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4


 

4

 

자정이 되여오고있었다.

물밀듯이 찾아들던 조객들의 흐름도 점차 끊어지고 금수산의사당안은 고요한 정적이 깃들기 시작했다. 국가장의인 경우에도 자정이 지나면 민간에서처럼 조객들을 받지 않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정이 오기를 몹시 기다리시였다. 이 시간에는 홀로 조용히 수령님을 만나뵈올수 있고 또 여러가지 밀린 일들을 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래일아침에 나갈 《로동신문》편집안을 보고계시였다.

당사업을 개시하신후 전기간을 통하여 아무리 바빠도 당보의 편집안을 보는것이 완전히 생활화된 그이께서는 애도기간에도 그 일을 미루지 않으시였다.

《로동신문》 제1면은 애도와 관련된 보도기사들이 편집되여있었다. 보도기사 상단에는 큰 활자로 《인민의 슬픔은 구천에 사무쳤다》라는 제목의 사설이 예견되여있었다. 그것을 보시는 순간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을 잃은 첫순간에 체험했던것과 같은 크나큰 슬픔과 마음의 공허를 느끼시였다. 사설의 제목이 보여주는것처럼 나라의 전반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고있지만 인민들은 여전히 슬픔에 잠겨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인민의 고통과 슬픔을 지면을 통하여 비로소 아시는것은 아니였다. 그이께서는 호상을 서면서 《아, 이 딸을 두고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부르짖는 정춘실이도 보시였고 《백두산에서부터 안아주고 키워주신 전사들이 왔는데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하며 가슴치던 항일의 로투사들도, 《아버지, 아버지대원수님》하고 목놓아울던 어린이들도 보시였다. 손원태는 너무도 상심하여 별로 울지도 못하고 멍해있었다. 며칠사이에 딴 사람처럼 푹 늙어버린 로인의 모습이 김정일동지의 눈앞에 밟혀왔다. 로인의 비칠거리던 걸음걸이와 더 세여버린것 같던 백발, 그이께서는 로인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앞으로 저를 믿고 수령님께서 계시던 때처럼 자주 찾아오십시오. 선생님을 제가 돌봐드리겠습니다.》

그 한마디 말씀에 흐려있던 로인의 눈에 빛이 살아나더니 뜨거운 눈물이 고랑을 지어 흘러내렸다. 항일혁명렬사유자녀 량귀동녀의 일은 더욱 기가 막히였다. 한평생 이국땅에서 별의별 고생을 다하던 그는 조국에 와서 한창 즐겁게 지내다가 수령님을 잃었다.

《하늘도 무심쿠나. 내 팔자 어째 이리 사나운가.··· 고생고생하다 60년만에 아버지를 찾으니 그 아버지 돌아가시네···》

이국의 찬바람에 시달려 몸무게가 30여키로밖에 안되는 이 자그마한 녀인이 이렇게 통곡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김정일동지의 가슴은 란도질을 당하는듯 아프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날 초저녁에 바로 이 방에서 로동자와 농민, 청년학생들과 병사들, 수령님의 령구를 찾아 평양으로 올라온 각지 인민대표들을 만나시였다. 당과 정부의 간부들은 대체로 조의식장에서 만났지만 인민들은 조의식장에서 좀 떨어져있는, 지금은 집무실이라고 할수 있는 이 방에 따로 불러 따뜻이 위로해주고 또 그들의 위로를 받기도 하시였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들어선 장방형의 방안은 발을 옮겨놓을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비좁게 서있는 사람들사이를 누벼가면서 매 사람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였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찾아와주어 감사합니다···》

조용히 하시는 그이의 짤막한 말씀에서 접견자들은 따뜻한 애무를 느끼고 저마다 눈물을 흘리였다. 남자들은 그래도 입술을 깨물고 소리를 죽여가며 삼키였지만 녀인들은 소리쳐 울면서 그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어떤 할머니는 그이의 발치에 꿇어엎디여 울면서 수령님을 잃은 이 나라 백성들을 위해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부디 건강하시라고 빌었다.

사람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나가시던 그이께서는 검은 옷을 입고 류달리 세차게 어깨를 떨며 흐느끼고있는 중년의 거쿨진 사나이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는 수령님의 사랑속에서 로력영웅으로, 강철전사로 자라난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1강철직장 전기로 로장이였다.

《로장동무!》

그이께서는 오열을 떨고있는 로장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장군님! 아··· 이젠··· 어쩌면···》

억대우같은 사나이가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가시다니 웬말입니까. 개선의 그날에는 만경대고향집을 지척에 두고 우리 강선땅을 먼저 찾아주시고··· 전후의 나날에는 남먼저 전기로를 살리도록 이끌어주시며··· 우리 강선사람들에게 천리마도 남먼저 태워주시더니 우리를 남겨두고 어찌 가십니까···》

《로장동무··· 그만하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가까스로 억제하시였다. 수령님께서 평시에 그리도 사랑하시며 자주 외우시던 강철전사를 보시니 가슴이 더욱 미여지는듯 아프시였다. 참으로 강선땅 그 어디엔들 수령님의 사랑의 발자취가 깃들지 않은데가 있겠는가. 하기에 강선의 로동계급들은 누구라없이 저 영웅로장처럼 지금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있을것이였다. 문득 그이의 눈앞에 강선의 백양나무가 떠오르시였다. 아마도 이 밤에 수천명의 로동계급들이 그 백양나무 두리에 엎드리고 꿇어앉아 땅을 치며 울고있을지 몰랐다.

얼마후 그이께서 로장의 곁을 떠나 몇걸음 옮기시자 또 한사람의 낯익은 로동계급이 눈에 뜨이시였다.

《음, 차동무로구만!》

그이께서는 머리가 반백으로 된 보통키의 남자앞에서 발을 멈추시였다.

《장군님!···》

그 사람은 김정일동지를 뵈옵자 인사도 변변히 올리지 못하고 눈물부터 앞세웠다. 그는 평양화력발전련합기업소 타빈직장 담당기사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어깨우에 손을 얹으신채 한동안 묵묵히 추연한 표정을 짓고 서계시였다. 그를 보시니 여러가지 잊지 못할 일들이 떠오르신것이였다. 그전날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전력생산을 늘이기 위하여 평양화력발전련합기업소에만도 얼마나 많은 로고를 바쳐오시였는지 모른다. 평천벌에 몸소 화력발전소의 터전을 잡아주시고 대규모의 전력생산기지를 일떠세워주신 수령님께서는 그곳 로동계급들과도 혈육의 깊은 인연을 맺고 지내시였었다.

지금 그이앞에서 설음을 터뜨리고있는 차기사는 옛날 화력발전소 조업식때 제대군인운전공으로서 수령님께 꽃다발을 드리였던 사람이였다. 그가 조업식날에 수령님께 꽃다발을 드리게 된데도 뜨거운 사연이 있었다.

발전소조업식을 며칠 앞둔 어느날 수령님께서는 현장을 돌아보시고 평천벌에 나오셨는데 그때 기업소 책임일군이 기대앞에 군복을 입고 서있는 한 운전공을 가리키며 제대군인운전공들 대신에 유능한 기술자들로 바꾸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그 보고를 받으신 수령님께서는 제대군인들에게 기술이 없다는것을 모르고 그들을 배치하였겠는가, 한명도 교체하지 말고 그 동무들에게 기대를 맡기라고 하시였다. 지금은 비록 그들이 무기능공이지만 이제 반드시 유능한 기술자로, 화력발전소의 역군으로 자라나게 될것이라고 뜨거운 믿음을 안겨주시며···

그리하여 그때 차기사는 제대군인들을 대표하여 수령님께 충성의 맹세를 다지는 마음으로 꽃다발을 드리였던것이다. 차기사는 바로 수령님의 이러한 사랑의 품속에서 어엿한 화력발전소의 유능한 기술자로 자라난 제대군인출신의 로동계급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차기사는 김정일동지앞에서 오열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씀올리였다.

《장군님, 저희들이 일을 쓰게 못하여 수령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매일아침 일어나시면 먼저 화력발전소굴뚝부터 보게 된다고, 현지지도를 끝마치고 돌아오시는 때에도 굴뚝부터 먼저 보게 되신다고 하며 로고를 바쳐오셨습니다. 불효막심한 저희들이 늘 수령님께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차기사의 말을 들으시니 김정일동지께서도 일촌간장이 다 녹아나는듯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뒤이어 안주탄광의 영웅탄부, 검덕광산과 갑산광산의 로력혁신자들, 대안전기공장의 《기계손》, 구성공작기계공장의 설계원들을 만나시였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들때문에 수령님께서 로고를 바치셨다고 자책의 눈물을 흘리였다.

이렇게 수많은 로동계급들과 지식인들을 만나주시며 한걸음한걸음 옮겨나가시던 그이께서는 검은색 치마저고리에 자그마한 누런나무곽 하나를 들고 서있는 한 녀인앞에 마주서게 되시였다. 그는 수령님께서 그리도 사랑하시던 황해남도농촌경리위원회 허덕복위원장이였다. 그가 들고 서있는 나무곽속에는 방금 패여나오다만 청초한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벼이삭들이 들어있었다. 연백벌에 절기를 앞당겨 패여나던 첫 벼이삭, 수령님께서 그것이 패면 알려달라고 하시던 그 첫 벼이삭이였다.

《덕복동무!》

장군님께서는 벼이삭을 보시다말고 별안간 자신도 모르게 목갈린 소리로 덕복을 부르시였다.

《!》 고개를 숙인채 조용히 흐느끼고있던 허덕복은 흠칫 몸을 떨며 머리를 쳐들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평시에 늘 꺼꾸로 부르시던 이름 덕복이, 수령님의 그 목소리 그대로 장군님께서 불러주시니 덕복은 금시 수령님께서 앞에 와서시는듯한 착각을 느낀가싶었다.

그는 전신을 떨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장군님!··· 으흐흑···》

묵묵히 서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덕복의 손을 꼭 잡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하시여 그의 손을 쥐신채 오래도록 허공 한점을 바라보시였다. 허덕복은 설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점점 더 크게 소리치며 울었다.

《덕복동무, 그만하오. 그만하시오. 동무가 이러면···》

그이께서도 오열이 터져나올것 같아 말끝을 잇지 못하시였다. 이윽고 덕복은 가까스로 울음을 그쳤으나 그의 뒤쪽에서는 그냥 통곡소리가 울리였다. 덕복이처럼 까만 치마저고리를 입은 반백머리의 늙은 녀인이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은채 서럽게 울고있었다.

《장군님, 저 녀인이 바로 오덕실입니다.》

허덕복이가 장군님께 오덕실을 소개해드리였다.

《아, 오덕실이?···》 장군님께서 녀인을 바라보시였다. 수령님께서 지난해에 연백벌에 갔다오신 다음 자주 외우시던 이름이였다. 30년전 수령님을 뵈옵는 자리에서 석달밖에 살지 못한 남편을 계속 기다려야 하는가고 딱한 질문을 올리였던 연백벌 월남자의 안해였다.

《오덕실동무!》

그이께서는 몇걸음 옮기시며 녀인의 손을 잡아주시였다. 그러자 오덕실은 온몸을 와들와들 떨면서 설음을 터뜨리였다.

《장군님!- 수령님께서 가셨다는게 사실입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부모도 남편도 없는 이 오덕실이 수령님만 믿고 살아왔는데 저를 버리고 가시다니 웬말입니까. 나를 아버지로 믿고 당을 어머니로 믿고 살라고··· 그래서 이날이때까지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왔는데 이렇게 가시면 저는 어찌한단 말입니까··· 못가십니다. 못가십니다. 작년에 수원리마을에 오셔서도 통일이 된다고, 남편을 만나게 해주시겠다고 저한테 굳게굳게 약속하시고 어디로 가신단 말입니까.··· 수령니임-》

방안에는 세찬 흐느낌소리가 흘렀다. 녀인들은 손으로, 손수건으로 얼굴을 싸쥐고 울었고 남자들은 주먹으로 눈물에 젖은 뺨을 문질렀다.

《장군님··· 불효한 저희들이 수령님께 늘 걱정을 끼쳐드렸기때문에··· 그래서··· 수령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오덕실은 끝내 자기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았다.

그가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김정일동지께서도 손수건을 꺼내시였다.

《오덕실동무, 그만하시오.》

그이께서는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는 오덕실을 진정시키시였다.

오덕실은 비보이후 설음을 터뜨리다 여러번 졸도하였다고 한다.

그이께서는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오덕실이처럼 졸도했고 지어 졸도한채 일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는것을 알고계시였다. 그이의 가슴은 미여지는듯 아프시였다. 인민들이 당한 상실은 너무도 컸다. 친부모를 잃었다 한들 그들이 이처럼 절통해하겠는가.

그이께서는 《로동신문》편집안에 예견된 사설의 제목을 다시 들여다보시였다.

《인민의 슬픔은 구천에 사무쳤다》

이 사설제목에 대응하여 신문 4면에는 《슬픔을 힘과 용기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편집되여있었다. 그것은 사설에서 제기한 과업을 받아안은 교양기사였다. 《슬픔을 힘과 용기로!》라는 말은 그이께서 최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위원들앞에서 하신 말씀인데 이제는 그 말이 벌써 신문과 방송에서는 물론 온 나라 인민들속에서 신념의 구호처럼 쓰이고있었다. 지금 평양에 와있는 외국기자들인 리영숙, 박승규들도 《··· 이 말에는 김정일각하의 최고의 의지와 어버이를 잃은 민족에게 돌려주는 최고의 혜택이 내포되여있다.》라고 감탄하여마지 않았다. 실지 그 구호는 수령님을 잃고 상심해있던 인민들에게 말그대로 힘과 용기를 돋구어주었다. 복숭아를 인수해놓고도 맥을 놓은채 울고만 있던 상업부문일군들도 그 구호를 접하고는 용기를 내여 뛰여다니였다. 청년들은 인민군대와 광산, 림산을 비롯한 어렵고 힘든 부문에 련일 탄원해나섰고 공화국 각지에서 아름다운 소행이 수없이 꽃펴나기 시작했다. 하기에 지금까지 반공화국책동을 일삼아온 적의 어용언론인들까지 《슬픔을 힘과 용기로!》라는 구호가 마술사와 같은 기이한 힘을 가지고있다고 하면서 그 구호를 웨치며 산악같이 일떠서는 공화국인민들의 기세에 《등골이 서늘해지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오한을 느끼게 된다》고 자기의 공포심을 솔직히 고백하였다.

아마 그래서 외국의 기자들이 그 구호가 인민들에게 돌려주는 최대의 혜택이라고 하였는지 모른다.

허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께서 내놓으신 그 구호 하나로써 어버이를 잃은 우리 민족, 우리 인민들의 마음의 상처를 가셔줄수 없다고 생각하시였다. 신문이 전하고있는것처럼 수령님을 잃은 인민들의 슬픔이 아직 하늘에 사무쳐있는것이였다. 아니, 날이 갈수록 인민들의 슬픔은 더 커지는것 같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신문편집안을 탁자우에 놓고 의자등받이에 상체를 기대시였다.

어떻게 하면 수령님을 잃은 인민들의 그 비통한 마음을 덜어줄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그 모두가 수령님의 생존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수령님의 숨결과 체온을 그대로 느끼며 살아가게 할수 있겠는가.

《로동신문》 편집안을 앞에 놓으신채 이윽토록 앉아계시던 그이께서는 문기척소리를 듣고야 생각에서 깨여나시였다. 키가 크고 준수해보이는 사람이 8절지 크기만한 나무함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국가장의위원회 상무인 리웅걸이였다.

《왜 이렇게 늦었습니까?··· 사진을 가져왔습니까?》

《예, 가져오긴 했는데···》하고 리웅걸은 나무함을 탁자우에 올려놓으며 자신없는 소리로 중얼거리였다.

그는 수령님의 령구를 바래우는 영결식날 장의차에 모실 초상화때문에 며칠전부터 분주히 다니고있었다. 처음에 그는 회의장이나 가정에서 모신 정색한 표정으로 찍으신 수령님의 사진을 그대로 장의차에 모시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김정일동지께서는 일반행사때 모신 초상화가 아니라 인민들속에 계시는 수령님의 사진을 골라보라고 하시였다.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신 수령님이시니 그와 같은 사진은 얼마든지 찾을수 있었다. 그러나 인민들속에 계시는 수령님의 사진은 례외없이 모두가 환히 웃으시는 모습이였다.

온 세상이 통곡하는 슬픈날에 어찌 웃으시는 사진을 모실수 있을가싶어 그는 정색하신 표정으로 찍으신 사진을 찾느라 종일 시간을 보내였다. 허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인민들속에 계시는 수령님의 사진은 웃으시는것밖에 없었다. 웅걸은 이런 사연을 말씀올리고나서 《그중에서 한 10장나마 고르긴 하였지만 역시 모두 웃으시는 사진입니다.》하고 나무함덮개를 열었다.

《어디 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나무함속에 정성스레 모신 수령님의 사진을 한장한장 꺼내보시였다. 그중에는 수십년전에 검덕의 녀성로동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고 청산리농장벌에서 농민들과 담화하시는 사진도 있었다. 제철소 합숙식당에서 로동자들의 찬그릇을 보시는 수령님, 전연의 군관들과 마주앉으신 사진, 참으로 그 어느 사진을 물론하고 인민들속에 계시는 수령님은 모두 웃으시는 모습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 근엄한 표정을 지으신채 아무 말씀도 없이 오래도록 사진을 들여다보시였다.

리웅걸은 며칠씩 품을 내고도 맞춤한 사진을 골라내지 못한것이 민망스러워 송구하게 서있다가 화가들이 형상한 초상화도 몇장 꺼내놓았다.

《만수대창작사동무들에게도 장의차에 모실 초상화를 형상해보라고 했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초상화도안들도 한장한장 눈여겨보시였다. 역시 화가들도 하나와 같이 엄숙하게 정색을 지으신 사진들을 골라서 형상하고있었다. 그리고 장의식이라는것을 고려하여 초상화에는 모두 검은테두리를 쳤다.

《화가동무들에게 초상화형상작업을 잠간 중지하라고 해야겠습니다. 수령님의 사진을 더 골라봅시다. 어린이들속에 계시는 사진들도 골라보고 군인건설자들속에 계시는 사진들도 얻어봅시다. 나도 짬을 내서 찾아보겠소.》

리웅걸은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어린이들속이나 군인건설자들속에 계시는 사진이야말로 모두 환하게 웃으시는 사진이기때문이였다.

《더 환하게 웃으시는 사진을 찾아보시오.》

《그러니까 웃으시는 사진을?!》

리웅걸은 어리둥절해진 눈으로 그이를 바라보았다.

《그렇소. 더 환하게 웃으시는 사진을 찾아보시오.》

《예··· 그런 사진이야 얼마든지···》

그는 아직도 그이의 말씀의 뜻을 잘 리해할수가 없어 중얼거리였다. 리웅걸이 알고있기엔 동서고금을 두고 장의차에 고인의 웃는 사진을 모신 실례는 없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리고 초상화에 검은 테두리를 치지 말고 꽃으로 장식해야 하겠습니다. 좀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화가들이 형상할 시간도 주어야 하지 않겠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리웅걸은 돌아서 나가려하다가 머밋거리였다.

《뭐요? 어서 말하오.》

《장군님의 신색이 좋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만하고 좀 쉬십시오. 며칠째 침식을 전페하고 일하시니··· 인민들로부터 계속 장군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편지가 올라옵니다. 이제는 한분밖에 안계시는데 그렇게 모시면 어떻게 하는가고···》

《고맙습니다.》

그이께서는 한마디 응대하고 한동안 말씀이 없다가 조용히 이으시였다.

《인민들이 나의 건강을 걱정한다는데 나는 오히려 슬퍼하는 인민들때문에 가슴이 더 아픕니다. 어린 유치원애들이 수령님을 부르며 우는것을 볼 때면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슬픔을 덜어줄수 있겠는지···》

리웅걸은 낯빛을 흐리며 긴숨을 쉬였다. 무슨 말로 그이를 위로해드릴지 알수 없었다. 수령님께서도 그래 장군님께서도 평시에 인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편을 주는 일이 생기면 마음을 놓지 못하군 하시였다. 그러니 저 통곡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괴로와하실지 짐작이 되는것이였다. 그러고보면 김정일동지께서는 지금 수령님을 잃은 가슴에이는 슬픔과 함께 인민들의 만고지통에 대한 아픈 생각때문에 이중으로 타격을 받고계시는것이였다.

《장군님, 어찌겠습니까. 시간이 가면 울음소리가 좀 떠질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리웅걸은 이런 막연한 말로 그이를 위로하였다.

《아니 그렇게 될것 같지 않소. 울음이 그칠것 같지 않소. 날이 갈수록 울음소리는 더 높아집니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만수대동상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효는 점점 더 불어나고있으며 수령님을 뵈옵겠다고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서 지금 평양시가를 메우고있었다.

《장군님, 어쨌든 이젠 좀 주무십시오. 주무셔야 합니다.》

리웅걸은 종시 위로의 말은 찾지 못하고 이렇게 강권하였다.

《좀 쉬겠소. 동무도 이젠 가서 눈을 좀 붙이시오.》

김정일동지께서 리웅걸의 등을 가볍게 떠미시였다.

그가 나가자 방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그이께서는 옷매무시를 바로하고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벌써 새벽 1시가 가까와오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서 계시는 홀로 천천히 걸어가시였다. 조객들의 흐름이 끊어진 홀안은 침실처럼 조용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지금 한창 주무시는듯 고요히 눈을 감고 반듯이 누워계시였다. 량쪽에 목란꽃송이를 수놓은 크지 않은 수수한 통베게를 베고 노상 쓰던 안경을 벗어 머리맡에 놓으신듯 조용히 잠들어계시였다. 정녕 만시름을 잊고 조용히···

순간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을 잃은 슬픔조차 잊으시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밤뿐아니라 어제도, 오늘도, 낮에도, 밤에도 수령님께서 내내 이자리에 누워계시여 수많은 조객들이 끊임없이 여기로 찾아와 땅을 치며 통곡하던 그 처량한 울음소리를 상기하게 되시였다.

그러자 참을수 없는 슬픔이 걷잡을수 없이 그이의 가슴에 밀려들었다.

그이께서는 고요히 눈을 감고 누워계시는 수령님의 얼굴모습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시였다.

(아, 위대하고 숭엄하신 그 인품 어디에 두고 가시렵니까!)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예지가 비범하고 인품이 위대하였을뿐아니라 체격이 숭엄하고 목소리까지 독특하신 미남자이시였다. 그 인품이 지금도 여전하고 조금도 변함이 없으니 그이께서는 생전으로 자꾸만 착각하며 그 매혹적인 인품에 끌려들어가시는것이였다.

(수령님! 광복된 첫날부터 끊임없이 현지지도를 다니며 늘 바쁘게 지내시던 수령님께서 어찌하여 지금은 이렇게 매일과 같이 누워계십니까. 생전에는 우리들이 그처럼 간청을 드려도 쉬시지 않던 수령님께서···)

그이의 안경밑으로 뜨거운 눈물이 비오듯이 흘러내리였다.

그렇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누우실수 없는분이였다. 수령님의 한생은 현지지도의 한생이였고 바쁘신 한생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쉴래야 쉬실수 없는분이였다.

김정일동지의 뇌리에는 문득 리찬의 시 《김일성장군 찬가》의 그 잊지 못할 시구절들이 다시 떠올랐다.

 

장군이 오신것은 아무도 몰랐으나

장군이 오신것은 누구도 알았다

장군은 감출수 없는 우리의 빛

장군은 감출수 없는 우리의 태양

 

광복직후에 읊었던 시인의 목소리가 그이의 귀가에 메아리처럼 울리는듯싶었다.

(우리의 태양! 그렇지, 수령님은 태양이시지. 태양의 빛은 꺼지지 않고 영원한것이다. 우리 수령님은 영원히 살아계신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늘 생각하시던 이 진리를 울고있는 인민들에게 왜 진작 말씀하시지 않았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시인의 심장의 목소리에서 큰힘을 얻으시였다. 한편의 시가 위대한 인간에게도 이렇듯 큰 고무를 주는 때가 있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수령님께서 심장의 고동을 멈춘 시각, 만민의 가슴에 영원한 상처를 남긴 새벽 2시가 가까와오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 다시한번 절을 올리고 천천히 자리를 뜨시였다.

이제는 인민들을 찾아 만수대언덕으로 가보시려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