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13

책제목:운명
 
 

제 1 장

13

 

이날 김일성동지께서는 3시간이 넘게 곡우리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알곡 정당수확고를 높일데 대한 문제로부터 파종계획을 바로 세우고 2모작을 하는 문제 등을 의논하시며 논두렁길과 그루조밭의 등성이에로 난 최뚝길에까지 끝없이 걸음을 이어가시였다.

해질무렵에야 농장벌을 떠나시였다. 그러나 평양에로 가는 큰길이 아니라 곡우중학교에로 난 달구지길로 차를 돌리시였다.

사실 곡우중학교는 그이께서 전후의 제일 어려울 때 다녀가신 곳이다. 그때 그이께서 돌아보신 그 학교의 건물은 파편이 박혀있거나 군데군데 살점이 떨어진 기둥감들과 시꺼멓게 불에 그을은 서까래들을 겨우 모아 벽체를 세우고 지붕을 얹은것이였다. 교과서도 별로 없고 낡은 도서들을 재물에 삶아 인쇄잉크를 지워낸것이 대부분 학생들이 쓰고있는 학습장이였다. 그날 더더욱 그이의 가슴을 아프게 저민것은 학생들의 람루한 옷차림이였다. 군데군데 기운 옷을 입고있는것이 부끄러워 그이앞에서 자꾸만 작은 손바닥으로 그것을 가리려고 애쓰던 학생소년들··· 허나 오늘은 많은것이 달라졌다. 모든 아이들이 하나같이 새 교복을 입고있는것이였다.

《아버지원수님!―》

아이들은 목멘 소리로 웨치며 발을 동동 구르고있었다. 바로 그때 귀밑머리가 희슥희슥한 한초가 황황히 달려나왔다. 전후의 그날에 오셨을 때 그이께서 몸소 수업까지 참관하신바 있는 그 력사교원이였다.

《아버지원수님!》 하고 그는 아이들과 꼭같이 울먹이며 인사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전··· 이 학교의 교장 한초입니다.》

《아, 한초선생! 인제는 교장선생님이 되였구만?!》 그이께서는 무등 반가와하시였다.

《그럼 그때 맡아하던 력사과목은 지금 누가 맡고있습니까?···》

《력사과목은 지금도 제가 맡고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수령님께서는 재빨리 새롭게 일신된 건물내부를 둘러보며 중앙현관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정말 몰라보게 달라졌소. 그새 학교가 번듯해졌구만!》

《아버지원수님께서 보내주신 건설물자를 싣고온 인민군대동무들이 학교를 이렇게 개축하였습니다.》

《음···》

그때 누구인가 수령님곁에 바싹 붙어있는 학생들을 손짓으로 제지시키고 어데론가 쫓아보내였다.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애들은 왜 쫓아보냅니까?》

한 녀교원이 급해하며 말씀드렸다.

《저 학생들은 과외예술소조원들입니다. 빨리 가서 준비하라고 일렀습니다.》

《과외예술소조?》

《예, 아버지원수님께 우리 학생들이 준비한 예술소조공연을 꼭 보여드리고싶습니다.》

여간내기가 아닌것 같다. 그이께서 또 물으시였다.

《음악교원입니까?》

《아, 아닙니다. 전 소년단지도원입니다.》

한초교장이 보충하여 말씀드렸다.

《음악교원이 산전산후휴가여서 이 선생이 대신하고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이께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중앙현관에 걸린 한장의 사진이 그이의 눈길을 끄시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사진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어둑시그레한 저녁이여서 잘 보이지 않는지 웃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시였다.

《여기 중앙현관에 따로 걸어놓은걸 보니 무슨 중요한 사진인것같은데?···》

이번에도 한초가 흥분된 어조로 말씀드렸다.

《예, 이 사진은 전후 우리 학교에 오신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지금 교장인 한초는 물론 교원들모두가 학생소년들이 늘 그러는것처럼 《아버지원수님》이라고 호칭하는것을 탓하지 않으시였다. 여전히 환히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음··· 그때일이 생각나오. 생각나. 그럼 어디 좀 자세히 봅시다. 불을 좀 비치시오.》

마침 기다리고있은것처럼 기록영화촬영가가 재빨리 조명등을 환히 켜드리였다. 그이께서는 안경을 끼고 사진속에 박힌 아이들의 얼굴을 한명한명 자세히 뜯어보시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험한 옷차림들이였다. 민망할 정도로 다닥다닥 기운 옷도 있고··· 하지만 그 애들은 너무 행복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있다. 싱글거리고 벌쭉거리는가 하면 입을 쩍 벌리고 가슴뻐근한 기쁨과 행복을 누를길 없어 《아!―》 하고 소리없는 감탄사를 내뿜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중의 어느 한 아이만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면 자기의 터질것 같은 기쁨이 그리로 모조리 새여나갈가봐 겁내는듯 입을 꼭 다문채 두눈만 올롱하게 뜨고 곧추 앞을 내다보고있다.

참으로 인상깊은 사진이였다.

한초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이상한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이 사진을 찍은지 벌써 10여년세월이 흘렀습니다. 그새 이 사진속의 아이들이 대학에도 가고 군대에도 나갔는데 륙해공군 어디에나 다 있습니다.》

《벌써 10여년세월이 흘러갔단 말이지.》

그이께서 깊은 감회에 잠겨 하시는 말씀이였다.

《그러니 이 애들이 인젠 몰라보게 달라졌겠구만. 참, 저 키가 크고 이마가 도드라진 학생··· 옳소, 그애요. 아주 인상깊은 애였는데··· 이름이 뭐랬드라?···》

《예, 아버지원수님께 꼭 비행사가 되겠다고 맹세드리던 최봉호입니다.》

《아, 최봉호. 기억납니다. 어머니와 어린 녀동생을 미국놈들의 폭격에 다 잃었다고 했었지.》

《예, 그날 아버지원수님께 맹세드린대로 지금 공군부대 비행사가 되였습니다.》

《비행사? 음··· 대단합니다.》

그이께서는 문득 한초가 전쟁때 부모잃은 두 아이를 데려다키웠다는것도 상기하시였다. 여기 사진속의 봉호와 또 어린 처녀애가 있었다고 했었는데?··· 그이께서는 안경을 바로잡고나서 보다 주의깊게 또 한명한명 여겨보시였다. 그러나 그 처녀애는 여기에 없다.

사진을 찍을 당시 그 애는 겨우 소학생이였었다.

《그때일이 늘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하고 그이께서는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제일 어렵던 때여서 우리 애들을 잘 입히지 못한것이 너무 마음에 걸려서 그랬는지··· 그런데 오늘 여기서 그때의 사진을 보게 되는구만.》

무엇인가 아픔이 담긴 어조로 하신 말씀이였다. 한초는 그 의미를 가늠할수 없어 두눈을 쪼프리며 죄송스러운듯 말씀드렸다.

《정말 뜻깊은 사연이 있는 사진이지만··· 우리 학생들의 옷차림이 너무 초라해서 사진이 잘되지 못했습니다.》

소년단지도원이 마치 때를 기다리고있은듯 제꺽 끼여들었다.

《아버지원수님, 그래서 저희들은 오늘 우리 학생들이 새 교복을 입고 노래부를 때··· 그때 아버지원수님을 모시고 다시 사진을 찍었으면 합니다.》

《다시 찍는다?···》

《예, 아버지원수님!》

《음···》

그이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저으시였다. 잠시 아무말씀없이 계속 사진만 여겨보시였다. 휘황한 조명등의 불빛속에 들어있는 학생소년들··· 사진속의 아이들은 비록 초라한 차림새이긴 했지만 무엇이 그리도 기쁘고 행복한지 여전히 벌쭉거리고있다.

《동무들은》 하고 그이께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저 사진에 찍힌 아이들의 옷차림이 한심해서 부끄러운 모양이구만. 그래서 새옷을 입은 아이들의 사진으로 바꾸어 달자는것 같은데···》

《예, 그렇습니다!》

《아니, 그래선 안되오. 난 반대요.》

《예?!···》

뜻밖에 무거운 침묵이 깃들었다. 숨소리도 없었다. 조명등에 날아들던 하루살이들의 가느다란 앵―앵 소리마저 잦아버린듯 했다.

《저기엔 우리의 력사가 있습니다. 고난을 헤쳐온 준엄하고도 자랑찬 력사가 말이요!···》 하고 말씀하시는 그이의 음성은 낮고도 준절하였다. 《그걸 부끄러워하면 안됩니다.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승리해온 력사인데 무얼 부끄러워한단 말이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오. 대신 가슴을 쭉 펴고 더 떳떳하게 자랑할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남보다 잘 입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하긴 했어도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를 때려부시지 않았습니까. 또 오늘은 재더미만 남았던 이 땅에 보란듯이 사회주의나라를 세우고있고··· 바로 이걸 내놓고 자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초선생, 우린 늘 학생들에게 민족적자존심과 자긍심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자존심마저 잃으면 짓밟히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다시 노예가 되고맙니다!···》

소년단지도원은 물론 한초도 죄스러움에 눈길을 들수 없었다. 심장이 졸아드는듯 했다. 전후의 어렵던 그날에도 그의 력사수업을 참관하신 수령님께서 민족적존엄과 자존심을 키워줄데 대하여 얼마나 간곡히 가르쳐주셨던가!···

전후의 그날 한초는 병자호란(163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계속됨.)때에 벌어진 광주 남한산성싸움에 대하여 수업을 진행했었다. 남한산성에서만도 애국적군인들과 인민들이 40여일간 굴함없이 싸워 적군사 7천여명과 지휘관 300여명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으나 비겁한 통치배들의 투항변절로 하여 통분하게도 나라가 유린당한 력사의 교훈에 대한 내용이였다.

수업마감에 그는 이 병자호란 이후 우리 나라에서 수많은 녀성들이 이국에 끌려가 매매되면서 갖은 굴욕을 당하던 일과 그렇게 매매되던 녀성들중 일부를 돈을 모아 도로 사서 데려오기도 했는데 이들을 《환향녀》, 즉 고향에 돌아온 녀자라는 의미로 부르던것이 차츰 녀인들을 홀대하고 천시하는 말 《화냥년》이 되였다고 그 유래까지 덧붙여 설명하였다.

수업을 끝내면서 그는 속에 가득 들어차있던 긴장과 불안의 한숨을 조용히 내그었다. 자기로서도 중학생들을 위한 력사교수로서는 나무랄데없이 잘된것 같았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가 력사교수를 실감있게 잘한다고 치하하시고나서 이렇게 물으시였다.

《선생은 왜 〈화냥년〉이란 말의 유래를 아무런 교양적의의도 없이 말해줍니까? 무엇때문에 그저 하나의 일반상식이나 알려주듯이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말해주는가 말입니다?》

《예?!···》

한초는 다시금 속이 한줌만 해졌다. 수령님께서 다시 말씀을 이으실 때까지 숨을 죽이고있었다.

《그래 〈환향녀〉 라는 말을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하며 모욕적으로 부른것이 어떤 놈들이였습니까.》 하고 수령님께서는 근엄한 어조로 계속하시였다. 《바로 비굴한 량반통치배들이 아닙니까. 저네들은 외래침략자들에게 투항하고 그들의 발밑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자기들이 지켜주지 못한 불쌍한 조선녀인들에게는 침을 뱉았단 말입니다. 이러한 사대굴종사상이 골수에 배인 량반들때문에 수수천년 우리 민족이 외세에 짓눌리고 억압받고 천대받았다는것을 왜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못합니까.》

가슴아프신 어조였다. 뜨거운 숨결이 가슴을 황황 달구는 말씀이였다. 한초는 수령님의 말씀을 마디마디 인두로 지지듯이 가슴에 새기고있었다.

《한초선생, 생각해보시오. 우리가 무엇때문에 력사교육을 한다고 생각합니까. 력사상의 하나의 일화나 하나의 유래를 통해서도 새세대들의 마음속에 민족적존엄과 강한 자주의식을 심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는것이 바로 진정한 력사교육이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한초는 눈앞에서 번개불이 번쩍인것만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로소 오늘을 위해 과거가 필요하고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과거가 필요하다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였다.

《알겠습니다. 제 그 말씀을 꼭 명심하겠습니다. 언제든 잊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맹세드리고도 10여년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또 어버이수령님앞에 죄스럽게 되였으니··· 그는 저도 모르게 혀를 깨물었다. 불시로 탄내를 마신듯 숨이 꺽꺽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나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그 죄스러움은 학생예술소조원들이 아버지원수님께 자기들의 노래와 춤을 보여드릴 때까지 그의 가슴속에 옹이처럼 박혀있었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소리 울려라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새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고운 목청으로 노래를 부르고있다. 수령님께서는 밝게 웃으며 그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계시였다.

 

우리 힘 꺾을자 그 어데 있으랴
풍랑도 무섭지 않네
백두의 넋을 이어 빛나는
내 조국 두렴몰라라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그런데 이제 우리는 또 경제국방병진이라는 어려운 길을 가야만 한다. 가혹하고 피어린 3년간의 전쟁을 겪고 재더미를 털고 일어서기까지 고생도 많았던 우리 인민이 또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다. 그래서 그이께서는 아이들이 밝게 웃으며 노래부르는 모습을 보시면서도 마음은 줄곧 무거우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가까이 앉아있는 한초에게 몸을 돌리시였다. 한초가 벌떡 몸을 일으켰으나 그이께서 손짓으로 앉도록 하시였다.

《교장선생, 이제 공연이 끝나면 우리 저 애들과 같이 기념사진을 찍읍시다.》

《예?!》

한초는 너무도 뜻밖의 그리고 너무도 아름찬 기쁨에 그만 숨이 막힌듯 헉― 하고 흐느끼였다.

《내 생각엔》 하고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이제 새로 찍게 될 사진은 아까 우리가 보던 그 옛날사진과 나란히 걸어놓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후대들이 그 사진들을 통해서도 우리가 헤쳐온 고난과 승리의 력사에 대하여 더 잘 알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초가 목메여 대답올렸다.

《알겠습니다. 아버지원수님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소년단지도원도 크나큰 감동을 이길수 없어 연신 손등으로 눈굽을 문지르며 속삭이듯 했다.

《고맙습니다. 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