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13

책제목:운명
 
 

제 3 장

13

 

혜산―평양행 급행렬차는 정시로 평양역구내에 들어섰다. 어슬무렵이였다. 어느새 역홈은 기차에서 내린 손님들로 붐비고있었다.

하지만 리웅산은 서둘지 않았다. 크지 않은 밤색트렁크를 옆구리에 꼭 낀채 손님들의 맨 뒤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역구내를 나서니 벌써 가로등들이 켜지고있었다. 수많은 차들이 오고가며 전조등빛을 휘딱거렸다. 잠시 우두커니 서있던 리웅산은 뻐스정류소쪽으로 향했다.

웬일인지 마음이 어수선하고 번거로왔다. 얼마전까지는 혜산―평양행 기차에서 내릴 때마다 그를 기다리는 차와 운전사가 있었다.

그리고 내각에 들려 사업보고를 하고는 한시바삐 집에 가려고 서둘군 했었다. 허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집에는 늙으신 어머니 홀로 집을 지키고있다. 혼자서 한생에 품고있던 그토록 많은 간절한 희망과 기대, 마음속 시름을 한뜸한뜸 끝없이, 하염없이 상념의 뜨개바늘로 뜨고있을것이다.···

걸음이 점점 더 떠지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불치의 병을 앓다가 간 안해의 모습을 기억에 떠올리였다.

그는 진정 안해를 사랑했으나 그저 마음뿐이였다. 언제한번 병약한 안해를 극진히 위해준적이 없었다. 노상 일이 바쁘다는, 몸을 뺄새가 없다는 온당치 않은 구실때문이였다. 안해의 병이 급작스레 위독해졌을 때에야 정신없이 병원에 달려갔었다. 그러나 그때엔 벌써 너무 늦었었다. 안해는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피기까지 가셔진 안해의 창백한 얼굴에 내배고있는 퍼릿한 빛, 죽음의 그림자를 알아보고 그만 소스라치지 않을수 없었다.

안해는 자기의 남편조차 잘 알아보지 못하는듯싶었다. 아무 표정없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얼마후에야 별안간 입술의 귀재기를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오―셨―군―요.···》

그때 그는 안해의 그 말을 귀로 들었다기보다 가냘픈 그 입술의 놀림을 통해 겨우 알아보았다. 그 순간 그의 눈시울이 사뭇 실룩거렸다. 무엇인가 뜨거운것이 목구멍으로 욱― 치밀어오르는것을 느꼈던것이다.

《여보, 내가 그만···》

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숨소리도 거칠게 무너지듯 주저앉고말았다. 그러자 안해는 그의 손을 잡아 자기의 가슴우에 얹고 가만히 쓸어주었다.

《미―안―해요.···》

무엇이 미안하다는것인가?··· 목이 꺽 메였다. 말로는 다 표현할길 없는 사나이의 거쉰 통곡이 목구멍으로 끓어오르고있었다.

《여보!···》

곁에서 지켜보던 딸 혜영이가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버지! 왜 이제야 오셨어요. 엄마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기나 하세요?》

어머니가 나무라는듯 한 눈빛으로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으나 어느새 혜영은 어머니의 침대머리쪽으로 손을 쑥 들이밀더니 하얀 종이장을 꺼내였다.

《보세요, 아버지!···》 하고 혜영은 여전히 흐느낌소리처럼 부르짖고있었다. 《이건 엄마가 아버질 기다리면서··· 매일 들여다보던 사진이예요, 아버지사진!···》

《뭐?!···》

그는 얼결에 사진을 받아들었으나 그것은 들여다볼념도 하지 않았다. 보지 않고도 그것이 코가 뭉툭하고 이마가 벗어진 그 인정머리없는 못난이 리웅산 자기가 찍힌 보통의 흑백사진이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때 안해가 또 그의 손을 잡으며 바람새는 소리처럼 힘들게 속삭이였다.

《미―안―해요. 잘··· 도와드리지 모―못―하구···》

그만에야 그는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것 같은 모진 아픔을 견디여낼수 없었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무섭게 신음하였다.

《여보!···》

그는 마지막으로 안해에게 가슴저미는 회오와 뼈저린 자책과 한가닥 마음속의 진정을 담은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이 담긴 말 한마디라도 해주고싶었으나 웬일인지 그 말 한마디를 끝끝내 찾아내지 못하였다.

지금도 그때처럼 그는 허덕이였다. 눈앞이 흐려졌다. 눈망울을 때리는 자동차의 전조등빛마저 아프게, 따갑게 느껴졌다. 언제, 어떻게 집앞에까지 이르렀는지 알수 없었다. 열쇠를 돌리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문을 안으로 밀어보니 방마다 불이 환히 켜져있었다. 반가운 예감··· 아닐세라 딸 혜영이가 부엌에서 나오더니 깜짝 놀라는것이였다.

《아이, 아버지가?!··· 무슨 일로 이렇게 갑자기?!···》

《넌 어떻게 여기 와있니?》

본의아니게 조금 퉁명스럽게 내던진 반문이였다. 그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말코지로 다가갔다.

《?!···》

조용했다. 옷을 벗다말고 돌아보니 혜영이는 아버지의 트렁크를 든채 까딱하지 않고 서서 입술을 옥물고있었다. 그 애가 눈물을 씹고있는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생각나는것이 있었다. 얼마전 딸이 써보낸 편지의 사연이··· 그래, 박유진 그 사위녀석이 당정책과 어긋나는 엄중한 발언을 해서 되게 문제가 섰다고 했더랬지. 그런데도 이 애비라는건 딸의 신상에 닥친 불행도 돌아보지 않고있었으니··· 원망을 사게도 됐지. 애비구실도 못하는 바지저고리! 당장 급살을 맞아도 싸지, 싸!···

그는 속으로 모질게도 자기를 헐뜯고 비웃는것으로써 자기의 뒤틀어진 마음을 눅잦히려 했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그때 안방에서 묻는듯 한 시선으로 내다보는 늙으신 어머니가 눈에 띄자 그는 다시금 속이 께름해지는것을 느꼈다. 어언 80고개에 이르렀지만 귀도 밝고 눈도 밝아 언제든 자식들의 속마음까지 다 들여다보군 했던것이다.

《그새 몸성히 계셨어요, 어머니?···》

그러자 로모는 오무린 입술새로 한숨부터 내그었다.

《이 늙은건 한뉘 앓지도 않구 이렇게 거접하구있으니···》

그 다음말은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늙으신 어머니가 젊은 며느리를 앞세워 보낸 다음부터 버릇처럼 늘 탄식조로 외우는 말이였다.

리웅산은 서둘러 웃방으로 올라갔다. 얼마후 딸 혜영이가 개다리소반에 늦어진 저녁식사를 차려가지고 들어왔다. 할머니는 외손녀인 경애를 끼고 벌써 자리에 누웠다고 한다. 딸 혜영이가 술을 부었다.

리웅산이 놀라며 물었다.

《오늘따라 웬일이냐?》

《아버지.》 혜영이가 눈을 내리깔며 나직이 말했다. 《오늘이 바로 어머니제사날 아니나요. 그걸 잊으셨나요?··· 난 아버지가 그래서 우정 오셨다구요?···》

《?!···》

갑자기 명치끝이 쿡 쑤시였다. 어머니제사날이라구? 그래서 오늘따라 안해 생각이 그리도 간절했던것인가?···

《아버지, 어서 드세요.》

《응.》

술잔을 받아들자 속으로 안해의 명복을 빌며 단숨에 입안에 쏟아넣었다. 다음순간 뜨끈하고 예리한것이 가슴노리를 허비며 속으로 흘러내리는것을 느꼈다. 다음잔부터는 제손으로 직접 붓고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딸은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게 한잔 또 한잔··· 이윽토록 아무말없이 모가지가 긴 병을 절반이나 축내였다. 차츰 그의 목덜미까지 벌거우리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넌 지금두》 하고 그는 마침내 혜영이를 향해 거쉰 소리로 말하였다. 《이 아버질 원망하구있겠지?》

딸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아버지. 아버진 다 몰라요. 지금 아버진 몹시 약해지셨어요. 그리구 그전과 또 많이 달라지셨구요. 무엇때문인지는 몰라두··· 몹시 힘들어하구 괴로워하시는게 알려요.》

《그―래?》

그는 상우에 술잔을 내려놓고 딸의 얼굴에 눈길을 박았다. 이전과는 판다른 딸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얼마전까지 시집갈 나이가 되도록 어리광만 부리던 그 철없던 혜영이가 아니라 낯익은 한 젊은 녀인이 시름에 잠긴 눈빛으로 자기와 마주앉아있다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오늘 보니》 혜영이가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계속하는 말이였다. 《별스레 축가구 몹시 늙으셨어요. 어머니가 아마 지금처럼 아버지 축가시구 약해지신것을 보면··· 막 울거예요, 너무 가슴이 아파서···》

《응?···》

웬일인지 속이 덜덜 떨려나기 시작했다. 그새 축가구 늙은거야 사실이 아닌가?!··· 그는 추운듯 몸을 옹송그리며 한손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이 장판바닥을 허비기 시작했다.

딸이 상우의 술병을 치웠다.

《아버지, 인젠 새 어머닐 모셔와야지요? 》

《뭐?!》

《아버지, 나도 생각이 있어 하는 말이예요.》

딸을 쳐다보는 리웅산의 두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뜨아한 생각과 함께 어떤 께름한 의혹이 비낀 눈빛이였다.

《인젠 아버지곁에 새 엄마가 있어야 해요. 사실 이건 내가 할소린 아니지만 그래야···》

순간 리웅산은 손을 들어 딸의 말을 막는다는것이 그만 술잔을 상우에 엎지르고말았다.

《얘,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거니, 하필 오늘같은 날에?···》

《아니예요, 아버지!》 혜영이가 걸레로 상을 닦으며 아버지의 두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지금같이 몸도 마음도 약해지신 아버지한텐 새 어머니가 있어야 해요, 새 엄마가!···》

리웅산은 버럭 소리질렀다.

《네가 정말?!··· 도대체 네가 뭘 안다구 훈시질이야? 》

《아버지!》 딸 혜영이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건 사실 어머니가 한 말이예요. 돌아가신 우리 엄마의 마음이··· 바로 그랬단 말이예요.》

《뭐, 어머니가?···》

그는 별안간 눈보라를 들쓴듯 몸을 웅크리였다.

혜영이가 계속했다.

《엄만 그때 벌써 말했어요. 아버질 잘 돌봐드려야 한다구요. 그렇게 할수 있는건 이 딸도 아니구 할머니도 아니라면서··· 아버진 드세긴 하지만 너무도 심한 자존심때문에 상처를 입기 쉽다구, 그 자존심을 누가 살펴주구 막아주구 지켜주지 않으면 뚝 부러져나가던가 아니면 약해져서 골병이 든다구요. 그래서 아버지한텐 진실하구 정찬 사랑이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구··· 그렇게 말했어요. 우리 엄마가, 우리 엄마마음이 그런줄 그때 아버진 알기나 했어요? 예, 아버지?!···》

리웅산은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난 엄마가 한 그 말을 그땐 다 몰랐어요.》 딸이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금시 터지려는 오열을 삼키며 계속하는 말이였다.

《솔직히 그땐 그런걸 알려구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야 그것이 무슨 말인지 다 알게 되는것 같아요.》

《···》

그는 입을 열수가 없었다. 할말도 없었다. 몸보다도 먼저 마음이 비칠거렸다. 그는 버릇처럼 이마의 주름살을 아프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한손으로는 술잔을 찾느라고 방바닥을 더듬었다.

딸이 그의 손에 술잔을 쥐여주었다.

《응?!···》

그가 놀라는 눈길로 바라보았으나 혜영은 아무말없이 그 잔에 가득 술을 따랐다. 출렁이는 잔, 넘쳐나는 술··· 이게 웬일인가? 어째서 이리도 마음이 저려나는것인가?··· 그의 두볼로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한방울 또 한방울 술잔에 떨어져내렸다.

《아버지!》

혜영이 가늘게 부르짖었다.

리웅산은 눈물의 잔을 단숨에 비우고는 거쉰 소리로 흐느끼듯 부르짖었다.

《됐다. 그만해라, 제발!···》

그러자 혜영이도 더는 견딜수 없어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참고참아오던 오열을 터뜨렸다.

《엄마!··· 엄만 왜 우릴 버리구 그리두 일찍 가셨어요?!···》

그만에야 두사람, 아버지와 딸은 서로 이마를 맞찧으며 소리내여 울고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