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8

책제목:운명
 
 

제 1 장

8

 

박유진은 자기 사무실 쏘파에 구겨박혀 자고있었다. 창밖의 나무가지에서 새들이 분주살스럽게 떠들고있었지만 그는 깨여나지 못했다. 지난밤을 꼬바기 새웠던것이다.

성당위원회에서 그가 한 발언의 엄중성에 대하여 심각하게 론의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마치 사대주의의 술독에 빠진 주정뱅이처럼 취급하려 했지만 그는 결코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일수 없었다. 그자신의 결심으로 국제부문 일군들의 회의에 나간것이 아니였다. 다름아닌 박용국국제부장이 적극 내세워주었던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남의 말을 되받아 외우는 앵무새라는것은 아니다. 그는 순수 자기의 생각을, 쎄브에 들어야 할 시대적절박성을 말했을뿐이다. 공업의 규모가 커지고 분업이 활발해진 현시대에 와서 고립되고 페쇄된 경제는 망하기마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우리도 유럽사람들처럼 잘살자면 쎄브에 들어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을뿐이다.

지난밤 그는 맑스―레닌주의고전들을 뒤지며 장시간 쏘파에서 궁싯거렸다. 자기를 정당화할 새 명제를, 구원의 론거를 거기에서 하나라도 더 찾고싶었다. 새벽녘에야 그만 책을 내던지고 모포를 뒤집어쓰고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돌연 요란스러운 전화종소리가 그를 깨웠다. 시끄러웠다. 모든게 귀찮았다. 바닥에 흘러내린 모포를 끄당겨 머리우에까지 덮고는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러나 검질긴 전화종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을수 없었다. 으시시 몸을 떨며 송수화기를 드니 안해 리혜영의 목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이보세요. 왜 인차 받지 않아요? 잠은 어데서 자구?··· 음··· 다른게 아니구 민족보위성에 있는 큰아버지가 왔댔어요. 방금전에!··· 뭣때문인지 잔뜩 뿔이 돋아나있었어요. 헌데 무슨 일 있었어요? 경애 아버지 들어오면 당장 자기한테 보내라구 명령했어요.》

《뭐 명령?》 박유진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허세를 부렸다. 《무역성에서 근무하는 나를··· 민족보위성청사에 호출한다구?》

사실 그는 《제가 뭐라구 한 나라의 무역일군을 오라가라 한다는거야?》 하고 소리치고싶었었다.

《경애 아버지.》 안해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였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니예요? 난 막 무서워요. 보위성의 큰아버지 그렇게 성난거 난 처음 봤어요.》

《됐소, 됐소.》 하고 유진은 급히 송수화기를 왼손에 바꾸어쥐였다. 《아무 일 없으니 뭐 근심할건 없소.》

《그래두···》

《일없다니까.》

그는 송수화기를 놓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어느새 그 소식이 민족보위성에까지 날아간것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 매부한테 달려가 누가 뭐라고 했는가고 따지고싶었다. 그러나 움직일수 없었다. 창밖으로 멀리 바라보이는 저 건물, 민족보위성청사의 어느 한 방에서 지금 도끼날같은 성미인 매부 장정환이 분노를 삭이지 못해 부르쥔 주먹을 떨고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매부인 장정환을 끝없이 존경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두려워했다. 그러한 모순된 감정은 그를 처음 만나던 평양역두에서부터 시작되였다. 쏘련 우크라이나의 하리꼬브대학 류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에 있은 일이다. 트렁크를 들고 렬차에서 내리니 역명판이 있는 홈 가운데서 그새 나이보다 더 젊어지고 고와진 누이 박수옥이 씨름군같은 체격에 얼굴이 둥그스름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사람을 막 잡아끌며 부르짖었다.

《여보, 저기 있어요. 아, 저―기. 우리 유진이예요!》

자랑스러운 어조였다. 눈에서 웃음이 샘솟듯 하는 누이의 모습이 확대되여 안겨왔다. 그러나 장정환이 누이를 앞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뭉툭하고 두툼한 손을 쑥 내밀었다.

《장정환이다. 네 누이의 남편!···》

보기 드문 인사말이였다. 유진은 소리내여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매부! 그런데 사진에서 보던것보다 더 멋있습니다. 아, 아― 정말입니다.》

유진은 언제든 밝고 명랑함을 잃지 않는 성격이였다. 그런데 장정환은 웬일인지 미간을 찡기고있었다.

《유진인 빠다랑 많이 먹어서 그런가? 남아장부라면 좀 투둘투둘한데두 있어야지 지내 말갛구만.》

바빠맞은 누이가 그의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아유, 당신두 참! 무슨 인사말이 그래요?》

그러나 유진은 다시 소리내여 웃었다.

《참, 재미나는 성격이군요. 대장부답구··· 정말 맘에 듭니다.》

그러나 장정환은 웃지 않았다. 재빨리 유진이의 뒤쪽을 둘러보면서 그가 한 다음말은 더 놀라운것이였다.

《그건 그렇구··· 그 유태인이라는 강굴머리체넨 어떻게 된건가? 여기 평양에까지 달구오진 않았겠지, 응? 참, 그 녀자 이름이··· 무슨 아다 뭐라구 했던가?》

갑자기 유진의 얼굴은 지지벌개지고 누이는 기겁하여 《아이구, 원!》 하고 바스라지는 소리를 내질렀다. 하건만 시꺼먼 눈섭이 이마빡으로 올라붙은 장정환은 막무가내였다.

《난 그것부터 알아야겠소. 그 유태인이라는 강굴머리체네를 달구왔는가 떼놓구 왔는가?》

《아 매부, 우린 그런 사이는 아니구···》 유진이가 황급히 변명했다. 《정말입니다, 우린 그저 친한··· 아니, 그저 대학에서 서로 실력경쟁을 했을뿐인데··· 》

그는 우크라이나의 제1류급대학인 하리꼬브공대에서 그 유태인처녀 아다 미헬쏜(로씨야의 똠스크출신이였다.)과 자기가 제일 학업성적이 높았으므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둘이 나란히 주석단에 앉기도 하고 영예게시판에도 매번 둘의 사진이 나붙군 했을뿐아니라 두사람 다 음악에도 조예가 있어 무대에까지 나란히 서군 했으므로 마치 련인들이기나 한것처럼 소문이 났었다는것, 그외에는 아무런 특별한것도 없었노라고 구구히 변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장정환은 언제든 말을 길게 빨래줄같이 늘어놓는것을 질색하는 성미였다. 그는 재판장같은 엄숙한 표정을 짓더니 굵고 단단한 팔을 들어 장검처럼 휙 허공을 갈랐다. 마치 하늘의 판결이라도 내리는듯 했다.

《좋아, 아니면 됐어.》

그다음 일은 아주 간단히 끝나버렸다. 그가 안해에게로 한손을 내던지듯 했던것이다.

《자, 그 트렁크는 인주오.》

결곡하고 괄괄하기만 한것이 아니였다. 소탈하고 유모아에도 능한 사나이, 바로 장정환은 그러했다. 그러나 일단 분노하면 한주먹으로 부셔버리거나 으깨여놓고야마는 기질이여서 박유진은 늘 그를 두렵게 대하는것이다.

아다 미헬쏜을 상기하자 유진은 불현듯 그 녀자의 행방을 전혀 모르고있다는 생각이 났다. 지금 어데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기계공학을 배운 자기가 우연히 무역일군으로 방향전환을 한것처럼 그 녀자도 유태인특유의 기질을 발휘하여 무슨 은행업이나 무역을 전문하고있지는 않는지?···

수학적재능은 물론 문학적, 철학적사고로도 유명짜하던 아다 미헬쏜이였다. 그가 지금 박유진이 조국에서 쎄브를 동경한다고 하여 사대주의술독에 빠진 사람으로 지탄받고있다는것을 알면 무어라고 시까스를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쎄브를 동경한다구요?··· 아니, 따와리쉬 박, 대학에 처음왔을 땐 민족자주정신이 아주 강한 사람처럼 보이던데 어느새 여섯시 5분전이 됐어요?》

그것은 아다 미헬쏜이 즐겨하는 표현이였다.

《늘 5분이 늦는 사람··· 지금은 그 5분이 작아보여도 그것이 모이면 남보다 인생길 천리가 뒤떨어지는 법이지요. 언제든 이걸 잊지 마세요.》

그렇다. 아다는 늘 그렇게 말한다. 언젠가 그 녀자와 같이 모교인 하리꼬브대학창립 50돐기념일을 앞두고 진행된 학부별 노래경연에 나섰을 때에도 아다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날 유진은 피아노반주를 맡은 아다가 한사코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학부장인 웨. 까르따예브선생의 주장을 따르지 않을수 없었다. 사실 까르따예브선생은 무서운 독선주의자, 옹고집쟁이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기가 자랑하는 제자 박유진의 두뇌값을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산출해내고 그 값어치만큼 그를 무섭게, 피를 이은 친자식이상으로 사랑했다. 지어 자기의 분신과도 같은 박유진이 공학실력은 물론이고 외국어와 예술적소양에서도 천부의 재능을 가지고있다는것을 시위하고싶어 안달아했다.

이런 사정으로 박유진은 어벌뚝지도 크게 챠이꼽스끼의 가극 《예브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유명한 렌스끼의 아리아(전문가들도 그 폭넓은 음역과 옥타브의 조약때문에 애를 먹군 한다.)를 선택했고 그것을 능숙한 외국어발음으로 부르게 되였다. 한번은 로어로 그다음은 영어로···

 

래일도 아침노을이 비끼고
해빛은 찬란하련만
신비로운 그늘 무덤속에
내 잠들어있을지 뉘 알리

 

유진으로서는 있는 힘껏, 재간껏 그리고 목청껏 렌스끼의 아리아를 불렀건만 청중은 웬일인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수군덕거리고 키득키득 웃어대기만 했다. 나중엔 객석의 한구석에서 누군가 째지는듯 한 휘파람을 길게 불어대기까지 하였다. 그의 무분별한 용기와 끝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무모한 옹고집에 비수같이 날린 비난과 조소의 휘파람이였다.

이로써 하리꼬브대학의 전체 류학생들의 첫번째 선망의 대상이였던 박유진의 이름은 사랑때문에 결투를 하다가 죽은 귀족청년 렌스끼의 《신비로운 그늘 무덤속에》에 같이 묻히고말았다. 그리고 그 무덤우에는 매일같이, 달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까지 서리가 내렸다. 그를 손가락질하며 뒤소리하는 대학생들의 로골적인 경멸과 비양의 입김이 찬서리가 되여 내리는것이였다.

그때 아다는 분하여 이렇게 부르짖었었다.

《내가 말하는 여섯시 5분전이 바로 그런것이예요. 처음 왔을 때엔 누구보다 대바르구 의젓했었는데 왜 그렇게 늘 한걸음 모자란다는거예요? 그래 까르따예브선생이 뭐 우리 새 세대 인생주로의 교통안전원쯤 되는가 했어요? 그럼 그 선생이 지시봉을 들어 가리키면 동쪽이든 서쪽이든 가림없이 따라가겠어요?》

그때 아다는 오늘의 박유진이 겪게 될 일까지 미리 예견하고 말한것이나 아닌지? 무슨 점쟁이처럼?!···

별안간 그는 출입문쪽으로 피끗 눈길을 던졌다. 누군가 밀대로 복도를 밀다가 문짝을 다쳐놓은듯 했다.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야 했다. 출근시간이여서 복도에서는 웅성거리는 인사말들과 구두발소리들이 잦아지고있다.

그는 침구를 정돈하고 바께쯔에 머리를 숙이고 푸―푸 세면을 했다. 거울앞에 마주서서야 비로소 자기가 이틀째 면도를 하지 않았다는것을 깨달았다. 뿌옇게 정기를 잃은 낯모를 사람의 두눈이 크지 않은 거울속에서 침울하게 그를 내다보고있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원, 이렇게 궁상맞은 꼴이 되다니?!··· 서둘러 면도를 시작했다.

잠시후 전화종소리가 또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검질기게도 계속된다. 유진은 한동안 망설이였다. 틀림없이 매부 장정환일것이다. 그런데 황소발통같은 그한테는 아무런 설명도 통하지 않는다. 박유진은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을 생각이였다. 그러나 계속 그치지 않고 울어대는 전화종소리에 더는 참을수 없었다. 속이 켕기고 손끝이 떨리더니 그만에야 칼을 잘못 놀려 입술을 베였다.

아뿔싸!··· 새빨간 피가 입술우에 방울짓는것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니 속이 언짢았다. 그는 손으로 입술의 피방울을 씻어냈다. 그것을 들여다보느라니 피자욱같이 진하게 끓어오르는 증오를 느꼈다. 차츰 관자노리의 피줄들까지 푸들쩍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성칼스러운 그 군복입은 매부가 내게 뭐란 말인가? 내가 뭐 자기 친동생이나 친아들이란 말인가?···

한쪽에서는 전화종소리가 계속 신경질을 부렸다. 그는 결김에 달려가 송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시오!···》

거친 소리였다. 저쪽에서는 놀라서 입을 열지 못하는듯 했다.

《여보시오!》

다시 소리쳐 불렀다.

《왜 큰소린가?》

수화구에서 울려오는 웅글은 목소리에 유진은 그만 어벙벙해서 굳어지고말았다. 그 다음순간엔 목이 콱 메이는것을 느꼈다.

《아, 부장동지이십니까?》 치미는 감격에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예, 저―접니다. 박유진, 저―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미처 알아뵙지 못하구···》

《뭐 요즘 무대에 나가 재판을 받고있다면서?》 저쪽에서는 여전히 웅글고 고압적인 목소리였다. 《그래서 풀자루가 되여있다?》

《아―아닙니다. 사실 전···》

《안돼.》 저쪽에서 엄하게 그의 말을 막았다. 우악스럽게 울리는 불신과 경멸의 갈린듯 한 목소리였다. 《그러면 못써. 내가 그만큼 밀어주는데 뭐가 모자라서 그러는가? 사실 동무야 나라의 경제발전이 잘못될가봐 념려가 되여 한 말이 아닌가? 그리구 우리 인민이 아직두 넉넉히 살지 못하는건 사실이 아닌가? 그래서 쎄브의 혜택을 좀 받자구 했기로서니 뭐가 잘못됐다는건가? 왜 주접이 들어 그러는가 말이야, 엉?!》

《잘못했습니다. 제가 그만···》

《가만, 내 말을 마저 듣소.》 하고 저쪽은 몰풍스럽게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동문 자기 주장을 굽히지 말아야 해. 내 동무네 성당위원회에도 말해주겠소.》

《고맙습니다, 부장동지. 제 앞으로 부장동지의 그 말씀을···》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송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멍하니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삐―삐― 하는 소리뿐··· 저쪽에서는 벌써 전화를 끊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