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1


 

제 5 장

 

1

 

1994년 7월 8일, 민족력사에 최대의 슬픔을 기록한 이날도 아무런 변고가 없는 보통날처럼 평양의 하늘에 아침해가 솟아올랐다. 간밤에 천지를 뒤집어엎을듯 하던 뢰성벽력과 사나운 비바람은 멎어버리고 평양시 거리마다에 《금요로동의 노래》소리가 울리고있었다. 삽과 괭이를 멘 사람들이 대렬을 지어 거리를 지나가고 교외의 들길로는 작업도구들을 실은 짐차들이 분주스레 달리였다.

이 나라 인민들은 자기들에게 어떤 비극이 찾아왔는지 전혀 알지 못한채 종일 유쾌한 기분으로 금요로동을 하고 발걸음 가벼이 저녁퇴근길에 들어섰다. 하루해가 저물어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자 여느날과 다름없이 거리에는 가로등불이 켜지고 집집의 창문들에서도 밝은 불빛이 따스하게 흘러나왔다. 하늘에는 별이 뜨고 은하수가 비꼈다.

그밤 김정일동지께서는 비애의 그림자가 무겁게 드리운 금수산의사당 응접실에 홀로 앉아계시였다.

응접실 문밖에는 입술이 트고 눈에 피발이 선 70대 장령인 항일투사 리을설이 몇시간째 서성거리며 서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아침에 수령님의 서거와 관련한 정치국위원들의 비상회의를 조직하신다음 혼자있게 해달라고 이르시고는 여기 3층 응접실에 들어가시였는데 여직 밤이 깊도록 아무런 기척도 없으신것이였다. 식음을 전페하신 그이께 음료수나마 드리려고 부관이 도간도간 조용히 응접실에 들어갔으나 매번 차물이 찰랑이는 고뿌를 그대로 들고 돌아나왔다.

리을설은 그것을 볼 때마다 어깨를 흠칫하고는 손수건으로 급히 입을 막군 하였을뿐 어찌하지 못하였다.

수령님의 책임서기와 부관들 그리고 금수산의사당 외사국 일군들이 장군님의 신상이 념려되여 안절부절 못하며 응접실문앞에 찾아왔다가도 거기에 망연히 서있는 늙은 장령의 표정을 보고는 어쩌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군 하였다.

3층복도는 조용하였다. 열려진 창문으로 눅눅한 바람에 실려 향내가 짙게 풍겨오고 이따금 어디선가 곡성이 들려오는데 곡성이 그치면 복도는 다시 한정없이 깊은 심연속으로 내려앉는듯 고요해졌다.

리을설은 여전히 초점을 잃어버린 멍한 눈으로 응접실문을 바라보고있었다. 언제면 그 문이 열릴가 하고···

동합금장식을 한 밤색의 높고 두터운 출입문, 아, 찾아올 때마다 언제나 반기며 다정히 열리군 하던 문이였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장군님께서는 나오시지 않았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문밖에서 누가 기다리고있는지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고계시였다. 사실 그이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생명이 위급하다는 급보를 받고 달려가신 지난밤부터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가늠을 하지 못하시였다. 언제 밤이 새여 날이 밝고 정오가 되였으며 또 언제 해가 기울고 어둠이 찾아들었는지 알지 못하시였다. 그때로부터 아직은 옹근 하루도 지나지 않았으나 그 시간이 그이께는 몇십년 아니 몇백년 되는것 같으시였다. 그러다가도 어찌보면 그 비통한 일이 한갖 무시무시한 꿈에 지나지 않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그만큼 믿을래야 믿을수 없으시였다.

어떻게 믿을수 있으랴.

래일 평양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신 수령님의 말씀이 계신것은 며칠전, 몇달전도 아니고 바로 어제저녁이였다. 장군님께서 그 기쁨의 상봉을 기다리시며 그간의 사업을 말씀드릴 마음속차비를 다하시였다. 무엇을 말씀드리려고 하시였던가. 지금은 모든것이 뒤죽박죽이 되여 무슨 일을 가지고 말씀드리려고 하였는지 생각나지 않으시였다.

그속에서도 다만 똑똑히 기억되는것은 수령님의 건강한 모습을 뵈옵게 될 기쁨으로 가슴설레이시던것이였다. 지금도 어제 저녁 송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던 수령님의 자애넘치신 음성이 귀가에 쟁쟁히 울리고있는것 같으시였다.

그러하신 수령님께서 가시다니?

수령님께서는 하실 일도 많으시였다. 자신의 대에 반드시 이룩하시겠다던 조국통일도 성취하시여야 하였고 이 지구우의 모든 나라 인민들의 투쟁도 보살펴주고 이끌어주셔야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찾아가셔야 할 곳도 많으시였다.

이 나라 도시와 농촌, 벌방지대와 산간지대 모든 곳에서 집집마다 언제나 문을 열어놓고있었다. 수령님께서 찾아오실것을 기다려···

수령님을 뵈옵고 그이의 가르침을 받자고 찾아오는 외국의 벗들은 또 얼마나 많을것인가.

수령님께서는 이런 인민들을 위하여 그 어떤 고생도 달게 여기시며 한평생을 바쳐오시였던것이다. 나라가 통일되고 모든 인민들이 잘살게 되는 날을 기어이 보고야말겠다고 하시던 수령님, 그러시던 수령님께서 가시다니?

이제 력사는 어떻게 흘러가고 인민들은 이 슬픔을 어떻게 이겨내랴.

장군님께서는 원통하시였다. 정녕 지금 그이께서 겪으시는 비애와 고통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겠는가.

그이의 눈에서는 비오듯이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비단 그이의 눈에서만이 아니라 평소의 낯익은 갈색 잠바옷 대신 입으신 검은색 닫긴옷에서도, 팔걸이의자에 한쪽 팔굽을 무겁게 얹으신채 하나의 미동도 없이 앉아계시는 그이의 온 육신에서 고뇌의 눈물이 슴새나오는듯싶었다.

이런 속에서 시간은 또 얼마나 흘렀던가.

리을설은 아직도 응접실문을 열지 못하고 복도에서 서성거리였다. 장군님의 부관이 또 물고뿌를 들고 응접실문앞으로 걸어왔다.

그뒤로 수령님의 책임서기 리대천이와 부관들 그리고 금수산의사당 외사국장이 허청거리며 따라왔다. 지난 기간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일해온 그들은 수령님을 졸지에 잃고 얼이 빠지고 허울만 남은 사람처럼 멍청한 얼굴들을 하고있었다.

조금 지나서 위생복을 입은 2명의 의사가 3층복도로 걸어올라왔다. 그들중 한사람은 수령님께서치료받으시던 병원 원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병원 의사였다. 그들이 바로 지난 기간 수령님가까이에 자주 다니며 그이의 건강을 보살펴온 의사들이였다. 당과 국가로부터 받아안은 이들의 책임은 무엇에도 비길데 없이 중요하였다. 그런데 수령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이들에게는 이제 와서 이 세상의 모든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것으로 되여버렸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아있는것자체를 죄악으로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정치국비상회의에서 래일 낮 12시에 부고를 발표하며 동시에 김일성동지의 질병과 서거원인에 대한 의학적결론서를 발표하도록 결정하였으므로 그들은 그 사인문건을 들고 여기로 찾아온것이다. 의사들은 머리를 들지 못하고다니였다.

《장령동지, 계속 이러고있겠습니까. 장군님께서 종일 물 한모금도 들지 않고계시니 어쩝니까··· 저 부관동무가 들어갈 때 같이 따라들어갑시다.》

낯빛이 거멓게 질린 리대천이가 물고뿌를 든채 문앞에서 주밋거리고 서있는 장군님의 부관을 가리키며 리을설에게 하는 말이였다. 그러자 고개를 수그리고있던 원장이 누런 뚜껑을 씌운 문건을 보이며 중얼거렸다.

《저도 좀 들어가봐야 하겠습니다. 이것(사인문건)때문에···》

리을설은 원장의 손에서 무심결에 문건을 받아들고 《김일성동지의 서거원인에 대한···》하고 떠듬떠듬 읽어보다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원장을 노려보았다.

《여보, 이걸 장군님께 보여드린단 말이요? 이걸 어떻게···》

《···》

원장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대꾸도 못하였다. 그는 스스로도 그 문건을 가지고다니는것이 죄스러웠다.

수령님의 질병과 서거원인에 대한 의학적결론서, 그것은 한갖 의학문건이 아니라 이제 온 세계가 관심하게 될 력사적문건이며 수령님의 건강을 직접 돌보아온 의사들의 사업을 온 나라 인민들앞에서 검열받는 문건이기도 하였다. 원장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래일 12시에 그 의학적결론서가 발표되면 인민들은 모두가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장군님께선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그처럼 강력한 의료진을 꾸려주셨는데 도대체 당신들, 의사들은 무엇을 하고있었는가 하고 규탄하며 들고 일어날것 같았다. 하여 원장은 이제 자기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권리가 없고 땅을 딛고설 체면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응당 규탄을 받아야 하였다. 언제 한번 자리에 누워 앓으신적도 없는 수령님께서 너무도 졸지에 돌아가셨기때문에 인민들은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사업해온 저 장령이며 책임서기며 부관들에게도 책임을 물으며 절통한 부르짖음을 터칠것이였다. 하기에 지금 복도에 널려서있는 이들은 자기들이 불충불효하여 수령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으로 내내 모대겨왔었다.

그들은 마땅히 장군님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들의 죄를 낱낱이 아뢰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럴 때가 된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수령님께서는 영원히 돌아오시지 못할 길을 가신것이다.

장군님의 부관이 응접실로 들어가려는듯 기침소리를 크게 내고 몸가짐을 바로하였다.

《우리도 같이 따라들어갑시다.》하고 리대천이 리을설에게 다시 재촉하였다.

부관은 드디여 출입문을 조심히 열었다.

복도에 서있던 사람들은 부관을 따라 발을 저겨디디며 조용히 응접실로 들어갔다.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왼쪽 팔굽을 걸상팔걸이에 얹으신채 어딘가 허공 한점을 뚫어지게 응시하고계시였다. 지금까지 20여시간 고뇌의 바다속을 헤매이신 그이께서는 몰라보게 수척해져서 전혀 딴사람처럼 되시였다. 그이께서는 사람들이 방안으로 들어선것도 전혀 느끼지 못하시는것 같았다.

부관이 음료수가 담긴 고뿌를 탁자우에 올려놓았다. 달그락 하는 소리에 장군님께서는 홀깃 시선을 돌리시였으나 앞에 놓인 고뿌가 거치장스러우신듯 옆으로 밀어놓으시였다. 그러자 리을설이 별안간 억한 심정을 누르지 못해 그이께로 다가갔다.

《장군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안됩니다···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으시면··· 어쩌시자는것입니까.》

장군님께서는 울먹거리는 리을설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아무런 말씀도 없이 그의 손을 꽉 움켜쥐시였다. 불같이 뜨거운 손이였다. 그 뜨거운 열기에서 리을설은 장군님께서 겪으시는 마음속 고통을 느끼며 채머리를 떨었다.

《장군님! 글쎄··· 한평생 수령님을 모셔왔다는··· 제가··· 있어가지고도 으흐흑···》

리을설은 장군님께 손을 맡긴채 년령도 직분도 가리지 않고 울음을 터뜨리였다.

항일의 불바다속을 헤쳐다니던 그 옛날부터 백발의 장령이 된 오늘까지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셔온 그는 누구보다도 수령님을 잘 알고있듯이 그이와 똑같은 모습이신 장군님에 대해서도 잘 알고있는 사람이였다.

동서고금의 력사가 알지 못하는 충효의 화신이신 장군님, 그이는 불같이 뜨거운 열의인이시고 바다같은 사랑을 지니신 정의인이시며 그래서 누구보다도 눈물이 많으신분이였다. 그러하신분이 어버이수령님을 잃었으니 지금 그이의 가슴에서는 첩첩산악도 단숨에 밀어버릴듯한 그런 무서운 폭풍이 고패치고있을것이였다.

《장군님, 여기 모인 저희들은··· 이제는··· 하늘에··· 머리를 들고 살수 없는··· 저희들이 수령님을 잘 모시지 못해서···》

이번에는 수령님의 책임서기 리대천이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오열을 터뜨리였다.

장군님께서는 흐느끼는 리대천을 이윽히 지켜보시다가 누구를 찾으시는듯 방안에 서있는 사람들을 한사람한사람 더듬으시더니 병원 원장에게 시선이 미치자 문득 물으시였다.

《채순동문 어디 있습니까?》

원장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쳐들었다.

《저··· 모르겠습니다.··· 온종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찾아보시오.》하고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원장을 향해 손을 내미시였다. 원장이 들고있는 누런 뚜껑의 문건을 스쳐보시였던것이다.

(아, 이것을 어떻게?)

원장은 정작 문건을 드리자니 가슴이 떨리였다.

잠시후 원장에게서 문건을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얼핏 뚜껑을 번져보시다말고 탁자우에 밀어놓으시였다. 그러시고는 가슴을 에이는 비통을 참으시는듯 눈을 감으시였다.

방안에는 얼마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게 부고와 함께 첨부할 문건입니까?》

《장군님, 무어라 말씀드려야 할지··· 그건 매우 형식적이고 불원만한겁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변명비슷한···》

원장이 주눅이 든 소리로 한숨처럼 중얼거리였다.

그이께서는 한참 마음을 수습하고 제목글부터 다시 읽어나가시였다.

김일성동지의 서거원인에 대한 의학적결론서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심장혈관의 동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오시였다.

1994년 7월 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장쇼크가 합병되였다.

즉시 모든 치료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증악되여 1994년 7월 8일 2시에 서거하시였다. 그후 진행한 병리해부검사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증되였다.

 

《확증되였다!··· 무엇이 확증되였단 말인가?》

그이께서는 이렇게 반문하며 뚜껑을 접으시였다. 의사들을 포함한 방안사람들은 장군님의 그 물음을 분명 들었고 그래서 더욱 긴장해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침통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방안을 천천히 거니시였다. 그이께서는 의사들이 진행한 병리해부검사를 정확히 그리고 책임적으로 하였으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으시였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그이께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부정하고싶으시였다.

인민들은 수령님께서 7월 6일까지도 건강한 몸으로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신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있으며 또 7월 7일이 끝나가는 밤에 조국통일문건에 수표를 하신 사실을 앞으로 알게 될것이였다. 그러니 인민들이 이 의학적결론에 대해 어떻게 납득할수 있겠는가. 수령님의 질병 하나 고쳐드리지 못한 의사들을 원망하고 규탄할수 있었다. 분명 이 의학적결론서에는 영원히 력사가 잊지 말고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길이 전하여야 할 가장 중요하고 가장 본질적인것이 비여있었다.

(아, 수령님을 더 잘 모시였더라면···)

그이께서는 절통스러운 이 회환으로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으시였다. 정녕 그이께서도 수령님의 서거원인이 단순히 질병에 있는것이 아니라 수령님을 더 잘 모시지 못한데 있다고 생각되시였다. 돌이킬수 없는 그 잘못과 그에 대한 회환으로 하여 장군님의 마음은 참을수 없이 괴로우시였다. 그러면서도 그이께서는 수령님을 더 극진히 잘 모시지 못한 그것도 결코 수령님의 서거원인에서 기본으로 되지 않는다고 보시였다. 그것은 본질적인것이 아니였다. 그러면 무엇이 본질이란 말인가. 이렇게 자문하시는 그이의 마음속에는 《카터와의 회담은 어쩔수 없었다!》,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도 막을수 없었다!》하는 피떨어지는 아픈 웨침이 울리고있었다.

수령님,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은 바로 그렇게 흘러갔다. 누구도 대신할수 없고 누구도 덜어드릴수 없는, 오직 그이께서만이 하실수 있는 력사의 부담을 어깨에 메고 장장 수만리를 걸어오시였다.

그래서 수령님께서는 위대하시다.

우리 인민이 그이를 5천년력사이래 처음 맞이하는 불세출의 희세의 영웅으로, 민족의 태양으로 떠받들어온것도 그 어느 시대의 그 어떤 인간도 할수 없는 일을, 그러면서도 꼭 해야 할 일을 바로 그이께서 하고계셨기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때 장군님의 눈앞에 이 나라의 많은 문필가들이 수령님의 한생을 상징하여 자주 적어온 《만고풍상》이라는 네글자가 황금색 별빛으로 크게 새겨졌다.

아직은 한가정의 운명을 떠메고나서기에도 이른 10대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걸머지시고 만주광야에 《ㅌ. ㄷ》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날리시던 그날부터 오늘까지 수령님께서 겪으신 풍상고초를 그 무엇으로 다 헤아릴수 있으랴.

수령님께서는 력사와 혁명이 불가피하게 부과하는 시련과 난관을 앞장에서 개척해나가시였다. 조선혁명의 승리를 하루라도 앞당길수 있다면 평탄한 길을 버리고 가파로운 비탈길로 오르기도 하시고 인민의 더 큰 행복을 위해서라면 맑고 개인날만이 아니라 비바람과 눈보라속으로도 스스로 들어서신 까닭에 더욱 고초를 겪어오신 김일성동지이시였다.

광복을 맞이한 기쁜날에도 20년만에 다시 보는 고향을 지척에 두고 강선으로 향하신 그이, 건당, 건국, 건군이 끝난 다음 실컷 쉬여보자던 휴식대신에 전쟁의 중하를 또다시 걸머지신 그이, 남들보다 뒤떨어진 처지에 잠을 다 자고 쉴것을 다 쉬고 어떻게 그들을 따라잡겠느냐고 하시며 천리마의 고삐를 잡고 앞장에서 달려가신 그이, 그이께서 헤쳐오신 력사에 없는 만고풍상은 수백수천년 세월을 거쳐 우리 조선이 겪어야 했던 그 모든 시련과 고난을 자신의 한몸으로 겪으시며 막아내신 만고풍상이다.

그것은 멀고도 험난한 혁명의 로정을 하루와 같이 진두에서 이끌어나가시여 이 땅을 《주체사상》의 고향으로, 20세기의 《에루살렘》성지로 누리에 빛나게 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와 결부되여 있는 만고풍상이다. 그러시고도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집무실에서 사업하시다가 순직하시였으니 고금동서 어디에 이런 수령이 있었던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잊을수 없는 22년전 봄명절이 추억되시였다.

1972년 4월 15일 아침 마동희 어머니가 지성어린 선물을 들고와 수령님의 얼굴을 허물없이 손으로 만져보면서 《산에서 싸우실 때 입은 언 상처자리가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구만요. 환갑이 되도록 아직 없어지지 않고 살결이 이렇게··· 장군님, 이젠 더는 늙지 마시오다··· 늙지 마시오다.》하고 목메여 말하던 그 목소리가 이날따라 더욱 귀에 쟁쟁하시였다.

인민들은 그 풍상고초를 보고만 있는것이 안타깝고 걱정스러워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 《수령님의 만수무강 축원합니다》라고 노래를 지어올렸다.

허지만 인민들이 그럴수록 더욱 분발하시였고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인민들이 조밥을 먹을 때 자신도 조밥을 드시고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맬 때 자신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시며 개인적인 락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신 김일성동지이시였다. 비단 조선혁명뿐아니라 세계혁명을 위하여 그이께서 얼마나 많은 외국인들을 접견하여 가르치심을 주고 연설을 하시고 귀중한 로작들을 집필하시였는가.

바로 그것이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그 어떤 질병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평생을 통해 멍든 만고풍상의 어혈로 그리고 복잡하고 다난한 조선혁명과 세계혁명의 매 단계마다에서 루적된 정신육체적과로로,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력사의 부담으로 심장의 고동을 멈추시였다.

수령님께서 한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로고의 길을 걸으신것은 어찌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것은 물리칠수도 없고 만류할수도 없는 력사의 요청이였다. 그것은 피할수도 없고 피해서는 안되는 불세출의 위인의 한생이였다. 여기에 우리모두의 죄스러움과 고통과 안타까움이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하여 인민들은 더욱더 그이를 우러러따르고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다.

사랑하는 인민들이여, 부디 용서하시라. 그 누구에게도 죄를 묻지 말고 잘못을 용서해주시라. 아마도 그것이 우리 수령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말씀 못하신 유언인지도 모르리라.

김정일동지께서는 응접탁으로 돌아와 문건뚜껑을 번져놓고 펜을 드시였다. 그러시고 의학적결론서우에 무엇인가를 쓰시려다가 문득 손을 멈추고 고개를 쳐드시였다. 순간 그이의 시선이 원장의 눈길과 마주쳤다. 원장은 무엇인가 엄하게 묻는듯한 그이의 눈빛을 일별하고 저도 모르게 온몸에 전률을 일으켰다. 그때 원장의 귀에는 방금전에 의학적결론서를 보시고 《확증되였다!··· 무엇이 확증되였단 말인가?》하고 반문하시던 장군님의 목소리가 다시금 메아리쳐 오는듯 하였다.

(그것은 우리를 질책하시는 말씀이시였다. 의학적결론서를 부정하시는 말씀이시였다. 그렇다면 지금 장군님께서는 무엇을 쓰시려고 펜을 드시였는가? 력사앞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원장은 이제 민족력사의 한페지에 자기들의 씻을수 없는 죄행이 기록될것 같이 생각되였다. 모든 인민들이 하늘처럼 믿고 따르며 다같이 운명을 맡기고있던분, 위대한 수령님을 잃어버리게 된 까닭은 바로 자기들 의사들이 불충불효하고 무능한때문이였다는 사실이 기록될것 같았다.

정녕 장군님께서 당신들스스로가 왜 그 진실을 밝히지 못하였는가? 하고 물으시는듯싶어 원장은 가슴이 떨리였다. 돌아보니 옆에 서있는 의사도 그런 무서운 죄책감에 사로잡혀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는듯 하였다.

긴장한 침묵이 흘렀다. 그 시간이 길었던지 짧았던지 원장은 의식하지 못하였다.

원장을 지켜보시던 장군님께서 무수한 글자들이 렬을 지은 의학적결론서에 눈길을 돌리시더니 마침내 무엇인가를 큼직하게 덧쓰시였다.

그이께서 무엇을 쓰시였는가?

방안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펜을 쥐신 그이의 손움직임을 보고 문건우에다 무슨 글자인지 대단히 크게 쓰시였다는것을 알아차리고 긴장하게 서있었다. 비단 의사들뿐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 문건우에 자기들과 관련한 그 무엇이 씌여져있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자기들모두가 수령님을 잘 모시지 못하여 그이께서 서거하시게 된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기때문이였다. 이 진실을 력사앞에서 어찌 속일수 있겠는가.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눈길을 쳐들고 사람들을 둘러보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왜 이처럼 갑자기 돌아가셨습니까? 우리가 왜 이렇게 수령님을 잃게 되였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를 들으시고 말씀을 끊으시였다. 원장이 몸을 비칠하면서 발을 옮겨디디였다. 방안사람들은 더한층 긴장해졌다. 그속에서 장군님의 갈린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누구도 막을수 없고 또 막아서는 안되는, 력사와 시대가 부과한 짐을 지고계셨습니다. 누구도 덜어드릴수 없는 그 무거운 짐을 지고 한평생 로고의 길을 걸어야 하시였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겹쌓인 과로로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은 현대의 의학으로써는 어찌할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여기 결론서에 즉시 모든 치료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증악되여···라는 표현이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 그 표현의 의미를 우리 인민들이 리해하고 납득하게 될것입니다. 자, 이걸 받으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뚜껑을 번져놓은채로 의료문건을 원장에게 내미시였다. 원장은 몸가짐을 바로하고 두손으로 정중히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때 의사들은 물론이고 리을설을 비롯하여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원장에게로 가까이 다가와서 의학적결론서우에 진하에 덧씌여있는 글자를 들여다보았다.

《겹쌓이는 정신적과로로!》

수령님의 서거원인에 대한 설명을 한마디로 함축시킨 그 열자의 글을 읽는 순간 원장이 먼저 《수령니임- 장군니임》하고 저도 모르게 흐느끼는 소리로 두분의 존함을 불렀다. 함축된 그 짧은 글에서 수령님의 로고를 덜어드리지 못한 김정일동지의 아픈 마음과 함께 자기들의 잘못을 용서해주시는 그이의 사랑을 읽었기때문이였다. 원장도 울고 의사도 울었다. 그러자 그들의 흐느낌소리가 련쇄반응을 일으켜 불시에 방안은 여러 사람들의 기침소리, 흐느낌소리로 소연해졌다.

《장군님··· 정말 장군님을 뵈옵기가··· 죄스럽고 또 마음이 아픕니다.》

리을설이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채머리를 세차게 떨었다.

《그만합시다. 이젠 그만하시오.》

이리하여 어버이수령님의 력사에 다시 없는 서거원인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