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16

책제목:운명
 
 

제 1 장

16

 

1964년 11월 5일.

모택동은 베이징 중남해의 의년당에서 정치국회의를 열었다.

쏘련지도부의 교체와 관련한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모택동은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조성된 정세를 심중히 분석하면서 엄중한 단계에 이르고있는 중쏘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고있었다. 심각한 회의였다. 류소기, 진의, 등소평이 먼저 발언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지금정세하에서는 쏘련의 새 지도부와 먼저 접촉할 기회를 마련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했다.

모택동은 이윽토록 입을 열지 않았다. 가슴속에 흐르는 감정은 그것을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격하게 사품치는 물결처럼 수정주의자들에 대한 반감이 마음속에서 길길이 뛰여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는 먼저 쓰딸린의 서거이후 흐루쑈브가 실권을 틀어쥐면서부터 의견상이가 심해지고 상처가 깊어지게 된 중쏘관계의 력사를 더듬어보았다.

흐루쑈브가 처음 중국에 날아온것은 1954년이였다. 희멀건 얼굴에 교만과 위선을 감춘 얄궂은 웃음을 가득 담고 반갑게 손을 흔들며 비행기에서 내리던 그였다. 그는 아직 쏘련고위지도부내에서 발을 든든히 붙이지 못했기때문에 중국의 지지가 절실히 필요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예상치 못했던 수많은 선물들까지 비행기로 실어왔었다. 지어 회담에 들어가 국제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시작하자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우리한테 무슨 요구되는것이 없습니까? 기탄없이 말해주시오.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무엇을 할수 있겠는지?···》

시종 웃고있던 흐루쑈브의 두눈···

모택동은 신중한 안색으로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뜻밖의 말을 하였다.

《우리는 원자력, 핵무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오늘 이 측면에서 우리가 도움을 받을 가능성에 대해 먼저 의논했으면 합니다.》

흐루쑈브의 안색이 돌변했다. 바람이 초불을 꺼버리듯 그의 얼굴에 떠돌던 웃음을 지워버렸다. 하여 그의 입에서는 괴로운 한숨이 초불뒤의 가는 연기처럼 피여나고있었다.

《그걸 만들자면···》 그는 무엇인가 재빨리 생각을 굴리며 말하였다. 《돈이 탁없이 많이 드는것은 물론 시끄러운 일도 많이 생길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사회주의대가정에 핵우산이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회주의나라들이 다 그걸 가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모택동은 아무말없이 잠자코 담배만 피웠다. 그러자 줄곧 그의 표정을 살피던 흐루쑈브가 다시 눈웃음을 치며 자신만만한 어조로 계속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걸 만들자면 우선 돈이 많이 들거니와 전기도 굉장히 들고 인력도 아주 많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만들어놓은 물건은 쓰지도 먹지도 못하고 저장만 해야 하는데 그것도 얼마후엔 인차 로후해져서 다시 제조하지 않으면 안되기때문에 랑비가 대단합니다. 그래서 우리 쏘련측의 의견은 당신들이 핵무기를 만드는 대신 평화건설을 다그쳐 경제와 인민생활개선에 노력하는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그게 더 훌륭한 과업입니다. 가령 당신들이 핵무기를 만들기 시작하면 중국의 모든 잠재력을 총동원해도 모자랄겁니다. 그러면 귀국의 인민경제와 인민생활은 파탄을 면치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럴가요?···》

모택동은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흐루쑈브에게 도와줄 생각이 꼬물만큼도 없다는것, 그가 지금 허세를 부리고있지만 속으로는 중국을 얕잡아보는 한편 두려워하기도 한다는것을 간파했던것이다.

며칠후 중국의 남방참관을 마치고 돌아온 흐루쑈브는 모택동과 단독회담을 할 때 뜻밖에도 전혀 다른 문제를 화제로 꺼들었다.

《모택동동지, 우리는 중국이 쎄브에 가입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사회주의진영내에서의 경제합작을 더 힘있게 촉진할수 있고 중국의 경제발전에도 대단히 유리할것입니다.》

그는 여러가지 실례를 들어가며 쎄브의 유익성과 자기의 원대한 구상을 열이 나서 력설하였다.

모택동은 참을성있게 듣고나서 조용히 말하였다.

《중국은 거기에 참가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땅이 크고 인구도 많고 자원도 무진장하기때문에 모든것을 자체로 발전시킬수 있습니다.》

흐루쑈브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흥심을 잃어버린것이다. 대신 점차 타오르기 시작한 분노와 적의를 표현하지 않으려고 모질게 입술을 깨물며 참고있었다.

이렇듯 날이 갈수록 중국과 쏘련이라는 쌍두마차는 서로 딴 방향을 향해 달렸으므로 점점 더 소란스럽게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분렬과 충돌의 비탈길로 굴러내릴 그날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후··· 1956년 2월 25일 쏘련공산당 제20차대회의 마지막날에 있은 흐루쑈브의 총화보고는 쏘련뿐아니라 전세계를 놀래웠다. 세인들이 예견치 못한 돌발적인 정치지진이 일어났던것이다. 그때 흐루쑈브가 한 보고는 바로 국제공산주의운동사에 하나의 지울수 없는 치욕으로 기록된 유명한 반쓰딸린비밀보고였었다. 그 보고에서 흐루쑈브는 쓰딸린의 전반생의 혁명활동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긍정하는척 하고 기본은 쓰딸린이 범한 과오들에 대하여 온갖 죄명을 다 만들어내였다.

그때 세상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먼저 쓰딸린을 《천재적수령》, 《자애로운 어버이》라고 칭송한 사람이 흐루쑈브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수천수만군중이 참가한 집회의 연단에 올라 《바로 당신입니다, 쓰딸린동지! 전세계에서 맑스―레닌주의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앞으로 전진해가신분이 바로 이오씨프 위싸리오노비치 쓰딸린 당신입니다!―》 라고 목메인 소리로 감동깊이 웨친 사람이 바로 흐루쑈브라는것도 낱낱이 기억하고있었다.

모택동은 1957년 쏘련을 방문했을 때의 일도 상기해보았다.

어느날 식사도중 흐루쑈브가 쓰딸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였었다.

《쏘도전쟁영화들을 보셨겠지요? 그건 모두 거짓입니다. 쓰딸린은 전혀 싸움을 지휘할줄 모르는 위인이였습니다. 조국전쟁의 승리는 그와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가 간섭함으로써 아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군 하였습니다.》

모택동은 아무말없이 식사에만 열중하는체 했다. 반면에 흐루쑈브는 모처럼 마련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쓰딸린에 대한 험담을 계속 늘어놓았다. 자기가 쏘도전쟁때 서남전선에서 하리꼬브지역에 대한 작전행동을 당장 중지할데 대하여 정확히 판단하고 결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쓰딸린이 그것을 뒤집어엎었다는것, 쓰딸린은 지도를 보지 않고 지구의를 굴리며 작전계획을 작성하기때문에 추상적인것이 많다는것, 그래서 총참모장에게 부탁하여 쓰딸린에게 정황을 잘 분석해달라고 부탁했건만 쥬꼬브대장은 쓰딸린이 두려워서 말 한마디 못했다는것을 장황하게 신이 나서 이야기하였다.

《그러니 별수 있습니까. 내가 직접 쓰딸린에게 여러번 전화를 걸지 않을수 없었지요. 그랬건만 쓰딸린은 끝까지 자기의 고집을 굽히지 않더군요. 결과 서남전선은 무너지고말았지요. 정말 무례하고 조폭하기 짝이 없는 위인이였습니다.》

모택동은 식사만 할뿐 끝까지 반응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당시 중장밖에 안되던 흐루쑈브가, 수많은 상장, 대장, 원수들속엔 감히 끼울념도 못하던 그가 쏘련붉은군대의 최고사령관인 쓰딸린이나 쏘도전쟁의 명장 쥬꼬브보다 자기가 더 군사적으로 뛰여났다고 자랑하는것이 역스럽기 그지없었다. 더우기 수많은 대규모적인 전역들을 지휘해본 모택동 자기앞에서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자신의 군사적재능을 뽐내는것이 가련해보이기까지 했다.

마침내 모택동은 나프낀으로 입술을 닦고나서 이렇게 유모아적으로 말했다.

《흐루쑈브동지, 나의 식사전역은 이미 끝났는데도 당신의 서남전역은 아직 승부를 가리지 못했구만요.》

실로 교만방자한 흐루쑈브였다. 모택동은 이러한 그에 대하여 참을수 없었다. 하여 그는 쏘련공산당 제20차대회가 있은 직후에 《프로레타리아독재의 력사적경험》이라는 글을 써서 중국공산당기관지에 발표하였다. 즉시 서방의 신문들이 그 내용을 꺼들며 《중쏘사이에 론전이 시작되였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모택동은 이에 그치지 않고 1958년 흐루쑈브가 중국에 왔을 때 직방 이렇게 말하였다.

《흐루쑈브동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장점과 단점, 우점과 결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쓰딸린은 세인이 주목하는 국제적인 인물이고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므로 전면적으로 부정해버릴순 없습니다. 당신이 쓰딸린을 전면부정해버리는것은 제국주의자들에게 우리 사회주의진영을 공격하는 포탄을 섬겨주는 격일뿐입니다.》

그때 충동적인 흐루쑈브가 열화같은 언변으로 끝까지 자기의 생각을 고집한것은 물론이다. 그의 청각기관은 이미 남의 말을 듣는 구멍은 땜질해버린듯싶었다.

그것이 바로 6년전의 일이다. 그러면 지금은?··· 사실 쏘련의 새 지도부성원들은 바로 흐루쑈브와 같이 정책을 론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던 그들이 과연 흐루쑈브를 전면부정하고 새 로선을 내올수 있겠는가?···

마음이 번거로와진 모택동은 이어 뽈스까, 마쟈르사태가 일어났을 때의 일도 더듬어보았다. 그 사변이 일어났을 때 주은래가 모스크바에 가서 흐루쑈브에게 말했었다.

《흐루쑈브동지, 뽈스까, 마쟈르사건의 주되는 원인을 우리는 쏘련측의 대국배타주의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것은 즉시 화약통같은 흐루쑈브를 폭발시켰다. 그는 주은래가 말하는 문제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부 형제국가수반들과 지어 그들의 부인들 이름까지 꼽아가면서 저돌적으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의 말속에 숨은 뜻을 번역해보면 마치 동유럽의 일부 나라 지도자들과 부인들때문에 사회주의진영의 공동부엌칸에서 뽈스까와 마쟈르의 국가마가 깨여지는 바람에 이웃들까지 뜨거운 국물을 뒤집어쓴듯 했다.

흐루쑈브는 이렇게 동유럽의 오랜 전우들과 형제들의 영상을 사나운 이발로 마구 짓씹어놓고 잔뜩 침까지 게발라놓고서야 직성이 풀린듯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시작될 주공전선을 위한 포병준비사격에 불과한것이였다.

한순간 숨을 돌리고··· 드디여 그는 주은래의 눈앞에까지 바투 다가섰다. 주타격방향에로의 공격진출이였다. 때가 된것이다.

《알아두시오, 주은래동지.》 흐루쑈브의 입에서는 벌써 침방울들이 튀여나오기 시작했다. 《당신은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할 권리가 없습니다. 여하튼지간에 난 로동계급출신이고 당신은 부르죠아출신이란 말이요! 알겠습니까?》

주은래는 시종 랭철하였다. 조금도 서둘지 않고 그는 준렬한 어조로 흐루쑈브가 평생 잊을수 없고 또 잊어서는 안될 의미깊은 말을 하였다.

《옳습니다. 흐루쑈브동지. 당신은 로동계급출신이고 나는 부르죠아출신입니다. 허나 당신과 나에겐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과 내가 모두 자기 계급을 배반했다는 그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마지막 그 말 《알겠습니까?》 라고 한것은 흐루쑈브의 말투를 본딴것이였다. 당황한 흐루쑈브는 할말을 찾지 못했다. 입술만 바르르 떨고있을뿐··· 번득이던 두눈의 동공도 얼어붙고말았다.

이후 1958년에 중쏘관계는 더욱 심각해졌다. 모택동의 눈으로 볼 때 당시 쏘련은 미국과 손을 잡고 함께 세계를 좌우지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있었다. 그러나 중국과 조선, 윁남 등 나라들은 시종일관 반미구호를 높이 웨쳤다. 특히 쏘련은 대만해협정세와 조선반도정세를 우려했다. 대만에서는 미군함선들이 제멋대로 날치는데 대한 경고로 중국이 금문도에 포사격을 가하였고 조선에서는 38°선에서 무력충돌의 불씨가 날이 갈수록 거세게 타오르고있었는데 이 모든 초긴장상태의 요인들이 당시 미국방문을 앞두고있던 흐루쑈브를 심히 괴롭히고있었다.

미국을 방문하기 전 흐루쑈브는 중쏘쌍방이 체결했던 새 국방기술에 관한 협정을 페기해버리고 중국에 원자탄생산기술을 제공하는것을 최종적으로 거부했다. 이에 대한 소식을 받은 모택동은 격노하였다. 그가 그토록 격분에 몸을 떤 일은 지금껏 있은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동지로, 형제로 믿고싶었던 쏘련으로부터 호되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던것이다. 하지만 그는 얼마후 미국방문을 마치고 베이징에 날아온 흐루쑈브에게 일체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흐루쑈브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평화공존》의 총로선을 취할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자기의 특기인 열화같은 웅변을 토하는것으로써 중국의 지도부를 설득시키려 했다. 허나 회담과정에 차츰 론쟁이 심화되자 그는 돌변하여 중국―인디아간의 국경분쟁을 꺼들며 중국을 공격해나섰다. 인디아와 무력충돌을 하면 인디아를 미국편으로 몰아붙이는것으로 되지 않겠는가, 그까짓 풀도 자라지 않는 황페화된 땅 몇뙈기때문에 무력충돌까지 한다는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 황당한 일을 벌려놓았으니 사회주의진영의 체면이 어떻게 됐는가?! 하고 비발치듯 비난의 몰사격을 퍼부었다.

모택동은 그의 독설을 인내성있게 들어주었다. 상대가 열을 올릴수록 그는 더 침착해지는 특기가 있다. 마침내 흐루쑈브가 입을 다물자 그는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땅 몇뙈기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원칙문제요.》

흐루쑈브가 또 뭐라고 말하려는데 격동된 진의가 참다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인디아군이 우리 국경을 넘어 침략했는데 그래도 멍청하니 앉아있어야만 한단 말인가? 그런데 같은 사회주의국가인 쏘련은 왜 그때 우리를 반대하고 인디아의 부르죠아편에 섰는가? 하고 격한 어조로 들이대였다. 진의의 반격에 성이 독같이 난 흐루쑈브는 잔뜩 뒤틀린 얼굴로 독살스럽게 웨쳤다.

《당신 왜 큰소리요? 군사직급을 따지면 당신은 원수이고 나는 중장이지만 당내에서는 제1비서, 그것도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란 말이요!》

그들은 노상 형제당들에 대고 이렇게 말하군 한다. 여느 나라 당도 아니고 《그것도 쏘련공산당》인데 감히 《형님당》에 대고 삿대질인가? 하고···

이후 쏘련은 중국과 체결하였던 계약들을 모조리 취소하고 중국에 나와있던 전문가들까지 전부 철수해갔다. 이것은 새로 일떠서고있던 중국에 심대한 타격으로 되였다. 쏘련은 이에 그치지 않고 중국과 완전히 결별하고 서방과 화해하는 최종적인 결정을 내렸다. 미국과 영국대표들을 모스크바에 청하여 《대기, 우주공간 및 수중에서의 핵무기시험금지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였던것이다. 이로 하여 중국은 핵시험을 할 명분도 그 출로도 다 잃게 되였다.

그때 모택동은 주은래에게 말하였다.

《그들은 우리를 무시하고 쩍하면 엄포를 놓고있소. 우리에겐 원자탄이 없지만 저들에겐 있다는거지!··· 보시오.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에게 핵무기가 없으니 남들한테 때없이 억울하게 얻어맞는 신세가 되고있단 말이요!》

주은래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지금이 관건적인 시기입니다. 절대로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에게 난관은 많지만 극복 못할 정도는 아니지요.》

그것은 오래전부터 준비해오던 그 핵문제를 결단코 본격적으로 밀고나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옳소. 문제를 바로 그렇게 봐야 하오.》 모택동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당중앙은 즉시 이에 대해 토의결정하고 힘자라는껏 내밉시다. 백년이 걸린다 해도 우린 기어이 만들어내야만 하오!》

하여 중국은 오늘 원자탄을 만들고 그 시험에서도 성공하였다. 인제는 더 배심있게 나갈수 있다. 그렇다고 허세를 부려서는 안된다. 허세란 속이 빈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헛기침일뿐이다.

깊은 생각에 잠긴 모택동은 언제부터였는지 토론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있었다. 토론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조차도 그는 알지 못하고있었다. 정치국위원들모두가 모택동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으므로 입을 다물고있었다.

《주석동지.》

마침내 주은래가 조용히 불렀다.

《응?!》 비로소 자기 생각에서 돌아온 모택동은 천천히 주은래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래 이럴 때 주은래동무 생각엔 어떻게 하는게 좋을것 같소?》

주은래는 이미 대답이 준비되여있었다.

《저도 류소기, 진의, 등소평동지들과 같은 생각입니다. 주석동지. 먼저 기회를 보아가며 쏘련당의 새 지도부와 접촉해보는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되 꼭 중쏘간의 의견상이를 풀고 관계를 회복하는것을 전제로 삼고 대화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음···》

모택동은 탁우의 담배갑을 끄당겨 담배를 한대 꺼내들었으나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손안에 꼭 움켜쥐였다. 담배가치가 부스러지며 짓이겨진 가루가 손가락짬으로 푸실푸실 떨어지는것도 그는 알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정치국위원들모두가 입을 다물고 그에게 눈길을 주고있었다. 마침내 모택동이 머리를 쳐들었다. 사람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그리고 마디마디에 힘을 주며 그는 말했다.

《좋소. 모두의 의견이 그렇다면 한번 더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마련해봅시다.》

 

×

 

모택동은 이날 11월 5일, 자신과 류소기, 주덕, 주은래의 련명으로 된 축전을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냈다.

그 회의가 있은후 11월 7일 10월혁명기념일에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주석이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인 류소기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이며 국무원부총리인 등소평이 참가한 연회에서 부총리 팽진이 로씨야에서의 10월혁명의 력사적의의에 대한 감동깊은 연설을 하였다. 쏘련의 새로운 지도부에 보내는 화해의 메쎄지였다.

그보다 앞서 11월 5일 주은래를 단장으로 하는 중국공산당 및 정부대표단이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몇차례 진지한 회담이 있었으나 쏘련측은 흐루쑈브를 벼락같이 철직시킨 리유와 근거에 대하여 좀처럼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주은래가 기지를 발휘하여 화제를 이끌어내여서야 더는 회피할수 없음을 알게 된 쏘련측은 미꼬얀을 내세워 이렇게 말하게 했다.

《에― 솔직히 말하여 중국공산당과의 의견상이문제에서 우리는 흐루쑈브와 관점이 일치합니다.》

중국대표단은 실망하고 격분하였다. 하지만 주은래는 끝까지 관계회복을 목적하여 인내성을 발휘하기로 했다.

다음날 크레믈리궁전에서 성대한 연회가 진행되였다. 이전의 연회와는 판다른것이였다. 그때에는 연설과 담화가 위주였었다. 오죽했으면 모택동이 어느 한 연회가 있은 후 우린 앞으로 이렇게 하지 말자, 별로 차린것도 없이 박수만 치다보니 손이 다 아플 지경이라고 했겠는가.

허나 이번의 연회는 화려하고 풍성했다. 주은래는 연회에서 쏘련의 최고지도자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후 쏘련원수들과도 만났다. 담화가 끝나고 주은래가 자리를 뜰 때 쏘련측에서 말리놉스끼원수가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나서더니 뜻밖에도 모택동을 모독하는 말을 지독한 술내와 함께 포연처럼 내뿜었다.

주은래는 아연실색했다. 주은래는 한평생 변심없이 모택동을 받들어왔었다. 진심으로 모택동을 내세우면서 한때 엥겔스가 그랬듯이 자기는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는 제2바이올리니스트이라고 겸허하게 말하군 했었다. 그러한 주은래였으므로 걸음을 멈추고 불이 이는 눈으로 말리놉스끼를 쏘아보며 한손을 창끝처럼 그의 가슴팍으로 내질렀다.

바로 그때 주은래의 그림자처럼 뒤에서 붙어오던 하룡원수가 그들사이에 맹수처럼 뛰여들며 노성을 터쳤다.

《뭐, 뭐가 어쨌다구? 어디 다시한번 말해보오, 엉?!···》

흔히 말하는 사회주의대가정에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던 일이였다. 그 즉시 주은래의 뒤를 따라 전체 중국대표단성원들이 연회장에서 퇴장하였다.

다음날 주은래는 말리놉스끼의 도발적발언에 대하여 쏘련측에 강력히 항의하였다. 바빠난 브레쥬네브가 급히 변명하였다.

《주은래동지, 그건 말리놉스끼가 그만 취중에 한 소리입니다.》

《아니, 그건 취중취담이 아니라 취중진담이였습니다.》 하고 주은래는 엄하게 못박았다. 《이것은 결코 말리놉스끼 한 개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나는 이것이 바로 현쏘련지도부의 속생각이기도 하다는것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이전에 중국을 통제하고 수정주의, 대국주의를 하며 헛배가 불러있던 흐루쑈브식의 오만이 토해낸 일종의 게트림이라고 말입니다.》

신랄하고 무자비한 평가였고 준엄한 분석이였다. 브레쥬네브의 얼굴은 점점 더 벌거우리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거듭 변명했으나 주은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여기엔 꼬물만큼한 리해도 아량도 필요없다. 이제 여기서 쏘련사람들이 말하는 그 무슨 《순간의 실수》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은 그 무슨 용서와 타협의 술잔을 찧게 될것인즉 그것이야말로 중국의 국가적 및 민족적존엄마저 술에 타먹는 치욕의 잔, 굴종의 잔, 더러운 배신의 잔으로 될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 주은래는 담판일정을 서둘러 끝낸 다음 팽진만 남겨놓고 귀국의 길에 올랐다. 그가 베이징비행장에 내렸을 때 수만군중의 환호소리, 북소리가 요란한 속에서 어린 소녀가 달려나와 꽃다발을 드렸다. 모택동이 직접 류소기, 주덕, 등소평 등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을 이끌고나와 친히 그를 영접하였다.

주은래는 얼굴에 함뿍 웃음을 담고 모택동과 함께 환영군중들속을 한바퀴 돌고난 후 수도의 민병들과 함께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것은 주은래의 마지막쏘련방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