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1


 

제 1 장

1

 

나라의 지맥이 시작되는 여기 백두산기슭에서 바라보면 어디에나 바다같이 푸르고 넓은 천리수해가 평화롭게 굼실거린다. 하늘을 향해 우듬지를 쳐들고 조용히 설레이는듯 한 그 숲에 실상 평화가 깃들 때는 극히 드물고 자연의 온갖 파란광풍이 무시로 덮쳐든다.

그러나 아무리 비바람이 고목을 쓸어뜨리고 눈보라가 가지를 물어뜯어도 숲은 여전히 존재할뿐아니라 싱싱하고 억세고 그리고 또 언제나 푸르다. 철에 따라 일시 변화가 있긴 하지만 거창한 숲이 없다면 이 땅은 아득한 옛날에 벌써 황토색먼지만이 날리는 불모의 땅으로 되였을것이다.

여름철이면 수림은 한껏 록음이 짙어 온 우주를 향해 푸른 빛을 뿜는다. 비가 오면 머리를 감고 바람이 불면 갈기를 날리며 오늘처럼 무더운 날이면 잎사귀 하나 움직이지 않고 잔잔한 수면같은 푸른 주단을 광막한 대지에 펴놓기도 한다.

로야령을 넘어오는 찬바람을 받아안아 서간도일대는 봄이 늦어지고 그만큼 삼복의 무더위도 늦어온다고 하지만 불볕은 방비없는 광야에 무더기로 쏟아졌다. 추우면 참나무가 얼어터지고 더우면 열대의 혹서를 무색케 한다는 대륙성기후의 변덕이라고도 하겠으나 앞에 산발이 가로막혀 더한지도 몰랐다. 지열은 어디서나 숨막히게 확확 풍겨왔다.

이 무더위속을 뚫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장백의 수림을 헤쳐나가고있다.

대원들은 숨막히는 무더위에서 벗어나려고 바람목이 터질 령마루를 자주 바라보았다. 눈에는 지척인데도 배배꼬여오른 등나무같이 산굽이를 휘감은 오솔길은 아무리 잰걸음을 쳐도 축나지 않았다. 장구라도 가벼우면 걷기가 한결 헐하련만 힘꼴이나 쓰는 대원들은 누구나 없이 전리품을 한짐씩 졌다. 아침결에 7련대가 15도구어방에서 관동군 수송대를 치고 많은 필수품을 로획한것이였다.

부대는 향방을 잡을수 없는 컴컴한 밀림을 꿰질러 천상수부근의 물줄기에 이르렀으나 행군을 멈추지 않았다.

주절거리며 시원히 흐르는 물줄기를 보자 누구보다먼저 갈증을 느낀 사람은 경위중대 기관총소대장 강민이였다.

그는 동토대식물처럼 내한성이 강하여 얼음꽃이 살속에 박혀도 꿈쩍을 안하는 사나이지만 더위앞에서는 도무지 무력하였다. 그가 추위를 덜 타는데는 사연이 있다고 한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가 지주집 빨래를 하다가 강가에서 그를 낳았는데 천명인지 벌건 알몸뚱이가 얼음판우에서 용케 목숨이 붙어나 오늘의 기관총소대장으로 자라났다는것이다.

《휘- 더워, 선실동무, 내 총 좀 메다주지 않겠소?》

강민은 마침내 한걸음 앞서 걷는 다른 중대 녀대원 선실이 옆으로 다가서며 살뜰히 말을 걸었다.

《싫어요. 하필 녀자더러···》

선실은 매정하게 첫마디에 거절했다.

《선실동무야 누구보다도 남의 사정을 잘 알아주지 않소.》

선실은 《피-》 하며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강민은 빙그레 웃으며 꽈리를 부는것 같은 그 입술을 쳐다보았다.

《제발 입술만은 내밀지 마오. 그러지 않아도 풍산처년줄은 온 부대가 다 아니까.》

《네?》

《입술을 내밀지 않아도 풍산처년줄은 다 안단 말이요.》

《아이참, 내 입술이 어쨌다는거예요?》

사람좋은 선실이는 어느새 강민의 음흉수에 걸려 시비를 캐고들었다.

《그럼 풍산처녀 특징이 무언지도 모르고 그렇게 입술을 내밀었단 말이요? 이거 안되겠군. 선실동무, 내 말을 잘 새겨두오. 풍산처녀 특징이 바로 그 입술이 나온거란 말이요. 왜 그런고 하니까 그 고장이야 산이 많고 감자가 잘되기로 소문난 고장이 아니요. 다른것은 먹을것이 없구 온 겨울 불화로를 끼구앉아 군감자만 훌훌 불다나니 입술이 안나올수가 있소?》

선실은 실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그만 입을 싸쥐고 까르르 웃어댔다.

실하다니말이지 선실은 《녀장수》로 불리울만도 하게 체구가 우람했으며 힘도 역시 남자 못지 않았다. 그는 총구쪽을 한손으로 잡고 총꼬누기를 해서도 남동무들한테 지지 않을뿐아니라 오히려 남동무들의 짐까지 자청 져다주는판이였다. 그래서 강민이도 남들과 같이 선실의 신세를 한번 져보자고 수작을 붙여본것인데 첫마디에 쌀쌀하게 거절을 당한것이다.

《이런 때 송순동무가 있으면 좀 메다주련만.》

선실은 한참 아닌보살하고 걷다가 강민이를 돌아다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뚱딴지같이 그건 무슨 소리요?》

《송순이야 강민동무가 발구에 태워다가 입대시키지 않았어요. 그러니 혹 남다른 생각이 있을는지 알겠어요. 그 귀걸이처럼말이예요.》

말은 곰상스럽게 하는것 같지만 실상은 방금 풍산처녀 입술의 래력을 들려준 품앗이를 하자는것이다.

강민이가 송순이를 발구에 태워다가 입대시킨것만은 사실이였다.

지난해 여름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백두산지구로 진출할 당시 강민은 선발대와 같이 여기 장백땅으로 먼저 나왔었다. 그때 강민은 12도구에서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고있는 윤석찬이로부터 자기 공작관내의 처녀를 한명 입대시키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처녀가 바로 송순이였다. 12도구가까이에 있는 지주집 부엌데기로 살며 갖은 구박과 천대를 받던 끝에 마감엔 릉지가 되도록 얻어맞기까지 하여 차라리 우물에 빠져죽고만다는것을 이웃에서 말려 겨우 살려낸 처녀라고 하였다.

강민은 부대로 돌아갈 때 윤석찬의 부탁대로 지주집에서 부엌데기처녀를 빼내여 데리고 떠났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송순은 눈덮인 수림속 비탈길을 오르다가 발목을 접질러 도무지 걸을수가 없게 되였다. 시집갈 나이가 된 다 큰 처녀를 업고가기도 뭣하였지만 그렇다고 무슨 신통한 방도가 생각나는것도 없어 한동안 망설이다가 업히라는 뜻으로 등을 처녀쪽으로 돌려대며 손을 내여밀었다.

《애그머니나.》

송순은 그 손을 얼결에 밀쳐버리며 옆으로 빽 돌아앉았다.

강민은 갈길이 바빠서 처녀의 수줍음을 받아주고 어쩌고 할 겨를이 없었다.

《젠장, 그럼 눈속에 앉아 얼어죽겠소?》

자기를 어데로 끌고가는지 알수 없는 사나이의 큰소리에 송순은 그만 따라가고싶은 생각마저 없어져서 눈을 꼭 감으며 대답하였다.

《전 그러지 않아도 죽자던 몸이예요.》

《자 이런 성화라구야··· 걸핏하면 죽을 생각부터 할건 뭐요.》

강민은 별난 처녀를 만나 고생문이 열린다고 두덜거리며 인가에 내려가서 발구를 하나 얻어왔다. 그가 소태같이 입이 써서 《어서 타시오.》 하자 송순은 그때야 마지못해 발구에 올라앉으며 미안해하였다.

《이렇게 신세를 져서 되겠어요?》

《신세스러우면 이젠 죽을 생각을 버리구려.》

강민은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힘들게 발구를 끌고갔다. 한참 가다가 돌아다보니 발구우에 앉은 송순이가 눈가루를 뒤집어쓴채 몸을 옹송그리고 오돌오돌 떨고있었다. 눈보라를 막을만큼 옷을 변변히 입지 못한데다가 얼굴을 감싼것도 얇은 목도리 하나뿐이여서 량볼과 코끝이 고추같이 새빨갛게 얼었다.

강민은 보다 못해 제 털모자를 벗어 푹 씌워주었다. 송순은 발구에 앉아가는것만도 호강스럽게 생각되여 모자를 돌려주고싶었지만 강민이가 또 화를 낼가봐 거북한대로 쓰고갔다. 강민은 아무것도 가리운것 없는 맨머리바람으로 눈보라를 맞받아 발구를 끌고갔다. 그바람에 강민은 두귀가 뻣뻣하게 얼어 한동안 귀방울이 혹처럼 부어다녔다.

송순은 그 일을 늘 미안스럽게 생각하였다.

한편 강민이쪽에서는 제가 데려다 입대시킨 녀성이라고 해서 그 이후에도 보호자연하며 각별한 관심을 돌려서 오히려 송순이를 난처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송순은 부엌데기시절의 유일한 재산인 엷은 목도리를 미련없이 풀어 귀걸이를 정성스럽게 떠서 강민이한테 주었다. 강민은 싸움판에서는 펄펄 나는 기관총소대장이였지만 녀성을 대하는데서는 고지식하고 찬찬치 못한 사람이였다. 그는 제 귀가 얼어터질번한 일은 가맣게 잊어버리고 자랑삼아 귀걸이를 걸고다니며 은근히 누가 떠주었는가 물어주기를 기다리기까지 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귀걸이의 사연을 잘 아는 선실이가 능청스럽게 물었을 때도 후환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하고 고지식하게 다 고해바쳤더니 오늘 이렇게 되로 주고 말로 받는셈이 되였다.

《객적은 소리 말고 옜소.》

강민은 드디여 자기의 묵직한 기관총을 선실의 실팍한 어깨우에 올려놓고야말았다.

선실은 《왜 이래요?》 하면서도 기관총가목을 어깨앞으로 바싹 가져다붙였다. 실상 그는 강민이가 몇시간전부터 자기가 멘 총보다 갑절 무거운 기관총을 메고 헐썩헐썩 따라오는것을 보고 진작 좀 메다주고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다.

《이봐요, 남자로 생겨 총을 녀자더러 메다달라고 해요?》

《그러게나말이지.》

강민은 몸이 홀가분해져서 당목수건으로 목덜미를 닦으며 손바닥으로 슬슬 부채질을 했다. 이럴 때는 어찌나 천진스러워보이는지 간삼봉전투때 사령관동지곁에 좌지를 정하고 적병을 수십명이나 쓸어눕힌 기관총수같지 않았다. 그러나 선실은 이 기관총소대장이 이제라도 적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번개같이 제 총을 빼앗아메고 어느새 등판우로 치달아올라 맨먼저 전투준비를 하리라는것을 잘 알고있다.

며칠전의 《7. 7사변》으로 하여 그러지 않아도 부대안의 분위기는 팽팽하였다.

지난달부터 중국 완평지방에서 군사연습을 벌려오던 일본군은 7월 7일밤 저희네 병사 한명이 실종되였다는 사건을 꾸미고는 책임을 중국측에 전가시켜 완평에 들어가 수색케 하라느니 중국군대를 완평에서 철거시키라느니 하는 황당한 요구조건을 내놓다가 완평서남쪽 10㎞지점에 있는 로구교를 불의에 침공하였다. 그다음날에는 중국관내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하여 며칠후에는 벌써 베이징에서 천진, 보정 방면으로의 련락의 요충지인 영정하 좌안일대를 제압했다.

일본군이 불의에 대륙침략전쟁을 일으키고 급속히 전과를 확대하고있다는 소식은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내외의 여론은 흉흉하였다.

급변하는 정세와 관련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사령관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혁명군산하 각 부대 지휘관들을 초수탄으로 부르시였다. 초수탄에서 군정간부회의를 열고 새로운 정세에 대처할 방침을 제시하실 구상이였다. 일본군이 중국관내로 진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인민들이 몹시 불안해한다는 보고가 련일 사령부에 들어오고있는것만큼 초수탄으로 가는길에 주민부락이 많은 소덕수일대에서 대중정치사업도 크게 벌리실 계획이였다.

강민은 물론 사령부의 이 모든 계획에 대해서 자세히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갈 길이 바쁘다는것만은 잘 알고있다.

그것은 다른 지휘관들과 대원들도 모르지 않아 전대오에 긴장이 흘렀다. 행군하는 대오에 이러한 긴장을 더 실어온것은 부대가 숙영지를 떠나기전에 도착한 사령부통신원이였다. 숙영지에 도착하자 여느때없이 매우 심각한 빛으로 사령부로 찾아들어간 그는 나올 때 역시 얼굴색이 풀리지 않았다.

대기는 한낮이 기울자 불가마속같이 달아올랐다. 강민은 대오의 무거운 분위기만 아니면 도랑물에라도 뛰여들었다 가자고 뒤에서 오는 7련대장 김주현이한테 귀띔하고싶었다. 한걸음 앞서가는 봉석이를 꼬드겨 사령관동지께 직접 제기했을수도 있었다. 봉석의 제기라면 장군님께서 들어주실수도 있다. 봉석이는 부대에서 제일 어린 16살의 대원일뿐아니라 사령관동지의 귀염둥이이다.

강민의 이런 속내를 엿보기라도 한듯이 봉석이가 뒤를 돌아다보며 제 목소리가 아닌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강민동지!》

강민은 딴사람을 보듯이 봉석이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자기를 늘 《아저씨》라고 불러오던 봉석이한테서 동지라는 말을 처음 듣게 되자 하루아침에 그가 틀스러워진것 같았다.

봉석이 역시 자기 입에서 처음 튀여나온 동지라는 말을 강민이가 분명 귀설게 들었다는것을 직감했지만 그 말을 철회할 생각은 없었다. 그가 입대한 후에도 오래동안 구대원들을 《형님》, 《아저씨》로 부르는것을 보고 김주현련대장은 한두번만 지적하지 않았다.

《대오안에서 형님, 아저씨 하면 규률이 서지 않소. 동지라고 부르시오.》

세번째 지적을 받은 뒤부터 봉석은 련대장의 요구를 실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강민이앞에 서면 《동지》라는 이 한마디가 송진처럼 혀끝에 달라붙어 좀처럼 입밖으로 나가주지 않았다.

강민은 과격한데가 있기는 하지만 백발백중의 명사수로 싸움에서는 표범같이 용맹했으며 사내다운 그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밥도 잘 지어 녀대원들을 무색케 할뿐아니라 구변도 좋아서 그의 연설을 듣고 입대한 청년들만 해도 한둘이 아니다. 어쨌든 강민은 봉석이가 은근히 두려워하면서도 부러워하는 대상이였고 그의 당면목표는 강민이 같은 유격대원이 되는것이였다. 이와 같은 내심의 지향은 존경심과 함께 한편으로는 주눅이 들게도 하였다. 눈길만 한번 던져도 가슴이 얼어드는 기관총소대장만 버젓이 동지라고 부르는데 습관되면 모든 대원들을 쉽사리 다 그렇게 부를수 있을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이야말로 다시 있을상싶지 않은 절호의 기회였다. 자기가 두려워하는 부대의 소문난 기관총소대장이 더위를 못참아 따오기 샘구멍 넘겨다보듯이 눈길을 자꾸만 강물쪽에 팔지 않는가. 그래서 한번 《동지》라고 조용히 불러본것인데 대척이 없다.

《강민동지.》

이번에는 좀더 큰 목소리로 자신심을 가지고 불렀다.

강민은 허거픈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어쩐지 봉석이가 《나도 이젠 당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혁명가요!》라고 뽐내는것 같아서 잔등이라도 두드려주고싶은 마음이 동했다.

그는 봉석이가 어쩌는가 보자고 빙긋이 웃으며 《왜 그러오?》라고 응대를 했다.

그러자 봉석은 헛기침을 깇으며 제법 틀스럽게 말하는것이였다.

《참읍시다.》

강민은 억이 막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무엇을 참자는것인가.

혹시 물속에 뛰여들고싶어하는 남의 속내를 건너짚고 앞질러 오금을 박는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좀 주제가 넘는 언행이다. 그러나 규률을 지키자는데는 할 말이 없다.

《흠, 제법인데.》

불시에 이런 소리가 강민의 입에서 나올번했다. 허지만 그 말조차 할수 없었다. 줄곧 생각에 잠겨 대오의 후위에서 걸으시던 장군님께서 그들옆으로 오시였다.

장군님의 눈길은 땀에 화락 젖은 대원들의 군복이며 별로 무겁게 보이는 배낭이며 총이며를 하나하나 더듬고있었다.

강민은 자기의 넓은 어깨가 비여있는것을 느끼자 선실이쪽으로 급히 손을 내밀었다.

《인주오.》

《왜 그래요?》

선실은 모르쇠를 치며 기관총가목을 더 꼭 잡았다.

장군님께서 급해맞아하는 강민이를 못본척하시며 봉석이옆으로 다가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사람이 걸어가는지 보총이 걸어가는지 알수 없을 정도로 장총을 걸친 봉석의 모습을 이윽히 내려다보시였다.

봉석은 얼마전까지 가볍고 길이가 짧은 기병총을 메고다니다가 기병총은 녀대원들이나 메고다니는것이라고 제편에서 우겨 장총으로 바꿔메였다. 그때 봉석은 혀끝을 잘못 놀린 값으로 녀대원들로부터 혼쭐이 빠지게 공격을 받았다.

사실 녀성 구대원 한명하고 남자 신대원 다섯명하고 바꾸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같은 혁명대오에 있는 동지들에 대해 그렇게 말한것은 봉석이의 큰 실언이였다.

그건 그렇고, 오늘도 구대원들조차 헐헐하는 행군길이지만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털썩거리며 걷는 봉석의 모습은 장군님의 가슴을 저릿하게 하였다. 아직 뼈대가 채 굳지 않은것이 왜 덥고 힘들지 않으랴만 배낭도 총도 남과 같이 메고가면서 강민이더러 의젓하게 한마디 시까스르기까지 하는 모습은 얼마나 기특한가.

그이께서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봉석의 어깨우에 손을 얹으시였다.

《배낭을 벗으라구.》

봉석은 펄쩍 놀라며 장군님을 올려다보았다.

《일없습니다, 장군님!》

그는 배낭끈을 고집스레 부여잡으며 자기가 얼마든지 견딜수 있다는것을 보증이라도 서라는듯이 강민을 쳐다보았다. 강민은 제 한몸 건사도 똑바로 못한터여서 슬며시 봉석을 외면하고 먼산만 바라보았다.

《그럼 총이라도 벗으라구!》

장군님께서 짐짓 엄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며 봉석의 총가목을 잡으시였다.

봉석은 울상이 되여 배낭끈을 부여잡던 손으로 총가목을 꼭 틀어잡았다.

《전 힘들지 않습니다.》

《이리 달라는데.》

봉석이쪽에서 한사코 총을 벗을 잡도리가 아닌것을 보시고 장군님께서는 총을 빼앗다싶이하여 자신의 어깨우에 걸치시였다. 그리고는 어느새 저만큼 앞서시였다.

강민은 봉석의 등뒤에 대고 대구 헛기침을 하였다.

(뭐 동지라고? 장군님께서도 너는 아직 어린애로 보셔.)

봉석은 강민의 기침소리가 꼭 이런 뜻인것만 같아 약이 부쩍 올랐다.

천상수의 물줄기를 건너 대오는 령길에 접어들었다.

초복을 앞둔 염천이여서 강민이뿐아니라 행군대오에선 모두가 헐떡거렸지만 기세만은 충천하여 령길을 올랐다.

부대는 드디여 장백산줄기의 하나인 매덕령등판우에 올라섰다. 불쑥 터진 바람이 온몸에 달라붙던 끈덕진 더위를 순간에 날려보냈다. 내려다보니 천리수해가 눈길이 모자라게 아득히 펄쳐졌다.

7련대장 김주현은 휴식구령이 내리자 강민이와 함께 장군님옆으로 다가섰다.

장군님께서는 봉석의 총을 돌려주시고나서 쌍안경으로 이제 부대가 행군해갈 소덕수일대를 자세히 살펴보시더니 한곳을 점도록 바라보시였다.

장군님께서 오래도록 시선을 멈추신 그곳은 여기서 시오리밖에 안되는 이도강부근의 산기슭이였다. 상수리와 달피나무가 하늘이 안보이게 우거지고 적막을 깨뜨리는 여울물소리 은은한 그곳에는 광복의 성전에서 쓰러진 7련대 소대장이던 리성묵이 누워있었다. 그는 지난해 가을 이도강부근전투에서 대원들을 이끌고 부대의 돌격로를 열다가 적탄에 중상을 입고 희생되였다.

장군님께서는 리성묵이가 누워있는 강기슭가까이에 이르고보니 그를 인가 없는 외진 산굽이에 묻고 발길이 안떨어져 몇번이고 돌아다보며 다시 싸움길에 오르던 일이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그사이에도 절기는 몇차례 바뀌여서 추석이나 한식이 오고갔건만 찾아보는 주인 없어 쓸쓸히 풀대만 무성하였을 전사의 묘.

장군님께서는 한가슴 그득히 차오르는 회포를 달래실 길이 없었다. 찬바람 비물에 씻겨 평토가 되였을지도 모를 그 나지막한 봉분을 어루만지며 거기서 잠자고있는 전사의 넋을 위로해주고싶은 심정에 잠기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리성묵이가 입대할 때 처자를 두고 집을 떠나며 자식들과 헤여지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시였다. 아버지가 어디 가는줄도 모르고 목에 매여달리는 자식들을 너희들한테 줄 고무신을 사러 간다며 겨우 떼여놓고 집을 떠나온 리성묵이다. 그는 입대한 후 고무신을 사서 배낭에 지고다니며 자나깨나 아버지를 손꼽아기다리고있을 자식들을 몹시 그리워하였다. 꿈에 집사람을 봤다는 소리는 안해도 자식들을 봤다는 말은 자주 하였다. 그러던 리성묵이였으니 눈을 감는 시각에 자식들을 보고싶은 생각, 이름이라도 한번 불러보고싶은 생각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마지막순간에 그는 자식들 이야기는 한마디도 비치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그 일을 두고 생각하실적마다 눈굽이 젖어들군 하시였다. 지난해 가을 강민이가 왕청쪽으로 다녀올 일이 생겼을 때에는 리성묵이네 집에 들려 집소식이라도 좀 알아다달라고 부탁하시였다. 그런데 강민은 비통한 소식만 가져왔다. 리성묵의 안해는 벌써 한해전에 《토벌대》 손에 참살되고 자식들은 장백땅 어딘가에 있다는 큰아버지네 집을 찾아 떠났는데 그후로는 어떻게 되였는지 이웃에 살던 사람들도 소식을 통 모른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때부터 각지로 오가는 인편에 리성묵의 형이 어디서 사는지 자주 수소문해보시였다. 희생된 전사의 자식들을 큰아버지집에서 거두어주면 다행이고 의지할데없이 떠다니면 찾아다가 끼고다니고싶으시였다. 그러나 리성묵의 형이 어디서 사는지 누구도 알아오지 못하였다. 1년이나 사처에 줄을 놓고 찾다가 얼마전에야 그 사람이 여기서 백리안팎인 12도구쪽으로 이사해왔다는것을 겨우 알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이제 성묵의 자식들만 찾으면 희생된 전사앞에서 얼마간이라도 면목이 설것 같으시였다. 다음번에 이곳을 지나갈 때는 그들 오누이 손을 잡고 가서 아버지앞에 세워주고싶은 마음도 드시였다.

달려가고싶으면서도 달려 못가는 그이의 아픈 마음처럼 축축히 젖은 안개가 괴롭게 굼닐며 서서히 밀려가서 전사가 누워있는 산기슭을 포근히 감싸덮어주고있었다.

희생된 전사와 그가 남긴 자식들 생각을 하고있느라니 안도땅에 두고 온 동생들 생각도 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5년전에 량강구회의후 부대를 이끌고 먼길을 떠나기에 앞서 동지들의 간곡한 권고도 있고 하여 병중에 계시는 어머님을 뵈옵고저 소사하에 들리시였다. 그러나 소사하의 그리운 집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머님은 이미 두달전에 돌아가시고 슬픔에 잠긴 두 동생만이 형님을 기다리고있었다.

그이께서는 큰동생 철주로부터 어머님의 림종에 대한 비통한 이야기를 듣고 어머님의 묘지를 찾으시였다. 한생 일신의 안락이라고는 티끌만치도 모르고 애오라지 혁명에 모든것을 바치며 수난의 길을 헤쳐오신 어머님께 살아생전에 미음 한술 따뜻이 대접하지 못한것이 너무도 아프시여 괴로운 마음을 달래실수가 없었다.

가을바람은 들국화 지는 언덕에 쓸쓸히 불고 두 동생을 두고 그길로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장군님의 가슴은 쓰라린 비애로 터져오르는것 같으시였다.

그래도 철주는 숙성하고 어머님의 영향도 많이 받은터이라 형님이 발길을 못돌리고 서성거리는것을 보고 오히려 제쪽에서 큰일이 기다리는데 형님이 이러시면 되는가고 등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막내동생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데 형님이 가시면 우린 어떻게 사는가고 울먹해서 옷자락에 매여달렸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동생을 붙안고 3년만 기다려라, 그러면 이 형이 돌아온다고 달래시였다. 그때는 정말 3년이면 나라를 찾을것 같으시였다. 허나 혁명은 피의 언덕을 넘으며 날이 갈수록 간고해졌다. 그사이 철주는 지하공작을 하다가 이역에 피뿌리며 쓰러지고 막내동생은 의지할데가 없어 갖은 고생을 하며 혼자서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장군님의 얼굴에 괴로운 빛이 스치는것을 보고 김주현련대장이 그이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얼마전에 안도쪽을 다녀온 련락원으로부터 장군님의 동생들에 대한 아픈 소식을 듣게 되였던것이다.

련대장은 어떻게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대원들을 몇명 안도쪽으로 보냈으면 합니다.》

《왜?》

《철주동생도 희생되였는데 하나 남은 어린 동생을 찾아보시지 않겠습니까?》

련대장의 말을 듣자 장군님 가슴에는 형님을 부르는 동생의 애절한 부르짖음이 아득한 공간을 타고와서 지릉지릉 울리는것만 같으시였다.

《글쎄 나도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애가 그 애 하나뿐이요? 어디 가서 살아있겠지.》 하고 그이께서는 상념에서 벗어나며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주현동무, 여기 이 어방에 리성묵동무의 형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에 아무래도 박덕산동무한테 사람을 보내야 하겠으니 겸사겸사 강민동무를 보내서 찾아보도록 해보지 않겠습니까. 그 동무가 저 12도구를 잘 알지?》

《예, 지난해 바로 그 거리에서 송순동무를 빼내여 발구에 태워가지고왔습니다.》

《그렇지, 그런 일이 있었지.》

장군님께서는 산발너머 멀리 리성묵의 형이 있다는 12도구쪽을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