정말 무슨 방법이 없을가 하고 같이 생각하게 되자 자연히 준오의 얼굴이 떠올랐다. 좀해서는 응어리진 슬픔이 아프게 옹쳐 마음속에 그늘이 져있는 준오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피여날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한식경이 지났을 때 사령부쪽에서 왁작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송순이 영문을 몰라 목을 빼여들고 바라보는데 봉석이가 헐썩거리며 달려왔다.

《누나두 좀 가보지 않겠어요? 지금 굉장해요!》

《뭐가?》

《사령부앞에서 큰 씨름판이 벌어졌어요.》

송순은 얼굴이 금시 까매졌다.

《세상에 원, 그애들이 사령부앞에 가서 소란을 피우다 못해 씨름판까지 벌린단 말이냐? 장군님께서 얼마나 기막혀하시겠니.》

《누난 무슨 말을 하고있어요? 씨름판은 장군님께서 벌리게 하셨단 말이예요!》

《아니, 이애가 무슨 소릴 하니?》

송순은 영문을 알수 없어 멍하니 사령부쪽을 바라보다가 허겁지겁 봉석이를 따라 달려갔다.

사령부앞에 이른 그는 그만 입을 벌리며 선자리에 굳어졌다. 정말 사령부앞에서 씨름판이 벌어졌는데 장군님께서 직접 심판까지 서주고계시였다.

마당같이 넓은 풀밭에 백여명의 소년들이 전부 모여들어 《떠라!- 떠라.》 하고 서로 승벽내기로 고아대며 응원을 하고있었다. 소년들이 빙 둘러선 한복판에 나서서 서로 붙들고 돌아가는것은 씨름을 잘한다는 광호와 어디에나 나서기를 좋아하는 인수였다.

소매를 걷어붙인 장군님께서 선수들옆에 서서 그만 붙잡고 돌아가고 인제는 손을 써보라고 재촉하며 웃으시였다.

인수가 꿀리는지 응원군들은 땅을 짚고 소리를 치며 잔뜩 두다리를 뒤로 벋디디고있는 인수쪽을 응원하였다. 지어 입을 열것 같지 않던 준오까지 씨름판의 분위기에 저도모르게 휘말려 《떠라-》 하며 응원을 하였다.

(이게 무슨 일이람?··· 장군님께서 심판까지 서주시다니?···)

송순은 그저 놀라와 바투 다가서지 못하고 못박힌듯 서있기만 하였다. 그런데 가만 보니 씨름판은 장군님께서 심판까지 서주시는바람에 더욱 그렇게 흥이 오른것 같았다.

광호는 인수를 끌고 한바퀴 더 돌고나서 힘을 주어 그를 떠밀다가 순간에 제앞으로 활 잡아당겼다. 밀리지 않겠다고 앞으로 힘을 주던 인수는 손도 못써보고 제김에 무릎을 꿇으며 맥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장군님께서 안되겠다고 손을 젓는 인수를 일으켜주며 또 다른 선수가 나오라고 하시였다.

광호는 가슴을 쭉 펴고 목운동을 하면서 팔놀리는 시늉을 하였다. 제법 상씨름군 흉내를 내며 으시대는 기세로 보아 벌써 한 네댓명은 넘어뜨린것 같았다. 더는 그와 겨루어보겠다고 선뜻 나서는 적수가 없었다.

광호는 제스스로 적수가 될만 한 상대를 골라보다가 힘깨나 쓸것 같애보이는 덕만이를 불러내였다.

《촌닭 나오라구!》

《촌닭》이란 광호가 낯을 익히는 첫날 덕만이한테 달아준 별명이였다.

광호는 처음부터 초절임을 시키려는듯이 위세를 돋구며 풀밭을 한바퀴 빙 돌았다. 덕만이는 정말 어리숙한 촌닭같이 광호의 기세에 진작부터 눌리여 엉치를 들지 못하고 한동안 망설이였다. 이때 관식이가 달려가 판이 붙기전부터 주접이 든 덕만이를 잡아일으켜 으시대는 광호앞으로 끌고나갔다.

장군님께서 서로 혁띠와 바지가랭이를 맞잡고 허리를 굽힌 선수들곁으로 다가서시였다. 충분한 시간을 주고 선수들의 준비가 끝날만하자 그들의 잔등에 손을 얹으시였다.

《됐느냐?》

그이께서는 허리를 굽혀 공정하게 준비상태를 보아주고 손바닥으로 두 선수의 잔등을 동시에 철썩 치시였다.

그러자 광호쪽에서 먼저 후들쩍하고 힘을 쓰며 맥을 떠보았다. 손맛이 어쩐지 버겁다는 느낌이 드는지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왔다.

《허? 보기와는 다른데?》

두쪽은 다 상대편 혁띠를 감아쥔채 살빛이 검은 다목다리를 후들후들 떨뿐 함부로 선손을 쓰지 못하였다.

씨름판은 한순간 긴장되였다. 구경군들도 입을 다물고 두 선수를 바라보았다. 송순은 자신도 어느새 씨름판의 분위기에 말려들어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고있다는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뜨라구, 떠!》 하고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소리지르자 구경군들은 겨끔내기로 어서 배지기를 뜨라고 입을 모아 떠들어댔다. 그러나 두 선수는 서로 붙잡은채 벌써 열바퀴도 더 돌았다. 마치 전띠 두른 둥글소를 놓고 마지막승부를 겨루는 상씨름군들처럼 공격할 기회만 노리며 도무지 손쓸 틈을 주지 않았다.

《누구든 손을 써야지.》

보다 못해 장군님께서도 심판의 권리로 경고를 주시였다. 그때에야 광호쪽에서 큰소리 친 체면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한듯 먼저 덕만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왼배지기를 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덕만의 몸은 들리기는커녕 한쪽발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호미걸이, 오금걸이도 시도해보고 목치기도 해보고 마감에는 오른쪽으로 당기는체하며 왼쪽 옆다리치기도 써보았으나 덕만의 다리통은 굳은 땅에 박힌 쇠말뚝처럼 떡 버티고 끄떡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머슴살이에 틔워 뼈대가 굵고 팔다리가 억세여진 덕만이였다. 그런데다 《촌닭》이라는 말을 듣고 대척은 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은근히 밸이 꿈틀거려 언젠가는 맛을 보여주리라 벼르고있는 참이였다.

그것을 알리없는 광호는 또한번 왼배지기를 뜨려고 몸을 바투 주며 다가들었는데 이때 인수가 덕만의 결기에 불을 질렀다.

《촌닭맛을 보여라!》

덕만은 꾀바르게 광호의 힘을 잔뜩 빼여놓고는 배지기를 뜨려고 달려드는 찰나에 그의 몸뚱이를 허궁 통채로 들어올렸다. 두다리가 하늘로 가게 광호를 거꾸로 세워들고 그를 잊은듯이 꼼짝 움직이지 않았다.

광호는 머리를 아래로 두고 버둥거리다가 밑으로 피가 몰리며 급해맞게 되자 제편에서 빽 화를 내였다.

《너 이러겠니? 너 정말 이렇게 하겠니?》

장군님께서는 덕만이가 꾀도 있고 힘도 있다고 하시며 껄껄 웃으시였다. 응원하던 동무들도 버둥거리는 광호를 보자 배를 그러안고 깔깔 웃어대였다.

그런데 버릇은 어쩔수 없어 광호는 거꾸로 서서도 큰소리였다.

《너, 죽어보겠니? 다시 하자!》

《다시는 무슨 다시야!》

덕만이는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말라는듯 광호를 힝 뿌려던졌다. 광호는 넉장거리로 나가떨어져서 태질을 당한듯이 풀밭에 딩굴었다. 온몸이 얼얼해난 광호는 다시 해보자는 말도 못하고 얼음판에 넘어진 망아지처럼 눈만 떠부룩거렸다.

《안되겠다. 다른 애가 또 나오너라.》

장군님께서 웃으며 손짓을 하시자 여러 아이들이 준오 등을 떠밀었다. 그들의 눈에는 준오가 몸은 허약해도 날파람이 있어보이는 모양이였다.

준오는 덩지 큰 광호가 꼼짝 못하고 나떨어지는것을 본것만큼 감히 일어설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옆에서 한번 겨루어보라고 한사코 일으켜세우는바람에 준오는 웃동을 벗었다. 이왕 일어난바 하고는 한번 대들어보자고 마음먹은것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호각이 없는것을 유감스러워하며 시종 진지하게 심판을 맡아주시였다.

응원군들의 태반은 상대가 안된다고 준오한테는 기대조차 걸지 않았다. 덕만이쪽에서 첫손을 대자바람 힘빼지 않고 준오를 넘어뜨릴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일단 맞붙자 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덕만은 승부를 인차 내지 못했을뿐아니라 다리를 벋디딘 준오를 붙들고 풀밭을 돌기만 하면서 다루기 매우 힘들어하였다. 한동안 땀을 빼던 덕만이 마침내 뚝힘으로 상대편을 끌어당기며 들어올렸으나 준오를 넘어뜨리지 못하였다. 준오가 어느새 한다리를 꺾쇠처럼 뒤로 들고 덕만의 사타구니사이로 무릎을 박으며 바싹 다가붙은것이였다.

이럴 때는 힘이 센쪽에서 상대편을 내려놓았다가 다가붙지 못하게 허궁 들면 이길수도 있는데 덕만은 왜 그런지 그 수를 쓰지 못하였다. 찰거마리처럼 달라붙은 준오쪽에서는 팔이 바들바들 떨리고 덕만이는 다리를 떠는것 같았다. 누가 조금만 기운을 더 내여 수를 쓰기만 하면 이길수 있는 아슬아슬한 대목에 이르자 긴장해서 지켜보던 동무들이 앉은자리에서 엉뎅이를 들고 두팔을 벌려짚은채 소리소리 지르며 응원을 하였다.

《덕만이, 덩지가 아깝다!》

《준오, 잘해, 잘해. 목을 끌어안으라구!》

순간 준오는 훈수대로 몸을 솟구쳐 정말 덕만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그러자 와그르르 웃음통이 터졌다. 준오가 목을 끌어안는통에 덕만이는 눈을 볼수 없게 되였던것이다.

《야- 뵈야 하지.》 덕만이는 준오가 목을 조이고 내미는대로 비명을 지르며 두어걸음 뒤걸음을 치면서 비칠거리는것 같더니 준오를 안은채 맥없이 뒤로 벌렁 넘어졌다.

《용타! 준오가 제일이다!》

《그것 보라구. 급할 땐 끌어안는게 제일이야.》

응원군들은 넘어져서도 밑에 깔린 덕만의 목을 꽉 끌어안고있는 준오를 보고 배를 그러쥐고 웃어대였다. 너무도 우스워서 물먹은 병아리처럼 하늘로 머리를 들고 웃는 애들도 있었다. 준오는 얼마나 그러죄였든지 뻘겋게 된 덕만의 목을 풀어주면서 미안하게 되였다고 씩 웃어보였다.

준오의 팔에서 목이 풀려나자 덕만이도 풀밭에 뒤골을 박은채 누워서 싱글싱글 웃고있었다. 조금도 진것을 아수해하지 않았다. 덩지값을 못했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덕만이는 자기를 내려다보시는 장군님의 눈길과 마주치자 《에, 에, 쎈데.》 하고는 어깨를 툭툭 털며 일어나앉았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덕만이한테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그가 일부러 져주었다는것을 알아차리시였던것이다.

가슴이 뭉클하셨다. 씨름을 한판 져준다는것이 큰것은 아니다. 자기 체면은 좀 깎이더라도 동무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고싶어하는 속깊은 덕만의 갸륵한 심정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왔다.

송순의 앞에 서서 구경하던 봉석이가 덕만이와 준오 있는데로 다가갔다.

《씨름경기에서 완강한 투지와 고상한 품성을 보여준 선수들에게 상을 주겠습니다.》

봉석은 요란히 선포하고나서 어느새 꺾어왔는지 풀이 듬성듬성 섞인 이름모를 들꽃묶음을 덕만이와 준오의 가슴에 안겨주었다.

덕만이는 《상》이라는것을 난생처음 받아보는터여서 황송해하며 《고맙습니다.》 하고 봉석이한테 절을 꾸뻑 하였다. 그 모양이 어찌 순진하고 우습게 보이는지 또 폭소가 터졌다.

옆에서 상을 같이 받은 준오도 소리내여 웃었다.

장군님께서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좋구나. 너희들과 함께 웃으니 정말 좋다. 온갖 시름이 다 달아나는것 같구나.》

송순은 뿌옇게 흐려드는 시선으로 미소를 짓고 웃으시는 장군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준오에게 밝은 웃음을 찾아주시고싶어 바쁜일을 미루어놓고 씨름을 조직하시고 심판까지 서주신 일을 생각하면 눈앞이 흐려와서 서있을수가 없었다.

송순은 준오의 얼굴에, 이 모든 소년들의 얼굴에 언제나 밝고 명랑한 웃음만이 차넘치기를 바라며 저녁준비를 위해 작식터로 달려갔다.

 

그러나 송순의 기대는 그날저녁으로 무너지고말았다.

이날저녁 소년들의 식탁에는 처음으로 산나물죽이 나왔다. 그래도 모두 출출하던 판이라 가리지 않고 훌훌 불며 맛나게 먹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인수만은 죽을 휘젓기만 하면서 먹는둥마는둥 트적거리고있었다. 사령부에 와서 며칠동안 후한 대접을 받은데다 유격대생활의 한 측면만 강조한 봉석의 선전을 듣고 먹기도 굉장히 잘 먹을줄로 생각한 인수에게 식탁우에 오른 풀죽이 구미가 당길리 없었다. 우선 죽이 맛이 없기도 했지만 그보다 인수는 지금 딴 생각에 옴해있었다.

자칭 무슨 《방조자》요, 《상관》이요 하면서 자기네와 같이 생활하는 봉석이가 좀전에 총을 천막안에 세워두는것을 띄워본것이였다.

인수는 조용한 틈을 타서 봉석이가 얼씬 다치지도 못하게 하는 총을 주인몰래 한번 뜯어보려고 마음먹고있었다. 만나면 언제나 풋내기 취급하면서 코등까지 퉁겨주는 봉석이를 속으로 고깝게 여기며 어디 두고보자고 단단히 벼르고있었다. 내 코등이 제 기분에 맞추어 건드리는 무슨 북쪼박이란 말인가. 이래저래 자존심이 흔들리고 화가 난 그는 빨리 총다루는 법을 익히고 유격대원이 되여야겠다는 생각을 버릴수가 없었다. 지금도 인수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것만 같은 조바심이 나서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일려는데 곁에 앉아 식사하던 광호가 남의 속은 알지 못하고 핀잔부터 주었다.

《얘, 넌 왜 먹지 않구 트적거려?》

인수는 대뜸 마뜩지 않게 광호를 흘겨보았다. 원체 성미가 올곧지 않아 웬간한 말도 순하게 새기지 못하는 인수였다. 허나 자기보다 힘이 센 광호의 위혁적인 눈길과 마주치자 처음에는 할수없이 몇술 뜨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다가 못나게 남한테 쥐여사는것 같은 생각이 들어 도로 숟갈을 훌 놓으며 광호를 쏘아보았다.

《얘, 인수, 너 꽤 무섭구나. 왜 눈살이 꼿꼿해서 그렇게 쏘아보는거냐?》

《앞으로는 남의 일에 간참 말어! 싱거운자식!》

《알겠다. 짠놈의자식, 하지만 너도 남의 눈에 거슬리게 굴지 말어. 풀죽이 어쨌다구 투정질이야.》

인수가 멋없이 밥투정을 한다고 아니꼽게 여기던 동무들은 그가 퉁을 맞는것을 깨고소해하는 눈치였다.

《너 사람을 어떻게 보고 이래라 저래라 해? 이까짓 풀죽 먹든말든!》

《뭐 이까짓 풀죽? 좋다, 어서 먹어. 먹지 않으면 정신이 쑥 들게 혼쌀을 내줄테다!》

《흥, 이거 정말 소가 웃다가 꾸레미가 터지겠구나. 허풍선이같은게.》

인수의 이 한마디는 광호의 기분을 여지없이 잡쳐놓았다. 씨름을 잘한다고 으시대다가 덕만이한테 꼼짝 못하고 나떨어진 일을 념두에 둔 소리가 틀림없었다.

《뭐, 허풍선이?》

《그럼 허대포라고 할가?》

순간 인수의 눈에서 불이 번쩍하였다. 광호가 참지 못하고 인수의 귀뺨을 후려친것이였다.

《옳지, 너 사람 치누나?》

인수는 두손으로 볼을 싸쥐며 용수철처럼 뛰여일어났다. 그러나 옆에서 쏘는 눈총들에 몰려 맞설 엄두를 더 못내고 혼자 씨근거리다가 천막쪽으로 힝 사라져버렸다.

《광호, 어찌자구 동무한테 손찌검을 해요? 유격대에 입대하겠다면서 창피하지 않아요?》

달려온 송순이가 광호를 꾸짖으며 당장 인수한테 용서를 빌라고 천막쪽으로 떠밀었다.

인수는 광호가 나타났으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인수야, 내 한대 붙인건 잘못했다. 그렇지만 너도 생각해봐야 돼. 너처럼 밥투정질이나 하면 장군님께서 우릴 데리고다니실것 같애?》

《그렇지 않구. 인수, 광호만 나쁘게 생각지 말어. 자, 어서 먹어라.》 함께 들어온 준오도 광호를 두둔하며 인수가 먹다만 죽그릇을 그앞에 놓아주었다.

《치워라, 이건 누굴 어린앤줄 알어!》

인수는 얻어맞은 분풀이를 하지 못해 신경질을 부리다가 죽그릇을 한옆으로 훌 밀어버렸다. 그 바람에 죽이 반나마 땅바닥에 쏟아졌다.

《이 자식이, 너 아직 혼이 덜 난가보구나.》

광호는 인수의 뺨을 더 힘껏 후려갈겼다. 뒤따라 들어온 동무들도 아까운 죽이 쏟아진것을 보고는 너나없이 분격했던만큼 광호편을 들었다. 그 순간 인수는 천막옆에 세워둔 봉석의 총을 손에 홱 나꿔잡았다. 공포라도 한방 놓지 않고는 분을 삭일수 없었다. 총구를 번쩍 우로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총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안전장치가 된것을 알리 없는 인수였다.

《이것두 총인가?》

그는 방금전까지 그처럼 감질이 나도록 만져보고싶어하던 봉석의 총을 구석쪽에 획 던졌다.

옆에서 보고있던 준오는 더 참아내지 못하였다.

인수가 아까운 낟알이 들어간 죽을 마구 땅바닥에 쏟뜨릴 때부터 주먹이 후들거리는것을 겨우 참고있던 준오였다. 죽은 순애와 선 개암나무열매가 피뜩 떠올랐다.

(이애는 도대체 어떤 아이인가?)

준오는 땅바닥에 딩구는 총을 번개같이 잡아쥐고 안전장치를 풀며 총구를 인수앞으로 돌렸다. 인수를 쏴보는 준오의 달이 오른 눈에서는 불찌가 튀고 팔까지 후들후들 떨렸다.

《모두 비켜라. 이 배부른 까마귀를 당장 쏴버릴테다!》

절컥 장탄을 하며 그는 고함을 질렀다.

《까마귀? 어디 쏴봐라!》

인수가 굽어드는 기색조차 없이 웃동을 벗어제치며 가슴을 내밀자 사태는 더욱 험악해졌다. 아무려문 네가 쏘기야 하겠는가 하는 배심같았다.

이럴 때 봉석이가 천막안으로 날아들어 총구를 우로 비껴치며 총대를 잡았다. 순간 총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발사되였다.

인수는 깜짝 놀라 궁둥방아를 찧으며 펄썩 주저앉았다. 제가 총에 맞은줄만 알았다. 옆의 동무들이 달려들어 눈이 뒤집힌 인수를 구석쪽으로 밀어내며 덤벼치는통에 천막까지 한옆으로 쓰러지고말았다.

작식대일을 끝마치고 달려오던 송순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아연해서 안타깝게 발을 굴렀다.

《아, 이게 무슨 일이예요.》

그는 장군님의 수고가 한순간에 보람없이 되는것 같아 가슴이 빠질빠질 타들었다.

때아닌 총소리를 듣고 사방에서 대원들이 웅성거리며 달려왔다.

봉석이는 허리에 손을 꾹 짚고서서 넘어진 천막밑에서 엉금엉금 기여나오는 소년들한테 욕설을 퍼부었다.

《잘한다, 헝, 뭐 그래가지고도 너희들이 입대를 하겠어? 꾸물거리긴 젠장··· 당장 나와서 천막을 제대로 세워놓지 못하겠어!》

그가 목에 피대를 세우고 어찌 닦아세우는지 인수뿐아니라 그를 몰아주던 아이들도 봉석의 호령에 움츠러들어 움직일줄 몰랐다.

《왜 말뚝처럼 서있는가? 인수는 군수처에 가서 삽을 얻어와!》

인수가 마지못해 뜨직뜨직 걸어가는것을 보고 봉석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인수, 뛰엿!》

인수는 죽을맛이였지만 뛰여가서 삽을 얻어오지 않을수 없었다. 모두 달라붙어 천막을 본모양대로 세웠을 때 봉석은 인수를 불러놓고 한참 닦아세우고나서 엄한 음성으로 말했다.

《동무는 래일아침 모든 동무들앞에서 자기잘못에 대하여 반성을 해야겠소. 오늘밤중으로 준비해서 먼저 나한테 와서 검열을 받으라구, 알았지?》

인수는 봉석이가 자기만 닦아세우는데 화가 나서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입이 붙었는가? 오겠소? 못오겠소?》

봉석은 다그어댔다.

그러나 인수는 어깨숨만 치쉴뿐 입을 열 잡도리가 아니다.

봉석은 그만 약이 올랐다.

《어디 그 배짱이 몇푼짜리나 되는지 두고보자. 오늘밤 나한테 오지 않고는 못배길걸!》

《실컷 보라지!》

인수는 김불어넣은 뽈처럼 탕 튀여나며 흥 하고 코소리를 내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