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7

책제목:운명
 
 

제 1 장

7

 

장정환이 뻐스에 오르자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래서 저저마끔 수군거렸다. 왕별을 단 인민군장령이 아침 첫 시내뻐스에 올랐으므로 놀랄만도 했다.

《쉿― 장령이다야.》

《장령동지라구 해야 돼.》

《같구 같지 뭐.》

《야, 새살떨지 말구 빨리 자리나 양보해드려.》

그러나 장정환은 앞에서 나부시 인사하며 자리를 권하는 처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시종 가슴이 부글부글 끓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장령동지!》 눈앞의 처녀가 생글거리며 슬그머니 그를 끄당기였다. 《어서 여기 앉으십···》

다음순간 처녀는 손을 들어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는데··· 가는 신음소리같은것이 새여나왔다. 장정환의 두눈이 무섭게 이글거리고있었던것이다.

처녀가 뒤걸음쳤다. 그러나 장정환은 그것도 알지 못했다. 어제 남일부수상의 전화를 받고 얼마나 놀랐던가? 처남 박유진이 일때문에 우리 수령님께서 그토록 마음을 쓰신다고 하지 않았는가.···

웬일인지 처남뿐만아니라 사랑하는 안해에 대한 노여움까지 치밀어올랐다. 뿔나는 염소처럼 제멋대로 굴기 좋아하는 자기의 남동생 유진이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안해였다. 한없이 여리고 부드러운가 하면 자기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악착스러운 왜놈의 칼날앞에도 서슴없이 목을 내대던 녀자!···

그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장정환은 가슴이 졸아들군 한다. 한순간에 비굴하고 용렬한 비겁쟁이가 되는가 아니면 조선남아의 존엄과 기개를 지키는가 하는 일이 판가름되던 그 순간에 있었던 일!···

《여, 유도3단! 저 처녀 어째볼 생각이 없어?》

《어이, 이마무라. 그 처녀 이리루 끌어와!》

송화강기슭에서 일본군패잔병무리와 맞다들렸을 때 조선녀성으로서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서슬푸른 왜놈오장의 칼날앞에 목을 내대는 편을 택했던 그 안해가 오늘은 어찌된 일인가? 자기의 친동생인 유진이가 지금 이렇듯 쓸개빠진 녀석이 되여버리도록 무얼하고있었단 말인가?···

그는 자기 안해와 다시 만나던 일을 또 생각했다. 구사일생으로 송화강을 건느고 얼마후엔 압록강에 이르렀던 그들··· 국경을 넘어설 때까지 그들일행은 한덩어리였으나 간난신고하며 조국땅에 들어서자 저저마끔 자기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져갔다.

장정환은 그때 처녀의 고향이 함북도 성진(오늘의 김책시)이라는것만 알았다. 그리고는 인차 잊고말았다. 해방후 청진시에서 시보안대원이 되여 정신없이 돌아쳤던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돌연 귀신같은 소개자가 나서서 바로 그 처녀를, 피에 젖던 송화강기슭에서 알게 된 그 처녀를 데리고 나타났다. 데리고와서는 장정환 자기에게 선을 보라는것이였다. 그때의 놀라움은 송화강기슭에서 당하던 일보다 결코 못지 않은것이였다.

그래서 인연이라고 하는건가?··· 하지만 처녀의 집에서는 죽어도 장정환이한테 딸을 주지 못한다고 야단법석이였다. 장정환의 집안이 째지게 가난하다는것, 게다가 장정환이 11명이나 되는 식솔의 맏아들이라는것, 시어머니 될 사람이 귀머거리라는것(왜놈들이 귀앓이를 치료해준다면서 뜨거운 기름을 부어넣었다고 한다.) 등이 결사적인 반대의 리유였다.

그런데 당시 청진시에 옮겨와 녀맹선전부에서 일하던 처녀 박수옥은 또 저대로 막무가내였다. 후에 박수옥이 고백한데 의하면 목숨걸고 자기를 구원해준 장정환을 찾기 위해 온 청진바닥을 다 뒤졌다고 한다. 그렇게 찾아서는 아주 우연한 일인것처럼 몰래 소개자를 골라 장정환에게로 보냈던것이다. 그러한 박수옥이였으므로 완고한 부모님들앞에서 자기가 장정환이라는 억대우청년을 알게 된것은 하늘이 준 연분이라고, 이제 그것을 어기는 날엔 천벌을 받게 된다고 으름장을 놓을만도 했다.

한번 믿으면 끝까지 자신을 다 바치는 안해였다. 하지만 그의 동생인 유진에게는 그러한 절대적믿음과 희생정신이 없다. 그녀석의 마음속에 국자를 넣고 그가 바라는 욕구나 희망을 떠내여 본다면 틀림없이 빠다를 잔뜩 바른 그 무엇이 나오리라는것을 장정환은 믿어의심치 않았다.

바로 그때 이상한 목소리가 울렸다.

《장령동지, 어데까지 가십니까?》

장정환은 이 말을 꿈속에서처럼 듣고있었다.

《아이참, 장령동지! 제 말을 들으십니까?》

비로소 장정환은 지금 뻐스차장이 그에게 무언가 묻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눈을 떠보니 뻐스가 멎어있었다. 더는 오르내리는 사람도 없고··· 운전사가 막 문을 닫고있었다.

《가만, 여기가 어디요?》

《교구동입니다.》

《아, 그렇소?》 하고 그는 급해하였다. 《난 여기서 내려야 하는데··· 여기서!》

후사경으로 뒤쪽을 보고있던 운전사가 제때에 문을 열어주었다.

그가 내리자 뻐스에 남은 사람들이 또 서로 마주보면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제법 큰소리로 군대에서 무슨 비상사건이 생긴게 분명하다고 떠들었다. 어제 보도를 못 들었는가, 미국놈들이 윁남전쟁에서처럼 우리 나라 군사분계선 일대에도 악마의 무기로 세상에 소문난 독해물인 고엽제를 수만리터나 뿌렸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미친 놈들이 끝내 전쟁을 도발했을수 있는것이다, 오죽했으면 저 장령동지가 자기 차를 기다릴새도 없어 뻐스를 타고 급히 달려가겠는가?···

자기를 두고 뒤에서 얼마나 끔찍한 말들이 오가고있는지 짐작조차 못하고 장정환은 뻐스정류소에서 멀지 않은 고층아빠트에로 바삐 걸어가고있었다.

아빠트에서는 처남 박유진의 애젊은 안해가 문을 열고 내다보더니 반가운 웃음을 날리였다.

《아이, 큰아버지!···》 다음순간 그는 장정환의 무섭게 달라진 기색에 기가 질린듯 했다. 《저··· 어떻게 아침일찌기 오셨습···》

아직도 잠내가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였다. 중앙사진보도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는 리혜영··· 내각건축설계실장을 하는 건축가 리웅산의 딸이다. 버들잎같은 몸매를 가진 이쁘장한 녀자인데 앙증스럽게 우로 말아올린 트레머리에서 코를 찌르는 머리기름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장정환에게는 그것도 유진이 녀석이 지구의 저쪽 유럽땅에서 묻혀온 냄새처럼 여겨졌다. 사실은 자기 안해도 늘 사용하는 국산제머리기름냄새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까스로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유진이는··· 아니, 처남은 아직··· 자구있소?》

《아―니, 어제 밤··· 안 들어왔습니다.》

《왜?》

《잘 모르겠···》

《젠장! 들어오면 곧 나한테 알리오. 아니, 그럴게 없이 직접 찾아오라구 하오.》

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돌따섰다. 현관문을 나설 때에야 자기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만나보는 리혜영에게 아버지의 안부라도 물었어야 했었다. 그의 아버지 리웅산이 요즘 온 나라가 관심하는 인민영웅탑의 총설계가로서 집을 떠나 벌써 몇해째 대기념비가 일떠서고있는 혜산에 나가 살고있는것이다.

아빠트의 현관앞에는 장정환의 운전사가 벌써 차를 들이대고있었다. 정해진 출근시간에 집에 들렸다가 여기 주소를 알아가지고 급히 달려온 모양이였다.

타고싶지 않았다. 처남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것은 지금 그녀석의 일이 크게 번져지고있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다. 덜돼먹은 녀석! 수령님덕에 외국류학까지 하고 나왔으면 본분을 잃지 말아야지.··· 근본도 잊고 그렇게 변질되다니?··· 이럴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주리를 틀어놓는건데··· 수재라고 으시대더니 지금 어떤 꼬락서니가 되였는가?··· 가슴이 쓰라렸다. 어버이수령님께 지금 자기자신이 죄를 짓고있는것만 같았다.

언제였던가?··· 전후 고향인 청진에서 당일군으로 발탁되여 일하던 그가 당중앙위원회 지도원으로 소환되고 그로부터 얼마후엔 무역성 국장이 되여 사업하던 때였다. 무르녹는 어느 봄날, 천만뜻밖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 그를 부르시였다.

정신없이 달려갔다. 누군가의 안내를 받고 수령님 계시는 방으로 들어섰을 때 처음엔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 장정환동무요?》

어버이수령님의 그 류다른, 쇠소리나는 음성이 울리자 그는 그쪽을 향해 깊숙이 머리숙여 인사드리였다. 그런데 뭐라고 인사의 말씀을 올렸던지?··· 어버이수령님께서 그에게 자리를 권하며 몇가지 물으시던것만은 기억에 뚜렷이 새겨졌다. 얼마후에야 수령님의 모습이 보다 가까이 선명하게 안겨왔었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그와 담화하시다가 부지중 그의 두툼한 손에 자신의 손을 얹으시였다. 그 손을 통하여 전해오던 따스한 정의 흐름··· 그이께서 밝게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됐어. 동무가 바로 적임자야. 내가 찾던 판문점 수석대표감이란 말이요!》

《예?!···》

후에야 장정환은 어버이수령님께서 그의 문건을 죄다 료해하시고도 자신을 불러 직접 담화하시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만큼 수령님께서는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의 사업을 중시하시였던것이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마지막으로 그의 손을 다정히 잡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장정환동무, 이제부터 미제와 코를 맞대고 싸우게 되는데 언제든 배심이 든든해야 돼. 동무의 배심이자 곧 우리 인민군대의 존엄이란 말이요. 알겠소?》

순간 그는 총신처럼 허리를 곧추 펴며 쩡쩡하게 대답올렸다.

《예, 알겠습니다. 수령님! 우리 인민군대의 존엄을 걸고 배심든든히 싸우겠습니다.》

그때부터 총포성이 없는 치렬한 싸움터에서 단 한순간도 마음에 굴곡이 있어본적이 없는 그였다. 그런데 오늘 그 알량한 처남녀석이 일을 저질렀으니··· 이제 수령님앞에 무슨 면목으로 어떻게 나선단 말인가?···

운전사가 그에게로 차를 가까이 들이대며 연방 경적소리를 빵―빵 울렸다. 그러나 그는 운전사에게 손을 홱 내젓고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