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5

책제목:운명
 
 

제 1 장

5

 

1959년 7월.

그때 외무상으로서 모스크바에 가있던 남일은 당시 쏘련내각 제1부수상이였던 미꼬얀과의 회담을 취소하고 즉시 귀국하라는 지시를 받았었다. 오늘처럼 수령님께서 직접 그렇게 명령하신것이였다.

그때 남일은 수령님께서 왜 당장 회담을 취소하고 돌아오라고 하셨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회담이 비뚤어졌던것이다. 실로 뜻밖의 문제가 론의된 회담이였다. 우리의 전후복구건설을 위해 원조를 준다고 법석 떠들어대던 쏘련이 돌연 미꼬얀의 작은 입을 빌어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무기와 탄약 등으로 진 빚을 물라고 을러댄것이였다.

《조선의 경제장성률이 높은데 인젠 전쟁때 진 빚을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꼬얀이 한쪽눈을 째긋하고 남일을 응시하며 오금을 박았었다. 《조선동지들이 피흘려 싸울 때 진 빚이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빚이란 인정사정 모르는 아주 고약한 저울눈금과 같은거라구 할가.··· 에― 제때에 물지 않으면 점점 리자만 늘어나고 늘어난 수자만큼 저울추는 더 무거운걸 올려놓게 되지요.》

실로 랭랭하고 오만한 말투였다. 피가 끓어올랐다. 미꼬얀이 아무 주저도 없이 상대를 업수이 여기며 그 말들을 내뱉았던것이다.

격동한 남일은 무어라고 웅얼거렸지만 자기도 알아듣지 못할 혀를 깨무는 소리일뿐이였다. 우리에게 원조를 주겠다던 쏘련이 약속한 그 원조액과 맞먹는 엄청난 액수를 당장 물라고 하니 숨이 막히고 잔등까지 아프게 죄여들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미꼬얀을 반박하는 정정당당한 론거를 한마디도 찾지 못했었다.

그날로 그는 비행기를 타고 조국에 날아왔다. 그러나 그에게 즉시 귀국할데 대한 명령을 주신 수령님께서는 그가 돌아온 후에도 여러날동안 계속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시지 않았다. 그를 현지에 부르시지도 않았다.

하여 그는 스스로 결심하고 차를 달렸다. 수령님의 현지지도로정을 따라 최고속으로 차를 몰아갔었다. 아직 그의 한생에 그때처럼 미친듯이 차를 몰아댄적은 있은것 같지 않았다. 수령님을 아프게 해드린 죄책감때문에 마치 불이 달린 도화선이 가슴 한복판을 팍―팍 지지고 태우며 속으로 파고드는것만 같아 견딜수 없었다. 한시라도 수령님을 만나뵙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는 마음··· 사등뼈가 부러질지언정 죄를 지은만큼 매를 맞지 않고서는 견디여낼것 같지 못했다. 드디여 땅거미가 지고 캄캄한 어둠이 사위를 뒤덮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속도를 죽이지 않았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시각 수령님께서는 렬차를 따라 곤두박질하듯 달려오는 남일의 차를 이윽토록 바라보고계시였다고 한다.

《저―기 우릴 따라오는게 누구의 차인것 같소?》

그때 수령님께서 기를 쓰고 쫓아오는 승용차를 보고 수행원들에게 물으시였다. 허나 누구도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

《남일동무요.》 하고 수령님께서는 가슴이 아프신듯 무겁게 말씀하시였다. 《지금 나를 만나겠다고 저렇게 따라오고있소.》

렬차는 어느 한 중심역에 가서야 멎었다. 때마침 남일은 대문이 열린 화물역쪽으로 질풍같이 차를 들이몰았다. 차바퀴밑에서 연기가 나고 삐―익! 하는 아츠러운 소리가 귀아프게 울리고··· 마침내 차에서 내린 그는 철길을 뛰여넘어 수령님께서 타고계신 렬차앞에까지 달려갔으나 그 이상은 더 움직이지 못하였다. 비로소 자신이 어데로 달려왔는가를, 무슨 당치 않은 일을 저지르고있는가를 느꼈던것이다. 땀에 젖던 몸이 얼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인 일인가. 수령님께서 친히 렬차에서 내리시는것이 아닌가?!··· 순간 남일은 흠칫 몸을 떨었다. 어망결에도 깊이 머리숙여 목메인 인사를 드리였다.

《수령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제가··· 이 미거한 남일이 꼭 말씀드릴 일이 생겨서···》

더 말씀드릴수 없었다. 수령님께서 이윽토록 아무말씀없이 자기의 상기된 얼굴을 지켜보시기때문이였다. 아니, 그때문만이 아니였다. 어릴 때부터 이국땅을 헤매이며 곡절도 많은 길을 걸어온 자기에게 믿음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여 어엿한 교육자로, 군사가로, 외무상으로까지 키워 내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께 죄를 짓고 찾아뵙기때문이였다.

《남일동무.》 마침내 수령님께서는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인젠 동무가 당과 국가앞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겠소?》

《예, 수령님···》

기여들어가는 목소리였다.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나는 미꼬얀이란 사람이 우리가 전쟁때 진 빚을 물라고 했을 때 동무가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정말 실망했소. 아니, 너무 가슴이 쓰려서 그날 밤은 종시 잠을 이루지 못했소.》 몹시 갈린 음성이였다. 《왜 그렇게도 할말이 없던가? 그래 우리가 피흘리며 미제와 싸워 사회주의진영의 안전과 아시아의 평화를 지켜주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기와 장비를 좀 대준걸 가지구 그런 엄청난 빚값을 불러대고있으니 이것이 과연 옳은 처사인가? 그래 한 나라의 외무상이란 사람이 이렇게 사리를 따져볼 엄두도 못냈단 말인가?!···》

격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시는듯 했다. 이윽고 조용히, 안타까우신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남일동무, 좀 생각해보오. 동무야 전쟁때 총참모장으로서 전전선을 한눈에 굽어보며 호령하던 사람이 아닌가. 정전담판장에선 미국놈들을 되게 다불러대여 온 세상에 조선의 본때를 보여준 남일대장이구, 엉?··· 그런데 지금은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소? 그네들이 말하는것처럼 친형제간이여서 할말도 못한다는거요? 왜서 그 사람들앞에서는 주눅이 들어 입이 얼어붙는가 말이요, 엉?···》

이어 그이께서는 1949년 3월 우리 나라와 쏘련사이에 경제적 및 문화적협조에 관한 협정이 조인된 다음 쓰딸린이 만찬회를 차리고 축배를 교환하면서 자기네 간부들에게 한 말을 상기시키시였다.

《동방에 민주조선이 탄생한것으로 하여 쏘련의 동쪽변강의 안전이 믿음직하게 담보되였습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쏘련이 조선에 제공하는 원조는 사실상 엄밀한 의미에서 원조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한 지출이라는것을 우리 일군들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그 일을 상기시키시면서 그이께서는 이렇게 계속하시였다.

《그래 전쟁때에 쓰딸린이 준것을 가지고 오늘 흐루쑈브대에 와서 옛날 빚을 물라고? 지금 우리의 전후복구건설을 위해 원조하겠다고 하는 그들이 그때의 빚을 물라고 하는 속심이 뭔가? 세상에 원조를 준다고 소리쳐놓고는 한푼도 내지 않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어떻게 그럴수 있는가?··· 전쟁때엔 그들이 얼마나 가슴조이며 우릴 지켜보았는가? 우리가 미국놈들한테 먹히울가봐 얼마나 안절부절했었는가 말이요. 남일동무, 리성적으로 생각해보오. 그래 전쟁때 우리가 흘린 그 많은 피와 참혹한 희생의 값을 그런 너절한 돈냥으로 감히 계산할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런 리기주의손때가 묻은 수판알로 감히 우리의 피값을 계산할수 있는가 말이요?···》

우뢰치는 음성··· 눈앞에서는 연송 마른 번개가 시퍼런 불살을 날리고있었다. 남일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머리를 푹 떨구고 피가 나게 입술만 깨물고있었다.

《동무의 머리속엔》 하고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아직도 대국을 섬기는 사대와 굴종의 낡은 사상이 남아있는것 같소. 내가 늘 말하는것이지만 대국주의는 큰 나라의 민족리기주의이고 사대주의는 작은 나라의 민족허무주의의 표현이요. 그래 아직도 이 말의 뜻을 다 모르겠소?》

남일은 여전히 입을 열지 못하고있었다. 그이께서도 그것을 바라시지 않았다. 분노의 감정을 담아 그이께서는 계속 엄하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남일이, 우린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야 해. 작은 나라라 해서 민족적인 존엄까지 작아질수가 있겠는가? 아니, 그럴수 없소.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미제와 싸워이긴 조선사람들인데 무엇이 모자라 큰 나라라구 해서 머리를 조아리겠는가. 뭣때문에 공동의 위업을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우고도 빚진 놈이 되여 남의 눈치나 살피면서 노상 허리를 굽히고 살아야 하겠는가?···》

남일은 가슴이 터지는것만 같았다.

수령님께서도 마냥 답답하신듯 목깃을 헤쳐놓으시였다.

《동무가 그럴줄은 정말··· 몰랐소. 솔직히 말해서 동무같은 사람한테 외무상직을 그냥 맡겼다가는 나라가 허리를 펴지 못하겠소.》

돌이켜보면 그때 수령님의 음성은 준엄하고 서리차기만 한것이 아니였다. 무엇인가 뜨거움에 젖어있었다. 그것은 분노이기 전에 련민이였고 련민이기 전에 죄지은 자식에 대한 저미는듯 한 아픔이였다. 그리고··· 눈물이였다. 그렇다, 남일은 오랜 세월 수령님을 모시고 살면서 그이의 눈물의 세계를 자주 체험하군 했었다. 그러나 그때처럼 가슴이 젖어들기는 처음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미 그를 보지 않고계시였다. 먼 밤하늘가로 눈길을 옮기시는데 그것은 근엄하면서도 쓰라린 아픔이 실린 괴로운 눈빛이였다. 사대와 굴종이라면 치를 떠시는 우리 수령님이시였던것이다.···

그후 수령님께서는 모스크바에 가신 기회에 흐루쑈브를 만나 직접 그 문제를 들이대시였다. 그러자 흐루쑈브는 천만뜻밖이라는듯 두눈을 번득이며 흥분하여 떠들었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피흘려 싸워온 조선동지들한테 감히 전쟁때 진 빚을 물라고 강박하다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미꼬얀이야말로 나쁜 놈이라고밖에 달리는 말할수 없습니다. 예, 천하에 나쁜 놈!···》

그는 치미는 분노를 참을수 없는듯 부르쥔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기까지 했다.

사실 그때 흐루쑈브는 그런 서투른 연기라도 놀지 않을수 없는 처지였었다. 세계의 정치무대에서 가장 자주적인 립장을 견지하고있는 조선로동당과 그의 령도자 김일성동지의 지지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있었던것이다. 전적인 지지까지는 기대하지 못한다 해도 하다 못해 김일성동지께서 중립이라도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던 그였다. 그만큼 쏘중관계를 비롯하여 국제공산주의운동과 세계적인 문제들에서 갖가지 풀기 어려운 정치, 군사, 외교의 바오래기들이 그의 목을 사정없이 졸라매고있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