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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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장과 카터와의 회담이 있은 후 조선측에서는 미국손님들을 위하여 목란관에서 연회를 차리였다.

연회장으로 가는 카터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이번 걸음이 쓰디쓴 실패로 끝나는것이 아닐가? 락망에 가까운 깊은 우려가 머리를 무겁게 하였다. 방금 있은 외교부장과의 회담은 충분히 그러한 우려를 가지게 하였다. 외교부장은 정중하면서도 진지한 자세로 6월 13일부로 발표된 공화국외교부대변인 성명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카터는 회담직전에 《로동신문》에 실린 그 성명을 읽었었다.

 

···

첫째, 국제원자력기구로부터 즉시 탈퇴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문제와 관련하여 취해진 기구의 모든 부당한 《결의》들을 무효로 인정하며 우리는 금후 기구의 그 어떤 규정이나 결정에도 구속되지 않을것이다. 우리는 기구가 없어도 자립적인 핵동력공업을 발전시켜나갈수 있으며 핵활동분야에서 국제적협조를 확대시켜나갈수 있다.

둘째, 우리의 특수지위하에서 받아오던 담보의 련속성보장을 위한 사찰을 더이상 지금처럼 할수 없게 되였다는것을 선언한다. 우리가 핵전파방지조약에 복귀하는가 완전히 탈퇴하는가가 판가름날 때까지 그 어떤 부당한 사찰도 절대로 허용될수 없다. 이로부터 기구사찰원들도 우리 나라에서 더이상 할 일이 없게 될것이다.

셋째, 유엔 《제재》는 곧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 립장을 강력히 재확인한다.···

조선외교부장의 발언은 그 내용이 견결하고 단호할뿐더러 그 어조도 강철기둥을 울리는 소리같이 무게가 있었다. 그는 힘의 대결도 회담도 다 준비되여있다는 립장을 취하면서 현시점에서는 대화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카터는 국제원자력기구의 2명의 사찰원들에 대한 추방만이라도 취소해달라고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태의 악화를 막고 사찰원들의 체류, 기구와의 관계유지 등으로 지금까지 견지해오던 미국의 압력자세에서 3단계회담으로 방향을 전환할수 있는 명분을 세워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외교부장은 외교부대변인 성명이 공담이 아니라면서 한마디로 일축해버렸다. 그리하여 카터는 두번다시 입을 벌리지 못하고 이 연회장으로 들어서게 되였던것이다.

얼핏 둘러보니 연회장은 형언할수 없이 정갈하고 화려하였다. 건축예술의 극치를 여기서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으나 시야에 안겨드는 모든것을 구체적으로 감상하고 음미해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외교에 익숙한 그는 겉으로 유연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내심으로는 여간 불안하지 않았다.

연회가 열리고 예술공연이 시작되였을 때에야 카터의 기분이 저으기 밝아졌다. 그는 공연에 출연한 예술단체가 조선의 최고예술단이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듣던바대로 그들의 음악과 무용은 나무랄데없이 훌륭했다. 카터로서는 처음보는 우아하면서도 건전한 예술의 세계를 펼쳐놓았다. 조선가수들은 미국인민이 좋아하는 미국노래도 불렀는데 카터는 모국의 노래를 들을 때 넋을 잃을 정도로 심취되여있었다. 자기가 사랑하는 노래를 멀리 이국땅의 가수들에게서 듣게 되는 류다른 감회때문만이 아니였다. 그는 지나온 생애에 수많은 나라들을 방문하면서 그 나라 예술인들이 부르는 미국노래들을 번번이 들었었다. 하지만 조선의 가수들처럼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노래들의 감정과 정서를 잘 살려낸 경우는 없었다. 어느덧 전후사연이나 주위상황을 잊어버리고 카터는 입속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연회장의 맞은편 벽에는 대형조선화 《해금강의 파도》가 걸려있었는데 푸른 파도가 치솟는 해금강의 모습은 이 나라 인민들의 억센 기상을 보여주는듯싶었다. 실감있게 형상된 그 생동한 화폭이 노래의 정서와 하나로 조화되면서 그에게 멀리 흘러간 청춘시절의 추억을 불러냈다. 해군장교로 복무하던 청춘시절에 카터는 갈매기가 넘노는 푸른바다를 아득히 바라보며 《사랑하는 클로멘틴》, 《알로하오에》같은 미국노래들을 즐겨부르군 했었다.

70고령의 나이에 이르러 여기 조선의 연회장에서 젊은 시절과 마음속으로 상봉해보는것은 또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그는 매 종목이 끝날 때마다 진심으로 찬양과 감사의 정을 보내며 오래도록 박수를 쳤다. 불현듯 크리크모책임보좌관이 언젠가 제공한 책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한구절이 떠올랐다. 그 책에는 예술이 그 나라의 얼굴이고 넋이며 향취라고 씌여있었다. 그 명구의 뜻이 현실적으로 새롭게 안겨오는듯 하였다. 카터는 연회탁에 나란히 앉은 조선외교부장의 낯색을 살피였다. 회담을 할 때의 화강석같은 표정은 어느덧 가셔지고 이마가 약간 벗어진 길숨한 얼굴에 온화하고 즐거운 기색이 감돌고있었다. 그 역시 예술인들의 춤과 노래에 도취되여있는듯싶었다.

《외교부장각하, 제가 알고있기에는 귀국의 김정일각하께서 예술부문을 직접 지도하고계신다더군요.》

카터는 노란 인삼술이 담긴 잔을 외교부장의 잔과 찧으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건 사실입니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예술에 대한 조예가 대단히 깊으십니다.》하고 긍지롭게 응대하던 외교부장은 부드러운 눈길로 카터를 마주보며 다시 말했다.

《카터선생, 그이께서는 당신이 선발대를 통해 보내준 미국의 민요들을 수록한 록음카세트들을 다 들으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카터는 다시 따른 술잔을 집어올리다가 허공에 멈추고 입가에 한껏 웃음을 담았다. 참으로 기쁘고 경사스러운 일이였다. 그는 기회를 놓칠세라 다짐하듯 간곡히 말했다.

《아까 회담끝에 내가 각하에게 드린 새로운 선물도 그분께 꼭 전달되였으면 합니다. 나는 여러가지로 깊이 생각하다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공민전쟁>, <그해의 녀성> 등 몇편의 영화가 수록된 록화테프를 가지고 왔더랬습니다.》

《책임적으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카터는 두팔을 쩍 벌려보이면서 늙은이답지 않게 빠른 말씨로 감사의 심정을 거듭 표명했다.

《우리 장군님께서는···》하고 조선외교부장은 다음말을 고르고있었다. 그사이 카터는 어감이 매우인상적으로 포착된 《우리 장군님···》이라는 외교부장의 말마디를 두고 생각했다. 거기에는 령도자와 각료들사이에 오가는 혈연적뉴대감과 친근감이 깔려있었다. 미국에서는 어느 대통령도 각료들이나 국민들로부터 《우리 대통령》이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불리우지 못했다. 카터자신도 그러했다. 그는 빌리 그라함목사가 조선에 가면 걸음마다 새로운 오아시스를 보게 될것인데 그중에서도 이 나라의 령도자와 민중들사이에 흐르는 인정의 강하에 특히 놀랄것이라고 하던 말을 상기했다. 그것이 사실인듯싶었다. 카터는 기대어린 시선으로 조선외교부장을 바라보았다. 헌데 외교부장은 얼른 뒤를 잇지 못하고있었다. 어떤 흥분으로 해서인지 그의 얼굴은 불그레 상기되여있었다. 카터는 사전료해를 통해서 그의 구변이 거침없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우리 장군님께서는···》하고 꼭지만 떼여놓고 입을 열지 못하는가?

실상 조선외교부장은 말이 났던김에 우리 장군님의 예술적천품과 조예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싶었지만 정작 말을 번지자고보니 하고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참으로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으십니다. 그이께서는 언젠가 저를 데리고 명곡을 감상하신 일이 있었는데 그때 들려주신 말씀을 나는 영원히 잊을수가 없습니다. 노래소리 높은곳에 혁명투쟁이 있고 혁명의 승리가 있다는것이 내가 말하는 노래의 철학이다, 내가 노래를 사랑한다는것은 이 노래의 철학을 사랑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조선혁명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노래와 함께 시작되고 노래와 함께 전진하여왔으며 노래와 함께 승리한 혁명이다,··· 조선혁명은 어제도 노래와 함께 있었으며 오늘도 노래와 함께 있을것이다. 그이께서는 어느 좌석에서인가는 말씀끝에 후대들이 자신께서 음악을 몹시 사랑하였다는것을 기억해줄것을 바란다고 하시였습니다.》

카터는 감심한 낯빛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마지막 말씀의 의미를 새겨보았다. 김정일각하는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였을가? 자신이 령도해오시는 조선혁명이 노래와 함께 승리하고 전진하여온 영웅서사시라는 뜻에서였을가? 아니면 령도자의 관직보다도 음악가를 더 동경하여온 솔직한 인간적인 고백이였을가? 딱히 어느쪽이라고 단정할수 없었다. 어쩌면 두가지 의미를 다 담고있을것이다.

대화에 화기가 돌기 시작했다. 수나롭게 오가는 대화는 카터로 하여금 이미 자기가 제기한 외교적문제들도 상대가 리해하여주리라는 희망을 다시금 가지게 하였다.

《외교부장각하, 아까 회담에서 론의된 국제원자력기구의 2명의 사찰원들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들의 철수를 나의 방문기간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보류할수 없겠습니까?》

그 물음에 외교부장의 낯색이 대뜸 달라졌다.

《안됩니다. 우리는 일구이언하지 않습니다!》

카터는 입을 다물었다. 더 사정을 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으리라는것을 깨달았다. 이때 어지간히 취기가 오른 안해가 다가와서 춤을 추자고 하였다. 춤이란 즐거운 때 추는것이다. 방금 받아안은 좌절감때문에 내키지 않았지만 흔연히 외양을 지어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터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기회를 다 리용할줄도 알며 필요에 따라 마음속 괴로움을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가리울줄도 아는 서방세계의 로숙한 외교가였다.

연회장의 넓은 홀에는 전자악기가 울리는 무도곡의 선률이 흐르고있었다. 로잘린은 남편의 량어깨에 손을 얹고 벽화의 바다가로 그를 이끌었다. 비록 나이는 많지만 그들 부부는 세련된 춤동작을 펼쳐보이였다. 카터는 부지중에 미행정부가 주는 외교적과제대신에 등산복이나 수영복을 넣은 트렁크를 들고 관광려행을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은 까마득히 흘러간 옛시절 신혼려행으로 하와이의 바다가를 거닐며 《알로하오에》를 부르던 때를 상기시켰다. 그때에도 카터는 속세를 떠나 그 바다가에서 사랑하는 안해와 함께 일생을 해로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생각하였다. 오랜 세월을 사이에 두고 꼭같은 념원에 잠기는 생활의 계기가 반복되는것은 무슨 까닭일가? 깊이 따져보면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그림속의 바다가 하와이의 바다가 아닌것처럼 이 순간 평양의 연회장에서 품게 된 념원은 신혼려행시절의 념원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 시절의 카터는 세계유일의 핵무기소유국으로 다른 나라와 다른 민족을 제멋대로 눈아래에 굽어보던 미국의 젊은이였다. 대통령으로 지내던 시기는 물론 동서의 랭전이 종식된 오늘의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자부심은 높았다. 그는 일련의 분쟁지역사태를 조정하는데서도 자기의 의사를 적지 않게 실현하였으며 중국에 대한 무역최혜국대우를 갱신하는 문제에서도 자기 뜻을 현 대통령이 받아들이게 하면서 《여생에 모두를 얻어오던》 정객이였다.

그는 처음 이 나라에 오려고 할 때에도 외국인들에게는 출입을 불허한다는 중앙분리선을 넘어다니며 제나름대로 모색하는 이 지역분단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 미행정부는 그를 여기로 보내지 않았다. 미행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를 내세워 《제재》와 《압살》의 강경일변도로 내닫다가 미국주도의 다국적무력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북조선의 로심교체와 국제원자력기구에서의 탈퇴에 부닥쳐서야 부랴부랴 자기를 여기 협상탁으로 떠밀어보낸것이였다.

그는 지금 이 나라의 분단문제에 앞서 파탄에 직면한 미국의 《핵전략》문제를 안고 인생의 황혼기에 서글픈 행각에 나서게 된것이였다.

이 행각은 그 어느 지역의 분쟁을 조정해보던 지난날의 《떳떳한》 걸음이 아니라 있지도 않는 《핵문제》를 떠들다가 이 땅에서 쫓겨나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원들에 대한 추방조치를 보류시키며 지난 전쟁에서 죽은 미군의 유골을 계속 인도해가기 위한 일종의 구걸행각이였다. 미행정부는 년로한 자기를 조선에 보내면서 큰 기대를 걸고있지만 지금같아서는 그 문제마저 외교적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난생처음 자부심 높았던 여생의 그 모두를 이 땅에서 잃어버리는듯 한 상실감을 느꼈다. 문득 조선방문을 준비하면서 읽었던 신문 《유에스 아세안 뉴스》의 한구절이 되새겨졌다. 미국국적을 가지고 그 신문의 주필로 있는 조선녀성이 김일성주석을 접견하고 쓴 기사여서 특별히 흥미를 가지고 읽었다.

··· 북조선의 수반은 세계의 예상과는 달리 공화국의 운명을 우려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분께서 우려하는것은 미국으로 하여 국토분단이 지속화되는것이였다. 서방의 압력속에서도 그분께서는 국토의 통일에 대한 열망에 넘쳐계시였다···

되새겨보니 비교적 정확히 쓴것 같았다. 오늘 접촉해본 조선의 외교부장이나 부부장의 태도를 보아도 이 나라의 지도부가 극한점으로 치달아오른 지금의 첨예한 정세속에서도 불안해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 불안해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신심과 락관에 넘쳐있는것이 분명했다. 카터는 래일 자기가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과연 그이께서는 회담에서 어떤 립장과 태도를 보여주실것인가? 카터는 춤을 추면서 이 하나의 생각에 골똘히 잠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