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5


 

5

 

의사당밖으로 나오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이께서는 현관문 량옆에 초병처럼 서있는 두그루의 가라목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미묘하게 구부러져올라간 줄기우에 우산처럼 둥그렇게 나무갓을 펼친 그 가라목은 수령님께서 무척 사랑하시던 나무였다. 그것을 보실 때면 김정일동지께서도 애틋한 추억이 살아나 저절로 걸음을 멈추게 되시였다. 그 나무는 20여년전 금수산의사당을 꾸려놓고 수령님을 모시기 위한 준비사업을 하고있을 당시 김정일동지께서 먼 지방에 가서 손수 떠옮겨다 심으신것이였다.

의사당으로 자리를 옮기시던 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돌층계를 오르시다가 그 나무를 보시고 참 절묘하게 생겼다고, 어쩌면 현관문을 지키는 쌍보초같다고 하시며 한참이나 지켜보시였다. 그때부터 근 20여년 가라목나무는 정말 수령님의 안전을 지켜선 초병들처럼 춘하추동 변함없이 푸른 잎새를 반짝이며 현관앞에 서있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어디에 출장을 갔다오실 때면 《오, 우리 쌍보초 잘 있었나.》하시며 귀여운 어린이를 애무하듯 그 뾰족뾰족한 바늘잎들을 어루만지시였다. 바로 얼마전에도 수령님께서는 김정일동지와 함께 현관마당으로 걸어가시며 조직비서가 심어준 저 가라목은 정말 볼수록 정이 든다고 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뾰족뾰족한,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을 주는 가라목잎들을 쓸어만지시며 하늘을 올려다보시였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하늘 어디에선가 천둥이 울고있었다. 미구에 폭우가 쏟아질듯 눅눅한 바람이 불어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천히 돌계단을 내려 승용차가 대기하고있는 련못기슭으로 걸어가시였다.

생전에 수령님께서는 밤이면 이따금 이 련못가를 거니시면서 저 건너편 대성산 주작봉의 렬사들과 마음속 대화를 나누군 하시였다. 그날을 추억하듯 련못에서 솟구쳐오르는 분수의 비말이 수면에 떨어지는 샤르륵샤르륵 하는 소리도 그 무슨 흐느낌소리처럼 처량하게 울려왔다.

곧추 바라보이는 대성산렬사릉에서는 마치 밤하늘의 성좌가 내려앉은듯 이밤에도 불이 반짝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차를 타실 생각을 잠시 잊으시고 하염없이 렬사릉을 바라보시였다. 문득 그이께서는 며칠전 비내리는 밤에 대성산렬사릉에서 있었던 사실을 상기하시였다.

폭우가 쏟아지던 그밤에 머리에 흰 댕기를 꽂은 한 녀인이 김정숙어머님의 반신상앞에 꿇어앉아 홀로 흐느끼고있었다.

그 흐느낌소리가 하늘과 골짜기마다 숨가쁘게 꽉 들어찬 칠흑같은 어두움과 깊은 바다속같은 고요를 헤치고 구슬피 울려퍼졌다.

하늘도 슬픔을 억제 못해 통곡하는듯 비물을 뿌리고있었다.

그 녀인은 다름아닌 김경희부장동지였다.

시간은 얼마나 흘렀던가.

《어머니!-》

경희동지는 대돌바닥에 두손을 짚고 흐느끼면서 어머님을 부르고 또 불렀다.

《어머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네? 이제 이 딸은 어찌랍니까? 일찌기 젖먹이나이때에 어머님을 잃은 이 딸입니다.

어머님이 그리워 찾아올 때면 어머님은 저를 안아주시며 수령님을 잘 모시라고 그리도 간절히 당부하셨는데 불효한 이 딸은 수령님께서 입원하셨을 때 문병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 딸이 어머님의 뜻을 잘 받들지 못해 수령님께서··· 세상을 떠나가셨습니다.

아, 어머니. 어쩌면 좋아요. 어머니! 어머니!!》

경희동지는 비통하게 부르짖으며 어깨를 들먹이였다.

어머님의 얼굴에서도 비애의 눈물인가 구슬같은 비방울이 흘러내리고있었다.

꿇어앉아 흐느끼던 경희동지는 그 물방울을 보자 불현듯 손수건을 꺼내들고 일어나 어머님의 얼굴을 씻어드리며 이제는 수령님도 계시지 않으니 유일하게 남은 장군님을 잘 받들어모시겠다고 흐느끼며 맹세를 다지였다.···

그날밤의 통분한 마음을 전하듯 주작봉너머에서 또다시 번쩍 번개가 일더니 꾸르릉 하고 천둥이 울었다. 이어 굵은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비를 맞으시며 정원길을 거니시였다. 푸릿한 외등이 비줄기를 누비며 거북등의 무늬처럼 터갈린 포장길을 비쳐주고있었다. 포장길 여기저기에 생겨난 틈새기사이로 비물이 흘러들었다. 수없이 터갈린 포장길 틈새기들이 또한 그이께 가슴아픈 추억을 불러일으키였다.

원래 이 정원길을 포장할 때 의사당일군들은 마르까가 높은 세멘트와 질좋은 피치를 쓰려고 하였으나 수령님께서 무엇때문에 땅바닥에다 좋은 세멘트를 쓰겠는가, 그것은 건설장에 보내고 마르까가 낮은 세멘트를 쓰라고 하시여 결국 1년도 못가서 정원의 포장길이 터갈리게 되였다.

그후 일군들은 정원길을 다시 포장하기 위하여 질좋은 세멘트와 피치를 의사당에 실어왔다.

수령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포장길이 좀 터갈리였으면 무어라는가고 하시면서 세멘트와 피치를 도로건설장에 보내게 하시였다. 그러나 일군들은 수령님께서 터갈린 포장길을 걸어다니시는게 못내 마음에 걸리여 그이께서 지방에 출장을 가신 사이에 몰래 포장작업을 벌리였다. 그런데 일이 안되자고 수령님께서 예정보다 일찌기 돌아오시여 그 일이 드러나게 되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때 몹시 노하시였다. 동무들이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은 고맙다, 그러나 동무들은 왜 내 마음을 그리도 몰라주는가, 나는 이런 길을 걸어야 편안하다, 어떻게 하면 인민들에게 더 좋은것을 주고 인민들을 더 잘살게 하겠는가 하는것이 나의 평생소원인데 건설장들에서 모자라하는 자재들을 실어오면 어떻게 하는가, 나는 한그람의 세멘이라도 인민들에게 주고싶으니 나를 진정으로 위하려면 당장 포장작업을 그만두라고 하시였다.

하여 포장작업은 중지되여 수령님께서는 근 20년세월 터갈린 이 정원길을 걸으시였다.

인민을 위한 수령님의 마음은 이러하시였다. 그러니 수령님을 잃은 인민들이 어찌 슬퍼하지 않으랴.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포장길을 내려다보시였다. 어쩐지 이날따라 포장길에 생긴 틈새기들이 그 무슨 단층의 거대한 균렬처럼 길고도 넓고 그리고 깊어보이시였다. 그 틈새로 슴새드는 물소리가 또한 가슴을 울리는것 같으시였다.

이윽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가 서있는 련못기슭으로 되짚어 가시였다.

그이께서 타신 승용차는 비발속을 누비며 룡흥네거리를 지나 개선문을 거쳐 만수대언덕으로 향하였다.

차길주변은 만수대언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붐비였다. 비발을 헤치며 길게 흘러가는 인파에서 터져나오는 곡성은 소연한 비소리에 어울려 더욱 처량하게 들려왔다.

사람들의 물결이 가끔 자동차길에까지 밀려와 그이의 승용차는 속력을 늦추고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비는 점차 더 세차게 쏟아져내렸지만 사람들은 우산을 들거나 비옷을 걸칠념을 하지 않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동상이 저앞에 바라보이자 차를 숲속 유측에 세워두고 밖으로 나오시였다.

수령님의 동상앞에는 수백수천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운집해있었다. 저아래 화강석계단에도 천인지 만인지 알수 없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렬을 지어 동상앞으로 들어설 차례를 기다리고있었다.

차문옆을 거니시면서 동상주변을 둘러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웃동을 벗은 몇명의 대학생들이 화강석바닥에 빙 둘러서있는것을 보시였던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대학생들이 화환에 떨어지는 비물을 막느라고 저마다 교복상의를 펼쳐들고 둘러서있는것이였다. 한밤중의 소낙비는 웃동을 벗은 그들의 어깨와 잔등에 마구 쏟아져내리였다.

그이께서는 대학생들의 소행이 너무도 대견스러워 먼발치에서 한참이나 눈물겹게 지켜보시다가 옆에 서있는 부관에게 말씀하시였다.

《정말 기특한 청년들이요··· 하긴 우리 수령님께서 이 나라의 수백만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풀어주시였소. 해마다 철따라 교복을 내주고 장학금을 주시고··· 금년에만도 학생들의 교복때문에 몇차례나 교시하시였는지 모르지···》

김정일동지께서는 비물에 함뿍 젖은 학생들을 점도록 바라보시였다. 그들의 머리와 잔등에 사정없이 비물이 내리퍼붓지만 화환에 만첩으로 피여난 꽃송이들은 하나도 상한데가 없이 생신한 향기를 풍기는듯 하였다.

《장군님, 옷이 다 젖습니다. 이젠 그만···》

부관이 우산을 가져오지 못한것을 후회하며 그이께 차안으로 들어가시자고 권하였다.

《속이 타는데 씨원히 찬비라도 좀 맞읍시다.》

그이께서 그러시며 고개를 돌려 만수대언덕으로 오르는 군중의 흐름과 같이 오르시였다. 소연한 비소리와 통곡소리로 귀가 멍멍하시였다. 동상주변에 설치된 조명등들은 통곡하며 올라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은백색 화광으로 비쳐주는데 비물과 눈물에 젖은 그 얼굴들을 보시느라니 그이의 가슴은 미여지는것 같으시였다.

아, 만수대언덕이 이렇게 인민들의 눈물에 젖게 될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모란봉과 장대재를 이어주는 모란봉 서남쪽의 높은 언덕인 만수대는 그아래에 평양관영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있다고 하여 예로부터 지명으로는 《영문리》라고 불리웠고 산천경개가 수려한 언덕우에 만년장수하리라는 뜻에서 지은 정각이 있었다고 하여 《만수대》라고 이름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한갖 이름일뿐 지난날에는 나라잃은 망국의 설음과 구슬픈 세월의 비바람속에 속절없이 황페화되여가던 하나의 야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것이 광복을 맞이하여 여기에 인민의 총의와 불같은 념원을 담은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이 모셔진 때로부터 만수대는 정녕 이름그대로 수령님의 만년장수를 축원하는 곳으로, 우리 인민의 천가지, 만가지 행복과 기쁨, 희망과 념원이 꽃펴나고 춘하추동 사시절 언제나 웃음과 노래소리 떠나지 않는 언덕으로 되였었다.

그 만수대언덕이 이제는 매일과 같이 구름떼처럼 밀려드는 군중들로 꽉 채워져 눈물의 바다가 되였으니···

《부관동무, 만수대동상을 찾는 시민들이 하루에 얼마라고 했소?》

부관은 매일 수십만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각도의 동상을 찾는 사람들은 하루에 무려 220여만명에 달한다는것이였다.

《220여만명?···》하고 받아외우시는 그이의 목소리는 몹시 갈리였다.

《금수산의사당을 찾아오는 지방인민들이 평양시가를 꽉 메웠다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마로 흘러내리는 비물을 씻으며 부관에게 또 물으시였다. 그 목소리는 더욱 비감에 젖어있었다.

부관은 가슴아픈 대답을 해드리기가 괴로왔던지 고개를 돌리고 묵묵히 서있었다.

《모두들 수령님을 뵙겠다고 찾아오는데 사람은 많고 방은 좁으니 어찌할수 없구만··· 어떻게 하면 좋을가?》

그이께서는 안타깝게 뇌이시며 통곡하는 군중들을 다시금 둘러보시였다.

《아마 이 사람들속에도 아직 금수산의사당안에 들어가보지 못한 사람이 많을거요.》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다 수령님을 뵈올수 있겠습니까?》

부관이 그이의 마음을 위로하며 올리는 말이였다.

그러나 지금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떻게 하면 이 나라 인민들모두에게 의사당에 계시는 수령님을 뵈올수 있게 하겠는지 그 생각뿐이였다.

그이께서는 차를 타고 의사당으로 돌아오면서도 내내 그 생각을 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이튿날 자신의 그 생각을 정치국회의와 장의위원회에 내놓고 다문 며칠이라도 영결식을 연기하여 가능한껏 더 많은 사람들이 의사당안을 들어와보게 하자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국가장의위원회는 인민들의 절절한 심정과 요구를 반영하여 추도행사들을 연기할데 대한 두번째 공보를 세상에 발표하게 되였다. 그 공보에는 김일성동지의 령구를 찾아오는 조객들을 7월 18일까지 계속 받으며 수령님의 령구를 바래우는 영결식은 7월 19일에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거행하고 추도대회는 7월 20일에 한다고 지적되여있었다.

이 공보를 발표하는 날에 리웅걸은 이미 과업을 받은대로 인민들속에 계시는 수령님의 사진을 더 수집해가지고 김정일동지의 방으로 찾아갔다.

그이께서는 지방에서 올라온 조객들과 담화하시다가 리웅걸을 맞으시였다.

《어디 봅시다. 몇장이나 더 찾아왔습니까?》

《한 열댓장 더 찾았습니다.···》

리웅걸은 나무함을 열어놓고 흰종이로 정성스레 싼 수령님의 사진들을 꺼내놓았다. 그는 이번까지도 그이의 마음에 들만한 사진이 없다면 어쩌랴 하는 조바심에 저으기 긴장해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가져온 사진들중에는 어린이들속에 계시는 사진, 체육인들과 담화하시는 사진, 군인건설자들의 예술소품을 보아주시는 사진을 비롯하여 다양하고 특색있는 사진들이 많았기때문에 어지간히 자신을 가지고있었다. 더구나 한장한장 사진을 주의깊이 들여다보시는 김정일동지의 눈에서 가끔 번쩍이는 불꽃이 일어나군 하는것을 보며 성공에 대한 자신심을 가지였다.

그이께서는 사진을 다 보실 때까지 말씀이 없다가 고개를 드시였다.

《좋은 사진들을 많이 골랐습니다. 그러나 령구차에 모실만한 사진은 없습니다.》

《···》

리웅걸은 가슴이 덜컥하였다. 그는 며칠째 고르면서도 맞춤한 사진을 골라내지 못한 자책감으로 하여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이 사진은.》하고 그이께서는 어린이들속에 계시는 사진을 들고 말씀하시였다.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숙일사하고계실 때 찍었기때문에 행사용초상화로서는 정중치 않고 또 이쪽 군인들의 예술소품을 보시는 사진은 반대로 상체를 뒤로 젖히며 웃으실 때 촬영한것이여서 적합하지 않습니다. 아마 이때 재미나는 재담이나 짧은극을 보신것 같습니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열대여섯장이나 되는 사진을 놓고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지적하시였다. 리웅걸은 수령님의 초상화에 대한 그이의 비상한 요구성, 아니 수령님과 관련된것이면 무엇이든 최상의 수준으로 하시려는 그 충효심에 고개가 수그러졌다.

《장군님, 죄송합니다.··· 제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일없습니다. 내가 하나 골라보았는데 어디 좀 보시오.》

그이께서는 탁자함에서 까만 윤택이 도는 자그마한 나무곽 하나를 꺼내여 뚜껑을 여시였다.

순간 리웅걸은 눈을 둥그렇게 치뜨며 탄성을 올리였다.

해빛같이 환하게 웃으시는 수령님의 사진이 눈앞에 안겨왔던것이다. 름름한 군인건설자들속에 계시는 수령님이시였다.

《사진을 수십장 골라보는 과정에 서해갑문건설준공당시에 찍으신 사진을 하나 찾아냈습니다. 어떻습니까?》

리웅걸은 대답을 못하고 사진을 들여다보기만 하였다.

그의 얼굴에 일어난 강한 파문은 오래도록 가라앉지 못했다.

《이 사진을 화가동무들이 형상하게 합시다.》하고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사진의 색갈이 전반적으로 푸른 빛이 돈다고 하시며 형상할 때에 색갈을 좀 연하게 만들면 좋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자주빛 넥타이를 꺼내놓으시였다.

《수령님께서 즐겨매시던 넥타이입니다. 이 넥타이를 매신것으로 형상합시다.》

《알겠습니다.》

리웅걸은 수령님의 사진이 들어있는 나무곽을 붉은 보자기에 싸들고 만수대창작사로 향하였다.

며칠후 영결식을 하루 앞둔 날 미명의 새벽에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집무실을 찾으시였다.

예로부터 령구를 발인할 때에는 고인의 귀중품을 함께 따라보낸다고 하였다. 세계의 기이한 일화들중 고분에서 금은보화를 찾은 이야기가 많은것도 아마 그때문일것이다. 그렇다면 수령님의 령구를 바래울적에는 무엇을 따라보내야 하며 그이께서 가장 귀중히 여기신 물품은 과연 어떤것이였겠는가.

집무실로 올라가신 그이께서는 수령님 생전에 늘 그러하시였던것처럼 응접실로 먼저 들어가서 거울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쳐보고 집무실로 통하는 문에 인기척을 내며 다가가시였다.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불시에 이름할수 없는 공허감을 느끼며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시였다.

수령님의 집무실은 그전과 조금도 달라진것이 없었다. 집무탁, 쏘파, 응접탁, 전화기··· 모든 물건이 자리 하나 드티지 않고 예전그대로 놓여있었다. 지어 수령님께서 생존해계실 때 보시던 책이며 탁상일력, 그이께서 쓰시던 원고지와 잉크단지까지도 아직 그대로 고스란히 집무탁우에 놓여있었다. 탁상일력은 출장을 떠나실 때 번져놓은 그대로였다. 다만 집무탁우에 놓인 팔걸이의자에 수령님께서 앉아계시지 않을뿐이였다. 어쩌면 며칠동안 수령님께서 출장을 가시여 빈의자가 놓여있는것만 같으시였다. 방안을 찬찬히 둘러보시던 그이께서는 방 한쪽귀에 놓여있는 《목란》텔레비죤에 눈을 주시였다. 벌써 몇년전에 신형텔레비죤으로 바꿔드리자고 하였지만 수령님께서는 텔레비죤이 아직도 잘 나오는데 바꾸긴 뭘 바꾸겠는가, 그대로 놓아두라고 굳이 만류하시여 이날이때까지 바꾸어드리지 못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까이에 가시여 색이 벗겨져 모서리들이 희끗희끗해진 《목란》텔레비죤을 애무하듯 어루만지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별안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흐느낌소리에 고개를 돌리시였다. 저쪽 휴계실로 나가는 방구석에 뜻밖에도 한 처녀가 무슨 보자기를 그러안고 쭈그리고앉아 울고있었다. 그는 수령님 서거 이후 사람들을 피해 숨어다닌다고 하던 채순이였다.

시내가의 물망초처럼 청초하고 생기있던 처녀의 얼굴은 피기없이 해쓱해지고 곱게 비다듬고다니던 머리단이 흐트러져 이마전과 귀부리에 흘러내려와있었다. 그는 장군님을 뵈옵자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다가 세찬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품에 안고있던 보자기를 떨구며 흐느낌을 터뜨렸다.

수령님의 건강을 잘 돌봐드리라고, 그것은 당이 주는 과업이라고 그처럼 간곡히 당부하시던 장군님, 그이의 그 부탁을 헛되이 한 죄책감때문에 세상에 머리를 들고다닐수 없게 된 채순이였다. 허나 아무리 몸을 숨기고다녀도 비통해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려와서 내내 가슴을 치며 울었는데 장군님께서 정말로 지금 자기앞에 더없이 슬픈 표정을 하시고 와계시는것이였다.

아, 이젠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채순은 와들와들 몸을 떨면서 울었다.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묵묵히 채순을 지켜보시다가 그가 방금 방바닥에 떨군 보자기에 시선을 돌리시였다. 그 보자기안에서 푸른 실내화 한컬레가 빠져나와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쪽으로 걸어가서 실내화 한짝을 집어드시였다. 그이의 기억에 의하더라도 그 실내화를 보신것이 3년전이였다. 수령님께서 수년동안 방안에서 이 실내화를 신으시였다. 코숭이가 닳고 색이 바래진 비닐실내화, 그것을 집어드신 그이의 손이 떨리였다. 코숭이가 닳아버린 실내화를 보니 그전에 수령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 하나가 생각나시였다. 길림육문중학교시절에 수령님께서는 운동화 한컬레로 몇년을 지내시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 삯바느질과 삯빨래로 한푼두푼 모아서 사주신 운동화여서 무던히도 아껴신으시였다. 교외에 나가 활동하실 때에는 맨발로 다니시고 시내에서만 운동화를 신었다고 하시였다.

한 나라의 수령이 된 이날까지도 그전날 어머님의 수고를 생각하듯 인민들의 수고를 생각하며 실내화 한컬레마저 아껴신으시였던가!

채순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지였다.

이때 리대천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실내화를 들고계시는 김정일동지와 그 옆에 쭈그리고앉아 흐느껴우는 채순을 띄여보고 한자리에 굳어졌다.

얼마간 지나서 리대천이 채순에게 책망하듯 말하였다.

《채순동무, 장군님께서 오셨소.》

《가만 놔두시오.··· 실컷 울도록···》

김정일동지께서 리대천에게로 다가가시였다.

《집무실 물건들을 좀 보러 왔습니다.》

《예, 저희들도 물품을 정리하느라고···》

리대천은 말끝을 흐리며 한숨을 쉬고는 앞벽 한끝에 놓여있는 자그마한 구식철궤에 눈길을 보내였다.

《저 금고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밖에는 다 보았는데···》

《아직 금고를 열어보지 않았습니까?》

그이께서는 금고에 시선을 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다른 열쇠는 다 저에게 맡기시면서도 그 금고열쇠만은···》

《그 열쇠가 어디 있습니까?》

《어제부터 찾고있는중인데 아직···》

《어서 찾아보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과연 저 금고에는 무엇이 있을것인가? 무슨 귀중한 물품이 있어 저 열쇠만은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으시였는가.

리대천은 한참 애쓴 끝에 열쇠를 찾아냈다. 열쇠는 집무탁 서랍 깊은 곳에 간수되여있었다.

그는 열쇠를 김정일동지께 드리였다.

《··· 동무가 열어보시오.》

리대천은 주저하였다. 수령님께서 생전에 그 누구에게도 열쇠를 맡기지 않으신 귀중한 금고에 함부로 손을 대기가 어려웠던것이다.

《어서 열어보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 재촉하시였다.

쇠를 꽂는 소리, 비트는 소리··· 물을 뿌린듯 조용한 방안에서는 그 미세한 음향까지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어서 열어봅시다.》

리대천은 여전히 주저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있다가 금고의 문고리를 잡아쥐였다. 그는 어린 아이들도 한손으로 가볍게 열수 있는 금고문을 천만금의 무게나 되는듯 무겁게 그리고 조심히 열었다.

긴장하게 금고안을 들여다보던 리대천은 눈이 둥그래졌다. 무엇인가 많은 물건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금고안은 의외롭게도 텅 비여있는것이였다. 다만 사진 한장과 편지봉투 두개가 금고 맨 웃단에 가지런히 놓여있을뿐이였다.

리대천은 편지와 사진을 집어 장군님께 드리였다. 그것은 수령님께서 김책동지와 나란히 서서 찍으신 40여년전의 사진이였다. 편지봉투를 보니 그것도 가렬한 전쟁시기에 김책동지와 어느 한 항일투사가 수령님께 올린 편지였다.

수백수천번 꺼내보신듯 사진의 모서리가 닳아서 보풀이 일었다. 아마도 수령님께서는 기쁘거나 슬플 때, 힘겨우실 때 그리고 떠나간 동무들이 못견디게 그리우실 때 이 사진, 이 편지를 들여다보며 천만가지 생각을 하시였으리라.

돈 한푼 없는 금고, 그 어떤 기밀문건 한장도 없는 금고, 이 금고를 수령님께서는 그리도 귀중해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사진속의 수령님을 다시 들여다보시였다. 이글이글 영채가 도는 눈에 천리혜안의 예지와 강철의 의지가 비껴있었다. 그 영채로운 눈으로 혁명의 만리길을 내다보시고 빛나는 미래에로 인민들을 인도하시였다.

그때는 아주 젊으시였다. 그러니 이 사진을 찍으신 때로부터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가싶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흐느끼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시였다.

리대천이 금고에 손을 짚은채 어깨를 떨고있었다.

《수령니임-》

울음을 진정하고 먼발치에서 수령님의 금고를 지켜보고있던 채순이 어깨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또다시 자기몸을 내동댕이치듯 방바닥에 어푸러지였다.

두사람의 흐느낌이 그대로 비수가 되여 그이의 가슴을 어이는듯 하였다.

(이것이 수령님의 금고란 말이지··· 수령님께서는 모든것을 인민들에게 주고 빈몸으로 가셨구나··· 한평생 받으신것은 아무것도 없이··· 주시기만 하고···)

김정일동지께서는 두사람의 흐느낌소리를 들으며 생각하시였다.

14살 어리신 나이에 나라를 찾겠다고 만경대를 떠나실 때 수령님의 몸에 과연 무엇이 있었던가, 짚신 두컬레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장장수천리 고생많은 혁명의 길을 걸으시여 우리 인민들에게 나라를 찾아주고 온갖 귀중한걸 다 찾아주고 진정 주실것은 다 주시고 이렇게 빈몸으로 가시였다. 아니다. 수령님께서도 받으신것이 있었다.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자 천하만민이 왜 저렇게 가슴을 치며 울고있는가.

우리 수령님께서는 조국과 민족과 인류로부터 누구도 받을수 없는 하늘같은 믿음과 존경을 받으시였다. 그렇다. 인민은 그이를 하늘처럼 믿고있는것이다.

《책임서기동무!》

그이께서는 숭엄한 표정을 지으신채 조용히 부르시였다.

《얼마나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금고입니까. 그 무슨 자료를 보관한것도 아니고 돈을 보관한것도 아니고 혁명전우의 사진 한장을 보관하였습니다. 충신의 사진, 혁명전사의 사진을 말이요. 우리 당의 동지애의 력사, 수령님의 동지애의 력사가 기록되여있는 금고입니다. 우리 수령님은 이렇게 위대하고 뜨거운분이십니다.》

그이께서는 목이 메이시여 잠시 말씀을 끊으셨다가 한층 고조된 뜨거운 목소리로 이으시였다.

《이 금고는 돈을 한푼도 넣지 않은 금고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억만금의 재부가 들어있는 금고요. 우리 당은 또하나의 귀중한 유산을 받아안았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창가로 걸어가시였다.

어느덧 새날이 밝아오고있었다.

멀리 지평선 한끝에서 아침노을이 피기 시작하더니 삽시에 동녘하늘이 붉은 빛으로 물들여졌다. 마치도 그 하늘이 그대로 거대한 붉은 기폭이 되여 휘날리는듯 하였다. 얼마 지나자 붉은 지평선우에서 황금의 불덩이같은 태양이 이글거리며 솟아올랐다.

(이제 지구가 한바퀴 더 돌고 저 태양이 다시 저기에 솟아오르면 영결식을 하게 된다.

영결! 그것은 영원히 헤여진다는 말이다. 허나 우리 인민은 래일의 영결식을 통해 수령님과 헤여지는것이 아니라 영원히 같이 있게 될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그것을 생각하고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