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10

책제목:운명
 
 

제 3 장

10

 

김일이 탄 승용차는 강원도 통천에서부터 최고속으로 수도를 향해 달리고있었다. 수령님께서 부르시는것이다. 그것도 될수록 빨리 돌아오라는 지시였었다. 사실 국가적인 중대사가 아니고서는 그렇듯 급히 부르시지 않을것이다.

일매지게 늘어선 가로수들이 마치 달리기주로에라도 나선듯 량옆에서 쏜살같이 마주달려와서는 뒤로 휙휙 날아지나가군 했다. 바퀴밑에서는 쉴새없이 뽀얀 먼지타래가 구름처럼 피여올랐다. 소리없이 급격히 회오리치며 솟아오르는 먼지의 룡트림···

차안에서는 김일이 눈을 꾹 감고 괴롭게 신음하고있었다. 쉴새없이 이마우에 돋아나는 땀방울들을 곁에 앉은 담당간호원 홍이순이 수건으로 찍어내군 했다. 도담하고 야무진 간호원이였지만 손이 떨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속이 타들다못해 재가 앉는듯 했다. 수령님께서 내각 제1부수상을 급히 부르시는데 이렇듯 로상에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여 인사불성이 되고있으니··· 이럴 때 신성우박사가 없는것이 한스럽기 그지없었다. 김일이 한사코 그를 떼여놓고 왔던것이다.

홍이순은 피가 나도록 입술만 깨물고있었다. 그로서 할수 있는것은 이미 다 했었다. 신성우박사가 써준 처방대로 필요한 구급약도 쓰고 주사도 놓았다. 이제는 시간과 다투며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가는 차바퀴의 회전에 모든 희망과 기대를 걸수밖에 없었다.

그때 별안간 바퀴밑에서 아츠럽게 땅바닥을 허비는 소리가 나더니 차가 멎었다. 어느 산언덕의 외통길이였다.

《이건 또 뭐야?》 운전사가 증을 내였다. 《길을 막구 옆으로 돌아가라구?》

비로소 홍이순은 차앞에 위엄있게 완장을 팔에 끼고 호각을 물고있는 석줄배기사관과 빨간 령장을 단 전사들 둘이 서있는것을 보았다. 맨앞의 빨간 령장을 단 전사가 수기를 왼쪽옆구리로 쳐들고 오래전부터 쓰지 않던것이 분명한 낡은 길(마른 풀이 무성한)을 가리키고있었는데 그쪽엔 《돌아가시오.》라고 먹으로 약간 비뚤게 써놓은 표말뚝도 꽂혀있었다.

운전사가 빵―빵!― 위혁적으로 경적을 울렸으나 그들은 끄떡없었다. 홍이순이 차창을 열고 머리를 쑥 내밀었다.

《왜 그래요? 왜 길을 차단하는거예요?》

석줄배기군인이 입에 물고있던 호각을 뽑았다.

《군사비밀입니다.》

《이 차엔 위급한 환자가 타고있어요. 빨리 비키세요.》

《안됩니다.》

《여기에 누가 타고있는지 알기나 하세요?》

《모릅니다.》

완장을 낀 사관은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았다. 오직 명령에만 절대복종하는데 습관되여서인지 마치 쇠돈이라도 찍어내듯 딱딱한 토막말만을 내뱉군 했다.

홍이순이 또 맵짜게 소리쳤다.

《동무네 상관이 누굽니까. 상관을 불러주세요.》

《안됩니다.》

《왜 안된다는거예요?》

처녀의 목소리가 더 날카로와졌다. 상대방도 어성을 높였다.

《우린 상동지의 명령을 집행하는중입니다.》

《상동지요? 무슨 상?···》

《보위상동집니다.》

홍이순은 승용차의 문짝을 활 열어제꼈다.

《여기엔 내각 제1부수상 김일동지가 타고계셔요. 그런데 지금 매우 병세가 위급합니다, 알겠어요?》

《···》

돌연 사관의 두눈이 배로 커졌다. 빨간 령장을 단 전사의 손에서도 시계바늘처럼 옆으로 난 길을 곧추 가리키던 수기가 저절로 떨어져내렸다. 비로소 그들은 당황하여 입을 벌리고 차안을 흘끔흘끔 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새 운전사는 차를 앞으로 내몰고있었다. 홍이순은 차의 문짝을 열어젖힌채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비키세요!》

후닥닥 옆으로 물러서는 군인들··· 홍이순은 그들가운데서도 먼저 사관이 날래게 차안을 향하여 아주 멋지게 거수경례를 붙이는것을 보았다. 그도 실은 날파람있는 멋쟁이사관임에 틀림없었다.

홍이순은 문짝을 닫고 김일의 곁으로 바싹 붙어앉으며 거쉰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김일은 여전히 혼수상태였다. 괴롭게 헐떡이는 숨소리를 듣고있느라니 처녀는 그만 눈물이 나는것을 견딜수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총소리가 울렸다. 한방, 두방 또 한방··· 홍이순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옆창으로 머리를 홱 돌렸다. 그러나 길 량옆은 울창한 수림뿐이였다.

《웬··· 총―소리야?》

이렇게 물은것은 김일이였다.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그가 총소리를 듣자 의식을 차렸던것이다.

《아이, 1부수상동지! 인젠 의식을 차···》

《무슨 총소리인가 묻지 않아?》

이번엔 좀 더 또렷해진 목소리였다.

《아이, 전 잘··· 모르겠습니다.》

《음··· 분명 도이췰란드제 쌍대배기렵총소리였는데···》

놀라운 일이였다. 일찍부터 총과 인연을 맺고 살아온 항일의 로장이 달랐다. 총소리에도 각기 자기의 고유한 음색이 있다는것 그리고 총과 함께 한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헤아릴수없이 많은 갖가지 크고작은 총소리마저 친자식들의 목소리처럼 일일이 분명히 가려듣는다는것을 홍이순은 처음 깨닫게 되였다.

그 순간 차가 다시 멎어섰다. 저 앞쪽에 많은 차들이 길을 막고있는것이 내다보였다. 숲속으로 갈라져 들어가는 길목에서 땅!― 하고 다시금 총소리가 울렸다.

김일이 두눈을 부릅떴다. 심한 경련으로 실룩거리는 얼굴을 가까스로 차창쪽에 가져갔다. 잠시후 김창봉이 차의 차창을 열고 숲속으로 렵총을 겨누고있는것이 보였다. 다시 울리는 총소리. 숱한 사람들이 왁왁 고함을 치며 뛰여다니고있었다.

그때 누군가 김창봉에게 달려가 뭐라고 보고하는것이 내다보였다. 김창봉은 꿈쩍 놀란듯 렵총을 내리고 이쪽으로 피끗 머리를 돌렸다. 그에게 보고한 사람이 아마 내각 제1부수상의 차를 알아보고 대준 모양이였다. 김창봉이 얼른 차에서 내리더니 이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김일동지.》

《···》

김일은 입을 열수가 없었다. 여전히 두눈을 부릅뜨고 무서운 고통을 참느라고 모지름을 쓰고있을뿐··· 그러자 모진 고통이 력력히 내배인 그의 얼굴을 살펴보던 김창봉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데 편치 않으십니까, 제1부수상동지?》

《···》

김일의 낯색은 거뭇하니 죽어있었다. 조각상처럼 까딱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를 대신하여 여돌진 홍이순이 담당간호원의 책임을 자각하고 이렇게 말해주었다.

《상동지, 지금 제1부수상동진 대단히 위급합니다. 그러니 빨리 길을···》

《아, 그렇소?》

김창봉이 소리쳤다. 금시 발밑에서 지진이라도 인것처럼 뒤로 후닥닥 물러서며 부르짖는 소리였다. 다음순간 그는 몸을 홱 돌리더니 저쪽을 향해 손짓했다. 빨리 길을 열라는 신호같았다. 그러자 그쪽의 승용차들이 부릉부릉 발동을 걸더니 앞으로 뒤로 움씰움씰하기 시작했다. 다급히 길을 내려고 산자드락에 코를 들이박는것이였다. 김일의 승용차는 그 차들의 뒤쪽으로 천천히 움직여갔다.

《안녕히 가십시오, 제1부수상동지.》하고 김창봉이 차창안을 기웃이 들여다보며 손을 올려 거수경례를 했다. 《부디 치료를 잘 받으십시오.》

《···》

김일은 대답을 못했다. 말을 할수가 없었다.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모지름쓰고있었다. 급격히 달아오른 심장이 벼락치듯 무섭게 고동치고있었다.

《네 이놈! 지금이 어느땐데 민족보위상이라는 사람이 사냥놀이를 벌리구있어?··· 지금 미국놈들이 전쟁을 일으키려구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구있는데 사냥질이 다 뭔가, 엉? 지금은 사냥철도 아닌데 무슨 할짓이 없어 이따위 놀음을 벌려놓구있나 말이야?··· 그래 민족보위상이 뭐 타고난 벼슬자리인줄 알아? 수령님께서 그만큼 키워주시구 내세워주셨으면 천만분의 일이라두 보답할줄 알아야지. 그래 네놈이 수령님의 믿음을 내놓으면 한푼의 존재가치라도 있는줄 아느냐, 이놈?···》

허나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터쳐나온 고함소리였을뿐··· 어느새 차는 김창봉의 일행을 멀리 뒤에 남기고 속도를 높이였다. 김일은 혀를 깨물었다. 곱절로 더해지는 아픔을 참기가 어려웠다. 병세때문만도 아니였다. 지금 박금철과 김창봉이 제멋대로 놀아대며 물을 흐려놓고있는데 수령님을 제일 가까이에서 모시고있는 자기가 늘 질병에 묶이여 제구실을 못하고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가슴이 저려났다. (이후 김일은 수령님과 당을 배반한 박금철과 김창봉일파를 제거해버리는 력사적인 회의들에서 맨 선참으로 그자들을 준렬히 단죄하게 된다.)

김일은 승용차가 수도에 이를 때까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차의 뒤좌석에 바위처럼 꾹 박혀 거의나 까딱하지도 않고있었다.

···

수도에 도착하는 즉시 김일은 최재우 내각 제1사무국장이 일러주는대로 수령님집무실로 곧장 걸음을 옮겼다. 오늘 갑자기 병세가 도져 로상에서 무섭게 고생하던 일도 인제는 하나의 악몽으로만 남았다.

수령님을 만나뵈오러 가는 그의 걸음에 그 어떤 힘과 무게가 실려있는것을 지켜보면서 최재우는 별다른 생각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담당간호원인 홍이순이조차 오늘 있었던 일들이 정말 꿈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였던가싶어 머리를 기웃거릴 정도였다.

 

×

 

이날 밤 김일성동지께서는 윁남에 공군비행사들을 비롯한 여러 병종의 지원병을 파견하는 문제를 두고 당중앙위원회 정치국비상회의를 여시였다. 회의는 오래 계속되였다.

밤 10시, 회의가 끝난 다음에야 김일은 마음놓고 자리에 몸져누울수 있었다. 그림자처럼 묻어다니는 담당간호원 홍이순을 보고서는 누구에게도 절대 알리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특히 당중앙위원회 김정일동지께 보고드리는 날엔 자기옆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겠노라고 을러메였다.

그는 자기의 병세때문에 수령님께 근심만 드리는것때문에 늘 죄스러웠는데 이제 김정일동지께까지 아픔을 안기고싶지 않았다. 그것이 불치의 병이라 해도 그것만은 기어이 숨기고싶었다. 만약 그것이 죄다 알려지는 날이면 그는 병원침대에 묶이고말것이다. 매일 수술칼같이 차고 예리한 의사선생들이 그의 몸과 내장, 지어는 정신까지도 낱낱이 들여다보며 그 상태를 기록하고 그에 대하여 어김없이 보고드릴것이다. 결국 그는 한없이 자애로운 의학적관심속에서 고통스러운 생을, 치료이면서도 치료가 아닌, 삶이면서도 죽음인 여생을 동정과 련민의 의료감옥에 갇히워 서서히 말라죽게 될것이다!··· 이렇게 그는 생각하고있었다. 거의나 절망적인 생각이였다.

《그런데 간호원.》 김일은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듯 다시 처녀의 귀가에 입을 가져가며 힘들게 말했다. 《우리가 박사선생한테까지 숨길수야 없지 않나,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그러문야 별수 없지. 사실대로 알려줄수밖에, 응?··· 박사선생한테만··· 그것만 딱 허락해, 알겠지?》

마치 이 세상에서 홍이순이만 혼자 조용히 살아갈것을 허락하는듯 엄숙한 어조였다.

《알겠습니다, 제1부수상동지.》

홍이순은 애써 눈물을 감추며 대답했다.

김일은 도담하고 야무진 담당간호원까지 마침내 자기의 공모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였다.

그러나 처녀의 속생각은 달랐다. 김일이 아무리 내각 제1부수상이라고 해도 처녀의 가슴속 심금의 운전대까지 제 마음대로 잡아돌릴수는 없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