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15

책제목:운명
 
 

제 2 장

15

 

장정환은 꾸바의 수도 아바나의 말레꽁해안거리에 위치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사관 2층 사무실에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쓰고있었다. 지독히도 습하고 무더웠다. 천정에 매단 선풍기가 종일 윙윙거려도 팔과 목에 끈적거리는 땀은 가셔주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차례나 이곳 아바나시의 상공을 지나가는 까리브해의 열대성비구름이 도시에 비좁게 들어앉은 낡은 건물의 벽체들과 지붕들, 그리고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들이 미처 마를새없이 주기적으로 소낙비를 퍼붓군 했다. 따라서 도시의 대기습도는 건조한 지대에서 살던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참고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다.

그는 웃도리를 벗어 말코지에 걸었다. 다시 책상에 마주앉자 조국에서 보내오는 수십대의 자동차, 뜨락또르며 수많은 농기계들과 꾸바의 농업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여오는 우리 나라 청년들을 맞기 위한 갖가지 사업일정을 짜는데 달라붙었다.

수령님께서 혁명적꾸바에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였으므로 할일이 많은 그였다. 그만큼 피델 까스뜨로를 비롯한 꾸바의 당과 정부지도자들은 우리 수령님께서 보내시는 진정어린 뜨거운 지지와 성원, 고무와 련대성의 표시에 몹시 감동되여있었다.

지난 까리브해의 위기때에도 다른 나라 외교관들은 다 황급히 비행기를 타고 제 나라로 피신해갔지만 우리 대사관 성원들만은 꾸바군복차림에 그들과 같이 총을 메고 결사전에 나섰다.

새로 부임해온 장정환도 자주 꾸바의 전통적인 올리브색군복차림을 할 때가 많았다. 대사관성원들과 같이 매일 군사훈련도 하고 거의나 군복을 벗지 않는 피델 까스뜨로가 지방참관이나 부대들에 나갈 때마다 조선대사를 부르군 하기때문에 그도 같은 군복을 입는데 습관되였던것이다.

밖에서는 장정환의 네 아들중 이제 겨우 5살난 막내아들 현일(어머니가 제일 어린 그 애만 꾸바에 데리고 왔던것이다.)이가 누군가와 큰소리로 에스빠냐어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정환은 아직 에스빠냐어를 잘 모른다. 그러나 꾸바어린이들의 유치원에 다니는 현일이는 벌써 반년사이에 누구하고나 자유로이 의사소통을 할수 있게 되였다.

그때 현일은 자전거를 타고 울안을 돌고있었다. 어머니가 세발자전거를 사주었지만 아버지가 야단을 쳐서 당장 두바퀴자전거로 바꿔온것이였다. 몇번이고 무릎이 깨여졌지만 현일은 기를 쓰고 다시금 자전거에 오르군 했다. 오늘 벌써 다섯번째로 담장안을 빙빙 돌고있는데 누구인가 기척도 없이 들어오는것이 눈에 띄였다. 알지 못할 사람이였다. 권총을 찬 꾸바사람들이 보초를 서고있는 외국대사관에 감히?···

현일이는 자전거를 멈추고 경계하는 눈길로 그쪽을 사납게 쏘아보았다.

《넌 누구야?》

권총을 찬 혁띠가 아래배에까지 축 늘어진 꾸바군복차림의 사나이가 거침없이 그 애앞으로 다가왔다.

《하! 이녀석 괜찮은데···》 키가 큰 꾸바군인은 당돌한 조선소년에게 웃으며 대충 거수경례를 했다. 《난 피델의 부관이다.》

현일이는 아직 어린 나이지만 피델이 누구인지 잘 안다. 유치원에서 배우는 노래의 한구절이 먼저 생각났다.

 

아침을 사랑하고 오늘을 사랑해요
래일을 사랑하고 피델을 사랑해요

 

《피델의 부관이라구?···》 하고 그 애는 재빨리 생각을 굴리며 따져물었다. 《부관이란게 뭐야?》

《너 그것두 모르니?》

《알아. 그런데··· 피델의 부관이 옳은지 어떻게 알아?》

《이걸 보구두 모르겠니?》

키큰 사나이가 손으로 배허벅에 차고있는 권총집을 툭툭 두드렸다. 하지만 현일은 각성을 늦추지 않았다.

《그런데 피델은 어디 가구 혼자서 왔어?》

그때 대문쪽에서 부관보다 키도 몸집도 더 큰 사람이 나타나며 소리내여 웃었다.

《피델은 여기 있다.》

《응?···》

한순간 현일은 그가 틀림없는 피델 까스뜨로임을 알아보았다. 신문과 거리의 선전화들에서 늘 보아오던 군복입은 꾸바 내각수상, 유명짜한 텁석부리!··· 현일은 급기야 대사관안으로 뛰여들어갔다. 단숨에 2층의 아버지방에까지 달려간 그는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아버지, 피델이 왔어요, 피델!》

장정환은 철없는것이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핀잔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다음순간 쿵쿵거리며 계단을 올라오는 군화발소리를 듣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이냐?》

한손으로는 말코지에 걸어놓은 웃옷을 벗기고 급히 팔에 끼면서 문을 열고 나갔다. 마침 문앞에까지 이른 장대한 체구의 피델과 부관을 보자 급히 그리고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피델 까스뜨로동지!》

《반갑습니다. 대사선생, 안녕하십니까.》

《예, 그런데 수상동지, 이렇게 아무 련락도 없이 갑자기 오시면 우린 어떻게···》

《예?! 》

피델은 그와 반갑게 악수하면서도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자 구원을 바라는듯 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며 인사말만을 거듭했다.

《대사선생,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그새 꾸바날씨에 좀 익숙되였습니까? 지금 건강은 어떻습니까?》

《아, 수상동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셨을적엔 무슨 급한 용무가 있겠는데···》

《대사선생, 날씨에 익숙되였는가 말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때마침 어린 현일이가 가운데에서 머리를 뒤로 잔뜩 젖히고 두사람을 올려다보더니 떠듬떠듬 통역을 했다.

《아버지, 날씨가 더운데 앓지 말라구 해.》

장정환은 꿈쩍 놀랐다. 이 애가 무슨 소릴?··· 허나 다음순간 저도 모르게 숨을 활 내뿜었다.

《아, 그래? 참, 너 인사말도 할줄 알지? 그럼 피델수상에게 좋은 인사말씀 한마디 올려라, 응?》

《응.》 현일은 머리를 끄떡하더니 피델에게 머리를 돌리며 조잘거렸다. 《우리 아버지가 피델에게 아주 좋은거, 음··· 맛있게 올리라구 했어요.》

그러자 피델은 에스빠냐어를 제멋대로 마구 번지면서도 자신만만해하는 어린 현일이가 하도 기특했던지 그 애를 덥석 안아올렸다.

《용쿠나. 이름이 뭐지?》

《장현일··· 우리 유치원에선 내가 제일 쎄요.》

《정말이냐?》

《예, 키는 제일 작아두 쌈은 제일 잘해요.》

《허! 장령의 아들이 확실히 다르구나.》

피델은 장정환이 권하는 응접실로 가면서도 현일이를 내려놓지 않았다. 응접실에 들어가 쏘파에 앉자마자 그 애를 무릎우에 올려놓았다.

《대사선생, 난 대사선생과 따로 부탁할 일이 있어서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왔습니다.》

《?!···》

장정환은 또 묻는듯 한 눈길로 어린 현일이를 쳐다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자 현일은 열심히 두눈을 굴리며 피델의 말뜻을 되새겨보더니 단마디로 이렇게 통역했다.

《혼자 왔대, 몰래!···》

《아, 그래?》

비로소 그는 자기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생각해냈다.

《수상동지, 잠간만!···》

그는 즉시 전화기를 끄당겨 번호를 돌렸다.

《나 장정환이요. 문화참사 어데 있소? 당장 찾아서 내 방에 보내오. 그리구 라울 까스뜨로동지에게 련락해서 피델수상이 여기 와있다는걸 알리오.》

피델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왔지만 한 나라의 국가수반이 다른 나라의 대사관에 온 이상 장정환은 그냥 주재국에 알리지 않고 지날수 없었던것이다.

피델이 어린 현일에게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물었다. 현일이 말했다.

《까스뜨로동지에게 알려주래요, 피델이 여기 있다구.》

적갈색의 굵다란 아바나려송연에 불을 붙이던 피델은 갑자기 쏘파등받이에 머리를 젖히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까스뜨로와 피델이 서로 다른 사람이던가? 한사람이 아니구?···》

현일이 뾰로통해서 고집했다.

《아니예요, 라울도 있구 피델도 있는데···》

《하― 그렇지. 정말 네 말이 그럴듯하구나.》

피델은 웃음을 가무리지 못하며 또 어린것의 머리를 쓸어주고 볼을 다독여주었다. 이렇게 그는 에스빠냐어통역을 겸하는 대사관 문화참사가 올 때까지 어린 현일이와 잡담을 해야 했다. 어린것은 피델이 진짜로 자기를 고와하는것을 알자 그가 줄곧 내뿜는 독한 려송연연기를 입김으로 불어가며 무엄하게도 그의 시꺼먼 구레나룻을 손으로 쓸어보고 슬그머니 당겨보기까지 했다.

《아버지, 염소할아버지야, 잉?···》

《야, 현일아!》

장정환은 너무도 당황하여 어린것에게 무섭게 눈을 흘겼으나 피델이 손짓으로 일없다고 가만 놔두라고 했다.

한편 뒤늦게야 련락을 받은 대사관일군들은 비상소집하여 식사준비를 한다, 차와 커피를 끓인다 하며 법석을 떨었다. 통역을 맡은 문화참사도 5분후에야 차와 커피를 든 대사관 녀성일군을 앞세우고 응접실에 들어섰다. 눈치빠른 현일이 피델의 무릎우에서 미끄러져내렸다. 별수없이 그 애는 혁명적인 꾸바의 수령과 담화하는 력사적인 외교무대에서 퇴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짜통역이 오자 피델은 활기를 띄였다.

《대사선생, 내가 뭣때문에 아무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났는지 한번 알아맞춰보십시오.》

장정환은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때부터 불의적인 질문에 반응하는데 습관되여있었으므로 웃으며 말했다.

《우리 대사관 료리솜씨가 어떤지 시험쳐보려고 오셨지요?》

피델은 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늘 하는 습관대로 손바닥이 앞으로 보이게 손을 들어 주의를 환기시키며 말하였다.

《비슷하게 맞췄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조선을 더 잘 알자고 온건 사실이니까요.》

《예?》

《아, 그럼 언제 조선의 유명한 료리솜씨를 맛볼수 있습니까?》

장정환이 알아보니 벌써 차려오고있다고 했다. 그러나 피델은 응접실에 차리는것을 반대했다.

《정원에 나갑시다. 이럴 땐 밖이 좋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꾸바정부의 일군들과 호위성원들이 급히 차를 타고 달려왔다. 모두 사색이 되여있었다. 피델은 또 피델대로 언짢아했다.

《내가 뭐 에스빠냐 황제요? 로씨야 짜리요? 뭣때문에 한자동차씩이나 타고 날 쫓아다니는거요?》

한자동차래야 사실 미국제반트럭에 타고온 일여덟명이 전부였었다. 장정환이 서둘러 새로 온 사람들까지 정원으로 안내하려 했으나 호위성원들은 어느새 모퉁이마다에 몸을 숨기고 칼끝같은 시선을 사방에 던지기 시작했다.

아바나의 밤은 불시로 찾아든다. 불타는 해가 먼 수평선에 시뻘건 불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서서히 잠겨들면 돌연 해안선도로를 따라 건물들이 가득 들어찬 도시의 골목들은 어둠의 장막속에 잠겨버린다.

대사관 전공(꾸바사람)이 뒤정원의 풀밭 한가운데 촉수높은 전등을 켜자 대사관가족들이 거기에 커다란 원탁을 가져다놓았다. 이윽고 흰 보를 씌운 원탁에는 갖가지 통졸임과 바나나, 파이내플을 비롯한 열대과일들은 물론 조선사과와 화채, 인삼술, 룡성맥주 등이 올랐다. 피델은 룡성맥주의 맛이 좋다고 극구 칭찬했다.

장정환이 말했다.

《이제 연회마감엔 유명한 조선국수가 나옵니다. 그때 가서 우리 대사관 료리솜씨를 평가해주십시오.》

《꼬리어 꾸쑤우?···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헌데··· 내가 온 진짜목적은》 하고 피델은 또 손바닥이 보이게 손을 쳐들었다. 《조선기록영화입니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께서 현지지도하시는 기록영화들이 귀 대사관에 많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 그렇습니까!》

장정환은 당장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응접실에 있던 영사막을 정원으로 옮기도록 했다. 이어 피델이 앉아있는 원탁에서부터 발걸음으로 맞춤한 거리를 재여보고 영사막을 장대에 세우는것까지 지휘하였다. 꾸바사람인 대사관전공은 영사기를 설치하였다.

피델은 자기네 사람들이 더 잘 보아야 한다고 친히 그들 각자의 자리를 정해주었다. 장정환과 통역은 자기옆에 바싹 붙어앉도록 하였다.

드디여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를 수록한 기록영화가 시작되였다. 이따금 해설록음에 없는, 외국인들로서는 리해할수 없는 장면들은 장정환이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피델은 흥분하고있었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려송연을 빨았다. 한부가 끝나면 또 한부··· 대사관에 있는 필림전부를 다 볼 때까지 절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노라고 선포했다.

새벽 3시에야 영화가 끝났다. 그때까지 연회탁은 초저녁에 차려놓았던 그대로였다. 피델은 거기에 곁눈조차 팔지 않았다. 그는 크나큰 감동을 이기지 못해 큰 숨을 내불더니 이렇게 말했다.

《많이 배웠습니다. 대사선생,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많은걸 배웠습니다.》

이어 그는 뒤늦게 달려왔던 자기 사람들, 당과 정부의 일군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동무들, 오늘 우리는 아주 귀중한 진리를 배웠소. 동무들도 언젠가 체 게바라가 조선을 방문하고 와서 조선인민의 위대한수령이신 김일성동지에 대하여 감동깊이 말하던것을 생생히 기억하고있을거요. 그래서 난 언제면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올수 있을가 했는데 오늘 여기서 기록영화를 통해 만나뵙게 되는구만. 영화를 보니 정말 생각되는것이 많소. 그래 동무들은 어떻소?》

그는 수행원들의 대답을 기다린것이 아니였다. 끄트머리만 남은 려송연을 힘껏 빨고 재털이에 비벼끄고는 힘주어 계속했다.

《우린 모두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그분처럼 인민을 위해 자기를 다 바쳐야 하오. 그래서 내 오늘 우정 시간을 냈던거요.》

그는 또 다른 려송연에 불을 붙였다. 수십만 군중앞에서 5시간 내지 6시간, 최고 13시간까지 휴식없이, 원고없이 연설한것으로 유명한 피델이였으므로 자기의 흥분된 심정을 밤새껏 터놓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뜻밖에도 몸을 돌려 대문쪽으로 걸어갔다. 주인들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는것도 까맣게 잊고있는듯 했다. 부관이 그의 뒤를 따라가며 뭐라고 귀띔했다. 그제서야 그는 몸을 돌렸다.

《아, 대사선생.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자주 오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피델 까스뜨로동지, 우린 언제 어느때든 제일 귀한 벗으로 당신을 반겨맞을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안녕히!》

그는 장정환과 문화참사 그리고 대사관의 보통일군들, 가족들과도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했으나 웬일인지 인차 걸음을 떼지 못하였다. 마치 그 누군가를 찾는듯 했다.

《참, 어디 갔을가?···》

《아니, 누굴··· 찾으십니까?》

《우리 헤니일!》

그제서야 비로소 영문을 알아차린 장정환이 웃으며 말하였다.

《우리 현일이는 초저녁에 벌써 곯아떨어졌습니다. 아직 철부지이니까요.···》

피델은 그만 두손을 마주치며 크게 소리내여 웃었다.

《아, 내가 인젠 새벽이라는걸 그만 잊고있었습니다. 우리 헤니일이 잠을 잔다?··· 그럼 사랑스러운 헤니일이 깨여나면 꼭 내 인사를 전해주시오.》

그는 다시금 손을 들어 모두에게 인사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대문을 나서려던 그가 또 무슨 생각에서인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것이였다. 다음순간 부관에게 눈짓하고는 활달한 걸음으로 되돌아왔다. 장정환이 서둘러 마주가자 그는 뜨거운 입김부터 내불었다.

《대사선생, 아까부터 나한테 무엇인가 물으려고 했지요? 난 그걸 눈치채고있었는데 왜 끝까지 묻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까?》

역시 피델다운 통찰력이였다. 장정환은 빙긋이 웃었다.

《수상동지에게 생각이 있으면 제가 묻지 않아도 말씀하리라고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렇습니까?》 피델은 잠시 그의 두눈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또 물었다. 《묻고싶었던것이 체 게바라에 대한것이 아닙니까?》

《예, 옳습니다.》 장정환은 다시 놀라와했다.

《그럼 제가 먼저 묻겠습니다. 대사선생, 지금 귀국에선 체 게바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

장정환은 입을 열지 못했다. 피델이 그렇게 질문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할수 없는 질문이였다.

사실 세계의 많은 언론들이 지금 체에 대하여 벌떼처럼 떠들어대고있다. 온 세상을 주름잡으며 조선과 중국, 쏘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나라들은 물론 일본과 에스빠냐, 뻬루, 메히꼬, 아르헨띠나, 에짚트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수많은 크고작은 나라들을 방문하였고 유엔무대에서도 꾸바를 대표하군 하던 신생꾸바의 제3인자였던 체 게바라! 그가 돌연 력사무대에서 종적을 감추었던것이다. 그 어느 국가적인 기념행사에도 외국인들의 꾸바방문기에도 그의 이름이 오르지 않았고 신문과 텔레비죤 등 갖가지 출판물들에서도 그의 모습을 더는 찾아볼수 없었다.

이에 대하여 세론은 끔찍한 소문으로 끓어번지고있었다. 체가 피델과 그의 동생 라울 등과 함께 바띠스따독재정권을 뒤집어엎은 혁명군의 한 사령관이였으며 그들 피델형제의 벗인 동시에 또 무시할수 없는 군사가, 정치실력가, 박식가로서 나날이 그들의 정치적경쟁자로, 적수로 되기 시작하였으므로 하늘높이에까지 명망이 높아가는 그를 두려워한 피델과 그의 심복들이 조용히 처치해버렸다는 소문이였다. 지어 그를 무참히 살해한 날자와 장소는 물론 목격자들의 증언과 무덤위치까지 밝혀내는 형편이였다.

하지만 꾸바는 남들이 아무리 험담을 퍼붓고 떠들어도 여러달째 줄곧 침묵만 지킬뿐 그에 아무런 답도 주지 않고있다. 따라서 나날이 의혹은 무서운 추측을 낳고 추측은 또 부정할수 없는 명백한 사실로 와전되여 세상사람들을 소스라치게 하군 했다.

물론 조국에서도 세상에 떠도는 각이한 요언들을 잘 알고있다. 장정환은 벌써 몇달전 수령님께서 체에 대하여 하시던 말씀을 한시도 잊지 않고있었다. 하지만 꾸바의 당과 정부의 요인들조차 체의 행방에 대하여 알고있는 사람이 거의나 없다는데서 장정환은 그만 당혹감을 금할수 없었다. 그렇다고 직접 내각수상 피델에게 물을수도 없었는데 그자신이 지금 체에 대하여 말을 꺼낸것이다.

《체에 대해선》 하고 장정환은 천천히 말했다. 《우리 수령님께서 특별히 관심하고계십니다. 수령님께선 체 게바라가 조선을 방문했을 때 아주 좋은 인상을 받으셨다고, 참으로 열혈의 투사다운 기질을 가진 혁명가, 애국자였다고 자주 회고하십니다.》

《음···》 피델은 통역이 옮기는 말을 주의깊게 듣더니 흥분하여 말하였다. 《체도 김일성동지에 대하여 깊은 사랑과 존경심을 품고있었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자신의 앞으로의 삶과 투쟁의 지침으로 삼겠다고 맹세하며 떠나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니, 떠나―갔단··· 말입니까?···》

장정환은 불시로 목이 갈리는것을 느꼈다.

피델이 계속했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께만은 사실대로 죄다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이제 얼마후엔 세상이 다 알게 되겠지만··· 지금 체는 라틴아메리카의 어느 한 나라에 가있습니다.》

《예?!···》

《체는 미국의 고요한 뒤동산이라고 불리우는 여기 라틴아메리카에 제2의 윁남을 만들어 꾸바혁명을 보위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꾸바혁명을 보위하고 미제의 세계제패전략을 짓부시며 라틴아메리카나라들을 해방하는것! 이것이 바로 체의 결심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 나라에서 무장투쟁을 준비하고있습니다. 언젠가 조선을 방문하였을 때 김일성동지를 만나뵙고 그분께서 작은 나라들도 단결하여 미제에 주되는 창끝을 돌려야 한다는것, 다시말하여 세계도처에서 미제의 각을 떠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받고 그때부터 깊이 생각해왔다고 합니다. 특히 까리브해의 위기때 흐루쑈브가 미국에 굴복하여 미싸일과 비행기들을 다 철수해가자 그는 자주성이 없이 큰 나라만 하늘처럼 쳐다보다가는 제 나라, 제 민족을 영영 망하게 한다는 말을 자주 하군 했습니다. 그때에 벌써 그는 무엇인가 마음속깊이 결심하고있었던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그를 막을수도 붙들어둘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피끗 밤하늘 저 멀리에로 눈길을 돌렸다. 아마도 체가 가있을 피어린 전장을 생생히 그려보는듯 했다.

《체가 한번 결심하면 누구도 그를 막아나서거나 돌려세우지 못합니다. 바로 이것이 체의 불같은 성격이고 의지입니다.》

열화같은 언변으로 불을 토하던 피델은 군복 안주머니에서 무슨 봉투같은것을 꺼내였다.

《체가 떠나면서 내게 남긴 편지의 사본입니다. 귀국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우리의 존경하는 벗인 김일성동지께 보여드리고싶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체를 직접 만나주시고 혁명가의 한생에 대한 참으로 귀중한 말씀을 많이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김일성동지이시야말로 체가 제일 존경하던분이시니··· 그분께 이 편지를 보여드리는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체도 이것을 알면 전적으로 찬성할것입니다.》

그는 장정환이 입을 열기도 전에 습관된 동작으로 손바닥이 앞으로 보이게 거수경례를 했다.

《자,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부관이 피델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초조히 기다리고있던 수행원들이 황급히 그의 뒤를 따라나갔다.

장정환은 피델이 탄 차가 어둠속 멀리로 사라져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었다. 승용차의 발동소리가 멀어져갔다. 한차례의 폭풍이 휘몰아친듯 했다. 장정환은 잠시 숨을 돌리고 문화참사에게 방금 피델이 한 말을 다시 말해달라고 했다. 피델은 통역이 미처 따라번질새도 없이 열변을 토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