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12

책제목:운명
 
 

제 2 장

12

 

바다에는 짙은 안개가 하얀 비단실의 장막처럼 드리워있었다. 그 안개발속으로 뜨랄선 다섯척이 먼바다어장을 향해 산같이 밀려드는 파도를 헤가르고있었다. 청진수산사업소에서 떠난 원양어로선대로서 세계의 3대어장중의 하나인 오호쯔크해로 가고있는것이다. 날씨만 좋으면 한주일동안에 가댈수 있는 거리이건만 련 이틀째 새바람이 끝없이 불어치면서 큰 멀기를 몰아오군 했으므로 예정보다 늦어지고있었다. 끝없이 밀려드는 멀기로 하여 선대의 배들은 쉴새없이 물결우를 오르내리며 모지름을 썼다.

나흘동안이나 심한 멀미에 지칠대로 지쳐 선실침대에 쓰러져있던 박유진은 배가 무엇엔가 부딪쳐 쿵!― 하는 충격과 함께 무섭게 요동치는 바람에 하마트면 바닥으로 굴러떨어질번 하였다. 가까스로 가름대를 잡고 몸을 일으키니 머리가 윙윙거리는것이 한방망이 호되게 얻어맞은듯 했다. 며칠새 너무도 심하게 멀미를 했던것이다.

《열물까지 싹 토해야 배사람이 된다우.》 배에서 제일 나이많은 항해부선장이 한 말이였다. 바다바람에 망가진 성대때문인지 그의 쐑쐑하는 소리는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견뎌내야 하우. 제아무리 힘들구 싫다고 해두 다른 뾰족한 수는 없수다. 바다에선 어디 도망칠데두 없으니까.》

배의 막내이며 유명한 장난꾸러기인 강창길은 《형님, 아예 그런건 걱정마오. 그런 노랑물(열물)따윈 몽땅 토해두 하나 아까울게 없소. 내 이제 희귀한걸 구해주니까 그걸 날것대루 소금에 찍어 잡숴보시오. 당장 기가 뻗치면서 이만큼··· 커진단 말이요.》 하고 익살을 부리며 말했었다.

그새 유진이 입술은 꺼멓게 말라트고 얼굴은 누렇게 떠있었다. 단 며칠새에 녹초가 되여버려 인제는 무엇을 생각하는것조차 힘들었다. 하다면 그는 왜 배를 타는 모험을 했단 말인가?···

처음 유진은 녀인들 틈에서 고기밸을 따는 일부터 시작했다. 쑥스럽고 면괴스럽고 한없이 고달픈 일이였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드살세기로 유명한 함경도녀인들이 아무 꺼리낌없이 그를 두고 떠들썩 웃어댈 때에조차 한마디 대꾸도 없이 씩씩거리며 고기밸만 땄다. 하지만 그 솜씨야말로 실로 어처구니없는것이였다. 밸을 딴다는것이 예리한 칼날로 물고기의 속내장은 물론 대가리며 뒤잔등까지 쭉―쭉 찢어놓군 했던것이다.

아낙네들이 혀를 내둘렀다.

《아이구, 기차라. 저 아재 물고기백정 아냐? 》

《일복이 엄만 또 무슨 생뚱같은 소릴?!···》

《아유, 저거 좀 보오. 물고기와 무슨 원쑤를 졌다구 저렇게 막 란도질을 하오?》

《아마 제 괴로운 속마음을 칼질하겠지 뭐.》

여기서 박유진은 웃음가마리였다. 녀인들이 종일 심심치 않게 짓씹다가 뱉아버려도 아까울게 하나 없는 껌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있었다. 하여 유진은 누가 뭐라고 입방아를 찧든 아무 대꾸도 없이 거의나 머리도 한번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여전히 머리를 짓숙인채 아무렇게나 고기밸을 따고있던 그는 돌연 칼질하던 손을 멈추었다. 눈앞에 누군가 와있는것이였다. 이 고장에선 보기드문 녀자구두 앞코숭이가 먼저 눈에 띄더니 이어 긴양말을 신은 녀인의 미츨한 다리와 거기에 휘감기는 코트자락이 그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는 천천히 눈앞의 녀자구두로부터 코트우에까지 눈길을 들고 쳐다보았다. 다음순간 부지중 바람새는 소리처럼 가늘게 부르짖었다.

《아니, 누님이 어떻게?···》

칼을 놓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너무도 뜻밖의 일에 그는 그만 물고기모양으로 입만 벙긋거리고있었다. 허나 그것도 한순간, 그는 별안간 가슴이 싸늘해지는것을 느꼈다. 자기의 더럽고 꾀죄죄해진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고 민망스럽게 느껴졌던것이다. 하여 그는 손에 잔뜩 게발린 진득진득한 살점들과 기름에 버물린 고기비늘들을 벅벅 문지르며 흐느끼듯이 숨을 들이그었다.

그와 마주선 누이 박수옥의 두눈에서도 눈물이 끓고있었다. 가까스로 흐느낌소리를 참으며 누이는 아무말없이 그의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한손으로는 입을 싸쥐고 고기밸따는 아낙네들이 놀라서 지켜보는 그 한복판으로 정신없이 그를 끌고갔다.

《너 이게 무슨 꼴이냐, 응?!》 하고 마침내 선창가의 콩크리트담벽밑에 이르자 누이는 입으로 쓸어드는 쓰라린 눈물을 씹어삼키며 부르짖었다. 《나는 내 동생이 이렇게까지 너절해진줄은 정말 몰랐구나, 응?··· 조직에서 왜 여기 수산사업소로 내려보냈는지 아직까지두 모르구있으니··· 이걸 어쩌문 좋아? 의젓한 동생을 두었다구 얼마나 자랑했다구. 글쎄··· 그런데 이 꼴을 보게 되다니. 너 이러다간 정말 제일 가까운 사람들한테서까지 버림을 받게 돼. 그렇게 버림을 받는다는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기나 해? 살아도 죽은 목숨이라는게 뭔지 알기나 하는가 말야?》

《···》

무슨 말을 할수 있으랴. 쓰라린 아픔이, 수치감과 모멸감, 사무친 고통이 그를 옥죄이고있었다.

 

×

 

다음날 사업소당위원장이 그를 찾았다.

《유진동무, 동무 누이가 간절히 부탁하던데··· 꼭 배를 타게 해달라더구만.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소. 바다는 세차거던. 파도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겐 더 모질구 심술사납게 굴지. 포악하다 할 정도루···》

《타겠습니다.》 하고 유진은 결연히 말했다. 《한번 죽음을 각오하구 타보겠습니다.》

《아주 비장한 각오를 했구만.》 당위원장이 미간을 찡기며 내뱉듯 말했다. 《누가 동무더러 죽을데루 가라구 했소?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유진동무, 잘 새겨들으시오. 우린 동무가 이 기회에 자기의 조국과 우리 나라 사람들을 더 잘 알게 되기를 바랄뿐이요.》

《···》

의미심장한 말이였다. 유진은 눈길을 떨구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로는 누구도 그를 받자 하지 않는것이였다. 당위원장에게서 과업을 받고 문화회관 관장이 그를 끌고다니며 배사람으로 만들어보자고 설득했으나 선장들은 마지못해 그를 대충 치떠보고는 머리를 가로젓군 했었다. 그 리유가 어쨌든지간에 문화회관 관장은 절대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이번엔 어데서 귀동냥해 들었는지 박유진이 손풍금, 피아노에 대단한 소질을 가지고있고 로어, 영어를 비롯하여 다섯개 나라 말에 펄쩍 난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제 곧 먼바다어장인 오호쯔크해에 가게 되면 거의 매일같이 쏘련어부들이며 어로단속원들, 쏘련해상경비대원들 그리고 일본인, 미국인어부들과도 자주 입씨름을 하게 될 뜨랄선의 선장들이였으므로 호기심이 부쩍 동하리라고 내다보았던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망망대해에서 볕과 바람에 시꺼멓게 타고 거칠게 트고 투박해진 그들은 마치 화장을 진하게 한 남자를 보는것처럼 눈이 찌글사해있었다.

《필요없수다. 풍금은 없어두 한뉘 물고기를 잡구있수다. 그래 오호쯔크해에 가서 물고긴 잡지 않구 딴따라춤만 추라오?》

문화회관 관장도 차츰 진이 빠지는듯싶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구레나룻이 시꺼먼 이 배, 56호뜨랄선의 선장 김태규에게로 그를 데리고가면서 걸음마다 꺼지게 한숨을 내긋군 했다. 김태규야말로 수산사업소의 으뜸가는 선장들중의 한사람이며 사업소에서 두번째 로력영웅이라고 먼저 설명했다.

《세상에 유명한 김학순로력영웅은 알겠지?··· 아, 거 신문과 방송에랑 자주 나오는 우리 영웅선장 얘길 못 들어봤소?··· 챠, 이렇다니까. 우리 수령님께서 전국수산부문열성자대회때 얼마나 높이 치하해주셨다구 아직 그런것두 모르다니?···》

박유진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있었다. 몹시 피로했다. 사람들이 그를 찌글서 볼 때마다 몸이 졸아드는듯 했었다. 인제는 누구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것이 명백해졌다. 그러니 아무리 소문난 영웅선장이라 해도 그에겐 흥미가 없었다.

문화회관 관장이 그의 기분따위엔 관계없이 계속했다.

《헌데 김학순영웅선장은 어데 출장을 가구··· 대신 그에 못지 않게 유명한 태규영웅선장은 있단 말이요. 시꺼먼 수염이 여기까지(그는 한손으로 귀언저리를 가리켰다.) 난데다가 성미가 얼마나 드센지··· 아, 작년엔 사업소적으로 수산물 1만톤고지를 맨처음 점령해서 소문이 났지. 아까두 말했지만 김태규선장이라문 모르는 사람이 없소. 태규선장은 우리 사업소의 두번째 로력영웅이거던. 아, 이봅세, 지금 내 말을 듣소, 먹소?》

별안간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왜 풀이 죽어서 그러오? 그런 꼴을 보문 이제 그 수염쟁이 태규선장이 또 뭐라구 하겠소? 이 문화회관 관장이 떨떨하다구 하지 않겠는가 말이요? 김태규자기를 어떻게 보구 이런 얼뜬한 서생을 데려왔나 하구 야단할게 아니요?···》

아닐세라 귀밑에까지 시꺼먼 구레나룻이 한벌 덮여있는 김태규선장은 써레기담배를 말며 박유진은 보지도 않고 몰풍스럽게 물었다.

《여긴 어째 왔소?》 목소리도 배고동소리같이 웅장했다. 《뭐라구? 아니, 거기선 지금 무슨 혀아래소릴 하구있는거요? 넨장, 좀 크게 말하오. 바다에선 그런 모기소리가 귀에 들리지도 않소!》

그런데 박유진은 아직 입도 벌리지 않고있었다. 그저 될대로 되라! 하고 고개를 외로 틀고있었을뿐··· 이것이 김태규선장의 분기를 터쳐놓은것 같았다. 그가 눈꼬리를 치뜨더니 급기야 우뢰소리같이 고함을 질렀다.

《창길이! 냉큼 이리 와!》

박유진은 흠칠했다. 당장 무슨 변이 날것 같았다. 그러자 저쪽선수포대에서 열심히 손짓을 해가며 무어라고 떠들고있던 몸이 갱핏한 청년이 수평로라우에 뛰여오르더니 미끄러지듯이 달려왔다.

《선장동지!》

그가 군인들처럼 거수경례를 붙이며 멋들어지게 보고를 하려 했으나 태규선장은 성가신듯 손을 홱 내저었다.

《빨리 기술부선장을 찾아서 우리 배사람들 몽땅 다 모이게 하라구, 갑판우에!···》

《알았습니다, 선장동지!》

배에서 제일 나어린 강창길은 알고보니 태규선장의 련락병격이였다. 그는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권양기와 쇠바줄퉁구리들을 피해 미끄러지듯 달려갔다. 그가 선미의 조타실로 뛰여드는것을 보며 박유진은 으시시 몸을 떨었다. 이제 태규선장이 무슨 복잡소동을 피우려는지 전혀 짐작할수 없기때문이였다.

그런데 30명 전체 선원이 정렬해선 앞에 나서던 선장이 한바탕 줄기침을 터치였다. 한번 시작하자 끝없이 이어지는 요란스러운 발작이였다. 어로공들은 눈을 내려뜨고 이마살만 찌프리고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기침이 멎자 선장이 말을 시작했는데 박유진으로서는 상상도 못한 뜻밖의것이였다.

《오늘부터 우리 배에 한 식구 더 늘었소. 자, 다들 보오. 외국류학도 했구 무역성에서 중요한 일을 맡아보던분이요. 이름은··· 뭐랬드라? 아, 박유진이라구 했지.···》

놀라운 일이였다. 박유진은 선장에게 아직 자기 이름을 대주지 않았던것이다. 선장도 그의 이름을 묻지 않았었다.

《다들 친동기처럼 잘 대해줘야겠소, 에?!···》 그가 계속하는 말이였다. 《이걸 그저 이 김태규선장의 말이라고만 생각해선 안되오. 사업소당위원회에서 주는 특별분공이란 말이요, 이 평양어르신을 몇달사이에 우리랑 꼭같은 배사람으루 만들라는 특별분공!··· 물고기비린내가 물씬물씬 나는 배사람으루다 말이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오?》

《예, 알겠습니다.》

시들한 대답···

박유진은 놀랐다. 그러니 태규선장은 모든것을 다 알고있었던것이다. 아마 사업소당위원장으로부터 따로 과업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는수없이 남들이 다 마다하는 박유진을 받아들였을것이고 그때문에 잔뜩 화가 났을것이다.

박유진은 자기의 짐작이 틀림없다는것을 곧 확신하게 되였으니 바로 그가, 《평양에서 온 어르신》을 잘 돌보라던 김태규선장이 처음부터 박유진을 무섭게 다궂기 시작한것이다. 갑판청소부터 시켰다. 며칠후 원양어로선대가 무어지고 항해가 시작되여 박유진이 당장 배멀미로 쓰러질 지경이였으나 사정보지 않았다.

강창길이만이 나이를 초월하여 그의 친구가 되였다. 처음부터 깍듯이 형님으로 모시며 자주 돌보군 하는데 어쩐지 좀 깔보는 투도 없지 않았다.

《형님두 참, 그렇게 약골인줄 알았으면 고토리검사부터 할걸 그랬소. 뭐이오? 아니, 형님은 아직두 그런 말 못 들어봤소? 핫하!··· 그건 말이오, 옛적부터 처음 배를 타는 사람은 무조건 고토리검사를 하게 돼있단 말이오. 그걸 검사해봐야 바다사람이 되겠는지 아니문 마른 낙지가 되겠는지 다 안다구 하오. 하지만 형님은 저―기 높은데서 내려왔다구 해서 그걸 검사하는것은 그만두기로 했소. 선장이 알았다간 눈알이 쑥 튀여나오게 줄욕을 퍼부을게 뻔하니까··· 에― 그래두 그것부터 검사해봐야 할걸 그랬어.》

그의 험하고 지꿎은 롱질도 박유진에겐 아무런 자극도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저 멀미때문에 피를 토하다가 죽을것만 같은 생각이 들군 하였다. 그렇게 모진 고통속에서 닷새가 지나갔다. 모든 고통을 다 초월한 마지막모지름··· 몽유병에 걸린것처럼 자다가는 일어나고 일어나서는 누구에게라없이 어떤 뜻모를 말을 정신없이 중얼거리군 했었다. 얼마후엔 또 죽은듯이 잠들어버리고···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오늘은 드디여 극한점을 넘긴것 같다. 지옥에서 그를 데리러 왔던 사자도 너무 기다리기에 지친 나머지 슬그머니 꽁무니를 사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가늘게 눈을 뜨고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눈을 뜨고 그 무엇엔가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고 그들의 엄한 꾸중과 절절한 부탁, 눈물어린 애원의 목소리들이 아득히 먼곳에서 은은한 종소리처럼, 때로는 목메는 통곡처럼 울려오고있었다. 안해와 딸의 눈물젖은 목소리로부터 시작하여 수옥누님과 매부 장정환의 몰풍스러운 욕설과 지탄···

다음순간엔 아다 미헬쏜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다는 대학때에 그러했듯이 유진이 귀가에 대고 가극의 아리아를 불러주고있다. 가만 들어보니 챠이꼽스끼의 가극 《예브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오네긴에게 보내는 따찌야나의 편지》의 한구절이다.

 

딴 사람?··· 아니예요 이 세상의 다른

아무에게도 이 마음 바칠수는 없어요!

 

그러던 아다 미헬쏜도 인제는 자기의 사랑을 찾았을것이다. 인제는 눈물로써가 아니라 행복의 미소를 머금고 그 따찌야나의 아리아를 부르고있을는지도 모른다.

아다에 이어 다음에는 하리꼬브공대의 여러 나라 동창생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오, 조선의 렌스끼! 뭐, 인젠 태평양에서 챠이꼽스끼의 아리아를 부른다면서?···》

떠들썩한 비난과 경멸의 웃음소리··· 허나 그것도 한순간, 야지러진 그 웃음소리들이 홀연 바람에 불린 연기처럼 날아가버린다. 벼락치는듯 한 소리가 터진것이다. 그것은 치미는 분노로 몸을 떨던 남일부수상의 웨침소리이다. 그 소리가 다시금 귀전을 아프게 후려갈긴다.

《동무가 뭐길래 감히 나라가 망하니 뭐니 한다는건가. 도대체 누가 그따위 허튼 나발을 불라구 충동질을 했어, 엉? 누가, 누가 그렇게 하라구 했는가?》

그때 유진은 남일부수상이 그렇듯 무섭게 변모된것을 처음 보았다. 판문점에서 정전담판을 할 때 그처럼 위엄차게 미국놈들을 다불러댔다고 소문이 짜하게 났던것이 결코 우연치 않았다.

그것은 남일부수상의 방에서 있은 일이였다. 그는 한바탕 유진이를 체조시키고나서 유진이따위는 말할 대상도 안된다는듯 앞탁에 있는 전화기들중의 하나를 와락 끌어갔다.

《동무, 이 전화를··· 거 있지? 당중앙위원회 국제부에 련결해주오.》

유진은 숨을 죽였다. 남일부수상이 박용국부장에게 무어라 말할것인지 상상해보느라니 가슴이 후두둑했다. 박용국부장도 도고하기 이를데없는 사람이다. 또 그의 등뒤에는 박금철이 있다는것을 유진은 잘 알고있다. 아닐세라 남일이 쎄브문제와 관련하여 당신 뭣때문에 무역성의 젊은 사람들을 자꾸 꼬드기고 내세우고있는가, 그러는 본심이 무엇인가고 따지고들자 그쪽의 어성도 차츰 더 높아지는것이 알렸다.

남일이 벼락치듯 했다.

《동무, 누가 동물 키워줬구 누가 품들여 공부시켜줬기에 감히 그따위 허튼소리를 줴치구있는거요, 엉?!··· 뭐, 뭐라구?··· 아니, 내가 동물 키워줬다구 말하는가?··· 물론 동무가 제3차, 5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대표단 단장으루 갈 때 내가 추천하구 적극 지지했던건 사실이요. 하지만··· 누가 그따위걸 가지구 재세하는줄 아는가? 난 오히려 그걸 두고 후회하구있소. 내가 사람을 바로 보지 못했거던. 그렇게 골통이 비뚤구 썩어버릴줄이야!··· 우리 수령님께서 외국류학도 시키구 당의 요직에도 앉혀주셨는데 인젠 그 하늘같은 은덕두 다 망각해버렸으니··· 뭐, 쎄브에 들지 않으면 우리 나라 경제가 다 망한다구? 뭐, 우리 인민이 다 굶어죽는다구?··· 도대체 누구한테서 뭘 얻어먹구 그따위 잡소리야? 수령님께서 고생고생 다 하시며 애써 키워오신 우리 나라 자립적민족경제라는걸 정말 동무가 모르는가? 그래 쎄브가 우리 나라 민족경제를 일으켜세워주었는가? 쎄브가 우리 인민의 밥상에 비린 물고기 한마리라도 올려놔준적이 있는가 말이요, 엉?!···》

저쪽에서 뭐라고 한 모양이였다. 그것도 당국제부장이라는 권위를 가지고 을러멨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성급히 송수화기를 바꾸어쥐는 남일의 두손이 후들거렸다. 그는 주먹을 휘둘러 눈앞의 대방을 후려갈길듯 몰풍스럽게 웨쳤다.

《뭐, 뭐라구?··· 언제부터 대감님행세를 하면서 거들먹거린다 했더니, 덜돼먹게!··· 자길 키워주고 내세워주신 수령님의 은덕두 모르구 인제 와선 당의 로선까지 감히 시비질을 해? 똑똑히 들으라구, 은혜를 모르는 그런 놈은 절대로 오래 가지 못해! 이건 우리 당력사의 교훈이야. 도대체 누굴 하내비처럼 섬기면서 그따위 개나발이야?!···》

그것은 박용국이뿐아니라 박유진이 가슴에도 대못을 박는 질타였었다.

그날 남일부수상이 격노하여 터치던 노성이 지금도 여전히 우뢰소리처럼 그의 귀전을 계속 두들겨대고있다. 유진은 귀구멍을 틀어막지 않을수 없었다.

···

한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알지 못했다. 적막, 시꺼먼 어둠··· 아니, 날이 어두워서가 아니다. 언제부터였는지 유진은 눈을 꽉 감고있었다.

갑자기 밖에서 울려오는 이상한 소음에 그는 저도 모르게 귀구멍을 막고있던 손을 내렸다. 갑판우에서 숱한 사람들이 왁자하니 떠들어대고있었다. 갑판이 쿵쿵거렸다. 어데론가 뛰여가고 뛰여오는 발자국소리들이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사고인가?··· 그는 이를 악물고 침대에서 기여내려 끙끙거리며 무릎우에까지 올라오는 무거운 로씨야제고무장화를 신기 시작했다. 이것만은 송곳보다 날카로운 망챙이가시도 뚫지 못한다면서 태규선장이 그에게 직접 골라준것이였다.

이윽고 그는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장화때문에 곱절이나 더 무거워진 다리를 질질 끌다싶이 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멀리 안개에 싸인 해가 엷은 검누른 구름의 갓을 쓴채 수평선상공에서 흐릿하니 아물거리는것이 보였다. 멀고먼 바다길을 헤여오느라 너무 지쳐 졸고있는듯 했다.

선실지붕우에서는 록음기가 저 혼자 돌아가며 건드러진 노래를 뽑고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소리엔 아랑곳하지 않고 배전에 몰켜 악―악 고아대고있었다. 살펴보니 배가 커다란 얼음장틈에 끼워있었다. 봄철부터 북쪽의 베링그해에서 많은 얼음장들이 밀려내려오기때문이다.

《창길이, 자, 이것두 받으라!》 배전에 몰켜있던 사람들속에서 권영길이라는 제대군인포수가 학가대(배들끼리 서로 붙지 않도록 밀어줄 때 쓰는 장대기. 끝에 갈구리가 있다.)를 던지며 쐑쐑하는 소리로 웨쳤다. 《자, 다같이 힘껏 밀자구. 하나, 둘··· 영싸!―》

배전에서는 얼음장을, 얼음장우에 내린 청년들은 배를 학가대로 밀기 시작했다. 록음기의 흥그러운 배노래소리도 더 높아졌다.

 

어이여차 어이여차 어이여차 어이여차
당겨라 후리여라
고기떼 몰려온다 명태떼가 몰려온다
한번만 후려도 한배가 찬다네
어이여차 당겨라 당겨라 후리여라

 

사람들은 여전히 배와 얼음장을 갈라놓으려고 젖먹던 힘까지 다 내고있었다. 그런데 구령에 따라 용을 쓰던 사람들이 갑자기 맥을 놓고말았다.

《창길이, 왜 밀지 않아?》

권영길이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러 어로공들이 웃으며 저마끔 떠들기 시작했다.

《너무 힘을 쓰다가 줄방귀가 터진것 같네.》

《그게 아니요. 물개한테 홀리웠어.》

《정말?··· 여, 창길이! 헛눈 팔지 말라!》

《야, 그러다 물에 빠질락그래?》

박유진은 겨우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배전에까지 다가갔다. 아무도 그에게 주의를 돌리지 않는것이 다행이였다. 모든 사람들이 한 얼음장에서 다른 얼음장에로 뛰여건너가는 창길이만 지켜보고있었다. 창길이가 건너뛰여간 그 얼음장우에서는 물개 두마리가 한가스레 서로 비비적거리며 자기들에게로 육박해오는 창길이를 향해 눈을 꺼벅거리고있었다.

드디여 창길이가 어느 한 물개의 대가리를 겨누고 학가대를 힘껏 내리쳤다. 컹― 하는 이상한 재채기소리··· 유진은 저도 모르게 눈을 딱 감고말았다. 끔찍한 일이였다. 언젠가 창길이가 으시대며 하던 말이 또 생각났다.

《형님― 물개는 말이요, 수것이 암것보다 아주 수가 적은데다가 그냥 봐선 암수를 분간하기가 영 힘이 드오. 손으로 슬슬 만져봐야 알수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하는지 내 이제 물개를 잡아다가 형님한테 직접 보여주겠소. 아아― 뭐 신비한건 아니요. 거 수것의 거시기를 있잖소? 이렇게 슬슬 만져보다가 거 호비칼같은걸루 쓱싹! 하고 도려내문 되오. 그런 다음 그놈한텐 〈야 이것아, 인제는 그 지독스러운 암것들 단련두 더 안 받게 됐으니 내게 고맙다구 인사나 해라!〉 하구선 물에 슬쩍 차넣는단 말이요.》

유진은 창길이가 하던 그 말을 상기하자 차마 눈을 뜨고 볼수가 없었다. 옆의 사람들이 야단스레 웃고떠드는것으로 미루어 창길이가 지금 그 스산한짓을 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불현듯 속이 메슥메슥해나기 시작했다. 한손을 들어 입을 막으며 몸을 떨었다. 그러는 그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선실지붕우의 록음기에서는 건드러진 타령조의 노래가 더 높아지고있다.

 

한배가득 고기잡아 기쁨속에 돌아가세
어이여차 당겨라 어이여차 후리여라

 

갑자기 유진은 와뜰 놀라며 눈을 떴다. 김태규선장이 바로 그의 귀전에서 우뢰같은 고동소리를 내질렀던것이다.

《야, 너 죽지 못해 몸살이 났어? 당장 돌아오지 못할가?!》

왁자하니 떠들던 사람들이 일시에 입을 다물었다. 얼음장우의 창길이도 몸을 떨었다. 감히 누구의 엄명이라고 그가 언감 불복하겠는가.

《예, 예. 선장동지, 알았습니다. 당장 돌아가겠습니다.》

그가 뭐라고 계속 웅얼거리며 얼음장을 건너뛰여 배에로 오는것이 어렴풋이 바라보였다.

《넨장!··· 내 저놈의 버르쟁이를 어떻게 떼준다?···》 김태규선장의 얼굴은 여전히 험악했다. 《헌데 님자네들은 여기서 뭐가 그리 좋아서 웃고떠들며 야단인가?!··· 그래 저 창길이녀석이 사고를 쳐서 물귀신이 되는걸 제 눈으루 봐야 정신을 차릴셈이요?!···》

모두가 눈길을 내리깔고 비실비실 뒤걸음쳐갔다. 그러나 더는 추궁이 뒤따르지 않았다. 태규선장이 야단스럽게 기침을 깇기 시작했던것이다. 그렇듯 모진 기관지염에도 불구하고 배고동소리같은 목청이 쉬지 않는것이 놀라왔다.

그의 기침은 분명히 약 1분간의 주기가 있는듯 했다. 숨넘어가는것 같던 기침이 돌연 멎었다. 김태규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있는 사람들을 감때사나운 눈길로 둘러보다가 비로소 자기 눈앞에 서있는 유진이를 알아본듯 했다. 처음엔 약간 놀라는듯 하더니 별안간 눈살을 잔뜩 찌프렸다.

《언제 일어났소?》

《예?》

《언제 일어났나 묻지 않소?》

《예.》

《챠, 이런?》

《예, 이자, 아니, 아까 일어났···》

박유진은 자기가 허둥거리는 꼴이 한없이 창피스러웠다. 그런데도 태규선장은 여전히 도끼눈을 하고 그를 노려보고있었다.

《그러니 인젠 젖떼기가 끝났다는거겠소?》

《예?!》

《뭘 얼뜬한체 하면서 그러오?》 하고 그가 또 배고동소리같이 내질렀다. 《내가 무슨 외국말을 했소? 배멀미가 끝났으면 일을 시작해야 할게 아니요? 그러길래 내 첨부터 말하지 않았소. 물고기비린내가 물씬물씬 나는 배사람이 되여야 한다구 말이요. 당장 들어가서 고무옷부터 갈아입소. 그리구 갑판청소두 해야지, 에?!》

《?!···》

유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웬일인지 목이 꺽 메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대신 록음기에서는 남성민요가수가 여전히 건드러지게 소리를 뽑고있었다.

 

동지섣달 긴긴밤은 달이 밝아 좋구요
심해의 깊은 밤은 고기 많아 좋다네

 

그를 눈여겨보던 태규선장이 신경질을 부렸다.

《참, 책상물림들이란··· 왜 갑자기 울상이 돼서 그러오? 내가 뭐 못할 말을 했소?》

《···》

여전히 박유진은 입을 열지 못했다. 불현듯 가슴속에 치밀어오르는 야릇한 반발심과 까닭모를 수치감 그리고 쓰라린 외로움에 속이 아릿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