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20

책제목:운명
 
 

제 3 장

20

 

배에서는 혼자서 쉬는 법이 없다. 교대로 잠을 잘지언정 혼자 누워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철문을 사이에 둔 선실밖에서 벌어지는 물고기잡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피를 끓게 하는 로동이기때문이다. 세상에 그렇듯 피로를 모르는, 그렇듯 열광적인 로동은 아마 다시 없을것이다. 더우기 고래나 상어를 잡을 때엔 모두가 미친것처럼 날뛴다.

오늘 뜨랄선56호는 배가 물에 잠길 지경으로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선수어창에 100여톤, 선미어창에도 120톤, 오후에는 선미갑판과 선수갑판에 돌고래과에 속하는 솔피를 무려 12마리씩이나 잡아올렸다. 청어의 대군을 뒤쫓아 밀려든 솔피들이였다. 마지막 12번째로 잡은 놈은 솔피치고 제일 큰것으로서 몸길이는 약 10메터, 무게는 8톤쯤 나갈거라고 했다. 그보다 앞서 잡은것들은 보통크기의 솔피들로서 5톤쯤 나가는것들이였다.

유진은 제일 큰 솔피를 갑판에 끌어올린 다음에도 나머지솔피들이 여전히 바다에서 떠나지 않고 물기둥을 말아올리며 요동을 치고있는것을 이루 형언할길 없는 야릇한 감정으로 살펴보고있었다. 머리우에 쓰고있던 투구모양의 고깔모자까지 벗어들고 이윽토록 추연해진 눈빛을 그것들에게서 떼지 못하고있었다.

이상하게도 솔피고래들은 늘 무리를 지어다닐뿐만아니라 한놈이 포창에 맞으면 나머지동료들은 그놈이 죽을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는다. 동료의 주위를 맹렬히 돌아치며 사납게, 통절하게 모지름쓴다.

《뭘 보구있소?》

돌아보니 장태렬부선장이였다.

《저 솔피들을 보니 속이 아릿해지는게···》 유진은 고무옷에 게발린 피자욱을 손으로 대충 문지르고나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말하였다. 《글쎄 저것들이 죽어가는 제 동료곁을 떠나지 못하는걸 보자니까···》

장태렬은 오랜 배사람답게 거쉰 소리로 껄껄 웃었다.

《아니, 우린 유진동무가 배사람이 다 됐는가 했더니 원··· 저것들이 제 동료곁을 인차 떠나지 않는건 갸륵한 일이지만 어쩌겠소. 우린 그 통에 나머지것들까지 더 많이 잡아들이지 않소. 아, 다들 유진동무처럼 그렇게 불쌍히 생각한다면 저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잡겠소?···》

유진은 입술을 감빨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다, 단순히 솔피고래들이 불쌍해서만이 아니다. 그 솔피고래들의 남다른 정과 어떤 우애비슷한 본능적행위에 속이 아릿해졌던것이라 할가.···

《됐소. 그런 감상적인 생각은 싹 걷어치우오.》 장태렬이 세포위원장다운 결론을 내렸다. 《우린 어떻게 하나 수산물 80만톤고지를 점령해야 하오. 오죽하면 포경선들도 많은데 이런 뜨랄선에까지 고래포를 다 올려놨겠소. 수산물 80만톤고지점령에서 고래가 아주 중요하단 말이요.》

《예, 알고있습니다.》

《그런데도 속이 아릿하다?··· 난 우리가 잡은 이 많은 물고기를 모선에서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구 근심하구있는데···》

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조타실쪽으로 터벌터벌 걸어갔다. 그가 끌고가는 무거운 고무장화가 갑판우에 게발려있는 무수한 고기비늘과 터진 밸들을 시꺼먼 기름바닥에 마구 짓이기며 그 무슨 괴이한 그림문자를 그려놓군 했다.

《자, 인젠 모선으루 날라가야지!》 그가 걸어가며 사람들을 향하여 소리쳤다. 《인젠 그만!··· 그러다 배가 가라앉구말겠소.》

유진은 한자리에 서서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그의 얼굴은 시쁘둥했다. 웬일인지 아까부터 속이 좋지 않았다. 선장이 말한 아다 미헬쏜의 일때문에 마치 벌레라도 씹은듯 했다.

얼마후 만선기를 단 뜨랄56호는 랭동가공모선들이 있는 쎄베로꾸릴스크로 갔다. 다행히 모선에 물고기가 차서 잡아온 물고기를 몽땅 바다에 처넣는 일이 더는 없을것 같았다. 《룡악산》호가 청진항에 물고기를 부리우고 방금 돌아왔고 다행히 제일 큰 랭동가공모선인 《백두산》호도 아직 물고기를 가득 채우지 못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