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19

책제목:운명
 
 

제 3 장

19

 

그 시각 박유진은 뜨랄선56호의 어로공들속에 끼워 깜챠뜨까의 서북쪽해역에서 물고기잡이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원양어로작업이다. 그의 얼굴은 볕과 세찬 바다바람에 타서 검실검실해졌고 시꺼먼 손등도 터갈라졌다. 챙챙하던 목청도 어언 배사람답게 거쉰 소리로 변했다.

여기는 청진으로부터 무려 1 350여마일이나 떨어진 싸할린섬 이북의 오호쯔크해의 맨 끝단이다. 조국에서 멀고먼 북극수역에 잇닿아있는 해역이여서 한여름철에도 그는 솜옷을 벗지 못하고있다. 아침마다 짙은 안개가 차디찬 대기를 몰아오는가 하면 별안간 하늘이 찌뿌둥해지면서 때이른 는개비를 쏟아붓기도 하는것이다.

별안간 포수 권영길이 소리쳤다.

《고래다!―》

그물을 끌어올리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데, 어데 있어?!》

《아, 저거 안 보이오?》

과연 그가 가리키는 곳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있었다. 문짝만큼 큰 물고기가 재빛의 등가죽과 싯허연 배를 뒤채이며 푸들쩍거리는것이였다.

《저게 뭐 고래야?》 누군가 코웃음치며 소리쳤다. 《가재미야, 왕가재미!》

사람들이 떠들썩 웃어댔다. 포수 권영길이 고래에 미치다보니 그만 대짜배기 가재미를 보고도 《고래다!―》 하고 소리쳤다고 보기때문이였다. 고래포의 포수여서 잠을 자다가도 《고래다!―》 하고 소리칠 지경이였다.

그러나 가재미를 갑판우에 끌어올렸을 때 제일 나이많은 류운환이 그것을 들여다보더니 한마디로 이렇게 단정했다.

《이건 가재미가 아니라 연어야.》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박유진이 따져물었다.

《정말 연어가 옳긴 옳소?》

《아따 이 사람, 우리가 뭐 한두번만 이런걸 잡아봤다구 그런 소릴 하오?···》 하고 그는 장화발로 연어를 툭툭 차며 말했다. 《이제 두구보지비. 보나마나 오늘은 어창이 터질 정도로 물고기가 잽힐거우다. 이렇게 큰 연어까지 나타났다는건 먹이생물이 우쩍 늘어났다는 소린데··· 그러면 물고기떼가 밀려드는 법이요. 이건 진짜요. 이제 고래들까지 무리지어 나타나지 않나 두구보시오.》

다른 사람들도 그의 말을 긍정했다. 드물긴 하지만 이렇듯 큰 연어를 전에도 몇번 보았다고 한다.

언제 나타났는지 강창길(그는 륜번제의 취사당번이였다.)이 《야 이놈, 굉장하구나!》 하면서 연어의 배때기에 올라탔다가 그만 그것이 푸들쩍 용을 쓰는 바람에 저만치 허궁 나가떨어졌다.

《아이구, 이놈의 연어!》 창길이가 피멍이 든 팔굽을 어루쓸며 멀리서부터 으름장을 놓았다. 《내 오늘 네놈을 통채루 삶아먹을테다! 아니 아니, 각을 떠서 구워먹을테다!···》

각이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맘껏 터치는 너털웃음··· 유진은 혼자 가만히 생각에 잠기고있었다. 진정 대자연이란 얼마나 신비로운가?··· 알낳이철이 오면 제가 태여난 강을 기어이 찾아가 거기서 알을 낳고 죽어버린다는 태평양연어··· 그것이 저리도 크게, 문짝만큼 자랄 정도였으니 아직 한번도 자기가 태여난 고향으로 올라가 알을 낳아보지 않았던것일가?··· 그것이 과연 대자연의 엄정한 법칙도 감히 어기고 여태 바다에 숨어살아온 특대형범죄자였단 말일가?··· 아니면 그놈도 역시 제가 난 강으로 올라가 알을 낳긴 했지만 남들과는 달리 유유히 바다로 되돌아온것일가? 과연 그럴수도 있을가?··· 흔히 해양생물학자들은 대서양의 연어들은 알을 낳고도 바다로 되돌아가지만 태평양의 연어들만은 바다로 되돌아가지 못한다고 장담하고있지 않는가?!···

그러나 오래 생각할 새가 없었다. 류운환이 예언한것처럼 대규모의 청어떼가 밀려왔던것이다. 갑판우에서 사람들이 벅작 떠들며 뛰여다니기 시작했다. 째는듯 한 호각소리, 구령소리, 자망을 치는 어기영소리··· 그처럼 놀랍게 바라보던 연어도 까맣게 잊고말았다. 강창길이 저혼자 끙끙 끌고가려 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뜨랄선이 청어잡이를 할 때엔 보통 15~20대의 자망을 친다. 자망 한대에 한톤씩 걸리는데 그것을 끌어내고 털어내는것 또한 무던히도 고된 어로작업이다.

드디여 유명한 《마가단춤》이 시작되였다. 저 멀리 아득하게 바라보이는 륙지가 바로 쏘련의 극동지역 마가단주였으므로 그 이름을 따서 붙인 춤이름이다.

《엿―싸!―》

지금은 박유진이 선소리를 먹인다. 그러면 열다섯명의 어로공들이 하나같이 털개기구에 매달아놓은 그물을 힘껏 잡아다리며 털어댄다.

《어얏―싸아!―》

바다의 도리깨질이라 할가.··· 그러면 자망에 걸려있던 청어들이 후두둑후두둑··· 떨어져내리는데 그물코에 걸려있는 청어들을 털어내는 이 어로작업이 바로 《마가단춤》이다. 자망의 길이가 보통 30메터정도 되므로 열다섯명은 서서 털어야 하는데 그중 누구든 한사람이라도 꾀를 쓰면 춤의 률동이 파괴된다. 고유한 리듬에서 벗어난 그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사람들이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것이다.

박유진이 또 선소리를 먹인다.

《엿―싸!―》

나머지사람들이 큰숨을 내불고 힘껏 그물을 당기며 각이한 목청으로 화음을 맞춘다. 대구나 횟대어, 가재미나 명태와는 달리 류달리 기름기가 많은 물고기여서 여느때엔 청어라 하면 진저리를 치던 어로공들도 그것을 털어대는 《마가단춤》만은 어쩔수없이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며 하나같이 률동을 맞추고있다.

《어얏―싸아!―》

그물을 터는 그들의 얼굴은 누가 누구인지 가려보기 어렵다. 그물코에서 벗겨져 떨어지는 물고기들이 얼굴을 후려치고 피를 뿌리므로 모두가 피투성이이다. 끔찍하게 불성모양이 된 사람들이지만 미친 사람들모양의 이 괴이한 춤률동만은 멈추지 않는다.

머리우에서는 무수한 갈매기와 꽉새들이 무리지어 날아옌다. 일제히 물속으로 내리꽂히고는 어느새 입에 물고기를 물고 날아오른다. 바다새들이 물고있는 물고기들이 세차게 푸들쩍거린다. 넘치는 기쁨이 춤추고있다. 파도우에서 회오리치는 물새들의 일대 륜무!···

갑판에서는 구리빛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에 잔뜩 피칠갑을 한 사나이들이 터갈린 거쉰 목소리로 그에 화답하고있다.

《엿―싸!―》

《어얏―싸아!―》

진정 이 특이한 정경이야말로 여기서만 볼수 있는 바다의 대원무, 대발레라고도 할수 있지 않을가?··· 한순간 유진이 머리속에 펀뜩인 생각이였다. 비록 한방향으로만 그물을 잡아당기며 마구 흔들고 털어대는 극히 단순한 반복동작에 불과하지만 여기에도 리듬과 박자가 있고 신바람나는 로동의 률동과 가락이 있는것이다.

그때 누군가 그를 소리쳐불렀다.

《유진형!―》

무슨 일인지 강창길이 또 달려오고있다. 갑판우에 고기비늘과 터진 밸들이 너저분했으므로 조심스러우나 무척 재빠른 동작으로 미끄러져온다.

《형님―》 어느새 창길은 박유진을 밀어내고 대신 그 자리에 들어섰다. 춤의 리듬과 박자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선장동지가 찾소. 빨리 가보오.》

《엿―싸!―》

이번엔 강창길이 챙챙한 목소리로 선소리를 먹인다.

《어얏―싸아!―》

조타실로 가니 김태규선장은 눈시울과 귀언저리까지 벌거우리 해져있었다. 장태렬부선장과 무엇인가 의논하고있는데 한손에는 손바닥길이만 한 보라색의 병이 들려있었다.

유진은 무춤 멎어섰다. 그러니 선장동무가 술을?!··· 웬일인지 한걸음도 더 내짚을수 없었다. 문득 포수 권영길이 웃으며 하던 말이 떠올랐다.

《배놈들 술도적질 귀신같이 하오. 한배 가득 싣고와도 한달을 못채우거던. 그래서 지금두 저 도람통마다 탁배기를 담그고있지 않소.》

다음순간 귀전을 울린것은 장태렬부선장이 하던 말이다.

《뭍에서 사는 사람들은 우리 배군들이 술에 취해서 밤낮 쌈질이나 하구 그러다 죽는 놈두 있다구 한다는데··· 그건 다 모르고 허는 소리요. 술고래들이긴 해도 쌈질을 하거나 너무 취해서 바다에 떨어져 죽은 놈은 아직 하나두 없소. 이제 두구 보오. 배사람들만큼 정과 의리가 뜨겁구 군대처럼 하나의 구령에 따라 움직이는 그런 사람들은 아마 세상 그 어디에두 없을거요.》

비로소 유진은 기관지염이 심해 기침을 련발하던 태규선장을 상기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유명한 바다의 영웅호걸인 태규선장이 술을 한모금도 마시지 못한다는것이였다. 누가 말했던가? 그래, 그것도 강창길 그녀석이 귀띔하던 말이다, 사포솔만 먹어도 얼굴이 새빨개진다고.···

마침 태규선장이 무슨 기척을 느꼈는지 눈길을 돌렸다.

《유진동무요? 아니, 얼굴에 묻은거나 좀 닦구서 올것이지 원!···》

그는 유진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고는 다시 머리를 뒤로 젖히고 보라색병을 기울이였다. 강창길이 말하던 사포솔이였다.

유진은 후― 하고 한숨을 내불었다. 이어 고깔모자를 벗어서 대충 피칠갑이 된 자기의 얼굴을 문질렀다.

《이보우, 편지가 왔소.》

마침내 선장이 말했다. 성이 난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른데다가 잔뜩 찌프린 얼굴이였다.

《여기서 읽어보우, 할말이 더 있으니까.》

유진은 봉투를 쥐는 순간 그것이 사랑하는 안해 혜영이가 쓴 편지임을 알았다. 가슴이 후두둑했다. 몇달만에 맡는 안해의 체취, 귀전에 울려오는 애절한 목소리에 눈굽이 저릿저릿해났다. 장인인 건축가 리웅산에 대한 감동깊은 사연이 자세히 씌여있었다. 군데군데 눈물자욱이 그대로 남아있는 편지··· 가슴이 얼얼했다.

《다 봤소?》

그가 편지를 다 읽기를 기다리던 태규선장이 묻는 말이였다.

《예.》

《그것 보우. 편지를 보더니 눈이 벌개지는걸. 마침 됐구만. 빨리 교대하구 돌아가오.》

《아닙니다. 난···》

《정 그러겠소? 오늘도 사업소당위원회에선 동무를 교대시키지 않았다구 이 선장한테 막 야단이요. 이보 유진동무, 그래두 그냥 고집을 부리면 난 어쩌라는거요, 응?··· 래일 련락선이 떠나는데 그편으루 돌아가오. 이 기회에 평양에 가서 집사람이랑 딸자식이랑 만나봐야 하지 않소.》

귀밑에까지 수북하게 자란 그의 구레나룻이 경련적으로 실룩거리고있었다.

유진은 태연히 말했다.

《선장동무, 평양이야 몇달전에 갔다오지 않았습니까. 일없습니다. 다들 생각해주는건 고맙지만···》

《무슨 말이 그리 많소, 에?!··· 그래, 한번 더 고래포투승에다 태워 바다에 집어던져야 알겠소?》

유진은 쓰겁게 웃으며 그만 고개를 돌리고말았다.

《가만.》 김태규가 장태렬부선장에게 소리쳤다. 《아까 선대에서 온 무선에 뭐랬더라?··· 무슨 유태인녀자소리도 있지 않았소?》

장태렬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예, 무슨 아다 뭐라구 하는 유태인녀자가 뭘 보냈다던지···》

《아다?!···》

박유진은 불현듯 낯색이 질렸다. 그 녀자는 왜 또 여기까지 따라오며 말썽인가?···

《그것 보오.》 태규선장이 사납게 눈을 흘겼다. 《내가 뭐 없는 소릴 했소? 무슨 일인지 사업소당위원회에선 동물 당장 들여보내지 않으면 이 김태규의 가죽이라도 벗길것처럼 막 야단이요.》

《?···》

박유진은 아무 말도 못했다, 잔등을 훑어내리는 심한 오한에 으시시 몸을 떨고있을뿐. 부지중 매부 장정환의 엄한 눈매가 떠올랐다.

태규선장이 그를 미심쩍은 눈길로 여겨보았다.

《왜 그러오?》

《아, 아닙니다.》

《가서 좀 쉬오. 인젠 동무 몸에서두 물고기비린내가 물씬물씬 나는데 뭣때메 교대두 마다하오? 누가 뭐라구 할가봐? 아니, 딴생각 마오. 인젠 동무 속내까지 다 알고있소.》

장태렬부선장도 한마디 했다.

《정말이요. 유진동무야 인젠 우리나 진배없는 배사람이지.》

유진은 끝까지 우기고싶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난···》

태규선장이 손을 홱 내저었다.

《됐소. 어서 가서 채빌 하오. 이제부터 대휴를 받은셈 치고 푹 쉬오, 저녁엔 〈백두산〉호에 올라가 영화두 실컷 보구. 듣자니 새로 나온 〈한 지대장의 이야기〉두 왔다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