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3


 

3

 

그날밤 자정무렵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국손님들과 진행한 외교부의 사업정형을 알아보기 위하여 이번에 동행하여 사업하게 되여있는 문선규를 전화로 부르시였다.

문선규는 그때까지도 사무실을 떠나지 않고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문선규는 분리선을 넘어온 카터에 대한 영접행사로부터 외교부장과의 회담을 거쳐 연회가 끝날 때까지의 사업내용을 상세하게 보고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긴 보고를 한번도 끊지 않고 다 들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아래일군들이 사업보고를 하거나 의견을 말할 때 좀해서는 중단시키는 법이 없으시였다. 간혹 의문이 생긴다든가 부정확하다든가 혹은 확인할 대목이 있다 해도 다 듣고난 다음에야 하나하나 반문하군 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문선규의 보고가 끝났으나 잠시 아무 말씀도 없이 송수화기를 드신채 방안의 한곳을 응시하고계시였다. 그 침묵이 자기의 보고에 미흡한 구석이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는지 문선규는 저으기 자책어린 목소리로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 필요하시겠기에 구두로 먼저 말씀 올렸는데 더 자세한것은 래일 첫시간에 문건으로 올리겠습니다. 그때 미국손님들의 동향에 대한 자료도 첨부하겠습니다.》

《아니, 그들의 동향자료는 필요없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물으시였다.

《그런데 동무들이 카터일행을 너무 랭담하게 맞이한게 아니오?》

문선규의 보고내용과 그의 어조에서 풍기는 카터에 대한 외교일군들의 강경한 자세를 느끼셨던것이다.

《적대국의 사절인것만큼 저희들로서는 다른 나라 손님들처럼 친절히 대할수 없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그도 우리 나라를 찾아온 손님이요. 손님을 친절히 맞이하고 후하게 대접하는것은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미풍이요. 앞으로는 카터일행을 친절하고 후하게 대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래일 나와 동행하려면 일찍 쉬는게 좋겠소. 그렇게 하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내려놓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창가로 다가가서 창문을 반쯤 여시였다. 대성산송림의 싱그러운 송진내가 풍기는 미풍이 방안에 흘러들었다. 그이께서는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여름밤의 고요속에 잠긴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며 대기를 한껏 들이키시였다. 금시 가슴이 후련해지시였다.

수반급의 상봉준비에 3개월이 걸린다는것은 세계외교의 상례였다. 그렇기때문에 그러한 상봉은 어느 나라든지 최대한으로 앞당기는 경우에도 3개월전에 결정짓게 되여있었다.

그러나 수반급의 상봉못지 않게 중요한 카터의 방문은 이례적으로 눈앞에 박두하여 결정된 문제였다. 더우기 이 상봉으로 말하면 친선방문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건 하나의 외교전이였다.

지금은 자정이 지나고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집무탁을 마주하여 앉으시였다. 그이앞에는 외교부와 서기실에서 시급히 만들어 올려보낸 회담자료들이 놓여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떤 중대결론을 하려고 하거나 정책으로 될 발언을 해야 한다고 보는 모든 문제의 요점들은 수많은 자료들에 기초하시였다. 그 자료들은 공장과 농촌, 도시와 마을을 찾아가 만나신 수많은 사람(인민)들의 말에 의거한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많은 말들과 자료들중에서 본질적인것을 재빨리 포착하시고 중심고리를 틀어쥐고 거기를 돌파하는 관점에서 정치적개괄과 결론을 돌출하는 희한한 능력을 가지고계시는것으로 하여 특출하시였다. 최종적인 결론은 사실상 늘 그이께서 내리시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의 집무실이나 서재에서 정세자료, 력사참고서, 현실료해자료, 각종 대책안들을 비롯한 당과 국가기관들에서 제공한 숱한 문건들과 종전에 채택한 결정서들을 연구하지 않고는 그 결론을 내리지 않으시였다.

그이의 곁에 서기실이 있어 이런 일을 얼마간 보좌해드리고있었다. 하지만 이 서기실이란것도1955년이후에야 설치되였다. 당시 조선로동당 3차대회를 준비하면서 그이의 문건부담이 너무도 크시여 이 기구를 두었었다. 그전까지 1945년 건국이후 10여년이나 그이께서는 서기실이 없이 혼자서 수많은 회의연설문들과 담화록들, 서한들과 론문들을 펜에 잉크를 찍어가며 자신이 직접 한자한자 적어나가시였다. 그후 서기실이 나왔건만 그이의 부담이 결코 덜어진것은 아니였다. 종전과 같이 수많은 문건들을 친히 보시였고 거기서 결론을 자신께서 직접 찾아내시였다. 도대체 서기실의 그 어느 전문가도 그이만큼 그 부문에서 제기되는 문제의 본질과 거기로부터 얻어지는 결론을 찾아내는 능력을 가지고있지 못하였다. 글귀나 문장같은것도 그이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서기실의 수고를 두고 언제나 치하하시였고 그들이 만들어낸 문건들을 빠짐없이 보시였다. 그리고 신비할만큼 비상한 기억력으로 머리에 새기시였다. 그이께서는 거의 70년전의 일로 된 어린시절에 들으신적이 있는 마을이름들과 거기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기억하고계시였다.

그러면 이것이 선천적인것이였겠는가. 물론 그럴수도 있다. 허나 중요한것은 기억해야 할 대상들에 대한 관점에 있었다. 그이께서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왜 잊지 말아야 하며 그것의 련관고리가 어떻게 되여있으며 그것이 혁명과 건설의 어떤 측면에 놓인것인가를 누구보다 깊이 파악하시였으며 그런 경우에 그 대상들을 자신의 몸의 한 부분처럼 여기시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문건을 넘기면서 사색을 많이 하시였다.

지금도 문건에 시선을 주신채 사색을 더듬고계시였다. 그이의 사색세계에 우리 나라 주변의 대국들이 비쳐들고있었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우리 나라는 대국들짬에 숨가쁘게 끼여있다. 특수한 지리적환경으로 하여 20세기 인류력사의 등불로 된 《주체》국으로 되는 행운을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허나 불행과 고난도 이만저만하지 않았다. 대국들의 각이한 리권은 만유인력처럼 우리 나라에 미치고있었다. 이 인력권에서 현대에 이르러서는 나라의 분단이라는 민족사상 최대의 불행이 초래되였고 량극권속에서 복잡한 정치상황이 조성되였다. 그런속에서도 나라는 한발자국도 헛디디지 않고 곧은길로 걸어왔다. 그러자니 오죽했겠는가. 건국이래 50년간의 수령님의 로고는 적지 않은 경우 대국들에 의해 생긴것이였다.

벌써 탁상시계는 1시를 짚어가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눈을 비비며 일어서시였다. 수술을 받으신 한쪽눈이 아직도 깔깔한 이물감이 나면서 문건을 읽기가 힘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창문가로 가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한동안 눈의 피로를 풀고나서 자리에 돌아오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반도의 《핵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동향부터 살피시였다.

일본정부는 우리 나라에 대한 유엔의 《제재결의안》채택시에 많은 리사국들의 찬성을 얻기 위해 분별없이 동분서주하고있었다. 파키스탄, 나이제리아 등 쁠럭불가담나라들에 협력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공동보조》를 취하도록 중국을 설복하기도 하였다. 한편 유엔주재 일본대사는 유엔안보리사회의 비상임리사국회의에서 일본의 립장이 《미한량국과 같다》고 하면서 《북조선에 대한 제재조치를 시급히 검토할 때가 왔다》고 하면서 분주탕을 피웠다.특히 우리의 기구탈퇴와 관련하여 일본정부내 반동적보수파들의 적의에 찬 목소리가 날로 높아가고있었다. 그들은 유엔이 《단계적인 경제제재》가 아니라 《즉시적인 경제제재》를 채택할것을 요구하였다. 그렇다면?··· 김일성동지께서는 놈들의 내심을 꿰뚫어보려고 사색을 더욱 깊이 펼쳐가시였다. 과연 일본이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할것이라고 한 우리의 성명을 보지 못하였단말인가. 그럴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 성명을 보고도 고의적으로 외면한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것이다. 하다면 《제재》에 대한 우리의 단호한 대답으로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터지고 일본이 거기에 말려들게 되기를 바라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것은 더구나 아닐것이다. 일본은 현시점에서 전쟁을 두려워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재》에 열을 올리고있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 리유는 우리의 《핵개발》을 구실로 이미전부터 은밀히 추진하여오던 저들의 핵무기를 계속 개발하며 그리하여 불원간 핵대국이 되려는데 있었다. 그들은 이 야망을 위하여 전쟁에로 이어질 《제재》를 떠들고있는것이다. 이야말로 그들로서는 무서운 모험이다. 이러한 모험도 불사한 일본의 정치용단은 무엇인가? 그들의 진짜의도는 무엇인가? 이것이 용단인가 아니면 하나의 정치적제스츄어인가?

김일성동지의 뇌리에는 수많은 의문부호들이 흘러가고있었다···

시간도 흘러갔다. 2시였다.

김일성동지의 사색은 일본에서 로씨야로 옮겨갔다.

우리의 국제원자력기구에서의 탈퇴성명이 나가자 로씨야대통령 옐찐은 텔레비죤과의 회견에서 로씨야와 미국의 국제회의 소집문제와 북조선에 대한 《제재》문제를 동시에 토의하여야 한다고 했다. 옐찐은 조선반도의 핵문제에 관한 문제를 미국무장관 크리스토퍼와 협의하기 위해 자기의 외무상 꼬지레브를 브류쎌로 보내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미국보다 로씨야에 더 큰 의의를 가진다고 하였다. 이것은 로씨야최고당국자의 립장이 제재나 전쟁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쪽으로 기울어졌다는것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국제회의를 운운하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로씨야가 우리 나라 《핵문제》에서 자기의 영향력을 보존하며 동아시아에서 이 기회에 패권적지위를 얻으려 한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판단하시였다. 그이의 입가에 쓰거운 웃음이 비껴갔다.

김일성동지의 사색은 어느덧 중국으로 옮겨갔다.

중국은 우리의 린방이며 형제적사회주의국가이다.

그이께서는 과거 항일무장투쟁시기는 물론 건국이래 오늘까지 중국인민과의 친선단결에 크나큰 관심을 돌려오시였다. 그런것만큼 최근 우리의 《핵문제》에 대한 그들의 립장에도 깊이 류의하시였다.

우리의 탈퇴성명이 나간직후 중국외교부대변인은 《중국은 국제원자력기구로부터 탈퇴할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성명을 주의깊이 대한다》고 발표하면서 미국이 조선과의 전쟁에 대처할 준비를 시작하였다는 보도들과 관련한 질문에 《아직 그 어떤 평가도 내릴수 없다》고 하였다. 중국의 《인민일보》는 대화는 대결보다 좋다는 글을 실었다. 신문은 이미전부터 중국이 회담을 통해《핵문제》를 해결할것을 기대해왔다고 하면서 제재와 압력을 고집하고 지어 경솔하게 무력으로 상대방을 위협한다면 그것은 지난 시기 회담의 성과를 수포로 돌아가게 하고 모순을 다시금 격화시키게 될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랭정하고 인내성있게 회담하는것이 안전책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종일관 대화의 방법으로 문제의 해결을 주장해온 중국의 공식립장을 재확인한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일본신문이 중국지도자들의 발언과 관련하여 쓴 론평자료를 읽으시였다. 15일부 《도꾜신붕》은 우리의 탈퇴성명과 관련하여 중국지도자들의 발언에서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있다고 하면서 북조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반대한다는 종래의 어조에서 후퇴하고있다고 하였다. 신문은 계속하여 중국외교부장 전기침이 일본외상과의 회담에서 유엔안전보장리사회의 마당도 포함하여 독자적으로 건설적인 역할을 할것이라고 말한것은 유엔토의를 반대하는 종래의 립장에서 물러선것이라고 썼다. 또한 신문은 강택민주석이 제재를 반대한다는 자세는 바꾸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를 향해 인내성있는 대화에 의한 해결을 호소하던 중국이 조선을 향해서도 그렇게 할것을 강조하고있다고 평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중사이에 항상 쐐기를 치지 못해 안달아하는 일본신문들의 못된 버릇을 느끼면서도 우리의 《핵문제》해결에서 대화의 방법을 주장한 중국정부의 립장만은 명백히 찍었다고 보시였다.

일찌기 중국의 지도자들은 조중관계를 순치의 관계로 보면서 조선의 운명을 자기 나라의 운명처럼 귀중히 여기였다.

그이께서는 전통적인 조중 두 나라의 친선과 신의는 압록강의 흐름처럼 영원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으시였다.

어느덧 김일성동지의 사색은 린접의 여러 나라들을 에돌아 남조선에 미치였다. 그이께서는 갑자기 눈을 감고 지루감을 느낀듯 허리를 펴시였다. 다시 눈을 떴으나 초점없이 빈공간을 보시였다. 남조선당국자들을 생각할 때면 무엇보다도 먼저 동족이 적으로 된 비정상적인 사태가 통분스러웠고 그래서 그들에 대한 생각을 하기조차 싫으시였다. 하지만 아무리 가슴아픔과 혐오감이 앞서도 이 순간 그들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그들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핵문제》에서도 분별을 잃고 날뛰고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탈퇴성명에 세계가 자중자세에 들어가고있는 시각에조차 《제재》나 《전쟁》을 고창하고있다. 이것은 《핵문제》에서 소외된데로부터 오는 하나의 정치적발작이며 물에 빠진자가 검부레기를 잡는격의 정치만화이다. 이번 카터의 평양방문과 관련하여 그들이 또 어떤 소동을 벌리며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될것인가? 만일 미행정부의 립장을 대변하는 카터가 우리의 조국통일방안을 리해하고 지지하게 된다면··· 아직은 카터가 우리의 통일방안에 어떤 견해를 가질런지 알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가 지지하고 그의 견해를 미행정부가 따르게 된다면 남조선당국자들도 하는수없이 우리의 통일방안을 접수하지 않을수 없게 될것이다. 괴뢰란 싫건 좋건간에 상전의 의사에 복종하지 않을수 없는 법이다. 그렇기도 하지만 조미관계가 개선되는 경우 더욱 궁지에 빠지게 될 그들에게 다른 출로는 없는것이다. 이윽고 수령님께서는 미국의 동향을 분석해보려고 다른 문건을 집어드시였다.

본격적으로 거기에 생각을 집중하기 앞서 문선규의 보고를 받던 때를 되새기시였다···

문선규가 카터의 동향을 서면으로 보고하겠다고 할적에 그런것은 필요없다고 했었지. 카터의 동향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그를 파견한 미국의 정치적배경이 중요하니까. 그렇다는것을 미처 깨우쳐주지 못했는데 나의 의도를 문선규가 리해하였을가? 리해했을것이다. 나의 의도에 민감한 외교일군이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안경테를 바로잡아 초점을 맞추면서 미국의 동향자료에 시선을 주시였다. 많은 자료들중에서 미국대통령 클린톤이 우리의 탈퇴성명이 나가자 미국중서부지방에 대한 시찰을 포기하고 백악관으로 돌아와 《조선반도의 위기처리에 전념》하고있다는 자료에 특별히 류의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며칠전 정세자료에 클린톤이 중서부지방으로 떠났다는 자료를 이미 보신적이 있으시였다. 우리 나라에 대한 유엔 《제재》론의가 분분할 때 그의 이례적인 지방시찰은 하나의 정치적제스츄어였다. 말하자면 미국의 최고수뇌인 자기는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발생한 분쟁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것을 보여주자는것이였다.

조선반도의 위기상황이 백열화되여 백악관을 떠서는 안될 시기에 아무런 뜻도 없는 그의 지방시찰을 달리 분석할수 없었다. 하기는 미국내에서 대통령이 조선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비발치듯하던 때여서 그로서는 국민앞에 여유작작함을 보이는것이 필요했을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클린톤이 황급히 되돌아선것을 보면 그도 허세나 부리고 다닐 계제가 못된다는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우리의 탈퇴성명에 미국의 강경보수세력이 대통령에게 도전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카터의 조선방문을 걸고들면서 그를 귀환시키며 당장 전쟁도 불사하자고 팔을 걷고 나섰다. 그런것만큼 그는 시급히 워싱톤의 백악관으로 돌아와서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다음은?···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차후 결심을 추리해보시였다. 다음은 카터에게 기대를 거는것이다. 즉 회담에 기대를 가지는것이다··· 자신의 이 판단이 사실이라면 현시점에서 미국이 그 어느때보다 회담을 바라고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야말로 그 어느때보다도 절박하게··· 1단계나 2단계 회담때도 미국은 어쩔수 없는 모종의 절박성에서 회담탁에 나왔지만 지금처럼 절벽우에 서있지는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의 판단이 결코 틀리지 않으리라고 믿어의심치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판단을 두번세번 두드려보는 습관, 아니 습관이라기보다 자신스스로 선택한 계률을 엄격히 준수하시였다. 바로 그것으로 하여 수십여년간의 전인미답의 길에서 한번의 정책상착오도 범하지 않으시였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순간도 자신의 판단이 정확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결론하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피로한 머리를 식히려는듯 잠시 눈을 감고계시다가 《800억US$》 하고 조용히 뇌이시였다. 800억US$는 조선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미국이 지출하여야 할 전쟁비용이였다. 리해타산이 밝은 그들스스로가 계산한 액수였다. 하다면 미국이 자그마한 조선반도에 800억US$나 되는 엄청난 돈을 들이밀겠는가. 돈은 미국의 가치관의 기초이다. 돈에 의해서 미국정치가 좌우된다. 미국이 조선반도에서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하지만 결코 800억US$를 쥐여뿌리려 하지는 않을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나는것으로 하여 저들의 핵전략, 세계전략이 파탄되는것을 두려워할것이다.

실지 미국은 최후의 수단을 쓰게 되면 우리가 단호히 맞설것은 물론 미국자체도 무사하지 못하다는것을 알고있다. 그리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저마다 원자무기를 소유하게 될것이라는것을 내다보고있다. 이것은 결국 핵독점, 힘으로 세계를 좌지우지하려는 기본전략이 파탄된다는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바로 이것을 두려워하는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선택은 무엇이겠는가? 이미 판단한대로 3단계회담을 바라고있는것이다. 이렇게 단정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비로소 우리 나라에 와서 하루낮과 밤을 머루르고있는 카터의 내심을 가늠해보시였다. 그가 이미 출국조치가 취해진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원들을 멈춰세워달라고 한것은 우리 나라와 기구와의 마지막 인연을 부지하고 시간을 얻어 우리와 다시 마주앉자는것이다. 그것이 이번 회담에서 그가 노리는 목적이고 의도라는것이 명백했다.

김정일동지께 정세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통보하려고 송수화기를 들려던 그이께서는 무춤하시였다. 새벽 4시였다. 밤이 제일 짧은 하지를 불과 며칠 앞둔 때여서 벌써 창밖이 밝아오고있었다. 김정일동지의 단잠을 깨워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방안을 거니시였다. 밤을 새우며 분석하고 평가한 끝에 세우신 견해와 도달하신 결론을 차근차근 음미해보시였다. 그리고 자신의 그 견해와 도달하신 결론이 대세의 흐름에 부합된다는것을 다시금 확신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다가오는 외교적승리를 믿어의심치 않으시였다. 확신과 신심에 넘쳐 창밖을 바라보시였다. 각일각 밝아오는 미명의 하늘밑으로 대성산의 높낮은 봉우리들이 뚜렷한 륜곽을 드러내고있었다. 골짜기들마다에서는 새벽기류가 뒤설레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