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14

책제목:운명
 
 

제 2 장

14

 

박유진은 선장이 한시바삐 자기를 불러주기를 안타까이 기다리고있었다. 기다리는것이 죽을 지경으로 괴로왔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결판을 보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몸이 떨릴 지경으로 그것이 두렵기도 했다. 턱수염이 시꺼먼 태규선장을 피해 숨을수만 있다면 술이 가득차있는 도람통에라도 머리를 틀어박고싶은 심정이였다.

허나 다음날에도 선장은 조타실에만 붙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바다날씨가 험해지면서 세찬 새바람이 불어치기 시작한것이다.

먼저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아왔다. 미친듯 한 바람결에 털을 잔뜩 일으켜세운채 갑판우에 무리로 날아내렸다. 아니, 돌멩이들처럼 떨어져내렸다고 할가··· 어떤것들은 빈 도람통속에 무리로 쓸어들기도 했다. 배의 선원들이 그것들을 위하여 도람통뚜껑을 열어주기도 했다. 배사람들에게 있어서 갈매기들은 언제나 제일 정답고 친근한 바다의 길동무들인것이다.

《누가 아직 갑판에서 돌아치는거요?》 하고 태규선장이 조타실문짝을 열어젖히고 소리쳤다. 《다들 선실로 들어가오, 빨리!》 그래도 안심치 않아서인지 선장은 장태렬기술부선장을 보내여 그들을 선실에 몰아넣게 하였다.

장태렬이 석쉼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들 선실로 들어가시오. 권영길! 동문 거기서 뭘해? 규석동무, 류운환!··· 동무들은 왜 여기 나와있는거요, 엉?!》

그는 류운환이라는, 군대때 특무상사였다는 씨름군같이 몸이 다부지고 단단한 사람의 엉뎅이부터 걷어찼다. 사실 그 류운환은 세찬 바람에 한쪽으로 풀려진 그물이 확대판에 걸려 찢어지지 않게 단단히 바줄로 묶어놓던중이였었다.

《넨장, 이렇게 바람이 심한데 왜 우물거리는거요? 그래, 저 바다에 날아들어가봐야 정신을 차리겠소?》

모두 선실에 몰아넣고서야 장태렬은 철판으로 된 문짝을 탕! 소리나게 닫았다.

《에― 이제부터 학습담화를 하겠소.》 장태렬이 가쁘게 숨을 내뿜으며 말했다. 《그럼 먼저 지금 저 바람속도가 얼마인지 누가 말해보겠소?》

《옛,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이번에도 강창길이 제일먼저 나섰다. 《지금 바람속도는 초속 25메터!》

《틀렸어.》 포수인 권영길이 손끝으로 그의 이마를 꾹 내리찍었다. 《초속 30 내지 35메터야!》

장태렬기술부선장이 소리쳤다.

《옳소, 군대때 포병으로 복무한 사람이 달라. 우리 배사람들도 포수들 못지 않게 바람속도를 잘 가늠할줄 알아야 해. 창길이, 희떠운 소리만 하지 말구 제대군인형님한테서 잘 배우라구.》

《알겠습니다, 부선장동지!》

장태렬이 계속했다.

《그럼 파도높이는?··· 누가 대답해보겠소?》

선원들이 저저마끔 소리쳐 대답했다.

《6메터.》

《아니, 7메터야.》

《아니야, 6메터야. 이건 틀림없어.》

《7메터라는데!···》

장태렬이 손을 홱 내저었다.

《다 맞소. 방금 조타실에서 내가 계기판을 볼 때엔 6메터였는데 지금은 더 높아지구있소. 6 내지 7메터···》

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다에 검은 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새하얗게 변하였다. 거센 돌풍이 일으킨 물안개와 물보라의 회오리··· 이어 멀리서 큰 멀기가 덮치듯 몰려오기 시작했다.

배가 세차게 요동을 쳤다.

장태렬은 가까스로 선실벽을 짚으며 투덜거렸다.

《인젠 학습담화도 다 했군. 넨장, 인젠 뭘한다?···》

웬일인지 그의 눈길이 박유진에게로 견주어지고있었다. 유진이만을 바라보면서 그는 목청을 돋구었다.

《무서워할건 없소. 지금 선장동무와 같이 경험많은 우리 항해부선장이 조타를 잡고있으니 다 제대로 될거요. 뭐, 이런 파도가 처음이라구?··· 맘 푹 놓소.》

그는 이 배의 기술부선장이면서 세포위원장이기도 하다. 박유진이 배멀미로 신고할 때 몇번이나 선실에 들려 이마를 짚어주던 사람이다. 그러나 따로 해설담화사업을 한적은 없다. 배사람들은 입으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들이다. (몇해후 박유진은 이 수더분한 부선장 장태렬이 뜨랄선 제53호 선장으로 임명되여 김학순, 김태규영웅선장들과 더불어 신문과 방송들에서 널리 소개되는것을 커다란 기쁨과 감격속에서 보고 듣게 된다.)

그가 유진이를 손짓으로 불렀다. 유진은 뜨아해하면서도 일견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지난밤 쯔가루해협에서 있은 일때문에 배사람들에게서 버림받는것 같아 몹시 괴로와하던 참이였다.

그가 비틀거리며 다가가자 장태렬이 소리쳤다. 소리치지 않고서는 말이 통하지 않기때문이였다.

《유진동무, 저 파도를 좀 보오. 이건 정말··· 아주 센 파도요. 조금만 더 세지면 이 철문짝도 쭈그렁바가지로 만들어버리오. 하지만··· 잘 보오. 저것도 리용할탓이요. 법칙을 알고 잘 리용하면 하나도 무섭지 않소. 보라는데?··· 저―기 보이지?··· 멀기에도 주기가 있단 말이요. 저―기 하나, 두―울, 셋― 네엣― 다섯!··· 보시오, 다섯번째만에 큰 멀기가 한번씩 오고있지 않소. 저런 큰 멀기가 밀려올 때 계속 맞받아나가면 배가 그만 왕청같은 방향으로 갈수 있소. 그래서 지금 선장동문 지그자그로 반보차기를 하고있소. 반보항행이라고도 하는데··· 지그자그··· 왔다갔다 반보씩 파도를 차면서··· 무슨 말인지 리해되오?》

《예.》 유진에게는 그의 항해설명보다도 자기에게 돌려주는 관심이 더 귀하고 반가운것이였다. 《잘 알겠습니다.》

《우리 태규선장은 참 좋은 사람이요.》 장태렬이 계속 하는 말이였다. 《바다에선 선장이 아버지나 같소. 그러니만치 꼭 아버지가 하라는대로만 해야 돼. 그러면 등탈이 없소. 이걸 잊지 마오.》

《예.》 박유진은 웬일인지 자기 목소리가 잦아드는듯 한감을 느꼈다. 《잘 알겠습니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잘 알겠다고 한것인지조차 알지 못하고있었다. 사실 그런것은 알고싶지도 않았다.

그때 《뚜!―》 하고 맨앞에서 나가는 그들의 배 56호가 길게 고동소리를 울리였다. 이어 선대의 다른 배들이 차례로 모두 그 소리에 화답하기 시작했다. 바다날씨가 나쁠 때의 항해규정이라고 장태렬이 설명했다. 소리로 거리감을 느끼면서 호상간 간격을 유지해간다고 한다. 겉으로 보아서는 꼭같은 뜨랄선들이지만 배들마다 고동소리(기적소리라고도 한다.)는 각이하다. 크고 웅글게 울리는가하면 높은 소리로 우렁차게, 혹은 앙칼지게 울리는 소리도 있다. 배들마다 자기 선장의 성격을 그대로 닮는것만 같다.

유진은 차츰 무시무시하게 변모되는 바다를 보면서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인제는 공포도 사라져간다. 모든것이 꿈만하다. 허탈감과 공허··· 한순간 흐릿해진 머리속에 매부 장정환의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그가 나의 이런 몰골을 본다면 뭐라고 할가? 이 박유진이 마치 민족의 배신자이기라도 한듯 모질게 단죄하던 태규선장의 고함소리를 들었다면 그 성칼사나운 매부가 어떻게 나왔을가? 혹시 도끼를 쥐고 달려들지나 않았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