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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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날 평시와 다름없이 일찌기 새벽 3시에 일어나 사업을 보시였다. 그날의 첫 관심사로 된것은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이 벌어지게 될 판문점이였다.

회담은 오늘아침 10시부터 시작되는데 판문점에 먼저 나가있는 일군들의 말은 이번 회담이 적어도 한주일이상 끌게 될것 같다고 한다는것이였다.

《회담을 오래 끈다는것은 좋은 일이 아니야.》

그이께서는 혼자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며 서재의 창문가리우개를 열어젖히시였다.

금시 신선한 새벽공기가 방안으로 밀려들어오는듯 하였다. 창밖에는 려명전야의 유난스러운 진한 어둠이 깃들었는데 흰구름띠같이 남쪽으로 길게 흘러간 은하수가 밤하늘을 신비롭게 장식하고있었다.

《별이 총총하군. 그런데 개성에서는 오늘 비가 내리겠다고 했지···》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득 어제저녁에 소리방송으로 들으신 기상예보를 되새겨보며 남쪽하늘로 시선을 옮기시였다.

그이의 눈앞에 비내리는 개성땅, 비물소리 소연한 판문각이 방불히 그려지였다.

오늘아침 10시부터 하게 되는 예비회담은 북남최고위급회담의 서막이며 전주곡이라고 할수 있었다.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북남의 최고수뇌자가 한자리에 마주앉아 회담을 한 실례는 분단 50년 력사에 아직 한번도 있어본적이 없었다.

인민들모두가 갈망해왔고 김일성동지자신이 언젠가는 이런 회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오시였지만 나라의 정세가 하도 복잡하여 지금까지 실현될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북남최고위급회담을 할데 대한 쌍방의 합의와 함께 그를 실현하기 위한 실무적인 조치로서 예비회담을 하게 된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카터가 돌아간 6월 18일부터 오늘까지 열흘동안만 하여도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위한 원칙적인 방향들을 여러차례 밝혀주시면서 예비회담을 실속있게 그리고 될수록 빨리 끝낼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우리 대표들이 개성으로 떠나는 날에도 그에 대하여 재삼 강조하시였다.

그런데 그 예비회담이 한주일이상 걸리게 될것으로 예견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바로 그점을 우려하고계시였다. 회담이 길어지겠다고 하는것은 결국 벌써부터 북남 두측사이의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는것을 의미하기때문이였다. 북남대표들이 서로 뜻이 맞으면 단 몇시간사이에도 락착을 보고 흔연히 도장을 누를수 있을것인데 도대체 무엇때문에 한주일이상이나 회담을 질질 끌게 될것 같다고 하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예비회담을 잘 결속짓도록 이미 대표단이 떠날 때 알려줄것은 다 알려주었는데도 늦어질것 같다고 하는것이 리해되지 않으시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회담정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바로잡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창가에서 물러나 원탁에 놓여있는 송수화기를 들고 판문점과 련계를 취하고있는 책임서기를 부르려다 그만두시였다. 아직은 사람들이 꿈나라에 잠겨있을 밤이였다.

이날 김일성동지께서는 여느날보다 훨씬 일찌기 집무실에 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전화로 리대천을 찾으시였다.

《책임서기동무, 안됐소. 오늘 급히 알아볼게 있소.》

그때로부터 10분 지나 리대천이 집무실에 들어섰다. 급히 달려온듯 그의 얼굴은 벌겋게 땀에 떠있었다.

《거기 앉아 숨을 좀 돌리오.》

그이께서는 출입문 곁에 있는 응접탁을 가리키시였다.

《수령님,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리대천은 자리에 앉을 생각을 못하고 긴장한 눈빛으로 집무탁에 마주앉으신 김일성동지를 지켜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한번 쳐다보고나서 무거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다른게 아니고 판문점소식을 들어봅시다.》

《예.》하고 리대천은 사업수첩을 펼쳐들었다. 이미 그에 대한 보고를 준비해가지고온 모양이였다.

《본회담에 들어가기 전에 북남기자들이 먼저 나와 기다리며 접촉하고있는것 같은데 대표들의 말을 들어봐도 그렇고 기자들의 말을 들어봐도 실무절차까지 합의하려면 회담이 래달까지 끌것 같다고 합니다.》

《나도 이미 그런 말은 들었소. 그런데 도대체 왜 그렇게 늦잡는지 모르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사뭇 의아해하시였다.

《남조선수행기자들속에서 무슨 뛰뛰한 소리가 돌아간것 같습니다. 장소와 날자문제때문에 그런것 같습니다.》

《장소와 날자문제로?···》

그이께서는 이렇게 반문하며 일어서서 리대천을 향해 몇발자국 걸어가시였다.

리대천은 최고위급회담 장소와 날자문제를 둘러싸고 쌍방간에서 신경을 쓰고있는 문제들을 말씀드리였다. 우리 대표들은 북남최고위급회담날자를 조국이 광복된 날인 8월 15일을 기념하여 그날부터 시작하자고 주장할 계획이지만 남측대표들은 8월 15일은 우리측에서 주관하는 범민족대회가 진행되는 때이기때문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그들은 우리가 날자문제에서 어떤 정치적목적을 노리고있다고 보는것이다.

그러나 실지로 8월 15일은 여러 측면에서 유리한 날자인것만은 사실이였다.

모든 력사적사변을 기록할 때 례외없이 공통적으로 첫자리에 기록하는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시간(날자)과 장소이다. 이 시간과 장소는 전쟁을 포함한 모든 정치적사변들에 운명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물론 이번 회담을 그런것들과 대비할수는 없는 일이지만 50년의 분단력사가 흐르는 과정에 어쩔수 없이 서로 경원감을 가지게 된 북과 남의 대표들은 지난 기간 그 어떤 회담을 함에 있어서 항상 장소와 날자에 신경을 써왔었다. 또 그것이 실질적으로 호상간 리해관계에 영향을 주고있는데 대하여 부인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리하여 벌써부터 두측 대표들은 장소와 날자문제를 가지고 서로 양보하기를 어려워하는것 같았다.

리대천으로부터 판문점의 분위기를 료해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못내 서운해하시였다.

《무엇때문에 날자요 장소요 하는 문제를 가지고 옥신각신하고들 있소. 내가 우리 대표단을 보내면서 조국통일을 위해서 양보할것은 다 양보하라고 하였는데 왜 그러는거요.》

《수령님, 우리 동무들의 립장은 사리에 어긋나는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쪽에서 회담을 파탄시키기 위해 롱간질을 하는것 같습니다.》

리대천이 격한 어조로 말씀을 올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동안 묵묵히 서계시였다.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생각이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시계를 들여다보고 리대천에게 당중앙위원회비서인 우리측 단장을 찾으라고 하시였다.

몇분후에 판문점에서 응답이 왔다.

《수령님, 하정민이 전화를 받습니다. 요즘 무더운 날씨에 건강은 어떠하십니까?》

수화기에서 울리는 단장의 목소리가 지척에서 말하는것처럼 선명하였다.

《일없소. 수고하오. 우리 동무들이 다 건강하오?··· 남측대표들도 모두 무탈하겠지?》

《수령님··· 모두 건강합니다.》

단장의 목소리는 대번에 물기에 푹 젖으며 가늘게 떨리였다.

《거긴 비가 온다지?》

《그렇습니다. 비가 옵니다.》

《그게 통일비요. 우리가 통일회담을 한다니 하늘도 무심할수 없지···》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의 목소리도 물기에 젖는것을 의식하고 잠간 말씀을 끊으셨다가 조용히 이으시였다.

《단장동무, 장소니 날자니 하는것때문에 회담도 하기 전에 쌍방간에 좋지 못한 말들이 오고간다는데 그게 사실이요? 그래 남측에선 최고위급회담을 언제 하자는것 같소?》

《7월에 하자고 주장하려는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요구하는대로 7월로 앞당깁시다. 당장 7월초에 해도 좋소. 빠를수록 좋소.》

김일성동지께서는 7월 3일도 좋고 5일도 좋고 아무때도 좋다고 하시였다. 래일 하자고 요구하면 래일 하고 오늘 하자고 제기하면 오늘 하고 자신께서는 언제든지 준비되여있다고 하시면서 회담을 빨리 하자는데 대해서는 조금도 반대가 없다고 하시였다. 단장은 나라의 통일을 하루라도 앞당기시려는 수령님의 심정을 가슴뜨겁게 느끼였다. 그러나 그는 7월을 꺼려하였다. 7월은 더위가 심하므로 수령님의 건강에 좋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단장은 자기 생각을 수령님께 그대로 말씀올리였다.

《일없소. 나라의 통일을 위한 일인데 건강은 무슨 건강이요. 날자는 그렇게 합시다. 그들이 요구하는대로 하시오. 그리고 장소문제 역시 마찬가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모든것을 양보하더라도 최고위급회담을 시급히 성사시키도록 하라고 지시하시였다.

《수령님, 장소만은 양보할수 없습니다. 년령으로 보나 권위로 보나··· 김영삼이 제가 평양으로 오는게 옳지 수령님을 걸음시키는게 옳습니까. 만약 그렇게 되면 인민들이 용서하지 않을것입니다.》

단장은 그러면서 남측대표들중에도 다소라도 리성이 있고 도덕이 있는 사람들은 만약 서울에서 회담을 한다면 그것은 마치 코흘리개학생이 권위있는 로교수더러 오라가라하고 심부름을 시키는것과 같은 하나의 비리로, 망동으로 된다고 말한다는것이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통일을 위한 일에서 무엇을 마다하겠는가, 필요하다면 나이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을 찾아갈수도 있다, 문제는 첫째도 둘째도 빨리 마주앉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시였다. 남측대표단이 서울에서 할것을 요구한다면 자신이 서울로 나갈수 있다고 하시였다.

《조국통일을 위해서라면 나는 서울이 아니라 부산이나 제주도라도 가리지 않고 다 가겠소. 남에 나가서 우리 동포들을 만나 연설도 하고 회포도 나누면 좋지 나쁠게 뭐요.》

단장은 수령님의 그 마지막 말씀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어느 국제회의에 참가했을 때 서방의 고위정객이 바로 그에게 《당신네 나라가 통일되려면 어려울것이 없소. 방도를 대달라오? 그 방도란 김일성주석이 서울바닥에 나가 한 30분 연설만 하시면 되는거요.》라고 말한 일이 상기되였기때문이다.

사실 그 서방고위정객의 말대로 김일성동지께서 서울에 나가 연설 한마디만 하시여도 문제가 달라질수 있는것이다. 하지만 그를 비롯한 우리 대표들은 수령님께 서울걸음을 시키는것을 무서운 죄악으로 여기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측 단장을 납득시키느라 긴시간 전화를 하시였다.

그로부터 몇시간후 그이께서는 판문점으로부터 다시 전화를 받으시였다. 단장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있었다.

《수령님, 드디여 회담이 결속되였습니다. 이제 마주앉아 문안정리를 하면 됩니다.》

《고맙소. 장하오··· 래달까지 갈것 같다던 회담이 몇시간동안에 끝났구만.》

의자에 앉아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심장의 세찬 박동을 의식하며 일어나시였다.

《수령님 말씀대로 하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언제부터 하기로 했소?··· 날자말이요.》

웬일인지 대답이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재차 물으시였다.

《왜 대답이 없소?》

《수령님, 끝내 8월 15일로 못하고 남측대표들에게 양보해서 7월 25일부터 시작하여 27일까지 하기로 했습니다.》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그렇습니다. 7월은 기후상태로 보아 수령님께서 건강에 조심하셔야 할 달인데··· 그래서 장군님께서도 어떻게 하나 7월엔 수령님의 부담을 덜어드리자고··· 그런데 오히려 더 많은 부담을 끼쳐드리게 됐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단장은 목이 잠겨 가까스로 말을 이어갔다.

《정말 잘했소. ··· 8월보다 7월이 좋소. 빠를수록 좋단 말이요. 그리고 양보했으니 얼마나 좋소. 그래야 해!》

김일성동지께서는 통쾌하게 웃으시며 좋다는 말씀을 세번이나 곱씹어 하시였다.

《장소는 평양으로 했습니다.》

《평양? 동무들이 고집을 부려 받아낸건 아니요?》

《아닙니다.··· 남측대표들도 그렇게 하는것이 도리상으로나 여러모로 보아 옳다고 인정하였습니다.》

《모르겠다, 그게 정말인지. 허허··· 어쨌든 됐소. 수고했소··· 오늘 일은 조국통일사에 대서특필될거요.

이 사실을 조직비서동지에게도 보고하시오.》

《이미 보고를 드리였습니다. 사실 장군님께서는 저희들이 수령님의 뜻대로 예비회담을 결속짓도록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그것보시오. 그게 바로 당의 의사이고 인민들의 념원이란말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기쁨이 북받쳐오르시여 집무실이 크게 울리도록 말씀하시였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이렇게 이르시였다.

《지금도 개성지방에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하는데 험한 길을 떠나지 말고 오늘은 거기서 쉬시오. 하루밤 자고 래일아침에 올라오는것이 좋겠소.》

이때 채순이가 혈압계를 들고 들어왔다. 지자기파가 심술을 부리는 날이여서 간호원은 여느때없이 집무실로 자주 드나들었다.

《간호원동무, 지금은 혈압을 재야 소용이 없을것 같소.》

김일성동지께서는 흥분으로 하여 높아진 자신의 혈압이 간호원을 놀래울수 있을가싶어 미리 귀띔을 하시였다. 자신의 짐작으로도 엄청난 이상혈압이 나타날것 같으시였다.

채순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이의 웃는 모습, 흥분하신 표정을 놀랍게 지켜보았다. 늘 밝은 웃음을 짓고계시는 수령님이시지만 그렇게까지 기뻐하고 흥분하신적은 드물었던것이다.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래달 25일부터 평양에서 최고위급회담이 열리게 된다는 말씀을 하시였다. 온 나라 인민들에게 어서 전하고싶은 소식을 결국 채순에게 제일먼저 알리신셈이였다.

《예··· 7월 25일부터 말입니까?》

기뻐할줄 알았던 채순은 오히려 근심스럽게 반문하였다.

수령님의 건강을 책임진 그 처녀에게 있어서 그것은 거의 본능적인것이였다. 무더운 삼복철에 수령님께 큰 부담이 생겼다는 생각으로 해서 채순은 못내 불안하였다. 얼마후 혈압을 재고나자 그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짐작한대로 엄청난 이상혈압이 나타난것이다.

《기뻐서 혈압이 올라간거야 병이 아니지···》

수령님께서 인자하게 웃으며 간호원을 안심시키시였다. 처녀의 입가에 언뜻 웃음이 비끼는듯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의 일이고 처녀는 인차 입술을 옥물었다.

《수령님! 너무 흥분하시면 안됩니다.》

채순은 그것이 기쁨으로 하여 생긴 흥분일지라도 건강에 나쁘다고 하였다. 그러는 처녀의 얼굴은 나무그림자에 덮인 호수의 물빛처럼 어둡고 처량하였다.

간호원은 돌아서서 슬그머니 눈물을 훔치였다.

수령님께서는 채순이가 나간 다음 책임서기를 불러들여 판문점소식을 전하시였다. 침착하고 내성적인 리대천이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싱글벙글하였다.

최고위급회담은 이제 한달이 남았다. 력사적인 사변을 앞둔 이 한달은 한초한초를 금싸래기처럼 아끼며 지내야 할 기간이였다. 할 일이 참으로 많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신채 집무실을 거니시며 리대천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책임서기동무, 한달동안의 일정을 잘 짜야 하겠소. 바늘구멍만한 빈틈도 없게 해야 하오. 출장도 예견하시오.》

《출장말입니까?》하고 반문하며 리대천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드러운 굴곡을 지은 책임서기의 동그스름한 얼굴에 시선을 주시였다.

《출장지는 명승지들이 있는 서부지대로 잡으시오.》

《?···》

그이께서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창문 맞은편 벽에 걸려있는 조선지도를 바라보시였다.

《남조선사람들이 오면 평양에만 있으라고 할수 없지. 산수가 좋은 명승지들도 구경시켜야지··· 김영삼이 기독교인이지만 불상들이 있는 절간을 구경시키면 좋아할거요. 그래서 남조선사람들이 거처할 명승지의 숙소들을 좀 돌아보자고 하오.》

김일성동지께서 좀더 가까이 지도앞으로 나서시였다. 그이의 시선은 산수도 좋고 유적들도 많은 북부지대의 명승지들을 훑고있었다. 그러시는 그이의 얼굴에 봄빛같이 밝고 따뜻한 빛이 어리였다.

이 나라 명승고적들에 대한 김일성동지의 사랑은 각별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이 나라 명승고적과 민족의 슬기를 찬미하는 시도 지으시였다. 우리 인민들은 그이의 애국적인 명문의 시를 후세들이 길이길이 자랑하며 읽도록 명승지의 높은 석벽에 새겨넣었다.

광복후 어느해인가는 저 북부지대의 명승지에 매장된 금광을 개발하겠다는 보고가 올라왔을 때 그이께서는 아무리 많은 금이 나와도 나라의 명승지의 경치와는 바꿀수 없다고 말씀하시며 그 지대를 인민의 휴양지로 만들라고 하시였다.

하여 지난날에는 돈있고 권세있는 사람들만이 즐길수 있던 이곳의 명승지가 공기좋고 물맑고 풍치좋은 인민의 휴양지로 전변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러한 사랑의 전설이 깃들어있는 인민의 휴양지, 명승지에 남조선사람들의 숙소까지 마련해주시려는것이였다.

그러나 리대천은 김영삼에 대한 말이 나오자 속이 언짢아졌다.

《그런 일때문에 출장을 가시겠단 말씀입니까. 김영삼이한테 명승지는 무슨 명승지입니까. 정 구경하고싶으면 어느 암자에 들어가 하루밤 자구 오라지요.》

《그러지 마오. 그가 지난날 못된 짓을 많이 했지만 회담을 하겠다고 우리를 찾아오는데 성의껏 맞아줘야지.》

그이께서는 부드러운 어조로 리대천을 달래시였다.

리대천은 어쩐지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왔다. 최고위급회담때문에 수술후 치료를 또 미루시였기에 이제야말로 회담을 하실 때까지 푹 쉬셔야겠는데 먼 출장을 가시겠다니 근심이 이만저만 아니였다.

리대천의 생각에는 수령님께서 남조선사람들의 숙소나 돌아보자고 출장을 가시는것 같지 않았다. 거기에 가서 또다시 어떤 일판을 벌려놓으실것 같은 예감이 드는것을 어쩌지 못하였다. 어디에 가나 일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수령님이시였다.

《수령님!》

리대천은 고개를 들고 안타까이 김일성동지를 바라보았다.

《장군님께선 수령님의 휴식에 대하여 철저히 책임지고 보장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출장을 가시면···》

《걱정마오. 출장지에 가서 회고록이나 좀 정리하면서 푹 쉬겠소··· 평양보다 거기서 쉬는게 더 좋지··· 그리고 총리한테도 경제부문일군협의회를 평양에서 하지 말고 서해안의 공업지구에 나가 현지에서 하라고 하시오. 꼭 그렇게 하라고 하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러시며 래일모레 벨지크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만나주시고 곧 떠날 계획이니 그렇게 출장준비를 하라고 하시였다.

《조직비서한테는 내가 이제 말하겠소.》

리대천은 아무 응대도 못하고 조용히 한숨을 쉬였다.

그날저녁 김일성동지께서는 오삼수로인을 만나러 시험포전으로 나가시였다.

저택과 잇닿은 공원숲을 지나 강냉이시험포전에 이른 그이께서는 먼저 밭가운데에 있는 정자를 바라보시였다.

마침 누런 로동복차림에 농립모를 쓴 오삼수가 정자의 그늘밑에 앉아 부채질을 하고있었다.

서쪽 산릉선에 올라앉은 저녁해가 정자의 지붕을 주홍빛으로 물들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정자아래로 바둑판처럼 펼쳐진 시험포전을 둘러보며 걸어가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정자밑에 이르시였을 때에도 오삼수는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시험포전들이 널려있는 골짜기 아래쪽을 지켜보고있었다.

그이께서 가볍게 기침소리를 내시자 비로소 오삼수는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수령님께서?》

그는 농립모를 벗어들고 황급히 정자밑으로 달려내려왔다.

《뭘 그렇게 보고있었소?》

수령님께서 인사를 하는 오삼수에게 웃으며 물으시였다.

《예. 저길 좀 보십시오. 저게 너무 신기해서···》

오삼수는 골짜기 맨 아래 미나리밭이 있는쪽을 가리키였다. 거기에는 네댓마리의 흰두루미가 부저가락같은 긴 부리를 축축한 땅에 박고 그린듯이 서있었다. 원래 흰두루미는 주로 우리 나라 황해남도지방에 날아와 겨울만 지내는 계절조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사시장철 가리지 않고 이곳에서 살고있었다.

《저게 글쎄 조화가 아닙니까. 아마 저런 미물들두 우리 시험포전들에 끌려 모여드는가봅니다. 허허···》

오삼수는 고개를 젖히고 즐겁게 웃었다.

《삼수동무의 말이 옳소. 사람이건 짐승이건 살기 좋은곳이면 모여드는 법이요.》

수령님께서도 감회깊은 눈길로 그쪽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포전쪽으로 걸어가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이랑을 헤치며 강냉이밭속으로 들어가시였다.

《어떤 강냉이는 이제 한달남짓이 지나면 먹을수 있겠소.》

수령님께서는 시커멓게 잎이 퍼진 강냉이대를 보며 말씀하시였다.

《예. 이 밭의 강냉이는 조숙종입니다.》

《그동안 센 바람을 몇번 맞고도 상하질 않은걸 보면 품종이 괜찮은것 같소.》

수령님께서 대나무처럼 딴딴한 강냉이대를 두드리며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지금 시험포전에서 가꾸는 그 강냉이로 말하면 새로 육종한 다수확종으로서 금년에 처음 농장들에 도입한것이였다.

《강냉이는 먹었소.··· 저기 <연백벌>에 가볼가···》

수령님께서는 《연백-100평》이라는 패쪽이 있는 저 아래쪽 포전으로 걸어가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벼포기들이 일매지게 줄지어 서있는 푸른 논판을 바라보며 두렁길을 걸어가시였다. 얼마후 걸음을 멈추신 그이께서는 오금을 꺾고 두렁밑에 있는 벼대 하나를 만져보시였다.

《삼수동무, 내 며칠전에도 말했지만 이삭이 나오는 날을 잘 알아두었다가 꼭 기록해놓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삼수는 깨끗이 닦은 수령님의 구두가 진흙물에 어지러워지는것을 민망스럽게 지켜보며 대답을 올리였다.

《벼꽃술이 피는 날자들도 놓치지 말고 기록해놓소. 그리고 내가 8월초쯤에 그 자료들을 볼수 있게 한통 복사해놓소.》

얼마후 그이께서는 두렁길에서 도로 걸어나오며 논판 건너편에 있는 복숭아밭에 눈길을 주시였다.

《얼마 안있으면 복숭아도 따먹을수 있겠군···》

오삼수는 그이의 표정에서 점점 이상한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어찌하여 그이께서 오늘따라 시험포전의 곡식들과 과일나무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며 이것저것 주의를 주시는것일가.

오삼수의 경험에 의하면 그이께서 어디론가 멀리 떠나게 되실 때이면 대체로 그러하시였는데 오늘은 더욱 유별하시였다.

《례년처럼 올해에도 첫물복숭아는 북방지방에 먼저 보내야겠소. 그렇다고 서둘러 설익은걸 따지 말고 모든 과일농장들에서 잘 익은 다음 와닥닥 따서 집중수송하여 공급하면 그곳 인민들이 좋아할거요.》

수령님께서는 복숭아밭머리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고 가지마다 주렁진 과일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시였다.

《복숭아가 많이 열렸군!》

그이께서는 시험포전 복숭아들은 탄광로동자들에게 보내자고 하시였다.

《내가 인민봉사위원회 위원장에게 지시를 주겠소. 그리고 조숙종강냉이들은 8월초에 가면 먹을수 있으니 첫물햇강냉이도 따서 로동자들에게 보냅시다.》

수령님께서는 그러시며 마치 처음보는 사람이기라도 하듯 오삼수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시였다.

조금 두드러진 광대뼈와 부드러운 선을 그린 넓은 아래턱, 숱진 눈섭밑에서 소년의 눈처럼 명랑하게 빛나는 두눈, 우뚝한 코와 두툼한 입술··· 그 모든 오삼수의 모습에서는 젊은 기운이 넘쳐나는듯 하였으나 해볕과 바람에 그슬린 땅빛같은 갈색얼굴에는 세월의 년륜처럼 많은 주름살들이 잡혀있었다.

《수령님, 절 왜 그렇게 보십니까?》

오삼수는 얼기설기 피줄이 불거져나온 커다란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어줍은 웃음을 지었다.

《이제 얼마동안은 내가 삼수동물 보지 못할것 같소. 허허···》

《그러니 어디로 가신단 말씀입니까?》

오삼수는 입속으로 중얼거리듯 뇌이고 서운한 기색을 지었다.

어느새 서쪽 산릉선우에서 마지막불을 내뿜던 저녁해가 산릉선너머로 넘어갔다. 그러나 쇠물빛 락조의 여광이 아직도 시험포전주변에 넘쳐나서 오삼수의 얼굴은 주홍빛으로 번들거리였다.

《삼수동무, 이제 조금 기다리면 기쁜 소식을 듣게 될거요.》

《무슨 소식입니까?》

오삼수는 부지중 한걸음 나서며 호기심 많은 소년처럼 그이의 대답을 기다리였다.

《오늘 판문점에서 예비회담이 끝났소. 그러니 최고위급회담이 확정됐단 말이요.》

오삼수는 흠칫 어깨를 떨더니 저쪽 논판옆에 매달려있는 확성기를 바라보았다. 거기서는 음악이 흘러나올뿐 아직은 아무 소식도 전하지 않고있었다.

《이건 50년이래 처음 있게 된 경사요··· 일은 그렇게 됐소. 이제는 내가 나설 차례요.》

《?···》

오삼수는 아직도 어렴풋한 꿈속에 잠겨있는것처럼 멍청히 서있었다. 그는 한참만에야 어떤 특이한 사변이 눈앞에 다가왔는가를 알아차린듯 성급히 물었다.

《그러니 이제 회담을 하구 도장만 누르면 통일이 되는게 아닙니까?》

《허허허···》

김일성동지께서 크게 웃으시고 뒤말을 이으시였다.

《글쎄 50년동안 분단되여있던 나라가 회담 한번하구 통일이 되겠소만 통일렬차는 이미 달리기 시작했소. 이것은 누구도 막지 못하오.》

오삼수는 그이의 안광에 번뜩이는 신념의 불빛을 일별하고 환희에 떠서 말하였다.

《수령님!··· 그러니 이 오삼수도 죽기 전에 통일을 보게 되는게 아닙니까···》

《그럼 보구말구··· 꼭 보게 되오. 이제 통일이나 해놓은 다음에는 나도 좀 쉬겠소. 그때엔 우리 함께 낚시질이나 한면서 여생을 즐겁게 보냅시다.》

《수령님!》

오삼수는 오열을 터뜨리듯 목메인 소리를 하며 부지중 수령님의 팔목을 두손으로 붙들었다.

《동갑이!》

수령님께서도 갈리신 음성으로 뜨겁게 부르며 오삼수의 꺼칠꺼칠한 손을 쓸어만지시였다. 그리고 문득 물으시였다.

《첫 벼이삭이 언제면 돋아날가?》

《여기 논들에서는 늦어도 한달만 지나면 첫이삭이 팰것 같습니다.》

오삼수가 시험포전에 고개를 돌리며 말씀올리였다.

《한달?··· 연백벌은 여기보다 좀 더운곳이니 더 일찌기 팰수 있겠소.》

그이께서는 연백벌을 눈앞에 그리시듯 남쪽하늘을 바라보시였다.

《첫이삭이 팰 때 연백벌에 꼭 나가보겠소. 그곳 농민들이 아마 지금도 기다리고있을거요. 이 예비회담소식을 들으면 누구보다도 그곳 연백벌 사람들이 기뻐할거요. 거기엔 리산자가족, 월남자가족들이 많지···》

그이께서는 여전히 남쪽하늘을 지켜보며 걸음을 옮기시였다.

《우리 당은 여태 그들을 차별하지 않고 잘 돌봐주었소. 그래서 연백벌에 있는 월남자의 안해들중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된 녀자도 있소. 60년대초에 내가 거기에 갔을 때는 모두 새파랗게 젊은 녀자들이였는데 작년에 가보니 할머니들이 됐더군. 더러는 세상을 떠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낯빛을 흐린채 잠시 묵묵히 계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가 그들에게 줄것은 다 주었지만 통일과 남편만은 주지 못했소. 오늘 래일 남편을 기다리다가 그들의 청춘이 다 흘러갔지··· 내가 작년에 연백벌에 가서 그런 말을 하니 월남자 안해 하나가 수령님, 아닙니다, 우린 세상의 모든 복을 다 받았습니다. 더 바랄것이 없으니 아무 걱정마시고 이젠 편히 쉬십시오··· 수령님만 계시면 통일은 저절로 됩니다 하고 나를 위로하지 않겠소. 옳소. 통일의 길은 누구도 막지 못하오. 내가 이젠 연백벌에 나가서 동무들, 통일의 대문이 눈앞에 보이오 하고 말할수 있게 됐소. 허허허···》

그이께서는 한껏 밝은 표정을 짓고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이의 웃음소리에 충격을 받았는지 골짝바닥에 내려와있던 흰두루미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서쪽하늘에는 래일의 맑은 날씨를 약속하듯 붉은 노을이 불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