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2


 

제 3 장

2

 

아직 대원들이 단잠을 깨지 않은 이른새벽에 밖으로 나서신 장군님께서는 사령부앞의 성깃성깃한 이깔나무숲속을 천천히 거니시였다. 아이들을 부대로 데려왔으니만큼 믿음직한 사람으로 책임자를 한명 선발해야겠는데 어제밤부터 마음을 쓰시면서도 얼른 결심을 못내리시고 지금도 그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누가 좋겠는가?

대상이 아이들이라는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다보니 끌끌한 지휘관들을 수많이 두고서도 적임자를 고르기가 헐치 않으시였다. 그중에는 경위중대 기관총소대장 강민이도 들어있었다.

장군님의 생각은 강민이한테서 오래 머물렀다. 매사에 헌신적이고 성실하며 인간됨이 옹졸하지 않고 서글서글한 기관총소대장이였다. 게다가 그에게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로 불쌍하게 자란 쓰라린 체험이 있다.

(강민이면 어떨가? 아이들이란 대체로 옆에서 보살펴주는 사람을 본따기마련인데 강민이를 닮으면 괜찮지.)

그런데 강민은 기관총소대장이다. 장군님께서는 초보적으로 강민을 점찍어두기로 했으나 자기직무에 대한 우월감이 강한 그를 갑자기 다른데 옮기면 좋아할것 같지 않은 생각이 또다시 드시였다. 얼마 안있어 고요하던 부대안이 술렁거리기 시작하고 적구로 나갔던 통신원 문재식이가 급히 달려왔다. 행색이 말이 아니였다. 아래도리가 이슬에 푹 젖어버린 그는 팔소매로 얼굴의 땀을 가로씻고 헤덤비며 말했다.

《장군님, 후방밀영아이들이 어떻게 되였습니까? 돌아오는 길에 밀영에 들렸는데··· 아이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줄 알았던 그이께서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시였다.

《됐소, 됐어, 안심하오! 그애들은 동무가 떠난 사이에 사령부에서 데려왔소.》

《아, 그렇습니까?! 전 그런줄은 모르구 밀영이 온통 불탔기에···》

통신원은 막혔던 숨이 활 열린듯이 안도의 숨을 쉬였다.

《아니, 그런데 밀영이 불탔다는건 무슨 소리요?》

《누가 불을 질렀는지 여러채의 병실이 몽땅 불타버렸습니다.》

《그래?··· 알만하오.》

장군님께서는 사령부앞을 천천히 거닐다가 이전 후방밀영책임자였던 서진국이를 찾아나가시였다.

《진국동무, 우리가 아이들을 제때에 데려왔소. 금방 통신원이 보고왔는데 밀영이 전부 불타버렸다는거요. <토벌대>가 달려든것 같소.》

서진국은 대번 낯빛이 컴컴하게 질렸다. 아이들이 거기에 그냥 있었더라면 어떤 참변을 당할번 했는가고 생각하니 장군님께서도 가슴이 서늘해지시였다.

《장군님, 옳습니다. <토벌대>가 달려든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놈들이 후방밀영에 달려들 징조는 이미전부터 있었습니다.》

《뭐요? 그렇다면 왜 그걸 사령부에 보고하지 않았소?》

장군님께서는 백여명아이들의 생명과 관련되는 문제여서 엄하게 추궁하셨다.

서진국은 손을 뒤더수기에 가져다붙이며 난처한 기색을 지었다.

《사실은 그런게 아니라···》

《말하오.》

장군님께서는 간단히 스치고지나갈 일이 아니여서 서진국의 대답을 기다리시였다.

서진국은 하는수없이 그때 밀영사정을 사령부에 알리기 위해 강민이앞으로 도와달라는 편지를 송순이편에 보낸 일이며 사령부에 갔던 송순이 밀영사정을 보고드릴 형편이 못되여 그냥 돌아오게 된 경위를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서진국의 뒤늦은 보고를 듣고나서 강민이를 사령부로 불러오시였다.

《앉소.》

강민은 장군님의 근엄하신 표정을 흘끔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그이앞에 앉았다.

《강민동무, 한가지 물어보기요. 얼마전에 송순동무가 부대에 왔을 때 동무는 그가 왜 왔는지 알고있었소? 송순동무가 그때 중요한 일로 왔다가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돌아갔는데 그 일을 알지 못하오?》

그이의 말씀에 강민은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때 그는 송순이한테 자기의 생각을 숨김없이 이야기하고 송순이도 충분한 리해를 가지고 돌아갔기에 일단 그것으로 조용히 아퀴를 지은것으로 알고있은 문제가 이렇게 다시 상정될줄은 몰랐다.

《장군님, 그때 송순동무가 아무 보고도 안하고 돌아간것은··· 제가 개별적으로···》

강민이 급해맞아서 말을 더듬는것을 보고 장군님께서는 구태여 캐여묻지 않으시였다.

《그게 동무가 개별적으로 처리할 문제요? 후방밀영아이들과 관련된 일은 자그마한것도 나에게 직접 보고하라고 했는데 왜 중간에서 그런 행동을 하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소?》

강민은 눈길을 떨구고 거북하게 손을 마주비볐다. 자기로서는 일껏 잘하느라고 한 일이였는데 장군님의 꾸지람을 듣고보니 정신이 버쩍 들었다.

《동문 사령부에만 기관총을 걸어놓으면 만사가 무사할줄로 여기는것 같은데 그게 어디 기관총소대장다운 생각이요?》

《장군님, 제가 그만···》

강민이 뒤말을 잇지 못하고 떠듬거렸으나 사실상 이때 장군님의 심정은 한 전사가 느끼고있는 죄책감에 비할수없이 착잡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여태껏 강민이를 끔찍이 사랑해왔지만 혁명가로서 소유해야 할 중요한 그 무엇이 빠져있는것 같은 서운한감이 드신것이였다. 이러한 생각은 장군님으로 하여금 방금전만 하여도 고려중에 있던 문제에 대한 대답, 강민이를 위해서도 당분간 그에게 아이들을 맡기는것이 필요하겠다는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시게 했다.

《강민동무가 얼굴을 들지 못하는걸 보니 이젠 정신이 좀 든것 같구만.》

《예, 정말 제가 무엄한짓을 한것 같습니다.》

《그래, 두번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지. 사실은 내 오늘아침 동무한테 중요한 임무를 하나 맡기려던 참이였는데···》

장군님께서는 강민의 뉘우침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나서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장군님, 무슨 임무인지 저에게 맡겨주시기만 하면 꼭 수행해내겠습니다.》

강민은 그러지 않아도 엄청난 과오를 용서받은 몸인데다가 장군님의 안색을 살펴보니 대단히 어려운 임무를 두고 걱정하시는것 같아서 선뜻 대답하였다.

《다른게 아니라 동무도 아다싶이 지금 사령부에는 백여명의 아이들이 와있소. 그들을 장차 훌륭한 유격대원으로 키우자면 옆에서 돌봐주는 책임자가 한명 있어야겠는데 내 생각엔 동무가 적임자일것 같아서 그러오.》

강민은 눈앞이 아연해졌다.

장군님께서 중요한 임무라고 하시기에 무슨 전투와 관련된 임무인줄로만 알았다.

《그래 동무 의향은 어떻소?》

《사령관동지, 알겠습니다. 제 본신임무에 지장이 없도록 하면서 힘자라는껏 해보겠습니다.》

《내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요. 난 동무에게 그 일을 전문으로 맡기자는거요. 말하자면 동무의 본신임무요. 오늘부터 동무는 기관총소대장직무는 부소대장에게 넘기고 그 일을 맡도록 하시오.》

강민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며 뻣뻣이 굳어졌다. 처음에는 꿈을 꾸는것 같았지만 차츰 그것이 현실로 느껴지면서 잔등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내 말을 리해할만 하오?》

《저··· 알만합니다.》

대답은 간단했으나 얼굴에는 풀기가 없었다. 그는 지금 받아안은 임무도 임무이지만 그로 하여 자기가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것인가 하는데 보다 큰 관심이 있었다. 여태장군님께서 맡기시는 임무면 단 한번도 저울질해본적이 없이 무조건 수행해온 그가 기관총소대장직위에서 물러난다는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떳떳한 일이라고 할수 없었다.

《대답이 시원치 않은걸보니 의견이 있는게로구만.》

《아닙니다. 사령관동지.》

《그럼 돌아가보오. 아직 어리긴 하지만 봉석이가 동무 일을 도와주게 될거요.》

장군님께서 마감으로 들려주신 말씀에 강민은 지탱점을 잃어버린듯 기울어지는 몸을 가까스로 바로잡았다. 간고한 전투의 불길속에서 친근해진 소대원들과 헤여져 이제부터 애숭이나 다름없는 봉석이와 어울려돌아갈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사령부에서 나와 향방없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옮길 때에는 (내가 혹시 책벌이라도 받은게 아닌가?) 하는 의심쩍은 생각까지 들었다. 경위중대의 기관총소대장책임은 아무한테나 맡길수 없지만 아이들의 시중쯤은 송순이같은 녀대원도 넉근히 감당할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그의 마음속동요를 그처럼 막다른 골목에로 이끌어간것이였다. 어떤 전투에서나 부대의 기본화력을 담당해온 기관총소대장의 긍지와 영예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을만큼 컸었다.

강민은 도무지 발길이 어디에 놓이는지 의식하지 못하며 터벌터벌 소대로 돌아가다가 사령부가까이의 천막뒤에 아이들을 거느리고 앉아있는 자기 《방조자》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봉석이는 소년들속에 틀을 차리고 앉아서 어른행세를 하며 일장 훈시를 하고있었다. 소년들은 봉석의 이야기에 심취되여 숨도 제대로 쉬는것 같지 않았다. 이들은 자기또래인 나어린 유격대원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어제저녁부터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줄줄 따라다녔다. 봉석이를 좌상같이 한가운데 앉히고 겹겹이 둘러앉은걸 보아 오늘은 이야기판을 크게 벌리자는것 같았다.

마침 인수가 늦게야 그리로 달려와 봉석이곁에 다가가는것이 강민의 눈에 띄였다.

《비켜!》

인수는 형님이 오는데 눈치없이 자리도 안낸다는듯이 봉석이곁에 앉은 소년들을 한옆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제가 들어앉았다.

인수의 무례한 거동에 화가 난 소년들은 못마땅하게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거나말거나 인수는 봉석이의 턱밑에 바싹 다가앉았다. 군모에 단 붉은별이며 윤나게 닦아 번쩍거리는 혁띠고리며 새하얀 목달개를 해단 군복이며··· 인수는 봉석의 멋진 차림새를 세세히 뜯어보고 한숨지으면서 그가 무릎사이에 세운 장총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그러나 어느새 봉석이가 눈치채고 《오발해!》 하며 인수의 손을 탁 쳐버렸다. 총은 아예 얼씬 다치지도 못하게 하였다.

인수가 무안을 당하고 얼굴이 수수떡처럼 불깃해지자 봉석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 빙그레 웃으며 눙쳐주었다.

《왜, 한번 쏴보고싶은가?》

《···》

《총문세를 좀 알아? ··· 총에는말이지 13식, 얜주르, 99식, 강구식, 토퉁, 마레샹, 8련통, 외대배기, 쌍대배기, 뭐 많은데 내가 메고다니는 이 장총이 그중 낫소. 체코식도 괜찮기는 하지만 격발기덮개가 없어 먼지가 잘 끼는 결함이 있거든.》

인수는 봉석이가 한참 신이 나서 총자랑을 늘어놓을 때 딴 생각에 정신을 팔다가 그 말은 놓쳐버렸다. 우선 그는 봉석이와 마주앉고보니 자기또래인 이 유격대원을 어떻게 불렀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너나들이로 말을 주고받으면 건방지다고 할것 같고 그렇다고 《예, 예》 하자니 멋적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문채로 앉아있는데 촌바우같이 수더분하게 생긴 덕만이가 옆에서 물어보았다.

《유격대어른은 몇살입니까?》

봉석은 젖버듬해서 인차 대답하지 않고 기침을 하였다.

《그래 몇살이나 나보여?》

《글쎄, 벌써 입대한걸보면 나이 들어보이긴 한데···》

《여보, 열여섯살이요.》

《예―? 그럼 우리와 동갑이예요?》

덕만이는 희한한것이나 알아낸것처럼 가뜩이나 큰 눈이 황소눈처럼 둥그래졌다.

봉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젓하게 덕만의 손을 당겨잡았다.

《음, 손을 보니 고생을 많이 한 손이군··· 머슴을 살았다지? 좋아, 너같은 애들이 혁명을 해야 한다.》

《저, 모두 혁명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어떻게 하는건가요?》

《허, 어둡구만. 하긴 언제 배웠다고 그런걸 알겠니. 혁명이라는것은 말이지··· 너같은 피압박대중이 궐기해서 착취제도를 뒤집어엎고 무산계급이 정권을 쥐는것을 혁명이라구 하는데···》

태반의 소년들은 무슨 소린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눈만 껌벅거렸다. 덕만이도 봉석이가 유식한 말을 류창하게 내리엮는바람에 희한해하였다.

봉석은 덕만의 휘둥그래진 눈을 보고 큰소리로 웃었다.

《눈이 큰걸보니 동문 겁이 좀 있겠다?》

이것은 김주현련대장이 이따금 던지는 롱말투를 흉내내는것이였다.

덕만이가 순박한 웃음을 짓자 봉석은 그 옆에 시뿌둥해 앉아있는 인수의 손을 만져보았다.

《이 손은 고생을 덜해본 손이군. 무슨 출신인가? 아버지가 뿌르죠안가?》

인수는 봉석이가 자기를 같은또래로 여기기는커녕 손아래동생이라도 아주 어린동생 대하듯 하며 잔뜩 틀을 차리는것을 보고 그만 발끈 약이 올랐다. 그래서 조심성을 잃어버리고 배짱대로 내뱉고말았다.

《무어가 어째요? 뿌르죠아? 우리 아버지는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쳤소.》

인수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부르짖으며 사람을 모욕하지 말라고 봉석의 코앞에 주먹까지 흔들어보였다. 다른 아이들은 엄두도 못낼 대담하고 불손한 행위였다. 그러나 봉석은 조금도 낯색을 달리하지 않고 인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 아, 웃느라고 한 말인데 뭘 이래? 너의 아버지가 혁명을 했다는걸 내가 왜 모르겠어. 그래 총을 주면 싸울만 한가?》

《싸우지 않고! 난 장군님앞에서 일본천황도 잡아올수 있다고 말했소!》

인수는 또 천황놈을 입에 올리며 만만치 않게 맞섰다.

《괜찮아. 허지만 이봐, 천황놈이나 잡아온다고 일이 다 되는것은 아니야. 우린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구두 혁명을 계속해야 하거든.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간에는 불상용적인 모순이 있는데 이 불상용적인 모순이라는것은···》

봉석은 점점 더 틀을 차리며 옆에서 도저히 알아듣지 못할 말을 그냥 늘어놓았다.

《저, 우린 아직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어떻게 벌써 입대하여 총을 메게 되였는지 그 이야기나 좀 들려주십시오.》

옆에서 한 아이가 딴곬으로 뻗어가는 봉석의 이야기를 바로잡아주었다.

봉석은 둘러앉은 아이들의 표정을 한번 빙 둘러보더니 알만 하다는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올방자를 고쳐틀고 어투도 바꾸었다.

《너희들 인제 보니 좋지 않다. 응? 내가 무슨 수를 써서 입대했는가 하는걸 알아내자는 모양인데 그렇게 생각해선 안돼. 난 정식으로 입대했다. 내 혁명경력은 한 5년 된다.》

《5년이요?》

깜짝 놀라며 모두들 봉석이를 쳐다보았다.

멀찌감치 숨어서서 봉석의 말을 엿듣던 강민은 방금전의 울적하던 기분을 잊고 그만 웃음이 나오는것을 겨우 참았다. 엊그제 갓 군복을 입은 녀석이 5년전 장군님의 외투자락에 싸여 엉엉 울며 근거지로 들어온 그때부터 버젓이 혁명경력에 넣고있는것이다.

봉석은 아이들의 들뜬 기분에 맞추어 어깨를 살리며 헛기침을 하였다.

《그럼, 하지만 전투경력은 별로 많지 못해. 입대는 금년초봄에 했으니까.》

그는 솔직하고 겸손한체 하였지만 사실은 전투에도 여러번 참가했다는것을 은근히 암시했다.

《그러니 전투도 해봤구만요? 대단한데요. 이번엔 그 이야길 들려주어요.》

호기심이 우쩍 동한 소년들이 점점 자리를 조이며 다가앉았다.

《너희들 성화두 여간 아니구나 응? 정 조르니까 말하겠는데 사실 첫 전투는 눈감고 총 세방 쏜것밖에 없다. 네방째 쏘자는데 장군님께서 <얘 봉석아, 눈을 떠라.> 하시며 곁으로 오시더니 총쏘는 자세가 틀렸다고 바로잡아주시더구나. 그래서 네방째는 눈을 뜨고 쐈지만 맞히지는 못했어. 그땐 벌써 내앞에 얼찐거리던 적들이 다 뒤여져서 쏠놈이 없었거든. 너희들 알아두어라. 우리 장군님께서 직접 지휘하시는 전투는 지지하게 오래 끄는 법이 없어. 우물거리다간 총두 몇방 못쏴. 하지만 나도 두번째 전투부터는 적을 잡기 시작했다. 그 전투에서 두놈은 쏘고 한놈은 총창으로 찔렀는데.》

《예? 찔러까지 봤습니까?》

관식이란 애가 눈이 동그래지며 놀라운 소리를 내지르자 봉석은 그쯤한건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심상하게 대답했다.

《부대가 반돌격해나갈 때 같이 뛰여나가면서 한놈의 배통을 총창으로 내찔렀지. 그런데 제길, 그놈이 총창을 꽉 거머쥐고 어디 놔줘야 총창을 뽑지 않겠어. 놈의 배를 내차면서 총창을 뽑자니까 그자가 어찌 용을 쓰는지 헛참, 난 총탁을 거머잡은채 허궁 들려 그놈의 뒤에 가서 철썩 떨어졌단 말이야. 그래도 그놈은 총창을 움켜쥔채 뛰여가는데. 참 왜놈들이 독종은 독종이야.》

《그럼 총창은요?》

이때까지 잠자코 듣기만 하던 인수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끼여들었다.

《총창이야 물론 따라가서 그놈을 차굴리구 도로 찾았지. 이것이 그때 그놈의 머리너머로 날아가 떨어지면서 입은 상처자리야.》

봉석은 눈섭우에 생긴 콩알만 한 흠집을 손가락으로 툭툭 쳐보였다.

인수는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런 상처라면 돈을 주고 사고라도싶었다. 오각별처럼 이마에 붙이고다니는 봉석의 상처자리야말로 세상에 대고 웨쳐댈만 한 용맹의 상징으로 보였다.

인수는 봉석이와 동격으로 상대하고싶던 좀전의 태도를 어느새 버리고 한풀 기가 죽어 그를 형님으로 괴여올렸다.

《봉석형님!》

《형님은 또 무슨 형님인가. 난 그런 말은 좋아 안해!》

《그럼 아저씨!》

《혁명을 하겠다는 사람이 형님, 아저씨가 뭐야? 그저 동지라고 하란 말이야.》

인수는 당장 말투를 고쳤다.

《봉석동지, 유격대를 따라다니기가 어떻습니까?》

봉석은 그 물음에는 아주 솔직치 못한 대답을 했다. 아직도 그에게는 유격대생활이 힘에 부칠 때가 많았지만 그런 티는 조금도 안내고 계란껍질같이 매끈한 턱을 쓸어만졌다.

《나한테는 그저 우리 유격대생활이 제일이야. 총을 척 메구 행군길에 나서면 무서운것이 없지. 세상이 녹두알만 하게 보인단 말이야. 거기에다 왜놈까지 몇놈 잡는 날이면 기분이 어떤줄 알아? 이렇지 이래!》

그는 손으로 자기의 온몸이 하늘로 둥둥 떠오르는 시늉을 했다.

《먹기도 잘하겠지요?》

봉석은 그 질문에 대해서도 교양자의 립장에서 한 측면만 강조했다.

《아무렴, 두말하면 잔말이지. 놈들의 수송대나 치면 어떤지 알아? 통졸임만 해도 연어통졸임, 송어통졸임, 소고기통졸임, 배통졸임··· 동무넨 아마 그런걸 구경도 못했을거야.》

인수는 눈앞에 화려하게 펼쳐지는 유격대생활에 어지럼증이 나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봉석동지, 이거 좀 도와주십시오. 봉석동지가 입대한걸 보니까 나도 됨직한데···》

인수는 드디여 통사정하는데까지 이르렀다.

《무어?》

봉석이가 갑자기 뻑뻑하게 나왔다.

《무얼보고 너같은걸 입대시켜?》

《그럼 어떻게 하면 빨리 입대할수 있는지 경험을 들려주십시오.》

《음, 그렇다면 좀 다르지.》

봉석의 태도는 좀 누그러졌다.

《난 5년전에 왜놈들의 <토벌>에 어머니를 잃구 눈보라치는 겨울날 장군님의 외투자락에 싸여 근거지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그전에 유격대에서 전사했다. 난 근거지로 들어간 그때부터 장군님의 품에서 자랐지. 식사도 같이하고 잘 때도 같이 누워자군 했어. 추운날이면 장군님께서 우릴 어떻게 재워주셨는지 아니? 제일 어린 나와 전령병들을 두팔에 눕히고 꼭 품어서 재워주군 하셨다. 그래서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우릴 병아리라고 했어.

내가 장군님품에서 떨어져있은 때란 북만원정때뿐이다. 그런데 한가지 옹색한것이 있더구나. 총이 없으니말이야. 부대에 총없이 빈몸으로 따라다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였거든. 그래서 장군님께 나한테도 총을 달라고 말씀드렸지. 그랬더니 장군님께서는 <총이라는게 뭐 아무에게나 달라는 사람한테 막 쥐여주는 부지깽인줄 아느냐.> 하시면서 안된다는거야. 그래두 난 장군님 팔소매를 놓지 않았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시더니 <네 결심이 정 그렇다면 좋다. 한가지 약속할수 있느냐? 매일 나와 같이 신새벽에 일어날수 있겠느냐?> 하시더구나. 그래서 무턱대구 일어날수 있다구 했지.

다음날부터 장군님께서는 대원들이 기상하기 한시간전에 아무도 모르게 나한테 총다루는 법을 배워주셨다.》

숨죽이고 듣고있던 관식이가 물었다.

《제때에 꽤 일어났나요?》

《말 말라. 새벽잠이 얼마나 고소하냐. 급하더구나. 그런데 내가 일어나기가 딱 싫어서 눈을 뜨고도 옴지락거리며 누워있을 때면 장군님께서 <네 결심이 고작 이것이냐?> 하시면서 일으켜가지고 나가시군 했다.

그렇게 한 보름 가르쳐주고 훈련을 주시더니 하루는 지휘관들이 여럿 있는데서 <우리 봉석이가 총을 제법 다룬다는데 같이 한번 보지 않겠소.> 하면서 나한테 총을 한자루 주시였다. 한번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뜯었다 맞추어보라는거야. 그래서 모자를 코밑까지 푹 내려쓰고 알겠니? 안보고말이다. 번개같이 분해결합을 해보였다. 그랬더니 지휘관들이 <저 봉석이가 어느새 벌써 저렇게 총을 손에 익혔소?> 하고 입을 딱 벌리며 나를 입대시키자고 저마다 장군님께 말씀올렸다.》

봉석은 이야기를 마치고 너희들도 그렇게 할수 있는가 하는듯이 눈을 깜박거리고있는 소년들을 둘러보았다.

강민은 아이들을 제법 그럴듯 하게 다루는 봉석의 솜씨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동네송아지는 커도 송아지라고 그는 여태껏 봉석이를 어리게만 보아왔다.

그러나 지금 같은또래소년들속에 앉아있는 그를 보니 생각을 달리하게 되였다.

강민은 등뒤에서 자박자박 다가오는 녀자의 발자국소리를 듣고서야 아이들과 꼭같이 시간가는줄 모르고 봉석의 말에 심취했던 자신을 발견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송순이가 옆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강민동지, 방금 전달장동무한테서 들었어요. 전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마음이 든든해져요.》

강민은 송순이가 무슨 소리를 듣고와서 살뜰하게 구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과연 순박한 처녀였다. 기관총소대장이 아이들의 시중을 들며 얼굴도 똑바로 쳐들수 없게 된 일이 그리도 반갑고 기쁘게 생각된단 말인가? 강민은 그래도 송순이만은 자기의 마음을 얼마간 리해해주리라고 믿었다. 이러나저러나 자기가 부대에로 데리고와서 입대시켜준 녀자가 아닌가. 그러나 남의 곪아가는 속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송순이를 보니 그와 남다른 인연이 있다는것이 허망하게 생각되였다.

《강민동지, 왜 그래요? 이젠 아이들의 일과생활도 조직해주셔야지요.》

《일과? 그걸 내게 묻는거요?》

《네?··· 오늘부터 강민동지가 우리 책임자가 아닙니까.》

(책임자?···)

강민은 어차피 책임자구실을 해야 할 자기라는것을 깨달았으나 송순이가 그 말을 집게로 집듯이 꼭 찍어서 상기시키는데는 은근히 부아가 났다. 그래서 언짢은 말을 한마디 하려는데 기관총소대의 1분대장이 달려왔다.

강민은 오늘아침까지만 해도 수하에 있던 분대장을 보기가 게면쩍었다. 자기들이 믿고 의지하던 소대장이 아이들의 대장노릇을 하게 되였다는걸 알면 어떻게 생각할텐가.

《소대장동지, 상학을 몇시부터 하겠습니까?》

강민은 별로 오늘따라 크게 울리는것 같은 분대장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군사상학을 하겠다고 식전에 일러둔 일이 생각나서 얼굴을 돌려버렸다.

《가서 부소대장동무의 지시를 받으시오. 난 오늘부터 동무네 소대장이 아니요.》

《소대장동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분대장은 전에없이 침울한 기색인 강민의 얼굴을 의아쩍게 바라보았다. 강민은 그가 그냥 꿋꿋이 서있는줄 알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대장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는것을 깨달은듯이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슬그머니 돌아서서 가버렸다.

《강민동지, 왜 성난것처럼 그러세요?》

그때까지 옆에 잠자코 지켜서있던 송순이가 물었다.

《가만, 이거 말 시키지 마오.》

강민은 두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잡았다.

《아니, 어디가 편치 않으세요?》

《이런 정말, 제발 날 좀 가만히 두오. 난 아무래도 책벌을 받은것 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