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9

책제목:운명
 
 

제 3 장

9

 

김일성동지께서는 늘 다니시는 내각청사의 정원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계시였다. 그뒤로는 부수상 겸 외무상인 박성철과 외무성 부상 허담, 부수상 겸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인 정준택, 내각 제1사무국장 최재우 그리고 군대에서는 최광과 오진우가 따르고있었다.

흐릿한 아침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파란 잎새들이 돋기 시작한 나무우듬지들이 솨― 설레이군 했다. 이해의 여름은 너무도 늦게 찾아오는듯싶다. 깊은 사색에 잠겨계시던 그이께서 돌연 걸음을 멈추시고 최재우 제1사무국장에게 물으시였다.

《김일동문 또 강원도에 나가있다지?》

《예, 그렇습니다. 수령님께서 현지지도하신 수산부문사업을 추켜세우려구···》

《김일동무한테선 련락이 왔소?》

《예, 수령님. 방금 떠난다고 했습니다.》

《김일동무가 놀라지 않게 말해줄걸 그랬소. 무슨 비상사태가 생겼나 해서 너무 덤벼칠가봐 걱정이요. 요즘 건강도 몹시 좋지 않던데···》

최재우는 그만 눈길을 떨구었다. 그런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던것이다. 지금 김일은 함남도와 강원도의 수산부문사업을 료해하고 대책하기 위해 현지에 나가있다. 수령님께서 급히 부르신다고만 련락했으므로 지내 무리할수도 있는것이다.

《그럼 우리끼리 먼저 토론합시다.》 그이께서 하시는 말씀이였다. 《바크보만사건이 터진 후 우리가 말이요. 호지명주석과 한 약속을 다 지켰다고 볼수 있겠는지··· 한번 따져봅시다.》

그이께서는 먼저 오진우에게 눈길을 옮기시였다.

《참, 오진우부상, 지금 보위상동문 어디에 가있소?》

《예, 철원부근의 부대들에 나간다고 했습니다.》

《언제 돌아온다구?》

《오늘 저녁엔 도착할 예정이랍니다.》

《그렇다?!···》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였다. 민족보위상 김창봉의 군벌관료주의가 도를 넘고있다는 보고를 이미 받으시였던것이다. 그에 대하여 엄하게 비판하시였지만 지금도 그는 부대들의 전투준비완성보다는 무슨 집짓기놀음에 더 열중하며 매일같이 군부대장병들을 들볶아댄다고 한다.

《그럼 총참모장동무가 좀 말해보오.》 하고 그이께서 이번엔 최광에게 물으시였다. 《지금까지 우리가 윁남에 준 무기와 군사장비들이 대체 얼마나 되는지?···》

《옛, 최고사령관동지, 보고드리겠습니다.》

최광은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습관된 동작으로 두두룩한 가슴을 앞으로 쑥 내밀며 그 수량을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음···》

사실 그것은 그이께서도 잘 아시는 수자들이였다. 그때 최광의 옆에 서있던 정준택이 나직이 귀띔하였다.

《군복도 있지 않습니까.》

최광이 제꺽 그 말을 받았다.

《예, 그렇습니다.》

《그리구 의료기구, 의약품들도 보냈지.》

《예, 그렇습니다.》 하고 마침내 정준택이 지금까지 그 말씀만 나오기를 기다리고있은것처럼 손에 들고있던 수첩을 재빨리 펼쳐들었다. 《수령님, 그 모든 무기와 탄약, 군수물자들을 합쳐 돈으로 환산하면 우리 돈으로는 대략 1억 7천 500만원에 달하며 외화로는 약 1억···》

수령님께서 웃으시였다.

《가만, 정준택동문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이 되여서 그러는가? 또 돈계산부터 시작하는구만.》

《수령님, 사실 전···》

《알고있소. 동무의 심정을···》

이어 그이께서는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러나 얼마후엔 또 멎어서시였다. 잠시 아무말씀없이 머리우에 드리운 나무가지에서 파랗게 물이 오른 잎사귀 하나를 뜯으시였다.

《벌써 이태가 지났지?···》

그이께서 혼자말씀처럼 뇌이시고는 또 한동안 침묵하시였다. 뒤따르던 사람들이 무슨 의미일가? 하는 의미로 서로 마주보았다.

《바크보만사건이 터진지 이태가 지나갔거던.··· 그래서 나는 말이요. 올해 우리가 호지명주석과 약속한만큼 성실하게, 량심껏 지원했는가를 따져보고싶었던거요. 우린 결코 지원물자를 가지고 그 무슨 재세를 하려들거나 온 세상에 대고 법석 고아대며 자랑이나 하자는게 아니요. 우린 진정한 조선의 혁명가들로서 자기의 약속을 제대로 지켰는가,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적의무에 충실했는가? 하고 량심적으로 따져봐야 하오, 어떻소?》

《옳습니다, 수령님!》

《수령님, 그렇습니다. 잘 따져봐야 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대답올리는중에서도 정준택의 목소리가 제일 크고 높았다. 수령님께서 그를 돌아보며 웃으시였다.

《따져본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사실 정준택으로 말하면 직무상에서도 계산하고 따져보는것이 본업인 사람이였다. 그러한 생각이 사람들로 하여금 소리내여 웃게 만들었다.

사실 그들이라고 해서, 당과 국가, 군대의 높은 간부들이라고 해서 늘 엄숙한 표정으로 꿋꿋하게만 살라는 법은 없는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공식적인 회의석상이 아닌 야외에서 , 그것도 수령님을 모시고있을 때엔 더더욱 자연을 즐기고 생활을 즐기며 마음껏 웃고떠들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러나··· 곧 다들 웃음을 거두지 않을수 없었다. 수령님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지고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지금 윁남은》 하고 그이께서는 무거운 어조로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매일같이 미국놈들의 집중폭격을 받으며 몹시 힘겨워하고있소. 어제 밤 호지명주석이 나에게 보낸 편지를 보니 제공권을 장악하고 제세상처럼 날치는 미국비행기들때문에 고생이 여간 아니라고 하오. 특히 수도 하노이보위가 제일 어려운것 같소. 하지만 지금상태로써는 그들이 하늘의 날강도들을 도저히 막아낼 방도가 없다는거요. 오죽 힘들었으면 호지명주석이 지금 미제와 코를 맞대고있고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우리 나라의 정치군사정세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 우리에게 공군지원까지 요청해왔겠소, 공군지원까지 말이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서로 눈길이 마주치는것도 저어하고있었다.

수령님께서 계속하시였다.

《우린 윁남전쟁을 우리의 전쟁으로 보아야 하오. 때문에 언제나 자기의 의무와 약속을 지켜야 하오. 더우기··· 지금 윁남의 전쟁을 남의 집에 난 불을 보듯 하는 사람들이 있는 조건에서 먼저 우리가 길을 내야 하지 않겠소? 국제주의적지원의 길을!···》

그이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한숨을 내그으시였다.

《하지만··· 정작 우리 비행사들을 싸움터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좋지 않더구만. 그래서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이룰수가 없었소. 어쨌든 전쟁이란 피를 흘리는 싸움이 아니겠소? 그것도 현대전쟁인데··· 이제 또 많은 가슴아픈 희생을 낼걸 생각하니 정말 견디기 힘들더란 말이요. 》

아픔이 가득 실린 음성이였다. 차츰 높아지기 시작한 그이의 숨결조차 아픔에 떨리고있는듯싶었다. 무거운 침묵··· 마침내 최광이 참다못해 먼저 컹컹 괴로운 기침소리를 냈다. 오진우는 왼쪽으로 머리를 돌리고있었고 박성철과 정준택, 허담은 눈길을 떨구고있었다.

그이께서 다시 걸음을 옮기시였다. 이윽토록 아무 말씀도 없이 가랑잎들을 밟으며 한걸음 또 한걸음 무겁게 내짚으시였다. 오래 계속된 침묵··· 드디여 다시 걸음을 멈추신 그이께서는 최광과 오진우를 돌아보며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은 보위상동무가 돌아오는 즉시 우리가 어떤 규모로 공군지원을 할수 있겠는지 토론해보시오.》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그리고 공병부대와 운수부대의 지원도 예견해야겠소. 그러되 중요한것은 우리 공군의 전투준비에 빈 공간을 내지 않으면서도 미국놈들이 윁남에서 날치지 못하게 하자면 얼마만 한 규모로 항공대를 무어보내야 하겠는지 잘 타산하는것이요.》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오진우와 최광은 다시금 유격대시절처럼 허리를 꼿꼿이 펴며 대답올렸다.

이어 그이께서는 내각 제1사무국장 최재우에게 말씀하시였다.

《김일동무가 도착하면 곧장 내 방으로 오게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수령님!》

최재우도 군복입은 오진우와 최광이 그러했던것처럼 목에 힘을 주며 대답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