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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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는 흰색 여름모자를 벗어 부관에게 넘겨주고나서 차창옆 쏘파에 앉으시였다. 차창으로 잔잔한 아침해빛이 비쳐들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리대천에게 제기된 문건들이 있으면 가져오라고 하시였다.

《예. 알겠습니다.》

리대천은 부관과 함께 수원차로 돌아갔다. 차칸은 조용하였고 렬차바퀴가 레루의 이음짬을 지나는 소리가 가락맞게 들려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웬일인지 소중한 그 무엇을 잊어버리고 온것처럼 마음이 허전해지시였다. 그것이 무엇때문인지를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보시였다. 문득 방금 역구내에서 김정일동지와 갈라지던 일이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너무 급하게 헤여졌군.)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시였다. 평양에 남아서 나라의 전반사업을 다 맡아안고 밤을 새우게 될 그에게 왜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해주었을가? 평양거리를 돌아보느라고 공연히 시간을 허비했다는 후회가 드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역홈에서 보시였던 김정일동지의 얼굴모습을 상기하고 생각을 더듬으시였다.

(장군이 오늘은 색안경을 끼지 않고 나왔지? 색안경을 끼면 내가 걱정할가봐 그런게 아닐가?)

수령님께서는 역홈에서 여러 사람들과 일일이 작별인사를 나누시느라 김정일동지의 안색을 주의깊이 들여다볼사이가 없으시였다. 헤여지려는 시각 그이의 정다운 눈빛을 보려고 하시였으나 어째선지 잘 보지 못하시였다.

(색안경을 안꼈으니 피발이 선 눈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던것 같아.)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한숨을 내쉬시였다. 앉으나서나 자나깨나 자신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일심전력하는 김정일동지의 지성에 눈물이 나시였다. 그런데 너무도 아쉽게 작별을 하신것이다.

그이께서는 김정일동지에게 무엇인가 가슴속에 깊이 새겨두었던, 간절하게 하고싶은 말씀을 하지 못하고 오신것 같으시였다. 그것이 무엇이였던지 정작 생각해보면 딱히 짚어 말씀할수가 없으시였다. 너무도 뜨겁고 깊은 정으로 얽혀진것이여서 말로써는 쉬이 표현할수 없었던지 몰랐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쉬운 마음으로 차창밖을 내다보시였다. 평양역은 이미 시야에서 벗어지고 부드러운 기복을 이룬 야산들과 논벌들 그리고 씨리카트벽체의 산뜻한 농촌문화주택들이 차창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작별인사를 드리며 역홈에 서계시던 김정일동지의 모습은 아직도 그이의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슴이 쩌릿하시였다. 다시는 그의 마음을 괴롭히지 말고 이번 일만 끝내면 그의 소원대로 한해여름 푹 쉬며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그러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시였다. 문건을 가지러갔던 리대천이 그이께서 계신 차칸으로 돌아온것은 이때였다. 그는 김일성동지께서 마주하고있는 렬차탁상에 밤빛 나무서류함을 올려놓고 정중히 말씀을 올렸다.

《벨지크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평양을 떠나면서 작별인사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렇소?》

김일성동지께서 서류함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반문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바로 이삼일전 6월 30일에 이 유럽손님을 만나주시였다.

《다음은 글렌쵸브라는 로씨야사람의 편지입니다.》

《글렌쵸브?》

김일성동지께서는 로씨야사람의 이름을 외우시며 잠시 기억을 더듬으시였다. 그러나 전혀 들어보지 못한 낯선 이름이였다. 그이께서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외국의 평범한 인민들한테서도 이렇게 무시로 편지를 받아보시는것이였다.

국내인민들뿐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보내오는 이런 편지들을 처리하시는데만도 그이께서는 적지 않은 시간을 바쳐야 하시였다.

《그밖에도 여러통의 편지가 왔는데 그것은 차후에 드리겠습니다.》

리대천이 나무함뚜껑을 열어드리며 하는 말이였다.

《알겠소. 그럼 먼저 2통을 읽어봅시다.》

그이께서는 나무함에서 편지봉투를 꺼내여 겉봉에 씌여있는 필체를 한참 들여다보시였다.

그때 부관과 함께 채순이 의료기구들을 들고 그이께서 계시는 차칸으로 들어왔다.

《거기 앉소. 외국손님들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이걸 먼저 읽고 진찰을 받자구.》

김일성동지께서는 채순에게 자리를 권하고 손에 닿는대로 벨지크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편지를 먼저 집어드시였다. 그리고 곁에 서있는 부관과 채순을 돌아보며

《벨지크로동당 위원장은 네번째 조선을 방문했소. 이번에는 조선을 소개하는 영화를 찍겠다고 촬영가들까지 데리고 왔소. 그래 전번 6월 30일에 그의 수원들도 다 함께 만나주었소.》하고 말씀하시고 편지를 읽기 시작하시였다.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구성이시며 우리의 가장 친근한 스승이신 김일성동지!》하고 서두를 뗀 벨지크로동당 위원장은 아름답고 성스러운 도시 평양을 떠나면서 다함없는 존경의 마음을 안고 그이께 삼가 작별의 글월을 올린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하였다.

김일성동지, 당신은 이번에도 국제혁명운동의 지침이 되고 우리 벨지크로동당사업의 헌장으로 되는 천금같이 귀중한 말씀을 많이 해주시였으며 체류기간 우리 일행모두에게 육친과 같은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나는 잊을수 없는 이 환대에 대하여 심심한 감사를 드리면서 우리 두 당의 영원한 단결과 협조를 위하여 앞으로도 변함없이 친선의 뉴대를 보장할것을 굳게 맹세하는바입니다.》

편지는 시종 김일성동지에 대한 감사의 정으로 일관되여있었다. 벨지크로동당 당수는 국제공산주의운동에 공헌한 김일성동지의 업적과 덕망에 대해서도 깊은 감동을 가지고 피력하였다. 별로 길지 않은 편지였으나 그것은 김일성동지께 다난한 국제혁명과 관련된 여러가지 추억을 불러일으키였다. 무엇보다도 그이께서는 서방제국주의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있는 벨지크와 같은 나라들에서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혁명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있는데 대하여 만족스럽게 생각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벨지크로동당 당수의 편지를 읽으신 다음 이어 글렌쵸브의 편지를 보시였다. 이 로씨야사람은 편지에서 교원출신인 자기가 한때 고르바쵸브의 《개혁》바람에 말려들어 쏘련공산당 당증을 팔아먹는 망동까지 부리였다고 고백하였다. 그가 환상을 가지고 갈망했던 자본주의복귀는 그에게 실업과 빈궁과 질병만을 가져다주었다. 글렌쵸브는 이렇게 썼다.

《···허나 죽음의 사막을 걸어가던 저는 오아시스를 만났습니다. <평양선언>, 그것이 나의 오아시스이며 나의 별이였습니다.

암야의 등불처럼 저에게 빛을 준 그 <평양선언>을 읽으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48년전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하여 발표된 <공산당선언>이 당시 <유령>처럼 누리에 배회하기 시작한 공산주의사상을 조직적인 힘으로 묶어세운 로동계급의 첫 강령이였다면 사회주의의 <붕괴>와 <종말>에 대하여 떠들던 시기에 발표된 <평양선언>은 전세계 혁명적당들과 혁명적인민들에게 실로 오아시스와 같은 소생의 즙을 주는 현시기 국제적로동계급의 첫 강령이라고···

저의 이 표현이 정확하다고는 말할수 없으나 어쨌든 저는 <평양선언>앞에 <첫>이라는 순서수사를 놓고싶습니다. 그것은 <평양선언>이 인류사상사에서 제일 으뜸가는 당신의 위대한 주체사상을 리념으로 하는 선언이기때문입니다.

이 글렌쵸브는 사랑하는 나의 로씨야땅에도 당신께서 가르쳐주신 그러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하여 전생을 다 바칠것을 맹세드리는바입니다.》

글렌쵸브의 편지는 그이께 드리는 하나의 열렬한 맹세문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먼 우회로를 거쳐 자기 궤도에 간신히 들어선 아직 한번도 보신적 없는 45살의 로씨야사나이를 눈앞에 그려보시며 그의 운명적인 편지를 두번씩이나 읽으시였다.

《<평양선언>을 읽은 다음부터 마음을 돌렸다면 이 사람이 한 2년동안 사회주의재생운동을 잘했겠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실눈을 지으며 혼자말씀으로 조용히 뇌이시였다. 《평양선언》을 발표하던 2년전 봄이 어제일처럼 생각되시였다.

사실 그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제국주의자들이 떠드는 사회주의《종말》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이전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이 하루아침에 망해버리자 어떤 공산당은 급기야 당의 명칭을 고쳤고 또 어떤 당은 공산주의구호를 줴버렸으며 지어 어떤 당은 조직을 해체하기까지 하였다. 허나 이때 조선의 하늘에서는 사회주의기발이 더욱 붉은 빛을 띠고 세차게 펄럭이고있었다.

하여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조선을 바라보게 되였고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으려 숱한 외국인들이 날마다 평양으로 찾아들게 되였다.

《<평양선언>을 발표한 그해 4월에 참 손님들이 많이 왔지?》

글렌쵸브의 편지를 내려다보며 잠시 묵묵히 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 리대천에게 고개를 돌리시였다.

《그렇습니다. 수령님의 탄생 80돐을 계기로 여러 나라 대통령, 국가수반, 당수들을 비롯해서 각종 대표단들이 무려 420여개나 왔댔습니다.》

《그래 한 130여개나라에서 온 대표단들이 420여개 되였소.

그때 동요하는 사람들이 있기때문에 내가 그들에게 쏘련이 망하게 된 원인을 오랜 시간에 걸쳐 실례를 들어가며 말해주었소. 동무들도 조직비서의 로작을 공부해서 다 알고있는것처럼 쏘련이 망해버린것은 한마디로 쉽게 말해서 쏘련당이 관료주의만 부리고 인민들속에서 사상교양사업을 하지 않았기때문이요.》

그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여러 정당대표들은 세계혁명의 원로이고 위대한 공산주의자이신 김일성동지께서 계시는 평양에 국제당중앙위원회를 내오자고 제기하였다. 말하자면 제4국제당을 내오자는것이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국제당을 내올 필요가 없다고 하시였다. 그것은 자주성의 시대인 오늘의 추세에 맞지 않았기때문이였다. 대신 그이께서는 여러 나라의 정당 대표단과 대표들이 평양에 모인 기회에 사회주의위업을 옹호하고 전진시킬데 대한 공동선언을 발표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력사적인 평양선언 《사회주의위업을 옹호하고 전진시키자》가 1992년 4월 20일에 평양에서 발표되였는데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 사회주의운동에서 커다란 전진이 이루어지고있는것이였다.

《글렌쵸브의 편지를 보아도 알수 있는것처럼 이전 쏘련과 동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복귀의 쓴맛을 체험하고 사회주의를 재건하기 위한 운동을 벌리고있고 라틴미주와 아시아, 유럽에서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당들이 후퇴하는 국면에서 벗어나 앞으로 전진하고있소.··· 김정일장군이 말한것처럼 사회주의는 과학이요. 과학의 법칙에 따라 흘러가는 력사의 길을 누구도 막을수 없소.》

부관과 채순은 그이의 이야기에 심취되여 그린듯이 서있었다. 리대천도 깊은 생각에 잠겨 덤덤히 로씨야사람의 편지를 먼발치에서 내려다보고있었다.

그는 이때 김일성동지의 한쪽 어깨에 얹혀진 국제혁명의 큰짐을 생각하고있었다.

참으로 《평양선언》이 발표된후 얼마나 많은 외국의 정계인물들과 혁명운동자들이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으려 평양에 찾아왔던가. 선언이 발표된 당시에는 세계 여러 나라 70개당의 48명의 당수들과 대표들이 서명하였지만 그후 반년남짓이 지나서는 벌써 서명한 정당이 151개로 늘어났다. 《평양선언》에 대한 공감과 지지는 곧 김일성동지의 사상에 대한 세계 사회주의자들의 지지이며 공감이였다. 최근에도 에스빠냐공산당 위원장, 브라질 10월8일혁명운동지도자들, 우루과이 3월26일운동대표단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 국가 및 정부수반, 당수, 학자, 언론인, 혁명활동가들이 수없이 그이를 방문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인민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여 진행하여온 조선혁명의 경험과 교훈을 털어놓고 말해주어 그들모두가 사회주의위업에 헌신할수 있도록 고무해주시였다. 인민들속에 깊이 뿌리박은 사회주의가 진짜사회주의이며 그러한 사회주의는 무너지지 않고 영원하다는것, 이것이 만사람에게 알려주는 그이의 신념이고 지론이였다.

그이께서는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이 접견하시였는데 그들에게는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도록 조언을 주시였다. 바로 몇달전에도 미국의 종교대표단, 기자단을 비롯하여 여러 자본주의나라 정계인, 기자단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허물하지 않고 친절한 답변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지난 기간 외국의 종교인, 기업가들로부터도 많은 편지를 받아보시였다.

《글렌쵸브의 편지를 보니 기분이 좋소. 그에게 인차 회답을 써보내야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두 외국인의 편지를 나무함속에 넣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수령님!》

이때 채순이 문득 고개를 쳐들었다.

《왜?》

《제가 최근 출판물에서 보았는데 유럽의 어느 학자가 <희망의 별은 어디서?>라는 제목을 달고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채순이가 왜 갑자기 이런 화제를 내놓을가 하고 의아해하시였다.

《그 학자는 그 글에서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리론은 혁명의 성서이고 김일성동지께서 계시는 평양은 혁명의 성지라고 하면서 옛날에 수난자들이 에루살렘을 순례하듯이 오늘의 수난자들은 평양을 순례하여야 희망의 별을 볼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수령님께선 국제혁명을 위해서도 건강을 돌보셔야 합니다. 벨지크로동당 위원장과 로씨야교원이 왜 이렇게 편지를 올렸겠습니까. 그게 다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소. 나는 보다싶이 이렇게 건강해.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소. 자 혈압을 재보라구.》

그이께서는 자신있게 팔을 내미시였다. 그러자 채순은 기다린듯이 얼른 혈압계를 꺼내였다.

아닌게아니라 수령님의 혈압은 정상이였다. 맥박도 고르롭게 그리고 힘있게 뛰였다. 채순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어리였다.

부관도 입술새로 흰이를 드러내며 기뻐서 벙글거리였다.

《국제혁명에 대한 말이 나왔는데 <평양선언>이후 공산주의자들의 련대성도 점차 강화되고있소.》

김일성동지께서 혈압을 재느라 걷어올렸던 팔소매를 내리우며 이야기를 계속하시였다.

《그것은 지금 각국 공산당대표들이 계속 우리 나라를 방문하고있는 사실이 말해주고있소. 비단 글렌쵸브 한사람만이 아니라 그밖에도 이전 쏘련공산당원들이 우리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오고 또 직접 찾아오기도 하오. 지난해에는 쏘련영웅 랴쉔꼬를 만나보았소.》

랴쉔꼬는 해방후 기계화보병사단장으로 우리 나라에 와있던 오랜 공산당원이였다. 그는 1948년에 귀국하면서 부대가 가지고있던 땅크를 모두 우리 나라에 넘겨주었다고 한다.

《48년에 랴쉔꼬가 귀국할 때 내가 금회중시계를 선물로 주었는데 그는 지난해에 그 금회중시계와 나와 같이 찍은 사진 그리고 김정숙동무가 그의 부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가지고 왔소. 나는 오래간만에 그를 만나 담화하면서 롱담삼아 이제부터 당신을 따와리쉬(동지)라고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 가스뽀진(각하, 님, 씨)이라고 불러야 하는가고 물으니 동지라고 불러달라고 하면서 자기는 지금도 당원증을 보관하고있다고 하였소. 그래서 내가 또 1 800만이나 되는 공산당원이 있으면서 어떻게 되여 쏘련을 망하게 만들었는가고 하니 그는 쏘련공산당이 사상교양을 잘하지 않은데다가 고르바쵸브가 변질되였기때문이라고 하면서 이전 쏘련과 동유럽나라 사람들이 오늘에 와서는 사회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로 복귀한데 대하여 후회하고있다고 하였소.

랴쉔꼬는 올해 84살이 되는 로인이요. 그는 헤여질 때 눈물을 흘리면서 후손들을 위해서 조선에서 어떻게 하나 사회주의를 지켜달라고 했소. 이것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세계인민들의 목소리이기도 하오. 사실 사회주의가 망하는 때에 조선은 사회주의보루를 지켰고 또 지키고있소. 그러므로 조선혁명의 운명이자 세계혁명의 운명이라고 말할수 있소. 그래서 나는 우리를 만나자고 요청하는 외국사람들을 다 만나주오. 한마디라도 좋은 말을 해주어 이 세계를 하루속히 인류의 리상사회로 만들기 위해서요.》

줄곧 자애로운 웃음이 떠돌던 그이의 얼굴에 근엄한 빛이 어리였다. 그이께서는 두 외국인의 편지가 들어있는 나무함우에 손을 얹으며 한결 고조된 목소리로 계속하시였다.

《나는 원래 혁명을 시작할 때부터 그랬소. 우리를 만나자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공산주의자이든 공산주의자가 아니든, 그가 영향력이 있는 큰 인물이든 일개 평범한 아녀자이든, 그가 조선사람이든 외국사람이든 다 만나주었소. 지난날에 나쁜짓을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나서면 만나주고 손도 잡았소. 리치상으로 보아도 혁명은 사람이 하는것인데 사람을 만나지 않고야 어떻게 혁명을 하겠소. 그런데 의사들은 손님접견이 중로동과 맞먹는다고 하면서 나더러 손님을 만나지 말라고 하는데 너무 그러면 안돼. 그렇지 않소, 부관동무?··· 간호원동무?》

그이께서는 다시금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을 번갈아보시였다. 차안에는 갑자기 침묵이 깃들었다. 철길 이음짬을 넘어가는 규칙적인 차바퀴소리가 그 무슨 장단가락처럼 들려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떤 미사려구도 번쩍거리는 수식어도 없이 그저 평범하고 통속적인 구두어로 말씀하셨지만 부관과 채순이는 무한한 세계를 받아안은 감동으로 하여 오래도록 입을 열지 못하였다. 그들은 한마디 말도 없었으나 그 어느때보다도 생각을 많이 하고있었다. 그때 부관은 수령님의 머리에 내린 흰서리를 가슴뜨겁게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만약 한나라 수령으로서 외국손님들을 제일 많이 접견하고 지도해주신 수령을 세계기록집에 적는다면 그것은 단연 우리 수령님이실것이라고···

인민들을 찾아가 담화하고 보살펴주신 연공수가 제일 많은 수령도 현지지도의 길을 제일 많이 걸으신 수령도 반제자주투쟁을 위하여 제일 많이 생각하고 헌신한 수령도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지난날 윁남전쟁시기에 그이께서 이 나라 인민들을 어떻게 도와주고 고무하셨던가. 캄보쟈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인민들의 행복을 위하여 얼마나 마음을 쓰고 얼마나 귀중한 조언을 주시였는가. 쁠럭불가담운동, 남남협조 등 발전도상나라들의 발전과 친선단결을 위하여 얼마나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였고 쓰딸린, 모택동, 호지명, 까스뜨로, 찌또, 호네케르 등 세계의 국가수령들과 어떻게 친선을 도모하고 협조하시였던가.

그렇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 무엇도 가리지 않고 하시는분이였다. 하기에 그이께서는 죄많은 김영삼이도 만나주실 관용을 베푸시였다. 하여 북남최고위급회담을 마련하고 지금 력사의 북행길을 가고계시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