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4

책제목:운명
 
 

제 3 장

4

 

혜산시인민병원의 구급과에서는 혼수상태에 있는 라정아에게 점적을 달고있었다. 그를 둘러싸고 리웅산이며 리한윤단장, 오대형이며 로경호 등 여러 조각가들이 구급의사가 설명해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이 환자는 참 이상한 병을 앓고있어요.》 구급과의 녀의사가 하는 말이였다. 《보통사람들에게서는 거의나 찾아볼수 없는 그런 병인데··· 의학적으로는 용혈성사슬알균에 의한 전신패혈증으로 짐작할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전의 병력서를 찾아봐야만 정확한 진단을···》

리웅산이 참다못해 퉁을 놓았다.

《의사선생, 그것도 말이라구 합니까? 그럼 이전의 병력서가 없인 진단을 할수 없다는겁니까? 》

녀의사가 그에게로 피끗 눈길을 돌렸다. 얼음침처럼 서리찬 눈길이였다.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아두세요, 동진 병원에 와서 의사에게 트집을 잡으며 따질 권리가 없어요!》

일순 리웅산의 얼굴에서 피기까지 가셔지고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로경호가 제때에 그들가운데 끼여들었다.

《아 의사선생님, 우리 이 환자는··· 녀성조각가입니다. 저기 인민영웅탑에 세울 부녀회원을 조각하던중이였는데 그만 이렇게 쓰러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녀의사는 로경호에게 눈길을 옮겼다.

《나도 물론 동지들이 여기 와서 소리치는 심정을 모르는바 아니예요. 그래서 가능한껏 환자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드리는게 아닙니까.》

《예, 그래서 우린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번엔 리한윤단장이 진정을 담아 말했다. 녀의사는 한순간 리웅산에게 깔끔한 눈길을 던지더니 이렇게 계속했다.

《사실 이 환자는 병이 아주 심합니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지금껏 견디여왔는지 정말 놀랄 정도예요. 아마 이렇게 갑자기 쓰러진 일이 처음이 아닐겁니다. 그래서 전에 어느 병원에서 어떤 진단을 받고 어떻게 치료받았는지 알아보는것이 중요하다는거예요.》

《예― 그렇군요.》

로경호가 열심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것은 리웅산으로 하여 잠시나마 마음을 상한 녀의사를 위해주려는 헌신적인 봉사이기도 했다. 대신 리웅산은 입을 꾹 다문채 골똘히 무엇인가를 생각하고있었다. 눈귀로부터 허연 서리가 불린 귀밑머리에까지 깊이 패인 주름살이 연신 꿈틀거렸다. 보통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상한 병이라니, 그건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것인가?···

그는 라정아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서울에서 의용군으로 입대하여 전쟁 전기간 간호원으로 싸웠으며 전후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조각창작단에 배치된 녀성조각가라는것이상 더 아는것이 없었다. 그러니 지도검열소조책임자인 방만길이 그들 두사람을 두고 마치 정분이 난것처럼, 그 어떤 불륜의 관계인것처럼 내놓고 빈정댄것은 너무도 비렬한 처사였다. 사실 그는 라정아와 별로 정을 나눌 기회를 가져본 일이 없다. 놀랍게도 30대 후반에 이른 미모의 녀성이 아직 미혼이라는데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했고 그가 혼신의 힘을 다 쏟으며 조각창작에 전념할 때마다, 하여 남달리 창백한 그의 얼굴에 새벽풀잎에 맺히는 이슬처럼 식은땀이 송골송골 내돋는것을 볼 때마다 이름할길 없는 깊은 감동과 함께 그 어떤 애달픈 련민의 정에 가슴이 저려나는것을 느꼈을뿐이였다.

라정아는 여러 시간이 흘러서야 혼수상태에서 깨여났다. 눈을 떴으나 이윽토록 마치 꿈이라도 꾸는것처럼 깜박도 하지 않고 옆에서 끄덕끄덕 졸고있는 리웅산을 물끄러미 쳐다보고있었다.

그 녀자의 작은 손이 리웅산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리웅산은 무거운듯이 눈을 떴다. 비로소 자기가 깜박 졸고있었다는것을 깨닫고 조금 무안해했다.

《아, 내가 그만···》

《여기··· 오래 앉아계셨어요?》

어린애의 목소리처럼 가늘고도 맥이 진한 음성이였다.

리웅산은 어정쩡하게 대꾸했다.

《아니, 그저 좀···》

《고마워요.》 라정아가 알릴듯말듯 미소를 그리였다. 《처음 눈을 떴을 땐··· 잘 믿어지지 않더군요. 어떻게 총설계가인 내각실장동지가 여기 계실가 하는 생각에···》

《창작단조각가들은 다 돌아가서 쉬라고 했소. 난 래일 아침 기차로 떠나갈 사람이여서 작별인사를 하자구···》

《떠나시다니요?》

《정아동무도 듣지 않았소. 필요없다, 썩 사라져라! 하고 고아대던거 말이요.》

불현듯 라정아는 슬픔에 목이 잠기는듯 했다. 밝게 이뻐지던 두눈이 다시금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제가 처신을 잘하지 못해 실장동지까지 시시한 소릴 듣게 했으니···》

《그게 왜 정아동무탓이요?》 하고 리웅산은 저도 모르게 어성을 높였다. 《아니, 그들은 이미전부터 저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 나를 뱁새눈을 하고 찌글서 보아왔던거요. 그래서 어제두 괜히 트집을 잡고 허물을 들씌우지 못해 안달아했던거요.》

《가지 마세요.》 라정아가 속삭이였다. 《이대로 그냥 떠나가시면 그들이 또 무슨 감투를 씌울지 모르지 않아요?》

《감투? 무섭지 않소. 난 신념대루 하겠소. 뭐가 무서워 여기 눌러앉아 모욕받으며 구걸하겠소?》

라정아는 괴롭게 숨쉬고있었다. 마치도 내내라도 들이킨듯··· 그는 금시 터져나오려는 모진 기침을 가까스로 참고있었다.

그때 간호원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이, 깨여났군요.》

라정아가 그쪽으로 가냘픈 미소를 보냈다.

《미안해요, 간호원동무. 밤늦게까지 고생시켜서.》

《아이참, 우리야 제 일을 하고있는데요.···》 하고 간호원은 손에 익은 날랜 솜씨로 체온과 맥박을 재여보더니 어마지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렇게 위급하던 환자가 언제 다 정상으로 돌아왔을가?···》

《내 병은 원래 그래요.》 라정아가 이번에도 소리없이 웃으며 말하였다. 《좀 보기 드문 특이한 병이예요. 금시 혼절했다가도 한순간만 넘기면 씻은듯 낫군 해요.》

간호원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어쨌든 의사선생한테 가서 알려드려야겠어요.》

《아니, 그러지 마세요. 의사선생도 무척 곤하실텐데 좀 쉬게 하세요. 일없어요. 내 병은 내가 잘 알아요. 그리구 나도 한땐 간호원이였어요.》

간호원은 잘 믿어지지 않는듯 작고도 새까만 눈으로 먼저 라정아를, 다음은 리웅산을 미심쩍게 살펴보더니 고개를 짓숙이고 괜히 약병들만 주무르는데 저 혼자 몰래 웃는것 같았다. 잠시후 간호원은 탁우의 주사기며 약병들을 재빨리 거두었다. 끝까지 두사람쪽은 보지 않고 나가더니 문을 꼭 닫아주기까지 했다.

복도쪽에서 시계종소리가 울렸다. 뎅, 뎅··· 두점을 쳤다. 이윽고 사위는 다시 깊은 적막속에 잠겨버렸다.

《미안하지만》 하고 리웅산이 한숨을 내그으며 물었다. 《무슨 특이한 병이라는데 그게 어떤건지 우리가 알면 안되오? 혹시 무슨 도움이라도 주게 될지···》

《아니예요.》 라정아는 질겁한듯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그런건 알 필요 없어요. 그러니 그에 대해선 더 묻지 마세요. 제발 부탁이예요.》

피기까지 가셔진 라정아의 창백한 얼굴에서 생기를 잃지 않고 숨쉬는것은 연신 깜박이는 두눈뿐인듯 했다. 그 눈망울에도 물기가 어리고있었다. 리웅산은 금시 눈물을 쏟을듯 애처롭게 입술을 떨고있는 그 녀자를 벅찬 련민의 정으로 바라보다가 그만 눈길을 돌리고말았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밖에서는 여전히 바람이 윙윙거리고있었다. 마침내 리웅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젠 가야겠소. 환자한테 부담만 주면서··· 인젠 좀 쉬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어느새 라정아의 손이 그의 두툼한 손을 꼭 잡아쥐였던것이다. 작고 하얗고 얄팍한 손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척 깔깔하게 느껴졌다. 조각가라는 직업이 몸과 마음에 앞서 손부터 늙게 한것인지도 모른다.

《가지 마세요.》 그 녀자가 불같이 속삭이였다. 《난 이런 밤엔 혼자 있기가 참 힘들어요. 무섭기도 하구요. 그러니 조금만 더 같이 있어주세요. 그럼 제가 옛말 하나 해줄게요, 예?···》

《허― 참!···》

리웅산은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엔 몹시 거북스러운 느낌이였다. 하여 그는 라정아의 까칠한 손바닥에서 자기 손을 뽑고 주머니에서 《제비》담배갑을 꺼냈으나 인차 자기가 시인민병원의 구급과에 앉아있다는것을 상기했다. 그는 담배갑을 다시 주머니속에 구겨넣었다.

이번엔 오래 계속된 침묵속에서 후둑후둑 창유리를 때리는 비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세차더니 비구름을 몰아온듯 했다.

오싹하리만큼 썰렁한 비소리가 차츰 더 맹렬해졌다. 그러나 라정아는 그 소리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촉수낮은 전등이 켜있는 하얀 천정만 하염없이 올려다보고있었다. 그 천정너머 아득한 공간을 뚫고 흘러간 세월의 추억을 더듬는듯싶었다.

《전쟁때였어요.》 마침내 라정아가 입을 열었다. 《전선중부의 어느 한 무명고지에 우리 52사의 전방붕대소가 있었는데··· 난 거기서 진짜전투를 겪었어요, 난생처음으로.···》

웬일인지 그는 처음부터 숨이 차서 허덕이고있었다.

《정아동무.》 리웅산이 말했다. 《됐소. 옛말은 안해줘두 되오. 그냥 쉬기만 하라니까. 내 날이 밝을 때까지 여기 얌전히 앉아있을테니···》

라정아는 귀가 메여버린듯 했다. 아니, 그의 눈빛은 꿈을 꾸고있는듯 했다. 꿈속에서처럼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첫 전투가 어떻게 벌어졌고 얼마나 치렬했던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나두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한가지만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한데··· 그것은 그날 적구에 나갔던 한 정찰병이 우리 전방붕대소에 나타났을 때의 일이예요.》

 

···피칠갑을 하고 모진 피로와 고통으로 하여 볼품없이 얼굴이 이지러진 정찰병이 무명고지에 불쑥 나타났다. 그때 사단군의소에 있다가 전방붕대소로 갓 나온 라정아는 그 정찰병이 자기나 다름없이 얼굴이 시꺼멓고 피가 내밴 붕대까지 이마에 감고있는 보병중대장을 따라다니며 웨치는 소리를 들었다.

《···뭐 내가 치료나 받자구 여기루 온줄 압니까?··· 저기 적구에 우리 중대장동지가 혼자 있단 말입니다. 부상당한 몸으루 홀로··· 저―기에 말입니다.》

보병중대장이 머리를 홱 돌리더니 눈빛을 번뜩이며 우악스럽게 울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동무! 그래 중상당한 자기네 중대장을 뭐, 뭐라구? 적구에 내깔리구 혼자 왔다구? 엉?!》

《예, 혼자 왔습니다. 혼자!··· 왜 그랬는지 압니까? 우린 미군장교놈을 꽁졌는데 우리 중대장동지가 영어를 잘한단 말입니다.》

《동무! 영어가 여기 무슨 상관이요?》

《왜 상관없습니까?》 정찰병도 맞받아 소리쳤다. 《영어를 잘하니까 미군장교놈도 심문하구 그놈이 갖고있던 문건두 보구나서 중대장동진 저에게 명령을 했단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정보인지 아는가? 난 상관치 말구 빨리 전선을 넘어가라! 하구 말입니다. 그다음 〈이건 명령이요! 〉라고 하는데···》

《그럼 거기엔 동무네 둘밖에 없었소? 다른 사람들은?···》

《우린 모두 다섯명이 들어갔지만··· 우리 둘만 남았단 말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중상당한 중대장동지를 혼자 남겨두구 나만 오자니··· 정말 어쨌는지 압니까? 나만 살아오자니···》

정찰병은 목이 꺽꺽 메여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시꺼먼 손바닥으로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그럼 그렇다구 차근차근 말할게지 첨부터 냅다 소래기만 지르면서···》 보병중대장은 여전히 성난 얼굴로 정찰병을 흘겨보고나서 자기 사람들에게로 돌따섰다. 《그럼 누가 이 정찰병을 따라 적구로 들어가겠소? 이건 우리 중대가 받은 전투임무외의 일이니 자원성의 원칙에 맡기겠소.》

숨막힐듯 무거운 침묵속에 얼마간 동안을 두고 한사람 또 한사람··· 이렇게 세명이 자원해나섰다.

중대장이 정찰병에게 물었다.

《이 동무들이면 되겠소?》

《그럼 중상당한 우리 중대장동진··· 누가 치료합니까?》

중대장이 간호원들에게로 눈길을 옮겼다. 전방붕대소에는 간호원들뿐이였으므로 군의대신에 간호원이라도 가야만 했던것이다.

《누가 갈수 있겠소?》

보병중대장이 이렇게 물었을 때였다. 뜻밖의 일로 라정아가 맨먼저 한발 앞으로 나섰다.

 

《···사실 적구로 들어간다는건 죽음을 맞받아가는 길이나 같았어요. 그런 위험한 길에 선뜻 나설 결심을 한다는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요. 시간이 필요했구 용기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아직 전투경험도 없는 내가 다른 간호원들이 미처 생각도 해보기 전에 먼저 앞으로 쑥 나섰으니··· 그때 무슨 정신에 그렇게 했던지, 객기를 부려보고싶었는지 아니면 그 어떤 자존심때문이였던지···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대오앞에 불쑥 나서고보니 그만에야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어요. 겁이 더럭 나면서 눈앞이 아뜩해지구··· 하지만 어쩌겠어요. 일단 내짚은 걸음인데 뒤걸음을 칠수야 없지 않나요. 그럴 때 뒤걸음을 친다면··· 그건 도피분자들이나 할짓이지요.》

 

···찬바람이 불어치는 마가을의 깊은 한밤중 그들은 앞서가는 정찰병의 발자국을 하나하나 따라짚으며 산을 내리고 깊은 골짜기를 기여넘어갔다. 도중 적들의 눈먼사격에 라정아의 위생가방이 찢겨진것도 몰랐다. 다행히도 정찰중대장이 누워있는 어떤 늪가의 갈숲에까지 무사히 가닿았지만 라정아의 위생가방엔 붕대밖에 없었다.

중상당한 정찰중대장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정찰병이 그를 잡아 흔들며 억눌린 목소리로 《중대장동지, 정신차리십시오!》 하고 목메여 불렀다. 마침내 피와 땀과 흙먼지와 감탕까지 게발려 험상궂게 된 정찰중대장의 얼굴이 반쯤 돌려졌다.

《와― 왔구만.···》

가릉가릉 피를 물고 힘들게 속삭인 소리였다. 무서운 통증에 찢겨질대로 찢겨져버린 목소리였다.

정찰병이 울먹거리며 보고했다.

《예, 중대장동지, 제가 왔습니다. 여기 우리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간호원동무도··· 같이.》

《간―호―원까지?···》

그 순간 라정아는 흠칠했다. 뼈를 깎는듯 한 모진 아픔때문에 신음하는 그의 무서운 억양이 가슴을 쳤다. 그다음··· 무엇인가 그 녀자의 기억을 송두리채 뒤흔들고 파헤치는것이 또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다 알수 없었다.

《간호원동무.》

그가 라정아를 불렀다. 순간 라정아는 그 목소리를 더위잡았다. 아니, 쇠붙이가 자석에 끌려가듯이 그 목소리에 붙들려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의 머리맡에 무너져버렸다.

《예, 제가 간호원··· 라정아예요!》

오열에 떠는 부르짖음이였다. 그러자 정찰중대장은 별안간 비트는듯 한 아픔에 전률하는듯 했다. 어둠속에서일망정 그의 온몸이 경련으로 떨리는것이 알렸다.

《그러니··· 정아가?!》

《예, 선생님, 저예요.》 하고 라정아는 그만에야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제가 왔어요. 선생님, 라정아가 왔어요!》

《라정아!···》

모든 리별과 상봉은 우리의 인생극, 애정극에 필수적인 련립방정식이다. 하지만 수학으로가 아니라 정과 사랑으로써만 풀이되고 해석되는 눈물의 방정식이다.

정찰중대장의 이름은 림근우, 한때 라정아에게 미술을 가르친 스승이였고 해방후 미군정하의 서울에서는 좌익적인 문예인협회의 조직자중 한사람으로서 10월인민항쟁때 대구에 내려가 로동자들의 투쟁을 적극 성원하고 고무추동한것으로 하여 체포, 투옥되였으나 서울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되던중 동지들의 방조로 달리는 렬차에서 강물에 뛰여내려 탈출에 성공한 사람이다.

참나무처럼 굳고 단단한 체구와 새까만 고수머리, 앞으로 툭 삐여져나온 의지력이 있어보이는 턱과 강경하게, 자신만만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사람들을 대번에 휘여잡는 사람, 그러한 그를 련모하고 따르지 않을 처녀가 어데 있으랴. 하여 라정아는 수배대상이 되여 북으로, 평양으로 가게 된 림근우가 출발에 앞서 자기를 찾아주었을 때, 목숨걸고 북행길에 오르는 그를 나루터에서 손저어 바래주던 그때 어둠속으로 멀어져가는 그를 향해 마음속으로, 눈물에 젖어든 목소리로 이렇게 목메여 부르짖었었다.

《가지 마세요, 선생님! 이렇게 가면 난··· 이 라정아는 어찌하나요, 예? 가지 마세요!―》

과연 그런것이 사랑이였던가?··· 사실 라정아는 그때 그 눈물의 의미도 다 알지 못하는, 아직 시큼하고 떫은 맛도 채 가시지 못한 첫물앵두같이 발그레한 물만이 겨우 올라있는 어린 처녀였었다. 어머니의 병구완때문에 차마 그를 따라나서지 못하고 가슴만 쥐여뜯던 처녀, 다시는 그를, 다정다감한 스승이며 마음속 련모의 불꽃이기도 했던 그를 보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장밤 눈물로 베개를 적시던 정아였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사선을 뚫고온 적구에서 그것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시시각각 숨져가고있는 그를 이렇게 만나게 될줄이야 어찌 상상인들 했으랴.

정찰중대장 림근우는 조금만 움직여도 옆구리의 상처에 박힌 파편이 뼈를 에이는듯 으득―으드득 이를 갈며 신음했다. 그런 상태로는 담가로 나를수도 없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했다. 그러나 간호원 라정아의 찢겨진 위생가방엔 변변한 수술도구는 물론 마취약이나 핀센트조차 없었다. 사람들이 기가 막혀 어찌된 일인가고 물었으나 라정아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찢겨진 위생가방을, 가장 단순한 의료기구나 소독약조차 없는 가방안만 정신없이 뒤적거릴뿐이였다.

그때 중상당한 림근우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정아, 이 칼로 상처를 째구 그놈을··· 끄집어내오. 그 빌어먹을 파―파편을!···》

그가 내민것은 정찰병들이 애용하는 단도였다. 서슬푸른 단도, 흔히 비수라고도 하는!··· 허나 그것은 목숨을 끊는 무기이지 생명을 살리는 도구는 아닌것이다.

《정아, 왜 그러구있소?》 림근우가 몰풍스럽게 어성을 높이며 독촉했다. 《이럴 때 주―주저하문··· 아무것두 못해. 용기를 내오. 자기를 믿어야지, 응?!···》

정아는 그냥 속이 께름하고 입술이 타들다못해 온몸이 떨려나 견딜수 없었다.

《정아, 그럼 저―전선엔 왜 나왔소? 그래두 간호원인가?···》

정아는 그냥 낯색이 질린채 바재이기만 할뿐이였다. 그새 날이 밝기 시작했다. 침침하고 써늘한 랭기가 풍기는 새날··· 서쪽으로부터 시꺼먼 구름장들이 덮치듯 몰려오고있었다.

림근우가 무섭게 신음하며 몸을 일으켰다. 정찰병의 부축을 받으며 거칠게, 괴롭게 숨길을 톺고있는데 시꺼먼 그의 얼굴은 더더욱 험악해졌다.

《말해보오, 라정아.》 하고 그는 뜻밖에도 아주 낮게 씨근거리였다. 《동무도 군인인가? 자기를 이기지도 못하구 자기 힘도 믿지 못하는··· 도무지 그럴 용기도 없는게 무슨 군인인가, 눈물이나 짜는 그런 울보가 전쟁판엔 왜 나왔나 말이요, 엉?···》

《선생님!》

다음순간 라정아는 눈앞에서 불찌가 튕겨나고 광대뼈어름이 부서지는줄 알았다. 림근우가 무섭게 한대 후려갈긴것이였다.

《똑똑히 듣소!》 그가 고통스럽게 부르짖었다. 랭혹하고도 무자비한 질책이였다. 《여기서 난··· 그저 서―선생님이 아니구 지휘관이란 말이요, 아―알겠소?》

순간 라정아는 자기의 입안으로 흘러드는 찝찌레한 피맛을 느꼈다. 부지불식간에 그것을 씹어삼키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뒤늦게나마 알겠노라고, 명령대로 하겠다는 의미였다.

림근우가 헐금씨금 가쁘게 숨쉬며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하라는대로만 하오.》

라정아는 여전히 한마디 말도 못하고 벅찬 공포속에서 무시무시하게 변모되여있는 자기의 옛 스승을 바라보면서 얼결에 그가 내미는 단도를 받아들었다.···

 

《···그때부터 난 그가 명령하는대로 했어요. 무슨 정신에 그걸 해낼수가 있었던지··· 험한 상처를 째고보니 갓난애기 새끼손가락만 한 파편이 옆구리의 갈비들 사이에 박혀 끄트머리를 내밀고있는게 보이더군요. 헌데 그다음이 문제였어요. 그걸 끄집어낼 핀센트나 겸자 같은것조차 하나 없는 형편이였으니 그럴 때엔 어떻게 해야겠어요? 난 너무 난감하여 후들후들 떨고만 있었군요!··· 그러자 그가 모질게 신음했어요. 아니, 무섭게 속삭였어요. 〈난 견딜수 있소. 정아, 견딜수 있으니 한번만 더 해보오. 그러되 잊지 마오. 제일 힘든게 자기를 이기는거라는걸 말이요.〉라구요. 그때 무엇인가 피끗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난··· 모질게 마음먹구 상처에 입을 가져다대였어요. 그 험한 상처에 입과 코를 통채로 들이밀구 바로 그걸··· 그걸 이발로 꼭 물었어요. 톱날같이 날카로운 그 파편을요!··· 그러자 파편을 문 이발이 재끈! 하더니 머리칼이 막 짜릿―짜릿! 해나는데··· 그래도 난 눈을 꼬옥 감은채··· 피범벅이 된 입을 옥물고 죽어라하구 그걸 물어당겼어요. 했더니 그만에야 그 파편이 살을 찢으며 뽑히더군요.》

리웅산은 그만 입안이 바싹 마르는것을 느꼈다. 호흡도 뻐근해났다. 피묻은 그 파편이 자기의 가슴을 찢으며 나오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다음은?···》

리웅산이 숨찬 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라정아는 이윽토록 말을 잇지 못했다. 입술을 깨물고 눈을 실룩거리며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는듯 했다. 마침내 입을 벌리고 뜨거운 숨을 내뿜고나서야 리웅산에게로 눈길을 돌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입가엔 한가닥 애처로운 미소가 번져가고있었다.

《그만 그는···》

《엉?!》

《끝내··· 의식을 잃고말았어요. 사실 그때까지 견디여낸것만 해도··· 정말 무서운 일이지요, 무서운!···》

라정아는 목이 꺽 메인듯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작고도 하얀 손으로 침대에 드리운 백포자락을 하염없이 구겨놓고있을뿐··· 그러니 그 림근우란 정찰중대장이 살아났다는 말인가 아니면 죽었다는 소리인가?··· 리웅산은 라정아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또 얼마간 괴로운 침묵을 견디여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다시 라정아가 입을 열었다.

《제가 괜한 얘길 꺼냈지요? 총설계가동지, 오늘같은 날에 괜히 아픈 소리를··· 》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리웅산은 성급히 갈린 목소리를 짜내였다. 《난 정말이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들었소.》

《그―래―요?》

라정아의 입가에 또다시 애처로와보이는 미소가 떠올랐다.

《자기를 이겨낸다는것 그리구 자기를 믿는다는것이 그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걸 난 그때 처음 깨닫게 되였어요. 물론 총설계가동지야 전쟁때··· 숱한 전투와 죽음의 고비를 남보다 많이 겪었을테니 더 잘 아시겠지만···》

리웅산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급기야 입안이 바짝 말라들고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것처럼 귀속에서 말벌떼가 맹렬히 돌아치며 붕붕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가까스로 혀로 입술을 추기며 말했다.

《난··· 전쟁전부터 외국에 나가있었소, 류학을.··· 그러다보니 전쟁엔 한번두 참가 못하구···》

그의 어조가 얼마나 무겁게 그리고 비통하게 울렸던지 라정아는 제가 오히려 죄스러워하며 지싯지싯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아니, 오히려 내가···》

《난 그런줄도 모르구···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그만···》

《괜찮소.》

《사실 난···》 라정아는 잰 말씨로 고집스럽게 계속했다. 《존엄에 대한 얘길 하고싶었을뿐이예요. 자기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선 때로 죽음도 맞받아나가야 한다는걸 말이예요. 그리구 자기의 마음속에 들어차있는 공포나 불안같은것들을 용감히 극복할줄 알아야 자기 힘을 믿을수 있다는 그런 얘길 하고싶었어요.》

《좋은 이야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정말이요.》

《그렇다면··· 제 한가지 부탁을 해도 될가요? 》

《하오, 무엇이든.》

라정아는 잠시 망설이더니 드디여 결심한듯 말했다.

《실장동지, 이번의 일 말이예요. 지도검열과 관련된··· 절대 물러서지 마세요. 이걸 말하고싶어 남아달라구 했어요. 부탁해요. 그들이야 뭐라구 하던간에 한걸음도 물러서지 마세요. 그렇게 끝까지 자기를 아니, 자기의 량심을 지켜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라정아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리웅산이 시쁘둥한 표정으로 손을 홱 내저었기때문이였다.

《고맙소. 오늘 몹시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마침 동무한테서 좋은 얘길 많이 들었소.》

리웅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의 량심을 지키라고 한 라정아의 말이 웬일인지 그의 가슴을 가시처럼 아프게 찔렀다. 무분별한 사나이의 자존심이 속에서 불끈 주먹을 내미는것을 느꼈다.

《하지만 정아동무.》 하고 그는 가까스로 자신을 자제하며 말했다. 《나도 한가지만은 꼭 말하고싶은것이 있는데··· 그건 이 리웅산이도 자기의 량심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떠나간다는 그것이요. 그렇게 알아주면 고맙겠소.》

《···》

라정아는 입을 다물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구슬픈, 련민의 정이 어린 눈빛이였다.

《난 가봐야겠소.》

리웅산은 그의 눈빛을 견딜수 없어 우정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라정아를 외면하며 뜨직뜨직 말했다.

《어느새 이렇게 차시간이 다 됐구만.··· 정말 미안하오. 정아동무, 그럼 치료를 잘 받으시오.》

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려 문가에까지 걸어갔다.

《가지 마세요!》

이것은 그가 바라는 말이였다. 자기가 너무 무정한것만 같아 라정아가 자기를 만류하기를 바라마지않았다.

《가지 마세요!》

허나 그런 말은 없었다. 놀랍게도 뒤쪽의 라정아는 기척도 없었다. 가릉거리는 숨소리마저 죽이고있다. 아마도 불신과 혐오의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고있는지도 모른다. 문고리를 잡고 그는 잠시 망설이였다. 마지막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남기고싶었건만··· 마침내 그는 문을 열고 나갔다.

밖에서는 극성스럽게 퍼붓던 비가 멎은지 오랬다. 어데선가 새벽수닭이 야단스레 홰를 치며 울어대자 잠시후 선잠에서 깨여난 암닭들이 마치도 그에 화답이라도 하는듯 저저마끔 정찬 울음소리로 구구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