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3


 

제 2 장

3

 

여러 지휘관들이 순애의 꺼져가는 숨결을 애처롭게 지켜보는 가운데 군의는 방금 수술준비를 끝내였다.

장군님께서 어쩐지 자신이 없어하는 군의옆으로 다가서시여 귀가까이 대고 말씀하시였다.

《부탁하오.》

《장군님···》

군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살려내겠다는 말씀을 올리고싶었다. 하지만 그 말이 선뜻 입밖으로 나와주지 않았다. 연독은 이미 파국적으로 온몸에 퍼졌고 가뜩이나 허약하던 어린것이 피를 지내 흘려 소생할수 있겠는지 군의로서는 자신이 붙지 않았다. 그가 드디여 순애의 상처에 박혀있는 총알을 빼려고 수술칼을 들었을 때 준오는 입술을 깨물며 부탁했다.

《선생님,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이 역시 난처한 부탁이였다. 아편이 좀 있을뿐 변변한 마취제도 없이 오직 부상자들의 완강한 의지를 믿고 수술칼을 드는데 습관되여온 빨찌산의 군의가 어떻게 어린 몸에서 아프지 않게 총탄을 빼낸단 말인가. 벌써부터 군의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돋고 수술칼이 손에서 가볍게 떨며 그의 침착성을 앗아갔다.

장군님께서는 손을 떠는 군의의 긴장을 풀어주고도싶고 또 어린 몸에 마취도 채 못시키고 수술칼을 대는것을 볼수가 없어 지휘관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오시였다. 그러나 군의처앞을 뜨지는 못하고 우중충 가까이 서있는 가문비밑을 거니시였다.

얼마 안있어 군의가 상처에 수술칼을 대는지 바스라지는듯 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장군님께서 근심에 잠겨 옮기시던 걸음을 멈추고 문득 귀를 기울이시였다. 어린것이 내지르는 비명은 가슴을 파헤치며 아프게 울려왔다. 옆에 서있는 지휘관들모두가 숨을 죽이고 비명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땀투성이가 된 군의가 쓰러질듯이 천막자락을 움켜잡고 비칠거리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장군님께서 한숨 놓으며 군의처안으로 다시 들어가시였다. 순애상처에서 뽑아낸 총탄이 첫눈에 띄였다. 김주현이, 오중흡이, 강민이, 여러 대원들이 뒤따라 들어와서 원쑤의 총탄을 서리찬 눈길로 찍어보았다.

순애는 얼마 안남았던 기력마저 말짱 잃은채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팔소매를 걷어올리며 순애머리맡에 앉으시였다. 여린 몸에 수술의 고통까지 겪은 순애는 초들초들 마른 입술을 감빨며 헛손질을 하였다. 갈증이 나서 물을 찾는것 같았다.

《물이 어디 있소?》

장군님께서 얼결에 뒤를 돌아다보시였다. 뒤에 서있던 강민이 자기가 휴대한 물통뚜껑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군의가 말씀드렸다.

《장군님, 물을 먹이면···》

《그렇지, 피를 많이 흘렸는데 물을 먹이면 안되지.》

장군님께서는 자꾸만 무엇인가 찾으며 옴지락거리는 순애손을 꼭 잡고 이번에는 고르롭지 못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그러다가 또 안절부절 못하고 군의쪽을 쳐다보시였다.

《이 애가 몹시 아파하는것 같은데 무슨 대책이 없겠소? 아편이라도 좀 먹여보면 어떻겠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군의는 장군님께서 이르시는대로 아편을 물에 풀어 순애한테 먹였다. 모두 순애얼굴에서 눈길을 못떼고 효험이 있는가를 지켜보았다.

장군님께서도 순애를 살려낼 방책을 생각하며 자리를 일지 못하시였다.

몇분이 지나자 순애는 미간에 지었던 주름을 펴면서 소릇이 잠이 들었다. 아픔이 얼마간 멎은것 같았다.

그러나 옆에 지켜선 대원들의 얼굴은 밝지 못하였다.

준오의 얼굴은 더욱 어두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파릿해지는 동생의 입술에서 벌써 불길한 전조를 느끼는지 아니면 침묵을 지키는 지휘관들의 무거운 표정에서 그것을 예감하는지 고개를 푹 떨구고 앉아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자신께도 무겁게 생각되는 침묵을 깨치고 준오에게 위안을 주고싶어 그애 손을 잡으시였다.

《준오야, 얼굴을 들어라. 이렇게 만났으니 이제는 살아갈 일을 의논해야지. 너희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준오는 그이의 물음에 동생을 데리고 제 손으로 빌어먹으며 1년나마 아버지를 찾아다닌 소년답게 말씀올렸다.

《순애가 나으면 아버지를 찾아가고싶습니다.》

《그래?···》

《아저씨, 우릴 아버지 있는데로 좀 데려다줘요.》

장군님께서는 사무치도록 그리움에 젖어있는 준오한테 아버지가 희생되였다는 말을 차마 하실수가 없었다. 이때까지 어린 동생을 데리고 피눈물나는 고생을 하면서도 희망이 있어 맥을 놓지 않은 준오에게 아버지가 전사했다고 하면 그 슬픔을 감당해낼것 같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자신도 추억하기 괴로운 슬픈 소식을 묻어두었다가 이담 때가 되면 들려주리라고 생각하며 얼얼한 가슴으로 준오를 끌어당기시였다.

《준오야, 인제는 혁명의 품에 안겼는데 걱정이 있느냐. 아버지는 차차로 찾고 순애부터 살리자. 아버지를 찾아갈 때까지는 우리와 함께 있자꾸나.》

시간이 흐를수록 순애의 맥박은 떠지기만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안고 초조히 그 숨결을 지켜보는 가운데 저녁이 되였다.

장군님께서 군의더러 준오한테 무엇을 좀 먹이라고 이르신 후 시름을 안은채 사령부천막으로 오시였다. 탁상우에는 저녁식사가 놓여있었지만 그이께서는 수저를 들지 못하시였다. 군의처에 두고온 순애와 준오의 정상이 눈앞에 자꾸만 밟혀와서 전달장더러 군의를 불러달라고 이르시였다.

그러신 다음은 일손이 잡히지 않아 서성거리다가 탁상 한쪽에 눈길을 주시였다. 거기에는 통신원들이 적구에서 가져온 신문들이 쌓여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또 무슨 《황군》의 전과에 대하여 보도했는지 큰 활자로 제호를 박은 신문장들을 일별하시다가 《룡정일보》 한면을 유심히 들여다보시였다.

얼마 안있어 련락을 받은 군의가 달려왔다.

《군의동무, 이걸 좀 보시오.》

장군님께서 들어서는 군의앞으로 그때껏 주의깊이 보시던 신문 한면을 가리키시였다. 그것은 신문의 4면이였다. 군의는 무슨 큰 소식이 실린줄로 알고 눈을 밝히며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그런 소식은 눈에 띄우지 않았다.

웃단에 폭약을 싸안은 구라파정세에 대한 소론을 앉히고 아래쪽에는 삼남지방의 때이른 홍수와 보리흉작에 대한 소식, 맨구석에 약광고를 하나 실었을뿐이였다.

그의 눈길이 신문우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것을 보고 장군님께서 손으로 짚어주시였다.

《무얼 그렇게 찾습니까. 이 약광고를 좀 보시오.》

군의는 저윽 놀라며 약광고를 비로소 찬찬히 읽어보았다.

새로 나온 강장제에 대한 광고였다. 광고는 이 약이 피를 불궈주고 장기를 실하게 해주므로 몸이 허약하거나 원기가 부족할 때, 중병을 앓고났을 때 신비할만큼 특효가 있다고 쓰고나서 약의 조성에 대해 인삼, 황기를 포함하여 열세가지나 되는 약재를 렬거했다.

《인삼은 물론 황기같은것도 다 예로부터 일러오는 약초들입니다. 이런 약은 순애는 물론 준오한테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앤 몸이 너무 허약합니다.》

장군님께서 신문을 들고 약의 효능에 대한 설명을 다시 들여다보시였다. 군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장군님께서 세계를 불안케하는 심상치 않은 소식들을 눈앞에 두고 어찌면 신문의 4면 하단구석에 지면을 겨우 얻은 광고란에 관심을 돌릴수 있는지 리해할수 없었다.

《군의동무, 지금 군수처에 어떤 약들이 있습니까?》

군의는 왜놈들에게서 빼앗아온 강심제와 우황청심환 등 특별히 비상약으로 보관해오는 몇가지 약품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조금도 아끼지 말고 그것을 모두 순애한테 써서 어떻게 하나 순애를 살려내자고 하시였다.

군의는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장군님의 심정에 가슴이 뜨거워올라 분부대로 하겠다는 말마저 변변히 못하고 돌아갔다.

장군님께서는 멀어져가는 발자국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다가 다른 신문장을 펼치시였다. 그러나 글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른 입술을 감빨며 조그마한 손으로 헛손질을 하던 순애의 파릿한 얼굴이 자꾸만 글줄을 가리워 신문을 도저히 읽으실수가 없었다.장군님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한참 서성거리시다가 군의처로 또다시 가시였다. 군의가 꺼내놓은 비상약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며 약을 먹이고 주사를 놓고 하는 일을 친히 옆에서 도와주시였다. 약효가 나타나는가를 지켜보며 순애 머리맡에 오랜 시간 또 앉아계시였다.

군의는 순애를 소생 못시키는 죄가 자기에게 있기라도 한듯이 송구스러워하며 그애 가슴에 청진기를 가져다대였다.

맥이 거의 알리지 않는 순애의 손목을 잡은채 장군님께서 떨리고있는 청진기를 지켜보셨다.

《어떻습니까?》

《···》

군의는 이마의 식은땀을 훔칠뿐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꺼져가는 소녀의 어린 넋은 일체 약물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사선에서 헤매고있었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순애의 손맥을 몇번이고 짚어보시다가 회중시계를 꺼내시였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직일병의 취침구령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순애가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면 곧 알리라고 이르시며 근심을 안은채 군의처를 나서시였다. 여기저기 사위여가는 모닥불이 주위를 희미하게 비칠뿐 하늘이 흐리고 시커먼 구름장이 무겁게 내려앉아 숙영지는 캄캄했다.

《왜 아직 취침구령을 울리지 않소?》

장군님께서 문밖에 기척없이 서있다가 말없이 따라서는 경위중대장더러 물으시였다.

《직일병이 중대마다 다니며 알려주었습니다.》

《그렇소?···》

장군님한테는 그 대답이 어쩐지 아프게 들렸다. 잠들었는지 아니면 모닥불처럼 꺼져가는 어린 생령의 숨결을 천막안에서 모두 지켜보는지 인적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무거운 걸음으로 사령부천막에 돌아오시자 며칠째 밤을 지새우신 피로가 육신에 밀려들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자리에 눕지 못하고 그물그물 타들어가는 등불앞에 앉으시였다. 옛전사의 어린 자식이 사경에서 헤매고있는 이 밤 그이께서는 잠자리에 누우실수가 없었다. 불심지를 몇번이나 돋구어놓고 저녁식사가 그대로 놓여있는 탁상앞에 앉아 순애가 의식을 회복했다는 기쁜 보고가 오기만 기다리시였다.

밤중에 바람이 터졌다. 번개마저 일어 우뢰소리가 숙영지에, 천막들과 잠든 대원들의 머리우에 떨어졌다.

잠을 깬 대원들은 어둠속에 일어나앉아 휘장이 펄럭이는 출입구틈새로 음산한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을 가르는 번개가 밀림의 우듬지를 베며 뾰족한 끝을 어딘가 저쪽 수림너머에 박을적마다 천둥소리가 고막이 터지게 울렸다. 한참을 그러다 즘즘해지며 숙영지가 고요해져서야 대원들은 자리에 도로 누우며 안도의 숨을 쉬였다.

그러나 그것은 무자비한 타격과 광란을 앞둔 자연의 첫 폭행에 불과했다. 미구에 시퍼런 번개가 검은 구름장들을 찢어발기며 하늘을 산산이 들부시는것 같은 우뢰소리를 몰아왔다. 바람은 더 세차지고 얼친 구름장들은 그 어떤 재난을 예고하듯이 이따금 후둑후둑 비방울을 뿌리며 수림우를 황급히 스쳐갔다. 그러나 비는 아직 오지 않았다.

숙영지는 불안에 잠겨 온밤 잠들지 못하고 설레이였다.

중대들에서 아침식사준비가 금시 끝나갈무렵에 군의가 사령부로 달려왔다.

《장군님!···》

군의는 출입문가에 굳어진채 고개를 떨구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이제나저제나 기쁜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시던 장군님께서 군의앞으로 다가가시였다.

《그래 어떻소? 정신을 차렸소?》

《장군님, 숨이··· 졌습니다.》

《뭐라구?··· 그게 무슨 소리요?》

장군님께서는 가슴에 손을 짚으며 돌아서서 한참 서계시였다.

흐린 하늘에서는 검은 구름장이 떼지어 밀려가고 숲은 우수수 설레이였다.

장군님께서 허둥거리는 군의를 따라 군의처앞에 이르시였을 때 안에서는 땅을 치는 준오의 울음소리가 들려나왔다.

《순애야··· 네가 죽다니···》

장군님께서 발을 헛짚으며 천막안으로 들어서시였다.

순애는 숨지는 순간에조차 누구를 찾은듯이 입을 벌리고 그 조갑지만 한 손을 허공에 쳐든채 준오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었다.

어제 순애를 업어온 동무들이 준오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그뒤로는 잠이 안와서 밤새껏 기관총을 닦던 강민이가 뛰여왔다. 장군님께서 그렇게 소식을 알고싶어하시기에 자기가 찾아까지 나갔던 전우의 자식들이 동지들의 등에 업혀들어왔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속으로 운 강민이였다.

선실이랑 희옥이랑 녀대원들이 채 감지 못한 순애의 눈을 감겨주고 준오를 달래며 흐느껴울 때 지나가던 대원들은 군모를 벗으며 천막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향방없이 불어치는 바람밑에 태질하는 숲이 구슬프게 설레이는 속에 시간이 흘러 어린 넋과 헤여져야 할 시각이 왔다.

김주현련대장이 숨진 순애를 품에 안고 비칠거리며 군의처에서 나왔다. 그뒤로는 준오가 고개를 푹 숙인 강민의 부축을 받으며 따라왔다.

김주현은 밖으로 나오자 어디로 향해야 할지 갈 곳을 모르듯이 순애를 안고 서서 발길을 떼지 못하였다.

군의처앞을 침통히 거니시던 장군님께서 련대장앞으로 오시였다.

《그애를 이리 주시오.》

《사령관동지, 제가···》

《이리 주시오···》

장군님께서는 련대장의 품에 안긴 순애를 두팔에 받아안고 잠시 내려다보시다가 숲을 헤쳐나가시였다. 김주현이, 오중흡이, 강민이, 로상권이, 8련대장, 준오 아버지의 오랜 전우들이 장군님뒤를 묵묵히 따라갔다.

눅눅하고 음산한 수림을 한참 헤쳐나가자 가파로운 산비탈이 막아나섰다.

장군님께서는 군복앞가슴에 순애를 품어안으신채 억새가 무성히 자란 산비탈을 타고 등성이를 향하여 오르시였다. 한걸음한걸음 오를수록 차츰 사방이 트이며 바람새가 더욱 사나와져서 길길이 자란 억새들을 한옆으로 쓸어눕히고 애어린 관목들은 금시 뿌리가 들릴듯이 몸부림을 하였다.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에서는 먹구름이 침침하게 밀려가다가 마침내 굵은 비방울을 후둑후둑 떨구기 시작하였다. 장군님의 어깨에도, 순애를 안고있는 그이의 손등에도 비방울은 가슴에서 굽이치는 눈물마냥 떨어져내렸다.

그이께서는 선뜩한 비방울이 순애의 얼굴을 적시자 한손으로 어린것의 얼굴을 가리워주며 무심한 하늘을 쳐다보시였다. 어쩐지 숨진 어린것을 안고 험한 비탈길을 오르자니 이 순애와 이애 아버지를 처음 만나던 일이 어제일처럼 떠오르시였다.

그것은 7년전의 일이였다.

그이께서 조선혁명군을 창건하고 고유수, 오가자 일대에서 활동하시던중 그해 초겨울 대원 몇명만 데리고 두만강쪽으로 나오다가 소왕청에서 백여리 떨어진 산간마을에 들리신적이 있었다. 십여호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화전마을인데 사람들은 함경도와 전라도 사투리를 쓰고있었다.

어느 집 문을 열어보아도 성한 이불 한자리 없고 귀밀을 껍질채로 갈아 쑨 강태죽으로 끼니를 에우며 어렵게 살고있었다. 소금이 없어 한겨울이면 참나무재를 손끝에 찍어 소금 대신으로 먹는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대원들과 같이 마을을 돌아보고나서 산기슭 막바지에 있는 초가집에 하루밤 류숙할 거처를 정하시였는데 그 집이 바로 리성묵이네 집이였다. 자식은 둘이였다. 준오는 그때 여덟살이고 순애는 두살이였다. 학교갈 나이가 다 된 준오에게 글을 배우고싶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마을에 나이 찬 애들이 많지만 학교는 없고 자기가 야학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정도라고 아버지가 대신 대답하였다. 순애는 그때 한창 홍역을 치르고있었다. 열이 몹시 나고 온몸에 돋은 빨간 반점이 차츰 스러지면서 내홍으로 넘어갈 징조가 보였으나 약은 고사하고 앓아누운 자식한테 덮어줄 포단 한쪼박 없었다.

의사의 도움도 바랄수 없는 외진 곳이다보니 부모들은 자식의 생사를 팔자에 맡기고 속수무책으로 애타게 지켜볼뿐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일찌기 무송시절에 아버님에게서 배워두신 민간료법이 생각나서 손수 약을 조제하여 그애한테 써주고 리성묵이와 나란이 목침을 베고 누우시였다. 허지만 잠은 오지 않고 해서 고향을 하직하고 북간도로 들어온 리성묵이네 집안래력을 알아보시였다.

리성묵이네 일가는 간도로 들어온 초기에는 대감자부근에서 짐을 풀고 살다가 왜놈들의 총포소리가 온 간도땅을 울리던 경신년 대《토벌》때 량부모와 얼마 안되는 가산마저 다 잃고 형님네 식솔과 같이 이 고장으로 옮겨앉았다.

그는 자기 형 리인묵이에 대한 이야기도 하였는데 형은 집에 있지 않고 경신년 《토벌》이 있은 후부터 독립군을 따라다닌다고 하였다.

아마도 이 집에 구들장을 놓던 해에 베개 대신 깎았을 목침에서는 쉬치한 땀내가 올라왔다.

장군님께서는 그날밤 도저히 잠을 청하실수가 없었다. 어찌하여 우리 조선사람들이 문전옥답은 다 버리고 산설고 물설은 수천리이역에 와서 부대기에 명줄을 걸고 이런 꼴로 살아야 하는가. 어찌하여 배울 나이가 된 애가 학교문앞에도 못가보고 앓는 자식에게 약은커녕 포단 하나 덮어주지 못해 부모들이 아픈 가슴을 안고 울게 해야 하는가, 분하시였다. 민족이 당하는 수난이, 이 나라 어린이들이 당하는 불행이 아픈 못을 치며 가슴을 두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목침을 베고 찬기운이 쏟아져내리는 성에 낀 천정을 올려다보며 준오와 순애같은 어린것들이 추위를 모르는 세상을 그리시였다. 저 준오에게 토스레 대신에 교복을 지어입히고 순애한테 의사가 제발로 찾아와서 치료를 해주고 따뜻한 담요를 덮어줄수 있는 세상을 그리시였다. 그 세상에는 착취자도 없고 호령하는 사람도 없고 관리는 백성의 노복이 되리라. 로인들은 존경받고 어린이들은 사랑받고 병나면 무상치료, 공부할 나이가 되면 나라에서 공부시켜주는 천국을 세우고 저 순애같은 어린것들에게는 제일 큰 궁전을 지어주리라.

장군님께서는 다음날아침 리성묵이네 집을 떠날 때 자신의 솜외투를 벗어 앓는 순애에게 덮어주며 마음속으로 뇌이시였다.

(오늘은 너에게 이것밖에 줄것이 없다. 그러나 기다려다오. 래일은 너희들에게 온 조선을 안겨주리라.)

그후 두해가 지나서 장군님께서는 안도의 숲속에서 창건하신 조선인민혁명군 대오를 거느리고 왕청쪽을 지나다가 그때 심하게 앓던 순애가 보고싶어 리성묵이네 집에 다시 들리시였다. 순애는 소생하여 발씬발씬 웃었고 리성묵은 장군님께서 출발하실적에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장군님손을 부여잡았다. 그래서 리성묵을 데리고 떠나시였는데 어린 순애가 따라오며 아버지 가는데가 어딘줄도 모르고 같이 간다고 매여달렸다.

리성묵이 입대후 그때 일을 못 잊어 늘 가슴아픈 소리를 하군해서 그한테 귀한 자식 오누이가 있다는것은 부대가 다 알았다.

그런데 리성묵이가 전사하고 오늘은 맨발로 아버지를 찾아온 순애가 이렇게 죽었다. 원쑤의 총탄에 피를 흘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불쌍하게 숨졌다. 이제 쓸쓸한 이 등판에 어린 뼈를 묻고 가면 누가 한번 찾아보기나 하며 누가 기억이나 해줄것인가.

절통하다. 이것이 조국을 잃은, 아버지 품을 잃은 이 나라 어린 넋들이 당하는 참극이란 말인가. 이 참극을 끝장내고 순애같은 수백만 어린이들에게 밝은 웃음을 주지 못하고 궁전을 지어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무슨 고생한 보람이 있으랴. 혁명은 무엇때문에 하는것이냐.

장군님께서는 죽어서도 아버지를 찾듯이 여린 손을 내민채 굳어진 순애를 안고 바람부는 언덕에 오르시였다.

《동무들, 이 애를 여기다 묻어주시오. 이담 나라를 찾고 우리 어린이들이 복받은 세상이 오면 넋이라도 불러오게 조국이 바라보이는 이 언덕에 묻어줍시다.》

갈리신 그이의 음성이 대원들의 가슴을 미여지게 울렸다. 리성묵의 오랜 전우들이 눈물을 흘리며 땅을 파고 맨발벗은 소녀를 장군님품에서 받아내리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가시에 찔려 상채기가 난 순애의 두발을 꼭 잡고 로상권이를 부르시였다.

《상권동무, 군수처에 작은 신발이 하나 없소? 신발이라도 하나 신겨보내면···》

로상권은 군수처로 달려가 후방밀영아이들에게 보내주려고 장만해두었던 신발중에서 자그마한 운동화 한컬레를 골라가지고 올라왔다.

장군님께서는 순애의 발을 꼭 잡은채 신발을 신겨주시였다. 다른쪽 신발도 그렇게 손수 신겨주고는 발에 맞는지 앞코숭이를 꼭꼭 눌러보시였다.

신발은 순애한테 조금 컸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아픈 마음으로 어린것을 내려다보시였다. 그이앞에는 순애가 새 신발을 신고 기뻐서 깡충깡충 뛰여가는 모습이 떠오르시였다. 나비처럼 달려가는 그애 발에서 신발 한짝이 벗겨져서 어린것이 돌아다보며 깔깔 웃는것만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지금 숨진 순애가 아니라 살아서 웃는 순애를 내려다보시는 심정이였다.

이윽고 대원들이 순애를 땅속에 묻기가 가슴아파 얕게 판 웅뎅이에 나무잎을 깔고 어린것을 받아눕혔다.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육신과 심혼에서 소중한 그 무엇이 떨어져나가는듯 한 아픔을 느끼며 쓰린 가슴을 짚으시였다.

준오는 이악스럽게 오빠를 따라다닐 때처럼 조그마한 주먹을 쥔채 잠자듯이 누워있는 동생의 머리맡에 주저앉았다. 가슴속이 타다 못하여 눈물마저 말라버렸는지 마지막으로 동생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순애야, 너를 여기에 묻다니···》

차거운 흙구뎅이속에 홀로 눕혀놓아도 오빠를 원망조차 하지 않는 동생, 준오는 너무나도 가혹한 운명앞에서 피나게 입술을 짓씹으며 눈을 꽉 감았다. 동생을 땅에 묻으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앉아있는것이 무서운 죄악처럼 생각되기만 하였다.

로상권이가 그를 달래며 금시라도 눈을 뜨고 올려다볼것 같은 순애몸에 축축해진 흙을 조심히 얹었다. 군수처에서 삽을 몇자루 가지고왔으나 누구도 삽은 쓰려고 하지 않았다. 김주현이, 오중흡이, 강민이, 모두는 손으로 흙을 파쥐여 무덤을 덮으며 어깨를 떨어뜨렸다. 장군님께서는 흙을 손에 움켜쥐였다가 도로 놓고 일어서시더니 흐린 하늘만 쳐다보시였다.

얼마 안있어 언덕에는 조그마한 봉분이 생겨났다. 맨발바람으로 달랑달랑 오빠를 따라다니던 어린 생령은 푸른 하늘을 그리던 그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영영 땅속으로 가버렸다.

바람은 더욱 세차지고 비발은 점점 굵어졌으나 대원들은 순애의 무덤가에 묵묵히 둘러선채 발길을 옮기지 못하였다. 준오는 어린동생 대신에 생겨난 자그마한 흙무지를 그러안고 일어나지 못하였다.

대원들이 붙들고 달래였지만 그를 무덤에서 떼여내지 못했다. 순애를 위해서라면 점심밥도 못싸가지고 공사장으로 나가 어른들의 다리짬으로라도 기여들어가서 공구를 타내던 준오였다. 그런 오빠가 앓아누우면 맨손에 찬물을 적셔 온밤 자지 않고 물찜질을 해주던 순애였다.

장군님께서 무덤옆에 말없이 지켜선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돌아보시였다.

《동무들, 준오를 데리고 내려가시오.》

그이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히 들리였다.

《사령관동지, 함께 내려가십시다.》

김주현련대장이 동지들의 심정을 대신하여 그이께 말씀드렸다. 그들은 누구나 장군님의 아프고 괴로운 심정을 리해하고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희생을 에돌수 없는 피어린 광복의 진군길을 몸소 진두에서 개척하며 얼마나 크나큰 슬픔을 가슴속에 묻어두신 장군님이신가!

《먼저 내려들가오.··· 여기에 잠간만 나를 혼자 남게 해주시오.》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기며 하나둘 내려가기 시작하였다.장군님께서는 주위가 조용해진 때에야 살점을 에여내는것 같은 아픈 심정을 누르며 마음속으로 전사한 옛전사를 부르시였다.

(성묵동무, 동무는 우리가 있어 우리를 믿고 자식들을 맡기고 갔는데··· 용서하오.)

그이께서는 봉분앞으로 허리를 굽히고 순애를 덮어준 흙속에서 자그마한 돌멩이를 집어드시였다. 그자리를 부드러운 흙으로 메워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바람사나운 산마루를 거니시였다. 어린것이 고생을 하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혁명의 품에 안기는가 했더니 끝내 피여보지 못하고 불쌍하게도 이렇게 가버렸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얼마 멀지 않은 관목옆에 김주현련대장이 말없이 서있는것을 보고 그를 부르시였다.

《주현동무!》

련대장을 돌아보시는 장군님의 음성에서는 금방 순애를 묻은 쓰라린 마음이 그대로 울려나왔다.

《주현동무, 우리 밀영들에 있는 아이들이 모두 몇명이요?》

장군님께서 밀영실정을 몰라서 물으시는것이 아님을 직감하고 련대장은 더욱 긴장하여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두 밀영에 있는 아이들을 합하면 백명이 넘습니다.》

《그렇지, 백명이 넘지.》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시름에 잠겨 묵묵히 거니시다가 련대장앞에 걸음을 멈추시였다.

《주현동무, 우리가 아이들 문제를 두고 마음을 놓을수 있은것은 그래도 유격근거지때였지. 그들을 보호해줄 혁명정부도 있고 아동단학교에는 지도원도 두고. 그때는 전투를 종일 하다가 돌아와도 피곤이 저절로 풀리군 하였소.》

《옳습니다. 그때 사령관동지께서 아동단학교가 큰 밑천이라고 하시며 나라를 찾으면 그애들한테 제일먼저 궁전을 세워주자고 하시던 말씀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김주현은 축축히 젖어있는 두눈을 슴벅거렸다.

장군님께서도 그때 일이 회상되시는듯이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금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런데 그만 내가 북만원정에서 돌아와보니까 근거지의 학교들이 다 없어졌지. 난 며칠을 두고 밤잠을 자지 못했소. 글쎄 몇달 떨어진 사이에 그렇게 될줄이야 누가 알았겠소.》

김주현은 장군님께서 이미 지나간 시절의 일을 그토록 가슴쓰리게 회상하시는 원인이 다른데 있지 않고 후방밀영아이들이 걱정스러워서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사령관동지, 밀영아이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저렇게 한곳에 집결되여있다간 놈들의 <토벌>이라도 당할것 같은게 어쩐지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그렇소. 그렇지 않아도 내 오늘은 생각다 못하여 지휘관들과 의논해보자던 참인데 우리가 그애들을 데려다가 끼고다니는게 어떻겠소?》

련대장은 깜짝 놀라며 눈이 둥그래졌다.

《그 숱한 아이들을 싸움판으로 데리고 다니다니요? 사령관동지, 그럴것없이 그애들을 적구로 돌려보내고 지하조직을 발동하여 돌봐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련대장의 주저하는 심정은 리해되였지만 그가 내놓는 방도라는게 신통치 못하여 묵묵히 발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적구로 보낸다? 그렇게 하면 어디서 벌어먹든 생명은 유지할수 있겠지. 그러나 혁명가로 되기엔 너무도 많은 길을 에돌게 되지 않겠소, 내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애들이 우리를 따라다니면 고생이야 하겠지만 대신 혁명을 배우게 될거요. 유격전을 하면서 그애들을 데리고 다니자면 힘이야 들겠지, 그러나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인것만큼 혁명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오. 오늘은 비록 그애들을 끼고다니며 싸우기가 어려울수 있지만 그렇게 고생스럽게 키운 아이들은 장차로 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거요. 내 그래서 아이들을 우선 사령부에 데려오고보자는건데 어떻소? 주현동무.》

마디마디에 원대한 구상과 사랑이 담긴 장군님의 말씀에서 크나큰 충격을 받은 김주현은 경건한 눈길로 그이를 우러러보다가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사령관동지, 말씀의 뜻을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책임지고 데려오겠습니다!》

군모를 바로 쓰고있는 련대장의 얼굴로는 굵은 비방울이 둘둘 굴러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