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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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6일 깊은 밤

김정일동지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집무실에서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의 실황록음을 듣고계시였다.

얼마전에 수령님께서는 록음테프를 보내시면서 전화로 회의가 성과적으로 진행된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조직비서한테 걱정을 끼치면서까지 내가 우겨서 협의회에 참가하였는데 회의도 잘되고 내 건강도 좋으니 일이야 잘된셈이지.》하고 유쾌하게 웃으시였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목이 메이여 아무런 대답도 드리지 못하시였다.

수령님의 헌신적노력에 감격하였고 그이의 건강에 기쁨을 느끼시였다.

5일과 6일 이틀간에 걸쳐 회의를 집행하시고도 그렇게 건강하다고 하며 전화를 거시니 안심이 되시였다. 이어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에서 보내온 북남최고위급회담준비를 위한 문건을 방금 받았다고 하시며 협의회와 관련된 포치사업을 하신 다음 읽어보겠다고 하시였다.

전화는 그렇게 끝났다.

지금 록화테프는 돌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눈을 지그시 감으시였다. 끝내 회의는 수령님을 모시고 열리고야말았다. 실로 누구도 막을수 없었던 회의였다. 회의에서 하신 수령님의 연설은 민족경제발전의 빛나는 전망을 열어주는 위대한 경제강령이였다. 그것은 앞으로 전당대회가 열리면 그대로 보고를 대신하여도 될 력사적인 교시였다. 수령님의 연설가운데는 자신의 한생을 총화하는 뜨거운 말씀과 그 한생을 통하여 얻어진 귀중한 교훈들이 있었다.

그래서 수령님께서 굳이 회의를 맡아하시였구나 하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생각하시였다.

록음기는 돌고있었다.

《···내가 늘 말하지만 일군들은 인민들을 선생으로 여기고 인민대중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세상에 인민대중보다 더 힘있고 지혜로운 존재는 없습니다. 인민대중에게서 배우며 인민대중을 가르치고 이끌어나가면 그 어떤 곤난도 뚫고나갈수 있습니다. 인민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면 백전백승하지만 인민을 믿지 않고 인민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번 패한다는것이 바로 혁명하는 사람들의 좌우명으로 되여야 합니다. 일군들은 인민대중을 믿고 그들의 지혜와 힘에 의거할뿐만아니라 인민대중에게 헌신적으로 복무하여야 합니다. 인민대중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것은 가장 영예롭고 보람찬 일이며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더없는 행복이고 영광입니다.》

《이민위천》의 숭고한 리념을 강조하시는 뜻깊은 명언이였다. 그 명언의 뜻을 다시금 새겨보고계시는데 수령님의 나직하나 천근무게를 가진 육성이 계속 울리면서 김정일동지의 가슴속에 뜨거운 격정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지금까지 인민을 믿고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인민들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나의 한생은 인민과 함께 투쟁하여온 한생이였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우리 인민과 함께 있을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끝없이 숭엄하고 비길데 없이 절절한 심정으로 그 구절들을 들으시였다.

인민의 아들, 인민의 수령만이 자기의 한생을 두고 그렇게 말할수 있는 법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탁에서 일어나 록음기앞을 거니시였다.

록음테프는 그냥 돌아가고 시간은 흘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따금 수령님의 웃음소리도 들으시였다. 특히 그이께서는 경제부문의 책임일군들과 일문일답으로 담화하시는 수령님의 목소리를 주의깊게 들으시였다.

문득 수령님께서 경공업부문을 담당한 녀성정무원 부총리를 부르시더니 학생들의 교복공급이 어떻게 됐는가고 물으시였다. 이윽고 부총리는 수령님의 배려에 의하여 전국의 학생들에게 교복을 공급하였다고 감격에 겨운 소리로 말씀을 올리였다.

이때 김정일동지께서는 감회로운 추억에 잠기시였다. 지난 5월 수령님께서는 눈수술로 하여 입원치료를 받는 그 기간에 교복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의사들이 알지 못하게 부총리와 여러번 전화련락을 하시였던것이다.

이해따라 더욱 힘들게 마련한 교복천이여서인지 수령님께서는 몹시도 기뻐하시였다.

《수고했소, 수고했소. 우리 아이들에게 옷을 다 해입혔단 말이지. 부총리동무, 동무가 나를 정말 기쁘게 해주누만.》

김정일동지께서는 기쁨에 넘친 수령님의 목소리에 눈시울이 뜨거워지시였다.

《수고했소··· 정말 수고했소, 이리 좀 나오시오. 여기 가까이로!》

웃으며 하시는 수령님의 다정한 음성. 록음기에서 수선거리는 소리가 일어나더니 갑자기 흥겨운 웃음소리가 울리였다. 그 웃음소리에 김정일동지께서도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회의참가자들이 그처럼 유쾌하게 웃는 까닭에 대해서는 알수가 없으시였다.

왜들 웃었을가? 하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생각하시였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수령님께서는 그때 너무도 기쁘고 고마와 환갑나이의 녀성부총리의 잔등을 귀여운 손녀마냥 애무하며 두드려주시였던것이다.

(저렇게 기뻐하시는걸···)

김정일동지께서는 협의회에 참가하시는 수령님에 대하여 괜한 걱정을 하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하시였다. 그러나 협의회는 수령님께 기쁨만을 드린것은 아니였다. 일부 일군들은 일을 쓰게 하지 못하여 그이의 가슴을 아프게 해드렸다.

한동안 밝은 빛을 띠고있던 김정일동지의 안광에 그늘이 비끼였다.

수령님께서는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돌파구를 열어제끼고 걸린 문제를 풀어야 할 일군들이 사무실에만 앉아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는 수령님의 목소리는 몹시도 침통하게 울리였다.

수령님께서는 속이 타시는지 누구에겐가 담배를 가져오라고 하시였다. 이윽고 무엇인가 탁탁 두드리는것 같은 소리가 났다. 그것은 김정일동지께서 순간적으로 어렴풋이 들으신 소리이지만 무심히 스쳐보내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다시 그 소리를 들어보려고 얼른 록음기의 정지단추를 누르시였다. 테프를 뒤로 감았다가 다시 푸시는 그이의 안색이 긴장한 빛을 띠였다.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돌파구를 열어제끼고 걸린 문제를 풀어야 할 일군들이 사무실에만 앉아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수령님의 애타하시는 음성, 이어 담배를 찾으시는 소리, 탁탁 두드리는 소리···

(혹시 심장의 부담을 느끼고 가슴부위를 두드리신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느끼신 그이께서는 수령님의 책임서기를 전화로 불러 알아보시고서야 마음을 놓으시였다. 그 소리는 종일 한자리에 앉아계신 수령님께서 몸을 푸시느라 잠간 가슴을 두드리신 소리였다.

록음테프는 계속 돌아갔다. 수령님께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기분이 앙양되시는듯싶었다. 새 경제전략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 그이의 목소리는 한껏 고조되였다.

《···동무들, 당정책이 아닌가··· 응, 농사제일주의, 경공업제일주의, 무역제일주의 응, 이걸 내밀어야 돼!》

그이께서는 인민경제의 선행관인 철도운수부문의 역할을 높이고 선박, 금속, 세멘트, 석탄공업들에 힘을 넣을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이런것들을 잘해나가야 돼. 그러면 우리가 잘살수 있소··· 이번에 카터가 회담을 하면서 우리한테 <제재>를 하지 않겠다고 하길래 일없다, <제재>를 하겠으면 마음대로 해라, 우리는 <제재>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제재>를 받으며 살아왔지 <제재>를 받지 않은적이 한번도 없다, 당신네도 <제재>를 하고 일본도 <제재>를 했다, 지금까지 <제재>를 받으며 이만큼 살아왔는데 <제재>를 더 한다고 못살줄 아는가, 이제 봐라, 우린 얼마든지 잘살수 있다. 이렇게 말했소···》

신심과 락관에 넘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시며 장군님께서는 그이께서 협의회를 맡아하시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큰 손실을 보았을것인가를 생각하시였다.

록음테프는 쉼없이 돌아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참으로 기쁘고 힘이 솟으시였다. 협의회도 최상의 성과를 거두고 수령님께서도 건강하시기때문이였다.

 

7월 7일 새벽 4시 30분.

수령님께서는 이때 북남최고위급회담준비와 관련한 수백페지에 달하는 문건을 읽고계시였다. 동녘하늘에서 새별이 밝아지는 이 시간은 원래 그이의 새벽산책이 시작되는 시간이였다. 새벽 세네시만 되면 어김없이 침상에서 일어나시는, 평생을 두고 굳어진 그이의 습관을 고려하여 김정일동지께서 친히 이 시간을 산책시간으로 정해드리시였다. 그것은 수십년전에 있은 일인데 그때 수령님께선 《조직비서가 정해준 산책시간인데 꼭 지키겠소. 옛날에 칸트가 그랬다던지 이 철학가는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꼭꼭 시간을 맞춰 산보를 하기때문에 그가 산보하는것을 보고 동네아주머니들은 지금이 몇시로구나 하고 시간을 알았다는거요. 나도 칸트처럼 해봅시다.》하고 웃으시였다. 비록 롱담으로 하신 말씀이시였지만 그이께서는 그후 실지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4시 30분이 되면 산책을 시작하시였다. 그러나 7월 7일.

이날은 회담준비와 관련된 문건을 보시느라 산책을 못하시였다. 어지간히 바쁘시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문건의 자자구구가 통일의 사변에 대한 흥분을 자아내여 자리를 뜨실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이께서는 새벽 3시 30분경부터 펼쳐놓은 문건을 한번도 손에서 놓지 못하시였다. 아침이 다되여서야 문건을 덮으시였다. 그러자 그때까지 방안에서 초조히 대기하고있던 부관이 성급히 말씀을 올리였다.

《수령님, 빨리 식사를 하셔야 하겠습니다. 벌써 여러번 독촉이 왔습니다.》

《음, 모두 기다리게 해서 안됐소. 그러나 이런 문건은 도중에 끊지 말고 내친김에 쭉 읽어야 하오.》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쪽으로 걸어가시다가 문득 부관을 돌아보시였다.

《간밤에 무더기비가 오고 또 일기예보에 의하면 앞으로도 큰비가 오겠다고 하던데 부근의 저수지가 걱정되오. 호위국동무들에게 알려 저수지를 돌아보라고 하오. 자칫하면 터질수 있소.》

그이께서 아침식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오시자 리대천과 채순이 기다리고있었다.

(이 사람들때문에 야단이로군. 할 일은 많은데 휴식하라고 조르겠지···)

그이께서는 속으로 걱정하시면서도 전혀 바쁜 내색을 하지 않고 일부러 여유있게 움직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이틀동안 회의를 지도하며 무리하게 일을 하시였기때문에 오늘은 휴식을 하게 되여있었다.

채순은 의료기구들을 펼쳐놓고 그이를 검진해드린 다음 산책을 하자고 졸랐다.

《알아보니 새벽산보도 안하셨다는데 같이 나가십시다. 오늘은 전적으로 휴식하셔야 합니다.》

리대천이도 채순이와 함께 산책을 권하였다. 김정일동지로부터 수령님의 건강을 돌보도록 직접 과업을 받은 그들은 정말 극성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쩔수 없이 그들과 함께 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지팽이를 채순의 손에 들리우고 천천히 숲속으로 걸으시였다.

검푸른 숲너머로 비구름이 낮추 드리워있었다. 절기는 초복머리였지만 깊은 산골짜기는 서늘하였고 갖가지 산새들이 귀가 메게 지저귀였다. 다치면 푸른 점액이 흘러내릴것 같은 잣나무, 전나무들이 우거진 숲가에 핀 목란꽃송이들이 흰눈처럼 눈부시였다. 어데서나 생이 약동하는 유정한 숲속이였다.

두손을 허리에 얹고 사위를 둘러보시는 김일성동지의 기분은 상쾌하였다.

오늘아침 채순이한테서 받은 검진수치들도 모두 정상이였다. 전에없이 심신이 쇄락한 날이였다.

많은 정신력과 육체적힘을 소모하여야 하였던 이틀간의 정무원협의회는 결국 김일성동지의 건강을 확증해준셈이였다. 모든 회의참가자들이 그이의 건강한 모습을 뵈옵고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다. 리대천이도 협의회가 끝난뒤 총리에게 《수령님께서는 원래 몸이 불편하실 때에는 의자에 앉지 않고 거니시군 하는데 회의전기간에 줄곧 앉아계신것을 보면 건강상태가 아주 좋은것 같습니다.》하고 기뻐하였다. 허나 채순은 그렇게만 생각지 않았다.

적어도 수령님의 담당간호원인 채순에게는 수령님의 건강에 대한 의학적인 일가견과 함께 하나의 철학을 가지고있었다. 나어린 그 처녀는 수령님의 건강에 대해서는 각방면으로 누구보다도 깊이 연구하였다.

그가 보건대는 김일성동지는 앓을래야 앓을새가 없으신분이였다. 인민의 어버이시기때문에 마음대로 앓을새가 없으시였다.

세상 어머니들은 자식들때문에 앓지 못하고 자식들때문에 눈을 감지 못한다. 어머니란 자식들 보는데서는 랭수 한그릇도 마음놓고 마시지 못하며 괴롭다는 말조차 입밖에 내지 못한다. 그 어머니의 수난이 어머니로 하여금 굳세게 하고 온갖 잡병을 견디여내게 한다.

수령님의 건강은 바로 어머니의 그것과 같은것이라고 채순은 생각하고있다. 그것은 결코 추상적인 판단이 아니였다.

채순에게는 누구도 보지 못하게 비밀리에 가지고 다니는 《수령님건강비망록》이 있다. 여기에는 별의별 글이 다 씌여져있다. 일기처럼 쓴 글도 있고 비방약을 적은것도 있고 수령님의 혈압상태를 날자별로 적은것도 있다.

어찌나 이 비망록을 깊이 간수해두고 다니는지 가까이 지내는 의사나 부관, 서기들까지도 그에게 그런 비망록이 있다는것을 알지 못했다. 물론 수령님께서도 전혀 모르고계시였다.

채순은 90이 넘은 고향의 할아버지에게까지 장수의 비결을 알아보며 수령님의 만년장수를 위한 탐구를 거듭해왔었다. 이러한 담당간호원이기에 수령님의 건강을 관찰하는데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보는 눈과 다른 점이 많았다.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경제사업에 대한 생각에 집착되여 모든 아픔을 잊으시였다. 말하자면 한곳으로 정신이 집중된 그 과부하가 불편도 피로도 모르게 하였다. 이런 때 후과는 나쁜것이다.》

회의참가자들과는 반대로 채순은 이렇게 내심으로 걱정하였다. 그래서 오늘아침 떼를 써서 수령님을 공기좋은 산골짝길로 모시고 온것이였다.

채순은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산책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그이의 피로를 풀어드릴수 있겠는가를 생각하고있었다. 책임서기 리대천이도 역시 자기딴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수령님!》 앞에서 길잡이를 하던 채순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수령님을 돌아보았다.

《왜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채순은 지팽이를 손바닥우에 곤두세우고 보시라고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무슨 장난을 하려는가싶어 지팽이를 바라보시였다. 지팽이는 채순이의 손바닥우에서 교예사의 요술막대기처럼 까딱않고 서있었다.

《수령님, 제가 스물까지 세니까 보십시오.》

채순이 챙챙한 목소리로 스물을 셀 때까지 지팽이는 그의 손바닥우에서 그냥 서있었다.

《용쿠만, 잘하누만.》 김일성동지께서 칭찬해주시였다.

《수령님, 또 스물까지 세겠습니다.》

채순은 성수가 나서 셈세기를 하였다.

그때 김일성동지께서는 언제인가 유쾌한 웃음은 세포를 부활시킨다고 하던 채순이의 말을 상기하고 《정말 채순의 재간이 보통이 아닌데···》하고 웃으시였다.

그이의 예견대로 물망초같이 청신한 채순이의 얼굴이 한껏 밝아졌다.

이윽고 채순은 지팽이를 내려놓고 검은눈을 깜빡거리며

《수령님, 이 지팽이를 발명한건 누굴가요?》하고 느닷없는 질문을 하였다.

《그건 인간의 집체발명이겠지. 발명이라기보다 사람이 힘들 때면 스스로 찾게 되는게 지팽이지. 특히 늙은이들은 그 지팽이에 몸도 의지하고 마음도 의지하지.》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왜 좀해서 지팽이를 짚지 않으십니까?》

채순은 정색을 하고 수령님을 빤히 지켜보았다. 그이께서는 이 처녀가 도대체 무엇을 또 알아내자고 지팽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가 생각하며 잠시 덤덤히 서계시였다. 하기는 채순이야말로 수령님의 지팽이를 무심히 볼수가 없었을것이다. 그래서 수령님께서는 심중히 생각한 끝에 대답하시였다.

《인민복이 있는 나는 마음도 든든하고 몸도 건강하여 지팽이생각이 좀해서는 나지 않아. 말하자면 건강의 표징이지. 내가 여기 와서 가끔 지팽이를 짚는것은 힘들어서가 아니라 오삼수로인이 보고싶어서 그래. 이건 시험포전로인이 만들어준거야.》

채순은 수령님의 지팽이를 새삼스레 여겨보았다. 대안중기계공장 기사장이 수령님의 지팽이를 보고 울었던것처럼 담당간호원 역시 그 지팽이때문에 남몰래 울었던것이다. 볼 때마다 아픔을 느끼게 하는 지팽이, 그러면서도 그것을 가지고나온 채순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다소곳하고 서있는 채순이의 얼굴을 지켜보면서 올가을에는 어떻게 하나 짝을 무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결혼식날에 무엇을 선물해줄가? 보아둔 총각은 있는지? 불현듯 그이의 뇌리에 어느해 북관지대를 현지지도하시다가 한밤중 산중도로에서 우연히 만나시였던 제대군인청년이 떠오르시였다. 그때 허우대가 큰 젊은이가 홀로 배낭을 메고 캄캄한 산길을 걷고있는것이 마음에 쓰이시여 차를 멈추게 하시였다.

《어디로 가오?》

그이께서는 차문을 열고 전조등불빛에 비친 청년의 얼굴을 살펴보며 물으시였다. 천만뜻밖에 적막한 산골길에서 수령님을 뵙게 된 젊은이는 놀라고 감격하여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그는 인사도 변변히 올리지 못한채 제대후 림산사업소에 배치되여가는중이라고 하였다.

《응, 제대군인이로구만··· 어디서 떠났소?》

《도에서 떠났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군인식으로 절도있게 올리는 청년의 대답을 들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도에서?》하고 의미심장한 안색을 지으시며 이번에 제대되여온 동무들이 많은가고 물으시였다.

《많습니다. 우리 도에만도 배치를 받으러 온 제대군인들이 수백명이나 되였습니다.》

《그래? 제대군인들이 대체로 어떤 곳에 배치받았소?》

《탄광, 림산사업소와 같은 어렵고 힘든 곳입니다. 더러 <빽>이 있는 동무들은 휴양소같은데 배치받기도 했습니다. 그건 사실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제대군인이 휴양소로 간다는게 참···》 젊은이는 그 누구인가를 조소하는듯 중얼거리였다.

《빽이라니 그건 무슨 소리요?》

수령님께서는 그 말의 의미를 인차 리해하지 못하시였다.

《저 뭐라고 할지··· 말하자면 뒤에서 돌봐주는 사람입니다. 축구에서 문지기를 지켜주는 방어수처럼···》

청년은 더수기를 긁적거리며 어줍은 웃음을 지었다.

《오, 축구 빽! 허허허···》

수령님께서는 크게 웃으시였다. 그러나 인차 낯빛을 흐리며 물으시였다.

《동무에겐 그런 빽이 없었소?》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제대군인들은 헐한 일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일부 동무들이 그런 시시껄렁한짓을 합니다.》

젊은이는 어느새 어려움도 잊고 스스럼없이 말씀을 올리였다.

《참 재미있는 동무로군··· 그래 동무의 <빽>은 어디 있소?》

《저의 <빽>은 최고사령관동지이십니다.》

《하하하!》

주저없이 대답하는 청년의 말에 수령님께서는 산골짜기가 떠나가게 한바탕 크게 웃고나서 말씀하시였다.

《그렇다면 내가 봐줘야겠구만.》

《저희들은 이미 최고사령관동지의 보살피심속에서 군인생활을 하고 당원이 되고 오늘은 이렇게 일터로 가고있습니다.

저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배려에 의해 통신대학입학증까지 받았습니다. 우리 제대군인들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응, 고맙소···》

수령님께서는 피가 끓고 힘이 넘치는 청년시절에 일을 많이 하라고 고무해주시였다.

이것은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였다.

지금도 이런 훌륭한 청년들이 어디에나 있을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채순이의 행복한 앞날을, 아니 이 나라 모든 젊은이들의 창창한 미래를 생각하며 이윽토록 먼 하늘을 지켜보시였다.

(그렇지, 바로 이런 젊은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이틀간의 협의회도 한게지···)

《수령님! 무슨 생각을 또 하십니까··· 오늘은 일체 사색에서 해방하십시오.》

채순은 수령님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어리광을 부리였다.

《그래, 오늘은 채순이가 하자는대로 다 하겠소. 그리고 저 책임서기동무의 요구도 다 들어주고··· 나때문에 제일 속을 썩인 사람들이 동무들이지···》

수령님께서는 다정한 눈빛으로 두사람을 번갈아보시였다. 그러자 리대천이 반색하며 한발 수령님앞으로 나섰다.

《그러시다면 저희들을 생각해서라도 오늘 어디 낚시질이라도 나갑시다.》

《낚시질?》하고 반문하시는 수령님의 머리에 부근의 저수지가 떠오르시였다. 간밤 무더기비에 저수지가 어떻게 됐는지 호위성원들을 내보냈지만 여전히 걱정되시였다.

《낚시질이라··· 그럼 저수지에나 가볼가. 거기에 고기가 많지··· 채순이도 반대없소?》

《저는 반대입니다.》

간호원은 뜻밖에도 손을 내저었다.

《왜?》

수령님께서 의아해하시였다. 리대천이도 눈을 치뜨고 간호원을 바라보았다.

《수령님께서는 낚시질을 하실 때 더 많은 일을 하시지 않습니까.》

낚시질을 하면서 사색을 하신다는 말이였다. 수령님의 낚시질과 사색, 이것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말이였다. 1939년 여름 올기강의 낚시질은 오늘도 유명한 일화로 되여 전해지고있었다.

《어떤 출판물을 보면 수령님께선 오락으로 낚시질을 하시는게 아니라 사색을 하기 위해 낚시질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건 잘못된 말이요. 내가 이번에 카터한테도 말했지만 나는 정말 낚시질을 좋아하오. 거기에 취미가 있어서 낚시질을 하는게지 사색하기 위해 낚시질을 한다는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요.》

수령님께서는 정색을 짓고 말씀하시였다.

《그럼 올기강에서 낚시질을 하시며 대부대선회작전을 구상하셨다는것은 잘못 전해진 이야기입니까?》

《그건 사실이지. 그러나 그걸 구상하기 위해 일부러 강가에 나가 낚시질을 한건 아니야··· 물론 그때의 낚시질은 오락이 아니였소··· 나는 앞으로 회고록에도 낚시질이란 제목을 달고 한대목 잘 쓰자고 하오.》

수령님께서는 불현듯 낚시질과 관련된 여러가지 추억들이 밀려와 묵묵히 먼 하늘을 올려다보시였다. 마침 이때 군관 한사람이 골짝길을 급히 달려오고있었다.

저수지에 파견되였던 호위군관이였다.

내처 달려온 군관은 수령님앞에 이르러 경례를 붙이고 숨을 헐떡거리면서 토막토막 끊어지는 소리로 보고를 드리였다.

《수령님, ···저수지는··· 아무 일 없습니다··· 저···》

《됐소, 숨을 좀 돌리고 천천히 자세히 말하시오.》

수령님께서 군관의 어깨를 두드리며 여유를 주시였다. 그랬으나 군관은 보고를 계속하였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벌써 저수지에 사람들을 파견하여 대책을 취해놓으시였습니다.》

《최고사령관이?》

《그렇습니다. 공병부대를 출동시켜 취수구들을 몽땅 막아치우고 수문을 다 열어놓게 하시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저수지의 수위가 내려가고있습니다!》

《최고사령관이 대책을 취했단 말이지···》

혼자소리로 뇌이시는 김일성동지의 얼굴에 갑자기 감격의 파문이 지어졌다.

《최고사령관이 공병부대를 보냈단 말이지!》

그이께서 다시한번 뇌이시고 몇발자국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리고 리대천이와 채순을 돌아보시였다.

《동무들, 낚시질은 이다음 합시다. 비가 올것 같소. 그리고 군인들이 그렇게 수고하는데 낚시질을 할수야 없지. 내 오늘은 방안에서 푹 쉬겠소.》

저수지에 대한 시름을 놓으신 수령님께서는 올라오신 길을 기쁜 마음으로 되돌아 내려가시였다.

바람이 불며 비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리대천이와 채순이는 더 낚시질을 권하지 못하고 그이를 따라 내려갔다.

집무실로 돌아오신 수령님께서는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에서 제기된 경제문제들을 다시 하나하나 검토해보시였다. 거기에는 북남회담과 련결되는 경제문제들이 적지 않았다.

그이께서 한창 일을 보실 때 김정일동지로부터 중유발전기 자재구입에 필요한 외화를 당에서 풀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 전화를 받고 수령님께서는 또 한시름 덜었다고 기뻐하시였다.

오후 5시 30분.

리대천은 전에 없이 문밖에서 한참 망설이다가 집무실에 들어섰다.

수령님께서는 휴식이 아니라 여전히 사업을 하고계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한껏 밝은 웃음을 지으신채 누구에겐가 전화를 하고계시였다.

《석탄에서 기름을 뽑을수 있다면 그건 매우 흥미있는 일이요. 그렇소. 흥미가 있단 말이요! 시험을 반복해보고 파악이 생기면 빨리 도입하오. 내가 정무원에다 말하겠소. 그렇소! 그래···》

리대천은 활력에 넘친 그이의 모습을 뵈옵자 마음이 든든해지고 기분도 밝아졌다. 어쩌면 회의를 하신 뒤에 그이의 건강이 오히려 더 좋아지는것 같았다. 근년에 처음보는 모습이였다. 분명 북남최고위급회담이 성사되게 되여 저렇듯 몸도 마음도 젊어지시는가 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리대천이를 얼핏 바라보시더니 저택시험포전을 찾아 전화를 계속하시였다. 매우 힘있고 우렁찬 목소리였다.

《삼수동무요? 나요. 무척 건강하오··· 내 걱정은 말고 동갑이나 조심하오. 요즘 이상고온이 계속되는데 시험포전이 어떻소? 거기 논벼들이 첫 이삭이 아직 안나왔지? 여가시간을 내지 못하는데 동무가 책임적으로 잘 보살피시오. 몸조리도 잘하구. <연백-시험포6>에서 첫 이삭이 나오면 잊지 말고 꼭 알리시오. 자, 다시 만납시다!》

전화를 놓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두팔을 벌리고 한번 심호흡을 하더니 리대천이를 돌아보시였다.

《그래 뭐가 제기됐소?》

《저···》

리대천은 우물쭈물하며 말을 못하였다. 그는 아무런 용무도 없이 그저 그이께서 쉬고계시는가를 알아보고싶어 들어왔던것이다. 그래서 한참 갑자르다가 어줍게 웃으며 《오늘은 휴식일인데 좀 쉬십시오.》하고 아뢰였다.

《그래서 쉬지 않소. 걱정말고 동무들이나 오락을 하며 쉬오.》

오락이라는 말씀에 리대천은 수령님과 당구며 정구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물러났다. 그후부터 저녁식사때까지 그는 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여 그이께서 그 시간에 무엇을 하시였는지 알지 못했다. 후에 그이의 집무탁에는 쓰려고 펼쳐놓은 한장의 편지지가 발견되였는데 거기에는 받을 사람의 주소와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다. 편지지우에는 그이께서 퍽 오랜 시간 펜을 쥐고 생각에 잠겨계시였다는 흔적이 남아있었다. 편지지를 앞에 놓고 무엇을 생각하시였을가. 누구에게 편지를 쓰려고 하시였을가. 이 나라의 평범한 인민들과 혈연의 인연을 맺어오신 그이께서는 그들로부터 수천수만통의 편지를 받으시였다.

그 편지들은 손에 기계기름을 묻힌 로동자들과 흙을 다루는 농민들의것이였다. 기계기름내와 구수한 흙냄새가 풍기는듯한 편지들에는 인민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있는 진실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거기에는 그이께서 찾아내려고 애쓰고계시는 인민의 지향과 요구, 현실이 제기하는 절박한 문제들이 생동하게 적혀있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도가 지혜롭게 밝혀져있었으며 고난속에서도 굽어들지 않는 힘과 의지가 깔려있었다.

그이께서는 그중 어느 편지에 대한 회답을 쓰시려고 하시였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무슨 사연을 쓰자고 하시였던가!···

저녁 7시 30분.

이 시각에 수령님께서 저녁식사를 하러 나오시였다. 리대천은 그이의 안색이 여전히 밝아있고 기분도 무척 좋으시다는것을 알았다.

진지도 전에 없이 달게 드시였다. 버섯채가 별맛이라고 하시면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순전히 나물채로 끼를 에우시던 옛말까지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저녁식사를 하고 집무실로 들어가실 때 리대천에게 래일아침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 기사장을 불러 중유발전기 자재들을 당에서 외화를 풀어 사들이기로 한 소식을 전해주라고 하시였다.

《이번에 김정일장군이 또 큰 시름을 덜어주었소. 내 늘 말하지만 동무들은 김정일장군을 잘 받들어야 하오. 내 건강보다도 장군의 건강을 더 돌보아야 해.》

그이께서는 리대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따뜻한 목소리로 계속하시였다.

《동무들은 날더러 자꾸 쉬라고 하는데 내가 일손을 놓으면 동무네 최고사령관에게 그만큼 부담을 더 주게 되오. 김정일장군이 나라의 크고작은 모든 일을 혼자 걸머지고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있소. 나는 김정일장군이 밤새워 일하는걸 보면 잠시도 쉴수가 없소!》

그 순간 리대천은 가슴이 쿵하고 울리였다. 웬일인지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것 같았다.

《동무들이 최고사령관을 더 잘 받드시오. 내가 부탁할것은 그거요··· 자, 어서 돌아가서 쉬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돌려세우면서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시였다. 리대천은 미소어린 그이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오래도록 서있었다. 매일 매 순간 보아온 그이의 미소였지만 언제나 그 깊이와 넓이를 알수 없는 무한한 세계가 비낀 미소였다.

이것이 이날 리대천이가 마지막으로 뵈온 그이의 모습이였고 마지막으로 들은 그이의 목소리였다. 왜냐하면 그이께서 집무실에 앉으신채 다시는 문을 열지 않으시였기때문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첫새벽에 보시였던 북남최고위급회담준비안을 다시 펼치시였다.

문건에 적힌 그 글자들에서 때로는 그 무슨 절절한 음악이 울려나오는듯도 하고 처절한 울음소리가 터지는듯도 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50년의 분렬력사를 상기시키는 문건이 아닌가.

참으로 50년 긴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념원하여 노래를 불렀고 얼마나 많은이들이 분계선너머에 있는 사랑하는 혈육들을 애타게 그리며 울었던가.

그들을 생각하실 때마다 머리가 세여지고 잠을 못 이루시던 김일성동지이시였다.

그이께서는 회담준비안을 다 읽으시고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밤 9시가 지났다.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어디선가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그이께서는 밤하늘에서 울리는 천둥소리도 경사로운 통일의 북소리처럼 흥겹게 들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수백리 먼곳에 계시는 김정일동지를 그려보시며 전화기에 눈길을 돌리시였다. 이윽고 밝은 미소를 지으시며 송수화기를 들고 장군님을 부르시였다.

《조직비서동무, 올려보낸 회담준비안을 보았습니다. 한자도 고칠것이 없습니다. 동의합니다. 절대찬성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하고 대답하시는 김정일동지의 목소리에도 흥분이 실려있었다.

《그렇다면 당에서 토의한것으로 알고 비준하겠소.》

수령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시고 한층 음조를 높여 뒤를 이으시였다.

《그러니 이젠 남조선사람들과 마주앉으면 되겠구만!》

수령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옆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바라보시였다. 민족력사에 특기될 7월 25일, 북남최고위급회담날자가 불과 18일 남아있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도 그날을 생각하시는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응대하시였다.

《지금 인민들은 어디에서나 북남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흥성거리고있습니다. 그런데 김영삼이는 회담에 응하기는 하였지만 속으로는 딴궁리를 하고있습니다.》

《그 사람의 속생각이야 다 알고있지. 그러나 일없소. 김영삼은 나에게 맡기시오.》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흔연한 기분에서 여유있게 말씀하시였다.

《내가 늘 말해왔지만···》하고 수령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지금까지 혁명을 해오면서 제일 큰 한으로 남았던것이 조국통일이였소. 길을 가다가도 어린이들을 보면 생각이 많았지. 분렬된 조국을 어찌 후대들에게 넘겨줄수 있겠소. 자나깨나 그게 근심이였는데 마침내 통일회담을 하게 됐소.

렬강들이 만들어낸 38분계선때문에 우리 민족이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가. 이 분계선때문에 조선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분계선이 생기게 되였소. 일본에는 총련과 민단의 분계선이 그어지고 미국, 카나다 중국, 로씨야 할것없이 해외동포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다 보이지 않는 분계선이 생겨났소. 이제 우리는 이 원한의 선을 몽땅 지워버리게 될거요.》

수령님의 절절한 목소리는 강한 여운을 남기였다. 가슴을 울리는 그 여운으로 하여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침묵을 지키시였다.

수령님께서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벌써 10시가 지났군··· 시간도 갔으니 오늘은 이만하고 래일 만나서 더 이야기합시다. 평양에서 만납시다.》

두분의 전화는 이렇게 끝났다.

수령님께서는 그 전화를 하시고나서 일어나시였다.

그이께서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집무실에서 오래도록 이리저리 거니시였다. 정녕 통일대문의 빗장을 지금 자신께서 쥐고있는 심정이시였다. 이제 그 빗장을 뽑고 대문을 활짝 열어제치며 《자, 통일이요!》하고 소리치면 될것 같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런 흥분때문에 아까부터 심장부위에 동통이 오고있다는것도 느끼지 못하시였다. 그러시다가 북남최고위급회담안에 수표를 하려고 집무탁에 앉았을 때 그것을 의식하시였다.

그때 바깥에서 번쩍 하고 푸른 섬광이 일더니 우뢰소리가 일어났다. 우리 나라 전역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7월 7일은 일년사시절에 스물네절기를 가진 우리 나라 기후에서 여름더위가 비로소 시작된다고 하여 소서라고 부르는 날이였다. 그러나 이해날씨는 삼복더위 못지 않게 찌는듯이 무더웠다. 그것은 해마다 우리 나라에 영향을 미치던 중국장강일대에서 형성된 저기압골이 이해에는 예상외로 남태평양에서 아열대성 저기압골의 강한 영향에 압도됨으로써 전례없는 강한 비구름과 함께 아열대성기후를 도래하게 한것이였다. 그리하여 지구의 곳곳에서는 때아닌 폭우와 물란리가 펼쳐지는가 하면 유럽의 어느 지역에서는 섭씨 51℃라는 살인적인 고온을 기록하고있었고 남조선의 대구지방에서도 기온이 섭씨 39℃를 뛰여넘었다.

짐작컨대 이때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아픔이 날씨가 몰아온것이라는 착각을 하신것 같았다.

그이께서 동통이 올 때 무슨 생각을 하시였는지 그것은 누구도 알수 없는 일이였다. 허나 그이께서 그 아픔을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고 참고계신것만은 분명하였다. 그이께서는 아마도 그 아픔이 시간이 흐르면 멎으리라고 믿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으시였을것이다. 자칫하면 《소동》이 일어나 단잠을 자는 사람들까지 모조리 깨우게 되고 또 자신께서는 일을 못하게 될것을 걱정하여 혼자서 아픔을 참아내신듯싶었다.

그이께서는 원래 웬간한 아픔에 대해서는 내색하시지 않는분이였고 자신은 휴식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휴식에 대해서는 너무도 다심하게 관심하시는분이였다.

그러나 야속하다. 어찌하여 천리혜안의 선견지명을 지니신 그이께서 그 아픔이 치명적이라는데 대해서는 알지 못하시였던가? 어찌하여 천재적인 예지를 지니신분이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는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시였던가?

그이께서는 계속 아픔을 참으며 일하시였다.

가슴에 오는 동통이 더는 참을수 없게 되였을 때 그이께서는 잠간 일손을 멈추고 누구를 찾을가 생각하시였을지 모른다. 의사를 부를가, 채순이를 찾을가, 아니면 책임서기? 부관?··· 그러나 잠자리에 편안히 누워있는 그들을 부르시고싶지 않았을것이다. 수령님께서는 원래 그러신분이였다. 그래서 그이께서는 혼자서 아픔을 참으며 일하시였다. 집무탁우에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문건, 농업부문문건, 통일회담문건 등 여러 문건들이 펼쳐져있는것으로 보아 그때 동시에 많은 분야의 일을 헤아려보신것이 분명하였다. 그이께서는 그처럼 일감이 밀리고 바쁘시였던것이다.

동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하여 그이께서는 이러다가 혼절하여 쓰러지지 않겠는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일어나시였을것이다. 지어 래일 만나기로 약속하신 김정일동지를 못만나실것 같은 불안을 느끼시였는지 모른다.

그때라도! 어찌하여 그이께서는 그것이 현실로 되리라는데 대하여서는 느끼지 못하시였던가. 누가 곁에 있어서 벌써 창백하게 변해진 그이의 얼굴모습을 발견이라도 했다면?

허나 그이께서는 혼자 계시였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 그이께서는 통일회담문건에 아직 수표를 하시지 못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오르신것 같았다.

그리하여 격전을 벌리듯 아픔과 싸우며 그 문건을 한장한장 번지여 간신히 마지막장을 넘기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우에 펜대를 총검처럼 틀어쥐고 《1994. 7. 7》이라는 날자와 함께 근 한세기동안 조국과 민족의 기치로 되고있던 《김일성》이라는 존함을 쓰시였다. 때마침 날카로운 푸른 번개불이 캄캄한 어둠을 가르며 먼 하늘끝으로 쭉 뻗어나갔다. 뒤이어 천지를 깨버릴듯한 폭음이 일어났다.

아마도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었을것이다.

잠자던 어린 아이들까지 그 소리에 놀라서 깨여났다.

하지만 그밤, 김일성동지께서만은 듣지 못하시였다. 그때는 벌써 그이의 심장이 쇼크상태에 들어가는 순간이였다.

우뢰끝에 바람이 불며 하늘에서 비물이 좔좔 쏟아져내렸다.

밤하늘을 쩍 가르며 번개불이 펀긋하더니 또다시 뢰성이 터졌다. 뒤따르는 바람소리, 비소리··· 하늘이 울고 땅이 울고 산천초목이 태를 쳤다.

아! 그것이 바로 인류의 불행을 예고하는 하늘의 눈물인줄 누가 알았으랴!

원통하구나!

하늘아! 땅아!···

 

1994년 7월 8일 2시.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심장은 고동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