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4


 

제 1 장

4

 

강민은 가볍지 않은 걸음으로 거리 한끝에 있는 리인묵의 집을 찾아갔다. 숨구멍이 탁탁 막히는 더위를 무릅쓰고 한참 걸어가느라니 벌써 시큼하고 퀴퀴한 모주냄새가 물씬물씬 풍겨왔다.

동기와를 올린 리인묵이네 집은 외양이 그닥 초라해보이지 않았다. 뜨락 한쪽에 창고도 탐탁하게 짓고 널대문도 든든히 세우고 울바자도 빙 둘러쳤는데 주변에서 지독히 발산하는 모주냄새로 하여 양조업자의 집이라는것이 대뜸 알렸다. 집앞의 행길에 고무바퀴와 달구지바퀴자리가 나있는걸 보면 어느 술장사가 금방 마차를 끌고와서 약주를 도매해갔거나 린근의 농군들이 쿨쿨하여 막걸리라도 받아간것 같았다.

강민이가 대문앞에 이르자 갑자기 뜨락안에서 피둥피둥 살찐 중돼지 한마리가 대가리를 땅에 박고 비칠거리며 그를 향해 미욱하게 마주나왔다. 모주 먹은 돼지라더니 뭐라고 그냥 두덜거리며 나오는 꼴이 분명 주인 모르게 술지게미를 훔쳐먹고 취기가 오른 놈이였다. 뻘개진 눈을 껌벅거리면서도 앞에 서있는 사람을 통 가려보지 못하고 금방 받아넘길 기세로 곧바로 마주오는걸 봐선 보통 게걸스럽게 먹은것 같지 않았다. 강민이가 땅을 탕 굴러서야 그놈은 기분상하게 왜 그러느냐는듯이 버티고서더니 몸을 한번 비칠하고는 옆으로 달아뺐다. 울바자밑으로는 동네 개들이 잔등털을 뜯기우며 기여들어오다가 인기척에 놀라 달아나며 배껏 먹고 취해가는 중돼지를 부럽게 바라보았다.

강민은 코를 찌르는 누룩내에 얼굴을 찌프리며 대문안으로 들어섰다. 뜨락에는 금시 시루에서 쪄낸 고두밥을 한마당 널어놓았다.

문을 활 열어놓은 창고안에 나무뚜껑을 덮은 여러개의 오지독과 참나무통이 주런이 놓인걸 보아 한창 일손이 바쁠 때는 인부도 몇명 쓰는 기업같았다.

집주인은 고두밥에 짐승들이 달려들가봐 그러는지 문턱옆에 지켜앉아 부채질을 하고 파리떼가 왱왱거리는 시궁창앞에서는 대여섯살난 사내아이가 풀씨 묻은 배꼽을 드러내놓고 흙장난에 여념이 없었다.

강민은 마당안으로 들어서자 헛기침을 하며 《주인 계십니까》 하고 찾았다. 그때에야 리인묵은 부채질하던 손을 멈추고 손님을 내다보았다. 첫눈에 행동거지가 무겁고 점잖아보였다. 장미가 뻗친 눈섭은 범상치 않게 흘러가버린 인생이 그에게 남긴 표적처럼 유표했다.

강민은 주인이 손님의 행색을 살피며 문턱으로 바투 나앉는것을 보고 뒤에 찼던 당목수건을 뽑아 덜미를 닦으며 퇴지로 다가갔다.

《이 집에서 청밀을 좀 사지 않겠습니까?》

주인은 문턱을 잡은채 장사군의 행색을 다시금 유심히 훑어보더니 첫인상과는 달리 《안사겠소.》 하고 딱 잘랐다.

그래도 강민은 초롱을 벗어 퇴지에 놓으며 물건자랑을 하였다.

《좋은 물건은 맞다들었을 때 사야 합지요. 진짜 산청인데 이런 청밀이 귀한 약재라는걸 주인장은 모르십니까? 귀한 아이들을 키우는 집에서는 쓸모가 많지요.》

《글쎄 안사겠다고 하질 않소.》

《그럼 염천에 초롱을 지고다니기가 헐치 않은데 땀이라도 좀 들이고 갈가요?》

《그건 마음대로 하시구려.》

주인은 뜨락에 널어놓은 고두밥에만 관심을 두고 내다보면서 마지못해 허락했다.

강민은 퇴지에 앉아 웃단추를 끌러놓고 채양이 부러진 캡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기웃이 웃방을 들여다보았다. 기업형편이 그닥 시원치 못한 모양으로 집안은 별로 윤택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가구도 별로 변변한것이 없고 외양은 번듯해보이지만 지붕으로는 비가 새여 신문지를 바른 누런 천정이 물얼룩이 진채 밑으로 드리웠다. 궁색이 비낀 방 한쪽에 서가같은것이 하나 놓인것이 양조업자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보였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집주인이 아직도 그중 소중히 여기는 재산이였다. 할아버지밑에서 천자문을 떼고 열살미만에 사략을 읽어 어려서부터 유식하기로 동내에서 소문이 났던 리인묵이였다.

그는 흠잡을데없는 손님의 옷차림과 지하족끝을 다시 눈여겨보다가 무슨 감촉을 받았는지 문득 한마디 중떠보았다.

《당신이 청밀장사가 옳긴 옳소?》

강민은 이때라고 부접좋게 웃으며 초롱을 안고 방안으로 슬쩍 올라앉았다.

《왜, 장사군같질 않습니까? 그럼 내가 얼마나 좋은 청밀을 지고다니는지 보여드릴가요? 초롱뚜껑을 열면 한종발은 꼭 사야 합니다.》

그는 번쩍거리는 은색초롱을 주인의 턱밑에 옮겨놓으며 금시 뚜껑을 열어보일 기세로 나왔다.

주인은 파리찌가 앉은 부들부채로 강민의 손등을 툭툭 치면서 머리를 저었다.

《아, 뚜껑은 열지 말래두.》

《그럼 한종지만 사십시오.》

《헛참, 별량반 다 보겠군.》

《글쎄 나도 먹고 살아야 할게 아닙니까. 벌써 여러집 들렸는데 한집도 사겠다는 집이 없군요. 동냥주는셈치고 흥정을 해봅시다. 마수걸인데 나도 밑지는셈하고 값은 눅게 해드리지요.》

《그 량반 정말 끈덕지구만, 난 한번 아니 하면 다요. 어서 다른 집에 가보시오.》

리인묵은 무안을 느낄만큼 박정하게 말해놓고는 어딘가 미안해하며 손님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강민은 집주인이 자기한테서 그 어떤 수상쩍은 느낌을 받고 경계한다는것을 알아차렸다.

(무슨 눈치를 챘는가? 혁명과는 담을 쌓고 산다더니 혹시 나한테서 산사람표적을 찾아보고 이러는것은 아닌가?)

곁을 조금도 주지 않는 지금의 형세로 보아서는 주인의 마음을 헤쳐보기는커녕 말도 몇마디 붙여볼것 같지 못했다.

밖에서는 《아이구, 저놈들 성화에, 지개― 지개―》 하며 개쫓는 소리가 들렸다. 내다보니 고추밭에서 풀을 뽑아주던 리인묵의 처가 돼지본을 따서 앞문으로 습격하여 술지게미를 훔쳐먹던 동네개를 홍두깨같은 물푸레작대기로 쫓아가며 때리고있었다.

도적개는 정갱이를 얻어맞았는지 뒤발을 하나 들고 《꺼이 꺼이》 울며 바자구멍으로 빠져서 간신히 도망쳐버렸다.

강민은 좀해서 부드럽게 나올것 같지 않은 주인의 뻑뻑한 자세를 좀 눙쳐줄양으로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려보았다.

《이 댁은 술을 빚는 집 같은데 혹시 리인묵씨네 댁이 아니십니까?》

《옳소, 내가 리인묵이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오?》

주인은 무뚝뚝이 되물었다.

강민은 조금도 타내지 않고 능청스럽게 초롱뚜껑을 치며 한무릎 나앉았다.

《왜 모르겠습니까. 지금 이 오래에서는 리인묵씨가 빚는 술맛이 별맛이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바로 이 집이였군.》

리인묵은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허, 그런다고 청밀을 사줄것 같소?》

《청밀은 못팔아두 좋습니다. 거 소문이 자자한 술맛을 나도 좀 맛보고싶은데 한상 팔아주지 않겠습니까. 서로 바꾸는셈치고 값은 청밀로 드리지요.》

《여보시오. 난 양조업자지 술장사군은 아니요.》

《팔지 않겠으면 주인이 마음을 써서 지나가던 손님한테 한잔 내시구려. 이 집에 들어왔다가 청밀도 못팔고 소문난 술맛도 못보고 나가면 섭섭하지 않습니까.》

리인묵은 도저히 쫓아버릴수 없게 끈끈히 달라붙는 손님한테 더 박한 소리를 못하고 그만 한손을 접고말았다.

《이거 내가 아무래두 손님한테 져야 할가보군. 그럼 일어나지 말고 좀 앉아있으시오.》

리인묵은 개 쫓던 작대기를 대문옆에 세워놓고 울타리에 붙어서서 청호박을 따고있는 안해더러 한잔 나누게 있는대로 얼른 술상을 갖추어 들여오라고 일렀다. 이런 일은 리인묵이한테 좀해있는 일이 아니였다. 그는 이때까지 제집에 오는 사람들은 다 자기 뒤를 캐고 감시하는자들로만 보여 속을 안주고 경계하며 마주앉는 법을 몰랐다. 그런 타성으로 지금 찾아든 손님도 처음에는 상대를 안하고 선자리에서 쫓아버리자고 했다. 그러나 몇마디 안짝에 강민의 능한 구변, 진중한 성미에 마음이 끌리였다. 그리하여 리인묵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청밀장사나 하기에는 아까와보이는 이 젊은이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한잔 나누며 알아보고싶은 충동이 일어났던것이다.

얼마 안있어 수더분하게 생긴 리인묵의 처가 북어자반과 주전자가 놓인 술상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리인묵은 손님쪽에 북어자반을 옮겨놓고 양은주전자의 술을 갱사발만한 잔에 부어 강민이앞으로 내밀었다. 강민은 권하는 술을 받아 단숨에 쭉 마시고는 턱을 쓸어내리며 치하를 했다.

《그 참, 맛을 보니 과연 소문이 날만도 합니다.》

주인과 손님사이에는 권커니 작커니하며 술잔이 오가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강민은 넉잔을 마시였다. 그는 술잔을 상우에 엎어놓았다.

《여보, 잔은 왜 벌써 엎어놓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고 이 집 술맛에 반해 장사를 못할가봐 그럽니다. 꿀은 언제 팔겠습니까.》

《그래두 몇잔이야 더 해야지.》

《주인님, 사실은 내가 술을 못합니다. 다만 이 집 술맛이 하도 소문이 났기에 한잔 맛보고싶었을뿐입니다.》

《암만 못해두 술상이 들어왔는데 이렇게 나앉을수 있소.》

리인묵은 주전자를 들고 강민이가 엎어놓은 술잔을 바로놓으며 술을 또 부었다.

《더 붓지 마시라는데.》

강민은 입에 대여본지 오랜 술이라 벌써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것을 느끼며 사양했다.

《몸을 보면 꽤 함직한데, 유감이요.》

《예, 터놓고 말씀드리면 친구들 따라 술자리에 묻어다니기는 했지만 여태 술과 그닥 깊이 사귀여보지는 못했습니다.》

리인묵은 술상을 마주하고보니 첫인상과는 달리 어딘가 순진한 풋내기라는 인상이 풍겨와서 한수 얕잡으며 은연중 입이 헤퍼질사했다.

《허허, 그렇다면 아직 진짜 3생을 살아보지 못한셈이군.》

《3생이라니요?》

《술을 안하시니 그걸 모르지. 술을 하는 사람에게만 3생이라는것이 있지요. 취생, 각생, 몽생말입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중에서도 제일 좋기로는 취생이지요. 글쎄 사람에게 각생만 있다고 생각해보시오. 각생만으로는 살기에는 너무도 각박한 세상이지요. 그럼 몽생은? 그것도 이러나저러나 각생의 그림자가 아니겠소? 꿈에서조차 시달리는 고통을 가져다주거든요. 혹 불행한 사람도 단꿈을 꾸는적이 있기는 하지요. 그렇지만 꿈을 꾸고난 뒤의 허전함을 무엇으로 메꾸겠소? 오직 취생만이 그 모든것을 잊게 하지요. 고통도 슬픔도 걱정도··· 어느 고마운 조물주가 이 신통한 물건을 처음 만들었는지 난 술잔을 들 때마다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리인묵은 손님이 부어주는대로 투박하고 큰 잔에 넘치는 술을 단숨에 마시고는 빈잔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마치 조물주에게 기도라도 드리듯이 어찌 뚫어지게 빈 술잔속을 들여다보는지 그의 온넋이 숙인 머리속에서 쏟아져내려 술잔에 그대로 차오르는것 같았다.

강민은 사람좋게 웃으며 이야기를 자기가 바라는데로 이끌어갔다.

《인묵씨는 이렇게 술을 좋아해서 양조업까지 하시는가보지요? 난 인묵씨가 한때 독립군까지 했다는 말을 전해듣고 멀리에서 존경해왔는데 그 의기를 혹시 술잔에 다 부어버린게 아닙니까?》

《허, 의기는 해 무엇하겠소? 그건 다 옛소리지요.》

리인묵은 안주 한꼬치 안들고 강민이가 권하는 술을 연거퍼 석잔이나 마시고나서 이번에는 손님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강민은 받아놓기만 하고 입에 대려고 하지 않았다. 리인묵이 주전자우로 손짓을 하며 어서 들라고 권해도 정말 못한다고 한모금 마시는 시늉만 하고는 잔을 도로 놓았다.

리인묵은 무엇인가 조심하는듯 한 손님의 거동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술기운에 불쑥 입을 열었다.

《한가지 물어보아도 되겠소?··· 당신 혹시 산에서 오지 않았소?》

《산이라니요?》

리인묵은 기색이 완연 달라졌다.

《여보, 사람을 허술히 보지 마오. 당신행색을 보면 모르겠소. 언젠가 유격대에 간 내 동생이 최춘국이란 사람과 같이 무슨 공작을 나왔다가 경관들이 따라온다구 우리 집에 뛰여들어온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사람들 행색이 꼭 당신같았소.》

강민은 잠자코 주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내가 술이나 빚는다구 사람이 다 죽은줄 아오? 당신이 경관의 눈은 속일지 모르지만 옛 독립군의 눈은 못속여, 앞코숭이가 닳아빠진 당신 신발만 봐두 산길을 많이 걷는 사람이 분명한데 뭐 장사군이라구? 여보, 난 사람을 잘못보지 않소.》

리인묵은 바른대로 말하라고 다그어대듯이 안주를 집으려던 놋저가락으로 술상을 두드리였다.

강민은 어쩔수없이 덜미를 잡힌바하고는 터놓고 말하는편이 오히려 좋을것 같아서 사실대로 고백했다.

《옳습니다. 빗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적들이 씨글거리는데 아무려문 내가 유격대원이요 하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섭섭하오!》

리인묵은 노여움을 풀며 성급히 동생소식부터 물었다.

《그래 우리 성묵이는 어디 있소? 살아있소?》

《차차··· 이야기하지요.》

혀가 굳어져 말을 더듬는 대답을 듣고 리인묵은 얼굴색을 흐리며 강민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겉늙은 얼굴을 괴롭게 찌프리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혹시 잘못된게 아니요?··· 조카애들이 왔댔는데···》

강민은 번쩍 귀문이 열렸다.

《그애들이 어떻게 됐습니까?》

리인묵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대답이 없다가 꺼지게 한숨을 쉬였다.

《음, 그애들은 내가 잘 거둬주지 못해서 집을 나갔소.》

강민은 누구도 아닌 본인의 입을 통해 마음속으로 강하게 부정하고싶던 그것이 사실임을 깨닫는 순간 한무릎 물러앉았다. 아무리 험한 세월이기로 학식도 있고 한때는 독립군도 했다는 사람이 제 혈육을 몰라볼수 있는가?

강민은 무자비한 세파앞에서 형제간의 의리마저 갈라져나가는 시대의 준엄성을 소름이 끼치게 느끼는것 같았다.

《인묵씨, 그건 어떻게 됐다는 말씀입니까? 좀 자세히 이야기해주실수 없겠습니까?》

《여보, 당신이 혁명군이면 혁명군이지 남의 집안이야기는 캐물어서 어쩌자는거요?》

《쓸데없는 간섭이라고 생각지 말아주십시오. 인묵씨도 한때는 나라와 겨레를 구하자고 총을 들고 나서지 않았습니까. 그런 인묵씨가 의지가지없는 조카애들을 거두어주지 못해 집을 뛰쳐나게 했다니 믿어지지 않아서 그럽니다.》

강민의 침착한 대답에서는 은근한 불만이 풍기였다.

리인묵은 심기가 언짢아 헛기침을 하였다.

지금도 리인묵은 경신년 《대토벌》때 죽창을 깎아들고 독립군을 따라나서던 일이 엊그제일같이 선하였다.

간도의 조선사람을 3만명이나 죽이고 6천호의 집을 불태워버린 그 《토벌》에 리인묵은 량친을 잃었다. 왜놈들은 아버지의 목을 칼로 치고 어머니는 피묻은 총창으로 등을 찔러 죽였다.

(빚구럭에 시달리며 살려고 무진애를 쓰다 못해 고향을 버리고 수천리 타향 여기까지 와서도 가난에 쪼들리며 불쌍하게 살아온 내 아버지, 내 어머니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죽이느냐, 나라없는 백성은 어디 가나 이렇게 쫓기고 죽어야 하는가.)

천추에 못 잊을 원한을 안고 리인묵은 원쑤를 갚으려고 독립군을 따라나섰다.

지금도 리인묵의 몸에는 그 시절에 입은 상처가 세군데나 있다. 하나는 봉오골전투때 다리에 입은 총상자리고 하나는 청산리전투에서 입은 파편상이고 다른 하나는 밀산전투때 팔에 찔리운 총창자리이다.

그는 독립군우두머리들이 세력다툼으로 무장충돌까지 일으켜 수천의 애국청년들을 흑하의 물속에 장사지낸 참극의 《흑하사변》때에야 그들이 하는짓이 일을 칠것 같지 못하다는것을 깨닫고 물러나려고 했으나 한번 내친 사나이의 걸음이 그렇지 않아서 행여나 하고 그냥 따라다녔다. 그런 리인묵이였기에 《정감록》을 보고 내도산이 피난처라고 독립군사람들이 그리로 들어갈 때에도 안들어가고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뛰여다녔다. 독립군운동이라는것이 3. 1운동직후 의병운동의 연장으로 시작되였으니만큼 리인묵은 그 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피를 같이 흘리며 목격한 사람이였다.

미련이란 검질긴것이여서 독립군의 마지막 잔여세력속에 끼여 토비처럼 강제로 긁어온 군자금으로 살아가다가 한때 하늘을 찌를듯 하던 독립군의 의기가 석양에 비맞은 룡대기꼴이 돼서 이렇게 풍지박산된것이 일제가 너무도 강대하기때문이라며 자포자기에 이르렀을 때 《9. 18사변》이 폭발했다.

일본군이 개전 며칠만에 동북 3성에 으리으리하게 군림하던 만주군벌을 타승하고 심양을 점령하는것을 본 그는 녹쓸어버린 화승대를 강물에 던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형님, 우리는 다른 길로 나가야 합니다.》

오래간만에 집으로 온 형님을 동생 리성묵은 푸접없이 맞이했다.

《다른 길이라고? 말투를 보니 네가 그동안 공산주의물이 든게 아니냐, 그만두어라. 신물이 난다. 왜놈세력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뻗는데 우리 약소민족이 그걸 무슨 힘으로 당한다더냐? 이제는 운명에 순종하는 길밖에 없다.》

두 형제는 리념상 차이로 서로 피대를 세우며 자주 언쟁을 하였고 그때마다 리인묵은 형으로서의 강권과 피값으로 얻은 체험을 방망이처럼 휘두르며 욕설과 위협으로 동생을 설복하자고들었다. 그러나 동생은 무슨 사상이 그리도 단단히 배겼는지 처자를 두고 집을 나섰다.

얼마 안있어 경찰이 달려들어 집을 발칵 뒤지고 돌아가더니 순사들이 하루건너 한번씩 긴칼을 차고 와서 동생이 오지 않았는가고 죄인처럼 문초를 하였다. 보이지 않는 감시의 올가미가 늘 목을 조르는것 같아 하루도 마음놓고 숨쉴수 없었다. 생각다 못해 그는 처자를 데리고 왕청땅에서 여기로 이사나왔다.

그러나 여기로 와서도 경찰의 검질긴 추적과 감시에서는 좀처럼 벗어날수가 없었다. 경찰에서는 그가 한때 독립군이였다는것을 알고 집앞에 순찰함까지 달아놓았다. 이것은 감시라기보다도 네가 이제 딴 생각을 또 하거나 다른 길로 한걸음이라도 내짚는 기미만 보이면 목숨을 담보할수 없다는 로골적인 위협이였다.

어떻게 하면 목을 조르는 이 위협과 저주로운 감시의 눈을 벗어나겠는가. 독립군시절의 리념마저 잃어버린 허무감과 자기를 포박하고 핍박하는 현실적인 고통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던 그는 나중엔 그런 모대김마저 부질없는것으로 생각되자 살아가기 위해 변돈을 내여 양조업을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리인묵은 이따금 쓰는 인부들과 같이 술을 제손으로 뽑았고 주인이란 사람이 그들과 같이 술을 마시였으며 술독에 빠졌다는 소문이 날만도 하게 일체 세상사에는 관여치 않았다. 이렇게 되자 자연 감시의 눈길도 멀어졌고 살기도 한결 헐해졌다.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고 위험분자로 보지도 않았다.

그러던중 재작년 초봄에 조카애들이 불쑥 찾아왔다. 리인묵은 조카들을 보는 순간 반가왔지만 한편 잠자던 불안이 머리를 쳐들며 가슴이 덜컥하였다. 게다가 그때로 말하면 시원치 않은 기업에 루진세까지 붙어 두루 마음이 순편치 않던차였다.

그러나 조카애들이 큰아버지라고 의지하여 찾아온 일이 기쁘고 고마운 일이여서 처음에는 놈들의 감시가 은근히 걱정되기는 해도 그애들을 어떻게 하나 품어 거두어주며 큰아버지구실을 해보자고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거리의 지주 민영달이가 리인묵이를 찾아왔다. 그는 지나가던길에 들렸다고 하면서 집에 와있는 리인묵의 조카애들에 대하여 어디서 왔는가, 뉘집 아이들인가 까근까근 캐여물었다. 민영달이가 경찰의 끄나불이라는것은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후로는 경찰서에서 경관들이 직접 와서 따져물었다.

사람들앞에서 바른소리도 할줄 알고 원체 록록치 않던 리인묵은 내가 무슨 죄인인가, 처켠으로 친척벌 되는 아이들이 이모를 찾아왔는데 못올 집에 왔느냐고 대들며 무례한 경관놈을 선자리에서 쫓아버리려고 하였다.

그러자 경관은 우리가 당신의 과거를 모르는줄로 알고 아직도 속이 살아서 고분고분 숙어들지 않는데 정 그러면 양조업도 못하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갔다. 리인묵의 마음은 그때부터 다시 뒤숭숭하였다. 놈들이 감시의 눈길을 이제는 뗀줄로 알고있은것이 오산이였음을 깨달았던것이다. 경찰에서 그애들이 누구라는것을 알기만 하면 집안이 하루아침에 박산이 날판이였다.

어떻게 하면 감시의 눈도 피하고 집안이 무사하겠는가? 며칠째 밤잠을 못 이루며 생각해봐도 방책은 떠오르지 않고 꺼불꺼불한 신세만 위태로와 하루는 초저녁부터 화술을 마셨다. 조카애들이 불쌍하고 제 처지며 어린것들을 버리고 나라를 구하겠다고 떠다니는 동생이 원망스러워 밤늦도록 그렇게 혼자 술을 마시다가 웃방에서 자는 조카애들을 올려다보았다. 큰애 준오는 홑이불을 차버리고 반듯이 누운채 잠들었고 어린 순애는 포대기 한끝을 휘감고 오빠옆에서 쌔근쌔근 자고있었다.

이것들이 피줄이라고 나를 찾아왔는가?

《기막힌 인생이로구나···》

그는 취중에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켜 차버린 홑이불깃을 끄당겨 준오의 가슴노리에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눈을 슴벅거리며 조카애들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아래방에 도로 내려와서 역시 시름에 잠겨있는 안해쪽으로 돌아앉았다.

《여보 마누라, 어떻게 해야 이애들두 살리구 이 집두 무사하겠소? 양조업이고 뭐고 다 걷어치우고 우리 어디 또 이살 가지 않겠소?》

《이사간다구 그놈들 손아귀에서 벗어나겠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소? 놈들이 어찌 눈을 밝히는지 난 암만 생각해두 여기서는 이애들을 건사해낼것 같지 않구려.》

술김에 하는 말이지만 안해는 남편이 걱정하는 소리를 심상치 않게 듣고 눈굽을 찍으며 한숨을 쉬였다.

《아니, 큰아버지가 건사 못하면 누가 건사해주겠수?》

《이애들이 외가편으로는 친척이 없던가?··· 저 혜산에 7촌벌되는 외숙이 있다고 했는데. 여보, 이애들을 쌀말이나 지워서 그리로 보내면 어떻겠소? 다달이 양육비도 조금씩 보태주고···》

안해는 혀를 차며 돌아앉았다.

《원 죄될 말씀 마시우. 큰아버지가 시퍼렇게 살아있어가지구 친조카를 7촌숙한테 보내다니요?》

리인묵은 화를 내며 구들장을 두드렸다.

《여보, 남이 속타할 땐 제발 좀 잠자코 있구려, 나두 너무 답답하니 하는 소리가 아니겠소.》

안해는 돌아앉은채 더 말이 없었고 리인묵은 한숨을 푹푹 쉬다가 다시 술잔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때 흑- 흐느끼는 소리가 웃방에서 났다. 자는줄로만 알았던 준오가 홑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며 어깨를 들먹이고있었다.

리인묵은 칼로 어이는것 같이 가슴이 쓰려 혼자 폭주를 하고는 그자리에 정신을 잃은채 잠들어버렸다.

이튿날 중낮이 되여서야 무엇인가 사지를 결박하고 내리누르는것 같은 가위에 눌려 깨여나보니 조카애들이 없었다. 그애들이 언제 어디로 가버렸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리인묵은 며칠 품을 놓고 조카애들을 찾아 정신없이 다니였으나 허사였다. 그러다가 기진하여 단념하고는 자리에 누워버렸다.

(그애들 애비가 이 일을 알면 이 형을 뭐라구 하겠는가? 내가, 큰아버지란 사람이 제 조카애들을 쫓아버린게 아닌가?)

기업도 추세울 형편이 못된데다가 조카애들때문에 괴로움에 시달리며 속을 썩인 그는 노상 술로 살았다. 입에는 쓰면서도 일단 넘기기만 하면 훈훈히 신경을 잠재워주는 이 술만이 그의 마음속의 고통과 번뇌를 덜어주고 위로를 주는 둘도 없는 약이였다.

그런데 지금 웬 동생의 친구라는 사람이 나타나 조카애들을 찾으며 나무랍게 생각한다.

리인묵은 그가 뭐라건 아무도 모르는 자기의 번민을 구태여 말하고싶지 않았다. 그는 누구한테서 동정이나 받자고 구차스럽게 제 사정을 들고다니는 성미가 아니였다.

《여보시오. 그런데 큰아버지도 잃어버리고 안찾는 그애들을 당신이 무슨 일로 찾아다니시오?》

《우리 사령관동지께서 찾으십니다.》

《예?》

김일성장군님께서 찾으십니다.》

《뭐라구요?》

《나는 김일성장군님 휘하에 있는 혁명군대원입니다. 인묵씨도 그분을 아시겠지요?》

강민은 침착히 긍지가 울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리인묵은 헉소리를 지르며 눈이 둥그래졌다. 화승대를 메고 산전수전 다 겪으며 만사에 달관한데다가 이제는 자포자기하여 웬간한 일에는 놀라는 기미조차 안보이던 그가 그처럼 크게 뜬 눈으로 손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정숙히 례의를 갖추어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무리 세상과 담을 쌓고 살기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장군님을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나는 다만 그분이 지니고계시는 인격이 시세를 잘못 탔음을 아까와할뿐입니다.》

강민은 근엄한 자세로 고개를 들어보였다.

《인묵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뭐 유난스러운 말이야 아니지요. 사람이란 아무리 뛰여난 인걸이라도 때를 바로 만나야 합니다.》

《그럴가요?》

《그러고말고할것이 있소. 내 말이 당신 생각과 다르면 피차 마음대로 살아가는것이지요. 헌데 장군님께서 왜 그애들을 찾으시는지 그 까닭이나 좀 말해주시오.》

리인묵은 술을 마신 사람 같지 않게 정신이 맑아져서 다우쳐물었다.

강민은 무엇이라고 대답할수가 없었다. 경위야 어떻게 되였든 피줄인 조카애들을 한지에 내보내고 이날이때까지 잊어버리고 살아온 사람이 혁명전사들에 대한 장군님의 그 숭고한 의리를 이야기해준들 리해나 하겠는가?

《까닭이라는게 따로 있겠습니까. 우리 장군님께서야 밑에 있던 전사의 자식들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는지 소식이라도 알고싶어 그러시는거지요.》

강민이 하는 대답을 듣고 리인묵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는 우선 강민의 이 한마디에서 동생이 죽었다는것을 직감한것이였다. 갑자기 눈앞이 확 흐려지며 가슴에서 그 무엇이 울컥 터져오를것만 같았다.

리인묵은 한번도 리해해준적이 없는 동생을 추억하며 다시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슬픔에 떨리는 목을 아프게 지지며 한잔한잔 넘어가는 술이 번질수록 이제는 살아생전에 볼수 없는 동생이 그리워지고 동생이 남긴 자식들, 집에서 나간 조카애들을 여태 찾지 못하고 마음 편히 살아온 자신의 처사가 더욱 죄스럽게 가슴에 마쳐왔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김일성장군님께서 그애들을 찾으신다고 한다.

리인묵은 도무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종잡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기 신상에 닥친 일을 놀랍게 여기면 여길수록 한가지만은, 내가 이때까지 조카애들에 대하여 큰아버지구실을 못했다는 생각만은 더욱더 명백해졌다. 얼굴이 뜨끈하여 자기앞에 앉아있는 사람을 낯을 들고 볼수가 없었다. 리인묵은 자책에 시달리는 넋을 달래듯이 고개를 숙이고 제손으로 술을 부어 그냥 마셨다. 워낙 술 한말을 지고는 못가도 마시고는 간다는 사람이지만 안주도 없이 랭수켜듯이 그렇게 억병으로 마신 술이 안취할리가 없었다. 그는 어느덧 정신이 흐리마리해져서 술잔을 잡는다는 손이 그앞에 있는 주전자뚜껑을 잡았다. 그바람에 밑으로 드리우는 팔소매가 술잔을 넘어뜨렸다. 뿌연 술이 상우를 질펀히 적시고 무릎으로 주르르 흘러내렸으나 리인묵은 느끼지 못하였다. 한참만에 잔을 다시 찾아쥔 그는 술을 제손으로 가득 부어 눈을 감고 단숨에 또 들이마셨다. 그러더니 고개를 떨군채 방바닥을 내려다보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애들을 내가 내쫓았지. 그래서 당신들이 이렇게 내 죄를 캐러다니는데···》

횡설수설하는 리인묵을 한심하게 지켜보고있던 강민은 술취한 사람의 앞이라 기분을 맞춰가면서 설득력있게 말했다.

《인묵씨, 그건 오해입니다. 우린 죄를 캐러다니는게 아니라 전우의 자식들을 찾아보러왔습니다.》

《그애들은 내가 내쫓았다질 않소. 난 간 곳을 모르오.》

리인묵은 맥없이 드리웠던 팔로 삿대질을 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기는 거리에서도 내쫓은것 같다는 말이 떠돕니다만 아무렴 그럴수가 있겠습니까.》

강민은 여전히 례의를 지키며 침착히 말했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으며 순하게 대할수록 리인묵은 약이 올라서 어성을 높였다.

《흥, 내쫓은것 같다고? 여보, 같을게 뭐 있소, 바로 내쫓았다는데··· 내가 내 손으로 내쫓았단 말이요.》

리인묵이가 분별없이 나오니 강민이도 떨떨해졌다.

《이거 아무래도 술이 좀 지나친가보군요.》

《여보, 당신 왜 그래? 내가 내쫓았다는데두, 내가 내쫓았단말이요!》

리인묵은 눈에 피발을 세우고 발광이 난 사람처럼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강민은 점점 험하게 번져가는 주정뱅이의 역설을 더 참고 들을수가 없었다.

《여보십시오. 인묵씨, 그만 좀 진정하시고 조카애들을 어디가면 찾을수 있겠는지 그거나 좀 말해주십시오.》

《당신이 찾겠단 말이요? 당치도 않은 소린 그만두오. 이 넓은 천지에 모래알같이 숨어살 그것들을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이요?》

《그럼 큰아버지가 계시는데 그애들을 고아처럼 그냥 내버려두겠단 말씀입니까?》

강민의 분개한 소리에 리인묵은 새삼스럽다는듯이 허거픈 웃음으로 대하였다.

《고아처럼이라니? 아니, 그럼 그애들이 고아가 아니란 말이요? 고아가 뭔지 알기나 하오? 부모없는 아이를 고아라고 한단 말이요. 그러고보면 나도 고아지요. 고아, 온 민족이 다 고아지요. 이 세상이 다 고아지요. 왜놈들 세력이 막능당의 힘으로 세상을 뒤덮는데 그밑에 밟힌 우리 민족이 어떻게 고아의 신세를 면하겠소?》

비탄에 잠긴 리인묵의 침울한 목소리에서는 자신의 무력을 개탄하는 구슬픈 목소리가 쓸쓸하게 울리였다.

강민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보십시오, 난 당신 동생을 봐서두 이 말을 하지 않자고 했는데 동생도 조카도 다 잊어버린 당신을 무엇이라고 해야 옳습니까? 말해야 아파할 사람도 없겠지만 알고나있으십시오. 당신동생은 혁명을 하다가 전사했습니다!》

《뭐라구요?···》

그러나 강민은 아무런 대답이 없이 집을 나섰다.

대문까지 나와 피끗 돌아다보니 부엌문이 반쯤 열렸다가 닫기며 녀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리인묵은 범살문을 활 열어놓고 문턱에 손을 짚고 앉은채 대문밖을 나서는 강민을 멍하니 내다보고있었다.

강민은 그 무엇인가 병들고 타락하고 패륜이 횡행하는 침침한 울타리안에서 뛰쳐나온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리인묵의 집 대문밖으로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