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7


 

제 1 장

7

 

새로 나타난 낯선 아이들은 준오가 몸을 가누지 못하는것을 보고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다가 가까운 절벽밑으로 업어갔다. 이어 준오를 위해 조그마한 모닥불이 아늑한 절벽밑에 타올랐다. 준오는 어룽거리는 불빛에 자기의 손발을 녹여주는 그들의 얼굴을 가려보았다. 모두 여섯이였는데 자기와 한또래였다.

그들은 모닥불을 가운데 놓고 둘러앉았다가 준오가 좀 피여나자 너는 어떤 아이냐고 물어보았다. 준오는 자기와 같이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은 그들의 행색만 보고도 마음이 놓여 유격대에 간 아버지를 찾아다니던중 공사장에서 매맞고 순애를 잃어버리게 된 경위를 숨김없이 이야기했다. 그애들은 서로 준오의 손을 잡아주며 이제부터 우리 서로 의지해 살자고 위로해주었다. 이들도 왜놈들의 《토벌》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유격대를 찾아 벌써 한달째 산속을 헤매는 집없는 고아들이였던것이다. 막동이와 갑돌이라는 애가 열세살이고는 다 준오와 동갑이였다.

날이 새자 그들은 준오를 위해 어설프기는 했지만 초막을 쳐놓고 뻐꾹채를 짓찧어 상처에 발라주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마을로 내려가 좁쌀을 몇줌 얻어가지고와서 미음을 쑤어 그에게 권했다.

준오는 그들이 권하는 미음을 먹을수가 없었다. 어혈이 진 몸이 괴로운것보다도 선 개암을 따먹던 순애가 어디 가서 외로이 헤맬 생각을 하니 그 미음을 목으로 넘길수가 없었다.

《순앨 찾아야겠는데···》

준오는 초막속에 누워 헛소리치듯 때없이 순애를 찾군 하였다. 그러다가 소르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깨여나보니 주위가 조용하였다. 자기를 돌봐주던 아이들이 하나도 없다.

(혹시 날 버리구 간게 아닐가?)

몸을 일으켜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써도 일으킬수가 없었다. 더럭 겁이 났다. 순애를 찾지 못하고 여기서 죽을것만 같았다. 기여서라도 인가를 찾아내려가고싶었다.

가까스로 몇발자국 초막밖을 기여나오는데 때마침 웅성거리는 인기척이 났다. 새로 사귄 동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한둘이 나가서는 순애를 인차 찾을것 같지 않아 전부 산아래 동네로 내려가서 사방으로 뛰여다니다가 어느 방아간에 들어가 울고있는 순애를 업고 왔던것이다.

준오는 아이들의 손을 꼭 잡으며 목메여 부르짖었다.

《고맙다. 난 너희들을 죽어도 못 잊겠다.》

그들은 사흘이나 준오곁에 붙어앉아 간호해주었다. 준오가 일어나서 걸을만 하게 되자 일행은 또다시 유격대를 찾아떠났다.

동무들은 발이 부르터서 따라오기 힘들어하는 순애를 등에 업고 걸었다. 동갑이지만 의리심이 강하고 힘도 세여서 동무들속에서 형구실을 하는 호철이라는 소년은 준오를 각별히 아껴주었다.

《순애는 걱정말어. 우리가 맡을테니. 이제 유격대에 찾아가서 장군님을 만나면 우리두 자랑삼아 할 말이 있어야 할게 아니냐.》

순애는 처음 한동안은 친오빠같이 살뜰한 그들의 등에 말없이 업혀다녔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미안한 생각이 드는지 며칠 안가서 제발로 걷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무리 업히라고 달래여도 《싫어, 싫어.》 하며 한사코 맨발로 달랑달랑 따라왔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먼길에 장딴지가 굳어져도 도무지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준오의 동무들은 순애의 자그마한 발이 돌부리에 채일적마다 눈물을 머금고 걸으며 삯일을 해서라도 신발을 한컬레 사신기자고 공론을 했다. 일치한 합의를 보자 유격대를 찾아가던 소년일행은 산기슭에 있는 마을로 내려갔다.

그들이 찾아내려간 령동마을은 《집단부락》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산재부락들중의 하나였다. 들어가보니 마을에는 문을 열어놓은 빈집이 한두채가 아니였다. 왜놈의 강박에 못이겨 《집단부락》으로 끌려간 집들이였다.

감옥같이 울타리를 친 《집단부락》에 들어가기가 싫어 뻗대고있는 집들에서는 고콜불을 켜놓고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새여나왔다.

불에 닦은 강냉이 몇줌으로 저녁을 굼땐 준오네 일행은 우물가까이 있는 어느 한 빈집으로 숨어들어갔다. 잠자리로는 맞춤하였다. 묵은 보리짚을 몇단 얻어다가 푹신하게 깔고 드러눕자 인차 모두 잠들어버렸다. 준오만 혼자 보리짚속에 몸을 파묻고 잠 못든채 온밤 동무들 생각을 하였다.

《좋은 아이들인데!》

순애한테 신발을 마련해주겠다고 마을로 들어와서 보리짚을 깔고 누워자는 동무들의 심정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돈 한푼 쥔것이 없어 오면서 동무들의 길량식까지 축낸 생각을 하면 더구나 미안하였다. 어떻게 하든 제손으로 아침끼니라도 한번 마련하고싶었다.

(어디 가면 먹을걸 좀 구해올수 있을가?)

생각을 추리던끝에 마을변두리밭으로 나가 감자라도 몇알 캐오자는 궁리가 텄다.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아 사람들의 눈에 뜨일 념려도 없었다.

준오는 동무들이 깰가봐 보리짚속에서 가만히 일어나 발을 저겨디디며 문밖으로 나갔다.

사위는 고요한데 부지런한 아낙네들이 용드레로 새벽물을 긷는지 가까운 우물쪽에서 쭈르르쭈르르 줄감는 소리가 났다.

준오는 눈밝혀 주위를 살피다가 마을을 얼마간 벗어나서 하얀꽃이 핀 감자밭을 만났다. 자루가 없어서 토스레적삼을 벗어 축축한 감자밭고랑에 보자기삼아 펴놓았다. 부자집밭이면 좋고 가난한 집 밭이면 안되였다는 생각을 하며 감자포기밑에 손을 넣는데 아직 철이 일러 잡히는 감자알이 새알같았다. 하지만 동무들을 굶기지 않자면 여기에라도 매달리는수밖에 딴도리가 없었다. 분주히 제비알만 한 감자를 손가락으로 후비고 뚜져내여 땀내나는 적삼에 흙묻은채로 담았다. 한참 이렇게 감자포기를 맨손으로 뚜질 때 동구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준오는 이슬에 젖은 감자포기를 잡은채 가는 목을 빼여들고 소리나는쪽을 바라보았다. 처음은 멀리서 땅을 구르는 말발굽소리를 가려들었고 그다음은 뒤따라오는 자동차소리를 분간해들었다.

때아닌 새벽에 무슨 일인지 몰라 준오가 머리를 기웃거리는 사이 벌써 동구쪽 신작로우에 말탄 군대가 뽀얗게 먼지를 일쿠며 나타났다. 군도를 휘두르는자들도 있었다.

(왜놈들이 아닌가!)

불길한 생각이 피끗 준오의 머리속을 스쳤다. 그전에 어머니와 마을사람들을 죽일 때도 왜놈들은 멀리서부터 기세를 올리는지 저렇게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준오는 밭고랑에 펴놓았던 적삼을 얼른 집어들었다. 금방까지 열심히 뚜져낸 감자알들이 발등에 와르르 떨어졌다.

공포를 몰아오는 말발굽소리, 우르릉거리는 자동차소리가 점점 커지고 푸름한 새벽빛에 기마대의 륜곽을 알아볼만큼 거리가 가까와졌을 때 준오는 놈들의 손에 들려있는 불망치도 가려보았다. 육박해오는 놈들의 심상치 않은 돌입에 온몸이 오싹하였다.

드디여 기마대 선두가 질풍같이 마을어구로 들이닥쳤다. 어느 한자가 고삐를 잡아채는지 달려오던 군마가 앞발을 공중 쳐들고 오홍- 울음소리를 지르며 초이영을 덮은 농가주위를 한바퀴 휘돌았다.

(저놈들이? 《토벌대》다!)

기병놈들은 들이닥치자바람 집집의 지붕우에 불망치를 뿌려던지고 추녀밑에도 쑤셔박았다. 염천에 바싹 말랐던 초이영들은 화약처럼 불이 달렸다. 순애와 동무들이 자고있는 빈집옆에서도 불길이 솟아올랐다.

준오는 적삼을 구겨쥔채 주먹을 부르쥐고 정신없이 달렸다. 왜놈들이 마을에 달려든줄도 모르고 동무들이 아직 자고있을것 같아 제정신이 아니였다. 주먹을 부르쥐고 천방지축 내닫던 그는 돌부리에 채여 제몸을 태질하며 길바닥에 넘어졌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칼을 뽑아든 장교가 준오옆을 휙 지나가며 허리를 굽히는 순간 번뜩이는 칼날이 귀부리를 스쳤다. 죽은듯이 엎드린 준오를 앞질러 숱한 기마병이 바람같이 지나갔다. 준오는 놈들의 눈을 피해 다시 일어나 달리다가 길옆의 돌각담뒤로 몸을 숨겼다.

사방에서 개가 짖고 닭이 풍기고 소가 외양간에서 네굽을 안고 뛰여나왔다. 자다가 깨여나서 맨발바람으로 쏟아져나온 사람들이 칼에 맞아 넘어지며 부르짖었다.

《왜놈이다!》

《차돌아―》

《엄마야―》

찾고 부르는 소리, 비명소리, 뿌지직뿌지직 불타는 소리, 말발굽소리, 호령소리, 고함소리가 사방에 울리는 가운데 마을은 삽시에 불길과 연기에 휩싸였다.

놈들은 마을복판으로 군용트럭을 들이밀며 기관총사격까지 들씌웠다.

적수공권의 마을사람들은 칼에 찍히고 총에 맞아 피를 토하며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이때 한 녀인이 짚신짝을 손에 쥐고 준오쪽으로 허겁지겁 달려오며 목터지게 자식을 찾았다.

《막내야― 차돌아―》

불속에서 어머니를 잃어버렸던 대여섯살난 사내아이가 옷자락에 불이 달린채 《엄마야―》 하며 녀인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어린것은 어머니품에 안기지 못하였다. 별안간 얼굴에 칼자리가 난 오장이 독수리같이 달려들어 녀인의 머리를 총탁으로 까고 총창으로 사내애의 가슴을 찔렀다.

《악귀같은놈···》

준오는 바스라지도록 이발을 뿌드득 갈며 치를 떨었다. 한쪽볼에 흉하게 칼자리가 난 오장놈의 얼굴을 눈에 똑똑히 새기며 쏘아보았다.

꾸역꾸역 연기를 말아올리던 불길은 독사의 혀처럼 사처에서 시뻘건 혀끝을 날름거리더니 드디여 동무들이 있는 빈집처마까지 삼켰다.

준오는 하늘이 통채로 무너지는것 같았다. 당장 달려가고싶지만 곳곳에 총칼이 번뜩거려 꼼짝할수가 없었다.

(순애는 어떻게 되였을가? 동무들은···)

준오는 타드는 가슴을 피가 지도록 쥐여뜯었다. 사나운 바람같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불길이 집을 뒤덮는데도 동무들은 밖에 얼씬하지 않았다. 피할길이 없어 불속에서 부둥켜안고 울고있는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달려가려는데 추녀밑으로 연기를 먹은 막동이가 뛰여나왔다. 그애는 열발자국도 못뛰여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막동이를 쏜 적들은 수상쩍은 생각이 들었는지 불길에 휩싸인 빈집앞으로 달려가며 총을 쏘았다. 그속으로 이번에는 갑돌이가 눈을 싸쥐고 뛰여나왔다. 그러자 한놈이 달려가서 비칠거리는 갑돌의 숨통을 총창으로 찔러죽였다.

준오는 온몸이 와들와들 떨리고 눈자위가 휙 뒤집히는것 같았다. 도대체 방금까지 잠잠하던 마을에 어떻게 갑자기 이런 참변이 들이닥칠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불을 지르고 쏘고 찌르고 하던 놈들은 더 해볼데가 없게 되여서야 한걸음 물러서서 불타는 마을을 바라보며 한참 히히덕거렸다. 그러더니 의기양양하여 말을 몰아 오던 길로 사라져버렸다.

준오는 돌각담뒤에서 뛰여나왔다. 몸에 불이 달리는것도 아랑곳 않고 불붙는 집속으로 날아들었다. 숨 못쉬게 연기가 자욱하여 눈을 뜰수가 없었다. 손더듬으로 담벽밑에서 죽은 동무들을 찾아내였다. 그애들밑에는 순애가 있었다. 처음에는 순애도 죽은줄 알았는데 머리를 들어올리자 신음소리를 내였다. 준오는 순애를 둘쳐업고 숨이 막혀 밖으로 뛰쳐나왔다. 눈앞에는 불길과 연기, 주검만 보였다. 나무타는 냄새, 헝겊타는 냄새, 생살타는 냄새가 매캐한 연기에 뒤섞이여 코를 찔렀다.

얼마 안있어 타버린 집들이 무너져내리며 불길이 잦아들었다. 준오는 죽은 동무들의 얼굴이라도 보고싶었다. 마을을 떠나기전에 제손으로 묻어라도 주고싶었다. 그래서 울음을 삼키며 순애를 내려놓고 비칠비칠 죽은 동무들 있는데로 가는데 머리를 풀어헤친 녀인이 달려왔다.

《차돌아―》

녀인은 팔을 벌려 준오를 안으며 흐느껴울었다.

《살았구나. 우리 차돌이가 살았구나···》

준오는 녀인이 아까 오장놈의 총창에 찔리여죽은 아이의 어머니라는것을 알았다. 녀인은 그때 오장의 총탁에 맞고 까무라쳤다가 불행하게 혼자 살아남은것 같았다. 준오는 실성한 차돌이어머니를 붙안고 제설음에 겨워 함께 울다가 녀인의 손에서 벗어나며 용서를 빌었다.

《어머니, 안됐어요. 전 차돌이가 아니예요.》

그래도 한사코 붙잡는 녀인을 뿌리치고 준오는 죽은 동무들 있는데로 뛰여갔다.

《얘야, 웬일이냐. 내가 네 에미다―》

《아니예요 어머니, 전 다른 아이예요.》

《아니다. 차돌아, 내 아들아―!》

녀인은 두팔을 허공에 저으며 이미 불속에 없어진 자식을 그냥 애절하게 찾고있었다.

준오는 자기도 미칠것 같아 녀인쪽을 보지 않으며 불타버린 집속으로 들어가 동무들의 주검을 하나하나 산기슭으로 안아갔다. 어제저녁만 해도 다정히 모여앉아 순애한테 신발을 사신기자고 의논하던 동무들이 그의 팔에 안겨 말이 없다. 준오는 동무들의 주검을 모두 나란히 눕혀놓고 그앞에 고개를 떨구었다.

여섯명이던 동무들중에 다섯이 이렇게 무참히 죽었다. 한 아이는 불속에서 뛰쳐나간것 같은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준오는 불탄 집에서 자루가 반나마 타버린 삽을 얻어다가 동무들의 주검을 나란히 눕힌대로 한곳에 묻어주었다. 그리고는 이상하게 낮고 펀펀해진 무덤앞에 서서 눈물을 삼키며 약속했다.

(막동아, 갑돌아··· 얘들아, 내 기어이 원쑤를 갚아주마.)

하늘에는 재가루 섞인 시커먼 연기가 구름장같이 드리우고 주위에는 남은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옆에 서있는 불탄 오동나무만이 부모를 잃고 서럽게 살길을 찾아헤매다가 이역의 낯설은 마을에 와서 처참히 죽은 어린 령혼들한테 묵도라도 하듯이 비애에 잠겨 거밋하게 서있었다.

순애는 그때까지 가뭇 기척이 없었다. 가슴만 팔딱팔딱 뛰고 총에 맞은 한쪽 다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준오는 호박잎을 뜯어 순애의 상처에 붙이고 적삼을 찢어 싸매준 다음 등에 업었다.

그때 뚜벅거리는 말발굽소리가 동구쪽에서 또다시 들려왔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왕별을 어깨에 붙인자가 말을 타고 기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났다.

준오는 동생을 업은채 돌각담뒤로 몸을 숨기고 말우에 앉은자를 노려보았다. 눈확이 우묵하고 얼굴이 네모진 이 소장은 관동군 지구《토벌》사령부 우미야마사령관이였다. 그는 한손에 눈같이 흰 장갑을 쥐고 연방 투레질을 하는 피말을 달래이면서 불타버린 마을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소장은 어제저녁 참모장으로부터 자기네 사령부관하 여러 부대들과 병사들의 동태에 관한 보고를 매우 구슬픈 심정으로 들었다. 《7. 7사변》이후 진군하는 제국군의 기세에 보조를 맞추어 후방의 안전보장에 총력을 다해야 할 이때 여기 조만국경일대에서는 어느 부대나 할것없이 김일성빨찌산과 맞다드는것을 은연중 두려워하는 형편이라고 참모장은 보고했다. 참모장은 원인을 밝히며 김일성빨찌산과 접전할 때마다 입게 되는 치명적인 손실과 상대방의 신묘한 전술이 병사들의 심리에 공포감을 주기때문이라고 제 생각을 꺼리낌없이 덧붙였다. 보고를 받고 우미야마가 어떻게 하면 병사들속에 전쟁열과 살륙욕을 고취하겠는가 우울히 생각에 잠겨있는데 부아를 돋구는 소식이 련달아 들어왔다. 지금 《토벌》사령부관하지역에서 강행되고있는 《집단부락》공사가 굼뜨게 진척되고있으며 이미 설치한 《집단부락》으로는 산재해있는 부락민들이 순순히 들어가려 하지 않고 구실을 내대며 뻗대고있다는 보고였다. 그런 부락들중의 하나가 바로 이 령동마을이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혁명군과의 싸움에서 《비민분리》의 중요성을 체험으로 터득한 우미야마는 부임해오는 즉시 통제하에 있는 경찰서장들에게 주민들을 전부 《집단부락》안에 몰아넣으라고 엄명하였다.

그런데 감히 이 우미야마의 령을 거역하다니? 그는 극도로 분격했다. 혁명군이 발붙일수 있는 산재부락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일대의 모든 산재부락을 위협할 목적으로 령동마을을 불태워버리기로 작정하였다.

《령동마을은 불온사상에 물젖은 마을이다. 무자비하게 불지르고 죽여버리라.》

우미야마는 산하에 있는 하시까와부대를 마을로 내몰 때 병사들앞에서 언명했다. 그리고는 자기의 명령이 어떻게 집행되였는가를 직접 보려고 지금 이렇게 현장에 나타난것이다. 우미야마는 매캐한 연기내가 싫은지 흰 장갑으로 코를 막고 재만 남은 마을을 돌아보았다.

준오는 이 참상을 빚어낸 장본인이 말을 타고 점잖게 눈앞을 지나가자 이를 갈며 마을을 떠났다.

《차돌아― 이애, 내 아들아―》

등뒤에서는 미쳐버린 녀인의 목소리가 그냥 들려와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의지하던 동무들을 다 잃고 죽은 애처럼 축 늘어지는 순애를 업은채 눈물을 뚝뚝 떨구며 준오는 향방없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