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5

책제목:운명
 
 

제 2 장

5

 

장정환은 전연부대에 나가있던중 급히 총정치국에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실은 한주일후에나 돌아갈 예정이였었는데···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한밤중에야 평양역에 내렸다. 운전사가 그를 태우고 외성동으로 차를 몰았다.

《이건 뭐요?》 하고 그는 놀라며 소리쳤다. 《여기야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부국장동지.》 운전사가 재빨리 말했다. 《전 부국장동질 집으로 모셔가라는 명령만 받았습니다.》

《뭐?···》

이상한 일이 아닐수 없다. 집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가? 설사 그렇다 해도 총정치국 부국장인 그를 집사정때문에 급히 소환할 까닭이야 없지 않는가?!

집에 들어서니 그를 맞아주는 안해의 거동이 이상했다. 출장갔다가 갑자기 집에 들어섰는데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웬일인지 남편과 눈이 마주치는것을 꺼리는듯 한 눈치였다. 남편이 벗어주는 장령모며 군복을 받아 말코지에 걸면서도 머리를 약간 외로 돌리고있었다.

《왜, 무슨 일이 있었소?》

《아니요.··· 참, 시장하시겠군요.》

안해는 말이 이어질가봐 겁내는듯 종종걸음으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보자 그는 이발이라도 쏘는듯 미간을 찡기였다.

《무슨 일이 있었나 말···》

저도 모르게 어성이 높아지자 그만 입을 다물고말았다. 어떤 경우이든 집안에서 안해에게 큰소리를 치는것을 그는 삼가했었다. 자식들앞에서 그 애들의 신성한 어머니를 호되게 꾸짖고 하찮게 깔보거나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그는 극도로 경멸하였다. 흔히 밖에 나가서는 대바른 소리 한마디 못하고 죽어지내는 바지저고리들이 집에 들어가서는 안해나 자식들에게 때없이 큰소리를 치고 주먹까지 휘두르군 하는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내다운 본때를 보이고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면서 한 가정을 지배하려는것이다.

미닫이문을 열어보니 애들은 모두 자고있었다. 순 남자애들만 넷이나 된다. 그 애들이 서로 발을 엇가로 지르고 담요까지 차던진채 골골 잠들어있다. 결국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긴것 같지는 않다. 하다면 상부에선 왜 이 장정환을 급히 소환해놓고는 집으로 가게 한것인가?···

그는 미닫이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아무말없이 눈에 띄게 파리해진 안해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늦어진 저녁식사를 차리던 안해가 그의 눈길을 견딜수 없는듯 머리를 들고 마주보았다.

《여보···》

그가 입을 열자 안해는 두손을 꼭 맞잡고 입술을 떨었다. 불시로 치밀어오르는 오열을 참을수 없는듯 했다. 금시 억눌린 흐느낌소리가 새여나오는 입을 손으로 막으며 안해는 속삭이였다.

《여보, 우리 유진이가 글쎄···》

《유진이가 어떻게 됐다는거요?》

《무슨 반동소릴 해서 되게 비판을 받았다나봐요. 》

《그래서?》

《그러다가 끝내 지방에 내려갔어요, 청진으루···》

《청진? 청진 어데?》

《청진수산사업소라던지···》

《엉?!···》 그는 어벙벙한 표정이였다. 《아니, 외국에 가서 공업대학을 나온 녀석을 수산사업소엔 왜 보낸다는거요? 룡성기계공장같은 곳이 더 맞춤할텐데?···》

《우에서도 다 생각이 있어 그랬겠지요.》

《응?···》

《됐어요, 괜히 그러다 싸우겠어요. 그런데 말이예요, 요즘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말이···》

안해는 혀를 깨무는듯 했다. 별안간 장정환이 두눈을 부릅떴던것이다.

《사람들이 뭐라 한다구?》

《유진이가 저지른 일이 글쎄··· 우리 수령님께까지 보고됐다지 않나요.》

《뭐?!···》 장정환은 불시로 가슴이 벌에 쏘인것처럼 뜨끔해나는것을 느꼈다. 《그게 정말이요? 엉?!···》

《글쎄 우리 집안에 반동분자가 생기다니···》 하고 안해는 목갈린 소리로 부르짖었다. 《이런 어망처망한 일이 생길줄이야 정말 어떻게 알았겠어요, 예?!···》

그는 끝내 숟갈을 놓고말았다. 분통이 터져 견딜수 없었다. 더더욱 그를 달아오르게 한것은 안해의 넉두리였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눈물이나 짜고있는 안해를 보기가 언짢았다.

《그깐 녀석, 콱 뒈지기나 할게지!》

순간 장정환은 입술을 깨물었다. 금시 자기가 뱉아놓은 말을 도로 입에 쓸어넣을수만 있다면 돌멩이라도 짓씹을것 같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아니, 당신이 어쩌문?!···》

안해가 입을 딱 벌렸다. 그는 한순간 안해의 새까만 눈동자가 커지고 그속에서 고통과 비애의 그림자가 얼씬거리는것을 보았다. 안해가 이처럼 불신에 찬 눈길로 차겁게, 못마땅하게 그리고 의심쩍게 자기를 바라본적이 여적 있어본것 같지 않았다.

목구멍이 타는듯 했다. 마치 불이 붙는 숯덩이를 삼킨듯 한 느낌이였다.

《됐소. 》 그는 타협조로 말했다. 《괜히 화가 난김에 그만··· 당신도 내 성미를 잘 알지 않소.》

《···》

안해는 이윽토록 입을 열지 않았다. 오랜 침묵을 견딜수 없어 다시 장정환이 물었다.

《헌데 여보, 총정치국에선 무슨 다른 련락이 없었소?》

그제서야 안해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아까 저녁때··· 전화로 알리기를 당신이 도착하면 그대로 푹 쉬고··· 래일 아침 일찌기 출근하면 된다더군요. 그런데 꼭 례복차림을 하라구···》

《례복?··· 아니, 그걸 왜 이제야 말하오?》

본의아니게 또 골살을 찌프리지 않을수 없었다. 안해는 머리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오늘처럼 때없이 증을 내는 남편을 보지 못했으므로 무척 놀라는 표정이였다.

《례복은 다려놨어요.》

안해의 떨리는 목소리에 장정환은 다시금 속이 언짢아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여보, 너무 속썩이지 말라구 하는 소리요. 사실은 나한테 잘못이 더 많소.》

그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엽초를 꺼내여 말았다. 지나친 흥분때문에 성냥개비를 세번씩이나 부러뜨리고서야 겨우 불을 달았다.

《녀석이 서양향수내에 잔뜩 물젖어있었어. 그런걸 내가 제때에 홍달구지 못했거던.》

《아니,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선 무슨 소용있어요?》

안해는 극심한 정신적불안때문인지 병자같이 창백했다.

《난 이 일이 당신한테까지 그늘을 지우게 될가봐 걱정이예요.》

《쓸데없는 소리!》 장정환은 겨우 한두모금 빨다 만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껐다. 《어쨌든 나나 당신이나 유진이 일루 책임을 져야 하는건 당연한거지. 헌데 유진이 그녀석이 언제 내려갔다구?》

《사흘전에요.》

《혼자?》

《예, 혜영인 오늘 아침차로 갔구요. 혜영인 내가 보냈어요, 집에 앉아 울지만 말고 따라가서 남편이 자리잡는걸 봐주라고요.》

《잘했소.》

장정환은 닁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퍼르죽죽했다. 번거로운 마음때문에 이마언저리를 파고 지나간 굵은 주름살들이 꿈틀거리군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