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3


 

제 1 장

3

 

한때 이 고장에 벌목이 성하여 수백호의 인가가 물묻은 바가지에 깨알붙듯이 다닥다닥 처마를 비비며 들어앉은것이 지금의 12도구다.

부대가 숙영하는 대덕수에서 밤길을 떠난 강민이 12도구에 이르렀을 때는 해가 중천에 오른 한낮이였다.

총대를 뻗쳐든 자위단 파수가 불거진 눈망울을 굴리며 거리입구에서 행인들을 검문하고있었다.

이날은 닷새만에 한번씩 서는 장날이여서 사처에서 장보러 오는 사람들로 끓었다.

강민은 장군들속에 끼여 《량민증》을 보이고 파수막앞을 지나갔다. 수수한 로동복에 허름한 캡을 눌러쓰고 청밀초롱을 등에 진 그는 꿀장사군 행색이였다. 이 거리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처럼 강민은 별로 눈길을 팔지 않으면서 주위의 모든것을 기억에 새기며 장마당쪽으로 올라갔다. 길도 집도 여전하지만 지난해와 또 다른것은 어디에나 풍기는 살벌한 바람이였다.

거리 한쪽에는 기관총을 걸어놓은 포대가 거밋하게 솟았고 길가에는 여기저기 살기띤 포고문이 나붙었다.

《공비와 내통, 은익 또는 물품을 공급하거나 련락을 취한자는 리유불문하고 공비로 인정하고 즉시 총살함···》

전보대에 붙어있는 포고문은 행인들을 향해 이렇게 위협적인 경고를 하며 한쪽귀가 떨어져 바람에 펄럭거렸다.

강민은 저앞 장거리쪽에 솟은 망루를 바라보았다. 거기서는 일본군 감시병이 눈에 쌍심지를 달고 거리의 구석구석을 훑어보고있었다.

호각소리, 구령소리, 잡스러운 군가소리가 귀청따갑게 들려오고 말똥섞인 먼지를 행인들에게 들씌우며 기마순찰대가 뚜벅거리면서 지나갔다.

수비대마당에서는 살찐 군마들이 성가시게 달라붙는 등에를 갈기를 흔들어 날리며 게걸스레 마초를 씹고 병영뒤에 친 천막들주위로는 왜놈병사들이 바글거리며 돌아쳤다.

강민이 장마당가까이에 이르자 《락화류수》라는 료정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며 돈냥이나 있는 층들이 질탕하게 떠들어대는 술취한 소리와 아양떠는 녀자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역스럽게 흘러나왔다.

어리전에는 장닭이며 집오리 같은것을 끼고나온 녀인들이 주런이 앉아있고 방물판에서는 황아장사들이 잡살뱅이를 한짐씩 펴놓고 흥정에 목청을 돋구고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팔것도 없고 살것도 없는지 빈자루를 끼고앉아 영양실조에 누렇게 뜬 얼굴로 먼 하늘만 바라본다.

장마당 한쪽에서는 중로인들이 쭈그리고앉아 애꿎은 담배만 태우며 한숨을 치쉬는 가운데 한 로인이 주먹으로 쏘는 무릎을 툭툭 치며 그 흔하던 대두박장사들마저 어디 가서 다 뒤여졌는가고 궁한 푸념을 하였다.

이런 속으로 갑자기 경관들이 나타나 장거리안에 달려들었다.

그들은 호각소리를 째지게 울려 장군들을 공포의 분위기에 몰아넣고는 눈알을 굴리며 게사니청으로 고아댔다.

《학교운동장으로 모여라!》

사방에서 터지는 호령질에 장마당은 삽시에 불난 집같이 소란해졌다. 경관들은 총대와 칼집으로 위협을 하며 장보러 온 사람들을 학교운동장으로 휩쓸어갔다.

강민이도 바구니와 보퉁이 같은것을 끼고 휘몰리는 장군들속에 섞여 앞사람의 신뒤축을 밟으며 밀려갔다. 거리 유축인 소학교운동장은 어디서 끌려왔는지 벌써 수백명의 군중이 모여들어 불안을 안고 술렁이였다.

뒤다리가 사슴의 다리처럼 미끈한 군마를 타고 부하들을 대동한 아라끼수비대장이 위풍있게 집회장에 나타났다.

총대로 군중들을 몰아세우며 질서를 잡는다고 기광을 부리던 순사들이 그자리에 얼어붙어 꼿꼿해지고 주런이 서있던 관청족속들이 이마가 땅에 닿도록 머리를 조아리며 수비대장을 맞이했다.

그때 강민은 군중들속에 끼여 놈들의 거동을 지켜보다가 경찰서장옆에 서있는 한 신사를 알아보았다. 흰 양복에 중절모를 눌러쓰고 가슴에 점잖게 시계줄을 드리운 신사는 《만선일보》 지국장인 지하공작원 윤석찬이였다.

강민은 지난해 백두산근거지창설때문에 선발대로 나왔을 때 윤석찬이네 집에 들린적이 있어 그와는 잘 아는 사이였다. 윤석찬은 나이도 있고 공부도 많이 한 사람으로 박덕산의 지도를 받아 혁명의 길에 들어섰다.

박덕산은 장군님으로부터 직접 과업을 받고 적구에 자주 드나들며 지하공작을 오래 한 정치일군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지하공작원으로 키워왔다. 그는 지금도 하강구일대에 나와 조국광복회산하 여러 지하조직들을 지도하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윤석찬이로 하여금 적들속에 들어가도록 설복한 사람도 박덕산이였다.

윤석찬은 간봄에 현《협화회》에서 리사자리를 권고해왔을 때 결이 나서 박덕산을 찾아가 적들의 요구를 당장 일축해버리겠다고 했다. 그때 박덕산은 무슨 소리를 하는가, 적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여 《리사》자리를 하나 차지하라고 했다. 윤석찬은 백성들이 침뱉는 주구행세는 죽어도 못하겠다고 울상이 되여 곧은목처럼 우겼다. 그는 지하공작원들이 적통치기구와 주구단체에 대담하게 들어가 공작할데 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전달받고서야 납득이 가서 《협화회》 리사가 되였는데 이제는 그 신분에 어울리게 처신하는데도 어지간히 익숙이 된것 같았다. 오늘도 경찰서장을 비롯한 거리의 유력자들속에 단장을 짚고 버젓이 서있는 품이 사령부에서 듣던바대로 《협화회》 리사로서도 꽤 《신망》이 있는것 같았다.

강민이 이 윤석찬의 부탁을 받고 송순이를 부대로 데려가다가 고생하던 일을 상기하며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을 때 12도구 경찰서장인 하시모도가 손나팔을 하고 고함을 질렀다.

《조용들해라. 이제부터 우리 12도구에 주둔하여 공비의 위협으로부터 여러분들의 안녕을 지켜주고있는 수비대를 대표하여 아라끼수비대장님으로부터 훈시가 계시겠다.》

수비대장은 자신만만하게 무슨 일이든 척척 해제낄 자세로 헛기침을 하고나서 훈시를 시작했다.

《너희들이 잘 아는바와 같이 얼마전에 우리 대일본제국은 오만한 중국인들을 응징하기 위하여 중국관내에 대한 징벌을 시작하였다. 강력하고 용맹한 우리 제국군은 벌써 천진을 점령하고 베이징으로 육박하고있다. 우리 대일본제국이 오래동안 갈망하여 바라마지 않던 <대동아공영>의 리상이 현실로 될 날은 바야흐로 눈앞에 다가오고있다. 그런데 우리 제국이 <사변>을 속결하고 백성들, 다시말하면 너희들에게 복지사회를 가져다주자면 공고한 후방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하 이 조만국경일대에서는 김일성공산군의 폭력행위가 그칠사이 없어 후방의 치안유지에 큰 암창을 이루고있음은 심히 불행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 제국은 김일성공산군을 일격에 소탕하기 위해 조선과 만주경내에 있는 수만의 군경을 이 국경지대로 집결시키고있다.

이러한 때 전력을 다하여 우리 황군을 돕는것은 천황페하의 적자된 너희들의 성스러운 의무이자 본분이기도 하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 비상시국에 국민으로서의 본분을 다 하여 제국군의 기동에 지장이 없도록 군량과 마초를 대고 공산군이 발붙일 곳을 없애기 위해 집단부락 토성공사를 속히 끝내야겠다. 그러나 이 12도구일대의 주민들은 국민다운 열의를 가지고 동원될 대신 늑장을 부리며 제국의 국책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있다. 장군들은 당장 돌아가서 토성을 쌓고 열흘내로 모두 집단부락으로 들어가야겠다. 만일 당국의 요구를 거역하거나 불응하는자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집에 불을 지르고 극형에 처할것이다. 내 말의 취지를 알겠는가?》

찬바람이 스쳐간 뒤끝같이 썰렁한 집회장에는 랭랭한 기운이 서렸다.

강민이가 이날 윤석찬이를 집으로 찾아가서 만난것은 놈들이 소란스럽게 벌려놓은 《군중집회》통에 장마당이 일찌기 휑뎅그렁해진 저녁무렵이였다.

윤석찬이네 집은 《만선일보》 지국장이며 《협화회》 리사의 지체에 어울리게 길가에서 조금 들어앉고 널판자로 울타리도 둘러쳐서 아늑하고 조용해보였다.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안해 계숙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강건너 외할머니네 집에 가있다고 하였다.

강민은 주인을 따라 들어서는길로 눈에 설지 않은 방안을 살펴보았다. 방안 한구석에는 이런 산간거리에 흔치 않은 풍금이 놓여있었고 벽에는 몇년전에 작고한 관재 리도영의 《가을밤》이 걸려있었다. 원화는 수십마리의 기러기가 가을밤 호수가에 내리는 모습을 담은 4폭풍경화인데 윤석찬은 어디서 한폭에 그것을 축소해 옮긴 모사품을 구해다 걸었다. 모사품이지만 보금자리를 찾아 떼를 지어 날아드는 기러기와 가을바람에 설레이는 갈대며 달빛이 추연히 떨어지는 호수가 등은 원화를 방불히 옮겨놓았다. 더우기 기러기떼가 자아내는 늦가을의 쓸쓸한 정경에서는 마치 나라 잃은 민족의 서글픈 정서가 그대로 안겨오는듯도 하였다.

이 그림외에 담벽에는 추사체로 《제일강산》이라고 쓴 족자도 드리워있었다.

공작원 윤석찬이한테는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아마도 집주인들은 방문객들에게 이 시절에는 누구나 타기 쉬운 혁명바람을 등지고 서화에 묻힌 집안의 가정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저 부러 이렇게 꾸린것 같았다.

윤석찬은 강민이와 마주앉자 장군님의 안부부터 묻고 찾아온 사연을 알아보았다.

《정세가 험한 이때 장군님을 직접 모시고있는 동무가 무슨 일로 이렇게 떠나왔소?》

강민은 옆에 벗어놓은 초롱을 조금 밀어놓으며 자리를 고쳐앉았다.

《윤선생, 나는 장군님께서 박덕산동무에게 보내시는 편지를 전달하러 왔습니다.장군님께서는 박덕산동무가 가까이 있으면 선생의 안내를 받아 직접 만나고 공작상 관계로 멀리 나가있으면 선생님을 통해 전달하라고 하시였습니다.》

《그렇소?》

신중해진 윤석찬은 몸가짐을 엄숙히 하였다.

《윤선생, 박덕산동무를 지금 만날수 있습니까?》

《박덕산동무를 만나기란 여간 힘들지 않소. 그가 어디 12도구조직만 지도하오? 가부간 좀 기다리다가 나하고 같이 갑시다. 래일저녁 백바위골로 오라는 련락이 왔는데 거기로 가면 만날수 있을거요.》

강민은 윤석찬의 권고에 동의했다. 장군님께서 친히 박덕산이한테 주시는 임무이니만큼 본인을 직접 만나 전달하여야만 하였다.

행동방향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자 윤석찬은 손님이 기다리는 사이에 있을 거처에 대해서 념려했다.

《어디 나가있을 생각은 말구 래일저녁까지 우리 집에서 푹 쉬시오.》

주인의 말이 고마왔다. 오래간만에 따뜻한 구들목에 누워 로독을 풀고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강민은 그렇게 할수가 없었다.

《윤선생, 난 그사이 할 일이 있습니다. 이번 걸음에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데?》

《저, 이 거리에 리인묵이란 사람이 있겠는데 모르겠습니까?》

윤석찬은 의아한 눈길로 강민을 쳐다보았다.

《리인묵이?··· 그런 사람이 있소.》

《그 사람이 어떻습니까?》

강민은 손에 쥐고있던 캡을 초롱우에 놓으며 한무릎 나앉았다.

윤석찬은 한거리에 살면서도 리인묵이와는 별로 상종을 안해왔는데 어떻게 되여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 그를 찾는지 영문을 몰라하며 대답했다.

《글쎄, 내 보기에는 썩 좋은 사람 같질 않소. 양조업을 하면서 밥술이나 먹고 사는데 거리에서 여론이 구구하오. 헌데 그 사람은 왜 찾소?》

《장군님께서 이번 걸음에 만나보고 오라는 분부가 계셨습니다.》

《예? 장군님께서요? 거리에서는 그 사람이 동생네 아이들을 공산당씨라고 집에서 내쫓았다는 소문이 도는데.》

강민은 가슴이 철렁하는것을 느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장군님께서는 바로 그 애들 소식을 알고싶어 그 사람을 만나보라고 하시였습니다.》

윤석찬은 심각해졌다. 그는 장군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일에 대하여 풍문이나 듣고 정확치 못한 이야기를 하게 될가봐 제편에서 의심되는 점을 먼저 물어보았다.

《거리에서는 그 사람 동생이 빨찌산을 했다고들 하는데 그런 동생이 있긴 있었소?》

《예, 있었습니다. 동생은 우리 부대에서 소대장을 하다가 지난해 가을에 전사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론이 역시 맞는구만.》

강민은 예상 못한 뜻밖의 소식에 한동안 갈피를 못잡고 잠자코 앉아있기만 하였다. 혁명에 한몸을 바친 전우 리성묵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생생각을 해서라도 형이란 사람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겠는가. 헛소문이겠지.)

강민은 이렇게 생각을 돌려보려 했지만 허무한 생각이 갈마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윤선생, 난 도무지 믿어지질 않는군요.》

《나 역시 그렇소. 허지만 아니땐 굴뚝에서 연기나겠소. 그 사람에 대한 좋지 못한 여론은 그뿐이 아니요. 죄될짓을 해놓고 가책을 받아 그러는지 세상과는 담을 쌓은채 늘 술독에 빠져 산다는거요.》

강민은 더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세상돌아가는 소문을 그대로 믿을수도 없고 안믿을수도 없었다. 어차피 당자를 만나 사실여부도 확인하고 아이들의 일도 알아볼밖에 없을듯 하였다.

《워낙 독립군까지 했다는 사람이 그쯤 소문을 놓는다는것은 보통 일이 아니요. 쉽사리 속을 뽑아낼것 같지 않구만.》

강민의 결심을 듣고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앉아있던 윤석찬은 그가 그래도 가볼수밖에 없다고 자리를 털고 나서자 마지못해 초롱을 지워주며 개탄조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