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24

책제목:운명
 
 

제 3 장

24

 

8월 14일 밤 11시.

밤에는 비가 내렸다. 그이께서 계시는 숙소의 창너머 어느 먼곳에서 무슨 비상한 사변을 예고하기라도 하듯 우뢰소리가 꾸르릉― 꾸르릉! 하더니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줄기같이 쏟아지는 비··· 한순간 시퍼런 번개불이 하늘 한복판을 쭉 찢으며 어데론가 날아갔다. 사나운 빛의 일격··· 뒤따르는 우뢰질도 더 격렬해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창밖에서 펀뜩이는 번개불에서 점도록 눈길을 떼시지 못하였다. 마치 자신의 마음속 격정이 그대로 불이 되여 펀뜩인듯··· 이윽해서야 다시 펜을 잡고 글을 쓰시였다. 현지지도의 먼길에서 겹쌓인 피로로 하여 무시로 눈이 감겼지만 밤늦도록 쓰고 또 쓰시는 글··· 이제 곧 있게 될 당대표자회 보고문이다.

채칵거리는 초침소리만이 이밤의 숙연한 사색을 변함없이 재여가고있었다.

 

···윁남에 대한 미제의 침략은 비단 윁남인민을 반대하는것일뿐아니라 사회주의진영에 대한 침략이며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도전이며 아시아와 세계평화에 대한 위협입니다.

···

···미제의 윁남침략과 그것을 반대하는 윁남인민의 투쟁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하는것은 제국주의를 견결히 반대하는가 안하는가, 인민들의 해방투쟁을 적극 지지하는가 안하는가를 보여주는 기준으로 됩니다. 윁남문제에 대한 태도는 혁명적립장과 기회주의적립장,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와 민족리기주의를 갈라놓는 시금석으로 됩니다.···

 

때로는 이미 쓰신것을 그어버리고 여백에 까맣게 써넣으시고 때로는 새로운 문구들을 짬짬이 첨부하기를 그 몇번··· 밖에서는 창유리를 후려치는 비바람소리가 더더욱 기승을 부린다. 번개와 우뢰소리도 그칠새 없다.

그이께서는 이윽고 만년필을 놓으시였다.

잠시 창밖을 내다보신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시지 못한다. 밤은 줄기찬 비속에서 새벽을 향하여 쉼없이 가고 그이의 마음은 무거운 사색의 심연속으로 파고들고있었다.

 

수령님의 사색(3)

 

우리는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적극 투쟁하면서도 결코 전쟁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따라서 전쟁을 두려워하는 수정주의자들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언제였던가?··· 전후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복구건설에 떨쳐나섰던 그 어려운 첫시기 쏘련당에서 편지를 보내여왔던 일을 지금도 잊을수 없다. 실로 놀랍기 그지없던 그 편지··· 거기에는 지금 미국이 조선전쟁때 자기들은 세균무기를 쓴 일이 없다고 주장하고있는 조건에서 조선이 그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 정세를 더 긴장시킬 필요가 있는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게 좋겠다는 내용이였다.

그때 우리 일군들이 얼마나 격분했던가. 김일, 최현, 리종옥, 남일, 박성철, 리주연 등은 분노로 치를 떨었었다. 미제의 세균전만행이야 전쟁이 한창이던 때 바로 국제법률가조사단까지 우리 나라에 와서 직접 눈으로 보고 과학적인 물증까지 들어 온 세상에 폭로했던것이 아닌가. 하기에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세균탄사용을 명령하였던 릿지웨이라는 놈이 후날 나토군사령관으로 임명받고 빠리에 갔을 때 프랑스인민들이 그를 페스트장군이라고 맹렬히 규탄하며 빠리에 들어오는것을 반대하여 대규모적인 항의시위까지 벌리지 않았는가?!···

이러한 론거를 가지고 우리 일군들은 미제의 만행을 폭로하는 과학적인 자료를 만들어가지고 나를 찾아와 흥분하여 말했었다.

《수령님, 여기에 쏘련당에 보낼 론박할수 없는 과학적자료들을 다 묶어놓았습니다. 당장 이걸 쏘련당과 흐루쑈브에게 보냈으면 합니다.》

이렇게 말한것은 당시 외무상을 하던 남일이였던것 같다. 아마 김일이 시켰을것이다. 남일을 앞세우고 들어온 김일과 나머지 사람들은 번뜩이는 눈빛으로 그의 말을 되받아 웨치고있었다.

《당장 이걸 쏘련당에 보냈으면 합니다, 수령님! 그들이 우리를 모욕하고있는데 우리도 그들한테 본때를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때를 보인다?···》

나는 한동안 방안을 거닐며 생각했다. 마음은 그지없이 쓰리고 무거웠다. 우리가 본때를 보여서 얻을것이 무엇인가?···

웬일인지 그때 눈앞에 자꾸 떠오른것은 항일무장투쟁을 벌리던 시기 우리가 세계의 첫 사회주의나라인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여 피흘려 싸우던 나날의 일들이였다.

그리고 또 하나 가슴을 치는 추억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1949년 2월 우리 나라 정부대표단을 인솔하고 쏘련을 공식방문하였을 때에 있은 일이다. 특히 쓰딸린과 담화를 나누던것이 기억에 생생히 떠올랐다. 그것은 진정 새삼스럽고도 정깊은 추억중의 하나였다.

그때 쓰딸린은 우리를 환영하여 성대한 연회를 차리고 자신이 몸소 감동적인 축배사를 하였다. 그는 축배사에서 20성상에 걸치는 장구한 기간 일제를 반대하는 싸움에서 돌격대적인 역할을 한 조선인민혁명군을 친히 조직하고 령도하신 김일성동지는 동방에서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쏘련을 피로써, 무장으로써 옹호해준 참다운 국제주의자이라고, 공산주의자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쏘련이 오늘과 같이 평화적인 환경에서 사회주의건설을 할수 있은것은 김일성동지와 같은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이 있었기때문이라고, 우리모두 열렬한 박수로 김일성동지께 감사를 드리자고 하였다.

그때 쓰딸린의 나이는 70살이였고 나는 37살이였다. 그렇듯 곱절이나 나이가 많았지만 년세로 보나 세상사람들속에 흔히 엄격하고 무자비한 사람으로 알려진 그의 과격한 성격으로 보나 어쩐지 놀라울 정도로 그날 그는 나에게 시종 정중하면서도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의례행사가 끝나고 밤이 퍼그나 깊어 크레믈리의 시계가 열두점을 친지도 이슥하였을 때였다. 돌연 쓰딸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팔을 끼더니 귀속말처럼 은근히 속삭이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 시간이 많이 갔지만 식사를 다시 하고 이야기를 좀 더 나누는게 어떻습니까?》

통역도 그 말은 듣지 못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또 식사를 한단 말입니까?》

쓰딸린도 히뭇이 웃었다.

《그럼 또 식사를 한다고 하지 않고 뭐라구 해야 합니까? 남들이 듣기에도 거북하게 술을 더 마시자고 할순 없지 않습니까.》

《예― 그렇다면··· 좋습니다.》

하여 우리사이에는 일정에도 없던 별도의 회담이 새벽 3시가 넘도록 계속되였다.

많은 문제가 론의되였다. 우리 나라와 쏘련사이의 완전한 평등, 자주성, 호상존중과 내정불간섭, 동지적인 원칙에 기초한 경제 및 문화적협조에 대한 문제··· 마지막으로 쓰딸린은 나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말하였다.

김일성동지, 당신이 부럽습니다. 당신의 젊음과 열정, 지혜와 투지, 담력, 통찰력··· 모든것이 다 부럽습니다.》

《쓰딸린동지, 당신도 역시 아직도 왕성한 정력과 기백에 넘쳐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그런 정정한 모습을 보는것이 저로서는 정말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은 참 정이 가는 사람입니다. 온통 정이라는 따뜻한 재료로 만들어진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때 나는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특별한 재료로 만들어진 특수한 사람들이다.》 라고 한 그의 유명한 말이 떠올라 소리없이 웃었다. 쓰딸린이 《재료》라는 말을 류달리 좋아하는것 같아서였다.

《왜 웃습니까? 난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 말했는데···》 하면서 쓰딸린은 다시금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 유명한 곰방대에 불을 달더니 굴뚝같이 연기를 내뿜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김일성동지 당신을 처음 만나던 그때부터 웬일인지 단번에 정이 푹 드는것을 느꼈습니다.》

《거야 제가 쓰딸린동지를 진심으로 존대하기때문이겠지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남을 존중해줄줄 아는 사람만이 남들의 존중을 받는 법이지요. 이건 생활이 나에게 가르쳐준 인생의 진리입니다.》

새벽 3시가 지나 담화를 마무리하고나서 쓰딸린은 또 나의 팔을 끼며 정문현관으로 향했다.

《내가 당신의 쏘련방문을 기념하여 자그마한 선물을 하나 마련했는데··· 어떻습니까, 나가볼가요?》

《예, 고맙습니다.》

《아니, 고맙다는 인사는 오늘 내가 먼저 했습니다. 헌데 내가 준비한 크지 않은 선물이 당신의 마음에 들겠는지?···》

현관앞에는 검은색대형《짐》승용차가 서있었다. 그것을 가리키며 쓰딸린이 설명했다.

《이건 우리가 만든 신형방탄승용차 〈짐〉입니다. 당신께 꼭 필요하리라 생각하고 준비했는데··· 어떻습니까. 마음에 듭니까?》

이러한 지성에 무어라고 감사를 표할수 있으랴?··· 고맙다는 말밖에 더 할말이 없는것이 유감스럽게 느껴졌다. (이후 쓰딸린은 전쟁때에도 새 방탄차를 선물로 보내왔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지금 이 시각에도 나는 《남을 존중해줄줄 아는 사람만이 남들의 존중을 받을수 있다.》고 하던 쓰딸린의 그 말을 거듭 되뇌여본다.

그렇다. 대방의 진정을 받으려면 먼저 정을 주어야 한다.

정이란 선물이 아니다. 돈으로 팔고사는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주는것이지 대가를 바라는것이 아니다. 왜냐면 정이란 마음의 온기이고 미소이기때문이다. 하지만 정을 주고 믿음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측이 계속 자기의 리속만 차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하여 정을 준 사람을 도리여 곤경에 빠뜨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나는 드디여 김일과 남일을 비롯한 여러 일군들을 둘러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쏘련사람들에게 미제가 조선전쟁때 세균무기를 사용하였다는것을 과학적자료로 납득시키는것은 사실 아무런 의의도 없습니다. 과연 그들이 그런 사실을 몰라서 그랬겠는가?··· 아니, 그들은 지금 미제국주의에 겁을 먹고 아부굴종하고있습니다. 미제에게는 아부굴종하면서도 존엄있는 우리 당과 국가의 자주권을 마구 짓밟으려 한단 말입니다. 그래 이걸 용서할수 있겠는가?!··· 아니, 그럴수 없습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 당의 원칙적립장을 담은 편지를 쏘련당에, 흐루쑈브에게 보냅시다. 그다음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두고봅시다.》

물론 그들은 그후 우리의 회답편지에 대해 단 한마디의 항변도 하지 못했다. 그럴수밖에··· 진리는 해빛과 같아서 손바닥으로는 절대 가리지 못하는것이다.

현시기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우리가 제 할소리를 내놓고 하는것이다. 우리는 이제 열리게 될 당대표자회를 통해 우리 당의 원칙적립장을 서슴없이 내외에 선포할것이다.

 

···오늘 사회주의진영나라들은 호상간의 의견상이로 하여 미제의 침략을 반대하고 윁남인민을 지원하는데서 일치한 보조를 취하지 못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싸우는 윁남인민을 괴롭히고있으며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

우리는 윁남민주공화국정부가 요구할 때에는 언제나 지원병을 파견하여 윁남형제들과 함께 싸울 준비를 하고있습니다.

···

오늘 형제당들사이의 의견상이가 사상리론적계선을 넘어서 풀기 어려울 정도로 된것은 전세계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형제당들사이의 의견상이가 아무리 심각하여도 그것은 사회주의진영과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내부문제입니다. 당들사이의 의견상이를 조직적결렬에로 끌고가지 말아야 하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결의 념원에서 출발하여 사상투쟁의 방법으로 해결하여야 할것입니다.···

 

지난 7월 미국대통령 죤슨은 《우리들이 요구하는 평화》라는 호화롭게 금박을 칠한 제목의 연설에서 이제 미국은 아시아의 혁명하는 나라들과 《끝까지 대결》하여 《아시아, 태평양국가》로서의 《의무》를 다할것이라고 게거품을 물고 떠벌이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주의진영은 어떠한가? 제국주의자들과는 달리 지금 사회주의 대가정내에서의 의견상이는 사상리론적계선을 넘어서 참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고있다. 특히 중쏘간의 의견상이는 사상리론적계선을 벗어나 국경문제에로까지 확대되고있다.

쏘중국경지대에 배치된 쏘련군은 흐루쑈브시기의 10개사단으로부터 최근에는 수십개사단으로 급증하고있다고 한다. 지금 두 나라관계는 무장충돌에까지 이르고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 없다. 미제가 일본반동들과 같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작전계획들인 《세개화살작전》(1963년), 《날아가는 룡작전》(1964년), 《달리는 황소작전》(올해인 1966년) 등을 조작하면서 아시아, 특히 조선반도에 침략의 예봉을 돌리고있는 이때 적들의 아성을 겨누던 총과 대포들이 벗들에게로 돌려지는것을 허용할수 있겠는가?···

 

우리 당은 의견상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형제당과 형제나라들에 대하여 경솔하게 결론을 내리지 말며 시간을 두고 투쟁을 통하여 검열하는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합니다.

 

우리에게도 국경문제가 없는것은 아니다. 장구한 력사의 흐름을 거슬러오르면 우리의 국경은 멀리 북쪽에 그 시원을 두고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력사의 진실이다. 우리는 력사를 외곡하거나 부정하려는자들에 대해서는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다. 하기에 얼마전 우리의 국경문제를 걸고든 브레쥬네브에게도 오금을 박지 않으면 안되였다.

사실 브레쥬네브는 흐루쑈브를 제거하고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로 되자 먼저 나를 모스크바에 초청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일이 바빠 시간을 낼수 없으므로 정 만나겠으면 그가 평양에 오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모스크바와 평양간의 중간지점인 울라지보스또크에서 만나자는 절충안을 또 내놓았다. 기어이 나를 만나야 할 사정이 있는듯싶었다.

바로 지난 5월 중순에 있은 일이다. 장대한 체구에 늘 위엄을 떨치려고 애쓰던 브레쥬네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것은 그의 틀진 자세였다. 흐루쑈브가 합창대의 지휘자마냥 지휘봉을 내흔들며 고아대기 좋아하는 형이라면 브레쥬네브는 말없이 으름장을 놓는 형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런 브레쥬네브였으므로 울라지보스또크에서 만났을 때 대국의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한번 시위해볼 의도였는지(우리 당 제3차대회때 축하단단장으로 와서 우리에게 흐루쑈브의 수정주의물을 염색하려다가 호된 반격을 받은 일이 있다.) 불쑥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김일성동지, 최근 조선력사학자들은 조선의 고대국가 발해국이 원동지방에까지 존재했다는 터무니 없는 론거를 들고나온다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리해해야 합니까?》

그것은 일종의 도발이였다. 그들이 무기로 삼는 수정주의 곤봉이였다.

《터무니 없다구요?》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이 우리의 비위에 거슬리긴 하지만 론쟁은 하지 맙시다. 허나 기왕 력사문제를 꺼낸 이상 그에 대해 좀 설명을 할가 합니다.》

나는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일찌기 698년 고구려의 장수였던 대조영이 발해국을 세웠으며 점차 나라가 번성하여 9세기에 이르러서는 《해동성국》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해동성국》이란 말은 동방의 번영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발해가 번성할 때 동북쪽으로는 로씨야의 연해주, 하바롭스크주, 오호쯔크해까지, 서쪽으로는 료동반도와 료하계선, 남쪽은 대동강―덕원계선, 동쪽은 조선동해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령토를 차지하고있었다, 그때 발해왕국은 신라와 함께 우리 나라 중세국가로서 당나라, 일본, 돌궐, 거란을 비롯한 여러 나라 종족들과 관계를 맺고 발전된 기술과 문화를 자랑하였다. 중국동북지방과 로씨야의 하싼구역에서 발해시기의 많은 유적유물들이 발굴된것은 바로 그에 대한 뚜렷한 례증으로 된다, 력사는 부정할수 없다, 발해국이 존재한것도 엄연한 력사적사실이므로 우리는 자기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슬기로운 문화에 대하여 응당한 민족적자부심을 가지고 주장하는것이지 결코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것은 아니다.

《어떻습니까. 브레쥬네브동지, 내 말이 리해가 됩니까?》

그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허나 대답을 피할수는 없는 일이였다.

《옳은 말씀입니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이 정말 지당합니다.》

존엄이 있으면 사람은 강해지기마련이다. 그리고 강한 사람은 무슨 일에서건 왁작 떠들어대지 않고 조용히 미소하는 법이다. 이것은 당도 국가도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그러자면 모든 형제당들이 누구에게도 맹종맹동하지 말고 자주성을 가지며 대국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또한 모든 당들이 단결하여 그 누구도 사회주의진영과 국제공산주의운동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하며 대국주의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

 

현대수정주의를 반대하는것과 함께 좌경기회주의를 반대하여 투쟁하여야 합니다. 좌경기회주의는 변화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맑스―레닌주의의 개별적명제들을 교조주의적으로 되풀이하며 초혁명적인 구호를 들고 사람들을 극단적인 행동에로 이끌어갑니다.···

 

1947년 8월이였던지··· 유명한 미국 녀류문사 안나 루이스 스트롱녀사가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다. 사실 그는 쏘련에 오래동안 체재하다가 중국의 연안혁명근거지에 가서 모택동과 주덕, 주은래 등과 수차 면담을 하고 보도활동을 하였다. 우리 나라로 오기 위해 연안에서 상해로, 상해에서 쏘련의 울라지보스또크를 거쳐 평양에까지 찾아왔었다.

그는 서두의 인사말을 이렇게 떼였다.

《내가 동북아시아를 한바퀴 돌아 신생 인민조선을 방문하게 된것은 다름이 아니라 강대한 일본제국주의와 싸워 조선의 독립을 이룩하신 김일성장군을 만나뵙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그가 고령의 몸으로 우리 인민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하여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와주신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그는 소탈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기 오면서 이제 김장군을 만나뵈오면 꼭 문의하고싶은것들이 있었는데··· 실례입니다만 장군이 몹시 거북해할 어려운 질문을 하나 해도 괜찮겠습니까?》

문필가들이란 참 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표현하기 힘들거나 내놓고 말하기 딱한 문제들도 다채로운 언어의 숯불에 구워 맛좋은 훈제로 내놓군 하는것이다.

나는 흔연히 말하였다.

《예, 어서 말씀하십시오. 어려운 질문이라니 더 호기심이 동합니다. 하지만··· 거북한 질문이라면 아예 대답을 안하겠습니다.》

《역시 장군다운 말씀이십니다. 그럼 첫째 질문··· 장군도 무서워하는것이 있습니까?》

《무서워하는것이라··· 예, 있습니다.》

《뭡니까?》

《웃는 친구들입니다.》

《아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총칼을 쥐고 달려드는 적들은 별로 무서울게 없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웃음을 날리는 가짜친구들은 몇배나 더 위험합니다. 그런 실례야 인류력사에 얼마나 많았습니까.》

안나 루이스 스트롱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재빨리 수첩에 무엇인가를 써넣었다.

《그럼 두번째 질문입니다. 장군이 일상생활에서 제일 싫어하는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제일 싫어하는것이라··· 아마 그건 머리를 숙이는것이라 할가요.》

《그건 어떤 의미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아부와 굴종, 비굴한 순종을 제일 싫어한다는것을 말하고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혁명을 시작하던 첫날부터 자주성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사람이란 그가 누구든 자주성이 없으면 그때엔 죽은 목숨이나 같기때문입니다. 혁명과 건설도 같은 맥락에서 말할수 있습니다.》

《참, 좋은 말씀이십니다.》 그는 진심으로 감동된듯 했다. 《그런데··· 지금 인민조선은 일제식민지통치기반에서 해방되였으니만큼 아부와 굴종, 순종 같은것이야 더는 있을수 없지 않습니까?》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우리 나라는 력대로 대국들 짬에 끼워있었으므로 사대주의가 우심했습니다. 큰 나라, 발전된 나라는 섬기며 머리를 조아리고 자기 민족은 멸시하는 사상이 오랜 세월을 두고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조국광복을 이룩한 그날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사람들에게 말해주군 합니다. 사람이 사대주의를 하면 머저리가 되고 민족이 사대주의를 하면 나라가 망하며 당이 사대주의를 하면 혁명과 건설을 망쳐먹는다고 말입니다.》

스트롱은 마치 어린 소녀들이 그러듯 손벽까지 치며 흥분하여 말하였다.

《고견입니다. 참으로 김일성장군만이 할수 있는 심오한 뜻이 담긴 명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에나 지금이나 우리의 주장은 변함없다. 우리는 절대로 원칙앞에서 양보하지 않는다. 언제 어느때나 우리는 존엄높은 당의 권위를 가지고 제할 소리를 다 한다. 그것도 세상에 대고 당당히, 위엄있게!···

 

···공산주의자들은 결코 자기를 내세우지 말아야 하며 다른 당들에 자기의 사상을 강요하여서는 안됩니다.···

우리 당도 대국주의자들의 간섭을 받은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있습니다. 물론 대국주의자들은 응당한 반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우리는 참기 어려웠지만 혁명의 리익과 단결의 념원으로부터 출발하여 문제를 내부적으로 해결하였습니다.

···

지금 어떤 사람들은 우리 당을 비롯한 맑스―레닌주의당들에 대하여 《중간주의》, 《절충주의》, 《기회주의》 등의 딱지를 붙이고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무원칙한 타협의 길》을 택하고있으며 《두 걸상사이에 앉아있다.》고 말하고있습니다. 이것은 부질없는 소리입니다. 우리에게도 자기의 걸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때문에 자기의 걸상을 버리고 남의 두 걸상사이에 불편하게 량다리를 걸고 앉아있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자기의 똑바른 맑스―레닌주의걸상에 앉아있을것입니다. 자기의 옳바른 걸상에 앉아있는 우리를 두 걸상사이에 앉아있다고 비방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비뚤어진 왼쪽걸상이나 오른쪽걸상의 어느 하나에 앉아있는것이 틀림없습니다.···

 

어느덧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느껴지고있다. 무시무시하게 펀뜩이던 번개불도, 천지를 진감하던 우뢰소리도, 창유리를 후려치던 비소리도 멎은지 오랜것 같다. 바야흐로 비 개인 뒤의 맑고 푸른 새아침이 시작되는것이다.···

 

×

 

조선로동당대표자회는 1966년 10월 5일부터 12일까지 8일간에 걸쳐 진행되였다. 대표자회에서는 김일성동지께서 《현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이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세계에 커다란 충격파를 일으킨 보고였다. 미제와 세계반동들은 기가 꺾이였고 수정주의, 대국주의자들과 좌우경기회주의자들은 목을 움츠리였다.

대표자회는 《윁남문제에 관한 조선로동당대표자회 성명》도 채택하였다. 지원병의 파견이 세계에 선포된것이다. 하여 많은 나라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군수품창고문을 더 크게 열고 윁남을 지원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대표자회가 끝난지 한주일후인 10월 19일, 김일성동지께서는 윁남에 파견되여가는 조선인민군 제203군부대의 비행사들을 만나시고 오랜 시간 담화를 하시였다.

얼마후 우리 비행사들이 윁남의 하늘에서 미제와 사생결단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 세계가 또다시 벌떼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