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18

책제목:운명
 
 

제 2 장

18

 

그것은 지난해인 1965년 4월 까리브해에서 있은 일이다. 갓 조직된 꾸바해군의 경비함 한척이 구름같은 안개속을 헤치며 물결을 헤가르는데 아돌프 메나 꼰쌀레스라는 우루과이국적의 려권을 가지고있는 체 게바라가 거기에 타고있었다. 그는 배의 조타실밖에서 전지불로 지도를 들여다보군 하였다.

전지불이 안개발을 헤치며 지도의 한 점을 더듬었다. 이제 그의 일행이 올라야 할 바다기슭이다. 그때 체의 일행(모두 17명)을 무사히 안내할 임무를 맡은 대위가, 꾸바의 전형적인 올리브색군복을 입은 키다리사나이가 조타실에서 나왔다.

《아돌프선생.》 대위가 말했다. 《선생은 왜 여기 어두운데 나와계십니까? 무슨 비밀때문이라면···》

체는 자기처럼 키가 크고 구레나룻까지 수북한 그에게 피끗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물론 비밀의 항해이라는것을 안내원인 그가 모를리 없다. 그러나 지금 아메리카국가기구(OEA)의 특파원으로 변장하고있는 이 선생이 바로 유명한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 데 라 쎄르나라는 빨래줄같이 긴 이름을 가진 꾸바혁명군의 한 사령관이였다는것은 짐작도 못할것이다. 그에 대하여 알고있는것은 지금 꾸바혁명지도부내에도 단 몇사람뿐인것이다.

《비밀은 묻지 않는 법이지.》

《좋습니다. 아돌프선생, 어쨌든 제가 선생의 일행을 무사히 가닿도록 하겠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결과를 보구서 표창을 하든지 처벌을 내리든지 하겠소.》

《아, 아돌프선생! 혁명전에 난 배군이였답니다. 바로 이 해구에서 고기를 잡군 했지요.》

《대위는 그 말을 벌써 세번째 하고있소. 》

《한마디만 더 하게 해주십시오, 아돌프선생!》

《뭐요?》

《선생의 시중군들이 짐건사를 잘 못하고있습니다. 폭약상자에 터진 봉지가 있는것 같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오?》

《냄새를 맡았습니다, 아돌프선생!》

체는 버릇처럼 코를 흥흥 울렸다. 어데선가 본적이 있는것 같은 사람··· 체는 이 대위가 왜 지꿎게 말을 거는지 의심스러웠다.

《좋소, 내 가보겠소.》

대위의 말대로 폭약상자안에 가득 들어찬 봉지들중 하나가 찢어져있었다. 체는 대오책임자를 추궁하고 당장 시정하게 하였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안내를 맡은 대위는 조타실에 들어가있었다. 체가 나타나자 호기심많은 그가 또 물었다.

《선생은 무기장사군입니까? 헌데 뭍에 오르면 그 많은 무기와 탄약을 어떻게 실어나릅니까?》

체는 골을 내지 않을수 없었다.

《대위, 너무 호기심이 많구만. 동문 우릴 약속한 장소까지 안내해주면 되오.》

《예, 옳습니다. 그렇지만 한마디만 더 들어주십시오.》

《뭐요?》

《저 책상자는 왜 따로 건사하지 않습니까?··· 그거야 비밀이 아닐텐데···》

놀라운 일이였다. 그가 책상자까지 냄새로 알아낼수는 없는것이다. 거기엔 유격활동에 필요한 갖가지 참고서들과 여러 나라의 혁명투쟁력사며 특히 조선에서 가져온 김일성동지의 로작들과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들이 들어있었다.

체가 어성을 높였다.

《대위, 동문 명령받은대로만 움직이는 군인이 아닌가. 헌데 동무의 귀속엔 호기심구멍들이 벌둥지보다 더 많단 말이요.》

《알겠습니다, 선생!》

《뭘 알겠다는거요?》

《몰라야 할 땐 절대 몰라야 한다는걸 인젠 잘 알겠단 말입니다. 에르네스또 데 라 쎄르나동지!》

체는 그만 굳어지고말았다. 에르네스또 데 라 쎄르나는 그가 씨에라 마에스뜨라산에서 혁명군의 사령관으로 활동할 때 널리 사용하던 이름이다.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 데 라 쎄르나라는 긴 이름에서 체 게바라를 빼고 사용했었다.

한순간 그가 손에 쥐고있던 라틴아메리카지도가 파르르 떨리더니 그만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체는 그에 개의치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여전히 히물거리고있는 대위에게 눈총을 쏘았다. 계기판의 파아란 불빛들로 하여 그의 두눈도 파랗게 번득이였다.

《동문 누구요?》

속삭이는듯 한 물음이였다. 몇발자국을 사이에 두고 함장과 조타수가 있기때문이였다.

《옛, 저는 한때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 데 라 쎄르나사령관동지 휘하에서 싸운 일이 있습니다. 제4지대의 돌격대장이였던 대위 싼체스 로돌포!···》

《뭐?!···》

다음순간 체의 입귀가 천천히 버그러졌다. 입을 벌리고 소리없는 웃음을 한껏 내불고는 억센 두팔로 싼체스를 끌어안았다. 저쪽에서 함장과 조타수가 놀라서 쳐다보는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싼체스!》

충동적인 체의 눈에서는 벌써 눈물이 번뜩이고있었다.

얼마만인가? 거의 10년전인 1957년에 있은 일이였다. 그때 씨에라 마에스뜨라산속에서는 새해를 맞으며 수도 아바나의 한 감옥에 갇혀 마지막나날을 보내고있던 혁명동지 프랑크 빠이스에게 보내는 신년축하와 감사의 편지를 써보내기로 하였다. 편지원문은 사령관인 피델 까스뜨로가 쓰고 마지막으로 수표를 할줄 아는 유격대의 모든 군관, 지휘성원들이 자기 이름과 직무를 거기에 써넣었다.

체가 자기 이름을 쓰고 직무란으로 펜을 옮기는데 옆에서 지켜보고있던 피델이 말했다.

《사령관이라고 적으시오.》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당시 씨에라 마에스뜨라에 웅거한 유격대에는 피델만이 유일한 사령관이였었다.

체가 영문을 알수 없어 머뭇하는데 피델이 손수 자기의 군복저고리 웃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더니 《제2부대 사령관 소좌》라고 써넣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체는 비공식적으로, 거의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새로 조직된 제2부대의 사령관, 소좌로 되였다. 그 임명의 상징으로 자그마한 별 하나와 금빛이 나는 고급손목시계가 수여되였다.

피델의 명령으로 그 손목시계를 만싸닐료의 호텔상점에까지 가서 사온 사람이 바로 싼체스라고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생명을 내대고 사온 시계였다. 도시에서 산으로 돌아올 때 적들과 조우하여 한쪽귀바퀴가 뭉청 잘려나간 그였다. 하여 머리 한쪽을 붕대로 두텁게 감고있던 그가 직접 체에게 그 시계를 채워주었다. 이후 그는 한때 체가 지휘하는 제4지대의 돌격대장으로 싸운 일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을 잊고있었다.

《싼체스, 그간 어떻게 지냈소? 몸은 성하오? 동문 몸에 파편이 세개씩이나 박혀있다고 들었는데··· 그걸 꺼냈소? 그런데 왜 한번도 나를 찾지 않았소? 응? 편진 왜 안하구? 수염은 언제 이렇게 길렀소? 그전엔 이런게 없지 않았소, 응?···》

질문의 련발사격, 싼체스는 웃기만 했다.

《왜 말을 안하오, 응?》

《어디 말할 짬이나 주었습니까?》

《아, 그럼 말해보우. 왜 그새 한번두 소식을 보내지 않았소?》

《당신이야 당중앙정치국 위원, 내각의 상동지 그리구 꾸바혁명군의 한 사령관동지가 아닙니까. 게다가 온 세상을 다 돌아다니는데 저같은게 감히 무슨 소식을 어디에다 전한단 말입니까?》

《내가 잘못한게 많소.》 하고 체는 한껏 숨을 내불며 크게 웃었다. 《어느새 관료주의자가 되였거던, 나리님행세를 하면서.···》

싼체스도 눈이 보이지 않게 웃고있었다.

《그럼 이제라두 씨에라 마에스뜨라산에서처럼 제게 명령을 주십시오. 〈어제날 제4지대의 돌격대장 싼체스 로돌포를 오늘부터 나의 국제주의적유격대 제1지대장으로 임명한다!〉 하고 말입니다.》

체는 대번에 낯색이 질렸다.

《그걸 어떻게 아오? 동무야 우리가 무사히 가닿도록 안내할 임무만 받았겠는데?···》

《뭐 간단하지요. 사령관동지, 저기 완전무장한 선생님의 부하들을 좀 구슬렸지요. 어쨌든 난 꾸바혁명군 대위이니까요.》

심각한 일이였다. 체는 손으로 량볼에 가득 돋아난 수염을 아프게 잡아비틀었다. 벌써부터 이렇게 쉽사리 비밀이 새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무엇인가 피어린 투쟁을 위한 준비가 치밀하지 못했다는것이 명백해졌다. (이때문에 체는 앞으로 유격투쟁의 전기간 계속 가슴을 쥐여뜯으며 후회하게 된다.) 하여 그는 피가 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뭘 그러십니까?》 싼체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비밀이 새나갔으면 빨리 대책을 세워야지요.》

《어떻게?》

《나를 체포하십시오. 그다음 총살해버리든지 아니면 대오에 받아들이든지 둘중의 하나를 택하십시오.》

그가 요구하는것이 무엇인지, 왜 화제를 여기까지 끌고왔는지 인제는 모든것이 명백해졌다.

《그걸 바라오? 진심으로?!···》

《예.》

《가족이 있겠지?···》

《사령관동지도 가족을 두고오지 않았습니까.》

체는 잠시 묵묵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왜 그러십니까, 사령관동지? 제가··· 이 싼체스가 아직도 미덥지 못해 그러십니까?》

체는 천천히 머리를 가로젓고나서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싼체스, 동무같은 돌격대장이 내겐 하느님보다도 더 귀하오.》

《아, 이러지 마십시오. 전 신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을··· 설사 그가 피델수상동지라 해도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순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웃음을 거두자 체는 한팔을 그의 앞으로 쑥 내던지듯 했다.

《고맙소, 싼체스. 〈조국이냐 죽음이냐〉》

《〈우리는 승리할것이다!〉》

마지막 그 말은 둘이 같이 목소리를 합쳤다. 이어 그들은 손을 맞잡은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해빛찬란한 오월
넓고넓은 창공아래
나팔소리 울리며
우리 기발 휘날리네
광장우에 높이 서서
손흔드는 까스뜨로

 

체가 인솔해가는 성원들모두가 노래소리를 듣고 달려오더니 체와 싼체스의 노래에 자기들의 열띤 목소리를 합쳤다.

 

꾸바씨 꾸바씨 꾸바씨 양키노
꾸바씨 꾸바씨 꾸바씨 양키노

 

그것은 온 세상에 알려진 혁명적꾸바를 상징하는 노래였다.

···이것은 체가 조직지휘하게 될 국제유격대 제1지대의 대륙에로의 첫 진출이였다. 목적지인 까리나스갑에 이르자 그곳에서는 체가 사전에 조직한 비밀조직성원들이 찌프차 3대와 소형화물자동차를 가지고 그들을 맞이하였다.

며칠후 체는 비행기를 타고 볼리비아의 수도 라빠스로 날아가 먼저 지하조직성원들과 광산로조지도자, 볼리비아공산당 총비서 등과 만났다. 광범위한 련합전선을 형성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싼체스대위가 지휘할 제1지대성원들은 찌프차와 화물자동차를 타고 멀고먼 볼리비아를 향해 내륙깊이 들어갔다.

 

19

 

도이췰란드의 프랑크푸르트비행장에서 떠난 아일러 오르항공회사의 려객기가 라틴아메리카의 중부 안데스산줄기의 내륙국가 볼리비아의 수도 라빠스에 도착했다. 아침해가 불끈 솟아오를 때였다.

고원지대의 시뻘건 태양이 구름장들을 불태우고 비행기사다리로 내리는 려객들의 얼굴과 머리까지 온통 붉은색으로 지져놓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려객들속에는 류달리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미모의 한 녀성도 있었다. 20살전후의 밝고 정차고 유혹적인 미소를 날리는 처녀였다. 굽실굽실한 금발머리에 발레무용수처럼 몸매도 날씬했다. 게다가 몸에 좀 끼우는감이 있는 노란 런닝샤쯔를 입고있어 춤추듯 걸음을 옮길 때마다 황금빛으로 물든 앞가슴이 률동적으로 오르내리며 흥떡이였다. 점잖지 못한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그 부위에 로골적인 굶주린 눈길을 박고있었다. 그러나 미모의 젊은 녀성은 그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추 걸어갔다.

비행장출입구에 이르자 그곳에 서있던 경찰들은 비수같이 예리한 눈길로 그 녀자의 얼굴과 려권의 사진을 거듭 대조해보았다.

 

이름:따마라 분께 비떼르

성별:녀자

민족별:도이췰란드인

생년월일:1949년 5월 12일

출생지:아르헨띠나

국적:서부도이췰란드

 

비행장출입구밖에서는 신사풍의 사나이가 그를 마중했다.

《안녕하십니까, 따냐양. (그는 로씨야식으로 따냐라고 발음했다.) 난 아돌프선생의 부탁을 받고 마중나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따니아는 벌써 그가 손짓하는 고급승용차에로 춤추듯 걸어가고있었다.

···바로 이 녀성이 20세기 60년대에 세상을 진감한 전설적인 체 게바라국제유격부대의 유일한 백합꽃 따니아(따마라 분께 비떼르)이다. 따니아의 라빠스도착으로 체 게바라의 국제주의적유격대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서게 된다. 그 녀자야말로 체 게바라의 가장 믿음직한 정보원천, 보급물자와 재정의 깊은 샘터였다.

후날 체 게바라에 대하여 두툼한 책을 써낸 한 전기작가는 따니아의 라빠스도착과 이후의 활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아르헨띠나에서 살던 도이췰란드인 아버지와 로씨야인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여난 따니아는 뛰여난 재기와 아름다운 용모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군 했었다. 그러한 따니아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제일 락후한 독재국가인 볼리비아의 수도 라빠스에 인류학을 전공하는 도이췰란드인녀성학자로 나타나자 수많은 정부고관들과 장령들, 외교관들과 기자들, 예술계의 명사들이 그 녀자에게로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지어 대통령 바리엔또스와 군부의 실권자 오반도장령까지 그 녀자의 쌀롱에 모습을 나타낼 정도였다.

따니아는 갖가지 민속예술과 토착민들의 노래를 발굴하는 한편 제1차 볼리비아민속옷전시회를 여는것으로써 자기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얼마후엔 라빠스종합대학 전기공학부 학생이며 광산기사장의 아들 마리오 마르띠네스와 결혼하였다.

결국 따니아는 볼리비아공민권과 려권을 획득하고 이웃나라 아르헨띠나와 우루과이, 꼴롬비아에도 자유자재로 오갈수 있게 되였다. 이 모든 사업을 따니아는 오직 체 게바라의 지시에 따라, 그와의 합의에 의해서만 진행하였다. 그는 좌익계의 인사들이나 로조지도자들과는 일체 상종하지 않았다.

차츰 따니아는 라빠스의 모든 명사들이 한시도 선망의 눈길을 떼지 못하는 볼리비아상류사회의 매혹적인 비너스, 눈부신 사랑의 별이 되였다. 감히 태양과 빛을 다투려 하는 전등알이 있을수 없듯이 그 녀자와 매력을 다투려는 녀성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것은 따니아가 영웅적으로 전사한 후, 그것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