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2


 

제 2 장

2

 

경위중대장 리달경은 최현부대에서 사령부로 련락원이 왔다는 보고를 받고 숙영지입구로 급히 나갔다. 방금 보초선을 통과한 련락원은 그와 한가마밥을 삼사년 같이 먹은 신길섭중대장이였다.

두사람은 얼마전까지 한부대에 있던 사이여서 각별한 정을 안고 반갑게 만났다.

숙영지 한쪽에서는 총창을 비껴든 대원들이 지휘관의 구령에 따라 창격훈련을 하고있었고 다른쪽에서는 7련대가 금방 어디론가 출동할 기세로 전투준비를 하고있었다.

《아침부터 또 한탕 치르자는게 아니요?》

《어디 싸움이 없는 날이 있소?》

리달경은 발악이 심해지는 적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과 이지간 주력부대에서 단행한 큰 전투들에 대하여 이야기해주고나서 찾아온 용무를 물어보았다.

《동무네 부대야 방금 얼마전에 사령부에 왔다갔는데 무슨 일로 중대장을 련락원으로 보내왔소?》

사령부호위책임자면 간단한 자리가 아니지만 여전히 서글서글하게 대해주는 경위중대장의 물음에 신길섭은 간격을 두지 않고 대답했다.

《난 최현동지로부터 두가지 임무를 받고왔소. 최현동지는 빨리 사령부로 찾아가서장군님으로부터 우리 부대의 금후행동방향에 대한 가르치심을 받아오라구 하더구만. 이것이 하나고, 또 한가지 내가 받은 임무는 뭔고하니까, 바로 당신과 관련되는건데···》

앞서 걷던 리달경이 무춤 걸음을 멈추며 돌아다보았다. 련락원이 느물느물 웃는걸 봐선 안심이 되였으나 어쨌든 자기 문제라고 하니 바짝 마음이 긴장해졌다.

《여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이거 경위중대장이 졸장부처럼 왜 이러오? 최현동지는 당신이 부대동지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임무를 충실히 다하고있는지 알아보라고 하더군.》

련락원이 본인앞에서 삼가해야 할 이야기까지 허물없이 꺼내자 경위중대장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리달경은 한달전만 해도 최현이네 부대에 있다가 보천보전투직후에 주력부대로 와서 사령부 경위중대장이 되였다. 이렇게 된데는 리달경이자신도 다 모르는 사연이 있었다.

지난 6월중순 장백현 19도구 지양개에서는 력사적인 국내진공작전의 승리를 경축하는 군민련환대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그때 최현은 장군님의 작전적방침에 따라 주력부대의 국내진공을 보장하는 임무를 받고 무산방향으로 진출했다가 돌아와서 장군님을 다시 뵙게 되였는데 그는 사령부를 떠나기전에 이런 청을 올리였다.

《장군님, 저는 왕청근거지에서 장군님을 처음 뵙고 가르침을 받을 때에도 그랬고 미혼진밀영에서 뵈였을 때에도 그랬고, 뵈올적마다 장군님옆을 떠날 근심이 늘 앞서군 했습니다. 오늘 또 이렇게 뵙고 떠날 생각을 하니 서운한 마음은 그때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비록 장군님곁을 떠나도 저의 부대 사람을 한명 사령부경위성원으로 떨궈뒀으면 하는데 장군님 의향은 어떠하십니까?》

부대장이 올린 절절한 청원에는 장군님을 마음속깊이 경모하며 늘 가까이 모시고싶어하는 그의 충성이 담겨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때 최현의 심정을 헤아리고 그 청원을 기꺼이 들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최현은 자기가 제일 아끼고 사랑하던 리달경을 사령부에 남겨두게 되였다. 리달경은 견결하고 용감하고 경험많은 지휘관이였을뿐만아니라 기민하고 실수를 모르는 백발백중의 명사수였다.

리달경은 련락원으로부터 동지들의 깊은 신임이 담겨있는 말을 전달받고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는것을 느끼며 기대에 보답하겠다는 뜻으로 그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

그들은 창격훈련을 하는 대원들옆을 지나 사령부비서처로 갔다. 비서처성원들은 금방 어디로 나갔는지 출입문을 걷어올린채 넓은 천막안이 비여있었다.

경위중대장은 련락원을 비서처에 눌러앉히며 량해를 구하였다.

《피곤하겠는데 여기서 다리쉼도 하면서 서너시간 기다려주겠소?》

그러자 련락원은 삼백리길을 달려온 사람같지 않게 펄쩍 뛰며 일어났다.

《서너시간? 여보, 난 그럴 사이가 없소. 어서 사령부로 데려다주오. 부탁이요.》

《지금은 좀 곤난해서 그러오.》

《왜? 장군님께서 안계시오?》

《사령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어디 4사뿐이요? 장군님께서는 지난밤을 꼬박 새우시고도 방금전까지 손님들과 담화를 하시였소.》

사실 간밤도 사령부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초저녁에 지휘관들을 불러 여러 방향으로 정찰대를 내보내도록 지시하시는 한편 동만, 남만, 북만에서 활동하는 조선인민혁명군산하 각 부대 부대장들앞으로 통신원들을 파견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제 주력부대를 거느리고 초수탄을 거쳐 장백-림강현계로 가서 래달 10일경에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원 및 병사대회를 소집하실 계획이였다. 예정대로 우선 래달 초하루부터는 만강상류에 있는 초수탄에서 군정간부회의를 열고 새로운 정세에 대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를 비롯한 광활한 지역에서 적의 배후교란작전을 더욱 크게 벌리며 반일민족통일전선을 가일층 확대강화할데 대한 전략전술적방침을 내놓고 지휘원병사대회에서는 그 방침 관철을 위한 자세한 과업을 제시하실 구상이였다.

통신원들이 출발한 뒤에는 2사지휘부에서 온 련락원편에 부대의 활동방향을 주시였고 이어 주력부대에서 선전과장을 하다가 적구로 나가 장백현당위원회 위원장으로 공작하는 권영벽을 만나 당원들과 조국광복회 회원들을 적기관안에 더욱 깊이 침투시킬데 대한 과업을 주며 새로운 정세에 대처해서 여러가지 공작방법을 능숙하게 활용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새벽까지 주시였다.

그래서 리달경은 경위중대장의 권한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면회를 중지시키고 다문 얼마라도 조용한 시간을 장군님께 보장해드리고싶었던것이다.

4사련락원은 경위중대장의 이러한 심정을 리해하면서도 그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가마밥을 같이 먹던 사이라는것을 턱대고 은근히 들이대였다.

《그렇지만 여보, 특수라는것이 있지 않소.》

《난 특수라는걸 모르오.》

《원, 언제부터 리달경이가 원칙밖에 모르는 사람이 됐소? 제 있던 부대에서 왔는데도 이럴내기요?》

《원칙을 내미는게 아니라 동무한테 사정을 하는거요. 사실 최현동지가 날 여기에 떨궈둔건 이런 일을 하지 말기를 바라서가 아니겠소?》

경위중대장은 지레대를 들이대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련락원은 방금 제입으로 한 소리가 있는지라 경우에 몰려 눈만 꺼벅거렸다.

《야단났군. 가부간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난 나대로 단단히 경을 치게 되오. 최현동지한테 큰 <죄>를 진게 있거든.》

경위중대장은 그가 최현부대장한테 《죄》를 졌다는 소리에 낯빛이 좀 달라졌다.

련락원은 때를 놓칠세라 헛기침을 하고 바투 다가앉으며 자기의 안타까운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내가 왜 생떼를 부리는고 하니 얼마전에 최현동지가 우리 중대에 내려와서 군복저고리를 벗어 나한테 맡기고 신입대원들에게 숙영규정의 요구대로 천막치는 법을 가르쳐준적이 있었소. 적삼소매까지 걷어붙이고 땀을 흘리며 돌아가는 그를 보자니 옆에서 구경만 할수 없더군. 군복저고리를 최현동지가 거처하는 지휘부에 가져다놓고 같이 일손을 돕고싶었지. 그래서 뛰여가는데 군복안주머니에서 무언가 뚤렁 떨어지지 않겠소. 집어보니 흰종이로 정성스럽게 싸고 그 우에 유지로 싸고 또 싼 물부리였소. 호박물부리였소. 난 그걸 보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소. 물부리야 어느때든 꺼내물수 있게 호주머니에 그냥 넣고다니지 싸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소? 무슨 물부리길래 이처럼 소중히 간수하는가? 호박이여서 그런가? 난 호기심이 동했지. 호박물부리로 담배를 피우면 맛이 어떤지 한번 써보고싶더란 말이요. 주인이 그처럼 아끼는걸 승인없이 함부로 입에 문다는게 불손한짓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호기심을 누르지 못했소. 지휘부에 들어가앉아 마라초를 말아 물부리에 척 끼우고 불을 그어댔지. 한모금 깊숙이 들이마셨다가 활 뿜어보니 참 별맛이더군. 그래서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앉아 한참 재미를 보는데 이런, 최현동지가 불쑥 들어오질 않겠소. 그러니 내가 얼마나 놀랐겠소? 최현동지 성미야 동무도 잘 알지. 내 손에 들려있는 그 물부리를 보더니 <음-> 하는 소리와 함께 대뜸 장미가 푸뜰하더란 말이요. 그러더니 어느새 목갑총을 잡고 손을 후들후들 떨면서 소리치는판이요. <이놈의 자식, 넌 당장 총살이다!>

황급히 물부리를 싸서 제자리에 넣구 제발 잘못했다고 빌어도 성이 독같이 올라 그냥 욕을 퍼부었소. 난 죽었구나 했지. 총살까지야 안하겠지만 당장 철직은 면하지 못할줄 알았소.

그런데 하루가 지나서 그가 정말 나를 부르는게 아니겠소. 난 어떤 처벌이라도 군말없이 받을 각오로 어깨가 축 처져서 들어갔소.

헌데 뜻밖에 그가 나한테 잘못했다구 사과를 하는것이였소. 난 그때 성미가 세찬 사람들이 부드러워질 때는 원래 온순한 사람보다 더 부드러워진다는걸 알았소.》

《최현동지가 뭐라구 했기에?》

《글쎄 내 손을 잡으면서 이러더란 말이요. <어제는 내가 지나쳤소. 나무랍게 생각했으면 용서하오. 무슨 군벌처럼 동지를 향해 총을 빼들려고 했으니 혁명군지휘성원이 그게 어디 됐소. 그저 난 동무가 이 물부리가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것인가를 리해한다면 용서해주리라고 믿소. 이 물부리는 내가 장군님으로부터 첫상봉기념으로 받은것이요. 받은지는 몇년이 되지만 보다싶이 물부리는 아직도 새것이요. 아까와서 늘 품에 건사해가지고 다녔지. 어려울 때나 힘이 들 때나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물부리가 있는 가슴을 짚어보구 꺼내보기도 하오. 그러면 새힘이 생기고 용기가 나오. 그러니 내가 어찌 이것을 한개의 물부리로만 생각하겠소.> 그는 이런 말을 하면서 지나쳤던 자기 행동에 대하여 진심으로 량해를 구하는것이였소.》

잠자코 듣고있던 경위중대장이 감동어린 얼굴을 쳐들었다.

《듣고보니 동무가 정말 보통죄를 지은게 아니요.》

련락원은 리달경의 솔직한 지적에 진심으로 동의했다.

《그러게말이요. 죄를 씻기 위해서도 내가 이번 일을 잘해야 할게 아니요. 최현동지는 장군님 결론을 빨리 받아오라구 했는데, 경위중대장, 여기 앉아 정말 세시간을 기다려야 하겠소?》

경위중대장은 사정하는 련락원의 이야기를 듣고 딱해하였다. 그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크게 마음을 써서 한걸음 양보하며 다짐을 받았다.

《그럼 한시간만 기다려주오. 그러되 짧게 말씀올려야겠소.》

《그건 걱정마오. 결론만 받으면 되니까. 최현동지가 기다리는것은 장군님의 결론이요.》

그러나 련락원은 한시간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누가 보고를 드렸는지 장군님께서4사련락원이 왔다는것을 알고 직접 부르시였다.

그이께서는 련락원으로부터 사령부를 찾아온 용무에 대하여 보고받으시고나서 물으시였다.

《최근의 정세변동과 관련하여 그곳 지휘관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련락원은 장군님앞에 모든것을 사실대로 정확히 보고올리라고 하던 최현의 부탁을 상기하며 말씀드렸다.

《적지 않은 지휘관들은 대사변의 도래로 보고있습니다. 주민들속에 나가있는 공작원들도 전부 불러들이자고 제기하고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공작원들을 불러들이다니?》

《인제는 정치공작은 안해도 된다는것입니다.》

《그래··· 최현동무의 생각은 어떻습디까?》

《최현동지는 장군님의 말씀과 결론을 받기전에는 명확한 견해와 행동방향을 세울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밖에도 그곳 대원들의 전반적사기와 정치사업정형을 일일이 료해하시고나서 말씀하시였다.

《돌아가면 최현동무한테 전하시오.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인민들한테 의거하여 우리 혁명의 군사정치적력량을 더욱 강화하면서 때가 되면 전인민적봉기로 일거에 조국광복을 이룩할수 있는 만단의 준비를 갖추어나가야 하오. 지금 당장 필요한것은 적의 배후교란작전을 크게 벌려 중일전쟁을 속결하려는 일제의 전략적기도를 파탄시키는것이요.》

련락원은 몇마디 말씀만 듣고도 가슴이 후련해짐을 느꼈다.

사실 이 시기 벌써 장군님께서는 군사정치적으로 혁명력량을 백방으로 강화하여 조건이 성숙되면 랑림산줄기를 거점으로 수십만의 애국청년을 불러 총을 쥐여주고 일거에 조국해방을 이룩할 원대한 구상을 익히시였다. 전투할 때마다 로획하는 무기를 도처에 묻어두게 하는것도, 전국 방방곡곡에 혁명조직을 꾸리고 조국광복회두리에 수십수백만의 애국적인민들을 묶어세우는것도 그 준비의 일환이였던것이다.

밖에서 경위중대장의 기침소리가 났다. 분명 련락원더러 들으라는, 용무를 빨리 끝내고 어서 나오라는 신호같았다. 련락원은 그제야 자기가 너무 오래 지체하는것 같아 미안해하면서 말씀드렸다.

《장군님,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장군님께서도 인차 자리를 이시였다. 련락원과 함께 밖으로 나오신 그이께서는 경위중대장더러 이르시였다.

《달경동무, 련락원동무에게 점심이라두 한끼 잘 대접해서 보내시오. 그리구 가만, 정치부동무들이 나한테로 찾아오지 않았소?》

《방금 온걸 좀 있다 오라고 돌려보냈습니다.》

《왜?》

경위중대장은 난처해하며 안타까운 빛을 감추지 못하였다.

《어서 여기로 보내오.》

장군님께서 걸음을 못떼고 머뭇거리는 경위중대장을 돌려세운지 얼마 안있어 정치부의 림기천이가 달려왔다.

《림동무, 어떻게 됐소?》

《사령관동지, 작성했습니다.》

림기천은 몇장의 소절지에 적은 명단 한통을 장군님께 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어제저녁에 정치부성원들에게 국내에 파견할 정치공작원들을 선발해보라고 지시하시였다. 그리하여 정치부에서는 조직과와 토론해서 오랜 로대원들과 초급지휘관들 30여명을 선발하여 명단을 작성하였던것이다.

명단에는 선발된 성원들의 년령과 지식정도, 입대전경력, 입대년월일, 군중공작경험, 파견지 등이 한눈에 안겨오게 적혀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명단을 연필로 하나하나 짚으며 검토하시고나서 파견대상지를 옆에 펼쳐놓은 지도에 표시하시였다.

청진, 라진, 북청, 함흥, 원산, 신의주, 남포, 평양···

《림동무, 파견대상지를 왜 북부조선에만 정했습니까? 평양이남에는 왜 없습니까?》

장군님의 물음에 림기천은 눈이 둥그래지며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것만으로도 판을 너무 크게 벌리는것 같아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우리는 조선사람이 사는 곳에는 다 가야 합니다. 온 조선이, 2천3백만 겨레가 일떠서게 해야 합니다. 우선 서울, 인천, 대구, 목포, 부산 일대에 보낼 동무들을 더 선발해서 명단을 다시 짜는것이 좋겠습니다.》

《사령관동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림기천은 생각이 짧았던 자기들의 실책을 뉘우치며 명단을 가지고 돌아갔다.

사람들의 발길이 그칠새없던 사령부안은 그때야 조용해진듯 하였다.

피곤이 엄습해왔다. 눈이 감기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수건으로 눈언저리를 비비고 며칠전부터 틈틈이 보아오는 책을 손에 드시였다. 그것은 새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산업잠재력을 이모저모로 추정할수 있는 경제분야의 참고서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오늘도 참고서를 마저 읽으실수가 없었다. 책을 펴들고 열페지도 보기전에 쿵쿵 땅을 울리며 누군지 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숨이 차서 사령부로 들어선 사람은 강민이였다.

《사령관동지, 찾았습니다!》

그는 몹시 흥분하여 밑도끝도없이 큰소리로 말씀드렸다.

《무엇을 찾았단 말이요?》

《준오를··· 리성묵동무의 자식들을 찾았습니다.》

장군님께서 책장을 덮고 강민을 바라보시였다.

《누굴 찾았다구?》

《사령관동지, 간밤 정찰나갔던 우리 동무들이 수림속에 있는 초막에서 준오와 순애를 업어왔습니다. 자기 아버지도 유격대라고 하기에 제가 알아봤는데 성묵동무의 자식들이 틀림없습니다.》

《어디 있소?》

장군님께서 일어서시였다.

《그애들이 어디 있소?!》

그이의 목소리는 조용히 울렸으나 여느때없이 떨렸다.

강민은 장군님을 모시고 허둥거리며 어느새 군의처안으로 들어섰다.

장군님께서 천막 한쪽에 놓여있는 담가옆으로 다가가시였다. 열살도 안돼보이는 어린 소녀와 동생의 머리맡에 앉아있는 열댓살안팎의 소년을 말없이 내려다보시였다.

소녀는 불에 타고 피가 내밴 헌옷을 입고 정신을 잃은채 담가에 누웠는데 얼굴마저 파르스름하여 그 처참한 모습은 눈뜨고 볼수가 없었다. 군의는 소녀를 응급처치해주며 어데서 이렇게 되였는지 허벅다리에 총알이 박혀 피를 많이 흘린데다가 연독이 퍼져 그렇다고 하였다. 소녀의 머리맡에 울먹하여 앉아있는 사내아이도 주제가 여간 험하지 않았다.

(이애가 준오인가?)

장군님께서는 7년전에 한번 본적있는 준오의 모습을 기억속에 살리며 희생된 리성묵의 모습까지도 그 얼굴에서 찾아보듯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총기있는 눈매도, 인중이 길사한 입언저리도, 얼굴의 길숨한 륜곽도 꼭 리성묵이를 닮아 희생된 전사의 얼굴을 보는것만 같으시였다.

《이애야, 이리 오너라. 널 오래전부터 찾았는데 어디 갔다가 인제야 왔느냐.》

온정이 넘치는 장군님의 목소리가 멍든 어린 가슴을 조용히 울렸다.

준오는 어서 가까이 오라고 팔을 벌리시는 그이를 울먹하여 바라보았다.

(이분은 누구길래 이렇게 다정히 대해주실가?)

부모를 잃어버린뒤로 너무도 오래동안 들어보지 못한 인정넘치는 목소리가 가슴을 울려 그는 장군님을 바라보기만 할뿐 선뜻 다가가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눈굽이 젖어드는것을 느끼며 준오를 한참 바라보다가 마침내 가슴그득 차오른 격정에 못이겨 품에 안으시였다. 준오의 더벅머리와 토스레 걸친 어깨를, 팔과 등어리를 어루쓸어주시였다. 어린것이 겪은 수난의 흔적같이 여위고 찢기고 멍든 몸을, 불에 탄 옷자락을 오래 만져보시였다.

《얘야, 그동안 어린게 동생까지 데리고다니자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니. 난 너희들이 떠돌아다니다가 잘못되지나 않았는가 해서 걱정을 했는데 인젠 됐다, 됐어···》

목이 잠겨 그이께서는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군의가 순애의 상처에 응급처치를 끝내고 붕대를 다리에 감아주었다.

장군님께서는 준오를 품에서 놓고 신발도 못신고 찾아온 순애의 조그마한 발을 만져보시였다. 어린것이 오빠를 따라 돌부리, 나무뿌리에 걸채이며 어찌나 험한 산판을 고생스럽게 걸어왔는지 엄지발톱이 물러나고 발등과 발바닥은 가시에 온통 찔리고 긁힌 자리였다.

《오빠- 오빠야-》

순애가 실신한채로 누워 갑자기 헛소리를 질렀다.

준오는 가슴을 에이는 동생의 애처로운 부르짖음을 듣다 말고 장군님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아저씨, 우리 순앨 살려줘요!》

소년은 그때까지도 장군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이께서는 준오의 손을 더듬어 꼭 잡으신채 애원이 실린 그애의 처량한 모습을 점도록 내려다보시였다. 지치고 슬픔에 잠긴 눈빛, 불에 끄슬린 머리칼, 송곳처럼 뾰족한 턱, 넝마같이 해지고 땀에 쩌든 토스레자락,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게 썩살이 박힌 발꿈치만 보고도 그동안 이 어린것들이 얼마나 모진 경난을 겪었는가 하는것이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때 쿵쿵 급히 울리는 발구름소리와 함께 전달장 지봉손이 불쑥 나타났다.

《사령관동지, 강안쪽으로 나갔던 정찰대가 돌아왔습니다.》

전달장의 뒤에는 정찰대책임자 주문길소대장이 와서 보고드릴 준비를 하고 긴장하게 서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간명하게 보고할것을 요구하셨다.

《사령관동지! 림강과 휘남쪽에서 벌써 며칠째 관동군부대들이 장백쪽으로 계속 이동해오고있습니다. 큰길가의 주민들은 군대를 싣고 지나가는 군용트럭을 수십대나 보았다고 합니다. 저희들이 도로옆에 매복하여 직접 눈으로 관찰도 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소대장이 보고를 드리고 돌아가자 이번에는 준오를 업어온 리진섭이더러 물으시였다.

《이도강쪽은 어떻소?》

리진섭소대장은 이도강쪽으로 나갔던 정찰대책임자였다.

《저희들은 덕부동주민들의 방조와 우리의 관찰을 통해 며칠사이 혜산쪽에서 수천명의 적들이 넘어와서 이도강부근에 집결하고있다는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보고는 간단했다. 하지만 시사해주는 내용은 간단한것이 아니였다. 심상치 않은 그 불의적이고 격렬한 움직임으로 보아 적들이 이 장백일대에서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준비하고있는것이 확실했다.

장군님께서는 일순 깊은 생각에 잠기는듯 하다가 준오를 다시금 내려다보며 그동안 너희들이 고생한 이야기부터 자세히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준오는 원쑤들의 《토벌》에 어머니를 잃고 큰아버지네 집을 찾아가던 일이며 큰집을 나와 어린 순애를 데리고 떠다니던 일, 공사장에서 매맞고 겨우 숨이 붙어 산속에 쓰러졌다가 동무들을 만나게 되여 서로 의지하고 묻어다닌 일들을 침착히 다 이야기해드렸다. 그러나 그 여섯동무들이 순애한테 신발을 사신기겠다고 모여앉아 의논하던 일에서부터 말을 더듬다가 마을로 내려가서 빈집에 보리짚을 깔고 자던 이야기까지 하고는 갑자기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두손으로 땅바닥을 짚고 좁은 어깨를 들먹이며 꺽꺽 느껴울었다.

묵묵히 듣고계시던 장군님께서 괴로운 눈길을 드시였다.

《어서 마저 이야기해라.》

《전··· 마을에 들어가서 동무들을 다 잃었어요. <토벌대>놈들이 죽였습니다.》

준오는 울음을 가까스로 삼키며 새벽에 달려든 왜놈군대가 무턱대고 집집에 불을 지르고 잠자다가 뛰여나온 마을사람들을 쏘고 찌르고 베이던 처참한 광경을 말씀드리고 숨을 몰아쉬였다.

《원쑤놈들이 그렇게 쏘고 찌르고 할 때 우리 동무들이 있는 빈집에 불이 달렸습니다. 막동이라는 애가 내를 먹구 먼저 뛰여나왔는데··· 원쑤놈들은 그애를 총으로 쐈어요. 전 그애가 아버지를 찾으면서 어푸러지는걸 보았어요.》

장군님께서 군복단추를 끌러놓으시였다. 옆에 서있던 강민이가 치를 떨었다. 격분에 숨결이 높아진 대원들이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죽었느냐?》

마침내 그이께서 다시금 물으실 때 옆에서는 하나같이 가슴을 조이였다. 무슨 이야기가 나오겠는지, 그러지 않아도 괴로와하시는 장군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해드릴것 같아 걱정했다.

준오는 손등으로 눈언저리를 닦으며 총에 맞고 쓰러진 동무아이를 적들이 총창으로 목을 찌르던 이야기를 하였다.

강민은 이때 잠자코 듣고계시던 장군님께서 무릎을 꽉 짚으시는것을 보았다.

김주현련대장이 그만 말씀올리라고 준오쪽에 눈짓을 해보였다.

준오는 이때야 장군님께서 자기 이야기를 듣고 참기 어려워하신다는것을 알아차린듯 머밋거렸다.

《이야기해라, 다 이야기해. 원쑤놈들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네가 본대로 다 이야기하여라.》

장군님께서는 나직이 격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모두들 들어와서 똑똑히 들으라고 문밖에 있는 대원들도 안으로 부르시였다.

순애의 상처가 걱정스러워 천막안의 표정을 살피고있던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안으로 조심히 들어왔다.

《그렇게 동무들이 죽는걸 보고 억쇠라는 아이가 불붙는 서까래를 뽑아가지구 <이놈들아―> 소리를 지르면서 뛰여나왔습니다. 대여섯놈이 그애한테루 달려들었어요. 총대로 서까래를 처버리구 그담엔 총창으로 억쇠의 어깨죽지를 내리쳤습니다. 억쇠는 한팔이 떨어지면서 거꾸러졌어요. 원쑤놈들은 우리 동무들을 그렇게 죽였어요!》

준오는 흐느껴울었다.

장군님께서는 한곳을 뚫어지게 응시하시였다.

《그래, 놈들이 마을사람들도 다 그렇게 죽였느냐?》

《예, 그렇게 죽였어요. 다 죽구 미쳐버린 아이엄마 하나 남았어요.》

대원들은 격분에 치를 떨며 머리를 숙인채 어깨숨만 쉬였다. 당장 자리를 차고 내달릴것 같은 기상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말없이 자리를 일어 밖으로 나오시였다.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그이를 따라나왔다.

장군님께서는 비감이 어린 눈으로 침울히 서있는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둘러보시고 아름드리가문비밑을 천천히 오가시였다.

한자국한자국 무겁게 옮기시는 그이의 눈앞으로는 조선혁명의 앞길을 진두에서 개척하며 사선을 헤쳐온 혈전의 길이 가슴저린 추억과 함께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ㅌ. ㄷ》의 기치로 조선혁명의 봉화를 지펴올리고 간고한 지하투쟁을 거쳐 백두성산에 항일전의 첫 총성을 울리신 때로부터 벌써 십년세월, 그동안 뜻을 같이한 동지들과 전사들을 이끌고 헤쳐온 혁명의 길은 어언 수만리에 달하였다.

그 길에는 혁명의 희열도 있었고 가슴을 저미는 고통도 있었다. 눈물겨운 희생도 있었다. 얼마나 많은 혁명동지들이 나라를 찾기 위한 성전에 한목숨 서슴없이 바치였던가. 일찌기 장군님의 품을 찾아온 열혈시인 김혁이 불멸의 송가를 남기고 그렇게 갔으며 장군님슬하에서 혁명무력의 첫 참모장으로 자란 차광수가 시체도 안남기고 광야에 피뿌리며 그렇게 갔다. 수많은 동지들이 그들처럼 장렬히 한몸을 혁명에 바쳤다.

장군님께서는 이들 하나하나를 잃을 때마다 더없이 귀중한 그 무엇이 몸에서 떨어져나가는것 같은 아픔과 함께 늘 한가지 내려가지 않는것이 있었다. 그것은 혁명전사들이 남기고 간 자식들에 대한 생각이였다.

아버지 잃은 그애들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자라는지 장군님께서는 무시로 그애들 생각을 하게 될 때면 가슴을 저미는것 같은 아픔을 느끼시였다.

그런데 지금 희생된 한 전사의 자식이 원쑤의 총탄에 피를 흘리고 의식을 잃어버렸다.

(좀더 일찍 이애를 찾았으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시니 당장 간도와 8도강산 삼천리에 흩어져있는 전우들의 자식들을 다 한품으로 데려오고싶으시였다. 그애들이 이 순간도 원쑤들의 총칼에 쓰러지고 불속에 들어가며 피맺힌 부르짖음으로 구원을 호소하고있는것만 같으시였다.

허나 마음뿐이지 지금 당장 그애들을 전부 데려올수 있는가? 나라가 없는데 데려다가는 어느 지붕밑에 건사해주겠는가?

이것은 장군님께 있어서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가장 큰 아픔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런 아픔이 늘 가슴한구석에 멍울져있어 지난해에는 형편이 어려웠지만 마안산에서 숱한 어린이들을 데리고 떠나시였고 그들을 후방밀영에 보낸뒤로는 바쁜 틈에도 자주 들려 애지중지 보살펴오시였다. 어려운 싸움을 해서라도 그들만은 굶기지 않고 먹이고 입히며 자래워왔다. 그런데 적들의 칼부림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준오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그처럼 애써 돌봐온 후방밀영의 아이들도 은근히 걱정되시였다. 정세가 시시각각으로 더 엄혹해지고 적들이 여기 장백일대에 대대적으로 무력을 집결하고있는 이때 그애들을 밀영에 계속 두는것이 과연 옳은가?

《놈들이···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죽였단 말이지···》

그이께서 고통스럽게 뇌이시는것을 보고 강민이가 울분을 터뜨리며 말씀드렸다.

《장군님, 당장 그놈들을 쫓아가서 복수하겠습니다.》

둘러선 대원들모두가 부르쥔 주먹을 불끈 쳐들어보였다.

《복수합시다!》

피맺힌 절규가 그들의 입에서 터져나올 때 장군님의 짙은 눈섭이 푸들푸들 떨렸다. 당장 출동명령을 내리실것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불찌가 튀는 지휘관들의 눈을 일별해보고 저벅저벅 저앞 전나무밑까지 갔다가 다시 오시였다. 그렇게 하기를 몇번 거듭하시더니 강민이앞에 걸음을 멈추며 대원들을 향해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가보우. 그애들에 대한 복수는 하게 될 날이 있을것이요!》

이때 장군님의 눈에서는 서리발같은 분노의 빛이 또 한번 번쩍하였다. 김주현이며 여러 지휘관들이 못박힌듯 서서 괴로와하시는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장군님께서 금시 폭발할것 같은 분노를 가까스로 누르며 당장은 참아야 할 고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렇게 조용히 말씀하시였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