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1

책제목:운명
 
 

제 3 장

1

 

밤이였다. 내각 제1부수상 김일은 자기가 한주간동안이나 머무르고있던 룡성기계공장을 떠나 수도로 돌아가기 위하여 함흥철도국 지선에 서있는 차칸에 올랐다. 도수높은 안경을 낀 담당의사 신성우박사와 위생가방을 멘 간호원 홍이순이 그의 뒤를 따르고있었다. 그들 역시 지난 한주일동안 김일과 같이 룡성기계공장에서 침식을 했었다.

그새 김일 제1부수상이 하루에 서너시간밖에 자지 않았으므로 담당의사와 간호원도 현장에서 거의나 잠을 설친탓에 두눈이 충혈되고 부어있었다. 검질긴 그들을 쫓아버리지 못해 김일이 수단과 방법을 다했지만 허사였었다. 그들은 한사코 김일을 그림자처럼 묻어다녔다. 당중앙위원회 김정일동지께서 내각 제1부수상의 건강이 념려되시여 한시도 떨어지지 말고 돌보라고 친히 이르시였던것이다.

키가 늘씬한 렬차원처녀가 김일이 렬차에 오르자 맵시나게 거수경례를 했다.

김일은 손을 들어 답례하다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금시 승강대로 오르는 룡성기계공장의 지배인과 책임비서가 눈에 띄였던것이다.

《동무들은 뭐요?》 하고 김일이 언짢아했다. 《부지깽이도 뛰는 세월에 뭣때문에 역에까지 따라나오는거요?》

그새 내각 제1부수상과 퍼그나 친숙해진 지배인이 허물없이 웃으며 말했다.

《저··· 1부수상동지, 손님을 바래주는거야 조상전래의 례법이 아닙니까? 그런 법도야 잘 지켜야지요.》

《내가 무슨 손님인가? 그건 그렇구··· 우리가 무엇보다 잘 지켜야 할 법도가 뭔지 아직 모르고있는게 아니요?》

《아닙니다, 알고있습니다.》

여전히 비위살좋게 느물거리고있는 지배인을 마주보며 김일은 《헛참···》 하고 혀를 차고말았다. 이어 그는 피곤이 가득실린 눈두덩을 손으로 힘껏 문지르고나서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동무들도 우리 수령님께서 쎄브가 못되게 노는것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큰지 잘 알고있지 않소. 그러니 당앞에 맹세다진대로 황철의 랭간압연기와 강선의 중압연기를 꼭 제기일내에 만들어보내야 해. 그러면 수령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소. 언제든 이걸 잊지 마오.》

혈기방장한 지배인이 기세좋게 대답했다.

《제1부수상동지, 꼭 제기한내에 그것도 쎄브것보다 못하지 않게 잘 만들겠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책임비서가 정중하게 말했다.

《대신 우리가 부탁하고싶은건 1부수상동지의 건강때문에 우리 수령님께서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몹시 걱정하신다는데 부디 건강에 류의···》

김일은 손을 홱 내저었다.

《잘있소.》

렬차는 5월의 밤을 헤가르며 끝없이 질주해갔다. 창백한 달이 찢어진 구름장사이로 잠간 얼굴을 내밀고 차안을 들여다보더니 어느 결엔가 또 숨어버렸다.

김일은 사업수첩을 정리하다가 급기야 배를 그러쥐였다. 말썽많은 복통이 또 시작된것이였다. 무엇인가 내장을 잡아비틀고 힘껏 매달리는듯 했다.

힘들게 창문을 열었다. 모진 아픔에 뜨겁게 달아오르는 머리를 식히고싶었으나 오쓸한 밤공기와 함께 어느 강기슭의 물크러진 감탕내만 진하게 쓸어들었다. 그는 다시 창문을 닫았다. 침대로 돌아오는데 또다시 심한 동통이 복부에서 몸부림쳤다. 밸이 꼬이고 칼날로 창자를 도려내는듯 했다. 그는 한손으로 배를 그러안고 다른 손으로는 배허벅에 매고있던 군관용가죽혁띠를 풀었다. 아픔이 심할 때마다 그것을 더 힘껏 조이군 했었다. 비록 물리적인, 아주 무지막지한 강제적방법이긴 했지만 그렇게 하면 마음에도 좀 위안이 되는것이였다.

그때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는 그에 대답할수가 없었다. 이마우엔 어느새 진한 땀방울들이 송골송골 내돋고있었다.

마침 담당의사인 신성우박사와 간호원 홍이순이 안에서 아무 대답소리도 없자 급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니?!···》

비명과도 같은 간호원처녀의 부르짖음··· 김일은 그만 눈을 감고말았다. 이어 의사와 간호원이 바삐 서둘며 그를 침대에 눕히고 주사바늘을 련이어 찌르는동안 이를 악물고 가까스로 신음소리를 삼키였다. 주사를 놓으며 그의 이마의 땀을 수건으로 훔쳐주던 간호원이 속삭이듯 말했다.

《신음소리를 내십시오. 1부수상동지, 정 아플 땐 막 소리치는것도 약이 된답니다.》

그래서인지 악문 이새로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예, 좋습니다. 1부수상동지, 아주 좋습니다. 헌데 좀 더 크게 소릴 치십시오, 예? 그래야 아픔이 무서워 달아난답니다.》

모진 아픔속에서도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라기보다 아픔을 토하는 발작적인 기침소리 같은것이였다.

《보세요, 아픔이 달아나지요?》

대답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 응··· 처녀가 아주 요―용해.》

《간호원입니다. 그저 처녀가 아니구···》

《음― 그―그렇지.》

아픔이 조금씩 덜어지는듯 했다. 진통제주사가 온몸에 퍼지는것이 감각되였다. 옥죄이던 몸이 차츰 풀리기 시작하고 약냄새를 머금은 후더운 김이 입으로 흘러나왔다.

《이건 뭡니까?》

간호원이 눈을 흡뜨며 물었다. 배를 꽉 동여맨 군관용혁띠를 그제야 발견한듯 했다.

《치료기구.》

《예?!···》

《아픔을 묶어놓는 가죽띠요. 정 아플 땐 이렇게 꽈―악 묶어놓으면 그놈의 아픔이 꼬―꼼짝을 못하거던.》

《아니, 1부수상동지.》 하고 심각한 안색으로 맥을 짚고있던 신성우박사가 안경알을 번뜩이며 몸을 일으키더니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야만적〉인 병치료법을 도대체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뭐, 〈야만적〉이라구?!》 하고 김일은 진땀을 뽑으면서도 힘들게 말을 이었다. 《우린 산에서 싸울 때··· 약 한봉지 없구 주사기 같은건 생각두 못할 때··· 이런 방법이라도 써야만 했던거요, 박사선생!···》

신성우는 더 말을 못했다. 대신 김일의 배와 허리를 묶은 가죽혁띠를 풀려고 안깐힘을 썼으나 혼자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간호원까지 합세해서야 겨우 혁띠고리를 구멍에서 뽑아내였다. 아픔을 묶던 가죽띠, 그야말로 《야만적》인 치료기구였다!···

그때부터 담당의사와 간호원은 렬차가 수도에 도착할 때까지 김일의 차칸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평양역두에는 김일의 차가 나와 대기하고있었다. 차에 오르자 앞좌석에 앉은 신성우박사가 운전사에게 귀속말처럼 일렀다.

《먼저 병원으로 갑시다.》

김일이 펄쩍 뛰였다. 그가 하는 말을 귀동냥했던것이다. 아니면 입놀림으로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무슨 소리요? 난 먼저 내각에 가서 할일이 많소.》

신성우박사는 망설이였다. 그러나 김일의 옆에 자리잡은 담당간호원의 립장은 예상외로 그보다 더 견결하였다.

《제1부수상동지, 지금 여기서는 그가 누구이든 박사선생님의 지시에 전적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네가 뭘 안다구 그래?》 김일이 혀를 찼다. 《보자보자 하니까 이 체네가 정말?···》

《그저 체네가 아니라 담당간호원입니다, 내각 제1부수상동지.》

여간 당돌하기 짝이 없었다. 처녀가 야무지게 계속했다.

《그럼 우리도 당중앙위원회에 가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그대로 보고드릴수밖에 없군요. 그렇게 해도 좋겠습니까?》

김일은 말이 막혔다. 놀랍게도 어린 처녀가 요진통을 찌른것이다. 사실 바위같은 성미로 널리 알려진 그였지만 지금 죄꼬만 처녀앞에서 입이 얼어붙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김정일동지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지금 간호원처녀가 맵짜게 을러메고있는것처럼 김정일동지께 이들이 자신의 건강에 대하여 극히 과장하여 아주 험악한 상태에 이른것처럼 보고드리는 날이면 큰 변이 난다. 김정일동지이시야말로 혁명동지, 특히 혁명선배들의 건강문제와 관련된 일이라면 한치도 양보하지 않으며 무엇이든 일단 결심만 하면 하늘이 무너진대도 끝까지 내미시는것이다.

《운전사동지!》 처녀가 급히 말했다. 《뭘하세요, 빨리 떠나지 않구?》

기다렸던듯 차가 떠났다. 갖가지 불빛들이 반사되는 대통로를 미끄러지듯 달려나갔다. 그러면서도 운전사는 자주 묻는듯 한 눈길로 뒤를 돌아보군 했다. 《아니, 그럼 저 체네가 하자는대루 해야 합니까?》 하는 눈빛이였으나 김일은 못 본척 했다. 잠시후엔 간호원처녀를 흘겨보며 무뚝뚝하게 물었다.

《체네도 당원인가?》

《아니, 내각 제1부수상동지.》 처녀가 샐쭉하여 대답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내각 제1부수상동지의 담당간호원입니다.》

김일은 혀를 차지 않을수 없었다.

《좋아. 그럼··· 정식으로 묻는데 간호원동무도 당원이요?》

《아닙니다. 전··· 사로청원입니다.》

《뭐?》 김일은 어처구니가 없어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두 뭐 나한테··· 아니,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구 내각 제1부수상인 나한테 막 삿대질을 해? 그것두 감히 당중앙위원회까지 꺼들면서?···》

실은 처녀가 너무 대견하고 기특해서 우정 엄포를 놓아본것이였다. 하지만 처녀는 대바람 쑥 움츠러들고말았다. 몸을 잔뜩 옹송그리는데 그 눈망울엔 벌써 핑― 물기가 어리고있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느새 처녀의 목소리도 눈물에 젖어들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얼마나 당부하셨는지 아십니까. 내각 제1부수상동지의 건강에 대해선 전적으로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구 말입니다. 그 누가 뭐라구 하던 제1부수상동지의 건강문제를 놓고는 한치도 양보하지 말라구 하셨는데···》

《뭐?···》

김일은 눈굽이 저릿저릿해지는것을 느꼈다.

그는 평소에 눈물을 모르는 사람이다. 수많은 전우들을 땅에 묻으며 걸어온 혁명의 먼길에서 어느덧 눈물마저 다 말라버린듯 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남보다 더 많이, 더 아프게 울군 하는 그였다.

승용차는 어느새 내각청사를 가까이 하고있었다. 운전사가 다시금 뒤쪽을 피끗 돌아보았다.

김일이 말했다.

《이건 질서야. 난 먼저 수령님께 사업보고를 드려야 해.》

승용차가 속도를 높였다. 광장을 꿰지르며 어느새 내각청사정문앞으로 돌입하더니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급정거했다. 그러나 김일은 인차 차에서 내릴념을 안했다.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긴듯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채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서야 마침내 허리를 펴더니 누구에게라없이 이렇게 말했다.

《이 김일은··· 내각 제1부수상이기 전에 먼저 수령님의 전사란 말이요. 난 박사선생이나 간호원동무가 언제든 이걸 잊지 않기를 바라오.》

신성우와 홍이순은 잠자코 입을 다물고있었다. 그의 어조가 너무도 엄숙하게 들렸던것이다.

김일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낮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난 근래에 와서··· 정말 속이 타서 죽을 지경이요. 글쎄 누구보다 더 많은 일을 해서 수령님의 사업부담을 덜어드려야 할 내가 계속 앓다보니··· 수령님과 김정일동지께 근심만 드리구있으니··· 정말 못 견디겠소.》

그의 더부룩한 검은 눈섭이 바르르 떨리고있었다. 심중의 아픔때문인지 호흡도 거칠어졌다.

《그러니 박사선생 그리구 간호원동무, 이 김일을 많이 도와주오. 내가 너무 애만 멕인다구 생각지 말구 필요한 땐 단단히 신칙해주오. 그래서 내가 자리에 눕지만 않게 해주면 정말 고맙겠소. 이제 두구보시오. 내 꼭 당앞에 단단히 총화를 짓겠소. 그새 내가 김정일동지의 뜻을 받드는 동무들의 그 마음을 너무 몰라줬다구 말이요. 간호원, 어드래? 그렇게 하면 되겠지?···》

눈물젖은 처녀의 얼굴에 청사에서 내비친 불빛들이 어룽거리고있었다. 마치도 빛의 물결이 그 얼굴에서 춤추고있는듯···

《좋습니다.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고마워, 간호원.》

김일은 무엇이 고맙다는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제1부수상동지!》

처녀는 밝게, 정차게 웃고있었다.

김일도 소리내여 웃었다.

···다음날 김일은 혜산의 인민영웅탑건설사업소 지배인으로부터 뜻밖의 보고를 받았다. 알수 없는 원인으로 인민영웅탑건설이 중지되였다는 놀라운 소식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