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6

책제목:운명
 
 

제 4 장

6

 

따니아는 례의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수도 라빠스의 임마누엘호텔로 들어갔다. 마침 기다리고있던 안내원이 그를 승강기로 5층의 어느 한 방으로 데리고갔다. 응접실과 침실을 따로 가지고있는 그 방은 온통 가죽쏘파와 황금빛의 차잔들, 커피고뿌며 고급술병들이 가득찬 장식과 갖가지 전자설비들, 록음기며 텔레비죤, 록화기, 전화기와 무선기까지 갖춘 좀 특이한 방이였다.

《오, 따마라 분께양!》 보라색격자직샤쯔를 입은 키가 훤칠한 사나이가 곰방대를 문채 반갑게 소리쳤다. 《제때에 오셨군요. 속을 태우며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왜 저를 부르셨는지요? 전 몹시 바쁜 일이···》

《우리한텐 더 중대한 일이 있습니다. 체 게바라라는 사람을 이제 당신께 소개할가 하는데···》

그는 볼리비아주재 미국대사관 무관 밀런대좌였다. 언제 보나 입에 독한 아바나려송연을 물고 연기와 함께 정차고 상냥한 미소도 아낌없이 내불면서 이곳 수도 라빠스의 젊은 귀부인들의 죄많은 마음을 사뭇 구겨놓는것으로 유명한 호남아였다.

따니아는 자리에 앉았다. 켄트표담배를 받아들고 그가 켜주는 라이타에 불까지 붙인 다음 상긋 웃으며 물었다.

《체 게바라요?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같은데요?》

《그럴겁니다. 피델 까스뜨로형제와 같이 공산주의꾸바를 이끄는 삼두마차의 일원이였으니까요.》

《어머! 그렇게 무서운 공산주의두령을 여기 호텔방으로, 저한테 끌어오실 작정이세요?》

《예, 바라신다면》 하고 그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커피와 코코아차, 샴팡술잔까지 한꺼번에 따니아앞으로 가져오며 조용히 계속했다. 《분께양 아니, 미안합니다. 따마라부인··· 난 시간이 많지 못합니다. 급한 사정이 있어서 비행기를 타고 당장 워싱톤으로 날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먼저 이것부터 보십시오.》

그는 서둘러 타자를 친 여러 문건들을 내놓았다. 거기엔 까미리의 여러 마을들과 밀림에 뿌려진 삐라들, 그후 체의 유격대를 토벌하기 위한 전투들에 대해 기록한 전투상보들 그리고 도주자를 심문한 기록들도 있었다. 그것들전부를 일일이 보여주고나서 밀런대좌는 말했다.

《우린 당신이 자기의 전문분야인 토착민들의 노래를 발굴하고 민속옷전시회를 여는것을 어느때건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것을 체 게바라의 활동지역에서 벌리면 더 유익할수 있습니다. 체 게바라유격대의 활동방식과 이동경로에 대한 아주 간단한 정보들을 수월히 수집할수 있으니까요. 어떻습니까?》

《천만에!》 따니아는 즉각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나를 무슨 마타하리와 같은 녀자간첩으로 만들 생각이신것 같은데··· 난 민속학연구사이지 그 누구의 끄나불이 아니란 말예요, 아시겠어요?》

《예, 알고있습니다.》 밀런대좌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지요. 부인, 이건 밀런이라는 미국대사관 무관 일개인의 부탁이 아닙니다. 우리 미국의 부탁 아니, 미국의 요구라 할가···》

《미국?··· 이보세요, 대좌님. 난 그것이 미국대통령의 명령이라고 해도 거절할거예요.》

《아니, 그렇게는 안될겁니다.》 이렇게 말한것은 따니아의 등뒤쪽에 나타난 키가 작달막하고 코수염을 기른 사나이였다.

《지금 당신은 미국대통령의 부탁을 받고있다는것을 아셔야 합니다.》

《예?!···》

그가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가? 저쪽침실에서 우리 말을 엿듣고있다가 조용히 미끄러져온것인가?···

밀런대좌가 군사외교관답게 조용히 말했다.

《부인, 이분은 미중앙정보국(씨 아이 에이) 볼리비아지부 책임자인 죤 딜톤씨입니다. 어련하시겠지만··· 이분과는 점잖게 대하는것이 좋습니다.》

《?···》

《앉으시지요.》 죤이 쏘파를 가리켰다. 《난 따마라부인을 이미전부터 잘 알고있습니다. 남몰래 혼자 속으로 열렬히 사모하면서 말입니다.》 그는 로골적인 굶주린 눈빛으로 따니아의 굴곡이 드러나보이는 몸매를 재빨리 훑어보며 말했다. 《매혹적인 따마라부인, 이자 방금 밀런대좌도 말했지만 우린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웃음으로 교갑을 씌운 일종의 위협적인 마취제와도 같은것이였다. 따니아는 가슴이 조여들고있었지만 무심히 담배를 빠는척 했다.

《그럼 제 말을 잘 들어주시오.》

죤 딜톤이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는 앞에서 대사관 무관인 밀런대좌가 하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그대로 반복하였다. 그러나 그가 끝으로 힘주어 강조한것은 앞의것과 전혀 판 다른것이였다.

《부인, 우리 미국은 제2의 꾸바가 여기 라틴아메리카의 고요한 뒤동산에서 나오는것을 보고만 있을수 없습니다. 당신도 잘 아시다싶이 볼리비아는 라틴아메리카나라들가운데서도 제일 락후한 나라입니다. 거기에다 무능한 바리엔또스대통령과(당신도 그가 무능하기 그지없다는것을 잘 알것입니다.) 미욱하고 권력욕에만 눈이 어두운 륙군사령관 오반도장령의 군대힘만으로는 유능한 게릴라전문가이며 꾸바혁명군의 제2부대사령관이였고 정치가인 체 게바라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벌써 두달동안에 정부군은 열한번에 걸친 전투에서 대참패를 당했습니다. 우리 미국이 대준 현대적인 무기와 공군지원까지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수천명의 사상자를 내였단 말입니다. 어디 그뿐인줄 압니까. 산간지대의 광부들과 농민들이 거기에 적극 합세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체 게바라가 곧 볼리비아를 단숨에 공산국가로, 제2의 꾸바로 만든다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이걸 용서할수가 있겠습니까? 아니, 안됩니다. 절대로!··· 그래서 죤슨대통령각하는 미국이 여기에 전면적으로 개입해나설것을 명령하였습니다.》

따니아는 입을 오무리고 태연하게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동그라미를 만들려고 애쓰는 시늉을 했다.

《그런 어마어마한 얘기가 나하고 무슨 상관···》

《상관이 있습니다, 부인. 그들이 꾸바의 산중에서 아바나시로 쳐들어갔던것처럼 마침내 여기 라빠스에까지 쳐들어오는 날엔 당신도 끝장이라는걸 아셔야 합니다.》

《아니, 나같은 녀자야 무슨···》

이번에도 죤 딜톤은 그의 말을 매정하게 잘라버렸다.

《아니, 그 무례한 놈들이 라빠스의 일등가는 미인을 그대로 둘리야 없지 않습니까. 제일 선참으로 당신을 모욕하고 그다음 교수대에 매달수 있다는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어머!》

따니아는 재빨리 그를 쏘아보고나서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껐다.

《당신은 그런 식으로 날 위협하지 마세요. 난 바리엔또스대통령각하에게 당신에 대해 신소할수도 있어요.》

《그건 좋을대로. 바리엔또스대통령이 그 누구보다 먼저 우리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지금은 우리의 지시를 받으며 움직이고있다는것쯤 지혜로운 당신이 모를리가 없을텐데?···》 죤 딜톤은 여전히 미중앙정보국의 지부책임자답게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매우 강경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따마라 분께 비떼르부인, 거듭 말합니다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우리의 제의에 동의해주시든가 아니면··· 아니, 반대란 있을수 없습니다. 그리고 래일은 오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따니아는 눈길을 떨구었다. 여기서 결심해야만 했다.

《좋아요. 당신의 제의에 내가 동의한것으로 여겨주세요.》

《잘 생각했습니다, 따마라부인.》

그는 만족한듯 따니아의 손을 잡고 입으로 가져갔다.

 

···치명적인 위험이 체의 유격대에 닥쳐오고있었다. 죤 딜톤이 고백한데 의하면 바빠맞은 미국은 수십명의 군사교관들을 이미 볼리비아정부군에 파견하였고 동시에 미중앙정보국 요원들과 《푸른 베레모》 특수부대까지 비밀리에 까미리지역으로 출동시켰다고 한다.

위험은 그뿐만이 아니였다. 유격대에 필요한 사람을 박아넣는다고 했다. 이미 박아넣었는지도 모른다.

따니아는 가슴이 얼어드는것을 느꼈다. 아직 만단의 준비를 갖추지 못한채 전투에 진입한 체의 유격대가 미군특수부대와 직접 대결한다는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수 없다.

며칠후 따니아는 진록색려행용포드승용차를 타고 까미리지구로 달려갔다. 죤 딜톤이 호위원을 붙여주겠다고 했지만 남들의 의심을 살수 있다면서 거절했다. 그는 어느 한 마을에 승용차를 맡긴 다음 말을 타고 체의 유격근거지에 들어갔다.

 

×

 

따니아의 보고를 받은 체는 즉시 지대장들인 싼체스와 후안 빠블로를 불러 조성된 정황을 말해주었다.

《조성된 정황은 매우 위험하오. 아직 준비도 채 갖추지 못했는데 미중앙정보국이 벌써 손을 쓰고있소. 물론 우린 미제를 가장 주되는 목표로 삼고 싸움을 시작했소. 내가 늘 말하는것이지만 우린 세계도처에서 미제의 각을 떠야 한다고 하신 김일성동지의 반제반미투쟁전략의 제1선에 서있는 투사들이요. 그러니 아무리 어려워도 우린 기어이 조성된 난국을 뚫고나가야 하오.》

체는 제1지대와 2지대를 분산시켜 싸울것을 결심했다. 광산지구에서 로동자들로 제3지대를 조직하는 사업은 당분간 미루지 않을수 없었다. 하여 싼체스의 1지대는 까미리의 밀림지대에서 활동하고 후안 빠블로의 제2지대는 그란데강을 건너 동북부에로 진출하기로 했다. 체자신은 제2지대가 새 근거지에 발을 붙일 때까지 그들과 같이 활동하기로 했다.

따니아도 자기가 오던 길로 돌아가려면 한동안 체와 같이 행군해야만 했다. 출발에 앞서 따니아는 자기 가방에서 작은 지함을 하나 꺼내여 체에게 내밀었다.

《사령관동지, 이건 제가 마련한 선물입니다.》

체가 놀라와했다.

그것은 소형야시경이였다. 따니아가 설명했다.

《사령관동지의 이 크고 무거운 망원경은 낡은것입니다. 그건 적외선으로 야간에 대상물을 관찰할 때 물체를 밝게 보기는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합니다. 적외선이 모든 물체를 붉게 보이게 하므로 적들이 같은 망원경을 가지면 이쪽에서 망원경을 보고있는 사람의 위치를 제꺽 알아낼수 있기때문이랍니다.》

《그럼 이건?···》

《이건 최근 윁남전쟁이 심화되면서 미국에서 새로 제작했다는 〈별빛〉이라는 야간망원경입니다. 가볍고 또 자체로 빛을 내지 않기때문에 절대로 사용자가 로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맙소.》

행군은 낮 12시에 시작되였다. 체가 리용하던 찌프차는 땅굴속에 감추고 말은 싼체스에게 넘겨주었다. 무성한 밀림속을 헤쳐가야 하기때문이였다. 린근의 목장에서 라마(안데스산줄기에서 사는 락타의 일종)를 기르는 텁석부리남자를 길잡이로 내세웠다.

《밀림을 가로지른다구요?》 하고 길잡이는 놀라와했다. 《그건 쉽지 않수다. 짐승도 거기선 빠져나가기 힘들어하우다.》

《그래서 아바이한테 부탁하는겁니다. 사례도 하겠습니다.》

《그런건 필요없수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밀림에서 영영 숲귀신이 될수도 있지요.》

아닐세라 차츰 숲이 무성해지면서 행군대오는 그 농민이 큰칼을 휘둘러 열어주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렇게 아마조나스강상류인 그란데강에까지 강행군으로 가야 했다.

체의 지시로 남복을 한 따니아는 수건으로 얼굴을 둘둘 감아놓고 커다란 그리고 머루알같이 새까만 두눈만 빠금히 내놓고있었다. 처음부터 말 한마디 없이 체의 옆에 바싹 붙어서 갔다. 시와 노래로만 알고있던 랑만적인 유격대행군, 허나 한나절도 채우지 못하고 따니아는 그만 녹초가 되여버리고말았다.

한밤중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체는 나이론방수포를 펴더니 뿌죽하니 솟아오른 두 바위사이에 씌워놓고 큼직한 돌들로 네 귀를 고정시켰다. 비막이천막을 만드는것이였다.

《여기 들어가 자오.》

《예?》 따니아는 입을 딱 벌린채 다물념을 못했다. 《아니 사령관동지, 이런 밀림에서, 여기 맨 돌바닥우에서, 그것도 혼자··· 자란 말씀입니까?》

《이건 잠주머니요.》 따니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는 무뚝뚝한 어조로 계속했다. 《우리 부대에 녀자란 한사람도 없으니 어쩌겠소. 혼자··· 잘 자오.》

체는 자기 배낭속에 들어있던 잠주머니를 던져주다싶이 하고 바위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얼마후 잠주머니속에 들어간 따니아는 머리속에 갈마드는 온갖 무서운 생각에 온밤 끝없이 뒤채기며 잠들지 못했다. 차츰 굵어진 비방울이 나이론방수포를 투닥투닥 때리더니 세찬 물줄기를 이루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언제 어떻게 잠들었는지··· 해뜰무렵엔 안개가 자욱했다. 따니아는 잠주머니에서 깨여났다.

신선한 아침, 지난밤 죽을것 같던 피로도 미칠듯 한 고독감도 말끔히 잊혀졌다. 그는 멀지 않은 개울가를 향해 탄력있는 걸음걸이로 춤추듯 내려갔다. 당장 겉옷을 벗어던지고 맑은 물에 머리를 잠그었다. 그때 묵직한 발자국소리가 가까와왔다. 이어 체의 숨결이 느껴졌다. 따니아는 가르릉거리는 그 병든 숨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물에 적시고 비누칠까지 한 머리를 물우에 드리운채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따니아, 여기 물은 깨끗하오.》 체가 몸을 반쯤 돌리고 하는 말이였다.

《그래서요?》 따니아가 머리도 들지 않고 물었다.

《산속에선 위생사업을 잘해야 하오. 온도차가 심해서 병에 걸리기 쉽소. 더우기 토질병에 걸리면 손쓰기 어렵소. 그러니 주저하지 말구 제꺽 목욕을 하오. 누구도 여기론 오지 않을거요.》

그리고는 돌따서 가버리는것이 알렸다.

저벅저벅하는 발자국소리··· 어데선가 찌르레기의 울음소리가 울려오더니 뚝 그쳤다. 체의 발자국소리에 숨을 죽인것이리라. 여전히 물우에 젖은 머리를 수그리고있던 따니아는 비로소 머리를 들고 눈길을 돌렸다. 체가 가까운 숲속으로 들어가는것이 보였다. 한동안 잠잠해졌던 새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까의 음조를 그냥 그대로 반복하는 단조로운 울음소리였다.

따니아는 웃었다. 정다운 새들!··· 그는 자기로서도 알수 없는 이상야릇한 충동에 겨워 수영복차림으로 물에 뛰여들었다.

목욕을 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데스산줄기의 험준한 고산지대에서 흘러내린 물이여서 류달리 차고 시원했다. 머리도 그 물결처럼 맑아진다. 모래불에 나와서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젖은 머리도 쥐여짠다. 가슴도 맑게, 넓게, 한껏 시원하게 열린다.

 

내 사랑 내 왜 그대를 알았던고
내 왜 사랑을 약속했던고
차라리 그대를 몰랐더라면
내 심장 고동치 않았으리
아 ― 내 심장 고동치 않았으리

 

그것은 어릴 때 어머니한테서 배운 로씨야민요였다. 로씨야태생인 어머니가 고향을 그릴 때마다 아련한 미소를 떠올리며 혹은 눈물을 머금고 부르던 노래··· 하지만 지금 따니아가 부르는 그 노래의 의미는 어머니의 눈물의 사연과 전혀 다른것인지도 모른다.

 

무정한 세월은 흐르고흘러도
내 심정 그리도 몰라주던
그립던 그대 함께 거닐으니
내 심장 기쁨의 노래 불러

 

그는 멀지 않은 숲속에서 체의 련락병 루돌프가 수영복차림인 자기의 모습을 사진찍고있는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또··· 따니아로서는 상상도 할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찍힌 그 사진이 이제 수십년세월이 흐른 뒤 온 세계의 신문과 잡지, 소책자들에 실리게 되리라는것을, 하여 그 사진을 들여다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저미는 아픔과 사랑의 정에 겨워 눈물짓게 되리라는것을!···

따니아는 뒤로 젖힌 머리를 빗으로 빗으며 저 높은 산줄기너머에서 피같이 타는 아침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아― 내 심장 기쁨의 노래 불러

 

돌연 노래소리가 끊어졌다. 따니아는 자기한테로 달려오며 손짓하고있는 루돌프를 얼없이 쳐다보았다.

《따니아, 적정이요. 빨리!···》

 

적들은 체가 예상했던것보다 더 빨랐다. 미군수송기들까지 동원되였던것이다. 볼리비아정부군 제4사단과 제7사단, 미군특수전부대 《푸른 베레모》까지 동원되여 오솔길을 봉쇄하고 중무기들을 배치하던중이였다.

군견들까지 날치였다. 따니아는 개들이 아츠럽게 울부짖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두손을 올려 귀를 틀어막았다.

《따니아, 겁내지 마오.》 체가 소리쳤다. 《놈들은 아직 우리 력량을 모르고있소. 이럴 때엔 놈들이 정신차릴새없이 두들겨패야 하오. 자, 이걸 받소.》

체가 그에게 베레따권총을 던져주었다. 이어 그는 군용범포주머니에서 주먹만 한 수류탄을 꺼내여 뚜껑을 틀어서 뽑고 힘껏 내던졌다. 수류탄이 지직지직 소리를 내며 디굴디굴 굴러가자 군견들이 어쩔바를 몰라 그 주위를 뱅뱅 돌아치는데 요란한 폭음이 터지며 불기둥이 솟구쳐올랐다. 순시에 터진 개들의 비명소리도 불기둥속에 잦아들고말았다.

그들은 앞으로 달려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 밀림을 꿰지른 작은 산간도로가 있었다. 화물차들과 대포들이 보였다. 사방에서 요란한 총성이 울부짖는 가운데 수류탄들이 터졌다. 따니아는 다른 자동총을 손에 쥐고 달려가는 체의 뒤만을 쫓았다. 어떻게 개울을 건너갔던지?··· 갑자기 체가 따니아의 팔목을 틀어잡았다.

《이건 뭐요, 정신나가지 않았소? 권총을 거꾸로 쥐다니?···》

체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따니아가 쥔 권총을 빼앗더니 그것을 바로 쥐고 쏘는 법을 배워주었다.

《인젠 알겠지? 쏴보오. 자, 총구를 우로 쳐들고··· 쐇!》

《땅!》 하는 총소리에 권총을 움켜쥐고있던 두손목이 대바람 공중으로 훌쩍 쳐들렸다. 그러나 벌써 두번째, 세번째만엔 그럭저럭 어방대고 쏠수 있었다. 무턱대고 쏘아댔지만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체는 물론이고 그의 련락병인 루돌프도 치렬한 전투장에서 더이상 그를 관심할새가 없었다.

《저건 누구요?》 갑자기 체가 멎어서더니 전투장 한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부상당하지 않았소?》

앞쪽에서 루돌프가 머리를 돌리며 소리쳐 보고했다.

《후안 빠블로지대장입니다. 적의 45미리총탄에 맞았습니다.》

그제서야 따니아는 한쪽어깨죽지가 온통 피투성이가 된 후안 빠블로를 알아보았다. 그는 코와 입으로 계속 피를 토하는데 그러면서도 스타스자동총을 내두르며 《이놈들아, 꾸바혁명군의 본때를 보아라!》 하고 부르짖고있었다.

체가 달려가 그를 끌어안고 함께 딩굴었다.

《후안, 어쩌자구 이러는거요? 동문 지대장이요, 지대장!···전투를 지휘해야지 이게 뭐요?》

이어 체는 루돌프와 따니아더러 그를 응급처치하라고 명령하고 대원들을 향해 높이 웨쳤다.

《동무들, 날 따라 돌격앞으로!》

따니아는 창황중에도 돌격의 앞장에 나선 그를 불안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머리우에서 나무가지들이 중둥무이로 부러져나가고 갈기갈기 찢기여진 잎새들이 재개비처럼 흩어져내렸다.

따니아는 언제 전투가 끝났는지도 알지 못했다. 피범벅이 되여버린 제2지대장 후안 빠블로는 다행히 생명엔 위험이 없을듯 했다.

체가 달려와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만 소리치오. 전투가 끝났는데 아직두 왝왝거리면서··· 동무같은 지대장이 어데 있소?》

《그럼 사령관동진 왜 돌격할 때 맨 앞장에 나섭니까?!···》

체는 잠시 아무 말도 못했다. 대신 때를 기다리고있은듯 무서운 줄기침이 터져나왔다. 마침내 가까스로 숨을 돌리자 그는 거쉰 소리로 부르짖었다.

《빠블로, 더는 날··· 괴롭히지 마오. 동무까지 그러문 난 어떻게 하라는거요? 어쨌든 동무문젠 따로 봐야겠소, 알겠소?》

《예, 사령관동지.》

이번엔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체는 홱 몸을 돌려 가버렸다.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줄기침을 터치였다. 그 병든 소리가 따니아의 가슴을 갈가리 찢는듯 했다.

부상병들도 있었다. 그들을 끌어내여 응급처치를 했다. 한쪽에선 전장을 수색하고있었다. 습기를 머금은 찬바람이 세차게 일기 시작했다.

체가 길안내자를 소리쳐불렀다. 얼마후에야 웅뎅이에 틀어박혀있던 그를 루돌프가 발견하고 억지로 끌어왔다. 체가 그에게 다가갔다. 세찬 바람질에 농민이 들고있던 밀짚모자가 떨어져 땅바닥에 나딩굴었다. 체가 그것을 집어 농민에게 주면서 줄기침때문에 한결 거쉬여진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새 수고가 많았습니다. 인젠 집으로 돌아가도 되겠습니다.》

《그러니 인젠 내 일이 다 끝났군요?···》

《예,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부탁할게 있습니다.》

그는 말을 끊고 따니아를 피끗 돌아보았다. 순간 따니아는 숨구멍이 막히는듯 했다. 언제 번개불이 번쩍했는지?··· 머리우에서 따당!― 하는 천둥소리가 터진것은 그 순간이였다. 사위는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저분을 아이따마을까지 가게 도와주시오.》

따니아는 체가 하는 말을 가까스로 알아들었다.

《며칠전 길을 잃고 우리 숙영지에 들어왔는데 알고보니 민속학자이더군요. 도와드려야 할분인데 그냥 끌고다닐수도 없구···》

《아, 도와야지요. 념려마시우.》

《그럼 부탁합니다.》

체는 따니아에게로 돌아섰다.

《따마라 분께 비떼르선생, 괜히 우리를 만나 고생이 많았지요? 인젠 도시로 돌아가십시오.》

따니아는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아니, 난···》

《안됐습니다.》 체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이제 뻬루와 아르헨띠나에까지 가신다면서요? 혹시 우리가 도울 일은 없겠는지?···》

그것은 암호지령과 같은것이였다. 뻬루와 아르헨띠나에 조직되여있는 유격대의 지원망들을 찾아가서 약속된 자금과 물자들을 받아오라는··· 체가 계속했다.

《앞으로 다시 만날 때가 있을겁니다. 따마라 분께선생,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저··· 사령관동···》

어느새 체는 재빨리 손을 들어 군대식으로 인사하고 홱 돌따서버렸다. 따니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부지불식간에 분한 마음이 눈물로 찔끔 솟았다. 그러나 체는 벌써 도로 한가운데로, 불타는 화물자동차쪽으로 걸어가고있었다.

《빨리 전장을 수색할것. 로드리게스! 동무가 지휘하오!》

《알았습니다, 사령관동지!》

그 순간 돌과 모래도 쥐여뿌릴듯 한 강풍이 몰아쳐왔다. 변덕스러운 고산지대날씨였다. 사위는 완전히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미처 숨돌릴새도 없이 급기야 굉장한 폭우가 쏟아져내리는 속에 무시로 섬광이 번쩍거렸다.

따니아는 바지주머니속에 쓸어넣은 베레따권총을 한손으로 꽉 틀어쥔채 후들후들 몸을 떨고있었다. 어느덧 그의 얼굴은 온통 비물에 젖어들었다. 두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비물과 가슴속에 쓸어드는 짜릿한 눈물···

《그럼 안녕히···》 하고 따니아는 마음속으로 뜨겁게 인사말을 보냈다. 《사령관동지, 부디 앓지 마시고 몸성히 잘 싸워주세요.》

그이상 더 말을 이을수 없었다. 부지불식간에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르는 눈물을 참을길 없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이날 체는 자기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새 근거지에 도착, 도중 정부군 한개 중대 병력과 미군 〈푸른 베레모〉부대의 소편대와 조우하여 전투진행. 적 30여명을 사살, 47명 포로··· 우리측에서는 전사자 3명, 후안 빠블로를 비롯하여 7명이 부상, 로획한 무기 다량··· 미국놈들과의 첫 전투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반제반미투쟁의 첫 총성을 울렸다는 의미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본다.

전투가 끝난 다음 따니아를 도시로 돌려보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