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6


 

제 1 장

6

 

준오는 벌써 몇번째 수잠에서 깨여나 지새는 밤과 같이 자리를 옮기는 북두칠성꼬리를 내다보았다. 시간맞추어 깨여나지 못할가봐 좀처럼 굳잠에 들지 못하였다. 어제는 한발 늦는통에 공구가 차례지지 않아 빈손으로 초막에 돌아왔다. 이른아침 창고앞으로 나가 먼저 공구를 얻어들고 《만보》까지 한장 받아쥐여야 그날 일할 권리가 차례지는데 종일 일하고나면 저녁에 공구를 바칠 때 돈표를 내준다. 어른은 토공일이 하루에 60전이고 소년은 그나마 반분도 안되는 15전이다. 준오는 요사이 이 초막에 거처를 정하고 《국도국》에서 청부업자와 계약을 맺고 닦는 도로공사장에 나가 일공로동을 하고있었다.

초막안은 자정이 지나 한여름인데도 랭기가 썰렁하게 돌았다. 포근히 몸을 감싸줄수 있는 덮개가 그리웠다. 공사장에서 가마니짝이라도 한잎 말아가지고 오지 못한것이 후회되였다.

옆에서는 오빠가 벌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오는바람에 저녁을 굶은 녀동생 순애가 허리를 꼬부린채 숨소리도 없이 자고있다.

사위여가는 모닥불은 파릿한 그애의 얼굴과 초들초들 말라터진 엷은 입술을 소리없이 얼비치였다.

이따금 수림속을 비집고 나온 바람이 불을 덮치면 사방에 장막같은 어둠이 검은 자락을 펴들고 달려든다. 그러다가도 바람이 자고 모닥불이 다시 머리를 들면 자락을 끌며 수림속으로 황급히 사라진다. 어찌보면 어둠과 모닥불의 지꿎은 일진일퇴는 수탉싸움같기도 하다.

모닥불이 밝아졌다꺼졌다 할 때마다 아홉살난 어린 순애의 얼굴도 불빛에 드러나고사라지고 하며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준오는 다시 새우잠을 자는 동생곁에 누워 피곤이 몰리는 눈을 감았다. 푹 자기라도 해야 공사장에 나가 쓰러지지 않고 비쳐내겠는데 한번 깨였다가 누우면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눈을 꼭 감고 한참 궁싯거려서야 겨우 풋잠에 들수 있었다. 그러나 제때에 못 일어날가봐 어느새 또 깨여나서 눈을 떠보니 옆에서 자던 순애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초막밖에서 빠작빠작하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준오는 일어나앉으며 소리나는쪽을 내다보았다. 순애가 모닥불가까이 있는 개암나무앞에 쪼크리고앉아 아직 여물지 않은 선 개암을 따서 빠작빠작 까먹고있었다.

준오는 입술을 깨물며 밖으로 나가 동생뒤로 소리없이 다가갔다. 개암을 따던 순애가 기척을 느끼고 흠칫 놀라며 돌아다보았다. 그애는 뒤에 와 선 오빠를 보자 무슨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얼른 개암 쥔 손을 뒤로 감췄다.

《순애야, 너 왜 자지 않고 나왔니?》

순애는 손을 감춘채 오빠를 말끄러미 올려다보며 방긋 웃었다.

《오빠, 잠이 안오지뭐, 암만 자자구 해두 눈이 자꾸 떠지지뭐. 그래서 갑갑해서 나왔어. 오빠 깰가봐 몰래 나왔어.》

《손에 쥔건 뭐냐?》

《개암이야, 심심해서 땄어. 한알 먹어보니깐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오빠두 한알 먹어볼래?》

순애는 뒤로 감추었던 손을 앞으로 내밀며 개암 한알을 오빠손에 쥐여주었다. 준오는 도토리알만 한 선 개암을 바스라지게 틀어쥐고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순애야, 너 배고파 그러지. 너 아무것도 못먹었지.》

순애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대답이 없더니 오빠 손등에 갑자기 눈물을 뚤렁뚤렁 떨구었다.

준오는 동생을 와락 그러안았다. 그리고는 울었다. 둘다 서럽게 울었다.

《순애야, 난 나쁜 오빠다.》

《아니야 아니야, 난 오빠가 제일 좋아.》

순애는 오빠품에 작은 머리를 꼭 박으며 흑흑 흐느껴울었다. 준오는 빼빼마른 동생의 손을 잡고 달래다가 그애를 초막안에 안아다 눕히고 자기 토스레저고리를 벗어 덮어주었다. 순애는 자면서도 그냥 흑흑 흐느끼였다.

준오는 뒤숭숭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까스로 여윈잠에 들었다가 한시간이 못지나 또 깨여났다. 초막밖으로 나가보니 북두칠성꼬리가 어느덧 남쪽으로 돌아앉았다. 새벽 세시경이 되면 유난히 큰 이 별무리의 꼬리가 저렇게 남쪽으로 돌아앉는다. 그전에 어머니는 아버지가 새벽길을 떠날적이면 저 별무리를 보고 일어나 밥을 짓군 했다.

준오는 잠이 설깨여 눈을 비비며 서둘기 시작했다. 빨리 요기를 하고 5리밖에 있는 공사장으로 나가 오늘은 기어이 삽이건 괭이건 한자루 손에 얻어쥐여야 한다. 실수가 없도록 오늘은 맨 선참 달려가서 아예 도구창고문을 지킬 작정이다.

그는 모닥불에 삭정이를 더 넣고 시꺼멓게 그을음이 묻은 남비를 짝지발을 박고 건너지른 막대기에 걸어놓았다. 얼마 안있어 제법 부글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남비뚜껑이 풀떡거리며 슴슴한 김을 뿜어올렸다. 간밤에 소금도 못 넣고 아침밥 대신 미리 끓인 산나물국을 데우는것이다.

준오가 땅에 얼굴을 붙이며 국을 채 못덥히고 꺼질것만 같은 불길을 입김으로 돋구는데 잠에서 깨여난 동생이 벌거벗은 오빠의 웃도리에 덮고자던 토스레저고리를 씌워주었다.

《너, 왜 벌써 일어났니?》

《오빠, 내가 국 덥혀줄게.》

순애는 마룩마룩 오빠를 바라보며 눈물자국이 그대로 있는 얼굴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 어린것이 일나가는 오빠에게 밝은 얼굴을 보이려고 저런다고 생각하니 준오는 오히려 맥이 탁 풀렸다. 오빠를 따라다니는 경난속에 너무도 일찍 철이 드는 동생을 보는것이 서글프도록 화가 났다.

준오는 김이 피여오르는 산나물국을 남비채로 들고 훌훌 마시고나서 남긴 국을 내려다보며 동생더러 일렀다.

《순애야, 불을 죽이지 말구 날이 밝으면 한번 더 덥혀서 먹어라.》

《오빠, 더 먹어. 점심도 못가지고 가서 어떻게 일해?》

《오빤 힘장수가 돼서 일없다.》

준오는 짜장 힘꼴이나 쓰는듯이 어린 순애조차 못미덥게 보는 여윈 팔로 우쩍 힘쓰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리고는 기다리라고 손을 흔들어보이며 공사장으로 달려갔다.

헐썩거리며 현장에 이르고보니 사위가 아직 어둑하여 인적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잠을 못자며 밤새 들락날락한 보람이 있어서 제일 선참으로 나왔다. 그래도 준오는 밥바리만 한 자물쇠를 두손으로 어루쓸어 만져보고 창고문을 열지 않았다는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숨을 쉬며 문앞에 지켜앉았다. 뛰여오느라고 목이 타들어 어디 가서 랭수라도 한사발 켜고싶었지만 창고문을 열 때까지 떠나지 않고 앉아 기다릴 작정이였다.

(오늘이야 틀림없겠지?)

마음이 놓이자 비로소 졸음이 와서 습기가 올라오는 축축한 땅에 주저앉아 끄떡끄떡 고개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한참 그러다가 문짝에 돋은 옹이박이에 이마를 찧고 깨여나보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모여들기 시작하자 삽시에 장사진을 이루었다. 가까운 서천거리와 장천동, 북촌쪽에서 삯품으로 근근히 연명해가는 사람들과 절량농민들이 보리밥에 된장을 발라 담은 점심곽을 뒤에 차고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드디여 불을 토하듯이 동산마루에 해가 불쑥 솟아오르고 늙수그레한 창고지기가 일본인감독과 같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물고 증오의 눈찌로 감독의 표표한 상통을 지켜보았다. 저희네 족속인 청부업자밑에서 돈냥이나 얻어먹으며 적은 인부를 사서 많이 부려먹는것이 감독이 하는 일이였다. 그는 창고문쪽으로 오다가 맨앞에 서있는 준오를 보더니만 대번에 눈살이 꼿꼿해졌다.

《넌 웬놈의 자식이야?》

《일하러 왔어요.》

감독은 바짝 여위여서 목이 가늘고 다리가 껑충한 준오의 몸꼴을 훑어보더니 대뜸 귀바퀴를 잡고 줄밖으로 끌어냈다. 준오는 안끌리겠다고 벋디디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놓으라요. 왜 이래요?》

《어디서 이런 물거미뒤다리같은 녀석이 나타나서··· 창고지기, 공구를 장정들에게만 주라구!》

감독은 귀가 빠지도록 준오의 두쪽귀를 잡고 줄줄 끌어다가 저만큼 멀리에 팽개쳐버렸다. 온밤 자지도 못하고 벼르다가 먼저 달려와서 맨앞에 섰는데 순서를 떼웠다.

그러는사이 창고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서로 손을 내밀며 붐비여서 준오는 도저히 뚫고들어갈 형편이 못되였다. 그러나 무슨 수를 써서도 오늘은 도구를 하나 손에 넣어야 한다. 그까짓 나혼자라면 더러워서도 단념하겠지만 몇끼째 낟알구경을 못한 불쌍한 순애가 눈이 까매서 오빠를 기다린다.

준오는 울상이 되여 사람들의 뒤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그들의 사타구니밑으로 기여나가 창고지기앞에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창고지기령감은 나한테도 하나 달라고 손을 내밀고있는 소년의 애원섞인 눈빛을 내려다보다가 말없이 삽을 한자루 내주었다.

그리하여 준오는 이번에도 욕하지 않고 순순히 통과시켜주는 어른들의 다리사이를 빠져나와 일판으로 달려갔다.

그는 어른들틈에 끼여 돌섞인 땅을 파서 짐수레에 실어주는 일을 하였다. 꼭두새벽에 산나물국으로 빈창자를 얼리고 온 그는 첫손에 벌써 허기를 느껴 힘을 도무지 쓸수가 없었다. 오후에는 비까지 출출 내려 비물인지 눈물인지 알수 없는 쩝쩔한 땀물이 계속 입으로 새여들고 신발을 신지 못한 맨발에는 찰흙이 찐득찐득 달라붙어 다리를 옮길수조차 없었다.

허지만 저녁에 돈표를 안줄가봐 준오는 이를 사려물고 삽질을 하며 곁눈 한번 팔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 도구를 바치며 15전짜리 돈표 한장을 손에 쥐고서야 큰숨이 나갔다. 그는 걸음을 옮길 힘도 없었으나 기다릴 동생을 위해 전표장을 쥐고 7리밖 서천거리에 있는 미점으로 달려갔다. 이 삯전표를 주고 쌀과 바꿔오자는것이였다. 전표를 돈과 바꾸는 날은 따로 있었으므로 리속에 밝은 장사치들은 돈에 바쁜 품삯군들에게서 한장에 2할씩 깎고 이 전표를 사가지고는 덧두리를 쳐먹었다.

《여보시오, 쌀 삽시다.》

준오는 미점문을 두드렸으나 무슨 일인지 오늘은 벌써 문을 닫아버렸다. 아무리 덧문을 두드려도 주인이 나오지 않았다.

촐촐 굶은 순애가 《오빠야, 나 밥.》 하며 달려오는것 같았다. 오늘저녁도 그애를 굶길가봐 겁이 더럭 났다. 생각던끝에 가까이에 있는 목재소함바로 달려갔다. 밥짓는 어머니더러 어린 동생이 기다리는 사정이야기를 하며 밥 한그릇만 얻자고 통재산인 전표 한장을 내밀었다. 함바집어머니는 그를 측은히 쳐다보다가 줴기밥 두덩이를 신문지에 싸주며 전표는 안받겠다고 도로 주었다.

구질거리던 비는 멎고 갈구리같은 초생달이 서켠하늘에 쓸쓸히 걸려있었다. 준오가 부어오르도록 지친 다리를 끌며 십리길을 달려 동생이 기다리는 초막으로 왔을 때 순애는 손벽을 치며 반겨맞았다.

《오빠, 힘들었지.》

《나야 뭘, 너 얼마나 배가 고팠겠니.》

준오는 달빛이 희미하게 새여드는 어둠속으로 나가 손더듬으로 삭정이와 가랑잎을 한아름 주어왔다. 그리고는 순애가 닦아놓은 남비에 찬밥을 넣고 부시를 쳐서 불을 달려고 했으나 가랑잎이 젖어 불이 달리지 않았다. 여기저기 더듬으며 불살개를 찾던 손이 토스레 안주머니에 문득 갔다. 거기에는 유지로 싸기까지 한 접은 종이장이 들어있었다.

준오는 이때까지 부작처럼 건사해온 종이장을 안주머니에서 꺼내들었다.

왜놈들의 《토벌》을 당하던 날 어머니는 숨지기전에 이것을 주며 아들애한테 일렀다.

《준오야, 알아보겠니? 여기에 큰아버지네 집으로 찾아가는 길이 있다. 순애를 데리구 큰아버지네 집으로 찾아가거라.》

준오는 그때 어머니가 주는것을 토스레저고리에 안주머니까지 달고 소중히 건사했다. 그에게는 이 하나의 종이장이 자기들을 먹여주고 보호해줄 큰아버지처럼 생각되였다. 그런데 순애를 데리고 정작 큰아버지네 집에 가보니 살림형편도 그렇고 경찰이 눈을 밝혀 얹혀있을 형편이 못되였다. 큰아버지가 내색을 못하고 혼자 속을 썩이는것이 준오를 더욱 괴롭게 했다. 그러다가 큰아버지가 밤늦도록 화술을 마시고 큰어머니와 다투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자 더 얹혀있고싶지 않았다. 원체 준오는 어렸을 때부터 큰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때문이였던지 큰아버지와 아버지는 마주앉기만 하면 독립군이 어떻고 공산당이 어떻고 하며 피대를 세우고 언쟁을 하였다. 아버지가 유격대에 입대한 후에도 언쟁은 그치지 않았다. 한번은 고개너머 큰아버지네집에 심부름을 갔는데 뜻밖에도 아버지와 웬 유격대아저씨 한분이 와있었다. 큰어머니가 귀띔해주는 말이 무슨 공작을 같이 나왔다가 경찰이 따라와서 뛰여들어 몸을 숨겼다고 하였다. 그런데 큰아버지는 두사람을 집에 숨겨주고도 마주앉아 전에 하던 언쟁을 계속하는것이였다.

준오는 그때부터 큰아버지가 아버지에 대해서 늘 욕만 하고 지독하게 고집이 센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였다. 그렇게 한번 아니라고 하면 그만인 큰아버지가 이날은 동생네 아이들인 자기와 순애때문에 속을 썩이다가 폭주를 하고 쓰러졌다.

준오가 아침일찍 일어나 자리를 거두고 내려다보니 큰어머니는 부엌에서 죽가마를 왈왈 젓고있는데 큰아버지는 만취하여 쓰러진채 끙끙 신음소리를 내며 그때까지 일어나지 못하였다.

준오는 차라리 자기네가 사라지는것이 나을것 같아 순애손을 잡고 큰아버지네 집을 나와버렸다.

그러나 정작 나오고보니 어디로 가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였다. 이제는 고아의 설음을 동정받을데도 없어 담모퉁이에서 헐벗은 동생을 붙안고 울어도 박정한 세상은 길가에 딩구는 돌멩이만큼도 불쌍히 여겨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디 있을가. 아버질 찾아야겠는데···)

그때부터 순애를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 부평초같이 떠다니기 시작한 어린 방랑자는 봄내 여름내 온 간도땅을 헤매다가 겨울이 되자 추운 만주바람에 길바닥에서 얼어죽을것 같아 강을 건너 어대진쪽으로 나갔다. 거기서 일공 20전 계약으로 어대진정어리공장에 들어갔다. 등짐도 지고 기름도 짜고 굳지 못한 소년의 뼈로 무거운 일감에 눌리고 쫓기며 해종일 팽이처럼 돌아치다가 소금국에 보리밥 한공기를 얻어먹고는 궤짝같은 함바에 머리를 들이밀고 쏘는 다리를 새끼줄에 얹은채 비리고 역한 공기를 마시며 잤다. 그러나 고된 일에 치여 점점 여위고 쇠약해진 그는 어른들도 무거워하는 기름통을 져나르다가 콩크리트바닥에 넘어져 죽도록 매를 맞고 쫓겨났다. 갈비대가 알른알른 드러나고 턱이 송곳처럼 뾰족해진 그를 다시는 누구도 일자리에 붙여주지 않았다. 락엽은 지고 추위는 다가오는데 그나마 남매가 명줄을 달았던 알량한 일자리마저 떼우고나니 잘자리조차 없었다. 운수좋은 날은 길가집 추녀신세도 지고 외양간에서 소입김을 쏘이며 떨기도 하고 오누이가 짚주저리를 쓰고 다리밑에서 말뚝잠도 잤다. 하루밤은 밭가운데 있는 곡초무지에 두더지처럼 파고들어 궂잠이 들었다 깨여나보니 첫눈이 한자나 왔다. 갈데도 없고 먹을것도 없는데 하늘은 무정도 하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기어이 아버지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한 열다섯살의 소년은 동생을 데리고 정거장으로 나가 간도로 들어가는 차표값을 알아보았다. 조선사람이 많다는 룡정까지만 타재도 3원각수가 든다고 했다.

하는수없이 철길을 따라 두만강쪽으로 걷고 또 걸어 스무날만에 개산툰이 건너다보이는 나루에 이르러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넜다.

룡정으로 들어가보니 저 북만까지 갔던 김일성장군님의 유격대가 지금은 백두산쪽에 나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왜놈군대를 친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소문을 들었을 때 준오는 아버지를 당장 찾을것만 같았다. 그러나 준오가 순애를 데리고 산으로, 거리로 끝없이 방황하며 오늘까지 아버지를 찾아다니다가 이른 곳이 어느 옛날에 숯쟁이들이 쓰다가 버리고 간 이 초막이였다. 순애가 험하게 발이 부르트고 너무 힘들어해서 더 걸을수가 없었다.

준오는 동생의 발이 나을 때까지 초막에서 묵으며 가까운 공사장에 나가 벌이를 하기로 결심하였고 지금 당장은 삭정이에 불이 달리지 않아 불살개를 찾게 된것이다.

그는 방금 품속에서 끄집어낸 종이장에 불을 달려다가 제 행동에 스스로 놀랐다. 지금까지 어떻게 이걸 간수해왔기에 미련없이 태워버리자고 하는가?

《오빠, 그건 태우면 안되지 않어?》

순애가 눈이 올롱해지며 오빠를 쳐다보았다.

《얘, 이젠 큰아버지네 집은 잊어버리자···》

준오는 묵묵히 손에 쥔 종이장에 불을 달았다. 가랑잎에서 화르르 불길이 살아오르며 종이장은 잠간사이에 재가 되여버렸다. 이렇게 남매는 큰아버지를 마음속에서 영영 지워버렸다.

밤중에 준오는 열이 났다. 빈속으로 일터에 나가 비를 맞으며 종일 고된 신역에 볶이운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리며 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올랐다. 동생이 들을가봐 신음소리를 참으며 고달픈 잠에 들었다가 이마에 무엇이 와닿는 감촉에 눈을 떠보니 순애가 머리맡에 앉아 오빠의 이마를 짚어보고있었다.

《너 왜 안자니?》

《오빠, 어디 아프나?》

《아프긴.》

오빠는 헌헌한 목소리로 겁에 질린 동생을 안심시켰다. 그래도 순애는 남비에 찬물을 떠가지고와서 손에 발라 이마를 적시여주었다. 찜질을 해주고싶었지만 수건이 없었다.

순애는 온밤 자지 않고 오빠곁에 앉아 찬물로 이마를 적셔주었다. 그 보람이 있었던지 새벽이 되자 준오는 밤새 열에 떠있은 소년같지 않게 자리를 차고일어났다. 몸은 허약했지만 대신 그한테는 고된 생활이 가져다준 강단이 있었다.

오빠가 그 몸으로 또 일터로 나가는것을 보고 순애가 따라나섰다.

《같이 가. 오빠, 오늘은 나도 가서 일할테야!》

어느새 헌보자기에 남비까지 싸들고 울먹이며 오빠의 팔소매를 꼭 부여잡는것이 욕해도 때려도 떨어질 잡도리가 아니였다.

준오는 가슴이 알알하여 입을 옥물고 돌아서버렸다.

잘 걷지 못하는 순애때문에 준오는 공사장에 한발 늦어나갔다. 창고앞에서는 벌써 수백명의 품팔이군들이 모여 웅성거리며 공구를 타고있었다.

그는 동생을 한옆에 세워두고 어제처럼 어른들의 사타구니밑으로 기여나가 창고지기가 골라주는 삽 한자루를 손에 쥐였다. 그러나 오늘은 사람들이 어찌 밀고닥치는지 삽을 안고는 빠져나갈수가 없었다.

《순애야, 어디 있니?》 하고 소리치며 동생을 찾았다.

《오빠야,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

《얘, 이리 와서 삽을 받아라.》

삽을 안고 땅에 엎드린 그는 어른들의 다리짬사이로 뛰여오는 동생을 내다보면서 삽자루부터 먼저 내밀었다.

이때 째지는듯 한 울음소리가 터졌다.

준오는 급히 다리짬사이를 비집고 빠져나갔다.

순애가 삽자루를 꼭 붙안은채 맨땅에서 대굴대굴 굴고있었다. 일찍도 나온 일본인감독이 순애손에서 삽을 앗아내려다가 그애가 놓지 않겠다고 악을 쓰자 활 밀쳐버린것이였다.

《어린걸 왜 때려요?》

《엉, 네놈이 오늘은 저런것까지 달구 나왔는가? 재수없다!》

감독은 대뜸 딱따구리지팽이로 준오의 면상을 후려쳤다. 준오는 여위기는 했지만 날파람이 있어서 요행 머리는 피했으나 어느새 은빛도금을 한 딱따구리망치대가리가 어깨죽지를 지끈하고 쳐갈겼다. 눈에서 불찌같은것이 번쩍하였다. 준오는 앞뒤 돌볼새없이 옆에 서있는 인부손에서 목도채를 앗아들었다.

《왜 때려!》 하고 재차 달려드는 감독의 면상을 목도채로 후려쳤다. 그러나 약질인데다가 온밤 앓고난 뒤여서 빗맞고 준오는 제김에 앞으로 넘어졌다.

《고약한 자식!》

감독은 객주집 칼도마같이 생긴 상통을 찡그리며 이리처럼 사나와져서 징박은 구두발로 준오의 허리통을 짓이기고 딱따구리지팽이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옆에 서있던 사람들이 부르쥔 주먹을 후들후들 떨며 감독을 쏘아보았다. 당장 감독의 손에서 딱따구리지팽이를 빼앗아 분질러버릴 기세였다.

《여보, 어린걸 그렇게 때리는 법이 어디 있소?》

누군가가 등뒤에서 소리쳤다.

감독은 힐끗 돌아다보더니 더 악착하게 매질을 하였다.

준오는 원체 넝마같던 옷이 갈가리 찢기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여 채찍맞은 개구리처럼 사지를 뻗으며 늘어졌다.

감독은 준오의 몸뚱이를 피묻은 딱따구리지팽이로 꾹꾹 몇번 찔러보다가 거적때기에 둘둘 말아 산골짜기에 가져다던졌다.

준오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깊은 밤중이였다. 사방이 캄캄하여 제몸이 어디에 누워있는지 향방조차 잡을수 없었다.

(순애는 어떻게 되였을가?···)

안깐힘을 쓰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매독이 풀리지 않아 꼼짝할수가 없었다. 속에서는 불이 일고 목이 바질바질 타들어 겨불내가 확확 올라왔다.

물, 한모금의 물, 혀끝을 추길수 없는 한방울의 물이 그리웠다.

《순애야―》

준오는 어둠속에 대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동생을 찾았다.

《누구라구?》

웬 사내아이 목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뒤이어 여러명의 아이들이 광솔불을 들고 웅성거리며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