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9

책제목:운명
 
 

제 2 장

9

 

봄빛이 무르녹는 한낮이였다. 쨋쨋한 해볕이 창유리에서 눈부신 빛으로 반사되군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타신 승용차는 푸르게 단장한 논벌을 끼고 달리고있었다.

뒤에서는 장정환의 군용차가 바투 따르고있었다. 주인도 없는 빈차··· 그이께서는 자신의 옆에 앉아 옹송그리고있는 장정환을 소리없는 웃음속에 스쳐보시였다.

떠나실 때 그와 나눈 담화가 상기되시였다. 급기야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온 장정환, 그는 너무도 벅찬 흥분을 감출수가 없어서 검붉어진 두볼을 움씰움씰 떨고있었다.

《장정환동무, 내가 오늘 동물 왜 부른것 같소?》

그이께서 물으시자 장정환은 급기야 몸을 움씰했다. 군대식으로 허리를 쭉 펴며 두두룩한 가슴을 풀떡거렸다.

《잘 모르겠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그럴테지··· 실은 내 동무와 좀 품을 놓고 얘길 나누고싶었는데 통 그럴 시간을 낼수가 없더구만. 그래서 나랑 같이 어데 좀 가보자는거요. 꾸바에 보내주기로 한 농기계설비들도 봐줄겸···》

《예?!···》

농기계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에서 복무하고있는 장정환에게는 실로 수수께끼같은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이께서 장정환의 팔소매를 잡으시였다.

《자, 나랑 같이 차를 타고가면서 얘기하기요.》

그이께서는 장정환을 자신의 차에로 이끄시였다.

《참, 동무의 처남되는 사람이 무역성에서 일을 본다구 했던것 같던데? 이름을··· 박유진이라구 하던가?》

《예, 그렇습니다. 수령님.》 장정환이 대바람 씨근거리며 대답올렸다. 《통이 썩구 속에 헛바람이 차있는 놈입니다. 제가 잘 교양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그이께서 또 웃으시였다. 《그래, 우리모두가 책임을 느껴야지. 새 세대들을 어떻게 키우는가 하는데 따라 조국의 미래가 결정되거던.》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해빛이 차창에서 어룽거리며 재롱을 부리듯이 들뛰였다. 이윽고 그이께서 신중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 처남의 일은 나도 관심하겠소. 당에서 제일 어려운 때 외국에 류학까지 보내서 키웠는데 비뚤어지지 않게 잘 바로잡아줘야지. 그건 나한테 맡기고··· 장정환동문 이제부터 새로운 임무를 하나 맡아줘야겠소.》

《예, 수령님! 명령만 주십시오.》

《명령?···》 그이께서는 처음으로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명령을 달란 말이지? 음― 동문 이제부터 꾸바대사로 사업해야겠소. 어제 토의가 있었소.》

《예?!···》

실로 뜻밖이였다. 검스레한 그의 얼굴근육이 사뭇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놀랄건 없소.》 하고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동무도 소식을 들어 잘 알겠지만 지난 5월초 꾸바의 관따나모기지에 있는 미제침략군놈들이 꾸바국경초소들에 도발적인 사격을 가하여 꾸바병사들을 살해하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소. 그래서 지금 꾸바는 계엄상태에 들어갔소. 지난 까리브해의 위기때와 같이 당장 전쟁이 터질수 있는 일촉즉발의 정세란 말이요. 그런데도 수정주의자들은 계속 미제와 타협하면서 투항주의로 나가고있으니··· 반제반미투쟁의 제1선에 우리가 나서지 않을수 없게 되였소.》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고 차창밖을 내다보시였다. 승용차는 강기슭을 달리고있었다. 해볕이 강물우에서 자글자글 흥떡이고 푸른 전야에서는 아지랑이가 눈이 시리도록 아물거렸다 . 하지만 그이께서 보시는것은 그런것이 아니였다.

《까리브해의 위기때부터》 하고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꾸바에 주재하고있던 많은 다른 나라 대사관들은 문을 닫아매고 배와 비행기를 타고 저마끔 제집으로 피난갔지만 우리 조선대사관만은 홍동철대사이하 전체 외교관들과 가족들까지 그대로 남아있었소. 뿐만아니라 꾸바사람들과 한전호에서 싸우려고 모두 총을 잡고 결사전을 준비하였소. 그때부터 꾸바사람들이 우릴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는지 모르오. 진심으로 꾸바와 어깨를 겯고 싸울 진짜전우는 조선사람들이라고 말이요. 그런데··· 갑자기 홍동철대사의 건강이 나빠져서··· 소환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소. 그래서 동무를 파견하기로 했지. 생각해보오, 이제 우리가 판문점에서 미국놈들과 코를 맞대고 싸우던 장령까지 대사로 보내주면 그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소. 그들의 투쟁에 큰 고무가 될거란 말이요.》

그이께서는 자신의 손을 장정환의 손우에 얹으시였다.

《인젠 왜 동무를 꾸바대사로 파견하기로 했는지 알만 하오?》

《예, 수령님. 말씀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장정환의 두두룩한 앞가슴이 줄곧 오르내리고있었다. 금시 전투장으로 달려나가는듯 벅찬 흥분에 못이겨 두툼한 입술새로 뜨거운 숨결을 내불고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리해할수 없는것은···》 하고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꾸바에서 체 게바라가 갑자기 종적없이 사라진것이요.》

《예?!···》

《자본주의세계의 통신들이 요즘 벅작 떠들어대고있소. 피델 까스뜨로형제가 그를 암살했다고 말이요. 》

장정환으로서는 여전히 아무 말씀도 올릴것이 없었다. 처음 듣는 소식이여서 그이의 다음말씀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승용차는 큰길에서 벗어나 논벌가운데로 난 길을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수령님께서는 차창밖을 묵묵히 내다보시며 다시금 혼자말씀처럼 뇌이시였다.

《아니, 그럴수 없어. 난 믿지 않아···》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체 게바라의 실종때문에 마음을 쓰시는것이였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였다. 돌연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그이께서 운전사에게 이르시였다.

《가만, 차를 좀더 천천히 몰라구.》

그이께서는 몸소 차창유리를 내리시였다. 장정환은 그이께서 차창너머의 벼포기들을 주의깊게 살피시는것을 보고 뜨아해했다. 그의 눈에는 그 벼포기들이 다른 논벌과 꼭같아보였던것이다.

그렇게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차를 세우오.》

차가 멎었다. 수령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더니 논두렁에로 가시여 허리를 굽히고 논판의 벼포기들을 좀더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차츰 그이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때 저앞에서 이쪽을 여겨보던 한 처녀가 별안간 머리수건을 벗어들고 정신없이 달려가는것이 보였다. 차에서 내리신 수령님을 알아뵙고 어데론가 정신없이 달려가는것이였다. 그 처녀가 무어라고 소리치고있었다. 수령님께서 지금 얼마나 마음이 무거우신지 알지도 못하고 파란 수건을 날리며 부르짖는 랑랑한 웨침소리··· 그러자 처녀가 달려가는 저쪽벌 한가운데서 하얀 수건을 쓴 중년의 녀인이 황황히 달려나오는것이 보였다.

장정환은 가슴을 조이며 수령님을 따라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승용차도 수령님께서 가시는 논두렁쪽으로 조금씩 움직여왔다.

그이께서 또 걸음을 멈추시였다. 잠시 아프신 눈길로 논판을 둘러보시더니 천천히 허리를 굽혀 논물에 손을 잠그시였다.

《물은 차지 않구만. 헌데 벼포기들이 왜 이렇게 누렇게 떠있을가?···》

《수령님!》

등뒤에서 울먹이는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이께서 머리를 돌려보시니 낯익은 청산리 녀성관리위원장이였다.

《수령님, 봄바람이 아직 찬데 그만 들어가시는것이 어떻습니까, 예? 수령님?!》

수령님께서는 잠자코 두손으로 벼포기들을 하나하나 헤쳐보시였다. 마침내 녀성관리위원장에게 머리를 돌리시였다.

《관리위원장, 왜 벼포기들이 다 이렇게 누렇게 떠있나, 엉?》

녀성관리위원장은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수령님, 우리 청산리는 대동강물을 퍼올려 관수하는데 이따금 바다물수위가 높아질 때마다···》

수령님께서 천천히 허리를 펴시였다.

《음, 그러니 만조때 대동강물을 퍼올려서 그 염기때문에 이렇게 벼가 못쓰게 된다는거지?》

《예, 그렇습니다. 수령님!》

《음···》

수령님께서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그이의 안색을 살피던 녀성관리위원장이 조심히 말씀드렸다.

《수령님, 이제 비만 많이 오면 일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령님께서 피끗 그에게로 눈길을 돌리시였다.

《비만 많이 오면 일없다구?···》 근엄하신 어조였다. 《그래 수리화를 끝낸게 언젠데 60년대 중반기인 오늘까지두 하늘을 쳐다보며 살아야겠나?···》

관리위원장이 또 머리를 떨구었다.옆에서 지켜보고있던 장정환도 그 어떤 죄스러운 마음때문에 숨이 막히고 답답해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때 무엇인가 결심하신듯 수령님께서 논뚝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시였다.

《자 관리위원장, 나와 같이 가자구.》

《예?!》

《한군데 가볼데가 있어.》

수령님께서 가시는 논뚝길로 녀성관리위원장과 부관은 물론 장정환이까지 급히 따라나섰다.

수령님께서는 이윽토록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속에 차가 달렸다. 이윽고 태성호에 이르러서야 차가 멎었다.

수령님께서는 해빛에 어룽이는 푸른 호수를 굽어보며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관리위원장, 이 태성호물에 염기만 없으면 청산리는 물론 강서지구 논벌은 다 살릴수 있어!》

《수령님!···》

관리위원장은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내려가보자구.》 수령님께서 먼저 뚝아래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이 태성호물을 떠보내서 당장 수질검사를 하게 하자구. 부관은 물통을 가져오라구.》

《예.》

호수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로왔다. 멀리 전망대쪽에 계단이 있었건만 수령님께서는 마음이 급하시였다.

저수지관리공들이 수령님을 알아뵙자 기쁨에 넘쳐 달려왔으나 근엄하신 그이의 표정에 그만 걸음을 멈추고말았다. 서로서로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깊이 머리숙여 인사를 올리였을뿐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무릎을 꿇고 저수지기슭에 앉으시였다. 이윽토록 출렁이는 물결을 둘러보시던 그이께서는 두손을 물에 잠그시더니 손을 모아 호수의 물을 뜨시였다. 순간 수령님을 우러르던 사람들이 그만 깜짝 놀라 얼굴이 사색이 되였다.

《아니, 수령님?!-》

《아, 수령님! 어쩌시려구?!》

《수령님! 그러시면 안됩니다!》

지금 수령님께서 손에 담아 떠올리신 호수의 물을 몸소 맛보고계시는것이 아닌가!··· 장정환은 그만 숨이 멎는듯 했다. 녀성관리위원장이 허둥거리며 그이께로 어푸러지듯 다가섰다.

《수령님, 왜 이러십니까. 이게··· 이게 어떤 물이기에 이런것까지 맛보십니까?···》

녀성관리위원장은 어느새 수령님의 손을 잡고 울음을 터치고있었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환한 미소를 담고계시였다.

《무슨 물이긴? 단물이요, 단물!··· 이 물엔 염기가 없어. 관리위원장, 이 물을 청산벌에 끌어갈 방법을 찾아보자구, 응?···》

《수령님!-》

뜨거운 격정을 이길수 없어 관리위원장은 수령님앞에 무너지듯 하며 울음을 터뜨리였다.

《수령님! 꼭 그렇게 하셔야만 합니까, 예?》

수령님께서 허리를 굽히고 관리위원장을 잡아일으키시였다.

《뭘 그러나. 이제 양수기로 물을 퍼올릴 대책만 세우면 되겠는데 울긴 왜?··· 기뻐해야지, 응?》

그이께서는 시종 밝게 웃고계시였다.

 

···꾸바에 보내줄 농기계설비문제때문에 떠나시였던 걸음이 도중에 많이 지체되였다. 승용차는 처음부터 고속으로 내달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오래 계속된 침묵끝에 드디여 수령님께서 장정환을 돌아보며 말씀하시였다.

《제때에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어쩔번 했소. 장정환동무, 우리가 경제국방병진로선을 처음 내놓을 때 제일 마음에 걸렸던것이 무엇인지 아오? 바로 인민생활문제였소. 오랜 세월 지지리도 못살던 우리 인민을 겨우 남부럽지 않게 살게 할만 하니까 또 미국놈들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니··· 정말 힘이 들었소.》

그이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나직이 뇌이시였다.

《그런데 이제 농사까지 잘 짓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장정환은 아무 말씀도 올릴수 없었다. 시종 가슴을 울리는 뜨거운 충격을 이길수 없어 저도 모르게 군복저고리의 단추만 정신없이 잡아비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