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6

책제목:운명
 
 

제 3 장

6

 

박유진이 타고있는 뜨랄선56호는 쉬꼬딴섬쪽으로, 깜챠뜨까반도의 남부에까지 북상하였다.

박유진은 저 멀리에서 아물거리는 산발들을 바라보며 자기의 눈두덩을 아프게 비벼대고있었다. 그동안 일본의 쯔가루해협을 빠져 태평양으로 나왔고 인제는 쏘련의 깜챠뜨까반도남부에 이르렀다는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모든것이 꿈속에서 벌어진 일처럼 몽롱할뿐이였다.

오전 11시쯤 되였을 때였다. 어데선가 헤아릴수없이 많은 갈매기들이 날아와 나팔소리처럼 웨치며 머리우를 날고있었다. 박유진은 머리를 들고 그것들을 넋잃은듯 바라보았다. 정다운 바다새, 파도우에 펼치는 갈매기들의 일대 륜무!··· 유진은 생각했다. 배사람들은 배우에서 갈매기들이 떼지어 날면 배밑에선 물고기떼가 욱실거린다고 했었지.··· 아닐세라 누군가 숨구멍이 막힌듯 목을 비틀어짜며 거칠게 부르짖었다.

《고래다!― 돌고래다!》

《아니요, 장수고래요.》

《맞아, 장수고래다!―》

사람들이 그쪽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무엇때문에 어데로 가는지 알수 없었으나 유진이도 그들을 따라 선수쪽으로 헤덤비며 뛰여갔다. 다른 뜨랄선들도 재빨리 기동하는것이 보였다. 서로 협동하여 고래의 무리를 포위하려는것이였다.

태규선장이 힘찬 배고동소리를 울렸다.

《뚜!―》

뜨랄선56호의 돌격나팔소리이다.

《포수, 사격준비 되였는가?―》

《예. 사격준비 되였습니다, 선장동지!》

이렇게 대답한것은 강창길이였다. 진짜 주인공인 권영길포수는 72미리포로 고래를 겨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박유진은 한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였다. 저앞에서 거세찬 분수처럼 창공높이 물줄기를 뿜어올리고있는 고래들이 보였다. 그것들중의 한놈은 지금 유진이가 타고있는 56호뜨랄선보다 몇갑절은 더 커보였다. 아빠트와 비길만 한 큰 몸뚱이를 솟구칠 때마다 4~5메터는 실히 뛰여오르는듯 했다. 그 거대한 몸뚱이가 떨어지며 쩡!― 하는 요란한 폭음과 함께 굉장한 물기둥을 말아올리면 뒤이어 처절썩이는 물결이 사나운 해일처럼 밀려오군 했다. 실로 장관이였다. 바다의 대교향시!··· 가슴은 벅차오르고 눈뿌리가 아득해졌다.

박유진은 넋이 나간듯 했다. 지금 자기가 고래포의 투선(포를 쏠 때 투창에 매달려 날아가는 바줄. 고래포의 뒤쪽 배전우에 퉁구리로 사리여있다.)우에 올라서있다는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분수를 뿜어올리는가 하면 물우에로 곧추 솟구쳐 올랐다가 자기의 거대한 몸뚱이로 쩡!― 하고 바다의 수면을 드세게 때리는 고래들의 신바람나는 발레에만 눈을 팔고있었으므로 지금 박유진이 얼마나 아찔한 낭떠러지에 올라서있는가를 알지 못하고있었다. 상상하기도 끔찍한 일은 이렇게 하여 벌어졌다.

《쐇!―》

누가 구령을 쳤던가? 권영길포수자신이 구령을 치며 포를 쐈던것같다. 박유진이 들은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별안간 그는 자기가 어마어마한 힘에 휘감겨 허궁 들리는것을 느꼈다. 퉁구리로 사리여있던 고래포의 투선이 휘―익! 하고 돌개바람처럼 냅다 회오리치더니 그우에 올라서있던 박유진을 통채로 번쩍 휘감아 공중으로, 바다에로 태질하듯 뿌려던졌던것이다. 온몸이 번쩍 들리고 솟구치더니 돌개바람속에 휘말려 어데론가 날아가던 감각··· 그 다음순간엔 죽었구나! 하는 몸서리치던 느낌뿐이였다. 허나 그것도 찰나의 일이였다. 어느새 그는 차디찬 바다물속에 풍덩 빠져들었다. 거센 파도가 그를 덮쳐 시꺼먼 물속에 구겨넣던것만이 기억속에 피끗하고는 그만 미처 발버둥칠새도 없이 의식을 잃고말았다.

그때 갑판우에서는 너무도 예상외의 끔찍한 광경에 그만 다들 경악하였다. 다음순간엔 미친듯 고함을 지르고 팔을 내뻗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집채같이 큰 고래가 포창에 맞아 몸부림치며 배를 끌고가는 바람에 더더욱 몸서리치지 않을수 없었다.

《사람이 빠졌다!―》

《투승에 날려갔소!―》

《박유진 그 사람이요!》

《가만, 가만! 왜 떠들며 야단이야?···》

《빨리 구명대를 던져라!》

그러나 벌써 구명대를 던지며 바다물속에 뛰여드는 사람이 있었다. 김태규선장이였다. 바로 유진이가 날아가 처박힌 그물우에 배가 이르는것과 동시에 몸을 허궁 날리며 물속에 곤두박힌것이다.

철썩!― 하는 소리와 더불어 어느새 세찬 파도가 그마저 삼켜버리고말았다.

고요··· 아니, 고요가 아니라 소름끼치는 정적이였다. 파도의 소음도, 선대의 다른 배들에서 울리는 거쉰 배고동소리도 순식간에 멀리 세상밖으로 사라져버린듯 했다. 소리없이 뒤번져지는 큰 멀기뿐 그리고 파도에 떠실려 사방으로 퍼져가는 시뻘건 고래피의 흐름··· 그것이 또 사람들의 눈뿌리를 아프게 허비였다. 장수고래를 명중했다는 기쁨은커녕 오히려 머리칼이 곤두서고 심장만 졸아들뿐이였다. 순간순간이 사람들의 피를 말리고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박유진의 머리를 한손에 거머쥔 태규선장이 물우에 불쑥 솟구쳐오르는것이 보였다.

《선장동지다!―》

《살았다!―》

《선장동지!―》

사람들이 울부짖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경험많은 기술부선장 장태렬은 마침 때를 기다리고있은듯 선장의 머리우에 바줄을 내던지며 목터지게 소리쳤다.

《선장동무, 이걸 잡소오!―》

배는 여전히 무섭게 요동치는 고래한테 끌려가며 비틀거리고있었다. 마침 선대의 다른 배(로력영웅 김학순선장의 51호뜨랄선이였다.)가 56호의 뒤를 바투 따라서며 김태규선장에게 구명대와 바줄을 던지는것이 보였다.

김태규는 몇번이고 파도의 물갈기에 잠겨들군 했지만 한사코 의식잃은 박유진을 놓지 않고 한팔로 꽉 껴안고있었다.

《선장동무!― 조금만 참소!―》

《선장동무! 견뎌내야 하오!》

바줄로 비끄러맨 구명대들이 연방 바다에 던져졌다. 그중의 하나를 태규선장이 붙들었다. 그우에 박유진을 태우고 또 다른 구명대를 끌더니 힘들게 손짓했다. 끌어달라는 신호였다. 그는 말도 못했다. 차디찬 바다물속에서 온몸이 꽁꽁 얼었던것이다.

때마침 배도 요동치지 않고 넘실거리는 파도우에서 흔들리고있었다. 포창에 맞은 고래가 그만에야 맥이 진했는지 더이상 배를 끌고 달아나지 못했던것이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눈을 떴을 때 박유진이 처음으로 본것은 구레나룻이 시꺼먼 태규선장과 여러 배사람들의 눈물이 글썽해있는 모습이였다.

《살아났소!―이보오. 눈을 떴소!》

누군가 거쉰 소리로 부르짖었다.

《정말?! 눈을 뜨는구만, 에? 이보소.》

《그러니 인젠 살아났소?!》

《유진동무! 어떻소? 정신이 드오?》

《형님!― 나 창길이요. 내가 보이오, 에?》

박유진은 다시 눈을 감고말았다. 모든것이 흐리멍텅했다. 부끄러운 생각도 없지 않았다.

《떠들지 마오!》 김태규선장이 낮고도 엄하게 말하였다. 《떠들긴 왜 떠들면서 야단인가, 뭐 죽는가 했소?··· 이 사람은 좀 자게 놔두구 동무들은 빨리 나가서 고래를 썰어야지, 응?》

사람들이 허리를 펴더니 우루루 밖으로 밀려나갔다.

고래를 썬다는것은 또 무슨 소리인가?··· 유진은 자기를 등지고 돌아서는 두사람 태규선장과 장태렬부선장을 가늘게 치뜬 눈으로 겨우 분간해보고있었다. 그들이 한쪽에서 수군거리고있었다.

《내가 잘 돌보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요. 그저 단련시켜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서···》

《그건 세포위원장인 나두 같구같습니다.》

《그러니 세포위원장동무, 인젠 어떻게 하는게 좋겠소?》

《아무래두 치료는 해야겠지요?》

《그럼 모선에 보내서 안정시킬가? 아니면 쎄베로꾸릴스크에 보내는게 어떻겠소? 당에서 숱한 품을 들여 키운 사람인데 아무래두 거기 쏘련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받게 하는게 낫지 않겠소?···》

《그렇긴 하지만··· 로동단련을 왔다는 사람이 배에 타자마자 입원한다는게 좀···》

《그럼 어떻게 하자오?》

《선장동지가 결심하십시오.》

《선장이 그런것까지 다 혼자 결심해야 하오?》

《그럼 본인한테 직접 물어봅시다.》

《흠··· 좋소.》

그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박유진은 자리에서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선장동지, 난··· 이― 일없습니다. 인젠 정신이··· 드―들었습니다. 상한데두 하나 없는데··· 병원에 입원한다면 남들이 뭐라구 하겠습니까.》

태규선장은 한동안 아무말없이 써레기담배만 힘주어 빨았다. 그의 입과 코에서는 시누런 연기가 연통에서와 같이 뭉게치듯 흘러나 오고있었다.

《정말 견딜만 하오?》

《예.》

태규선장과 장태렬부선장이 다시금 서로 묻는듯 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럼 하나 묻기요.》 태규선장이 또 코구멍으로 연기를 물씬 내불었다. 《동문 쏘련에서 하리꼬브공업대학을 나왔다던데 전공이 뭐요? 기계요, 금속이요?》

《기계공학입니다.》

《음― 좋구만. 아주 좋소. 그럼 우리 갑판에 나가서 마저 얘기하기요, 토론할것두 있구.··· 그래 나갈수 있겠소?》

《예.》

《부선장동무가 좀 부축해주오.》

박유진이 황황히 팔을 내저었다.

《아니, 괜찮습니다. 선장동지, 저 혼자서두···》

《옳소. 잘 생각했소.》 그의 눈빛이 따뜻해졌다. 《우린 늘 제발로 걸을줄 알아야 해.》

선장이 먼저 문을 열고 나섰다. 유진은 휘― 하고 눈앞이 돌아가는것을 느꼈다. 문짝을 잡고 한동안 바닥을 견주어보고나서야 다시 몸을 가눌수 있었다.

갑판우에서 왁자하니 떠들어대던 어부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몸을 떨며 비틀걸음을 옮기는 박유진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한순간 가벼운 놀람의 속삭임이 바람결같이 갑판우를 스쳐갔다. 누군가는 가느다란 휘파람소리까지 내질렀다. 태규선장이 그쪽으로 몸을 홱 돌렸다.

《누가 휘파람을 불었어?》

성난 목소리였다. 배사람들은 휘파람 부는것을 질색한다고 하던데 그때문에 골을 내는것인지?··· 그가 또 소리쳤다.

《어디 말해봐. 뭐 사람을 비웃는거야?》

《아닙니다.》 하고 대답한것은 포수 권영길이였다. 《박유진동지가 제발루 걸어나오는걸 보니 너무 반가와서 그랬습니다.》

포병제대군인답게 시원스러운 대답이였다.

선장은 한팔을 홱 내저었다.

《그렇다문 좋구.··· 헌데 님자 저 장수고래를 어떻게 토막내겠는지 생각한게 없어?》

《지금 생각하는중입니다, 선장동지.》

《원, 그렇게 생각이 굼떠가지구 어떻게 고래를 쏴?》

선장의 그 말에 사람들이 유쾌하게 웃어대였다. 핀잔을 받은 당사자인 권영길이도 남보다 더 크게, 목을 뒤로 잔뜩 젖히고 웃어대는것이였다.

이번엔 태규선장이 유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인젠 박유진박사가 좀 말해보겠소?》

《저··· 뭡니까?》

《저쯤 되는 고래면 한 120톤쯤 나가는데··· 저렇게 덩지가 큰 놈을 토막치자면 얼마만큼 큰 칼이 있어야 될것 같소?》

《?!···》

어려운 물음이였다. 유진은 그것이 자기에 대한 일종의 문답시험이기도 하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금 바다에 눈길을 돌려 물우에 떠올라있는 고래를, 지금은 마지막숨을 내뿜고있는 장수고래를 바라보았다. 무엇때문인지 숨이 막히고 몸이 떨려나기 시작했다.

선장이 말하는 그렇게 큰 칼은 이 세상에 있을수 없다. 그런즉 그칼을 대신할수 있는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보라는것인가?··· 아니다. 결코 그 어떤 련립방정식을 도입하는 식으로 복잡하게 생각해선 안된다. 생활이란 단순하다. 따라서 생활의 공식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그에게 모여져있었다. 커다란 기대와 호기심 그리고 아직도 그를 가엾이 여기는 련민의 정이 그대로 드러나보이는 얼굴들이였다.

바람이 차지고있었다. 북극에서부터 싸늘한 기운과 함께 미구에 들이닥칠 밤(잠간 왔다가는)의 어둠이 소리없이 흘러오고있었다.

한순간 유진은 싱긋 웃었다. 불현듯 하리꼬브대학시절 5. 1절군중시위에 나갈 자동차우에 세워놓기 위해 대형구호를 만들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그들은 쇠줄톱으로 널판자를 썰어 《전세계로동자들은 단결하라!》는 로어글자들을 따내지 않았던가!···

선장이 웅근 소리로 물었다.

《왜 웃소? 그래 좋은 생각이 떠올랐소?》

《예, 선장동지, 이만큼 길고 굵은 쇠줄을 저쪽과 이쪽에 서로 련결시켜 힘껏 잡아당겼다놓았다 하면서··· 그런 식으로 썰면 되지 않을가 하는···》

속을 조이며 기다리던 사람들이 그가 미처 말끝도 맺기 전에 탄성을 내질렀다.

《히야, 멋있구나!―》

《먹은 소가 힘쓴다더니, 역시 배운 사람이 달라.》

《외국류학두 갔댔잖아.》

《외국뿐인가? 》 장태렬부선장도 청높이 끼여들었다. 《오늘은 룡궁에두 갔다왔는걸.》

다시 터진 떠들썩한 웃음소리···

김태규선장이 버릇처럼 한팔을 홱 내저으며 소리쳤다.

《좋소, 만점이요! 자 동무들, 인젠 내가 왜 박유진동물 우리 배에 받아들였는지 알만하겠지, 응?···》

《뭐 받아들이기만 했소?》 이번에도 먼저 부선장이 능청스럽게 말하였다. 《하두 선장동무 맘에 드니까 오늘은 저 룡궁에까지 들어가 업어내오지 않았소.》

다시 터지는 폭소···

《핫하!··· 그 말 참 멋있소!》

《옳수다. 하마트면 저 량반 룡왕님 병치료때문에 룡궁에 가서 간을 통채루 떼울번 했지.》

《우리 태규선장이 아니였다문 어쩔번 했소?》

《글쎄 난 저 유진형님 인젠 다 죽었구나! 하구 생각했더랬소, 허허허···》

《말도 말라요, 흐흐흐!··· 난 정말 얼마나 혼쭐이 났는지 그만 바지에다가···》

웃음소리도 각이하다. 그러나 마음도 얼굴도 모두 꼭같은 한모습이다. 시꺼멓게 탄 그들의 얼굴마다에 얼기설기 버물려지고있는 진실하고 따뜻한 웃음··· 태규선장이 그들을 쫓아버렸다.

《됐어, 그만들 하오. 여기가 무슨 참새방아간인가? 빨리 가서 제 할일들이나 하오.》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면서도 계속 웃고 떠들고있었다. 얼마전에 있었던 그 몸서리치던 일을 즐겁게 추억하는것인지?···

유진은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무엇인가 속에서 부그그 거품처럼 끓어오르는것이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을 면바로 마주볼수 없는 마음, 한없이 죄스럽고 부끄러워지는 마음, 결국 그는 여기서 버림받고있는 존재가 아니였다. 박유진 그자신이 그들과 마음의 간격을 좁히지 못했을뿐이다. 그렇다, 소박하고 진실한 저 배사람들은 한시바삐 그가 뜨랄선 제56호의 선원명부에 자기 이름을 올리기를 바라고있다. 명부만이 아닌 자기들의 마음속 가족란에까지 이름을 올리기를 그토록 바라마지않고있다. 단지 박유진 자기만이 그것을 여직껏 알지 못하고있었을뿐···

선장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 쳐주는데 마치 그렇게 함으로써 박유진을 한가정, 한식솔로 정식 받아들인다고 도장을 찍어주는듯 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부선장 장태렬에게 배고동소리처럼 웨치고있다.

《부선장동무, 빨리 51호에 련락해서 우리 배와 쇠바줄을 단단히 비끄러매게 하오.》

《예.》

얼마후 쇠바줄을 팽팽히 당겨맨 두 배는 서로 앞으로, 뒤로 움직이며 쇠바줄톱을 바싹 당겼다놓았다 하는 식으로 산악같은 장수고래를 썰기 시작했다. 태규선장자신이 수기를 들고 작업을 지휘하였다. 그가 이 모든것에 매우 익숙되여있음을 잘 알수 있었다.

유진은 작업지휘에 바쁜 태규선장의 널직한 어깨와 적동색으로 변한 목덜미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슴벅거리고있었다.

강창길이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형님, 오늘은 형님이 두번째로 태여난 날이요. 두번째 생일! 안 그렇소?》

《···》

그는 그저 머리만 끄덕이였다. 할말이 없었다. 웬일인지 마음속 감사의 념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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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토막쳐서 모선인 《칠보산》호에까지 날라갔을 때는 어둠이 깃들무렵이였다. 밤이 시작되는것이다. 그러나 몇시간후이면 또 훤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때에는 밤이 없다. 어스름이 깃드는가 하면 한쪽에선 또 훤히 밝기 시작한다. 반대로 12월 동지때에는 낮을 모르는 바다이다. 어둠만이 계속되는 속에 극광(오로라)이 저 하늘가에 풀색과 붉은색, 푸른색과 붉은 보라색의 거대하고 신비로운 빛의 고리를 수놓군 한다.

광대하고 장엄한 바다, 아득한 저 수평선에서 붉은 쇠물의 파도가 이글거린다. 굼늬는 물결우에 나래를 편 갈매기들, 벅차게 숨쉬는 파도의 음향!··· 바다는 잠을 모른다. 낮이건 밤이건 가림이 없다. 영원히 거세게 호흡하며 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