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6


 

6

 

그날밤 10시 18분

하루일정이 끝나자 숙소로 돌아온 지미 카터는 옷을 갈아입을 사이도 없이 전화기앞으로 다가갔다. 워싱톤과 련계를 가지려는것이였다. 오전에 김일성주석과 회견이 있은 후 오후에 문선규와 단독회담, 조선예술인들이 출연하는 음악무용조곡 《계절의 노래》관람 등이 있었는데 무게있고 인상적인 그 모든 일정속에서도 카터는 줄곧 김일성주석을 생각하였다. 그 어느것도 그이로부터 받은 충격과 감동에는 비할바가 못되였다. 그 일정이 어쩌면 김일성주석에 대한 생각을 더 깊게 해주었는지 모른다.

잠시후 워싱톤과 전화가 련결되였다. 후에 알려진데 의하면 그때 평양과 워싱톤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평양 《건강하오?》

워싱톤 《건강합니다··· 각하는?》

평양 《매우 좋소. 여기는 평양이요. 이 전화는 공개전화요.》

워싱톤 《리해됩니다.》

평양 《나는 오늘 김일성주석과 아주 유익한 회담을 하였소. 그이는 미조회담이 다시 진행될 때까지 사찰원들을 핵시설에 그대로 남아있게 할것이며 모든 감시기구들을 계속 동작시킬것이라고 공약했소. 북조선의 요구는 근본적으로 두가지요.

첫째는 경수로도입에 대한 미국의 후원이고 둘째는 두 나라사이의 신뢰에 대한 문제요. 북은 사실상 이 문제를 더 중시하고있는것 같소. 이들의 견해에 의하면 경수로문제도 이 문제의 범위안에 있다고 할수 있소. 내가 요구하는것은 당신과 대통령이 3차회담이라는데서 이 모든 문제를 토의할 용의가 있는가 하는것을 나에게 알려주는거요. 잘 모를게 있소?》

워싱톤 《그 내용이 리해됩니다. 우리가 3차회담에 림하는 경우 담보의 련속성이 보장되며 사찰원들이 계속 시설에 남아있을수 있다는건데···》

평양 《그렇소. 김일성주석은 직접 나에게 이러한 담보를 하였소.》

워싱톤 《아, 그렇습니까? 대통령에게 즉시 보고하겠습니다.》

평양 《내가 래일 당신과 전화를 할수 있소. 그러나 나는 래일 오전에 다시 김일성주석과 만나기로 되여있소. 래일아침 일찍 내가 당신에게 전화를 걸겠소.》

워싱톤 《각하, 그것은 제 혼자서 결심할수 없는 문제입니다. 저는 각하가 이것을 리해하리라고 봅니다.》

평양 《문선규와 나는 김일성주석과 약속한것들을 CNN에 내보내기로 이미 합의하였소.》

워싱톤 《그렇게 하는데는 문제가 있을것 같지 않습니까? 나는 대통령과 토의한 다음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평양 《나는 당신을 대신해서 발언하지는 않겠소. 또한 우리 대통령이 어떻게 나오리라는것을 예측해서 말하고싶지도 않소.》

워싱톤 《우선 내가 할 일은 이 문제를 대통령에게 알리고 그 다음 당신이 편리한대로 다시 련계를 가지자는겁니다.》

평양 《좋습니다. 나는 당신이 래일 대통령으로부터 지체없이 그리고 더이상 그 문제에 대해서 론의함이 없이 3차회담을 하자는 결론을 가지고 나왔으면 하오. 김일성주석과 마주앉아 회담을 오래할수는 없소. 나는 주석에게 당신이 오늘의 공약에 기초하여 우리 나라가 3차회담을 하는데 동의하였다고 말하고싶소.》

워싱톤 《당신이 희망하는대로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거긴 밤이 깊었겠는데 어서 쉬십시오.》

평양 《감사하오. 허나 나는 잠들수 없소.》

 

6월 17일 0시 50분 안테나들은 평양과 워싱톤을 오가는 다음과 같은 공개전파를 포착하였다.

평양 《안녕하십니까? 아, 당신인가요?》

워싱톤 《(전번과 다른 목소리였다.) 그렇습니다.》

평양 《나는 2시간전에 갈루치와 전화를 했습니다.》

워싱톤 《알고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대통령과 부대통령이 갈루치의 이야기를 듣고 론의중에 있습니다. 갈루치는 당신이 전화한 내용을 그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평양 《빨리 응답이 있었으면 좋겠소.》

워싱톤 《나도 같은 심정입니다. 그런데 각하, 그들이 경수로를 제공하는 경우 지금 가지고있는 핵시설을 실지 포기하겠다는겁니까?》

평양 《이들은 흑연감속로를 정말 버리려는것 같소.》

워싱톤 《설명을 해주어 감사합니다. 한가지 중요한 문제를 더 론의하자고 합니다··· 당신은 김일성주석을 믿을수 있습니까?》

평양 (갑자기 어성을 높이며) 《무슨 말을 하자는거요?》

워싱톤 《오해하지 마십시오. 나는 여기 여론을 당신에게 참고로 알려드리는겁니다.》

평양 《내가 김일성주석에게 넘어갔다는겁니까?》

워싱톤 《그렇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즉시 소환하라는 목소리도 울리고있습니다.》

평양 《허허··· (웃다가 어성을 높이여) 사람을 보내놓고 망신시키는법이 어디 있소?》

워싱톤 《흥분하지 마십시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몇명 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사실들을 말씀드렸을뿐입니다.》

평양 《좋소. 내 말을 들어보시오 김일성주석을 만나보지 않은 당신들은 아무것도 알수 없을거요. 나는 그저 가슴이 벅차단 말이요.···》

워싱톤 《각하. 알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 결론도 드릴수 없습니다. 아침에 당신이 편리한 시간에 전화를 걸지 않겠습니까?》

평양 《···》

워싱톤 《다시 전화를 거는 경우 내가 없어도 다른 사람이 놓치지 않고 전화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평양 《좋소!》

 

카터가 워싱톤에 거듭 전화를 걸고있던 그밤 김일성동지께서는 집무실에서 전화로 문선규에게 물으시였다.

《지금 미국손님들이 잠자리에 들었소?》

《아닙니다. 그들은 워싱톤과 전화를 하고있는것 같습니다.》

《손님들이 자지 않는데 주인이 잘수는 없지. 허허···》

그이께서는 웃으시며 미국손님들이 음식은 구미에 맞아하는가, 잠자리는 불편해하지 않는가를 일일이 알아보시고 그들이 지구의 상반되는 위치에 와있어 갑절로 피로를 느낄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수화기를 놓은후 밀려오는 피로를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피로를 털어버리듯 두어번 팔을 휘저으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중앙아시아에서 온 고령의 귀한 녀자손님 하나가 생각나시여 전화기앞에 도로 앉으시였다. 그의 이름은 량귀동녀, 왕청의 이름있는 유격대지휘관이였던 혁명렬사 량성룡의 딸이였다. 그이께서는 며칠전에 량귀동녀에게 대성산혁명렬사릉에 가서 아버지묘소를 찾아보라고 이르시였는데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고싶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최근에 와서 유자녀들을 더욱 자주 만나시였다. 물론 이 일은 광복후부터 끊임없이 진행되여왔다. 그이께서는 유자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수첩에 적어넣고 찾으시는 족족 표식을 해가시였다. 특히 그이께서는 회고록을 쓰기 시작하면서 세월과 더불어 망각속에 묻혀 인몰되였던 연고자들까지 찾아내게 되시여 이제는 죽지 않고 살아있는 연고자들은 거의다 알아내고 만나도 보시였다. 량귀동녀는 그이께서 찾아내신 마지막연고자라고 할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각별히 정이 가시였다. 량귀동녀도 그렇고 그의 아버지 량성룡도 그렇고 그들 부녀는 그이의 추억속에 깊이 새겨져 어느 한시도 잊을수 없는 사람들이였다.

량성룡은 왕청유격대 창건자의 한사람으로서 김일성동지보다 나이가 훨씬 우였지만 유격투쟁의 길에 나선 첫날부터 그이를 조선혁명의 령도자로 높이 받들어온 가장 충직한 유격대지휘관들중 한사람이였다. 그러나 동만에서 활동하던 조선혁명가들이 대체로 그러했던것처럼 량성룡이도 한때 《민생단》감투를 쓰고 많은 고생을 하였었다. 그때문에 억울하게 사형처분까지 받게 되였으나 김일성동지께서 직접 보증을 서주시여 구원될수 있었다. 그는 유격대 대대장으로부터 평대원으로 강직되여 식량공작을 하게 되였지만 지휘관으로 있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맡은 임무에 충실하였다. 그는 식량공작임무를 수행하다가 여러발의 총상을 입고 쓰러졌는데 적들이 달려들어 옛 유격대 대대장의 입에서 비밀을 뽑아내려고 발광하였지만 그는 끝까지 혁명의 지조를 지키고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다 그의 어머니와 안해까지 왜놈의 《토벌》에 희생되여 살붙이라고는 량귀동녀 하나가 남았을뿐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1936년 남호두회의후 백두산지구로 진출하실 때 혈혈단신의 고아가 된 량귀동녀를 쏘련으로 들어가는 부상자, 로약자대오에 얹혀보내시였다. 그것이 북만의 청구자밀영에서 있은 일이였다.

이국에서 또 이국으로 들어가는 9살소녀 량귀동녀, 그 어린것도 쏘련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말을 듣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떠나기 전날까지 그이께서 내내 그애를 데리고다니며 밥도 같이 먹고 밤에도 한자리에서 주무시였다. 리별의 시각이 닥쳐왔을 때 량귀동녀는 김일성동지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하루밤만 더 자고가겠다고 하며 서럽게 울었다.

그이의 가슴은 참으로 미여지는듯 했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량귀동녀가 가는 쏘련은 왜놈들도 없고 착취도 없는 사회주의나라다, 이제 량귀동녀는 그곳에 가서 공부도 하고 행복하게 잘살게 될것이며 나라를 찾게 되면 우리곁으로 다시 돌아와 혁명을 하게 될것이다 하고 타이르시며 자신도 위안하시였다.

그렇게 헤여진 량귀동녀를 58년이란 긴세월이 지나서야 만나게 되신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조국에 개선하신 첫날부터 량귀동녀를 찾기 위해 사람들을 띄우기도 하고 또 쏘련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알아도 보시였으나 광막한 대륙의 한구석에 이름없이 박혀있던 이 조그마한 녀인의 소식을 알아낼수가 없으시였다. 그러다가 김일성동지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4권이 세상에 나가게 되면서부터 량귀동녀의 이름이 중앙아시아에 있는 교포들속에도 알려지게 되여 마침내 그를 찾아낼수 있게 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4권 《전우들은 북으로 나는 남으로》라는 절에서 량귀동녀를 회고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지난 6월초에 량귀동녀를 조국에 불러내시여 감격적인 상봉을 하시였다. 60년 긴세월을 이국에서 흘러보낸 량귀동녀의 슬픈 이야기를 들으며 그이께서는 눈물을 흘리시였다.

1936년 부상자대오에 얹혀 쏘만국경을 넘어선 귀동녀는 그길로 연해주의 어느 고아원에 들어가게 되였다. 그 이듬해에 쏘련정부의 조치에 따라 연해주에 거처하고있던 조선사람들이 중앙아시아지구로 이주하게 될 때 량귀동녀도 모래바람 부는 황량한 광야를 지나 조국과 더 멀리 떨어진 중앙아시아내륙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후 우즈베끼스딴에서 고아원생활을 하던 그는 뜻밖에 친척 한사람을 만났다. 그때부터 고아원생활을 그만두고 친척과 함께 몇년간 꼴호즈일을 하다가 까자흐스딴으로 시집을 가게 되였다.

시집은 11명이나 되는 대가정이였다. 그는 조국에 대한 생각조차 할 사이없이 시집살이에 시달리며 고달픈 인생을 흘러보냈다. 젊어서는 시부모공대, 늙어서는 남편과 자식들 뒤바라지로 바깥구경을 못하고 살아왔다. 수십년 세월을 가정의 좁은 울타리안에서만 돌아갔으므로 그의 정치적시야는 집마당의 반경안에 국한되여있었다. 그의 정치적사고는 마치 북만의 청구자밀영에서 리별하던 때의 9살 사고에서 별로 더 벗어나지 못하고 정지되여있는듯싶었다. 게다가 근 60년동안 이국에서 살다보니 모국어는 거의나 잊어버리였고 로씨야말도 온전히 하지 못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와 처음 만나서 이야기하실 때 주체사상탑이라는것을 리해시키기 위해 《인민들이 나라의 은공을 기념해서 세운 탑》이라고 조선말, 중국말, 로씨야말을 섞어가며 풀어서 설명해주지 않으면 안되시였다.

그의 아버지 량성룡의 반신상이 있는 혁명렬사릉에 대한 인식을 주기 위해서도 많은 설명을 해주어야 하시였다.

그는 대성산에 가면 아버지의 얼굴을 볼수 있다고 하자 흥분하고 기뻐하면서 가보겠다고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지금 그것을 알아보고싶어 송수화기를 들고 량귀동녀가 들어있는 서재골 숙소관리원을 찾으신것이였다.

《량귀동녀가 지금 자오?》

관리원은 그가 자지 않고 텔레비죤을 보고있다고 하였다.

《그럼 좀 바꿔주오.》

얼마후 량귀동녀가 나왔다.

《량귀동녀냐?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건다··· 뭐 불편한게 없느냐?》

그이께서는 이미 70객의 할머니가 된 량귀동녀가 아직도 소녀처럼 어리게만 생각되여 옛날의 말투 그대로 쓰시였다. 량귀동녀 역시 그때처럼 수령님을 장군님이라고 불렀다.

《장군님, 불편하기는··· 난생 이런 호강을 처음 해봅니다.》

귀동녀의 발음은 훨씬 좋아졌다. 조국에 와있는 며칠동안에 잊어버렸던 조선말을 벌써 많이 회복한 모양이였다.

《그래 대성산혁명렬사릉에 가보았느냐?》

《예. 장군님 말씀대로 가서 인사도 올리고··· 술도 부어드렸습니다··· 장군님덕분에 60년만에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정말 고맙···》

귀동녀는 목이 메여 뒤말을 잇지 못하였다.

《너의 아버지는 사진 한장도 남기지 못하고 갔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의 얼굴모습을 알려주어 반신상을 해세웠다. 아버지의 얼굴과 신통하게 꼭같다.》

《예. 신통합니다··· 아버지를 본지도 60년이나 돼서 얼굴마저 잊어버릴 지경이였는데 반신상을 보니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생각이 납니다.》

귀동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눈물에 젖어있었다.

《왕청에 있을 때 내가 너희집에 자주 갔다. 아버지한테 기타가 있어서 너를 무릎에 앉혀놓고 기타를 타며 혁명가요를 불러주군 했는데 생각이 나느냐?》

《그 생각은 나지 않습니다. 그저 북만에서 헤여질 때 떨어지지 않겠다구 장군님의 옷자락을 붙잡구··· 발버둥치던 생각하구··· 왜놈<토벌>을 맞은 뒤에 장군님의 품에 안겨 울던 생각만···》

귀동녀는 종시 말끝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였다.

수령님께서도 말씀을 못하고 눈을 감으시였다. 쓰라린 추억으로 가슴이 미여지는듯 하시였다. 그때 적들의 야만적인 《토벌》에 의해 귀동녀의 할머니, 어머니를 비롯해서 마을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몽땅 희생되였다. 귀동녀만은 집뜨락에 놓여있는 구새나무통속에 들어가있은덕에 간신히 목숨을 건질수 있었다.

수화기에서는 귀동녀의 흐느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만 울거라··· 가슴아픈 이야기를 이젠 그만하자··· 늦기는 했다만 너를 찾았으니 다행이다. 대성산에 가서 너의 아버지를 볼 때마다 빚을 진것 같았는데 이젠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것 같다··· 이젠 내가 친아버지처럼 너를 돌봐주겠다.》

《장군님!》

《네가 정말 그새 고생을 많이 했다.》

수령님의 목소리는 퍼그나 갈리시였다.

《장군님, 저때문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시오다. 저의 고생은 장군님에 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군님, 이젠 년세도 높으신데 쉬염쉬염 일하십시오.》

《내가 쉬면 나라가 서. 몸은 백두산에서 내려왔지만 마음은 아직도 백두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수화기에서는 또다시 귀동녀의 흐느낌소리가 들리였다.

《왜 또 우느냐?》

《자꾸 눈물이 납니다. 오늘 만경대집에 가보구 장군님께서 그리도 못사는 집에서 나셨으니 백성들을 위해 큰거리를 세웠구나 하구 생각했습니다. 평양은 어디를 돌아봐도 신에 흙이 묻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번에 구경도 좀 했느냐?》

《구경을 많이 했습니다. 가는데마다 량귀동녀할머니, 할머니 하구 어찌나 반겨주는지··· 글쎄 평양사람들이 모두 내 이름을 알지 않겠습니까?··· 장군님께서 회고록을 쓰셨기때문에···》

량귀동녀의 울먹거리는 소리가 또 들렸다.

《자, 이젠 밤도 깊었으니 그만 자거라. 건강하길 바란다.》

수령님께서는 수화기를 놓고 일어나시였다. 잠시 방안을 거니시다가 복도로 나오시였다. 촘촘한 별들이 복도창문으로 내다보이였다. 불현듯 북쪽하늘 한끝에서 번쩍하고 불꽃이 일더니 시뻘건 별찌가 어두운 대지를 향해 긴 곡선을 그리며 총알처럼 내리꼰지였다.

그이께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이제는 미국손님도 워싱톤과의 전화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을가? 카터와 량귀동녀가 동시에 그이의 눈앞에 어려왔다. 한사람은 미국에서 대통령자리에까지 올랐던 세계적인 정치인이고 한사람은 백사장의 한점 모래알처럼 그 존재조차 보이지 않게 이국살이를 해온 촌할머니였다.

그이께서는 6월에 찾아온 그 두 손님이 다 지금 잠을 못이루고 침대우에서 뒤채일것 같이 생각되시였다. 카터는 래일에 있을 회담을 놓고 생각이 많을것이고 량귀동녀는 지나온 한생과 아버지에 대한 추억 그리고 조국에 와서 받은 강한 충격으로 하여 잠을 못이룰것이다.

그이께서는 미국손님들이 걱정되여 문선규를 다시 찾으시였다.

《교환수동무, 문선규동무한테 대주시오. 아직 자지 않을게요.》

곧 문선규가 나왔다.

《미국손님들이 이젠 전화를 끝냈겠지?··· 잠자리에 들었소?》

《예. 침실에 들어간것 같습니다. 걱정을 놓고 이젠 수령님께서도 주무십시오.》

《나야 원래 잠이 없는 사람인걸··· 그건 그렇고 내가 래일 손님들을 어디서 만나게 되였더라?》

《금수산의사당입니다.》

김일성동지의 새삼스러운 물으심에 문선규는 의아해하였다.

《래일은 방안에 앉아있지 말고 씨원히 바람을 쏘이는게 어떻소?》

《?···》

《일정을 좀 바꿉시다. 배를 타고 서해갑문까지 유람하면서 손님들과 이야기하려고 하오.》

《배를 타시겠단 말씀입니까?》

문선규는 저으기 놀라와하는것 같았다. 그이께서 지금까지는 외국손님들과 배를 타신 일이 별로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렇소. 그러니 그렇게 조직사업을 하시오··· 그리고 눈을 붙이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수화기를 놓으시였다.

밤은 퍽 깊었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여전히 주무실념을 안하시였다. 요즈음 밤마다 일과처럼 어기지 않고 하시는 일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이께서는 탁상등만을 남겨놓고 다른 모든 전등을 끈 다음 펜을 들고 앉으시였다. 회고록을 쓰시기 위해서였다.

그이께서는 회고록 6권에 두개의 절을 새로 더 써서 보충할 생각을 하시였다. 한참 사색을 더듬어나가시던 그이께서는 들었던 펜을 도로 내려놓고 원고지를 두손바닥으로 누른채 잠자코 계시였다.

방금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시던 량귀동녀에 대한 생각이 겹쳐들어 움직일수가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미 출판된 회고록에서 그와 관련된 대목을 되새겨보시였다.

···그날밤 어린것은 모포밑에서 자지 않고 계속 조잘거렸다.

《장군님이 백두산을 비우고 우리한테 오시면 왜놈들이 또 조선사람을 죽이겠는데 그럼 어떡하나요? 장군님, 나한테 오지 말고 백두산에 계시라요.》

《옳다. 네가 정말 용쿠나! 네 부탁대로 백두산을 떠나지 않겠다. 그리고 너의 아버지, 어머니 원쑤를 갚아줄테다.》

나는 부지중 그애를 그러안았다.

량귀동녀는 어린애처럼 내 가슴을 파고들며 이상하게 몸을 떨었다.··· 그 량귀동녀의 나이가 70살가까이 되였을것이다. 그 나이면 인생으로서는 석양이라고 할수 있다. 나는 지금도 《민생단》모자를 쓰고 마음고생으로 시들어가던 옛 대대장의 딸 량귀동녀를 이따금 눈앞에 그려보군 한다. 그러나 내 눈앞에 매번 떠오른것은 생일 일흔돐을 앞둔 할머니가 아니라 9살내기 꽃망울 소녀의 모습뿐이다. 나는 할머니가 된 그를 상상할수 없다. 나의 추억속에는 언제나 나를 따라 백두산으로 가겠다고 참새처럼 재잘거리던 소녀의 모습만이 남아있을뿐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자도 더 쓰지 못하고 일어나시였다.

량성룡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서 어른거려 펜을 움직일수 없으시였다.

(량성룡동무, 58년만에야 동무의 딸을 찾았소!)

그이께서는 옛 전사를 마주대하신듯 뜨겁게 뇌이시였다.

어느덧 날이 밝아오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