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13

책제목:운명
 
 

제 2 장

13

 

박유진은 선장의 지시대로 고무옷을 갈아입었다. 머리엔 물개모자도 썼다. 사업소로보창고에 제일 흔한게 물개모자라고 한다. 겉은 꽛꽛하고 아이들의 뜨개실모자처럼 볼모양없이 그저 둥그스름했지만 안속은 따스하고 포근했다. 그렇게 차리고 나선 그를 보고 강창길은 감탄을 련발했다.

《아, 영화 〈갈매기호청년들〉의 주인공이 우리한테 찾아온게 아니요? 정말 신통하지? 저렇게 그냥 찌뿌둥해있지만 말구 좀 벌쭉벌쭉 웃기만 해두 얼마나 멋있겠소, 에? 정말 기막힌 배우감이 아니요?!···》

그런데 누구도 그의 말에 공감을 표하지 않았다. 예술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마치 난데없는 로씨야사람이 배에 오르기라도 한것처럼 두눈이 째긋해서 바라볼뿐이였다. 그 리유를 태규선장은 이렇게 표현했다.

《창길이, 너무 오지랖넓게 나서지 말아. 우리한텐 배우감이 아니라 어부감이 필요한거야!》

그 말을 풀이해보면 박유진이 앞으로도 영영 배사람이 못된다고 단정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유명한 영웅선장이 정말 너무하지 않는가?!··· 그때에도 박유진은 그 어떤 모욕감에 오금이 저려나는것을 억지로 참고있었다.

이렇듯 괴로운 날과 날들이 흘러가던중 마침내 유진이 자기의 금새를 보여줄 그날이 왔다. 그것은 뜨랄선 다섯척으로 무어진 청진수산사업소의 원양어로선대가 일본의 쯔가루해협(일본본토와 혹까이도사이의 해협)을 빠져 태평양쪽으로 나갈 때였다.

밤이였다.

박유진은 저 멀리에서 아물거리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자기의 눈두덩을 아프게 문지르고있었다. 무엇때문에 청진에서 곧장 우로, 싸할린섬 동북쪽으로, 세계의 3대어장의 하나인 오호쯔크해로 북상하지 않고 동쪽으로, 조선동해를 가로질러 일본의 쯔가루해협을 통과하는지, 그리고 거기서 태평양으로 빠져 쏘련의 깜챠뜨까반도쪽으로 올라가는지 알수가 없었다. (실은 우리의 원양어로선대가 대양에로의 새로운 항로도 개척하는겸 고급어족이 많은 깜챠뜨까의 동부 즉 빠라무쉬르섬과 슘슈섬근처의 태평양어장으로 직행하기 위한것이라는것을 후에야 알게 되였다.)

멀리서 개짖는 소리가 났다. 쯔가루해협기슭의 일본항구들이나 어촌들에서 등대의 불빛은 물론 갖가지 색갈의 네온등빛과 움직이는 자동차의 전조등까지 다 구별해볼수 있었다.

그밖에 바다의 수면을 핥으며 급히 마주오는 불빛도 있었다. 일본해상보안청의 경비정인듯싶었다. 그러나 경비정보다 앞서 쾌속으로 달려오는 배가 있었다. 해상순찰정인듯 했다. 거기에서 내쏘는 탐조등의 불광이 갑판우에 나와선 사람들의 눈을 때렸다.

알고보니 그것은 일본해상보안청의 배가 아니라 미해군순찰정이였다. 순찰정의 확성기에서 미국식영어발음으로 웨치는 소리

가 거칠게 울려나왔다. 거듭 반복되는 웨침··· 허나 배에는 거기에 대답을 줄 사람이 없었다.

강창길이 달려왔다.

《형님, 선장동지가 빨리 오라오.》

그러리라고 생각했었다. 박유진은 비로소 자기가 할 일이 생겼다는것을 깨달았다. 강창길을 따라 달려가니 선장은 항해부선장과 같이 조타실에 서있었다.

선장이 전령관(배안에서 통신실, 기관실 등 여러곳에 지시를 주는 기구)에 대고 말하고있었다.

《무선수, 선대에선 답이 왔는가?》

《예, 놈들이 무엇때문에 그러는지 알아보랍니다.》

다섯척의 뜨랄선중 선대를 지휘하는 사업소 부기사장은 김학순선장의 51호에 타고있다. 그 배는 다섯척 뜨랄선의 맨 중간위치에 있고 제일 앞장에는 지금 김태규선장의 56호가 나아가고있는것이다.

《그럼 선대장에게 알리라, 이제부턴 내 결심대로 한다고.》

《알았다.》

전령관에서 머리를 든 태규선장은 방금 들어선 박유진에게로 몸을 홱 돌렸다.

《저것들이 지금 뭐라고 하오?》

《예, 국적을 밝히라고 합니다.》

《국적을 밝히라?》 선장이 씨근거리며 소리쳤다. 《그래 저것들 눈은 죽은 생선의 눈깔들인가? 우리 배가 달고가는 기발두 못보는가 말이야, 우리 공화국기를?!··· 이건 저놈들이 우리한테 도발을 걸구있는거요, 도발을!··· 그러니 유진동무, 저것들한테내가 한 말을 그냥 그대루 전해주오. 〈네놈들 눈깔이 멀었는가. 우리 배우에 단 기발을 보라!〉 하구 말이요.》

《예.》

유진은 선장이 전령관옆에 있는 확성기마이크를 내밀어주는것을 자기에게로 가까이 끌어갔다. 그리고는 숨을 활 내긋고 그새 생활에서, 기억에서 어지간히 멀어져가던 영어단어들을 재빨리 속으로 더듬었다. 다음순간 히쭉 웃고나서 자신만만하게 웨쳤다.

《내 말을 들으라.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뜨랄선 제56호의 선장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뭐라구 했소? 내가 말한 고대루 했소?》

웬일인지 태규선장은 그를 못마땅해하는 눈빛으로 보고있었다.

《예, 선장동지. 제가 좀 설명을 달아주었습니다, 잘 알아들을수 있게.》

《뭐―설명?》

하지만 선장은 더 따져묻지 못했다. 저쪽에서 더 높은 악청이 날아왔던것이다.

선장이 또 물었다.

《뭐라구 해?》

《어디로 무엇때문에 가는가고 묻습니다.》

《뭐?!》 그새 구레나룻이 시꺼매진 선장의 얼굴은 차츰 더 사납게 푸들거리기 시작했다. 《국제적으로 공인되여있는 해상통로를 가는데 뭐가 어쩌구 어째? 제깐놈들이 감히 우리한테 그따위 말투로 따지구들어?··· 오라질 놈들!》

그러나 그때 박유진은 그의 격앙된 심리와는 관계없는, 그 어떤 국제적인, 외교적인 관례만을 생각하고있었다. 하여 그는 오늘 두번째로 히쭉 웃었다. 이어 확성기에 대고 자신만만한 어조로 소리쳤다.

《다시 말한다. 우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양어로선대이다. 뜨랄선들이 가면 어데로 가겠는가. 고기잡으러 간다.》

다음순간 그는 숨을 활 내그으며 한결 청을 높여 미국식영어로 시처럼, 노래처럼 자랑스레 웨쳤다.

《위어 고우잉 투 더 패씨픽!···》

마음속에서 불시로 터져나온 장쾌한 선언이였다.

《태평양으로 나간다!···》

박유진은 가슴이 뻐근해지는것을 느꼈다. 방금 자기가 조국의 명예를 걸고 소리높이, 자랑스럽게 웨쳤다는 자부심으로 하여 그의 얼굴은 불그레하게 달아오르고있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별안간 김태규선장이 확성기마이크를 휙 잡아채가는것이였다.

《이자 뭐라구 했소?》

숨소리도 거칠게 따져묻는 소리였다. 아마도 박유진이 좀전에 자기가 한 말을 좀더 부드럽고 정중하게 다듬어 전달했음을 느낀것 같았다. 박유진은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 전률을 느끼며 자기가 영어로 한 그 말을 다시 우리 말로 바꾸지 않을수 없었다.

《뭐? 뭐가 어쨌어?》 태규선장은 거의나 고함지르듯 했다.

《동문 어― 어째서 내가 하는 말만 고대루 외우라는데 제멋대루 하는건가, 에?》

그들은 지금 모든 배사람들이 다 전령기에서 울려나오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있다는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설사 알았다 할지라도 무지막지한 김태규선장은 자기의 우렁찬 그 배고동소리를 멈추지 않았을것이다.

《사실 전···》 하고 박유진은 떠듬거리며 변명했다. 《저것들이 더잘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느라구···》

《설명을?! 》 태규선장이 그의 말허리를 자르며 급기야 노성을 터뜨렸다. 《누가 그렇게 하라구 했어, 누가? 동무가 뭐길래 저것들한테, 저 쳐죽일 양코배기들, 철천지원쑤놈들한테 그따위 설명을 해준다는거야. 저것들이 언제 우리의 설명을 듣기나 했는가. 우리한테 뭘 물어보기라두 했는가 말야, 엉?!···》

《선장동지, 난···》

선장은 그에게 입을 벌릴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하문 놈들한테 우리가 빌붙는것처럼 보일게 아닌가? 그래 그만큼 오랜 세월 외국에 가서 배워왔다는게 그런것두 몰라? 민족적자존심두 없어? 야, 이 쓸개빠진 놈아?!―》

그것은 박유진이 여태 받아본적이 없는 가장 모멸적인 그리고 가장 치욕적인 욕설이였다. 한마디, 한마디가 모난 돌멩이처럼 날아와 그의 마음을, 그의 심장을 때렸다. 박유진은 저도 모르게 뒤걸음쳐갔다. 그러다가 그만 몸을 가누지 못해 비칠거렸다.

《선장동무, 그건 정말 너―너무합···》

《뭐가 너무해? 그래두 뭐 할소리가 있다는거요?》

《난··· 그래두 자―잘하느라구 했는데··· 서―선장동문 왜 그다지두 사람을···》

그는 말을 떠듬거렸다. 머리칼까지 저려나는듯 했다. 금시 자기의 마음속에서 끓고있는 분노를 다 쏟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었다.

《선장동무, 그래두 나는 한때 무역성의 일군이였습니다. 그런데두 선장동진··· 너무 사람을 허―허깨비처럼 보면서 모욕적으루···》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놀랍게도 태규선장은 이미 그의 말을 듣고있지 않았다. 머리를 홱 돌려 전령기에 대고 소리치고있었다.

《무선수, 선대장에게 알리라. 지금 놈들의 직승기에서도 불빛신호를 보내고있다. 우리가 멎지 않으면 사격하겠노라구 위협하고있다. 하지만 우린 그냥 전진한다. 수신!》

《알았다.》

그때에야 박유진은 머리우에서 사납게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있는 직승기의 발동소리며 탐조등의 거센 불광이 껌벅거리는것을 보았다. 미군직승기인것 같다. 점령군인 미군이 일본해협까지 통제하고있는것이다. 앞에서는 여전히 미군순찰정이 팽이처럼 물결을 차고 돌아치면서 기관총을 겨누고 사격태세를 취하고있다.

또다시 머리우에서 껌벅거리는 강렬한 불빛··· 방금 선장이 말하던 위협적인 불빛신호이다. 하건만 외국어에 능통한 박유진도 그 불빛언어만은 알지 못한다.

《정지하라, 불응하면 쏘겠다.》

미해군순찰정의 확성기에서 울려나오는 웨침이였다. 우에서는 불빛신호로, 앞에서는 확성기로 위협하고있다.

선장앞의 전령기에서도 무선수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선장동지!》

《무슨 일인가?》

《선대장동지가 절대로 멎어서지 말구 계속 앞으로만 나가라고 합니다.》

《좋다, 알겠다.》

선장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가슴을 폈다. 불시로 그의 키가 쑥 커지는듯 했다.

《포수, 내 말을 들으라. 사격준비됐는가?》

그쪽에서 권영길이 손짓하는것이 보였다.

《좋다, 순간도 놈들한테서 눈을 떼지 말라. 정황을 봐가다가 놈들이 여차직하면 기관총부터 박살을 내라. 때를 놓치면 안된다. 알겠는가?!》

대답소리는 없었다. 다시 선수쪽에서 권영길이 손짓하는것이 보였다. 《알았습니다!》라는 대답이다. 이어 권영길이 적순찰정의 기관총을 겨누고 76미리고래포신을 빙빙 돌리는것이 바라보였다. 그옆에서는 몇사람이(거기엔 배의 막내인 강창길이도 끼워있었다.) 주먹질을 하며 뭐라고 소리치고있었다. 적들도 그것을 환히 보고있을것이다.

머리우에서는 직승기가, 앞에서는 가랑잎처럼 파도를 타고 넘는 미해군순찰정이 계속 탐조등을 비쳐대고있다. 강렬한 그 불빛으로 하여 눈을 뜨기가 어려웠다.

김태규선장이 전령관에 대고 또 소리쳤다.

《기관실, 기관속도 얼마인가?》

《400이다.》

《500으로 높이라. 최고속으로!》

《알았다.》

배가 요동쳤다. 너무도 급작스럽게 속도를 높였던것이다. 어데선가 우당탕! 하는 소리가 나더니 철판으로 된 뜨랄선이 적순찰정을 맞받아 무섭게 돌진해갔다. 단숨에 들이받아 짓부셔버리려는시도였다.

다음순간 박유진은 적순찰정의 확성기에서 기괴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오는것을 들었다.

《오우, 갓맨!―》(오, 하느님!―)

급기야 적순찰정도 배머리를 번쩍 들며 요동을 쳤다. 그리고는 뜨랄선의 철갑이 코앞에까지 들이닥치는것을 요행 피해 옆으로 빠져나갔다. 탕탕탕탕··· 적순찰정에서 퍼르끄레한 배기가스가 재채기소리를 터뜨리고 배밑에서는 싯허연 물갈기가 세차게 뒤번져졌다.

뒤쪽의 다른 뜨랄선들도 속도높이 따라오고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말 한마디없이 제 할일들을 했다. 사실은 무슨 할일도 별로 없었지만 부지런히 뛰여다니고있었다. 머리우에서 소란을 피우며 돌아치는 적직승기와 거기에서 내쏘는 탐조등을 향해 주먹질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뜨랄선56호는 여전히 쯔가루해협의 거센 물결을 헤가르고있었다. 검은 물결이 사정없이 뒤번져지며 좌우로 밀려갔다.

별안간 눈앞이 새까매졌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여서 한순간 섬찍한 생각도 없지 않았다. 알고보니 머리우의 적직승기가 내리쏘던 탐조등이 불시에 꺼져버린것이였다. 미국놈들이 하는수없이 물러가버리는것이다.

김태규선장은 후― 하고 한숨을 내뿜더니 전령기에 입을 가져다대였다.

《무선수, 선대장에게 전할것. 적들이 물러간다. 우린 계속 전진한다.》

《알았다.》

김태규는 주머니에서 써레기와 담배종이를 꺼내였다. 라침기와 전파탐지기, 방향탐지기의 작고도 파아란 불빛을 리용하여 투박한 손으로 재빨리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부선장, 불이 있소?》

《예, 여기 있수다.》

조타를 잡고있던 항해부선장이 한손으로 라이타를 꺼내주었다. 선장은 몇번이고 라이타를 절컥거려서야 담배에 불을 달았다. 한모금 페장깊이 삼키고 천천히 후― 하고 내불더니 별안간 머리를 들고 앞에 서있는 박유진을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는것이였다.

《동―무요?··· 헌데 거기서 지금 뭘하구있소?》 하고 그는 마치 유진이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뜨아해하며 물었다. 《거기서 뭘하구 있나 말이요?》

《?···》

박유진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가슴은 마냥 아프게 죄여들고 화끈 달아오른 머리속에서는 붕―붕― 하고 마치 문풍지 우는것 같은 소리가 계속 울리고있었다.

《오―》

마침내 태규선장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비로소 좀전의 일들이 생각난것인가?!··· 그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호흡기관이 망가져서인지 가릉가릉하는 소리를 몇번 괴롭게 톺더니 이후부터는 말 한마디없이 담배만 뻐금뻐금 빨기 시작했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몹시 지치고 힘겨워하는것이 알렸다. 그는 바짝 마르고 터갈린 시꺼먼 입술을 우물거리며 싯누런 담배연기만 굴뚝같이 내뿜고있었다.

박유진은 이제 더이상 그 자리에 멍청하니 서있을수 없었다. 숨쉬는것도 괴로왔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거의나 소리없이, 발자국소리를 죽여가며 걸음을 떼기 시작하였다. 자기를 질시하는 이 사람들, 태규선장과 배사람들을 피해 어데론가 가고싶었다. 허나 바다에서, 그것도 태평양과 이어져있는 여기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몸을 숨긴단 말인가?···

《가만!》 갑자기 태규선장의 웅글고 묵직한 목소리가 그의 뒤덜미로 덮치듯 날아왔다. 《왜 그냥 가는거요? 누굴 피해 어디루 가나 말이요?》

어찌된 일인지 바다의 귀신이라는 김태규선장은 마치도 유진이 마음속 생각까지 다 바다속을 들여다보듯 휑하니 읽고있는듯 했다. 그가 계속했다.

《내 말을 듣소. 유진동무, 우리 배사람들은 사실 제일 텁텁한 사람들이요. 유식한 말도 할줄 모르구··· 외국말은 더욱 그렇지. 하지만 해방후 당의 은덕으루 다 중학교이상의 교육을 받았소. 게다가 요새 배치되여오는 젊은이들은 거의 대다수가 수산전문을 나온 사람들이요, 청진수산전문학교를!··· 그래서 웬간한 외국말은 대체로 알아듣소. 뜯개말도 더러는 할줄 알구···》

《?···》

박유진은 까딱하지 않고있었다. 그래서 무얼 말하는것인가?··· 아직은 그가 무슨 의미로 그 말을 꺼냈는지 짐작할수 없었다.

《그런데 동문》 하고 태규선장은 차츰 숨소리도 거칠게 말을 이었다. 《우리 사람들을 우습게 보구··· 지어는 좀 깔보구있소. 외국말은 저 혼자 다 아는것처럼··· 그렇다구 칩시다. 그래 그게 어쨌단 말이요? 우린 그런 외국말을 잘 번지지 못하오. 그런 혀꼬부라진 말은 잘 못해두 우리 조선말은 아마 동무보다 더 잘 알게요. 그래 동무가 여기 우리 배사람들보다 조선말을 더잘 알것 같소?》

《?···》

여전히 박유진은 굳어진 그대로였다.

김태규선장은 손끝까지 타들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는 발로 마구 비벼대였다.

《솔직히 말하면 오늘 동문 우릴 크게 노엽혔소. 정말 그럴줄 몰랐소, 뜻밖이요. 동문 오늘 조선사람의 존엄을 크게 상하게 했단 말이요.》

《아니?!···》

《내 말을 마저 듣소. 우리 조선사람들은 저놈들과, 저 쳐죽일 일본놈들이나 미국놈들과 동무가 한것처럼 그렇게 말하지 않소. 그래 저놈들이 언제 우리한테 뭘 물어본적이나 있소? 우리한테 한마디라도 물어보구 나라를 침략했냐 말이요. 그런데두 오늘 동문 뭐 어쩐다구? 저 미국놈들한테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구?··· 똑똑히 듣소, 저 짐승같은 원쑤놈들과는 말이 필요없소. 설사 있다구 해도 그따위 빌붙구 리해를 시키는 말이란 없소, 없단 말이요!》

《그럼 내가···》

《됐소, 그만하기요. 다시 부를 때까지 돌아가서 혼자 잘 생각해보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그는 한손을 홱 내저었다. 인젠 보기도 싫다고, 제발 눈앞에서 썩 사라지라고 하는 의미와도 같았다.

유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노엽고 눈물겹고 한없이 억울하게 생각되였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바다에서의 선장은 해당 나라의 전권대표이기도 하다. 선장이자 곧 정권이고 법이다. 일단 선장이 결심하고 지시한것이면 그것이 설사 죽음에로 통하는 길이라 할지언정 무조건 그대로만 밀고나가야 한다. 그것이 곧 바다의 법이고 바다의 인륜이고 배사람들의 준법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