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3

책제목:운명
 
 

제 3 장

3

 

건설장지휘부천막안에서는 자그마한 화로우에 놓인 구리주전자가 뚜껑을 들썩거리며 뜨거운 증기를 씩―씩 내뿜고있었다. 어떤 사람의 취미에 맞추어 차나 커피를 끓이는 모양인데 그 누구도 거기에 눈길을 돌리지 않을 정도로 방안의 분위기는 몹시 긴장되여있었다. 지도검열소조책임자인 방만길 역시 자기 눈앞에서 야단스레 몸부림치는 주전자엔 아랑곳하지 않고 뒤늦게 들어서는 라정아와 로경호만 마뜩지않게 흘겨보았다.

《동무네 참··· 빨리 자리에 앉소.》 그는 벽에 걸린 대기념비형성안을 가리키며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같이 작은 나라에서 이렇게 요란스러운 기념비를 세우면 큰 나라 사람들이 뭐라구 하겠소, 에? 쏘련이나 중국과 같이 혁명을 오래 한 나라들도 이렇게 큰 기념비는 아직 없소. 오죽했으면 박부위원장동지가 이걸 보구 웃부분은 잘라버리라고 했겠소. 이만큼 잘라 키를 낮추라고 말이요!》

그가 지금 말하는 박부위원장이 바로 당의 요직에 있는 박금철이라는것을 라정아는 잘 알고있다. 그 박금철이 얼마전 여기 대기념비건설장을 직접 돌아보았는데 그가 돌아가자 지도검열소조가 내려왔던것이다.

《그런데 박부위원장동지가》 하고 방만길은 손에 들고있는 지시봉으로 벽에 걸어놓은 형성안을 쿡쿡 찍어가며 열을 올리였다. 《이걸 보면서 일일이 지적해준게 언제요? 그런데도 아직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속수무책이니··· 대체 어쩌자는거요? 그래 실장동무, 말 좀 해보오. 동문 당의 지시에 무슨 의견이 있소?》

《···》

대답이 있을수 없다. 당의 지시라는데 감히?··· 라정아는 물이 끓는 주전자곁에서 조각창작단의 리한윤단장과 재능있는 조각가 오대형과 나란히 앉아 땀을 뽑고있는 리웅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몇달전 렬차에서 우연히 만났던 마음 여리고 눈물많던 혜영이의 아버지인 내각건축설계실장 리웅산, 바위같은 고집에 소힘줄같이 질기기로 유명한 사람, 씨름선수같이 어깨가 버그러지고 얼굴도 그의 불그레하고 큼직한 주먹코처럼 누군가 되는대로 막 빚어놓은것 같은 사람, 저런 아버지에게서 어떻게 나비같이 여리고 예쁘장한 혜영이라는 딸이 생길수 있었을가?···

《실장동무!》 방만길이 몰풍스럽게 어성을 높였다. 《무슨 의견이 있으면 내놓고 말하란 말이요.》

리웅산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그럼 좋소.》 하고 방만길이 다시 지시봉을 손에 잡으며 계속했다. 《오늘은 중간총화이니만큼 당장 고쳐야 할것부터 토론합시다. 박부위원장동지가 지적한대로 우선 탑의 규모를 가능한껏 작게 고쳐야겠소. 탑신의 높이도 이쯤까지 자르고 단의 크기도 한 절반 줄입시다.》

땀을 뽑고있던 리웅산이 돌연 오한이라도 나는듯 몸을 떨더니 신음소리처럼 내뱉았다.

《아니, 공사가 다 진척된 이제 와서··· 콩크리트로 친 탑신을 자르다니요? 그게 뭐 톱질을 하는 나무라구···》

방만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실장동무! 동문 그래 이게 당의 지시라는걸 모른단 말이요?》

리웅산이라고 왜 그걸 모르겠는가?··· 라정아는 불안하여 몸을 움쭉했다. 하지만 저 형성안이야 내각에서 이미 비준했던것이 아닌가?··· 리웅산실장도 지금 그 생각을 하고있는지 모른다. 그가 어벙벙해져서 대답을 못하는것을 보며 라정아는 속이 한줌만해 있었다.

《동무들.》 하고 방만길이 격해진 자기의 감정을 눅잦히며 말했다. 《동무들도 알고있는지 모르겠지만 베이징의 인민영웅기념비엔 191명의 희생된 영웅들이 부각되여있다구 하오. 그런데 우린 그저 동판에 부각을 하는 정도가 아니구 산사람보다 더 큰 조각품들을 세우고있소. 하나하나를 다 동으로 주조해서 말이요. 그것두 이백스무명이 넘으니··· 너무 요란하지 않는가?···》

그의 실팍진 어깨가 뒤로 젖혀졌다. 눈앞의 주전자에서 뿜어대는 뜨거운 증기발을 피하려는듯 했다. 증기발이 세찼다. 하지만 방만길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여전히 거기에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그래서 박부위원장동진》 하고 방만길은 손수건을 꺼내여 이마를 문지르며 계속했다. 《탑의 규모가 작아지는데 맞게 조각상들의 수자도 줄이라는거요. 그리구··· 저 형성안에 그려져있는것처럼 항일유격대원들만 가뜩 내세우지 말구 국내인민들의 투쟁모습도 형상해야겠다고 특별히 강조하셨소. 원산로조투쟁이나 단천농조같은것도 배합하자는거요. 그래야 인민영웅탑이라는 기념비의 이름과도 더 잘 어울릴게 아닌가. 될수록 우리 인민의 애국투쟁사가 더 많이 반영되도록 하자는게 박부위원장동지의···》

그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때 리웅산이 또 《음―》 하고 듣기에도 거북한 가래끓는 소리를 내였던것이다. 방만길이 그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던졌다.

《실장동문 왜 당의 조치에 무슨 의견이 있소?》

리웅산은 천천히 타는듯 한 입술을 혀로 감빨았다.

《우린 이 탑을 보천보전투승리 30돐을 맞으며 세우는걸로 알고있는데 원산로조요, 단천농조요 하는건 왜 더 넣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아니, 실장동무도 전날 박부위원장동지가 하는 말을 같이 듣지 않았소. 혁명전통의 폭을 상하좌우로 넓혀야 한다구 말이요.》

《뭐가 뭔지 참··· 어쨌든 이건 내각에서 비준해준 형성안인데 탑이 다 올라간 오늘날에 와서 갑자기 규모가 크다, 인물이 너무 많다 어쩌다 하니···》

《이 동무가 정말?!···》 방만길이 노기에 차서 부르짖었다. 《그럼 말해보― 동문 우리의 애국선렬들의 피어린 투쟁을 조국력사에서 지워버리자는거요?》

《력사야 지워집니까.》

리웅산이 코웃음쳤다. 방안의 공기가 대뜸 험악해졌다. 라정아는 속이 졸아드는것을 느꼈다. 방만길을 쳐다보니 그는 숨소리도 거칠고 손에 든 지시봉을 움켜쥐고있는것이 마치도 그것을 금시 꺾어버릴듯 했다. 주전자안에서도 물이 끓는 소리가 격렬해졌다.

《실장동무!》 방만길은 입귀를 바르르 떨었다. 《동무가 지금 누구를 믿구 그렇게 교만방자하게 구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좋지 않소. 내놓구 말하는데 박부위원장동진 이 형성안이 잘못됐다고 했소. 그래서 다시 만들라는거요!》

《아니, 뭐라구요?!···》

《똑똑히 알아두시오. 부위원장동지뜻은 혁명전통교양을 공산주의교양과 용해시켜 한가마에 삶아먹어야 한다는거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 동무가 알기나 하는가?》

《···》

리웅산은 말이 막힌듯 했다. 손끝으로 목덜미를 긁고있을뿐이였다. 다혈질이고 배짱이 드센 리웅산이건만 너무도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의 지시였던만큼 더는 자기를 주장하지 못하고 몰리고있는것 같다. 그를 지켜보면서 라정아는 속이 떨려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곤경에 빠진 리웅산을 도와야 한다는 오직 하나의 생각에 입술이 달달 말리는듯 했다. 하여 그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무런 준비도 없었지만 우선 리웅산을 폭파해버리려고 타들어가는 도화선의 심지부터 잘라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도검열소조책임자동지.》 라정아는 말라든 입술을 혀로 추기며 말했다. 《전 전쟁때 서울서 의용군에 입대해서 락동강까지 갔다 왔습니다.》

《용쿠만.》

라정아는 방만길의 비꼬는듯 한 말투엔 개의치 않았다.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정작 말을 시작하니 어수선하던 마음이 개운해지는것을 느꼈다.

《얼마나 많은 녀전사들이 전쟁판에서 꽃나이청춘을 바쳐 싸웠겠습니까. 그래서 전··· 우리 녀전사들의 투쟁모습도 저 인민영웅탑에 세우는게 어떨가 하고 생각합니다.》

방만길의 부리부리 큰 눈에 조소의 불빛이 번득이였다.

《허··· 조각가가 제 모습까지 인민영웅탑에 쪼아박고싶다?》

《뭐, 그러면 안됩니까?》 라정아는 여전히 천진스러운 미소를 그리고있었다. 《한가마에 삶아먹을바엔 단천농조랑 서울의 용군이랑 다같이 삶아서···》

그가 말을 맺기도 전에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그를 돌아보며 키득거렸다. 방만길의 희멀건 얼굴이 사뭇 구겨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라정아가 무엄하게도 지도검열소조책임자인 자기를 조소하고있음을 알아차린듯 했다.

《동무! 뭘 말하자는거야. 누구한테 야질거리는가 말야. 동무한텐 뭐 문제가 없는줄 아는가, 엉?···》

방만길은 조각창작단 단장인 리한윤과 조각가 오대형을 바라보았으나 말은 꺼내지 못했다. 한순간 그들도 지금 박부위원장의 조치에 불만이 가득하다는것을 상기했던것 같다. 하여 그는 옆에 앉아있는 건설사업소지배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보우 지배인동무, 저 녀성조각가가 여기 오자부터 좀 못나게 굴었다면서? 죄꼬마한 아이조각대신 단천농조책임자를 조각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놓고··· 뭐 어떻게 비꼬는 소릴 했는지··· 지배인동무도 좀 말해보우. 도대체 저 동무 어떻소?》

건설사업소지배인은 목이 앙바틈하고 웃을 때면 거의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언제 어느때나 롱질을 잘하고 욕설대신 우스개소리로 사람들을 휘여잡는 능구렝이로 소문이 났었다. 그가 라정아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예, 아주 정열적이구 담찬 녀성입니다. 오죽하면 녀자가 시퍼런 조각칼을 쥐구 사람얼굴을 막 깎구 붙이구 하겠습니까.》

지배인의 말에 사람들이 또 키득거렸다. 그러자 심한 불쾌감을 느낀 방만길은 그를 외면하고 라정아를 견주며 싸늘하게 말했다.

《난 아오, 저 의용군출신 녀성조각가가 지금 리웅산실장동물 편들지 못해 속이 타한다는걸 말이요. 참, 조각창작단 단장동무···》

《예.》

리한윤단장이 기다리고있은듯 즉시 자리를 차고일어났다.

《아니, 아니요.》

방만길은 한순간 자기가 실수했다는것을 깨달은듯 했다. 리한윤단장에게 말을 시켜서는 안되는것이다. 그가 급히 말을 돌렸다.

《그럼 조각창작단 단장동무와 건설사업소지배인 그리구 리웅산실장동무만 남구 다른 동무들은 나가보시오.》

라정아는 천막밖으로 나왔지만 걸음을 옮길수 없었다. 로경호가 그에게 다가서며 수군거렸다.

《정아동지, 정말 대단한데요? 단천농조랑 서울의용군이랑 다 한가마에 삶아먹자구 할 땐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라정아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온 지휘부천막에서 불안스러운 눈길을 뗄수 없었던것이다. 로경호가 이상해했다.

《아니, 정아동지, 바람도 센데 여기 그냥 있겠습니까?》

라정아는 여전히 아무말없이 머리만 가로저었다. 저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알지 않고는 그냥 돌아갈수 없었다.

이윽고 천막안에는 몇사람만이 남았다. 지도검열소조성원들과 방만길이 남으라고 한 세사람··· 그들을 둘러보며 방만길이 엄숙하게 말했다.

《길게 말할게 없소. 우린 당에서 지시하는대로 무조건 해야 하오. 조각창작단 단장동무, 박부위원장동지가 탑의 중심주인공을 유격대의 보통지휘관으로 형상하라고 했다는걸 잊지 마시오.》

《저 그건···》

리한윤단장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도검열책임자동무, 한가지만은 명백히 해둡시다. 이 탑의 주인공을 유격대의 보통지휘관으로 한다면 누구를 원형으로 한다는겁니까?》

이것은 정통을 찌른 질문이였다. 지금까지 노리고있은것이 분명했다. 방만길이 당황해했다.

《그건 무슨 의미로 하는 소리요?》

《혹시 박부위원장동질 념두에 둔건 아닌지?···》

리웅산이 제꺽 뒤를 달았다.

《그럴수가 있소? 박부위원장동지야 항일유격투쟁에 참가한 일이 없지 않소?》

《그러게 물어보는 말입니다.》

리한윤단장이 두눈을 희끗거렸다. 마치 싸움이라도 걸려는듯 한 표정이였다. 방만길의 얼굴이 사납게 이지러졌다. 두사람을 둘러보는 그의 두볼이 검붉은 빛으로 움씰거리고 목에서는 피대가 부풀어오르고있었다.

《이 사람들이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당의 조치에 의견을 부리던 나머지 인젠 박부위원장동지까지 걸구드는가?》

《아닙니다.》 리한윤이 소리쳤다. 《우린 걸구드는게 아니라···》

방만길이 손을 내저었다.

《됐소, 동문 앉소. 난 저 리웅산동무한테 묻는거요.》

리웅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원칙적인 문제를 말할뿐이요.》

《동무, 리웅산!》 방만길의 눈빛이 사납게 번뜩이였다. 《내 말을 명심해듣소. 지금 당에서 동물 색다르게 보구있다는걸 알기나 하는가? 동문 제 사생활이나 깨끗이 걸레질해두란 말이요.》

《뭐요?》 이번엔 리웅산의 두볼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건 무슨 소리요?》

《저 의용군출신 라정아하구 말이요.》 방만길이 분별을 잃고 고아댔다. 《실장동무와 그 녀자가 어쩌니저쩌니 뒤소리가 많은데 좋지 않소, 응? 좋지 않단 말이요!》

극도로 흥분한 그들은 천막밖에서 신음소리가 터지는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문앞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있던 라정아가 비틀거리며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동시에 벌려진 입에서는 괴로운 신음소리와 함께 새빨간 선지피가 흘러내렸다.

저앞에서 뒤를 돌아보던 로경호가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를 따라 또 몇사람이··· 그러나 벌써 라정아는 의식을 잃고있었다. 그러나 천막안에서는 그런줄도 모르고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모욕적인 발언과 그에 대한 앙갚음과도 같은 분별잃은 말다툼이 계속되고있었다.

리웅산이 입술을 악물고 방만길에게로 한걸음 쑥 다가갔다. 방만길이 뒤걸음쳐갔다. 또 한걸음··· 인제는 주먹으로 면상을 후려갈길수 있는 거리였다. 그 순간 건설사업소지배인과 조각창작단 리한윤단장이 리웅산을 막아나섰다.

《실장동무, 어쩌자는거요?》

《아, 이러지 마시오.》

두사람에게 붙들린 리웅산은 미친듯 한 흥분을 누를길 없어 눈앞의 방만길에게로 뜨거운 입김을 퍼부었다.

《이··· 비렬한!》

《뭐, 뭐라구?》 하고 방만길은 목을 졸라매운듯 허덕이면서도 계속 고아대였다. 《리웅산!··· 내 동무한테 명백히 말해두는데 박부위원장동진 벌써 동무에 대해 결론했소. 한번 더 당에 도전하면 단단히 문제를 세우라고 말이요, 알겠소? 동무같은 코대는 우리한테 필요없단 말이요!》

리웅산은 숨이 멎는듯 허덕이고있었다. 두사람에게 붙들린채 두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아직 이렇듯 로골적인 인신공격을 받고 모욕감에 치를 떨어본적은 없었다. 그는 이를 갈며 신음하다가 돌연 두사람을 활 뿌리쳤다. 그리고는 몸을 홱 돌려 천막의 한쪽벽을 가득 채운 형성안을 잡아뜯기 시작했다.

《필요없다?!···》

극도로 흥분한 리웅산은 비칠거리며 형성안을 뜯어내리다가 그만 커다란 못에 팔굽이 찢기기까지 했다. 팔굽에서 피가 흘렀다. 그러나 끝까지 형성안을 뜯어내려 둘둘 말아서는 옆구리에 끼였다.

《필요없단 말이지?》

성이 독같이 난 방만길이 손가락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필요없어, 당신같은건! 여기서 썩 사라져!》

《가겠소. 가라면 못 갈줄 알구?!··· 하지만 당신이, 당신이 책임질줄 아시오!》

리웅산은 걸상을 걷어차며 천막밖으로 나갔다. 뒤쪽에서 건설사업소지배인과 조각창작단 단장 리한윤이 뭐라고 소리쳤지만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