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10

책제목:운명

제 1 장

10

 

수령님의 사색(1)

 

마치 쏘련에서 벌어진 정치적사변에 대한 반응처럼 뒤따라 날아온 중국 신화통신의 보도··· 이것이야말로 지난 까리브해의 위기때 흐루쑈브가 미국의 군사적공갈에 굴복한 이후 더욱더 오만해진 미제가 사회주의나라들을 말살하기 위해 발악적인 공세를 벌리고있을 때 그리고 중쏘관계가 벼랑끝으로 치닫던 때에 터뜨린 중국의 분노한 웨침이다.

사실 몇해전 미국, 쏘련, 영국 세 렬강은 한자리에 모여앉아 황급히 비핵화라는 간판을 건 전략적야장간을 차려놓고 거기에서 핵무장을 노리는 중국의 발목에 채워줄 부분적핵시험금지조약이라는 족쇄를 단조해놓았었다.

그런데··· 운명의 희롱인듯 오늘 흐루쑈브는 실각되고 중국은 핵시험에서 성공하였다. 쏘련과 중국에서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이 사변들로 하여 이제 세계는 어떤 회오리에 휘말려들것인가? 사회주의진영에는 또 얼마나 큰 정치해일이 밀려올것인가?···

격동하는 시대이다. 세계도처에서 전쟁의 검은구름장들이 계속 피여나고있다. 이러한 대결전에서 자기를 지킬 힘이 없으면 대국들에 예속되고 노예가 되고마는 법이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기에 우리는 이태전인 1962년 12월에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를 진행했었다.

바로 세계를 아연실색케 한 꾸바의 까리브해의 위기가 절정에로 치닫고 마침내 흐루쑈브가 미국의 위협공갈에 굴복하여 꾸바에 전개했던 미싸일과 중폭격기들을 전부 철수해간 직후에 있은 일이다.

전원회의 첫날이였다. 나는 먼저 참가자들에게 새로 제작한 기록영화를 보게 하였다. 지금도 조용히 기억을 더듬으면 기록영화의 장면들과 하나하나의 작은 세부들까지 생생히 떠오른다.

 

···기록영화는 먼저 화면을 가득 채우며 돌아가는 지구의로부터 시작된다. 빙그르 돌아가던 지구의가 서반구의 까리브해에서 멎자 파도 설레이는 해구로 밀려드는 미국함선들, 해풍에 휘날리는 성조기들이 눈앞으로 확대되여 안겨온다.···

미국 워싱톤.··· 미국국회에서는 대통령 케네디가 입에 거품을 물고 연설하고있다. 그가 부르쥔 주먹으로 연탁을 두드린다.

《···우리는 자기를 위협하는 적들을 결코 보고만 있지 않을것이다. 미국은 자기의 총력을 동원하여 도발자들에게 즉각 무자비한 보복을 안길것을 결심하였다.》

이어 케네디는 꾸바에 대한 해상봉쇄를 명령한다.

화면은 이어 꾸바의 수도 아바나에로 초점을 맞춘다.

아바나의 혁명광장. 여기서는 수십만의 군중들앞에서 피델 까스뜨로수상이 연설하고있다. 한손을 높이 들어 총검처럼 하늘을 찌르는 피델.

《조국이냐, 죽음이냐. 우리는 승리할것이다!》

수십만 군중이 받아웨친다.

《조국이냐, 죽음이냐. 우리는 승리할것이다!》

이어 꾸바혁명군과 민병들이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혁명광장을 행진해간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소리가 광장을 뒤흔든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혁명의 산아들
조국위해 죽는것은 영예론 삶이다

 

한편 지구의의 반대쪽 쏘련에서는 흐루쑈브가 꾸바에 전개했던 미싸일과 중폭격기들의 철수를 명령한다.

모스크바.··· 크레믈리에서 연설하는 흐루쑈브의 열띤 얼굴이 땅크를 들어 용광로에 처넣는 사나이(선전화)의 모습으로 바뀐다.

그 사나이(흐루쑈브)가 웨친다.

《땅크를 녹여 보습을 만들자!》

그 웨침소리가 차츰 미친듯 한 쟈즈음악으로 바뀐다. 자지러지는 소고소리, 색스폰과 화고트의 목메인 흐느낌소리···

《대포가 아니라 빵과 빠다를!》

목갈린 쟈즈곡에 맞추어 미친듯 춤을 추며 돌아가는 처녀총각들의 무리가 눈을 어지럽게 한다. 회오리치는 진바지들, 무릎우에까지 올라간 짧은 치마가 휘돌아가고 홀랑 드러낸 허벅지들과 가슴띠들 역시 경쟁적으로 희끗거린다. 흐루쑈브의 수정주의바람이 그들을 벌거벗기 좋아하는 로출증에 걸리게 한듯··· 그 처녀총각들이 정신나간것처럼 서로 껴안고 휘돌아가며 목쉬게 불러대는 노래 역시 색다르고 관능적인것이였다.

계속 돌아가는 지구의.

아시아가 확대된다. 남부윁남에서 미군이 화염방사기로 민가들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생매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노이에서 백발을 날리며 연설하는 호지명주석··· 남부윁남민족해방군 전사들이 적진으로 돌격한다.

다음은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에서 연설하는 모택동.

천안문광장을 누비는 시위대렬··· 북소리, 쿵챙거리는 징소리와 노래소리도 계속된다.

계속 돌아가는 지구의.

조선동해로 기여드는 미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물결을 헤가른다.

다음은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담판장에서 적측을 호되게 답새기는 우리측 수석위원 장정환의 엄엄한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레시바를 낀 미군측 수석위원은 뒤쪽의 보좌관들한테서 쪽지가 넘어오기를 기다리며 손바닥으로 눈두덩만 문지르고있을뿐··· 대신 적들은 담판장밖에서 더 힘껏, 목청껏 떠들고 울부짖는다. 총과 대포의 론리밖에 모르는 미제이다.

조선동해로 기여드는 미항공모함전단, 항공모함갑판의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함재기들, 지상에서는 각종 땅크와 자동포들이 포연을 날리며 무한궤도로 이 땅을 물어뜯는다. 전쟁의 바퀴, 전쟁의 무한궤도가 우리의 턱밑에까지 굴러오고있다.

진지를 차지하는 인민군군인들, 광장을 행진하는 열병대오··· 동시에 우리 혁명군대의 노래, 조선의 노래가 터진다.

 


혁명의 붉은 대오 우리는 인민군
로동당 품속에서 자란 투사다
불구름 뚫고가는 싸움의 나날에
전우들 붉은 피를 당에 바쳤다
동무들아 당중앙을 목숨으로 사수하자
우리의 심장 당중앙을 목숨으로 사수하자

 

열병광장에는 각 군종, 병종의 종대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하늘땅을 진감하는 만세의 환호성과 더불어 총검의 숲이 해빛에 번뜩인다.

···

기록영화가 끝나자 이어 그 자리에서 전원회의가 시작되였다. 나는 먼저 회의참가자들을 쭉 둘러보고나서 심각하게 말했다.

《당중앙위원회 위원동무들, 방금 우리가 기록영화를 통해서도 보았지만 오만해질대로 오만해진 미제는 지금 세계도처에서 전쟁의 불을 지르고있습니다. 그 불길이 우리 가까이에서도 타번지고있다는것을 동무들도 잘 알고있습니다. 이렇듯 긴박한 정세는 우리에게 속히 국방에 힘을 집중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누구도 우릴 지켜줄수 없습니다. 까리브해의 위기때만이라도 돌이켜보시오. 남의것이 아무리 위력한 로케트라 해도 제 손에 쥐여져있는 보총보다는 못합니다. 이것은 지나온 력사가 우리에게 새겨준 심각한 교훈입니다. 그래서 오늘 전원회의에서 경제국방건설을 병진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자고 하는데··· 동무들, 기탄없이 의견들을 말해보시오.》

회의참가자들이 앞을 다투어 일어서며 대답했었다.

《수령님, 여기에 무슨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옳습니다. 수령님께서 결심하시면 됩니다.》

《우린 수령님의 결심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나는 준절한 어조로 그들을 타일렀다.

《동무들, 이건 결코 쉽게 대답할 문제가 아닙니다. 병진이란 말을 문자그대로 경제, 국방에 다같이 힘을 넣는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선 안됩니다. 그것은 사실 경제건설보다 국방건설에 더 큰 힘을 넣는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너무 쉽게만 생각지 말고 다들 더 연구합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 다음 토의해봅시다.》

그날 밤 나는 밤이 깊도록 정원을 거닐었다. 동지추위가 바늘끝처럼 살을 콕콕 찌르군 했다.

그밤 멀찌감치에서 뒤를 따르던 부관들이 된경을 치르었었다. 무슨 일로 내가 동지추위가 터지기 시작한 그밤에 정원을 거닐며 깊은 고뇌에 잠기고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그들이였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와하는것이 보기에도 민망스러울 지경이였다.

회의는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날에도 계속되였으나 끝을 보지 못하였다. 드디여 닷새째 되던 날 나는 이렇게 회의를 시작하였다.

《당중앙위원회 위원동무들, 우린 벌써 여러날째 같은 문제를 가지고 토의하는데 왜 이러는지 동무들은 잘 알고있습니다. 사실 경제국방병진로선이라는것을 말로 하기는 그닥 힘들지 않습니다. 만장일치로 손을 들어 찬성하는것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그것을 결심하면 우리 인민은 또 허리띠를 졸라매며 힘들게 살아야 합니다. 지난날 지지리 못살던 우리 인민이 이제 겨우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되는가 했는데··· 또 고생을 시키게 됐으니··· 그래서 결심하기가 이렇게 힘이 들고 괴로운것입니다. 그래도 해야 되겠습니까, 동무들?···》

한동안 얼음장같은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의 숨결도 눈빛마저도 얼어붙는듯 했다. 괴로운 침묵이 계속되였다. 그때 갑자기 의자를 끄는 소리가 울렸다. 맨 앞줄에 앉아있던 김일이 무거운 의자를 밀어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던것이다. 그는 두주먹을 꽉 부르쥐고 두툼한 입술을 우물거리며 힘들게 말을 뗐다.

《수령님! 우린 그냥 앉아 죽을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린 국방건설에 힘을 넣어야 합니다.》

그 순간 나는 숨이 막히는것만 같았다. 그렇다, 그냥 앉아 죽을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입에 가져가며 기침을 했다.

《그럼 다른 동무들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여러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모두 한목소리로 《수령님!》하고 부르짖던것이 지금도 귀전에 쟁쟁하다. 그다음 나머지 사람들까지 다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합쳤다.

《수령님, 해야 합니다!》

《해야 합니다!》

《해야 합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의 숨결로 장내가 뜨겁게 달아오르는것을 느꼈다. 두터운 얼음장도 녹일 뜨거운 숨결··· 천근만근 무겁던 마음속 중압도 그 숨결로 녹아버린듯 했다.

나는 손을 들어 모두 자리에 앉도록 한 다음 이윽토록 당중앙위원회 위원들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웬일인지 다시 말을 이으려니 화약내를 삼킨것처럼 더 심하게 목이 갈리는것을 느꼈다.

《옳습니다, 동무들. 그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야만 자주권을 지킬수 있습니다. 자주권을!···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 부르던 혁명가요에도 있는것처럼 자유가 없으면 살아도 죽은것이나 같습니다. 그러면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란 자주성이고 자주성은 곧 나라와 민족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기어이 병진을 해야 합니다. 경제와 국방을 병진하여 그 어떤 원쑤도 감히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다시말하여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져야 하는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자니 이제 우리 인민은 또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을수 없게 되였습니다.···》

나는 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더 할말도 없었다. 가슴은 저리다 못해 칼로 에이는듯 했다. 그리고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것을 느꼈다. 그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던것이다.

나는 그 눈물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천천히 손수건을 꺼내여 몇번이고 눈굽을 찍고 또 찍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눈굽을 적시였다. 그들 역시 참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소리없는 흐느낌··· 그것이 우리의 격조높은 연설을 대신해주었고 쓰라린 그 눈물방울이 전원회의 결정서의 종지부로 되였다.

 

그후에도 그날의 회의장을 상기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저려드는것을 어쩔수 없다. 그러면 다시금 마음을 굳게 가다듬는다.

우리 당의 경제국방병진로선!··· 오늘 우리 시대, 격변하는 동란의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고있다. 전쟁과 살륙이 란무하고 수많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이 엄중히 침해당하고있는 준엄한 현실이 바로 그러한 결단을 요구하고있다.

오늘 중국의 당과 정부도 나날이 엄중해지고있는 정세하에서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원자탄폭발시험을 서둘러 진행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에 대하여 이미 핵을 가지고있는 렬강들은 무섭게 반발할것이다. 그들은 자기들과 힘내기를 할수 있는 새 적수가 나타나는것을 절대 바라지 않기때문이다. 력사의 교훈이 그것을 말해주고있지 않는가. 모든 제왕들, 권력을 탐한 왕세자들이 바로 그러한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친혈육간에도 칼을 뽑아들고 피가 랑자하도록 싸우지 않았던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은 철의 주먹으로 지켜야 한다.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로 애걸하거나 맨주먹을 내흔들며 울분을 터치는것으로는 결코 지켜낼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