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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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그날은 남조선의 김영삼의 일과가 모조리 헝클어지고 뒤죽박죽이 된 날이였다. 우선 그는 아침 첫일과로 어김없이 집행하던 새벽달리기를 하지 못하였다.

멀리 미국땅에 가서도 새벽이면 워싱톤 백악관앞에서 보란듯이 체육복차림으로 달리기를 하던 김영삼이였다. 그러나 그가 이날에는 청와대출입기자들과 맞다들가싶어 밖에 나가기를 저어하였다.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위한 예비회담결과에 대한 소나기질문이 두려웠던것이다.

그는 종일 불안하고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였다. 이날 오전에 예비회담에서는 최고위급회담일정에 대한 최종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제 한달 못있어 김영삼은 평양으로 가게 되여있었다. 이것은 50년 분단력사이래 처음 있어보는 일대사변이며 김영삼이 개인을 놓고보아도 경이적인 인생경사라고 할수 있었다. 그러므로 한낮때부터 숱한 사람들이(주로 기자들) 그를 만나려 뻗닿게 청와대로 찾아왔으나 그는 문밖에 얼굴을 내밀지 않고 일체 면회를 사절하였다.

김일성주석을 만나서 해야 할 인사말조차 찾지 못하고있는 형편에서 서뿔리 기자회견을 가졌다가는 내외의 기자들앞에서 큰 웃음거리를 만들어내고 사회적물의를 일으킬수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김영삼은 지금 북남최고위급회담을 놓고 언론계에서도 그래 항간에서도 그래 자기에 대한 조소와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통일은 환상이다, 통일관을 버려야 한다고 하며 북남사이의 대화와 교류를 극력 차단하던 그가 급작스레 북에다 메쎄지를 보내고 통일회담을 주장해나선다고 하니 모두 믿지 않았던것이다.

심지어 항간에는 김영삼을 풍자한 만화 즉 그의 앞가슴에는 《통일회담을 합시다!》라는 북에 보내는 메쎄지가, 뒤잔등에는 《예비회담 파탄하자!》는 통일원장관에게 보내는 쪽지글이 붙어있는 그림이 떠돌아다니였다.

서울의 어느 한 출판물에는 《작금년간 미국정부는 조선반도문제를 론함에 있어 매양 한국정부를 제껴놓고 북한당국하고만 상대하고있다. 김영삼대통령은 모기장밖에 쫓겨난 소외감으로부터 김일성주석께 통일문제를 함께 의논하자는 속에 없는 메쎄지를 보내였는데 그것으로 하여 그는 범꼬리잡은격이 되였다.》라는 글이 실려 김염삼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곤궁에 빠진 자기 처지를 신통하게 표현하였기때문이였다. 그밖에도 그의 치욕스러운 리면상을 폭로하는 말과 글들이 거리와 마을 곳곳에서 수없이 돌아가고있는것이다.

김영삼은 누구도 모르리라고 생각해온 자기의 정치생활리면들이 도대체 어떻게 되여 세상에 새여나가는지 모를 일이였다. 언제인가 그의 처는 《그게 어디서 새나오겠나요. 당신이 자주 불러들이는 측근들의 입에서 나올밖에요. 그 사람들이 대통령의 비밀을 하나 넘겨주기만 하면 아마 돈을 몇뭉테기씩 받아먹는지 모를거예요.》하고 종알거리였다.

녀자의 말이지만 결코 무심히 넘길 말이 아니였다. 사실 최근에 와서 대통령자리가 위태로와지자 김영삼은 점점 《밀실정치》에 매달리면서 측근들을 자주 자기 집에 불러들이군 하였다. 그런 일에서는 자기 집 이상 더 맏음직한 뒤골방은 없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였다.

김영삼은 웬만한 기자회견이 예견될 때에도 《밀실담화》를 하여 그들의 조언을 들어보군 하였다. 예비회담이 결속된 이날에도 김영삼은 종일 방안에 앉아 속을 썩이던 끝에 범꼬리를 잡은 처지에서 벗어나자면 그래도 측근들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그날 저녁 김영삼은 예비회담결속축하연이라는 명색으로 자기 집에 주안상을 차려놓고 여러명의 측근들을 불러들이였다.

김영삼이 요구하는 시간에 대통령저택에 나타난 측근들은 희귀한 주안상이 차려진 타원형의 식탁에 빙 둘러앉았다.

그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을 보면 외무부장관 한승주, 직무상 비밀로 되여있는 비서실의 보좌관 몇사람 그리고 수석비서와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위한 예비회담 남측수석대표로 나갔던 통일원장관 리홍구였다. 원래 통일원장관은 김영삼의 측근에 속하는 인물이라고까지는 말할수 없지만 앞으로 대통령과 함께 평양으로 가야 할 사람이기때문에 례외로 초대되였다.

방바닥은 참대를 실처럼 가늘게 쪼개서 촘촘히 정교하게 결은 고급돗자리를 깔았다. 말하자면 서양식 만찬회가 아니라 고급돗자리에 비단솜방석을 깔고 올방자를 틀고앉아 신선로를 끓여먹는 리조왕궁식만찬회를 차린셈이였다. 그러면서도 주안상에는 프랑스제 포도주며 달팽이회를 비롯한 서양음식도 적지 않게 올려놓았다.

김염삼이 이날 저녁엔 양복이 아니라 조선바지저고리를 입고 경복궁그림을 수놓은 커다란 접이부채로 천천히 틀지게 부채질을 하면서 이야기하였다.

《에- 주지하는바와 같이 래달 25일에는 남북정상들이 한자리에 마주앉아 회담을 시작하게 되였소. 이는 응당 우리가 당당히 자랑할만한 일이요. 한국정치 50년이래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바로 우리가 하고있는거요. 그래서 축하연 겸 음식을 좀 차렸으니 사양치 말고 많이 드시오.》

김영삼은 허세를 부리면서 바른편에 앉은 통일원장관 리홍구로부터 왼편에 앉은 외무부장관 한승주에 이르기까지 10여명의 측근들을 하나하나 더듬어보았다.

이들이 바로 정보에 빠르고 대통령의 비밀계획, 더우기는 김일성주석에게 메쎄지를 보내게 된 리면에 대해서도 낱낱이 알고있는 사람들이였다. 그뿐아니라 그들은 얼마전에 북조선에 갔다온 카터로부터 김염삼이 김일성주석의 구두메쎄지를 전달받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김일성주석각하는 당신의 메쎄지에 전적으로 동의하였소.》

그날 대사관에 가기전에 청와대에 잠시 들렸던 카터는 김일성주석의 의향을 이렇게 한마디로 전하고는 얼굴에 이상야릇한 웃음을 띠웠다. 그러자 김영삼의 얼굴은 대번에 푸르딩딩해졌다. 그 웃음은 김영삼을 얕잡아보는듯한 매우 모멸적인것이였다. 약삭바른 측근들은 그 웃음이 카터가 김일성주석을 만나고나서 하고싶은 말(너는 김일성주석의 발바닥에도 가지 못할 소인이다)을 담고있다는것을 알아차리였다.

《존경하는 대통령각하.》

카터는 김영삼을 이렇게 존대하여 부르고나서 모멸의 웃음을 더욱 로골적으로 띠우며 《어디 한번 잘해보시오.》하고 빈정거리는 말투로 뇌이였다.

순간 김영삼은 참을수 없는 모욕감에 극도로 분노하였다. 그러나 그는 상전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혀를 깨물지 않을수 없는 괴뢰대통령이였다.

카터가 청와대에서 나가자 김영삼은 주먹으로 탁자를 치면서 부르짖었다.

《이 김영삼이를 어떻게 보구 하는 소리야! 뭐 잘해보라구?··· 그래 못할줄 아는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 가서 주먹질하는격으로 김영삼은 카터를 욕하며 한참 씨근덕거리다가 기자들을 불러들이게 하였다. 카터가 미국대사관에 가서 평양바람을 일구며 기자회견을 가지기 전에 청와대에 몰려들어온 내외의 기자들앞에서 자기가 먼저 김일성주석과 빠른 시일안에 상봉하려고 한다는것을 공포하려는 속심에서였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에 대한 카터의 횡설수설에 반격을 가할뿐아니라 자기가 남북최고위급회담의 주동을 쥐고있는듯이 허세를 부리려고 했던것이다.

그러나 그후 울분이 가라앉고 리성이 찾아왔을 때 김영삼은 자기가 무엇인가 큰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는 애당초 김일성주석께 메쎄지를 보낸것부터 잘못한 일이라고 후회하였다. 후회정도가 아니라 그 어떤 공포감에 사로잡혀 안절부절 못하였다.

통일을 바라지 않는 그가 정상회담을 바랄수가 없는 일이였다. 그에게는 오직 소시적부터 갈망해온 지금의 대통령자리면 더 바랄것이 없었다. 김일성주석께 메쎄지를 보낸다 어쩐다 한것도 결국은 대통령자리에서 쫓겨날것 같은 불안감으로부터 분별없이 처신한 일종의 모험이였다.

(이제 김일성주석과 마주앉으면 나는 끝장이다. 그래서 력대 대통령들도 그런 자리를 피하지 않았는가.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영삼은 최고위급회담이 성사되지 못하도록 패풍을 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후 최고위급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이 벌어지게 되자 남측대표로 나간 통일원장관 리홍구에게 장소문제로 제동을 걸어보게 하였다. 그런데 북측에서는 평양을 주장하다가 서울도 좋고 평양도 좋다고 하였다. 시일문제에서도 북은 처음에 8. 15를 주장했지만 그후에는 7월로 당기자는 남측의 주장에(물론 이것도 하나의 제동으로 내놓은것이였다.) 흔연히 응하였다. 결국 김영삼은 자기가 친 그물에 자기가 걸린 숨가쁜 처지에 놓이게 되였다. 그러나 그는 천하에 비길데 없는 위선자였고 속과 판판 다르게 겉을 꾸밀줄 알았다.

그는 한층 위엄을 돋구었다.

《그렇소! 북한당국에 보낸 우리의 메쎄지가 출발점이 되여 력대의 정권들이 실현하지 못한 최고위급회담을 거행케 되였으니만큼 이는 실로 우리의 혁혁한 공적이 아닐수 없소··· 에, 실질적으로 지난날 통일운동에서 바이 면목이 없던 한국정부가 당당한 제몫을 가지게 되였고 한반도문제를 토론하는 마당에서까지 소외되였던 우리 한국정부의 처지를 갱신시켜 국제적권위를 세우게 되였소.》

《옳은 말씀입니다.》

줄곧 김영삼의 시선을 받고있던 외무부장관 한승주가 고개를 쳐들며 응수하였다.

《사실 작금년간에 만국의 이목을 모으고있는 조미회담을 놓고보아도 지금까지 우리는 면구스러운바가 없지 않았습니다. 미국사람들이 조선반도문제를 론하는 마당에서 남한정부를 제껴놓고 북한당국과만 대상을 하니 외교의 직분을 맡고있는 본인으로서는 치욕감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헌데 이번에 대통령각하께서 당당하게 김일성주석과 마주앉아 통일문제를 거론할수 있게 된것은 한국정부의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데서나 각하의 권위를 내외에 시위하는데서 대단히 의의가 크다고 봅니다. 이제 대통령에 대한 민중의 찬사가 비발치듯 할겁니다.》

《참, 외무부장관이 그동안 미국사람들한테 괄세를 많이 받았지. 지난해에 조미회담문제로 워싱톤에 갔을 때 클린톤대통령은 당신을 만나주지도 않았지··· 이제는 그런 일이란 있을수 없을거요!》

김영삼은 외무부장관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통일원장관 리홍구의 얼굴색을 얼핏 살피였다. 그는 이날 낮에 예비회담을 락착짓고 돌아와 이자리에 참가하고있는 통일원장관의 심리를 타진해보느라 처음부터 은근히 마음을 쓰고있는터였다.

김영삼은 운명의 배를 같이 타게 된 그가 자기를 구원해줄수 있는 그 무슨 신묘한 방도를 생각해내지 않았을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걸고있었다. 하지만 애주가인 통일원장관은 화제에 별로 끼이지 않고 연신 술을 들이키면서 프랑스산 달팽이회를 집어먹고있었다.

김영삼은 눈치코치없는 그가 괘씸하였지만 꾹 참고 왜가리청을 한층 돋구었다.

《외무부장관은 나에 대한 민중의 찬사가 비발치듯 할거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을 바라지 않소. 나는 애오라지 한국정부의 영예와 승공을 위해 쇄골분신하겠다는거요. 이에 대해선 리해해도 좋고 안해도 좋소. 여론을 수집해본데 의하면 지금 나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비난이 많다고 하오. 남북정상회담을 놓고 나에 대해 별의별 악담들을 다 퍼붓고있소.》

김영삼은 제풀에 화가 나서 접이부채로 식탁을 두드리였다. 여기에 앉아있는 무슨 장관이요 비서관이요 하는자들이 앞에서는 곰살궂게 굴면서도 뒤에서는 왼장을 보며 헐뜯는데 대한 평소의 불만이 느닷없이 불쑥 터져나온것이였다. 측근들은 모두 흠칫 놀라서 목을 움츠리였다.

김영삼은 한동안 분을 새기느라 씨근덕거리다가 헛기침을 하고나서 점잖은 말투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악담들을 많이 하지만 이제 모두 두고보시오. 우리에게는 승공통일을 할수 있는 실력이 있소. 내 몇해전에 씨비리아바람을 쐬며 돌아다녀보니 공산주의자라는 사람들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요.》

김영삼은 그러면서 당시 자기가 《민자당》대표위원으로서 이전 쏘련에 갔을 때 쏘련공산당 당수였던 고르바쵸브가 자기한테 돈구걸을 하고 빌붙었다고 하였다. 그는 바로 자기의 그런 활약에 의해 대로씨야가 《한국》정부앞에 허리를 굽히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을 방문하던 이야기를 계속 늘여놓았다.

그는 언변이 좋지 못하지만 그대신 거짓말을 진실처럼 느낄수 있도록 이야기를 그럼직하게 꾸며대는데는 특기가 있었다.

《이번에 카터씨가 방북하고 돌아와서···》하고 김영삼은 화제를 다시 최고위급회담에로 돌리였다. 《우리한테 정상회담을 잘하시오 어쩌시오 하고 빈정거리고 갔지만 카터는 카터고 김영삼은 김영삼이요. 누구도 우리 한국정부를 업수이 보지 못해! 남북수뇌자회담석에서 우리는 내외에 우리의 실력을 보여주게 될거요.》

《옳습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외무부장관과 수석비서관이 겨끔내기로 박수를 치자 다른 사람들도 뒤질세라 무어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힘껏 손벽을 쳤다.

김영삼은 또다시 통일원장관 리홍구의 기분을 살피였다. 그는 여전히 마시고 먹는데만 정신이 옴해있는것 같았다. 그는 말도 없고 박수도 투닥투닥 맥없이 쳤다. 그렇다고 대통령에 대하여 어떤 불만스러운 감정을 가지고있는것 같지도 않았다.

누구보다도 박수를 제일 많이 친 외무부장관이 엄숙한 표정을 짓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제 우리가 채심하게 되는것은 미구하여 정상회담도 있게 되는것만큼 앞으로 전략기획단회의를 열고 의전(일정한 격식을 갖추는 의식)과 경호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연구하여 대통령각하를 잘 보좌해드려야 하겠다는것입니다. 지난 기간 한국정부를 반대하는 학생소요가 자주 일어난것을 보아도 그렇고 요즘 정상회담을 놓고 좋지 않은 여론이 돌아가는것을 보아도 그렇고 지난 기간 우리모두가 대통령각하를 받드는데서 불찰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김영삼은 손을 내저으면서 그런 소린 그만하라! 다시 말하지만 나는 칭찬을 바라지 않으며 욕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칭찬을 바랐다면 애당초 대통령이라는 시끄러운 자리에 올라앉지도 않았을것이다, 《문민정치》라는것도 바로 그런것이다, 백번 잘하다가 한번 잘못해도 욕을 먹게 되며 또 욕먹기를 전제로 하는것이 정치다, 대통령은 욕을 먹고 오해를 사되 민중은 복을 누리라! 이것이 나의 문민정치관이다 하고 열띤 소리를 하였다. 그리고는 인차 목소리를 가라앉히면서 덧붙이였다.

《시간과 력사는 누가 애국자인가 하는것을 평가해줄것이요. 일이란 스스로 바로잡히게 마련이요. 심지어 어떤이들은 김영삼대통령이 유다처럼 민족을 배신했다고 하지만 이제 모든것을 리해할 때가 올것이요.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유다에 대해서도 인식을 바로가질 필요가 있소. 아니 벌써 유다를 새롭게 리해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있소.》

김영삼은 지휘봉처럼 줄곧 손에 쥐고 흔들던 접이부채를 식탁우에 얹어놓더니 무릎옆에서 목침같은 책을 집어들었다. 그는 책장을 벌컥벌컥 번지면서 말을 잇대였다.

《유다도 결국 돈때문에 예수를 배반했소. 그는 은화 30개를 천국과 바꾸었소. 여태 세상사람들은 유다를 악과 배신의 대명사처럼 외우고있지만 유다를 인간으로 보는 사람들이 생겨나고있소. 유다에 대한 재인식, 재평가라 할가, 사실 유다는 악한 사람이라기보다 누구에게서도 리해를 받지 못한 불행한 인간이였소. 그런 의미에서 나도 유다를 동정하오.》

측근들은 모두 의혹에 찬 놀라운 눈으로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기독교인인 대통령이 유다를 동정하고있다고 말하니 경악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김영삼은 책을 펼쳐놓고 들여다보면서 《여기 이런 글이 씌여있으니 다들 들어보시오!》하고 처량한 목소리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 기독의 십자가와 유다의 십자가가 어느쪽이 더 무거웠을가 생각해본다. 기독- 그의 박애보다 유다의 배신이 더 인간적이였다면 누가 뿌리고 간 피눈물이 더 짙을것인가. 유다의 회한이여, 우리들만이 아는 비밀이다. 신도 인간도 될수 없는 유다의 비극은 우리것이다. 천국과 은화 30개를 맞바꾼 그 슬픈 래력을 리해하고싶다···

김영삼은 여기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좌중은 어정쩡한 표정들을 짓고있었다. 그들은 자기네 대통령이 무엇때문에 이런 아리숭한 문장을 읽어주는지 그 속내를 아직은 짐작하기가 어려웠던것이다. 자기가 유다처럼 리해를 받지 못하고있는 불행한 사람이여서 민중들로부터 별의별 욕을 먹으면서 살아가고있다는 뜻인지?

김영삼은 이렇게 변죽을 올리고는 《자, 어서 음식들을 드시오.》하고 측근들에게 술과 안주를 권하였다.

식탁은 잠시 조용해지고 그릇들에 수저 부딪치는 소리만이 들리였다. 이윽고 수석비서관이 방안의 침묵을 깨뜨리였다.

《방금 외무부장관님께서도 말씀하신바와 같이 지난 기간 수석비서관으로서 저는 자기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는데 대해 자아반성하게 됩니다. 그래 이 시각부터라도 채심하고 민족사의 대사변으로 제기된 정상회담준비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수석비서는 정상회담석에 제기할 정치적문제를 작성하는것을 비롯하여 대통령보좌에 일심전력을 기울이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외무부장관이 기대를 가지고 의논조로 물었다.

《그래 수석비서관의 소견에는 이제 우리가 북측에다 무엇을 제기하면 좋을것 같습니까?》

외무부장관의 그 물음에 김영삼이 귀를 도사리였다. 그가 지금까지 속을 썩여온것이 바로 그 문제였다. 이날 기자들을 피해 종일 청와대안에 붙박혀있은것도 그 물음에 대답할수 있는 준비가 되여있지 않았기때문이였다. 수석비서는 김영삼의 긴장한 표정을 피뜩 스쳐보고 대답하였다.

《예. 아직 깊은 연구를 못했습니다만 명백한것은 리산가족래왕과 문화교류, 경제합작 같은것이나 제기하고 그 이상 더 깊이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것입니다.》

《거 말같지 않은 소리 그만하시오!》

그때까지 잠자코 앉아 저가락질만 하고있던 통일원장관이 불쑥 고개를 들고 수석비서관을 흘겨보았다.

《정상회담이라는걸 잊지 마시오. 고망년 옛적에 하던 소릴 계속 념불처럼 외우겠다는거요? 북에서는 당장 통일을 하자는판인데 리산가족래왕이라는게 뭐요?》

좌중은 다시 조용해졌다. 김영삼이도 긴장해졌다. 그의 눈앞에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이 떠올랐다. 그것은 지금 자기의 개인서류함에 들어있었다.

1년전 1993년 4월 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9기 7차회의에서는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작성하신 조국통일대강인 조국통일을 위한 10대강령을 채택발표하였다. 조항마다 애국애족의 사상이 뜨겁게 맥박치는 이 대강은 북과 남, 해외의 각당, 각파, 각계각층 대표들에게 다같이 접수될수 있는 가장 공명정대하고 현실적인 강령이였다. 그러므로 북에서 내놓는것이라면 덮어놓고 헐뜯고 부정하는것을 업으로 삼아온 남조선의 어용언론들도 이 강령에 대해서만은 감히 그러한 행위를 감행하지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랭가슴을 앓고있었다.

이 강령은 남조선의 우익보수정객들을 포함한 많은 인물들에게 국제우편으로 송달되였다. 김영삼은 자기의 보수적동료들에게 우편이 와닿기 시작하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기에 대해서는 북이 어떻게 대하는가를 지켜보았다. 99통의 편지가 다 왔으나 한통의 편지, 자기앞으로 올것이 분명한 그 편지는 오지 않았다.

김영삼은 적지 않게 분노하였다. 그 강령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북에서 자기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는 그리고 자기가 소외되였다는데서 출발된 일종의 시기, 질투, 자격지심때문이였다.

필요에 의하여 공화국에서는 얼마 지나서 평양을 방문한 미국국회의원 액크만을 통하여 김영삼에게 인편으로 보내주었다. 그리하여 그의 마음은 다시 풀렸으나 그는 그 편지를 서류함에 넣고 자물쇠를 잠궈버렸다. 그렇다고 그가 그것을 개봉해보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그는 야밤삼경에 몰래 그것을 읽어보군 하였는데 그 비밀도 지금 여기에 앉아있는 측근보좌관들에 의해 세상에 로출되였다.

그 10대강령이 끝내 운명의 문을 두드리고있었다. 이제 만약 10대강령에 기초하여 범민족통일국가를 세우는 날에 7천만겨레의 민심이 어디로 쏠리겠는가 하는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였다.

김일성주석은 세계의 정치원로이며 5천년 민족사이래 처음으로 맞이한 인민의 수령이시다. 김영삼이 밥상밑을 기여다닐 때 김일성주석은 백두산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치고있은 사실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이와 자기와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였다.

측근들은 이것을 걱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수석비서관도 정상회담석에서 문화교류와 같은 지엽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는 깊이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던것이다.

《그런데···》하고 비서실에서 비밀사업을 하고있는 한 사나이가 김영삼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입을 열었다.

《저역시 정상회담 그자체에 대해 여러가지로 우려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가령 만약 평양에 가서 지난날의 리후락이처럼··· 에, 그렇게 되면 미중앙정보국에서 어찌겠는지··· 그들은 카터씨의 립장과는 다르니까요···》

좌중은 그 말에 약속이나 한듯 일제히 김영삼에게 눈길을 가져갔다. 아닌게아니라 한때 김영삼이도 빈소리로나마 그 어떤 우방도 동맹국도 민족보다 못하다고 하면서 한나산에서도 좋고 백두산에서도 좋으니 민족내부문제를 토론해보자고 하다가 미중앙정보국의 압력을 받은적이 있었다. 측근들은 대통령의 이런 과거를 돌이켜보고있었다.

《뚱딴지같이 리후락이라는건 뭐야?》

잠자코 좌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김영삼이 눈꼬리를 치켜들었다. 《누가 리후락이의 후신이 되겠다는가. 오늘의 한국은 옛날 한국이 아니요. 미국사람이나 김일성주석의 눈치를 볼게 아니라 자조정신에 서야 하오. 무엇이 모자라서 눈치놀음을 하겠는가?》

김영삼은 흥분을 눅잦히느라고 포도주 한잔을 들이키고 눈을 지써 감았다. 이윽고 그는 외무부장관의 목소리를 듣고 옆을 돌아보았다.

《이자리는 축하연이지 정상회담을 위한 전략기획단회의는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는 그쯤합시다.》

김영삼은 묵묵히 앉아있었으나 내심으로는 역시 외무부장관이 자기의 아픈데를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였다.

외무부장관은 대통령이 북남최고위급회담때문에 급해맞아 조언을 받으려고 연회를 차렸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또한 그런 곤궁한 처지에서도 대통령이 자기 몸값을 높이기 위해 측근들앞에서 허세를 부리며 온갖 거짓말을 하고있다는것도 모르지 않았다. 방금 그가 한 말은 대통령에게 《이 사람들앞에서 조언을 받기는 어렵습니다.》하는 일종의 암시였다. 그러나 측근들속에는 대통령을 중떠보며 그 속내를 캐보는 일에 취미를 가진자들도 있었다. 수석비서관옆에 앉은 말상을 한 비서실의 한 측근이 좌우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축하연이라 하여도 목전에 큰 일이 생겼으니만큼 적어도 한가지 문제만은 합의를 보고 금후 행동에서 일치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북의 제안에 응해서 10대강령에 도장을 누르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김영삼은 속에서 울컥하는것을 묵새기면서 비서실의 말상을 거느적이 바라보았다. 그의 입귀가 실룩거리였다. 모두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가 하고 그에게 시선을 집중하였다.

이때 수석비서관이 《그건 론의할 필요도 없소. 결단코 우리는 도장을 누를수 없소!》하고 자르듯이 말하고는 김영삼을 향하여 도장을 눌러서는 안된다고 다시한번 강조하였다. 좌중은 수선거리며 김영삼을 바라보았다. 사실 결론권은 그에게 있는것이였다. 비서실의 말상은 무슨 명분을 가지든 10대강령에 도장을 누르지 않겠느냐고 김영삼과 수석비서관을 번갈아보며 질문하였다.

김영삼은 대뜸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부채를 접어 상을 두드렸다.

《쓸개빠진 소리를 하지 말고 대통령을 믿으라!》

측근들은 여기가 질려 두말을 못하고 눈길을 떨구었다.

김영삼은 한층 더 열을 올리였다.

《우리가 왜 무턱대고 10대강령에 도장을 누르겠는가. 왜 할 소리가 없단 말인가. 우리는 회담장에서 북한에 대한 핵의혹을 걸고 다시 특별사찰문제를 제기할수 있소. 핵의혹을 가시기 전에는 10대강령에 도장을 누를수 없소.》

측근들은 일시에 김영삼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대통령이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있었단 말인가 하고 놀라는 기색이였다. 김영삼은 회담장에서 핵의혹을 내걸고 말썽을 부리면 카터의 평양방문이후 완화에로 방향을 돌리기 시작한 북조선과 미국의 관계를 악화시킬수 있을뿐아니라 북남최고위급회담을 파탄시킬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를 늘 업수이 여기는 카터에게 보복의 일격을 가하는것으로도 될수 있다고···

김영삼은 누구도 모르게 속안에 꿍지고있던 자기의 생각을 타진해보려는듯 한사람한사람 측근들을 더듬어보았다. 이때 수석비서가 자신없는 말투로 중얼거리였다.

《예. 그렇게 해서라도 도장을 누르지 말아야 합니다. 허나 그건 좀···》

수석비서는 한참 바재이다가 말을 이었다.

《외교에서 수가 깊은 미국어른들도 특별사찰문제를 내걸었다가 여의치 못하고 망신만 당했는데 서뿔리 그런걸 내걸면 대통령각하께서 오히려 화를 입을수 있습니다.》

《예. 그건 일종의··· 무어라고 할가, 모험입니다. 도저히 만회할수 없는 결과가···》

김영삼의 비위를 긁어주던 외무부장관까지 수석비서의 말에 동의를 표시하였다.

김영삼은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았다. 그의 량볼이 눈에 띄게 실룩거리였다.

시간은 퍼그나 흘렀다. 이자들을 더 붙들어두고있어야 얻어낼것이 없다고 생각한 김영삼은 만찬회를 그만 필하자는 의미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눈치가 빠른 수석비서관이 먼저 일어났다.

《자, 이젠 그만 돌아들 갑시다. 대통령각하께서 오늘 하실 일이 많을텐데···》

그러자 모두 줄레줄레 수석비서를 따라 일어나며 김영삼에게 작별인사들을 하였다.

《그럼 다음날 또 모여봅시다··· 그리구 리홍구장관은 좀 남아있소.》

김영삼이 일어나서 하는 말이였다.

손님들이 나간 뒤에 김영삼은 리홍구의 어깨를 짚으며 어서 앉으라고 하였다.

《에, 다름이 아니라 보통회담도 아니고 우리가 정상회담에 참석하여야 하느니만큼 이제부터 사전준비를 해야 할것 같소. 통일원장관도 나와 함께 평양으로 갈 사람이니까···》

《?···》

리홍구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만 꺼벅거리고 서있었다.

《내가 준비하자는건 다름이 아니구 면담하는 방법과 례의를 지키는것 등 알아둘건 다 사전에 알아두고 가야 할거요. 특히 우리 집 사람은 공산주의에 대해선 아는게 하나도 없으니 그쪽 례의범절이 어떤지 수고스럽지만 통일원장관이 좀 배워줘야겠소.》

김영삼은 그를 보며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세계적으로 보아도 정상회담참가자들은 회담을 앞두고 모의면담이라는것을 하였다고 덧붙이였다. 리홍구는 사실이 그렇다고, 모의훈련을 한다고 해서 흠될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며 맞장구를 쳤다.

《하긴 그렇소. 나는 원래 모의훈련같은건 생각지도 않았고 그런걸 좋아하지도 않소. 거 무슨 연극쟁이들처럼 그런 련습을 하겠소. 다만 우리가 가는곳이 50년동안 숙적으로 지낸 북한땅이고 또 날자가 하도 눈앞에 박두했으니 한번 순서나 맞춰보자는거요.》

김영삼은 넌지시 리홍구의 표정을 살피였다. 대통령의 속심을 알아차린 리홍구는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그렇습니다. 준비를 해야지요. 더구나 상대가 김일성주석이니만큼···》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가랬다는데 실수가 없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합시다. 거 뭐 거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러면서 그는 정상회담에서 거짓말을 하여 곤궁을 모면해볼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렇다. 그는 일생 거짓말을 하며 살아왔다. 그가 온갖 인간적약점을 가지고있으면서도 남조선의 최고당국자의 자리에까지 게바라오를수 있은것은 그에게 거짓말로 남을 속여넘기는 비상한 재간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는 이 선천적인 《거짓말재간》을 가지고 처세술을 부리고 그럴듯한 위선의 보자기도 만들었다.

그러므로 대통령자리에 올라앉기전까지만 하여도 김영삼에 대한 사회의 평판은 별로 나쁘지 않았다.

《인간으로 볼 때 김영삼은 몸이 건강하고 체육신경이 발달하였다. 그런데 비하여 그는 머리가 둔하고 무식하며 언변이 없고 조직적수완이 부족하다. 대신 그에게는 작은 약속에도 신중히 대하는 측면이 있다.》

이것이 대통령이전의 김영삼에 대한 평판이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사람들은 김영삼이가 거제군의 촌학교에서 12살때부터 출세를 꿈꾸면서 대통령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있었다. 그에게 있는 이런 발광적인 집권욕이 30년동안이나 비밀속에 묻혀있었으니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김영삼은 통일원장관에게 시선을 돌리였다. 리홍구의 눈은 《아무리 거짓말을 일삼아온 천성적인 거짓말쟁이라도 김일성주석앞에서는 거짓말을 할수 없습니다.》하고 자기와는 반대의 의견을 말하는것 같았다.

(아직 회담날자까지는 한달가까이 남아있으니 좀더 심사숙고해보자.) 김영삼은 내심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달이 아니라 백날을 두고 모색하여도 북남최고위급회담장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될것이다.

이튿날 기독교방송은 《김영삼대통령, 최고위급회담문제로 어제 종일 걱정하던 끝에 측근들을 모아놓고 악수모의를 하였다.》고 보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