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1


 

제 3 장

1

 

서울을 떠난 승용차행렬이 판문점을 향하여 북으로 질주하고있었다. 맨앞에는 대형승용차가 달리고 그뒤로 5대의 승용차들이 따랐다. 평양으로 가는 카터일행이였다. 카터와 그의 부인 로잘린 카터, 책임보좌관 마리온 크리크모, 실무보좌관 낸시 코닉스마크(녀자), 리챠드 크리스텐슨과 미국CNN텔레비죤방송회사 부총사장 이쓴 죠르단을 단장으로 하는 취재단성원들이였다. 완전무장한 청와대의 경호차들이 그뒤를 따르고있었다.

일행이 림진강의 지류인 사천강다리어구에 이르자 청와대의 경호차들은 뒤로 물러나고 그대신 미군용반트럭들이 행렬의 앞뒤를 다시 호위하기 시작했다. 중무장을 하고 반트럭우에 앉은 미군병사들이 총가목을 세워잡고 예리한 눈길로 앞을 주시하고있었다. 자기 나라 전 대통령의 범상치 않은 걸음을 멀리 이역땅에서 호위하게 된 류다른 감개나 긍지감 같은것은 없고 어딘가 긴장한 표정들이였다.

사천강다리를 건너서자 차들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차체의 진동이 느껴졌다.

카터는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길 좌우에는 철조망이 길게 늘어져 무성한 가시덤불을 련상시켰다. 철조망밖으로는 키높이 자란 갈대와 억새풀이 한벌 덮이였는데 바람에 풀숲이 설레일 때마다 여기저기에서 포진지들과 콩크리트화점들이 언듯언듯 드러났다. 그너머 잇달린 나지막한 야산들에는 대형땅크들이 바위처럼 틀고앉아 포신들을 뻗치고있었다.

젊은 시절에 해군장교로 복무한 카터는 그것이 본국에서 최근에 개발한 최신형땅크들인데 그것이 벌써 조선반도의 전역에 배치되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드디여 세계의 열점의 하나라고 하는 조선반도의 군사분리선에 이르렀다는것을 전률비슷한 불안속에 실감하였다. 바로 여기서 임의의 시각에 전쟁의 포성이 터져오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저녁 그가 류숙하고있던 서울주재 미국대사관을 찾아온 김영삼은 이렇게 말했었다.

《각하, 한반도의 첨예한 정치군사적상황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제가 다시한번 강조하고싶은것은 북에서 언제 쳐나올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각하가 평양에서 전쟁의 포성을 듣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아뢰이는 소리인지, 조언을 주려는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그의 말이 저으기 불쾌하여 카터는 응대없이 외면해버렸다. 그러자 김영삼은 불안과 긴장이 떠도는 낯빛으로 다그쳐 말했다.

《각하, 북조선은 최근에 더욱더 단호하고 강경한 태도로 나오고있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어제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했습니다.》

카터는 흠칫 놀라며 김영삼을 마주보았다. 그는 그 사실을 모르고있었다.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야 했던 먼 려행끝에 서울에 도착하여 아직 려로에 쌓인 피로도 채 풀지 못한 때여서 충분한 통보를 받을만한 시간적여유가 없었던것이다. 물론 북조선의 탈퇴가 전혀 뜻밖의 일은 아니였다. 미국을 떠날 때 애틀란다에서 바래워주던 레이크도 침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었다.

《방금 불길한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6월 관리리사회의 제재조치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북조선은 기구에서 탈퇴할수도 있다는 의도를 시사하고있습니다. 지금 확인중인데··· <한국>에 도착하면 정확하게 알수 있을것입니다.》

카터는 레이크의 말을 심중히 들으면서도 설마 북조선이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나오랴싶었다. 결사적인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였기때문이였다. 그런데 북조선이 끝내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하였다니 가슴이 서늘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앞으로 어떤 결과가 빚어질것인가? 공포에 가까운 엄숙한 생각이 머리속에 갈마들었다. 침묵속에 이쪽의 반응을 살피던 김영삼이 다시 말했다.

《탈퇴한 이상 북조선은 흑연감속로의 로심교체를 감시하던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원들을 추방할것입니다. 그리고는 주저없이 로심을 교체하고 플루토니움을 추출하여 원자탄을 만들것입니다.》

카터는 김영삼의 시선을 외면하고 창문밖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클린톤을 생각했다. 북조선의 이 조치에 클린톤대통령은 어떤 립장을 취할것인가. 유엔을 통하여 북조선에 국제적제재를 가하려고 할가? 만일 그렇게 된다면 조선반도에서 불가피하게 전쟁이 터질것이다. 평양은 이미 그 어떤 제재를 가해오는 경우 그것을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것을 엄숙하게 선언한바 있었다. 카터는 매우 불안한 마음으로 서울을 떠났는데 군사분리선 가까이에 이르러 전투태세를 갖춘 대포와 땅크들을 둘러보니 그 불안감이 더욱 커지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어느덧 선두에서 달리던 군용트럭이 군사정전위원회 남측지역의 《자유의 집》마당에 들어섰다. 포도우에 쓸리는 차바퀴에서 고무타는 냄새와 연기가 풍겨오는듯 했다. 군용트럭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달려오던 대형승용차는 서서히 멎었다.

차에서 내린 카터와 그의 부인 로잘린은 두줄로 늘어선 군인들사이로 걸어갔다. 카터는 약간 경계하는 눈길로 북쪽을 바라보았다. 중앙분리선 북측지역에는 몸매가 다부진 인민군군관이 남쪽을 향해 서있었다. 눈빛과 표정까지는 가려볼수 없는 거리였으나 카터에게는 그 군관이 적의를 품고 쏘아보고있는듯이 생각되였다.

《자유의 집》에서 잠시 휴식을 한 카터는 군사정전위원회 미군측 비서장 칠톤에게 물었다.

《대령, 어떻소? 건너가도 일없겠소?》

중앙분리선을 넘어서도 자기의 신변이 담보될수 있느냐는 뜻을 담은 물음이였다.

《각하, 당신은 특전을 받았습니다.》

《그건 무엇을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요?》

《그 어떤 외국인의 사증도 여기서는 통하지 않게 되였습니다. 북측은 분리선을 통한 동족간의 래왕은 주장하고 장려하지만 외국인의 출입은 국책으로 엄격히 금지하고있습니다. 사증에 의한 외국인의 출입이 관례화되면 분리선이 곧 국경처럼 인식될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각하만은 례외로 취급하고있습니다. 이것은 각하에 대한 그들의 커다란 호의로 볼수 있습니다.》

칠톤은 그것이 마치 자기의 공로이기라도 한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담았다. 카터는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며 머리를 끄덕였다. 이때 중령의 견장을 단 미군장교 하나가 들어와 칠톤에게 귀속말로 무어라 여쭈고 나갔다. 그러자 칠톤이 방금전의 표정을 가시고 정중한 어조로 카터에게 말했다.

《각하, 워싱톤에서 각하께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워싱톤에서?!···》

전화내용이야 어떻든 멀리 이방에 있는 자기에게 조국의 수도에서 전화를 걸어왔다는 사실이 무등 반가왔다. 카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칠톤이 그를 전화기만이 놓여있는 보초막같은 별실로 안내하였다.

《주한미군사령관 라크대장이 쓰는 전용선인데 각하의 방북기간 워싱톤과 직결하게 되여있습니다. 평양에 가서도 필요한 때에 이곳에 와서 리용할수 있습니다.》

칠톤은 이렇게 말하며 송수화기를 두손으로 받쳐주었다. 송수화기를 귀에 가져간 카터는 무선과 유선을 거쳐 대양과 대륙을 넘어오는 과정에 어지간히 변조되였지만 귀에 익은 상대의 목소리를 가려들었다.

《레이크씨요? 나 카터요. 이곳은 조선의 판문점이요, 그래 무슨 일이요?》

확성장치가 된 전화이지만 대양을 사이에 두었다는 거리관념에서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각하도 그곳에서 확인했겠지만 북조선은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한다는 외교부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기구로부터 탈퇴하는 모든 법적절차를 끝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추방되는 기구사찰원을 멈춰세워야 합니다. 여기에서 각하의 책임이 크다는것을 저는 다시한번 상기시켜드리는바입니다.》

《알겠소. 당신의 말뜻을 충분히 리해할만 하오. 그러나 당신들이 나한테 들려보낸 보따리는 무게가 너무 적소.》

카터는 자기가 백악관으로부터 넘겨받은 담보를 념두에 두고 그렇게 말했다. 사실 백악관은 미국을 떠나는 카터에게 평양과의 평화적협상의 길을 열어놓을데 대한 임무를 주면서 평양이 협상에 응하는 경우 3단계 미조회담을 할수 있다고 하였다. 백악관은 3단계회담을 마치 평양에 주는 하나의 선사품처럼 여기고있는것이다. 카터가 보건대 1단계와 2단계회담이 미국에 의해 파탄되였다고 인정하는 평양이 3단계회담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것이였다. 그들은 3단계회담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적어도 유엔에서의 《제재》론의의 중지와 그밖에 미국이 현재 취하고있는 일련의 제재조치의 해제를 요구할것이다. 그런데 백악관은 북조선의 요구를 외면하고 오히려 그들을 몹시 자극할수 있는 2개의 군사대상에 대한 사찰문제를 들이댈데 대한 추가적인 임무를 줌으로써 카터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카터는 이것이 불만이였다.

《어쨌든 나는 아메리카합중국의 시민으로서 우리 나라의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소.》

《고맙습니다. 지금 대통령각하는 당신이 이곳을 떠날 때와는 립장을 좀 달리하고있습니다. 그는 이번 회담의 결과를 보아가면서 당신이 북조선측에 공약할수 있는 법적담보를 더 제공해줄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재와 회담이라는 두 극에서 동요하고있던 클린톤은 카터의 행각이 성과를 거두어도 좋고 거두지 못해도 무방하다는 립장에 서있었기때문에 카터에게 들려보낼 《보따리》를 쌀 때 매우 린색하게 굴었다. 그런데 북조선이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하는것으로써 제재조치에 강경히 대처하는바람에 황급히 회담쪽으로 기울어지는 자세를 취하게 되였으며 카터에게 기대를 가지지 않을수 없었다.

레이크의 전화를 통해 이것을 알게 된 카터는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카터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잠자코 있다가 송수화기를 입가로 끄당겼다.

《당신들의 심정은 충분히 알만하오. 그러나 나에게 지나친 기대는 걸지 마시오. 나는 아직 조선의 판문점앞에 서있을뿐이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미지의 땅이 두렵단 말이요!》

《그렇더라도 각하, 가급적으로 이번 방문에서 국제원자력기구의 2명의 사찰원들에 대한 추방만이라도 꼭 멈춰세워야 합니다. 물론 2명의 사찰원의 감시가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기구와 북조선과의 완전한 단절을 막을수 있는 가능성을 준단 말입니다. 대통령각하는 이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북조선에 대한 제재해제도 생각해볼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것을 북조선에 공약해도 일없겠소?》

《그것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많은만큼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들을 납득시켜야 하는만큼 대통령각하에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겠습니다.》

《알겠소, 레이크씨 지금은 이곳 시간으로 10분전 11시요. 우리는 이제 10분후이면 분리선을 넘어야 하오. 그만 전화를 놓겠소.》

6월 15일 오전 11시정각, 지미 카터는 주한미국대사의 전송을 받으며 군사분리선 북측지역에 들어섰다. 미국의 고위인물로 군사분리선을 넘은것은 그가 처음이였다.

카터는 판문점을 떠나는 승용차에 오를 때부터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전경을 주의깊게 살피였다. 이국의 산천경개에 호기심을 가져서가 아니였다. 실상 그의 마음은 자연을 감상할만한 여유가 없을 정도로 몹시 긴장되여있었다. 자기의 평양방문과 관련하여 미국의 어느 한 신문은 우주려행에 비유하였다. 마치 다른 행성과도 같이 미지의 세계와 접촉하게 될것이며 생명의 위험을 무릅써야 할것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비유했을것이다. 북조선에 대하여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일정하게 공정한 리해를 가지고있던 카터는 터무니없이 과장된 그 비유가 기분에 거슬렸으며 모처럼 자기의 방문을 수락한 북조선측을 무례하게 비방하는 숨은 의도가 거기에 깔려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군사정치정세가 전쟁접경에 바싹 접근한 때에 서로가 적국으로 여기는 나라의 시민으로 상대국 지역에 들어섰다는것을 생각할 때 준엄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을수 없었다. 불현듯 오늘아침 서울의 조찬회에서 한 남조선 통일원장관의 말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각하께서는 북에 넘어서자마자 콩크리트요새들과 서울을 겨눈 대구경포들을 보게 될것이고 남침을 선동하는 고함소리를 듣게 될것입니다. 각하께서는 이번 기회에 주한미군이 그들에 대한 억제력으로 되고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될것입니다.》

카터는 요새들과 대구경포들을 찾아보려고 뒤로 휙휙 물러가는 산야에 줄곧 긴장한 시선을 보내고있었다. 승용차는 주변의 산천을 감상하기에 맞춤한 속도로 조심히 달리고있었다. 이미 수km를 지나왔다. 그런데 아무리 눈여겨보아도 요새도 대구경포들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벌판에는 논밭이 펼쳐졌는데 한창 아지를 치기 시작한 벼포기들이 초여름의 미풍에 설레이고있었다.

그러나 카터는 이 평화로운 정경으로 하여 오히려 불안과 의혹이 더해졌다. 표리가 부동한 세계에서 한생을 보내온 그는 평화롭게 설레이는 강냉이포기들이 전쟁무기들을 가리우고있는 그 무슨 연막처럼 느껴졌던것이다. 그는 유심히 들판을 바라보았다. 자로 그은듯이 줄을 맞추어 일정한 간격으로 벼포기들을 심은것이 이채로왔다. 벼재배방법이 동남아시아나라들과는 다른것 같았다. 언덕이나 구릉들에는 강냉이를 심었다. 강냉이는 미국에서도 그중 많이 재배하는 농작물의 하나였다. 눈여겨보니 북조선에서는 강냉이농사 역시 그 방법이 독특했다. 한이랑에 지그자그형을 이루면서 포기들을 두줄로 촘촘히 심었다.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논밭을 바라보면서 자기가 넘어온 군사분리선을 두고 생각했다. 2차대전후부터 지난 50년대의 조선전쟁까지는 북위 38°선이 지금의 군사분리선을 대신하여 이 나라를 둘로 갈라놓았다. 38°선과 군사분리선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지리적으로 비슷한 국토량단선이다. 조선반도의 중부를 동서로 수백여리 가로지른 그 선은 1945년 쏘련군대가 남으로 밀고나오는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고안해낸것이였다. 당시 대통령이였던 트루맨이 주는 과업을 받고 미쏘 량군의 점령지역을 38°선으로 경계를 막자고 제안한 미군장교들중 한사람은 카터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케네디시기와 죤슨시기에 국무장관을 지낸바있다. 언젠가 물어보니 그 친구는 젊은 시절에 자기들이 제안했던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있었다. 본인들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 선에 의하여 조선반도는 반세기동안이나 분단의 력사를 겪어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카터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김일성주석과 상봉하지 못한것이 후회되였다. 그랬더라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무엇인가 유익한 일을 할수 있었을것 같았다. 미국정부를 대표할만한 공식적인 직분을 못가지고 때늦게 찾아가는 이 걸음은 어쩔수 없이 허전하고 거북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그러한 감정을 지워버리려고 애쓰면서 동행하는 공화국 외교부 부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국의 현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입니다. 우리는 서로 대통령출마를 지지한 관계이고 현행정치문제를 두고 서로 조언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이번에 중국에 대한 무역 최혜국대우를 갱신하는 문제도 내가 그것을 인권문제와 별도로 취급해야 한다고 조언을 주었는데 대통령이 그것을 받아들였기때문에 해결되였습니다.》

상대가 지내 허술이 볼것 같은 위구심때문에 비공식적인 자기의 지위와 역할을 은근히 암시하고싶었던것이다.

《외신들은 카터선생이 클린톤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온다고 하고있는데요.》

외교일군다운 예민한 관찰로 카터의 내심을 꿰뚫어본 부부장이 명백한 어조로 응대하였다. 카터는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대신해주는 그의 리해가 진정으로 고마왔다. 이 땅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상면하고있는 공화국의 외교관과 대바람에 의사가 통하는걸 보면 앞으로의 외교적호흡도 잘될것 같았다. 카터는 주름진 얼굴에 흡족한 미소를 그리며 좀더 깊이 간수했던 속심을 내비치였다.

《나는 이번 기회에 김일성주석님뿐아니라 김정일각하와도 상봉하고싶습니다. 김정일각하가 조만해서는 외국인을 만나지 않는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가지고 왔습니다. 미조관계개선은 장기적인 일이기때문에 이런 희망을 가지게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잘 알고있습니다. 당신은 대통령선거공약에서 남조선에서의 미군철수를 제기했고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우리와 미국, 남조선이 참가하는 3자회담을 제안했습니다. 임기가 끝난 다음에도 조선문제에 관심을 표시해왔습니다.》

카터는 감심한 표정을 지을뿐 더 말하지 않았다. 충분한 리해를 표시하는 부부장의 태도를 보아 자기의 의사가 조선지도부에 전달될것이라는 기대를 가질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어느덧 승용차행렬은 평양의 통일거리에 이르렀다. 카터는 커다란 호기심을 가지고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드넓은 대통로의 량쪽에는 초고층살림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살림집의 베란다들에는 갖가지 꽃들이 활짝 핀 화분들이 놓여있어서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살림집밑으로 뻗은 인도주변이며 로타리와 네거리마다 꽃, 꽃이였다. 《충성의 다리》를 건너선 승용차는 시내복판으로 달리였다.

어느 거리를 지나며 바라보아도 통일거리에서처럼 먼 시야에 안겨오는것이 살림집 베란다들과 통로의 주변에 피여난 꽃들이였고 한껏 무성해진 푸른 잎으로 오가는 사람들에게 서느러운 그늘을 던져주는 가로수들이였다. 카터는 생각했다. 꽃은 이 세상 아름다움을 상징하고있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할뿐아니라 가꾸는 마음을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꽃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생활을 지향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을 지니기마련이다. 그런데 평양을 중상하는 어떤 출판물들에서는 여기를 아름다운 지향과 인간적인 감정이나 정서를 못가진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묘사하고있다. 참으로 어리석은 편견이다. 카터는 기독교적인 량심과 공정한 눈으로 모든것을 관찰하고 판단하리라 생각했다.

승용차들은 평양교외의 백화원 영빈관앞에서 멎었다. 백화원은 이름그대로 백가지 꽃들이 만발한 꽃의 바다이다. 꽃구경을 즐기고싶었으나 당장은 그럴 계제가 못되였다. 영빈관의 현관앞에서 키가 후리후리한 장년 남자가 마주 향해 걸어왔다. 동행한 부부장이 외교부장이라고 소개했다. 조선외교부장의 영접을 받으며 손님들은 영빈관의 호실들에 안내되였다.

지정된 자기 방에서 려장을 풀고난 카터는 수행원들이 들어있는 옆방으로 건너갔다. 평양에서 보고 느낀 첫 인상을 나누고싶었다. 깊은 감명을 받기는 하였으나 꽃속에 묻힌듯한 거리의 풍경과 같은 지엽적인 문제를 화제에 올리려는것은 아니였다. 첫인상에서 느낀 이 나라 현실을 두고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의논하고싶었다.

《크리크모선생.》

카터는 대학교수로 지낸바있는 자기의 책임보좌관을 선생이라고 불렀다.

《선생도 보았습니까? 도시중심의 광장에 커다란 초상화들이 건물벽에 걸려있는것을 말입니다.》

《···》

크리크모는 그가 무엇을 묻는지 몰라서 눈을 크게 뜨고 어깨를 약간 으쓱해보이였다.

《차를 타고 광장을 지나오면서 조선인통역에게 물어봤더니 그 광장이 김일성광장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 광장에 맑스와 레닌의 초상이 높이 걸려있더란 말입니다. 당신은 못봤습니까?》

《미안하지만···》

크리크모는 난색을 지으며 말끝을 삼켰다. 보지 못했던것이다. 카터가 유심히 관찰한 대상을 보좌관인 자기가 놓쳤다는것은 하나의 실책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창시자들의 초상화를 내건것이 사실이라면 그에 대한 자기의 견해는 말할수 있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건말입니다. 우리에게 자기 나라가 공산국가라는 인상을 강하게 줄 필요가 있다고 여기고 내걸었다고 할수 있을겁니다.》

《내가 본바에 의하면 그 초상화들은 어제오늘 내건것이 아니더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건 자기들이 맑스-레닌주의기치를 끊임없이 고수하고있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내걸었을것입니다.》

《됐습니다.》

카터는 동문서답을 하는 크리크모와 더 이야기를 하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눈시울을 내려깔며 말머리를 돌리였다.

《난 좀 쉬겠습니다. 조선외교부장과의 상봉이 16시 30분이니까 그때까지 날 다치지 말아주시오.》

카터는 방문을 나섰다. 맑스와 레닌의 초상화에서 받은 충격적인 의혹은 머리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모르긴 해도 오늘날 세계의 그 어느 나라에서도 평양을 내놓고는 공식적인 장소에 공산주의창시자들의 초상화를 높이 내건데를 찾을수 없을것이다. 레닌의 조국인 로씨야에서조차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진 후에는 그의 동상을 들어내는 소동이 벌어지고있다. 동유럽나라들은 더 말할것도 없다. 맑스-레닌주의는 지금에 와서 력사의 추억으로만 남게 되였다. 그런데 유독 평양에서만 그들의 초상화를 도시중심의 광장에, 그것도 김일성주석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광장에 높이 내걸고있다. 크리크모가 말한것처럼 맑스-레닌주의기치를 끝까지 고수한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일가? 아니다. 조선의 당과 국가의 활동지침은 맑스-레닌주의가 아니라 김일성주석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설명할수 있을가? 알수 없었다. 머리속에 자리잡은 그 의혹을 어느때든지 조선지도부와의 면담에서 꼭 풀어보리라고 생각하였다.