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1


 

제 3 장

1

 

검푸르게 동이 튼 하늘로 숲종다리가 날아오르고 맞은편 언덕에서는 새끼 밴 엄지노루가 연한 싸리잎사귀를 뜯어먹다 말고 사방을 경계하며 귀를 쭝긋거렸다.

로상권은 붉은머리청더구리 한마리가 고목에 꼬리를 붙이고 뾰족한 부리로 연방 나무껍질을 똑똑 두드리며 아침요기하는 모양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주위의 정경에 취한듯이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솔새는 《쮸리쮸리》 참하게 울고 입이 걸어서 한두마리만 끼여들어도 산판을 들었다놓는 찍박구리는 《삐히요, 삐히요》 하고 신갈나무숲에서 푸드득거리며 소란을 피웠다. 어디선가는 할머니가 앉아 물레질이라도 하듯이 《찔궁찔궁》 물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통히 할미새와 생김새가 비슷하면서도 꼬리를 옆으로 흔들어대는 물레새의 탁한 울음소리다. 쏵새는 수탉의 변두처럼 머리에 위엄있게 달린 불그레한 깃털을 부채살모양으로 접었다폈다하며 이따금 《궁궁쏴-》 하는데 그것은 마치 북을 메고앉아 숲속의 합창에 장단을 치는 장고수와도 같았다.

《저 날짐승들까지 아침부터 환영곡을 울리는걸 보니 귀한 손님들이 온다는걸 아는 모양이군.》

로상권은 혼자소리로 중얼거리고 듬뿍 짊어지고 온 가래나무열매와 잎사귀를 개울가에 내려놓았다. 상류에서 급하게 흘러오는 내물이 그앞에 와서 넓은 소를 이루었는데 물부추가 성하여 고기들이 꽤 꾈만 한 곳이였다. 수심은 가량할수 없지만 잔고기들이 가끔 자맥질하며 쩜벙 뛰여오르는것을 보면 헛물을 켤것 같지는 않았다.

로상권은 물고기잡이에는 어지간히 솜씨가 있어 너럭바위에 앉아 가래나무열매와 잎사귀를 돌로 갈아서는 고기밥주듯이 물우에 휘휘 뿌렸다. 얼마 안있어 가래물을 먹고 얼뜬해진 버들치가 한두놈 날씬한 몸을 뒤집으며 물우에 뜨고 그뒤로는 아롱무늬로 치장한 산천어가 입을 벌리며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럼 그렇겠지-》

그만하면 마수거리가 괜찮다고 흐뭇이 미소를 지으며 군복을 훌훌 벗어붙이는 로상권의 앞으로 비서처의 정인갑이 다가서면서 만류했다.

《상권동지, 가만계십시오. 이제는 그럴 나이가 아닙니다.》

상권은 물속에 집어넣으면 개헤염밖에 치지 못하는 정인갑이한테 맡겼다간 다 잡아놓은 고기만 놓칠것 같아서 어느새 소에 첨벙 뛰여들어 이리저리 몸을 뻗으며 소리쳐댔다.

《인갑동무, 뭘 꾸물꾸물하오?》

얼친 버들치 두마리를 량손에 움켜잡은 로상권은 바께쯔를 빨리 가져다대라고 독촉하였다. 버들치는 요동을 못쓰고 손가락에 아가미를 꿰였는데 승산없이 꼬리를 저을 때마다 촘촘히 박힌 고기비늘이 번쩍거렸다.

로상권은 물가에 들이대는 바께쯔에 첫 로획물을 던져넣고는 아이들처럼 좋아하며 또다시 깊은 곳으로 돌아섰다. 정인갑은 그의 지숙한 나이며 누긋한 성미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날랜 행동에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도대체 오늘 사령부에 누가 오길래 기분이 둥 떠서 이러십니까?》

《이제 조금만 있으면 다 알게 돼.》

어제 저녁 장군님께서는 로상권이를 불러 래일 귀한 손님들이 오는데 한개 중대분의 식사를 특별히 잘 준비해달라는 부탁을 하시였다.

무슨 손님이 한꺼번에 그리도 많이 들이닥치는가 하는것은 로상권이자신도 딱히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 친히 말씀이 계셨으니만큼 준비를 소홀히 할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로상권은 아침식사전에 각 중대 사무장들, 특히 료리방면에서 솜씨가 있는 대원들을 전부 불러다가 가래나무열매와 잎사귀를 따게 했다. 물고기라도 잡아서 식탁을 허술치 않게 차리고싶었던것이다.

그들은 가래나무물을 써서 백여마리의 버들치와 산천어를 건져냈다. 잠간사이에 횡재한 이들이 개울가의 서덜에 물고기를 쏟아놓고 밸을 따고 비늘을 치고 하는 세말작업을 할 때 정인갑은 다시금 호기심이 동해 사령부에 도대체 누가 오는가고 로상권이쪽에 지꿎게 캐여물었다.

로상권은 자기도 똑똑히 알지 못하는 소리를 하기가 싫어 세상사를 너무 시시콜콜히 알면 일찌기 늙는다고 슬쩍 대답을 굼때고말았다. 그러자 정인갑은 무슨 비밀이 그리 많은가고 빈정거리면서 흥심없이 손을 놀리다가 물고기대가리처리문제를 물어보았다.

《대가리는 잘라버려야 하지 않을가요?》

《모르는소리, <어두육미>라는 말을 못들었소?》

로상권은 깨끗이 씻어낸 물고기를 싸리광주리에 담으며 유식하게 문자까지 섞어서 대답했다. 물고기는 대가리쪽이 맛이 있고 짐승의 고기는 꼬리쪽이 맛이 좋다는 소리였다.

이렇게 하여 대가리 없는 물고기료리를 내놓을번 한 정인갑의 실책을 미연에 방지하고 숙영지로 돌아오자 로상권은 작식대원들을 전부 세워놓고 이제부터 한개 중대분의 저녁식사를 잘 준비해야겠는데 솜씨를 보이는 동무들에게는 생각이 따로있다고 언명했다. 작식대원들은 로상권이 무슨 대단한 예비주머니라도 차고있는줄 알고 더욱 성수가 나서 분주스럽게 돌아갔다. 한쪽에서는 만두를 빚고 다른쪽에서는 물고기튀기를 만든다고 풀가마 끓듯 하며 지지고 볶는 부침개질냄새가 온 골안에 진동하였다.

숙영지안의 대원들은 여느때없이 골짜기에 가득 떠도는 류다른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며 오늘이 무슨 날인가고 작식터쪽을 흘금흘금 넘겨다보았다.

《탄내가 난다. 귀한 손님들에게 탄 음식을 먹이겠소?》

로상권은 잔소리 많은 시어미처럼 훈계도 하고 눈썰미가 없다고 동원된 사람들을 나무라기도 하면서 빨리 야외식당도 하나 지으라고 몰아세웠다. 그런 다음 제가 먼저 웃통을 벗어던지고 강대나무를 찍어다가 식탁은 물론 통나무걸상까지 주런이 만들어놓았다.

로상권이 이처럼 왕성한 정력으로 가래톳이 서도록 뛰여다니는것을 보고 대원들은 우리 《도감》한테 저런 전개력이 있는줄은 여태 몰랐다고 혀를 차며 감탄해마지 않았다. 손님맞을 준비가 되자 로상권은 천막안으로 들어가 하루전에 면도한 주걱턱에 비누칠을 잔뜩 하고는 수염그루터기까지 반반하게 밀어버렸다. 귀한 나그네가 자그만치 한개 중대나 오는 날 접대책임자격인 자기의 얼굴에 수염 한대라도 있으면 모든 부대의 거울로 되고있는 주력부대가 체모를 깎인다고 생각한것이다. 군수처의 다른 성원들까지 그의 요구대로 말끔히 면도하여 외모가 흠잡을데없이 되였으나 어째선지 기다리는 손님들은 인차 와주지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 져갈무렵 일전에 어디론가 떠나갔던 경위중대의 한 기관총분대장이 후방밀영책임자 서진국이를 데리고 숙영지에 나타났다. 손님을 기다리기에 어지간히 지쳐버린 로상권은 분대장의 인사를 건숭 받으며 맥풀린 소리로 물었다.

《동문 기관총을 세정이나 메고 어깨를 들썽거리며 떠나더니 어디 가서 뭘 하다가 밀영책임자를 호송해왔소?》

분대장은 그 말에 벙글거리며 대답했다.

《어린 나그네들을 모셔왔습지요.》

로상권이 말귀를 미처 알아듣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는데 때마침 장군님께서군수처쪽으로 다가오시였다.

기관총분대장은 군복깃을 바로잡으며 그이앞으로 달려갔다.

《사령관동지, 명령대로 기관총분대는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수고했소. 그래 애들이 왔소?》

《예, 전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장군님께서 환하게 웃으며 사방을 둘러보셨다.

《저, 그런데 곧장 들어와도 일없겠는지 해서 숙영지밖에 대기시키고··· 책임자동무만 먼저 데리고왔습니다.》

《원, 제집에 오는데 대기는 무슨 대기요?》

장군님께서는 어서 아이들을 데려오라고 기관총분대장을 보내고 밀영책임자의 인사를 받으며 따뜻이 손을 잡아주시였다. 밀영에 파견된 동무들이 그동안 중한 일을 맡고 수고가 많았다고 치하의 말씀도 해주시였다. 그러고는 기관총분대장이 달려간쪽을 바라보며 숙영지안을 흥분하여 거니시였다. 무슨 일인지 갈피를 못잡고 어정쩡해 서있던 로상권이 장군님곁으로 다가갔다.

장군님께서는 얼굴에 희색이 만면하여 그를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상권동무, 이젠 인차 식사를 시키도록 합시다. 좀전에 돌아보니 아주 잘 차렸더구만, 수고가 많았습니다.》

로상권은 어안이 벙벙해서 서있었다.

《장군님, 그 식사야···》

《왜 그럽니까?》

《저 그건··· 귀한 손님들이 온다기에···》

장군님께서는 로상권의 눈이 둥그래지는것을 보고 크게 웃으시였다.

《이거 상권동무가 내 말을 잘못 들었구만. 난 구태여 긴 설명을 안해도 동무가 알아듣겠거니 했더니··· 상권동무, 오늘 아이들이, 밀영에 가있던 우리 아이들이 사령부로 옵니다. 손님이면 그 이상 귀한 손님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장군님의 음성은 기쁨에 젖어 시원하게 울렸다.

《아, 그런걸!···》

로상권은 장군님의 후더운 마음에 코마루가 찡했으나 왜선지 한끝으로는 손맥이 풀리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밀영아이들이나 맞아들이는걸 가지고 큰일난것처럼 중대사무장들을 전부 발동시키며 소동을 피운 일이 허거프게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러나 장군님께서 너무도 기뻐하시므로 내색은 못하고 어줍게 두손만 엇바꿔쥐였다.

이럴 때 숙영지 한끝에서 챙챙한 목소리가 산울림하여 크게 울려왔다.

《장군님!》

《장군님-!》

그것은 수십, 아니 백명도 넘는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합쳐진 울음섞인 환성의 메아리였다.

《왔군, 왔소! 우리 아이들이 왔소!》

장군님께서 아이들의 환성이 들려오는 언덕아래로 내려서며 마중가시였다.

로상권이 말없이 서있다가 허둥지둥 그이뒤를 따라갔을 때, 벌써 그때는 숱한 어린이들이 장군님을 겹겹히 에워싸고 군복자락에 매달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웃는 아이, 우는 아이, 껑충껑충 뛰는 아이, 동무들의 어깨를 잡고 발돋움하는 아이··· 장군님께서는 한꺼번에 와 밀려온 아이들을 어떻게 해주셨으면 좋을지 몰라 이리저리 손을 내밀어 머리도 쓸어보고 팔목도 쥐여보고 얼굴색도 살펴보며 만면에 더욱 환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주력부대성원들이 파견되여 돌봐준 후방밀영들에서 데려온 백여명집단의 소년들이였다.

아이들은 얼굴생김이 다른것처럼 옷차림도 각양각색이였다. 지난해 봄 장군님께서 마안산에서 친히 데리고 떠나신 후방밀영아이들의 입성은 좀 나은편이였으나 최근 장백일대에서 유격대를 찾아온 소년들은 허름한 돌찌 아니면 토스레를 몸에 걸치여 행색이 초라하고 주접이 들어보였다.

온 산판이 들썩하게 떠들어대는 가운데 주위의 대원들과 지휘관들까지 뛰여들어 아이들속에서는 별 말투가 다 튀여나왔다. 억양이 센 함경도사투리와 텁텁한 평안도사투리, 갑산, 후창 사투리가 겨끔내기로 울리고 짤막짤막한 소식과 인사말들이 끝없이 오갔다.

장군님께서는 이런 혼잡속에 낯이 설어 자신께로 선뜻 달려오지 못하는 소년들앞으로 다가서시였다.

《음, 너희들이 장백땅에서 제발로 유격대를 찾아온 애들이로구나.》

그이께서 그중 가까이 있는 한 소년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였다.

《이름이 뭐지?》

《차인수예요.》

《몇살이냐?》

《열다섯살입니다.》

소년은 오똑한 코마루며 꼭 다문 입모습때문인지 어딘가 당돌하면서도 고집스러울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집에는 누가 있느냐?》

《아버지는 원쑤놈들 손에 죽고 어머니 혼자 있습니다.》

소년은 목에 피줄이 돋아나게 쨋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어머니가 홀로 계시는데 유격댈 찾아왔단 말이지. 어머님이 가라고 승낙을 하시더냐?》

《···》

인수가 갑자기 우물쭈물하는것을 보고 서진국소대장이 뭘 좀 들은 소리가 있는지 빙글빙글 웃더니 대신 말씀드렸다.

《처음엔 못가게 해서 그애는 젖은 돌찌를 입구 유격대를 따라왔답니다. 그래서 <젖은 돌찌>라구 별명까지 붙었다고 합니다.》

《별명이 <젖은 돌찌>라··· 그런데 애야, 어떻게 되여 젖은 돌찌를 입구 왔느냐?》 장군님께서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그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인수는 올곧지 않게 생긴 눈을 깜박거리며 서진국이쪽을 바라보았다. 장군님앞에서 촌스러운 이야기를 꺼내기가 부끄러워 이번에도 서진국의 신세를 져보자는 눈치같았다. 사실 인수는 동네사람들이 장군님을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하늘이 낸분이시라고 하던 말이 생각나서 아무 말이나 망탕하게 되지 않았다.

서진국은 인수의 심중을 헤아리고 어려워말고 어서 말씀드리라는 뜻으로 눈짓을 해보였다. 그래도 인수는 눈알만 또릿또릿 굴리며 얼마간 머뭇거리다가 말씀올렸다.

《우리 마을에 유격대가 왔을 때 마을형님들이 모두 입대하겠다고 따라나서는걸 보구 저도 따라갈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눈치를 챈 어머니가 절 붙잡아두려구 하나밖에 없는 돌찌를 빨겠다고 벗으라구 했어요.》

《저런···》

장군님께서 그럴상싶게 구수히 엮어대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시였다.

《하는수없이 전 돌찌를 벗어주고 누데기를 쓰구앉아 창구멍으로 바깥만 내다보고있었습니다. 빨래줄에 걸어놓은 돌찌에서는 물이 아직 뚝뚝 떨어지는데 유격대는 마을을 방금 떠나려고 했습니다. 전 밖으로 뛰여나가 젖은 돌찌를 입구 유격대에 가겠다고 어머니에게 졸랐어요. 그랬더니 어머닌 절 한참 바라보시다가 <네 원이 정 그렇거든 가거라. 갈바엔 장부답게 잘 싸워 아버지원쑤를 갚아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전 물이 흐르는 돌찌를 입구···》

장군님께서는 인수를 장하게 바라보며 돌찌를 한참 만져보시였다.

《그렇단 말이지··· 너의 어머니는 참말로 훌륭한 어머니시구나. 그런데 너 정말 싸울 자신이 있어서 유격대를 따라왔느냐?》

그이께서는 몇마디의 이야기로 인수한테 애착을 느끼셨고 인수도 이젠 거침없이 곧잘 엉뚱한 소리를 했다.

《예, 총만 주면 전 일본천황놈도 가서 잡아오겠습니다!》

(녀석, 하는 소릴 보지···)

장군님께서는 인수의 큰소리에 그만 실소를 하시였다.

《인수가 일본천황을 꽤 잡아올수 있을가?》

인수는 장군님께서 자기를 너무 어리게 보신다고 생각해선지 또 한마디 희떠운 소리를 했다.

《장군님, 나이가 혁명을 합니까?》

《허, 이것 봐라?》

《왜놈들은 저의 아버지가 유격대를 도왔다고 장작무지에 올려놓고 불태워죽였습니다. 저는 원쑤를 갚겠습니다!》

인수는 어느사이 어려움도 잊고 장군님 옷자락을 부여잡으며 부르짖었다. 장군님께서는 소년의 피맺힌 말에 그를 꼭 그러안으며 머리를 쓸어주시였다.

《음, 용타···》

그이께서는 인수의 《젖은 돌찌》에 깃든 눈물겨운 사연을 듣고나서 다시금 옆에 서있는 소년을 바라보시였다.

《너는 이름이 뭐지?》

《조덕만입니다.》

《몇살이냐?》

《저는 열여섯살입니다.》

《집에는 누가 있느냐?》

덕만이는 주밋거리며 총이 나간 짚신끝만 내려다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애옥살이에 치운듯 한 그애의 거무트름한 얼굴과 더벅머리, 실밥이 너덜거리는 적삼자락을 내려다보시다가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크고 거치른 손을 만져보시였다.

《보아하니, 너도 고생을 많이 했구나.》

덕만의 터실터실한 손을 그이께서 오래 들여다보시는것을 보고 이번에도 서진국소대장이 소년의 래력을 간단히 말씀드렸다.

《그애는 집도 부모도 없는 고압니다. 열두살때부터 12도구에 있는 지주집에서 머슴을 살았습니다.》

《음···》

최근 장백일대에서 찾아온 소년들도 태반이 준오처럼 혁명가유자녀들이였다. 덕만이처럼 어려서 부모를 잃었거나 원쑤들의 《토벌》만행에 식구를 빼앗긴 고아들도 있었다. 송순의 말을 들어보면 아이들이 밀영으로 찾아온 경로도 각이하다고 했다. 마을에 들린 유격대원들에게 떼를 쓰며 매달려온 소년들도 있고 혁명군을 찾아 여럿이 산속에서 헤매다가 련락원을 만나 묻어들어온 아이들도 있으며 혁명군과 적들이 맞붙어 싸우는것을 멀찌기서 지켜보다가 전장에서 철수하는 부대를 뒤따라온 축들도 있었다. 나이는 대체로 열대여섯살이고 관식이처럼 열세살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도 몇명 있었다.

장군님께서 어린 나이에 온갖 세상풍파를 겪고 찾아온 소년들과 얼굴을 익히며 자리를 뜨지 못하고계실 때 준오가 언덕받이를 내리뛰며 달려왔다. 동생을 잃고 천막안에 꾹 박혀있다가 제또래동무들이 수태 왔다는 말을 듣고 뛰여오는 길이였다.

그는 풀뿌리에 걸채여 넘어질번 하면서 달려오다가 정작 아이들의 가까이에 와서는 발목을 잡힌듯 우뚝 멈춰섰다. 원쑤놈들의 총칼에 동무들을 전부 잃고 며칠전에는 불쌍한 순애마저 잃어버린 준오였다. 말뚝처럼 못박혀 장군님과 낯선 아이들을 번갈아보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장군님께서 혈육을 품어주듯 그들의 머리를 쓸어주며 무언가 따뜻이 물어주시는 모습을 보고 섰노라니 죽은 동무들생각이 울컥 떠올랐던것이다. 그가 불탄 마을에 동무들을 묻어주고 구사일생으로 부대에 업혀온 날 장군님께서는 바로 지금처럼 원쑤놈들의 손에 죽은 아이들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시였다. 그때 준오는 너무도 큰 슬픔에 가슴이 터져와서 어떻게 대답을 드렸던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장군님의 안광에 번쩍이던 노기만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있었다. 간밤에도 장군님께서는 무슨 아픈 생각이 드시였는지 그를 또다시 조용히 불러앉히고 두해동안이나 집없이 떠돌아다닌 일을 물어보시였다.

준오는 목이 메여 처음에는 한마디씩 묻는 말에만 울먹이며 대답하다가 자기도 모르는사이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슬픈 이야기를 죄다 말씀드렸다. 지친 몸을 일으킬수 없어 하루쯤 누워 앓고싶을적에도 순애를 먹여살리려고 이를 악물고 공사판으로 나가던 일도 말씀올리고 굶은 순애가 오빠 몰래 밤중에 혼자 나가 선개암을 따먹던 일도 눈물을 머금고 이야기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때 순애생각이 나선지 이마에 손을 짚고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였다.

그러던 장군님께서 지금은 웃고 떠드는 아이들속에 둘러싸여 만면에 기쁨의 미소를 짓고계시지 않는가.

(우리 순애도 살아있었으면···)

준오는 장군님의 군복자락에 볼을 가져다대는 소년들과 그들뒤에 만시름을 놓고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지켜서있는 녀대원을 넋없이 바라보았다. 녀대원은 아이들의 친누나와도 같이 이따금 어린 소년들을 붙잡아놓고 옷매무시를 고쳐주는것이였는데 준오와 무심중 눈길이 마주치고는 장군님께 뭐라고 소곤소곤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그때에야 아이들에게로 다가오지 못하고 서있는 준오쪽을 돌아보시였다.

《준오야, 왜 거기 서있기만 하느냐? 어서 이리로 오너라. 새 동무들이 많이 생겼는데 인사를 해야지.》

장군님께서는 준오가 터벌터벌 가까이로 다가오자 그를 동무들한테로 떠밀어주셨다.

준오는 눈물이 그렁하여 몇걸음 가다가 멈춰서고 빙 둘러선 아이들은 장군님께서 친히 소개해주시는 얼굴이 갱핏한 소년을 호기심을 가지고 뜯어보았다. 아직은 낯이 설어 무슨 말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량켠 다 서로 바라만 보고있을 때 송순이가 준오옆에 다가왔다. 그는 슬픔과 수난의 흔적으로 그늘진 준오의 창백한 얼굴을 측은히 쳐다보다가 손을 꼭 잡아주었다.

《준오야, 우린 사령부로 오면서 벌써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단다. 그러니 서먹서먹해할건 조금도 없어.》

이윽고 로상권이가 어린 손님들을 인솔하여 새로 가설한 식당으로 갔다. 송진내가 풍기는 식탁에는 백여명아이들의 식사를 한꺼번에 치를 음식이 푸짐히 준비되여있었다. 그러나 그들중의 누구도 사령부의 《도감》이 오늘의 특식을 마련하기 위해 기울인 공력에 대해서는 생각하는것 같지 않았다. 모두들 장군님곁에 오니 당장 대우가 개선된다고 떠들어대며 식탁앞에 앉자 성찬을 무섭게 조겨대였다.

로상권은 자기가 특별히 공력을 들여 마련한 음식가지들을 그 공력을 들인 차례대로 그릇을 부실나위도 없을만큼 깨끗이 먹어치우는 어린것들을 바라보니 흐뭇한 생각이 들어 입이 절로 벙글써해졌다. 그러다가 이 손님들의 한끼 식사를 위하여 이른아침부터 사람들을 불러올린다, 물고기를 잡아들인다, 수염을 밀어라 어쩌라 하며 자개바람이 일게 돌아친 일이 떠올라 슬그머니 걱정에 사로잡혔다. 이 《손님》들을 대체 몇끼나 치러야 하겠는지, 장군님께서 왼심을 쓰시는걸 봐도 그렇고 고생에 치여난 아이들의 정상을 봐도 그렇고 매끼 이렇게는 못차린다 해도 여느 유격대원들처럼 있는대로 먹일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내 주머니속에 식량이 넉넉한가, 반찬거리가 있는가, 전날 오중흡이네가 지고온 통졸임들도 각 부대별로 몫을 가르다나니 남은게 얼마 안된다.

로상권이가 골치아픈 속구구를 하고있는데 아침에 불러올린 사람들이 담배질을 하며 소년들의 식사하는 모양을 바라보다가 여기저기서 그에게 집적거렸다.

《여보, 금방 볶았다칠 땐 우리도 한자리에 앉게 될것처럼 대포를 놓더니 왜 생콩 씹은 상이 되여 그 모양이요?》

《우리까지는 몰라도 <도감>이야 한자리에 앉을수 있지 않소.》

로상권은 일단 식량걱정에 사로잡히자 그들의 배부른 흥정에 응할 흥심이 없어졌다.

돌아가며 체면이 깎이는 놀음만 한것 같아서 군수처에 돌아온 로상권이 한숨을 풀풀 내쉬며 수판알을 뚜걱거리고있는데 지나가던 김주현련대장이 들어왔다.

련대장은 그러지 않아도 큰 집안의 살림을 맡고 노상 근심거리가 많은 《도감》이 오늘따라 미간에 주름이 깊어진것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상권동무, 오늘 참 수고가 많았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그애들이 맛있게 먹는걸 보고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래요? 장군님께서 기뻐하셨다니 품들인 보람이 있군요.》

《역시 상권동무다운 말이로군. 일복이 있는 사람이 달라. 식구가 또 늘어났으니 이전보다도 수고하며 바삐 돌아가게 됐구만.》

《그런데 련대장동무, 대관절 그애들이 며칠이나 묵게 된답니까?》

《며칠이라니? 동문 그애들이 사령부로 아주 온걸 아직 모르오?》

로상권은 흠칫 놀라는바람에 손끝에서 오르내리던 수판알이 섞갈려 계산이 틀려진 수판을 흔들어놓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많은 애들을 어떻게 건사한다고··· 련대장동문 아이들시중이 어른들보다 더 바쁘다는걸 모르시오?》

그는 마치 아이들을 데려온 사람이 련대장이기라도 한듯이 칭원섞인 투로 묻고는 근심이 늘 묻어다니는 수판알을 다시 뚜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